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바다의 주인
투확!
그들은 등장만큼이나 급작스럽게, 파도에서 제 몸을 빼내었다.
"…허어."
그렇게 나타난 괴물들은 내게 무척이나 익숙한 한 편, 그다지 익숙하지만은 않은 모습이었다.
매체에서는 몇 번을 보았을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본 적도, 상세한 상상을 곁들여본 적도 없는 끔찍한 모습.
비강을 메우는 비린내와 더불어은은한 혈향이 저들이 품은 적의를 가늠하게 했다. 그제서야 괴물들이 손에 쥔 장병기를 나에게 겨누었다.
그 장병기 끝은 날카로웠고, 그 장병기를 붙들은 괴물들은 기이했다.
물고기의 머리를 본뜬 듯 했지만, 어류의 그것이 아닌 두개골에 억지로 씌워놓은 비늘이 기이하게 뒤덮여 혐오감을 자아냈다. 슬쩍 벌려진 주둥이에서 쑥 튀어나온 인간의 이빨이, 내게 저게 단순한 어인이 아님을 짐작케 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크툴루 신화의 그것과 유사했다.
딥원. 깊은 곳에 사는 존재.
그들은 큼직한 눈을 뜬 채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에워쌌다.
철벅
그 과정에서도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삽시간에 내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메워버린 바닷물은 내 걸음마다 활력을 빼앗아가려는 것처럼 엉겨왔다. 그 축축한 실감에 도끼자루를 단단히 쥐고는 흘긋 눈을 돌렸다.
파도 때문에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얼추 느끼기엔, 내가 딛고 있는 바닥은 바닷속으로 끌려가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물고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다에서 숨쉴 수 있는 포유류도 아니었고.
내가 싸울 수 있는 건 아주 짧은 시간. 바닷속으로 끌려간 이후라면 늦는다. 내 승기는 여기에 있었다. 폐부를 억지로 부풀려 최대한 많은 공기를 확보하고서.
"간다."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박찬 자리의 나무가 어지러이 박살나고, 부숴져 흩날리는 파편이 바닷물을 찰박이게 할 쯔음, 괴물 중 하나가 달려드는 내 모습을 보고는 재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까가각
밀려오는 쐐기는 생명을 끊어놓기 위해서인지 송곳의 형상을 띄고 있었다. 단단한 갑주를 두르고 있지만 구태여 내구성을 확인해볼 이유는 없었다. 몸에 닿기 전 상체를 틀어 피하고, 도끼 아래를 창에 걸었다.
기긱
쩌어억!
피하고, 무기를 봉쇄하는 동작과 동시에 주먹을 뻗었다. 상체의 회전이 실린 주먹은 너무도 가볍게 괴물의 대가리를 으깨버렸다.
파아앙!
뒤늦게 내 거력에 휩쓸린 공기가 터져나가고, 바닷물이 분수처럼 치솟았다.
그 틈을 노리고 물고기가 달려들었다. 두 다리로 단단히 바닥을 딛고, 내게 뛰어들며 창을 내리질렀다.
상대하지 않는다. 얼추 배운 격투술이 무색할 움직임이라, 나는 어줍잖은 기술이 아닌 본능을 일깨웠다.
퍼억!
다시 한 번 옆으로 틀어 피하기엔 빠르다. 그래서 피하지 않는다. 치밀어오르는 죽음을 손을 뻗어 붙잡고, 내지른 작살과 함께 공중에 뜬 놈을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다리를휘둘렀다.
올려차기를 맞은 괴물의 머리가 뭉게지고, 피륙이 튀었다.
그 시체가 풀썩 쓰러지기도 전에, 둘러싼 괴물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그 라 라 라 라 락!!!
독특한 울음이었다. 아가미를 잔뜩 돋우며, 몸을 낮춘 채 그렇게 울부짖은 괴물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튀어오르는 근육만큼은 상당한지 눈으로 쫓기 힘들었다.
어디까지나, 맨눈으로는.
붙들었던 창을 내던지며 속으로 되뇌였다.
[영원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숨 한 번 내쉬기도 전에 감속한 세상에서, 괴물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튀어오르는 바닷물과 튀기는 물방울조차 허공에 멈춰서고, 내가 손에 쥔 도끼가 신음했다.
물고기 괴인들이 뛰어드는 궤적은 거의 동시에 나에게 도달하게 되어있었다. 실로 훌륭한 지휘 하에서 행해진 것인지, 아니면 실로 합리적으로 구성된 사냥 원칙에 따라 구성된 진형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대응조차 할 수 없을 게 분명한, 작살과 창날, 망치의 행렬.
