소설리스트

〈 104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104/274)



〈 104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마지막으로 보는 게 미남이니,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네요."


헤로디아의 몸뚱이는 바스라지고 있었다.

뭔 정보를 캐내든, 그렇게 길게 심문할 여유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헤로디아는 그다지 숨기려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바닥에 쳐박힌 낙인과 날밑이 덜컥거리는 그레이톰의 심판을 허리춤에 집어넣고, 갑주를 뒤덮었던 사슬을 다시 내 흉갑으로 되돌렸다.

"그렇지? 마음껏 봐라. 대신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고."


"좋아요."

헤로디아의 표정은 어쩐지 편안해보였다.

그 이유나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좌절할대로 좌절한 끝에 패배했으니 후련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헤로디아가 쓰러진 자리 바로 앞에 주저앉았고, 멀찍이서 메이와 대공, 그런 대공에게 목을 붙잡힌 하사관이 여기를 보고 있었다.

내 머리에 씌워져있던 투구를 내려놓고,헤로디아를 지그시 보았다. 물어볼 것은 정해져 있었다.


"너는 뭘 하려고 했던 거냐?"

"…그것부터 묻는 건가요?  마법을 비틀어서 흡수하신 걸 보면…  알고 계신 것 같은데."


"확실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

"좋아요. 그럼 말씀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헤로디아의 눈이 흐렸다. 이미 앞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는 신이 되려고 했어요. 신이 되어서…  세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했죠."

굴레라니. 모르는 얘기였다. 신이 그렇게 덜컥덜컥 될 수 있는 무언가인  같지도 않았고.

내 침묵을 잘 해석해냈는지, 헤로디아는 낮게 웃었다.


"맞아요, 신이 된다고 반드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법은 없죠. 하지만 신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어요. 비록 영락했다 할지라도… 저는 마법사니까요. 제가 계산해낸것에는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니까요…."


그 굴레가 뭔지는 좆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런 걸 물어서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당장에 대공도 마법사고, 고대의 도시에 있는 살로메도 마법사니까.

"신이 어떻게 된다는 건데? 그것도 연구로 알아낸 거냐?"


나는 그 흉물 같은 괴물들을 떠올렸다. 미약하게나마 신성을 담고 있던 일부 괴물들을.

터널을 뚫는 과정에서도 마주쳤던 놈들이었는데, 그 흔적들을 감안하면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게 널리 적용 가능한 거라면 마리암이라던가,세레나라던가, 전력 외로 취급되는 여자들도 나와 대등하게 협력할  있는 전력이 될테고.


무엇보다 이미 잠재력이 풍부한 메이한테 적용한다면 더할 나위 없으니.

"후후, 그것부터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헤로디아는 느긋하게 눈을 깜빡이고는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그 방법은 제가 직접 알아낸 건 아니랍니다. 실마리는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방법이 없었거든요.  모든 방법과 연구할 방향성은 봄의 순례자가 제공해주셨답니다. 가장… 흥미로울 이야기와 함께요."


흥미로운 이야기?


나는 문득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헤로디아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었다. 헤로디아의 비늘 덮인 피부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질문을 많이  수는 없어보였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말을 이었다.

"4신은 원래 인간이었다고 해요. 종족적 차이는 있었지만… 날 때부터 신은 아니었죠. 아주  고대에…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은 가장 거대한 신성 덩어리인 창조신을 죽이고  힘을 빼앗아 신이 되었다고 했어요."


"…뭐?"

4신이 원래 인간이라는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형태를 유지한다면, 분명 접점은 있을테니까.

근데 저 창조신에 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임에서든,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든.


"모든 생명에게 깃든 생명력은… 창조신의 약소한 권능과도 같은 것. 그 약소한 권능을 끌어모아 자신에게 주입한다면 준신, 혹은 그보다  아래의 뒤틀린 모조신이  수 있을 거라고 했었죠."


봄의 순례자가 그런 걸 알려줬다니.

그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신이 늘어서  새끼한테 좋은  뭐가 있다고?

"당신이 흡수한 제 마법은… 그렇게 모아둔 생명력을 신성으로 바꿔 주입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단순히 신성 조각 정도로는 신이 될 수가 없었고… 신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할만하지만 거대한 신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의 체액이 필요했죠. 그게 당신의 피… 혹은… 정액이었죠."

헤로디아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바스락, 하고 얼굴에 들러붙은 비늘이 떨어졌다.

"그런 대전사께 드리고 싶은 말은 많이 남지 않았네요."

헤로디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륵 떨어졌다. 왜 우는 건지 알  없었다.

그 표정이 후련해보여서, 더 알 수가 없었다.


"봄의 순례자는 대륙을 건너갔답니다. 여름의 대전사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죠. 대전사님을 상당히 두려워하는 모양이었어요. 예에… 분명 그랬을테죠."

과연 그랬을까, 나는 잘 알지 못했다.


그냥 하는 소리일 수도 있었고.

