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용의 도시 발데가리아
활줄이 가늘게 떨리고, 활대에 걸쳐져있던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날아가는 화살이 그리는 궤적을 눈으로 쫓으니, 금방 나무 사이로 머리가 비집어나온 짐승에게 틀어박혔다.
화살이 돋아난 사슴은 도망도 치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화살이 꽂힌 부분은 다리의 살짝 위였다. 화살촉이나 화살의 중간부분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틀어박혔다.
오, 이걸 한 방에 잡네.
나는 손에 들었던 투창을 다시 투창집 안으로 돌려놓았다.
여왕 역시 놀라웠는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대단하구나, 세레나 경. 짐이 데리고 있던 사냥터지기보다 솜씨가 좋은 거 아닌가 싶어."
"팔을 잃기 전에는 종종 사냥도 다녔었으니까요."
세레나는 으스대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렇게 고하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활을 왼손으로 옮겨쥐었다.
그 옆에서 나는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타오르는 말을 움직여 세레나가 잡은 사냥감을 향해 다가갔다. 말의 활활 타오르는 다리가 수풀을 헤집고 나아갔으나, 불은 번지지 않았다.
"신기하네… 안 옮겨붙고."
그런 내 말을 따라서, 털에 윤기가 흐르는 밤색 말을 몰아 마리암이 따라왔다. 마리암 역시 활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화살통에는 사용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러게요. 그보다는 저게 더 신기하지만요."
내 눈짓이 향한 곳은, 세레나의 왼팔이었다.
마법의 사용으로 인해 잘려나가, 의수가 대체하고 있었을 자리에는 멀쩡하게 팔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말의 다리를 굽혀 사냥감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세레나에게 향했다.
"어떻게, 팔은 좀 괜찮습니까? 뭐… 이물감이나 치밀어오르는 분노라던가, 그런 건 없고요?"
"있을리가요. 오히려 기분 좋네요."
세레나가 보란듯이 심호흡을 하고는 씩 웃었다. 내가 그 모습을 조며 짧게 고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거 같으면 말하세요."
"물론입니다."
세레나가 선선히 웃는 와중에, 나는 짊어지고 있던 사슴의 사체를 뒤에서 짐마차를 끌고 있던 병사들에게 다가가 마차에 실었다.
마차에는 이미 여러 짐승들이 실려있었는데, 대다수는 세레나가 잡아낸 짐승들이었다. 나는 눈이 꿰뚫려 죽은 멧돼지 옆에 사슴을 내려놓고는 다시 화염마를 몰아 일행에게 합류했다.
다가오는 나를 보고는 세레나가 히쭉 웃으며 말했다.
"정말…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할지…."
"저한테 그러지 마시고, 살로메씨한테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해두세요."
"예, 꼭 그래야죠."
오랜만에 세레나가 웃는 표정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럴만도 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금속제 의수가 자리하고 있던 세레나의 어깻죽지에는, 언제 팔이 없었냐는 듯 말끔하고 깨끗한 피부를 내보이는 팔이 있었다.
나는 그 팔에서 눈을 돌려 내 허리춤 파우치 안에 들어있는 물약을 바라봤다.
살로메가 얼추 말하기로는, 초재생물약.
인간의 육체 활성을 돕고 상처 회복을 돋우는 작용을 하는 게 전부인 기존의 회복약과는 다르게, 이 초재생 물약은 잘린 인간의 팔을 다시 나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가히 권능에 가까운 작용이었다.
실제로 미약한 신성이 깃들어있으니 사실상 권능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나는 그 물약을 도로 파우치에 집어넣고는, 세레나의 왼눈을 가로지르는 안대를 물끄러미 보았다.
"눈은 반응 없습니까?"
여왕과 무슨 얘기를 나누던 세레나는 내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가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력 회복은 커녕 여전히 깜깜합니다.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그런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며 안대를 들추는데, 확실히 안대 밑의 눈동자는 반응 없이탁한 빛깔이었다. 시력이 완전히 상실되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왼눈이 돌아오면 좋겠노라고 노래를 부르던 세레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왼쪽 눈은 재생하지 않았다.
파괴된 게 아닌 시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오래 지나 재생되지 않는 건지.
마법사도 아니고 그걸 연구해본 새끼도 아닌 나한테는 판단할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보기 나쁘진 않네요. 세레나씨는 안대가 잘 어울리니까요."
"흐, 빈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세레나는 그럼에도 팔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기쁜지 슬쩍 웃고는 말을 몰았다.
그 뒤를 나, 마리암, 여왕이 뒤따르고맨 뒤에서 병사들이 지루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마차를 몰았다.
