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바다의 주인
해저.
호흡이 불가능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내장을 진탕으로 만드는 압력까지.
일반적으로라면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환경에, 빌어먹을 다크 판타지인 지금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외통수일 수 밖에 없는 공간.
나는 그 속에 있었다. 하염 없이 빠져만 드는 몸뚱이에 나를 향해 달려드는 심해인들을 보면서 그걸 절절히 실감했다.
물속이라 사지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랑인 거인의 힘은 물속이라 그 위력이 떨어지기 때문인지, 심히 느려서 제대로 맞출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압력은 거인의 힘 특유의 신체 활성화로 버틴다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호흡이었다.
싸우면서 호흡 조절을 전혀 안 하고 싸울 수는없었다. 숨을 들이키지 않고 싸울 수 있는 건 언데드 정도 밖에 없다.
그래서 이건 절절하게 체감할 수 밖에 없는 나의 패인이었다.
…한 가지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씨발?"
숨이 막히지 않았다. 눈코입으로 바닷물이 스며들려고 해서 따갑거나 괴롭지도 않았다. 심지어 말조차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지는 부자유한 편이었지만, 숨쉴 수 있다면 그마저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눈을 부릅 뜨고는 내 투구 밖에서 일렁이는 바닷물을 바라봤다.
투구의 슬릿은 헬멧의 유리창처럼 슬릿 사이로 파고드려는 바닷물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었다.
차라리 거기까지였다면 호흡곤란으로 슬슬 정신을 잃고 있었어야 하지만, 그런 기미는 없었다.
밀려드는 심해인들은 꾸불꾸불 몸을 움직여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 괴물 같은 근력을 경계하는지 내가 몸을 틀 때마다 주춤대긴 하지만, 내가 익사해간다면 그렇게 두렵진 않다고 생각하는지 그 전진에는 막힘이 없었다.
―!
그렇게,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괴인이 내게 창을 내지른다. 창 끝은 이미 어떤 살점이 걸려있었는데, 그게 내 살점이 아니라는 걸 감안하면 이 새끼가 지금 가라앉고 있는 배에 뭔 짓거리를 했던 새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배를 조사하다가 보았던, 꿰뚫리고 찢어진 시체들이 언뜻 뇌리에 떠올랐다. 꿰뚫리고 나서 찢어졌다면, 분명 찌르는 동작 후에 휘두르는 동작이 있다는 얘기. 타이밍만 잘 노린다면.
"옳지."
구륵
물거품이 이는 소리가 나더니, 창 끝이 내 손에 붙들렸다. 창날이 외날이라 그런지, 괴인은 내게 창을 붙들리자마자 그 물고기 얼굴로 당황을 선연히 드러냈다. 씩 웃으면서 다리를 휘둘렀다.
콰직
으깨진 동체가 둘로 나뉘어 가라앉는다.
그제서야 내게 달려들던 괴인들은 이상한 점을 눈치챈 듯 했지만, 늦었다.
콰 직 으 직
곧바로 나를 향해 헤엄쳐오던 괴인을 붙들어 도끼로 내리찍고, 곧장 내 갑주에 창을 찔러넣으려는 놈을 옆구리로 빗겨내고 걷어찬다. 삽시간에 둘로 나뉘거나 머리가 박살난 괴인의 시체가 가라앉는다.
"어딜 가, 이 씹새끼야!"
그렇게 가라앉는 시체를 걷어차 앞으로 나아간다. 수영 경험이라고는 얼마 없는 나지만, 단순한 움직임이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도망가려는 괴인의 허리를 붙들고, 강하게 끌어당겨 껴안았다. 껴안은 채로 전력을 다해 팔로 허리를 뭉겠다. 그 위로 몇 괴인들의 무기가 틀어박히지만, 내 몸뚱이 아니니 됐지.
우 드 드 드 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척추가 부러지고, 내장이 박살나며 피부가 으깨져 둘로 쪼개지는 물고기 인간.
그 시체를 내던지고는, 씩 웃었다.
내 투구에 걸린 능력은, 시야 개선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으레 이런 게임에서는 필요 없는, 수중 호흡.
나는 이 쓸데없는 아이템에 감사하면서 괴인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고, 팽팽하던 접전은 기울었다.
그 증거로, 소리가 울려퍼졌다.
쩌어어어엉
깊은 바다, 한 사람의 인영이 빠르게 떨어진다. 바다라고는 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인영은 그대로 자신을 휘감고 있던 보라색 피부의 귀가 긴 인간을 때려죽이는데 성공했다.