그 병장기의 틈바구니에, 나는 도끼를 찔러넣었다.
치이이익
목졸라 죽이는 것처럼 지극히 끈질긴 살의를 품고서 도끼를 내밀고, 그 도끼가 물고기에 닿자마자 들리는 타는 소리에 숨을 내뱉었다.
그 숨을 뱉어내는 순간, 나는 회전하며 죽음을 흩뿌렸다.
*
'확실한 건가?'
'코를투론님은 틀린 적이 없다. 신의 사도이신 그분의 말이 틀리다면, 우리가 옳도록 만들어야지.'
높이 떠오른 파도 안에서, 두 명의 심해인이 말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에 새겨진 문헌에만 기록이 남겨져 있는 존재였다. 해신을 섬기며, 그 종을 자처해 스스로 바닷속으로 숨어들어간 족속들.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 마을에게는 오랜 공포로 남겨져 있는 종족이었다.
그런 그들은 지금, 어떤 배가 멀찍이서 그들을 관망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내버려둬야 했다.
배 위에 있는 인간을 침묵시키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하지만, 나 역시 의아하긴 하군.'
그들은 정신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곤혹스러워 했다.
분명히 느껴진 해신님의 권능이 있다는 말에 따라 수하를 데리고 물 밖의 불경한 이교도들을 벌하는 건 좋았지만, 제사장인 코를투론의 지시는 지나치게 두루뭉실했다.
'신성이 느껴지긴 하는데, 이게 정말 해신님의 신성이 맞나?'
해신님은 생명의 근원이자 위대하신 창조주. 당연히 모든 생명에게 그 신성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강대한 생명력을 해신님의 신성이라고 사제들이 착각하는 것도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단순히 생명력이 강대한 존재가 아닐까 의심하진 않았다. 사제가 아닌 제사장이 그렇게 자신할 정도면, 명확한 신성의 흔적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눈 앞의 존재, 인간이라고 불리우는 열등종이 사용하는 신성은 해신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곤혹스러워 하면서도, 결국 확인을 위해서는 죽여서 먹어보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는 수하들을 떠밀었다.
그렇게 떠밀린 수하들이 그 인간과 겨루고, 싸움이 이뤄질 무렵. 그들의 심해 활동에 적합하게 흐려진 시력으로도 보였다.
갑주를 두른 인간이 도끼를 뻗고, 회전하는 순간 그 자리에 생겨나는 타오르는 죽음을.
열로 이루어진 선이 어지러이 뻗어나가, 둘러싼 수십의 수하들이 동시에 토막나 흩뿌려지는 것을.
그 회전의 끝에는 피 한 방울 없었다. 그 선은 그 인간이 회전을 멈춤과 동시에 거둬졌다. 바닥에는 회오리가 지나간 듯 어지럽게 파내진 흔적이 있었다.
*
촤아아아악!!!
후두둑
죽어나간 괴인들의 시체가 흩뿌려져, 배의 한 켠이나 이미 쓰러져 물에 젖어가는 시체에 부딪혀 나뒹군다. 내 회전에 동반된 죽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들은 불타지않았다.
원체 품고 있는 물기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내 머리 위로 내리는 파도들이 너무 짙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괜히 들고 있는 도끼를 휘둘러 물기를 덜어내는 순간.
철퍽, 철퍽
내가 서있는 판자가 기우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무언가 내게서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파문을 동반했다. 밀려오는 잔물결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아까의 괴물새끼들이랑은 다른 모습의 새끼들이 서있었다.
귀는 길쭉한 반면, 그 귀는 청각의 기능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지 번들거리는 피부로 막혀있었다.
피부는 푸르다. 푸르다 못해 언뜻 자줏빛도 띄는데, 익사체 같은 빛깔이라 한 번도 익사체를 본 적이 없음에도 미묘하게 불쾌했다.
차라리 피부색과 귀처럼 모든 게 이상하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외의 모든 건 멀쩡한 인간의 생김새였다. 뻗어낸 사지는 길쭉하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언뜻 보기에도 물갈퀴 같은 게 달려있었지만 다분히 인간적인 생김새였다.
그게 기분 나빴다. 알 수 없는, 치밀어오르는 혐오감에 내가 눈쌀을 찌푸리니 그 두 괴인이 드러낸 나신을 가릴생각도 않은 채 내게 눈짓했다.
뭔데 씨발.