한동안 수풀이 우거진 샛길을 따라서 말을 몰던 중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웬 사냥이더냐?"
그런 병사들과 나, 세레나와 마리암을 차례로 바라보던 여왕, 샤론이 문득 물었다.
샤론의 자색 눈동자는 나를 향해있었는데, 내가 사냥을 가자고 제안한 게 아님을 감안하면 좀 억울한 일이었다. 내가 뭐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는데.
난 이런 귀족적인 스포츠 존나 모른다고. 실제로도 내가 잡은 사냥감은 하나였는데, 그게 괴물이라서 실상 사냥 축에도 못 친다는 걸 감안하면 이 사냥에 나와서 내가 한 일은 좆도 없었다.
결국 나 대신 대답한 건 마리암이었다.
"뭐어… 가끔은 이런 것도 좋잖아? 다른 것도 있지만."
"…아하."
내 불만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마리암이 씩 웃고는 내 뺨을 가볍게 꼬집었다. 세레나는 그 옆에서 일부러 들으라는 듯 감탄사를 흘렸다.
뭔데, 뭔 목적인데.
할 게 없어서 따라간다고 하긴 했었지만, 세레나의 팔을 테스트하는 거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리암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세레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슬쩍 하늘을 살폈다.
샤론은 잠자코 뭔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말했다.
"…아, 대전사를 셋이서 독점하는 거구나?"
"엉? 그런 겁니까?"
내가 샤론의 말에 마리암을 돌아보며 말하자, 마리암은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하기야, 도시에서는 메이나 겨울의 신부, 세네카도 있으니 혼자서 끈덕지게 할 수는 없었다.
굳이 사냥이나 나올 필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어, 어느정도는 맞긴 한데. 그것만 있는 건 아냐. 다들 할게없잖아? 귀공도 심심해보였고, 나도 해본지 오래돼서 해보고 싶던 차이기도 하고, 세레나 경은 팔이 잘 움직이는지도 확인해야하고?"
"저는 알고 있었지만요."
세레나는 슬쩍 인정했다.
뭐야 그럼 왜 감탄사 낸 건데.
내가 어이 없어 웃으니, 세레나가 씩 웃으며 나를 바라봤다.
"그럼 도시에 있었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도시에 있었으면 다른 이들과 나눠서 해야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원정에 못 끼니, 못 끼는 사람끼리 한동안 독점 좀 하자, 이겁니다."
나는 그제서야 납득했다. 이제보니 확실히, 이 인원은 전부 원정 불참자들이었다.
세레나는 도시를 관리해야해서, 마리암은 두 도시간의 군사적인 교류와 관리를 위해서, 여왕은별로 원정에 도움이 안되어서.
내가 샤론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샤론은 뚱한 표정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그러면서 투덜댔다.
"대전사가 많이 착각하는 모양인데, 짐은 꽤 유능하다고? 다만 고된 항해를 견딜 수 없을 뿐이다. 알겠나, 대전사?"
"예, 그러시겠죠."
샤론은 그 서구적 미인에 부합하는 얼굴로 불만을 여지 없이 드러내고는 말의 속도를 높였다. 흙바닥 위에 땅을 다져 만들어둔 길 위로 그녀의흰색말이 빠르게 다리를 내딛었다.
"후, 이대로라면 왕가의 위엄이 실추되겠구나. 짐이 직접 대전사에게 어울리는 여자임을 이번 사냥으로 증명하겠다."
마리암이 눈을 빛냈다.
"오, 내기하는 거야? 나도 낄게, 전하."
세레나는 흥미가 없는 건지, 고개를 내저었다.
"으으음… 저는 이미 충분히 잡기도 했으니 현성씨 옆에 있겠습니다. 괴물이라도 나오면 대처도 해야할테고요."
"싱겁구나! 항복하는 것으로 알아두겠다, 세레나 경!"
여왕이 그 말만큼이나 싱거운 농담을 뱉고는, 화려한 사냥용 활을 뽑아들고 말을 몰았다.
마리암이 그 뒤를 따르며 활을 뽑아들었고, 나는 멀찍이 나아가는 여자들을 보면서 설익은 웃음을 흘렸다. 흩날리는 금발과 적흑발의 머리칼이 곧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만 보다가 세레나에게 말했다.
"원래 반대 아닙니까? 이런 경쟁은 소년들이나 하는 걸로 아는데요."
"그건 그렇네요. 승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건그래. 내가 워낙 잘생겨야 말이지.
