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영지전
두 신성자가 충돌했다. 충돌은 충격파를, 충격파는 비명을 자아냈으나 다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충격파가 조금이라도 번져 닿는다면, 뼈도 못 추릴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멀찍이서 주현성과 자흐렌 자작을 둘러싼 채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수 번 내뻗어지는 도끼와 방패, 특히나 방패는 휘둘러질 때마다 굉음을 울렸다. 그 굉음은 마치 전기톱의 모터 소리와 비슷했으나, 자작이 알 턱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목을 향해 치닫는 방패를 보며 몸을 빼냈다.
카앙!
그리고 이어서 도끼 공격. 아래에서부터 치닫는 방패 공격을 막으려 이미 몸을 뒤로 기울였던 자작은 도끼날을 비스듬히 세운 자루로 막아내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큭."
그간 포커페이스로 전투를 이어나가던 자작의 표정에, 목소리에 금이 가해진다. 도끼에 담긴 괴력 역시 애로사항이었지만, 도끼날에서 뿜어지는 폭력적인 수준의 열 역시 상당한 고역이었다.
기기기긱
후우웅!
자루를 기울여 도끼를 흘려내기 무섭게, 방패가 다시 날아든다. 자작은 결국 자루 끝으로 방패를 가로막았다.
애애애애애애애앵!!!
가가가가가각
정신 나간 듯 떨리며 끄트머리가 갈려나가는 장대망치. 이대로라면 장대망치가 아닌 한손망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자작은 결국 아예 몸을 띄워 뒤로 피해냈다.
그에 방금 전만 하더라도 환호를 지르고 있었던 병사들이 불안한 눈으로 제 주군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전투 양상.그 양상은 지극히 간단하게도, 주현성이 폭군의 검을 내려놓고 낙인과 방패를 들어올림으로써 이뤄진 형상이었다.
자작은 거리가 멀어지자 바로 눈부터 돌려 망치의 자루부터 보았다.
'생각 이상의 위력이군. 너무 강력하다.'
원리는 모른다. 다만 결과만은 알고 있었다. 저 방패에 닿은 것들은 모두 열과 칼날에 저며져 완전히 해체된다. 자루 끄트머리도 그렇게 되어있었다.
어떤 흉포한 거대 짐승의 장난감이라도 된 것처럼, 끄트머리는 이리저리 씹힌 것처럼 갈려있었다.
이렇게 받아낸 게 자루 끝이라 다행이지, 평소처럼 방어를 자루 그 자체로 해냈다면 분명히 장대망치는 거리의 이점을 잃어버렸을 것이었다.
자흐렌 자작의 신성으로 강화된 탓에 한 두 번은 받아낼 수 있겠지만, 그 이상 받아내면 분명히 잘려나갈 것이다.
자작은 자루에서 눈을 돌려 망치 머리를 보았다. 염소의 머리가 양쪽으로 새겨진 독특한 망치.
그 화려한 양식을 구현하기 위해 아낌 없이 금속을 사용한 이 망치머리는, 어지간한 충격에는 흠집도 안 갈 정도로 단단하다.
저 방패를 막으려면 망치머리였다. 물론 잘려나가긴 하겠지만, 다소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도끼는 자루 끝이나 자루로 받아내어 흘린다. 아니면 아예 피한다.
즉, 아까처럼 한 번 막아내거나 회피할 때마다 반격하는 건 무리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극적인 방어전에서 다소 주현성의 움직임을 읽어낸다면 승산이 있을지 모른다고, 자흐렌 자작은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자세를 취했다. 망치머리를 앞으로 뻗어 주현성을 겨눈, 중단의 자세.
그 자세가 방어전을 할 때에만 나오는 자세라는 걸 알아챈 몇 충성스러운 자작의 부하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전세가 기울고 있었다.
자작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오직 주현성만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전세를 읽어낼 정도로 자작이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한 편, 고작 준신일 뿐인데도 상대하는 게 고역이라는 점에서 주현성은 의아해 했다.
분명 여름의 도살자보다 기술 자체는 부족한데, 어째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름의 도살자는 압도적인 강자, 공격적으로 서로를 죽이기 위해싸웠지만, 자작은 자신의 승기가 완벽한 승리에만 달려 있음을 알고는 소극적으로 맞붙어가면서 주현성을 분석하고, 전투를 의도적으로 끌어대고 있었다.
