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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화 〉서대륙 (124/274)



〈 124화 〉서대륙
일어난 일은 놀랍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레베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엔 자살이라도 하러 가는 건지, 아니면 이쪽에 그녀가 있음을 알려 포상을 받으려는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가 말했었던, 시골과 관련된 참상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에 생겨난 미묘한 반감은 아직도 응어리처럼 남아 저 남자가 그녀를 팔려고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로, 레베카는 주현성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던가, 세네카가 레베카의 말고삐를 쥐고 있는 건 도망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냐던가. 그런 종류의 질문이  아래 차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이 놀랍기 때문이었다.


도보하기 시작한 주현성이 든 거검, 처음에는 뭔가 마법적인 효과가 깃들어 있거나 환상이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 질량은 명확하게 작용했다.

휘둘러질 때마다 기병 돌격도 막아내는 중보병들이 날아갔다.


문자 그대로 날아올라 다른 병사들과 추돌해 피해를 키웠다.


왜 군대가 필요없다고 했는지. 왜 계획이 까뒤집는 것인지, 이제야  감이 오는 것 같았다.

레베카는 삽시간에 불타오르고,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공성 캠프를 바라보았다.


영주성까지 밀려 위기에 봉착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족히  주에 가깝게 저 용병들은 코넬지어 남작령을 몰아넣으며 공성을 계속했다. 온갖 병사와 기책이 나왔지만 병력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어쩔 도리는 없었다.


사실상 코넬지어 남작령에 사형을 집행할 망나니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망나니가 보는 이가 미안해질 정도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날뛰는주현성이 날아온 포탄을 쳐내고, 성벽을 깎아낼 정도로 강력했던 대포가 완파하는 것을  뒤에, 레베카는 말고삐를 강하게 움켜쥐어야 했다.


"…인간인가요?"


저걸 사람이라고  수 있는가?


보통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항하지 못할 기술만 갖고 있어도 영웅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대응은 커녕 앞을 가로 막지도 못할 만큼 강력한 존재가 있다면, 그런 존재를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괴물. 그녀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바로 옆에 말 위에 올라 무심한 표정으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던 세네카는 그 속내를 읽어내어 입 밖으로 꺼내었다.

"…예?"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현성씨는 제 부군이고, 저는 그의 첩이니, 섬기는 건 당연합니다. 대항하거나 음모를 꾸미고 있지도 않죠. 다만… 저도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나고는 합니다. 과연 괴물 같은 강함이라고 말이죠."


레베카가 입을 닫았다. 상대할 가치를 못 찾았다던가 하는  아니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메이를 보았다. 메이는 숲의 어귀에 서서, 뭔가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베카 코넬지어가 말을 몰아 다가가니, 세네카가 뒤따랐다.


그렇게 도착하니, 메이는 전장을 보고 있다가 푸른 빛이 떠오를 때마다 손을 내뻗었다. 내뻗은 손에서는 붉은 전류가 짧막하게 튀어올랐다.


"뭘 하고… 계신 건가요?"


레베카는 그녀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사별한 어머니가 떠오르는 자상함이라 그렇다는 것도 있었지만, 도와주겠다는 말과 함께 껴안긴 경험이 떠오르기도 해서 그랬다.

메이는 그런 속내를 알리가 없었으니, 솟아난 푸른 빛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내고는 고개를 돌렸다.

큼직한 갈색 눈동자가 레베카를 담고 반짝였다.

"응, 왜 그래요?"


레베카는 같은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메이가 그 말을 듣고는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몇   손을 휘저었다. 휘저을 때마다, 붉은 전류가 쏘아졌다.

"마법을 방해하고 있어요. 현성이가 싸우는데 집중할 수 있게… 마법 쓰는 사람들이 보일 때마다 마법을 비틀어서…."

그 말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는 레베카. 그녀는 그 말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몸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법을 방해하려고 한다고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마법에 문외한인 그녀는 알 수 없어, 메이의 손동작을 보면서 거기에 담긴 어떤 묘리를 찾아내려고 했다.


당연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메이가 복잡한 술식들을 아주 쉽게 방해하는 동안, 세네카가 묵묵히 읊조렸다.

