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1화 〉영지전 (131/274)



〈 131화 〉영지전

자흐렌 자작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다시 풀었다. 단순한 동작일 뿐이지만, 육신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자각하기는 쉬웠다.

쥐는 악력조차도 이전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신성을 띈 육신은 간단한 권능 하나 밖에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인간이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준신이다. 이미 인간이 범접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나마 비교할만한 대상을 찾는다면 괴물이었다.


카데이넌 자흐렌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봤다. 귀족으로 태어나 전사로서 생활하고, 맡은 일은 착실히 해나가며 살아오기를 47년.

견실한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표현했지만, 그렇게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자흐렌 자작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손 아래에서 혈맥을 따라 흐르고 있는 신성을 보았다.

자작에게 행해진 준신화 시술은, 무척이나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 자신이 괴물이 되기를 희망하며 눈을 감았음에도, 무참하게도 봄의 순례자가 행한 시술은 좋은 쪽으로 작용했다.

육신이 극적으로 뒤바뀌지도, 인격이 지워지지도, 기억이 사라져 감정도 없는 괴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흐렌 자작일 적의 고통과 역사, 가족을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는 슬픔을 떠안은 채로 준신이 되었다.

그마저도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착잡했다. 자신과 멀어지는 감각은 무척이나 적응하지 못할 무언가였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거울 속에서 자신이 멋대로 움직이는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작은 인간에서 완전히 멀어졌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자신이, 산산히 분해되었다가 모든 부품을 다시 끼워맞춘 듯한 감각. 그러면서 부품 사이에 무척이나 질긴 아교를 발라 고정시킨 듯한 안정감.


더 없는 안정감이 그의 상실감을 극대화했다. 부수되는 감정마저 없으니 더욱이 공허했다.


육신의 감각은 무척이나 둔했다. 하지만 신성의 감각은 너무나도 예리했다. 손에서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강하게 틀어쥐면서도, 자작은 손의 통증보다는 흐르며 손의 상처를 회복시키는 신성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바란 게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전부 알고 저지른 행동이었다.


그의 가족은 돌아오지 못한다. 암살자가 인질로 잡은 아내는, 자식들은 돌아오지 못한다. 이미 어떻게 되었을지는 너무도 선명하므로, 그가 준신이 되기를 희망한 것은 선택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무력하게 패배해 자신마저도 남지 않느냐, 아니면 모든 걸 잃어가면서 선택한 것으로 적을 물리치고 과업을 해내느냐.


둘 중 무엇을 고르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자작은 망치를 집어들었다. 그의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애병이자, 이제는 떨어질 수 없을 친우였다. 그의 신성이 넉넉히 흘러들어 신의 무구라고 할 수 있을 기운을 띄게  망치는,  주인의 손길에 딸려 올라가 등줄기 바로 위에 자리했다.

복수라고 할 수는 없었다. 구태여 복수할 대상을 찾는다면 다가오고 있을 반신이 아닌, 왕의 암살자여야 했다.

이건 의무였다. 그는 전쟁을 건 영주였고, 신성을 탐해야 할 준신이었다.


다가오는 이는 영지전이 걸린 남작령을 수호하고자 하는 이방인이며, 신성을 지켜야 할 반신이었다.

그렇다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와서 달려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합류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이 갈고 닦은 무와 전투로, 대화해나가기로 했다.


만약 패배한다면 그것 뿐.


그는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자리하기 위해 망치를 등에 짊어진 채 밖으로 나섰다. 내리쬐는 태양을, 저 멀리 피어오르는 지상의 태양을 보았다.


신살자가 오고 있었다.

준신, 묵상의 처형인은 싸움을 준비했다.


그 준신에게 누군가 다가와 부복했다.

"자흐렌 영주님, 제 1 부대가 격파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죽었고, 지금, 그,  명이… 단  명이 그랬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겨우 도망쳐 왔으나 병사들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어, 어찌 해야…."


예상했던 바였다.

반신을 상대로 군단이 조금이라도 버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언뜻 본다면 불필요한 희생이었다. 앞으로 몇명을 보내든, 얼마나 죽어나가든. 지금 상황에서 군대를 더 보내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봄의 순례자의 말이 옳다면,  반신은 일대다에특히 능했으니.


하지만 자흐렌이 손에 넣은 권능을 변수로 놓는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자흐렌은, 봄의 순례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예상 이상의 성공이군. 준신의 궤를 벗어나는 권능이야. 아주… 아주 인상적이군.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그는 승산을 늘리고 있었다.

군을 다루는 지휘관이 그러하듯.

그는 눈 앞의 부하에게, 병사를 더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 부하는,  명령이 부당하다고 생각함에도 거스르지 못했다.




*

화신 강림이 내려앉은 자리는 처참했다.


화염이 내리꽂히고, 터져나오는 폭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죽음과 피를 흩뿌렸다.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인간들도 곧이어 뿜어지는 화염에 산산히 부숴졌으나, 그 살점들은 결국  형상을 갖추지 못했다.


이어서 쏘아진 화염이 상당한 고온이었으므로, 그렇게 구워진 살점들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솔직히, 뭔가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판타지 주민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지는 꽤 되었으므로, 이렇게죽어나가는 꼴이  마음에 아주 작은 흠이라도 남길 거라고 기대했다.


내가 빌어먹을 놈의 싸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

하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손으로 이미 몇명 죽여봤었고, 그들을 죽일 때에도 어떤 감흥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덧없게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나마 감정적 파문이 일어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무감정했다. 무슨 벌레라도 밟아죽인 것처럼, 은은한 불쾌감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눈 앞의 광경이 불쾌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단순한 불쾌감. 이 광경에서 벗어나면 사라질 감정.