하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헤로디아의 의식은 의미 흐리다 못해 드물었다. 나는 마지막 질문을 고르고 고르다가, 내가 여기에 도착하게 된 계기를 묻기로 했다.


"…그럼 하나만  묻자. 네 자식새끼라는 사막의 포식자를 써서 유물을 손에 넣고자 한 이유는 도대체 뭐냐? 그 유물과 너는 어떤 연관도 없어보이는데."

내가 입고 있는 이 사슬갑주는 마법사에게 그다지 적합한 물건이 아니었다. 헤로디아가 잠깐 굉장한 백병전 능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본격적인 전사는 아니었다.


이건 전사에게 적합한 물건이었다.


좀 많이 신기하고 튼튼하긴 했지만.


하지만 그 드래곤이 유물에 과하게 집착했고, 그 드래곤을 보낸 게 헤로디아로 의심되니, 분명히 목적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과연, 헤로디아는 그런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지 웃다가 대답했다.

"그 아이를 이용해서… 생명력을 끌어모아 목적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목적과 함께…  격에 어울리면서도 연구에 도움이 되는 유물이, 필요했으니까요."


연구에?

이게 어딜 봐서?

그냥 고대의 신기한 전사용 유물일 뿐인데, 신성과 연관은 전혀 없어보였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틀렸다는 듯, 헤로디아는 즉시 말을 이어나갔다.

"대전사님께서 입으신, 그 유물… 그건 창조신의 권능을 추출하고 담아서 만든, 고대인들의 유물이었어요. 연구에 당연히 큰 진척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죠."

나는 그 말에 새삼 사슬갑주를 내려다봤다. 사슬갑주는 완고하게 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기억해둬야겠네. 내가 다시 헤로디아를 올려다봤을 때, 헤로디아의 몸은 점점 빛을 잃고 있었다.


사이에서 헤로디아의 동공이 점점 탁하게 풀려갔다. 나는 그 죽음을 바라보면서 몸을 일으켰다. 헤로디아는 내 기척에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저 앞에… 제 연구실이 있으니… 부디…."

그 말을 마지막으로그 마법사의 호흡이 멎었다.

그리고 헤로디아의 육신은 산산히 부숴져 먼지로 변했다.

난 그 광경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

"괜찮습니까?"


내 말에 대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나와 대공 앞에는 한 남자가 무릎 꿇고 있었는데, 나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이제보니 메이랑 씻고 나오니 기다리고 있었던 그 애송이였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모른다더니….

나는  애송이 새끼를 내려다봤고, 애송이는 나를 보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왜 이래 씨발?

"그래서, 어떻게 할 겁니까?"


대공은 고민하다가 손을 뻗었다. 뻗은 손에서 마법이 뭉쳐져 쏟아져내렸다.


애송이는  마법을 맞더니 풀썩 쓰러졌다. 뒈졌나?


"기절시켰습니다. 적법하게 처벌하고, 감옥에 가둘 겁니다. 후에는 아마… 추방하게 되겠죠."


추방이랑 사형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병사들이 연구실에서 찾아낸 자료들과 실험 결과들을 옮기고 있었다.


대공과 메이만으로는 알 수 있는  적어서, 이후 고대의 도시로 옮길 정보들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대전사님이 없었다면 저희는패배했겠죠. 그리고 그녀의 야망은 이뤄졌을테고요. 도시민 전원의 생명을 빼앗는 방향으로 말이죠."


대공의 백골손이 제 얼굴을 스치니, 뼈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을 들으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

평소에 사용하던 감각과는 다르게, 내 전신을 가득 메운 전능감은 그제서야 내 팔다리인 것처럼 작용했다. 항시 유지되는 거인의 힘, 분노에 따른 추가 상승이 있는 근력.


확실히, 내가 돕지 않았더라면 헤로디아는 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퀘스트에는 신을 죽이라는 게 1/4에서 1/5로 늘었을테고.

봄의 순례자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때에, 대공이 불현듯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쫓아야겠죠."


대공은 모든 사정을 들었다. 헤로디아에게서 직접 들은 정보와, 봄의 순례자가 나에게 적대적이라는 걸.

그 말을 들은 대공은 그렇게 판단했다. 봄의 순례자가  방법을 널리 퍼트려 신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대륙 너머는 괴물과 종말에게 침식되지 않은 땅입니다. 왕국, 제국 등 멀쩡한 국가들이 아직도 멀쩡하게 유지되면서, 서로에게 칼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는 땅이죠. 가장 문명이 남아있는 대륙이라고들 합니다."

내가 그 말에 조용히 바라보니, 대공은 쓰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땅이라면, 봄의 순례자께서 뿌리신 방법을 실천해 신이 되는이들도 많을테죠."

시간이 촉박했다.


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대공은내 동의에 한숨을 내쉬고서, 끌려가는 제 하사관을 물끄러미 보았다. 표정 하나 없는 백골에게서 씁쓸함이 느껴졌다.