산산히 으깨진 머리통에도 불구하고, 그 시체는 아랫턱만을 남겨놓은 채로 남자를 붙들었다.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는 심해 바닥, 어둑해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해저에 쳐박혔다.
쳐박히는 순간 바다 밑에 잩게 깔린 흙더미가 치솟아 흙먼지를 피워올린다. 남자는 그 중심에서 혀를 차며 도끼를 쥐었다. 몸을 일으킨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흘긋 내려다보는 시선에 도끼날이 닿는다. 도끼날에서 피워져야 할 거센 열과 화염은 이미 꺼지고 없었다. 바다라는 환경상 남자가 가진 권능 중 강력한 것으로는 손에 꼽을 것도 없는 화염 부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화신 강림 역시 사용할 수 없었다.
저 위의 어디에 메이와 세네카를 비롯한 일행들이 타고 있는 배가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섣불리 사용했다가 그 배를 깨부술 수도 있거니와 화염이 그 피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양의 발구름은 이 심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지할 수 있는 건 단 세 가지였다.
거인의 힘.
영원의 정신을 이용한 회피와 반격.
그레이톰의 심판.
남자는 오른손에 쥐어진 장검을 흘긋 보았다.
휘두르면서 비틀렸는지 칼자루가 멀쩡하지 않았다. 사선으로 치우쳐진 것처럼 기울었는데, 남자의 거력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심해 특유의 압력이 그의 장검을 비틀리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달려드는 심해인에게 도끼를 내질렀다.
콰득!
깊은 바다에 머리 쪼개지는 소리가 울리고, 물고기 머리의 인간의 그 흉한 머리통이 쪼개져 바닥에 쓰러졌다.
기이하게도 느긋한 움직임으로 쓰러지는 시체 뒤로, 무언가 날아왔다.
"씨발…!"
까앙!
날아온 물건은 창이었다. 남자는 도끼를 휘저어 창을 튕겨냈으나, 그로 인해 접근을 허락하고 말았다.
"좆같은 새끼들이!"
남자가 투구 안에서 읊조리며 칼을 휘두르자, 그 보라색 피부의 인간은 가볍게 그 검격을 피해냈다. 있을 수 없는 좌우 움직임으로 그 공격을 피하고는 다시 창을 휘둘렀다.
까가각
금속을 깎아내는소리가 들리고 주현성의 시야가 꺾여진다. 저들도 머리가 약점임을, 투구만 부수면 이 남자에게는 가망이 없음을 알기 때문인지 투구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언뜻 뭉툭한 창날이 투구를 두드리고, 주현성은 어지럽게 시야가 흔들리고 있음에도 억지로 자세를 고쳤다.
그렇게 자세를 세우자 그 바다의 주인은 다시 자리를 트고 몸을 뒤로 물렸다.
"…씨발!!!"
그러자 주현성이 으르렁거렸다. 물갈퀴가 없는 그로서는 할 수 없는 움직임이라, 아까부터 싸움은 이런 형태로 고착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쉽게 화가 오르고 짜증을 내는 성격인 주현성은, 치밀어오르는 분노에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무기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이리와, 이 씹새끼들아!!!"
토해내는 숨결은 바닷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전방위로 닿는다.
하지만 달려들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심해인들이 무력하게 죽어나간 마당에, 저런 괴물과 정면 승부를 벌일 이유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나마의 기동력도, 한 명이 희생해서 심해바닥에쳐박은 탓에 봉쇄할 수 있었다.
이대로 깎아내며, 깎아내서 죽이면 된다.
스스로를 바다의 주인이라는 종족명으로 부르고는 하던 전사는 창을 고쳐쥐며 귀를 바르르 떨었다.
무기질적인 빛깔로 혼탁한 색을 흘리던 그 귀가, 바르르 떨리며 진동을 감지한다.
이들 종족은 일부 감각이 쇠퇴했다.
예를 들자면 청각. 바닷속에서 청각은 의미가 없는 바, 이들은 진동을 감지하는 기관과 동시에 초음파를 넘어 정신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
같은 종족이 아니면 먹히지 않는 소통 능력이지만, 상관 없었다. 그 덕분에 저 괴물 같은 전사를 심해에, 자신들의 도시 한복판에 쳐박을 수 있었으니.
그리고 시각 역시 흐려진 탓에, 그들은 진동으로 시각을 거의 대신했다.
그들의 진동으로 감지하는 시각은 무척이나 정확하다. 진동의 정도로 상대의 강함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진동이 얕고 길 수록, 그 생명체는 강하다. 노련한 사냥꾼이라는 의미이니 그들도 잘 건들지 않는다. 일부 괴물들은 그러했었다.