"메이씨의 저건 대단하죠. 얼마 전에 겨우 터득한 거라는데… 마법의 수준은 최고가 아닐지라도 전투에서 어떻게 쓰면 되는지는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한참을 잘 알고 있더군요."


확실히, 마법사들은 마법이 방해된 후에는 주현성의 주먹에 얻어맞고 머리가 부숴지거나, 검압에 쓸려 넘어진 채로 그대로 기절했다. 어떤 마법사들은 몸을 빼내긴 했지만, 전투를 계속할  없어보였다.


그렇게 걸어다니는 재앙이 공성캠프를 휩쓰는 동안, 몇명은 빠져나갔다. 여유롭게 걸어다니고 있으니 그들 거리낄 것 없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 일부는 말을 타고, 어떤 이는 두 다리를 놀려서.

썰물이 빠져나가듯, 전장에서 사람이 비워져간다.

레베카의 표정이 점점, 공포와 경외로 굳어지는 동안 전황은 점차 기울었다. 더욱 기울 것도 없이 완전히 떨어졌다고 보일 쯔음, 그 중심에는 단  명 밖에 없었다.

반신이 그 황폐화된 전장에 홀로 서있었다.

*

그리고 다른 숙영지, 영지에서 아주 멀진 않지만, 단번에 돌아가기에는 거리가 있는 숙영지에, 몇명의 남자가 천막 안에 모여있었다.

보통의 지휘관 천막처럼, 그 천막 역시 사방이 막혀있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그 안에서 딱 보기에도 전사처럼 보이는 짧은 머리의 남자가, 침착하게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해서, 저희는 완전히 패퇴했습니다. 용병들 대다수는 도망치거나 죽었고, 죽지 않은 이들은 아마 포로로 잡혔을 거라고 사료됩니다. 이상입니다. 자작님."


그 보고를 올리는 이는 제 지휘관이자 상관인 자작의침착한 태도에 용기를 얻어 비교적 떨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보고의 내용은 꽤 심각했다.

 한 명의 기사가 전장으로 내려와, 보이는 모든 걸 때려죽이거나 베어죽이고, 날려버렸다는 보고.


어떤 소년의 허황된 악몽이 아닐까 하기에는 보고는 지나치게 상세했으며, 전황은 사실적이었다.

 탓인지,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 건지 자작은  부하를 꾸짖지 않았다.

"알겠다. 이만 해산해보도록. 먼 길이었을텐데 고생 많았다."


"예… 감사합니다."


부하는 허리를 숙이고는 천막 밖으로 나섰다. 그에 따라 몇명의 보좌관들이 그 뒤를 따라나가고, 결국에 천막에는 한 명의 남자만이 남았다. 짧게  머리에 부분적으로 판금을 기워넣고 브리건딘을 입은, 전사처럼 보이는 남자.

귀족이라기 보다는 용병처럼 생긴  남자는  부하가 부른대로 자작이었다.

자흐렌 자작, 이 인근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이자 자작령의 주인.

 남자는 천막 한 켠에 놓여져있는 제 애병을 바라보았다.

자루가 길고 끄트머리, 망치 추에는 어떤 동물의 머리를 음각해둔 망치.

그 형상은 염소를 닮아있었다.


불현듯, 그 남자가 읊조렸다.


"당신 말이 맞더군."

 중후한 음색에, 누군가 천막의 벽에서 걸어나왔다. 인간 한 명이 숨기는 커녕 벌레가 매달려도 표가  그 벽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누군가 걸어나와 의자에 앉았다.

앉는 순간까지도 그림자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있었다. 새의 부리를 형상화한 듯 길게 뻗어진 가면은 아래로 부자연스럽게 꺾어져 새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도끼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몸에 두른 검정색 옷가지는 암살자나 처형인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하는 일도 비슷했다. 자흐렌 자작은 제 애병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방금 내 부하의 보고는 들었을테지. 황제의 사절."


그는 '일단은' 자신을 황제의 사절이라고 소개했다.

딱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존재였다.