그게 몹시… 불편했다.

내가 싸이코패스였나? 나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공감 능력도 있다. 남의 감정을 읽는 건 나름잘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의 죽음에는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메이가, 헬쑥해진 얼굴과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이게 보통의 반응이지. 치밀어오르는불쾌감을 억누르면서 메이를 돌아보았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나는  말에 솔직하게 망설였다.

되는 거라고 하기에는 너무 꼴이 처참했고, 안된다고 하기에는 내 행동을 정당화할  없었다.

메이와 사귀게 되었다지만, 메이가 이런 행동까지 이해해줄 거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실제로 이해해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기대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나의  무감정함이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를 알  없었다.

내 기억이나 감정엔 문제가 없었다.


단지  앞의 참상이 익숙한 것인듯 무감정하기만 했다. 마치 지나가며 떨어진 나뭇잎을 보는 것처럼.

메이가 노골적으로 불안함을 드러내길래, 애써 대답했다.

"어, 이래야지. …아니면 얘네가 우리를 죽이려고 들었을텐데. 너도 봤잖아."

메이는 잠시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도 바보는 아니니, 얘네를 상대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죽었을 거라는  잘 아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메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인정은 하지만 도의적인 문제가 남았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역시,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코 이게 합당하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사실이긴 하더라도 너무 심했던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부수되어야  감정만이 없었을 뿐.


벌레를 실수로 한 마리,  마리 정도 밟아죽이거나 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벌레 둥지를 찾아가 끓는 납을 부어넣어 아예 초토화시키는 건 다른 이야기다.

얼추 그런 감상이었다. 벌레 둥지에 납을 때려박은 듯한 기분.


 덤덤함 속에서 손을 내려다봤다. 피가 묻어있지도, 과호흡이 오지도, 내 손에 묻어나올 생명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반신이 된 영향일까? 신성을 얻어 인간에서 멀어진 대가로, 인간적인 감성이 옅어진 걸까?


확신할 순 없었다.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만이 남았다. 바닥에 꽂았던 거검을 뽑아들어 등에 걸치니, 물러나있던 메이가 백마를 몰아 내 옆으로 다가왔다. 큼직한 고동색 눈동자에 명확하게 걱정이 담겨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메이는 뒷말을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잘 알고 있으니, 억지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병력의 대부분은 도주했다. 정말로 겁에 질려서, 부리나케 도망치느라 장비의 대부분을 버리고가기까지 했다.


다시 오더라도 병력으로 제 기능을 해낼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화신 강림을 보고도 모랄빵이 안 나는 병력은 없을테니까.

하지만 새삼 자작의 성격이 떠올랐다. 견실 그 자체인 남자. 전쟁을 하게 된다면 악감정이든 선감정이든 완전히 배제하고 전투를 해내는 남자. 그야말로 이상한 새끼의 표본. 역사서에 이름을 남길만한 기인.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이전의 보고는 흘려들을만한 오보나 용병대들의 개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도망친 자기 병력들이 내놓는 증언들이 있다면.


이번엔 아니겠지. 아마 철저히 준비하고  것이다.


괴물을 상대하는 부대를 제대로 꾸려 내게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먼저 치는 게 맞았다. 내게 큰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아니지만, 혹시 모른다. 봄의 순례자의 입김이 닿아있을지도.


"메이."


"어, 응?"


메이는 대뜸 자기 이름이 불리니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  앞에 무수한 시체가 있긴 하지만, 내 말을 들어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말을 기다리는 메이에게, 얼추 뒤를 가리키며 지시했다.

"세네카씨랑 남작님한테 알려줘. 본격적인 영지전이 시작되니까, 나 대신 방어할 병력을 마련해두라고. 내가 없는 사이에 공격해올 수도 있으니까."


메이는 내 말에 그 고동색 눈동자에 내 모습을 담았다. 잿더미를 뒤집어  듯 언뜻 회색빛을 띄는 방패를 왼팔에 찬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기사.


이제 곧 학살자로 개명될 대전사였다.

씨발, 내가 학살자라니. 웃음도 안 나오는 이야기였다.


"너는, 너는 어쩌게?"


메이는 지시에 바로 말을 박차 달려나가는 게 아니라 내게 질문을 던졌다.


평소라면 응! 이라고 활기차게 외치며 달려나갔을 메이도, 지금의 상황은 심상치 않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에서, 메이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뭐 어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지.


애써 무마하려고 허리춤에 걸었던 도끼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이쪽에서 먼저 쳐야지."

메이는 그제서야 흐릿하던 표정에 걱정의 빛을 띄웠다.

그 걱정은 복합적인 것으로 보였다. 내가 혹여나 다칠까 하는 걱정에, 내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가지는 본능적인 불안감과 거부감.


그럼에도 메이는 빠르게 결정했다.

"현성아, 나는, 현성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해하려고, 같이하려고 해볼 거야. 그러니까, 너무 힘들거나, 고민이 있으면. 꼭 말해줘. 나는, 그, 현성이 여자친구니까."

고마운 말이었다. 벌써부터 여친 노릇하려고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응력도 참 빠르네. 피식 웃으며 도끼를 꺼내드니, 메이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멀어졌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메이의 등을 바라만 보던 나는, 점점 다가오는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평선을 가득히 메우며, 전장의 꽃이라는 기병이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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