내가 씩 웃으면서 투창집에서 투창을 꺼내어 쥐자, 세레나가 왼손을 뻗어 내 뺨을 문질렀다.
"언제 오실지는 모르겠는데, 슬슬 어둑해지니 야영 자리라도 잡아볼까요?"
확실히 세레나의 말대로 태양이 천천히 저물고 있었다. 붉게 물들어 내려앉는 태양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병사들에게 눈짓했다.
다 들리게 떠들고 있었어서 그런지,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차를 끌고 와 적당한 공터에 세우고, 묶여있던 말들을 풀어 쉬게 둔다.
가져온 건초를 놔둬 말들이 먹을 수 있게 하고는, 황급히 어디론가 향해 장작을 주워오는병사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큼직한 모닥불에 다가가 장작더미에서 손에 딱 들어오는 장작을 손에 쥐었다.
금방 화염 부여의 불꽃으로 타오르는 장작을 모닥불 자리에 던져넣으니 신성으로 타오른 불꽃이 번져 금방 거대한 모닥불이 생겨났다.
몇명의 병사들이 바쁘게 솥 따위를 가지고 와 그 위에 얹고는 가져온 물을 들이붓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니, 병사 중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천막 설치를 마쳤습니다, 대전사님."
"아, 수고하셨습니다. 다른분들 좀 도와주시고, 편히 쉬세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시고요."
"알겠습니다, 대전사님. 편히 쉬십시오."
이 병사를 비롯한 사냥에 동참한 이들은 대공 측에서 각출한 병사들로, 헤로디아와의 접전이 일어났던 그장소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었다.
그 탓인지 이들은 사냥 자체가 지루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나와 동행하는 것 자체는 퍽 영광으로 여기는지 별 다른 불만 없이 노동했다.
마리암과 샤론은 그 야영지의 설치가 완전히 끝났을 즈음에야 느지막하게 나타났다.
말 안장 양편에 산토끼나 작은 새 같은 걸 잔뜩 매달고 온 걸 보니 확실히 늦은 만큼 사냥은 성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리암이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머, 준비 다 끝났네? 이거 미안해서 어째."
"대전사야, 마리암 경은 거짓말을 하고 있단다. 야영지 준비할 시간이니 일부러 늦게 가자고 했었지."
"여왕 전하도 오랜만에 말 타는 게 좋다고 천천히 가자면서?"
"으음… 짐은 그런 적이 없느니라."
마리암과 샤론이 그렇게 농을 주고 받으면서내게 다가왔다. 땀에 젖은 샤론의 금색 머리칼이 모닥불에 빛났고, 마리암 역시 땀을 흘렸는지 드물게 머리를 풀어 흩날렸다.
"사냥은 짐이 이겼으니 여긴 짐의 자리니라."
"제 무릎인데요."
여왕은 못 들은 것마냥 내 무릎 위애 올라타, 내 뺨에 입맞췄다.
그걸 바라보며 마리암이 노골적으로 아쉬워했다.
"한 마리만 더 잡았으면 내가 이기는 건데."
마리암은 아쉬워하면서도 군말 없이 내 오른편을 차지했다. 내 왼쪽에 쭉 앉아있던 세레나는 여왕이 이겼다는 사실이 놀라운지 여왕에게 말했다.
"전하가 이기실 줄은 몰랐네요. 마리암씨의 활 솜씨도 보통은 아닌데."
"짐이 얼마나 사냥에 자주 나갔는지 그대들은 잘 모를 거다. 귀족을 제 편으로 만들고 입지를 굳히는데 즐거운 사냥만한 게 없었거든."
"그럼 활솜씨랑 상관 없지 않습니까?"
내 딴지에 여왕은 고개를 내저었다.
"뭘 모르는구나, 지지자들이 추켜세우기 편하도록 사냥을 잘하는 것도 왕의 덕목이다. 짐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왕가에서 최고였지."
오, 역시 왕가.
진위 여부는 내가 그 왕손들을 죄다 해치운 바,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가 놀라워 하니, 내 무릎에 비스듬히 앉은 여왕은 의기양양해 하면서 내 목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금색 머리칼을 내 얼굴에드리우며 몸을 기대왔다. 그 몸을 받치고서 양옆에서 느껴지는 여체의 짙은 향기에 곤란해할 무렵, 병사들이 도축한 고기를 가져와 스튜에 밀어넣었다.
"식사나 합시다. 하고나서 좀 쉬어야죠."
내 쉬자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세 여자의 눈이 번뜩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식사는 예상 외로 조용했고, 우리는 그 뒤에 천막으로 들어섰다. 4인분의 옷이 한 켠에 쌓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