만약 주현성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신성이 느껴진다며 바로 무기를 뽑아들었을, 그런 종류의 수상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신성을 줄기줄기 뿜어대는 암살자는 침묵한 채로 자흐렌 자작을 응시했다. 그 가면은 눈이 보이지 않아 어떤 감정을 띄고 있는지 알  없었다.


결국 자흐렌은 더 말해야 했다.


"당신 말대로 한 놈이 전장을 뒤집어놨다. 그 한 놈은 인간을 뛰어넘는 괴력으로 공성병기를 부수고, 보병진을 무너뜨리고, 대다수의 병력을 때려죽였다. 당신이 말한 그대로 말이지."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암살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침묵을 고수했다.

자작은 그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돌려 장대망치를 보았다. 염소의 머리가 양쪽에 그려진 전투용 망치. 언제든 휘둘러 인간의 두개골을 가볍게 부수고 목뼈를 으스러뜨리고, 순식간의 인간의 가장 친숙한 부위인 얼굴을 무로 되돌릴 수 있는 그의 애병.


30년간 그가 전장에서 휘둘러온 무기.


자작은 그 무기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불안했다.  무기를 휘둘러 저 머리에 맞춘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을 강하게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망치를 떨쳐내고 자신의 목에 무기를 쑤셔박을 것 같다는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암살자는 언제든 망치가 뻗어지면 그리할 준비를 하면서, 자작에게 침묵을 보냈다.


결국 자작이 굴복했다.

내뱉어지는 한숨은 이제부터 내릴 결단에 대한 후회와 체념이 담겨 있었다.

후회되지만 어쩔  없었으며, 체념했지만 후회되는 걸 어쩔 수 없는. 그런 결정이었다.

그는 확고하게 자신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알고 있었다.


다시는 자신의 아들을, 손자를, 아내를 만나볼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의미에서 그럴 것이었다. 자흐렌 자작의 거래 내용은 승리를 전제로 짜여있었으니.


이제는 지불할  없으니.

가면을 쓰고 있는 암살자가 도끼날 같은 가면을 기울이며 말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소스라치게 하는, 섬뜩한 음성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네, 자작. 더 이상 기회를 주지도 않을 거고. 자네가 말해야 하는  단 하나. 단  가지 간단하고 짧은 말일세. 그 외의 말이 나온다면 언제든 황제께서는 자네의 목을 가져갈 준비가 되어있다네."

그가 자작의 목을 잘라내거나 비틀어 죽여도, 그게 황제의 뜻이라는 광오한 표현.

하지만 자작은 감히 그것에 따질 수 없었다. 눈 앞의 남자가 했던 일,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지 생각만 하더라도 명확한 것이었다.


자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감은 눈두덩 위로 여러가지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가담하도록 하지. 그러니…."

자흐렌 자작은 손을 뻗어 제 망치를 집어들었다. 길쭉한 자루에 휘감긴 가죽, 그에 벤 손때와 피, 노력과 세월이 그의 마음을 비교적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는 전투에 나갈 때마다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다.


승리.

지금도 그러했다. 그가 움켜쥔 자루를  몸쪽으로 끌어오자, 망치 머리가 질질 끌리면서 바닥의 흙을 헤집었다.


언뜻 위협적인 동작이었다. 언제든 망치를 휘두를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암살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보라는 듯 오히려 팔짱을  채로 자작을 바라봤다.

과연, 자작은 그러하지 않았다. 끌어온 망치의 자루를 강하게 쥐더니, 짓씹던 입술 밖으로 한숨을 다시 토해냈다.

이건 승리하기 위해서다. 다른 목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되뇌이면서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될지는 신만이 아는 가운데, 그의 눈이 떠졌다. 검은색 눈동자가  애병에 꽂혀있었다.


아주  세월동안 그를 섬겨온 애병, 그가 바뀌게 된 이후에도 그를 위해 봉사해줄 망치.

느릿하게, 자흐렌 자작은 자신이 후회하는 말을 뱉어냈다.


"나를, 준신으로 만들어주게."


그 짧은 선언에 가면 속 암살자가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허, 하는 짧은 웃음 소리를 토해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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