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바다의 주인 (116/274)



〈 116화 〉바다의 주인

"해신…?  씹소리야, 씨발놈들아."


분노의 원인이 죽어 다소 가라앉긴 했지만, 여전히 눈앞의 적들이 그다지 고깝지 않은지 주현성은 눈앞에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이들을 모난 눈으로 쳐다봤다.

물론 시력이 낮다 못해 감퇴하고 있는 심해인들에게 그의 시선은 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진동은 닿았다.


'…괴물이다. 괴물이야.'


'해신께서 돌아오셨다.'


라며 정신적으로 놀라움과 경의를 드러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빌어먹을 괴물놈, 감히 우리 도시를….'


이렇게 적의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호의의 적의가 애매하게 뒤섞인 군중은 자신들의 생각을 주현성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오직 맨앞에 선 심해인, 바다의 주인이라고 진정 칭할 수 있는 존재.


해신의 사도이자 이들의 제사장, 왕을 칭하고 있는 존재만이 주현성에게 정신적으로 말을  수 있었다.

코를투론은 다시금 그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형언할 수 없는 강대한 신성이 이리저리 뒤섞여 그의 정신에서 떠도는 가운데, 들끓는 분노가 그의 심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코를투론은 흐린 시야로 보이는 남자의 모습으로 가늠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해신의 적인가?'


주현성은 다시금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음에 짜증을 냈다. 도끼자루를 쥔 손으로 제 투구를 텅텅 두드리며  소리를 몰아내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다시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그제서야 주현성은 생각했다.


'씨발 텔레파시인가?'

'그렇다.'

이런 씨발?

주현성은 그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퍼뜩 물러났다.

정신을 읽어지는 감촉이 좆같다는 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놀라움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읽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놀라움.

코를투론은 그런 모습에서  인간이 해신을 다른 형태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추론이었다.

'그대가 부르는 텔레파시라는 용어는 잘 모르겠다만, 정신적인 대화라는 점에서는 얼추 맞는구나. 이 대화 방식은 우리 종족에게는 당연하게 내려오던 권능이다. 소리가 없어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해신님께서 내리신 신성의 조각이지.'

정신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텔레파시의 정의마저 알아낸 모습에 주현성이 경계했다.

그리고 그 경계는 합당했다. 코를투론은 주현성의 정신을 낱낱이 읽어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적당한 이야기를 흘려 시간을 벌고 있었다.


'태초에 모든 종족들은 위대하신 창조주 해신님의 밑에서 번영했다. 언어와 소통에 차이는 없었고, 짐승과 인간 그 무엇 하나 갈리지 않고 모두 소통하며 화합했지. 그야말로 평화의 시대였다.'


물론 코를투론 본인이 이런 설교를 좋아한다는  역시 있었다.

그는 즐겁게 정신을 흘렸다.

'하지만 일부 피조물들이 악한 마음을 먹고제 어머니 되는 해신님을 해하려고 들자, 주께서는 본인의 권능을 거둬 인간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그리하야 차이가 생기고, 피조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 해신께서는 모습을 감추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건만 그는 침통한 어조로 정신을 흘리고는 착잡한 마음으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움직임에 방패가 절그럭거리고, 불쾌한 낯빛을 띄고 있던 주현성이  방패를 바라봤다.

'언어가 갈리고 소통의 방식이 갈려 우수성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다른 종족들은 우리를 박해하더군. 괴물, 바다의 포식자, 야만족이라고 말이지.'

저게 상당히 개소리처럼 들린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현성은 진즉 도끼를 집어던졌을 것이다.

특히나, 언어와 소통의 차이 없이라는 대목에서는 떠오르는 게 있었다.

처음 보는 언어가 있을 때마다 알아서 번역해주던 구글 번역기와 그 사실을 띄워주는 시스템적인 요소.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도 유사했다.


그래서 주현성이 그에 대해 숙고하는 사이, 코를투론이 주현성의 정신을 훑어내다가 흠칫했다.

'…도대체 뭐지? 어째서 이런 기억을?'


코를투론이 찾아낸 기억은 무척이나 흐렸다. 흐려서 기억이 아닌 망상인가 순간 착각했을 정도였다. 또렷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기억보다도, 이 기억이 좀 더 강렬했다.


기억에 동반되는 주현성의 감정은 무척이나 또렷했다. 그래서 코를투론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섬뜩해했다.

만약 이 기억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자 등줄기가 아려오며 서늘해지는 느낌이라, 그는 억지로그런 생각을 몰아냈다.

망상일 것이다. 사실이라기엔 너무도 허황되다. 코를투론은 묵묵히 창에 손가락을 걸치고는, 고했다.