"만약 쫓으실 거라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기와 대전사님의 도시, 고대의 도시를 잇는 순간이동 좌표를 만들겠습니다."

어? 그게 돼?


내가 눈을 크게 뜨니 대공이 낮게 웃었다. 중년 특유의 지친 웃음이었다.


"대륙을 건너간 후에 만들어낸 거점에 좌표를 설치한다면, 얼마든지 이 대륙으로 오고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소싯적에는 모험을 했었던 몸, 순간이동 좌표의 유용성은 깊이 실감한 바 있습니다. 그건 대전사님께 미력하게나마 도움이 될테지요."

예의 차려서 겸손하게 말하지만, 거점간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원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당연하게도 시간의 소요에 따라 커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순간이동이 존재한다면  문제는 대체로 해결할만한 소극적인 말썽으로 그칠테니까.

대공이 나의 태도에 웃고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우선 고대의 도시와  도시 사이에 순간이동 좌표를 만들어야겠죠. 며칠 걸릴테니, 편안히 쉬면서 기다려주시길."

대공은  말을 마지막으로 물러나 어디론가 향했고, 나는 잠시 멀뚱히 서있다가 숙소로 향했다.



*

상황이 변한 건 2주  지난 후였다.

나는 할 게 없기도 하니 도시를 싸돌아다니거나 아니면 내 방에서 메이나 여왕, 때로는  다 불러다가 몸을 섞었고, 그렇게 한창 몸을 섞을 쯔음이면 잠에 들었었다.

특히 메이랑  때면 체력의 한계까지 박아대고 싸지르고 했었으니.

메이는 그렇게 거칠게, 하루종일 해대는 걸 꽤 좋아라했다.

나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내 무릎 위에 엉겨붙은 메이의 허리를 쓸었다.

"…푸하."

맞대고 있던 입술과 얽어대던 혀를 떼어내니, 메이는 으응, 하면서 작게 신음하더니 내 몸을 껴안아왔다.


"내일 돌아가야 한댔지?"

"어."

"으응, 돌아가기 싫다."

왜 이러는지는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넓찍한 대리석 욕조는 포기하기 힘들었으니.

돌아가서도 이런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순간이동 좌표가 고정되고, 원한다면 언제든 열 수 있게 되었으니, 언제든 이 욕실을 이용할  있을 거다.


아쉬워서 괜히 숨을 내뱉으니, 메이는 그런 나를 빤히 보다가 입술을 내밀어 입맞췄다.

맞닿은 입술을 살짝 벌려, 내 입술을  입술로 몇 번 훑더니 혀도 밀어넣는다.


혀에서는 미약하게 쓴맛이 났는데, 방금 전까지 와인을 마시고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럴만도 했다.


그 쓴맛이 나는 혀를 섞고, 한창 빨아대다가 떼어내니 메이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내 목에 팔을 두르고 다시 입맞췄다.


강제로 내 입안을 혀로 벌리고, 그 벌건 혀로 구석구석 훑어댔다.


나는 잇몸을 핥아지면서 손을 끌어내렸다. 끌어내려 보지둔덕을 손가락 끝으로 훑었고, 훑어내린 검지를 움직여 클리토리스를 살살 문질렀다.

메이가  애무에 몸을 꿈틀하더니 입을 떼내었다. 우리의 입 사이에 길게 교각이 남았고, 메이는 풀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키스 되게 좋아하네."

"으응, 키스 좋아해. 기분도 좋고… 여기도…."

메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물 아래의 손을 잡아끌어 제 하복부를 스치고, 제 보지둔덕을 문지르게 했다. 그 둔덕 너머, 아직도 애액을 흘려대는 틈을 쓸어주니 메이는  목을 껴안고서 헐떡였다.

"엄청 젖어."


"그래보이네."


손을 잡아빼니, 물과는 다른 무언가가 손을 달궈놓은 흔적이 언뜻 보였다. 메이는 부끄러운지  목덜미에 입맞추고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흔들면서 내게 안겼다.

"전하는 쉬러 갔는데, 너는 안 그러냐?"

"쉬고 있잖아?"


방금 전까지 여기서 존나 박아댔던  감안하면  거 같진 않은데….

내가 어이가 없어 웃으니, 메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가슴팍에 머리를 묻었다.

그렇게 앵겨오는 메이를 잘 씻기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하녀가 서있었다. 대공의 저택에 머무르는 동안 거의 보이지 않았던 하녀.


그녀는 마침내 순간이동 좌표가 고정되었음을, 그래서 언제든 원한다면 순간이동을 할 수 있음을 알리고는 멀어져갔다.

저무는 태양 너머로 까마귀가 울고, 나는 그제서야 돌아갈 수 있음에 애틋하기까지 한 아쉬움을 느꼈다.

벌써 이 도시에 정이라도 든 모양이었다.

나는 한숨 한  뱉어내고서, 짐을 챙기러 방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