하지만 저, 살의를 불태우며 무기를 내던지고 심해인들에게 주먹을 휘둘러대고 있는 남자는 정반대였다.
쿠우우우웅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바다 전체를 울릴 듯 퍼지는 진동. 딛는 걸음마다 사방을 떨리게 하는 압도적인 거력.
마치 하늘을 빚어내는 거인을 바다로 끌어들인 듯한 감각이 들어, 그 바다의 주인은 긴장한 채로 창을 쥐었다.
'괴물. 이걸로 끝내겠다.'
그나마의 승산이 있다면, 투구다. 투구만 부수면 된다. 투구를 감싸는 꼴을 보자면 아닐 수가 없다.
물갈퀴가 잔뜩 돋아난 다리를 휘저어, 자세를 취한다. 허공에 뜬 듯 하지만 언제든 도약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나아가 투구를 깨버릴 수 있는 자세다. 수렴발전에 불과했지만, 그 자세는 기병들의 랜스차징과 비슷한 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했다. 이번 일격으로 싸움을 끝내리라. 그리고 저 괴물 같은 전사를 먹어치우고, 자신의 종족은 다시금 번영을 맞이하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나아갔다.
콰아아아!
작살을 따라 어그러지는 물결이 송곳 같은 모양새로 갈라지고, 그렇게 쏘아지는 창을 따라 기포가 돋아난다. 전사는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주현성을 향해 나아갔다.
이상한 점을 깨달은 건, 창이 닿기 직전이었다.
남자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자세는 심해의 노련한 사냥꾼인 남자도 모르는 자세였다.
그도 그럴 법 했다. 그 자세는 어떤 형식이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반신이 된 이후로, 주현성의 거인의 힘은 상시 유지형으로 바뀌었다. 안 그래도 터무니 없는 힘이 영원히 유지되니, 특유의 단점도 사라진 것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그 거력은 그의 분노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그가 분노하고, 짜증을 내고, 살의를 불태울 수록 거짓말처럼 강력해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야, 뒤로 주먹을 쭉 당겼다가 뻗어내는 텔레폰 펀치를 날리는 순간.
주현성의 사견에 따르자면, 아까부터 촐랑대면서 '니가와'를 존나 하던 심해 엘프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
형언할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전방으로 무형의 충격파가 뻗어나갔다.
그 주먹에 담긴 힘은 터무니 없었다.
바다가 뒤집힌다. 진동만으로도 그 위를 배회하던 수천, 수만의 물고기가 죽어 바다에 몸을 띄운다.
지나가던 거대한 어류도, 심상찮음을 느끼고 뒤로 물러서려던 심해인들도, 모두가 휘말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중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 그가 떨어진 도시와 그 주먹을 직접적으로 가격당한 바다의 주인이었다.
도시가 무너진다.
바닷속에 지어진 웅장하며 화려한 도시가 일격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짐승의 손톱이 바닥에서 자라난 것 같은 모습으로 걸레짝이 된 건물 사이로 무수한 시체가 후두둑 떨어진다.
직격당한 전사가 본다면 억울해 미칠 것 같은 광경이었으나, 그는 그런 감상을 품지도 못했다.
퍼석
너무 강력한 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는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산산히 분해되었다. 그 전사의 살점 하나하나가 비산하는 가운데 주현성은 콧김을 뿜어내며 도끼와 검을 바닥에서 주워들었다.
"씨발새끼들."
분노의 원인이 죽어 다소 사그라들었으나, 주현성은 진정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무수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속임에도 울리는 소리는 격철음처럼 들렸다. 군대가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주현성이 도끼와 검을 집어들고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무너진 잔해와 부숴진 도시에서 행렬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맨 앞에 있는 건 코를투론이라는 남자였다.
남자는 왼손에는 화려한 방패를, 오른손에는 전형적인 삼지창을 들고 있었다.
삼지창은 평범한 물건이었으나, 주현성은 그 왼손에 둘러진 방패에서 익숙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신성이었다. 그것도 꽤 낯익은 신성. 헤로디아가 신이 되려고 사용하던 마법에서 언뜻 느껴지던 신성과 유사한, 그러한 신성.
주현성이 눈쌀을 찌푸리고 달려들려는데, 그 맨 앞에서 그 방패를 차고 있던 바다의 주인이 손을 내밀었다.
'정지하라,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본래라면 들릴리 없는 소리가, 주현성의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주현성은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멈추었다.
대화의 의사가 있다고 착각한 왕이, 그 모습에 바로 말을 이어나갔다.
'너는 위대한 창조주이신 해신님의 사도인가?'
주현성은 그게 뭔 개소리인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