그제서야 생각에 잠겨있던 주현성이 퍼뜩 정신차렸다.

'네게서는 우리들의 창조주이신 해신의 신성이 짙게 느껴진다. 네가 해신의 사도가 아니며, 적도 아닌데다, 계승한 적도 없다고 했던가?'

코를투론은 주현성의 대답을 듣지도 정신적 대화를 이어갔다.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아보였다.


'그렇다면 그 어떤 연유로 얻었는지 모를 해신님의 권능과 신성은, 우리의 것이 맞다. 그대는 지금 우리의 정당한 소유물을 부당하게 착취한 것이 된다.'

"뭐 씨발?"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주현성이 조용히 듣는 동안, 코를투론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창대를 손으로 쥐었다. 갈퀴가 듬성듬성 돋아난 자주색 손이 금속창대를 쓸더니 쑥 뽑아냈다.

'그러니 한 번만 제안하겠다. 저항을 포기하고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거라. 너의 신성을 우리로 하여금 포식하게 하라. 네가 부당하게 갈취한 그 신성을 정당한 소유자인 우리에게 명예롭게 돌려주면, 저 바다 위에 있을  동포들은 공격하지 않겠다.'

주현성이 생각하기엔 개소리였다. 그는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목을 쥐어 풀었다. 뚜둑, 하는 소리가 물속에서 울러퍼졌다.

"지랄 그만. 그렇게 원하면 와서 가져가던가, 씹새끼들아. 같잖은 인질극 지랄하지 말고."

으르렁거리듯 씹어뱉는 말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도시를 주먹질 한 번에 부술  있는 남자의 힘이. 움츠러드는 심해인들. 유일하게 움츠러들지 않은 건 제사장인 코를투론 뿐이었다.

코를투론에게도 자신이 있었다. 그는 타인의 생각을 읽어낼  있다.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대응할지 알고 싸우는 건 수싸움에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준다.


능숙한 전사이자 제사장인 그 심해인은 권능을 끌어올리며 창을 주현성에게 겨눴다. 겨눠진 창 끝이 황동색으로 빛났다.


'전원 공격! 저 자는 해신의 적이다!'


그 말에 심해인들과 어인들이 재빨리 달려들었다.




*

밀려드는 놈들의 수는 만만치 않았다. 어림잡아도 족히 수백은 될  같은 양이었는데, 그들 모두 내가 지들처럼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는지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내 사각을 노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안 그래도 사각을 노리고 드는 것도 거슬리는데,  숫자라면 단순히 상대했을 때 승산이 마냥 높지도 않다. 환경도 문제였다.


해저라는 환경상 내 투구가 파괴된다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나는 머리의보호를 우선으로 두고서 적을 노려봤다.


적의 대다수는 어인. 소수의 심해 엘프새끼들.

각자 병장기를 쥐고 있는데, 대부분의 무기는 창이었다. 찌르는 무기가 아니라면 휘두를  물의 저항을 받아내기 때문인지, 장식이 거의 없는 단순한 창이다.

전법은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얼추 알고 있다. 어인의 인해전술로 시야를 가리고, 기동력과 능력이 월등한 심해 엘프들이 사각을 노리고 공격해온다.


 단순한 전법은, 수중이라는 특성상 매우 강력하게 발휘된다. 일반적인 인간은 방위가 하나 더해진 것만으로도 상대하기 어려워한다.

거기다 수가 많다고?

착잡하게도상대하기 편하진 않을 것이었다.


막말로도 무조건 이긴다고  수는 없었다. 여기는  새끼들의 홈그라운드고, 나는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면 위력이 제대로 나지 않는 평범한이족보행 생명체였으니.

한 가지 유리함이 있다면.


나는 오른손으로 고쳐쥔 그레이톰의 심판을 바라보았다.


비틀린 칼자루, 엇나가기 시작하는 검날, 묘한 실선이 남은 금속. 흐려지는 회색빛.

오랜 친구와 만나서 놀던 도중 헤어지는  같은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건 명백한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그게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았다. 왼쪽 허리춤에 도끼를 되돌리고, 오른손에 든 장검을 양손으로 쥐어 늘어뜨렸다.

일대다의 기본이라면,  번에 한 명씩 확실하게 처리하고, 포위당하지 않는 것.


게임에서부터 익혀온 감각이 내게 지침을 주었다.

게르르륵!!!

어인이 울부짖으며 나를 향해 날아오고, 그들을보면서 뒤로 물러선다. 물러서면서 칼을 휘둘렀다.


차아아악!


물속이라 느려지긴 했지만, 휘둘러진 그레이톰의 심판은 착실하게 검기를 쏘아냈다. 검기에 베어진 물고기가 피를 흩뿌리며 두조각으로 나뉘어진다.