도끼를 단단히 쥐고 달려들려는데, 갑자기 발을 디딘 갑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탓에 내 돌진은 쉽게 틀어막혔다.
쿠르르르르르
흔들림은 거센 물줄기를 동반했다. 갑자기 갑판 사이로 솟아오르는 물줄기에 시체들이 어지럽게 가라앉는다.
나는 그 흔들림에 균형을잃지 않으려 자세를 낮추면서도, 앞을 바라봤다.
그 두 심해 엘프 새끼들이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그러자 익숙한 감각이 들었다.
내가 화염 부여를 사용할 때마다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감각과 유사하지만, 어쩐지 조금은 다른. 그런 감각.
권능이었다.
"…씨발, 신성이라고?"
이번엔 또 뭔 신이야.
무슨 신인지, 저들이 사용하는 권능에 응답하여 바다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탐욕스러운 괴물새끼가 다리를 뻗어내듯, 높이 솟아올랐던 파도가 가라앉는다. 내가 서있는 배를 향해.
콰아앙!
쩌저적, 콰르르륵
내려앉는 파도에 실린 물폭탄의 질량은 만만찮았다. 격돌할 때마다 갑판은 갈라지고, 무너지는 토사 같은 소리를 내면서 부숴진다.
"이런 씨발, 좆만한 새끼들이…!"
쿠르르르
갈라진 틈으로 발이 푹 빠져, 자세가 흐트러진다. 두 심해 엘프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슬쩍 웃고 있었다.
예쁘고 잘생겼길래 잠깐 봐줄까 했는데, 금방 마음이 바뀌었다. 너흰 내 손에 뒈진다. 이를 악물고 바닥을 붙잡는 순간, 내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씨발."
슬쩍 고개를 들어올리니, 거대한 문어의 촉수처럼 쭉 뻗어진 바닷물이 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수압은 어마어마한 격통과 함께 나와 내가 타고 있는 배를 해저로 쳐박았다. 내 몸뚱이가 부숴지는 갑판 사이로 튕겨져나가, 바닷속에서 떨어져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괴인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달려드는 괴인들을 보면서, 도끼를 움켜쥐었다.
아직, 안 끝났다.
*
"안돼애애애애!!!"
메이는 울부짖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말 듣는 게 아니었는데, 가라고 할 때 나도 남는다고 하는 건데. 같이 싸우면 이겨낼 수 있다고 하는 건데. 너는 항상 나를 위해서 싸워줬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그런 후회를 품고서는 저만치, 이미 가라앉고 있던 배가 완전히 박살나 사라지는 걸 보았다.
눈물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쩔그렁 소리가 들리더니, 손에 쥐어져 있던 칼도 놓쳐서 바닥을 나뒹굴었다.
주현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알 겨를이 없었다. 그저 눈물로 뿌연 시야로 하염 없이 가라앉은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평소라면 누군가 달래려고 했겠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정도로, 저 광경은 충격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닫은 채, 눈 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부자연스러운 행사에 의아해하는 한 편 절망할 뿐이었다.
"…말도 안돼."
누군가 말했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모두가 동등하게 품고 있는 감상과 같았으니.
4신의 강함은 이들에게 명확한 진리로 새겨져 있다.
괴물과 자연재해, 신들조차 싸우기 버거워하는 초인적인 거악들은 신의 손에 여지 없이 쓰러져갔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눈앞의 풍경은 믿기 힘든 무언가였다.
반신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여름의 대전사이자 여름 본인으로도 칭해지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웅. 가장 강대할 인간의 추락은 이미 신이 버린 이들에게 있어서는 심대한 충격이었다.
전사들이 입을 열지도 못하고, 세네카 역시 메이처럼 처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무렵.
울고 있던 메이의 몸이 기울었다.
풀썩
그리고 쓰러졌다.
그제서야 뒤에서 넋놓고 배가 가라앉은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전사들이 그 몸뚱이를 집어들었다.
"…실신했어."
메이는 누운 자세 그대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눈물이 흐른 자국이 선명하게, 그 조막만한 얼굴에 남아있었다.
전사들은 그들의 우상이 뒈졌을지도 모른다는 착잡한 전망에도 일단 해야하는 일을 하고자 했다. 그들은 실신한 메이를 업어들고 의무실에 데려다놓았다.
그러는 동안, 세네카는 차라리 실신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얼굴을 쓸고는 담담히 말했다.
"대기합니다. …혹시, 혹시라도… 도,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아무도 그 말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차마 거부할 수는 없었다. 세네카가 일그러진 얼굴로 활을 쥐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