 조각이 떨어지기도 전에, 내 손이 먼저 움직였다.

촤아아악! 촤자작!


횡으로 번 그어낸 궤적을 따라 쏘아진 검기가 뒤따라오던 어인들을 줄줄이 쓰러트린다.

하지만 물고기 대가리 새끼들은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빈틈을 쑤시려는 것처럼 병장기를 휘두르며 나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멍청한 새끼들이!"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횡으로도 휘둘러가면서 검기를 무작정 쏘아댔다. 쏘아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물고기 내장 특유의 비린내가 훅 풍기면서 갈려나가는괴물들사이로, 심해 엘프들의 창날이 비죽 비집어 나왔다.


까아앙!

그 창날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맞닿은 창이 떨리더니 밀려난다.

아직 할만하다. 이대로 간다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본래라면 포위당해야할 병력이지만, 원거리에서 제한 없이 마음껏 베어낼 수 있게 해주는 그레이톰의 심판을 사용한다면 포위당하지 않고도 충분히 병력을 줄여나갈 수 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피로감을 억누르면서 팔을 움직였다. 물 안에서 휘두르는 검은 느렸지만착실하게 움직임을 봉쇄하고 포위망을 풀어냈다.

그렇게 내 위에서부터 찍어누르려 접근하는 물고기 새끼들을 쪼갠 그 순간이었다.

투화아악!


물고기 인간들의 거뭇한 피를 가르며 무언가 쏘아졌다.


그건 심해 엘프였다. 손에  창날이 섬뜩하게 빛나며 물을 가르면서 내게 쏘아지고 있었다.

[영원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무의식적으로 발동한 권능이 세상을 감속시키고, 느려진 세상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뭐지 씨발? 벌써부터 병력이 부족해졌나?

흘긋 돌린 눈에는 수많은 어인들의 모습이 잡혔다. 재빨리 돌아간 눈동자가 다시 심해 엘프의 모습이 잡혔다.


아니다, 병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왜 굳이?


고민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맞았다.

영원의 정신을 풀기 무섭게 내게 육박해오는 창날.


어려울 것도 없었다. 몸을 좌측으로 구부려 피하고는 검을 내질러 죽이면 된다.


가장 신경 쓰이는 공격수를 죽일 수 있다면 오히려 좋았다. 그렇게 몸을 숙이려는데, 무언가 불쑥 내 시야 끝을 메우며 짓쳐들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그건 방패였다.

화려한, 언뜻 검은빛을 띄는 방패.

그 방패의 겉면을 타고 흐르는 푸른색 톱날이, 미친듯이 돌아가며소음을 자아내고 있었다.

 눈에 보기에도 알  있는 그 위협적인 풍모. 그것이 내가 베어낸 시체들을 문자 그대로 갈아내며 나를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내가 피한다면 위치할 장소를 향해 정확히 날아들고 있었다.


늦는다. 창까지 피하면서  방패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선택은 간단했다. 나는 기울였던 몸을 펴고,  옆으로 방패가 지나가는 순간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까앙!


창이 내 몸에 닿음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내지른 주먹에 심해 엘프의 머리가 터져나간다. 머리가 부숴진 심해인은 내 몸에 뒤엉켰고, 그 돌진력에 떠밀리면서도 들러붙은 시체를 떼어낼 틈조차 없이 몸을 틀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앵!!!!!


콰드드드드득!!!


서슬 퍼런 소리를 내며 지나간 방패가, 다시금 자신이 전진한 길을 되돌아간다. 방패가 스쳐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흔은 마치 크레바스처럼 깊고 잔혹하다.


그렇게 되돌아간 방패를 낚아챈 건, 내게 텔레파시로 말을 걸었던 화려한 복식의 심해 엘프였다.

그 심해 엘프와 내가 눈이 마주친 순간,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이걸 피할 줄이야. 보통은 막으려다 죽을텐데. 이 절삭력에 대해서 아는 게 좀 있는 모양이군.'

애애애애애애애앵!!!


왕의 팔에 채워진 방패에 돋아난 톱날이 섬뜩하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는 동안, 난 내 몸에 들러붙었던 시체를 떼어내며 한숨 지었다.


"가지가지 한다. 이젠전기톱 방패냐?"


씨발놈들, 오버 테크놀로지도 작작해야지.

불편한 표정으로 장검을 고쳐쥐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제서야 저 새끼가 뭘 바랐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등 뒤,  앞,  양익부터 내 위까지.  시야 전체를 까맣게 물들이는 군세의 중심.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


완벽한 포위섬멸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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