그 차이가 주현성에게는 낯설었다. 그간 싸워왔던 이 세상의 적들은 모두 전력으로 주현성을 죽이려고 들었으므로, 이런 마라톤 같은 장기전은 어색했다.
"…흐음."
자작이 목소리를 흘리자, 주현성이 도끼를 고쳐쥐고 방패를 고쳐멨다. 전기톱, 아니 신성톱은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자작이 그 광경에서 눈을 떼어 주현성을 바라보았다.
분명 대화해본 바로는 목소리는 어렸다. 그리고 들은 바에 따르면 외관 역시 생긴 건 약관. 다소 젊어보인다고 하더라도 30을 넘진 않을 것만 같았다.
경험은 커녕 젊은 나이라 미숙한 부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반신은 무슨 베테랑 전사처럼 싸워댔다. 기술 자체가 부족하긴 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전투를 많이 해본 이들 특유의 감각이 깃들어 있었다.
족히 50년은 싸워온 게 아닐까. 얼굴은 반신이 된 영향으로 늙지 않은 것이고?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적어도 자작이 느끼기엔 그랬다. 자작은 경계를 한껏 올리며 굳건히 자리를 잡고, 주현성은 달려들었다.
전투가 속행되었다.
전투의 양상은 아까와 같았다. 주현성은 필사적으로 공격하고, 자작은 다소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필사적으로 막아내거나 피한다. 그러며 기회를 노리지만, 그렇게 쉽게 보일리가 없었다.
'빈틈이 없다…!'
사실 거검보다 저 무기가 진짜 무기인 게 아닐까? 숙련도에 있어서 비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거검을 휘두르는 건 뭔가 경험이 묻어나긴 하지만 미숙한 편이었던 반면, 도끼와 방패는 무슨 제 몸처럼 다루고 있었다.
까아앙!
아래에서부터 올려친 도끼날이 자루를 후려치고, 그 거력을 미처 흘려내지 못한 자작의 자세가 흔들렸다. 그간 굳건하게 대지를 딛고 있던 다리가 움츠리자, 노렸다는 듯이 주현성이 방패를 횡으로 휘둘렀다.
애애애애애앵!!!
굉음을 내며 쏘아진 방패. 자작은 자세가 흔들린 상태에서 망치 머리를 내밀 수 있는 공격 방식이 달리 없었다.
튕겨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는 몸을 차륜처럼 반원 모양을 그리며 회전시켰다. 그 궤적을 따라 망치가 크게 휘돌며 나아갔다.
까아아아앙!!!!
울리는 포성과도 같은 폭음. 방패에 부딪힌 망치가 깎이며 거칠게 밀려나고, 거대한 망치에 방패가 부딪힌 주현성은 고작 뒷발을 조금 더 벌려내는 것으로 균형을 되찾았다.
'실책이다!'
방패를 막아낸 건 좋았지만, 망치는 밀려나고 자작은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상대의 괴력을 생각한다면, 체간을 흔들리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무슨 짓을 하든 그 정신나간 근력으로 균형을 잡으면 그만이니.
실책과 거력에 비틀거리던 자작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도끼날을 보며 팔을 뻗었다.
올려쳐지는 도끼. 도끼날에서 드글거리는 적염. 살을 전부 살라먹을 기세로 타오르는 화염. 자작은 팔을 내어주는 대가로 목숨을 부지할 생각으로, 도끼가 날아드는 궤적에 팔을 끼워넣었다.
팔이 잘려나가더라도 준신이 되어 강화된 신체능력이라면 아직 싸울 수 있다. 명확히 보이는 패배에도 자작은 투쟁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팔이 잘려나가기 직전에, 갑주가 채 갈라지기도 전에 무언가 뛰어들었다.
투확!
마치 액체를 쏟아낸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주현성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완벽한 기습이었다. 다소 경계는 하고 있었음에도 주현성이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그 기습의 장본인은 빠르게 움직였다.
검은색 액체와도 같은 모양새로, 주현성에게 들러붙어 뱀처럼 움직인다. 순식간에 주현성을 뒤를 점하고, 팔다리로 주현성을 묶어내듯 제압한다.
그야말로 신기에 달한 유술. 거인의 힘을 가진 반신조차 묶어둘 수 있는 뱀과도 같은 움직임에 주현성도 자작도 놀라던 차, 그 유술을 사용한 장본인이 입을 열었다.
"자작! 지금이 기회다! 머리에 피해가 누적되어 있으니 머리를 노려라!"
그건 황제의 암살자였다. 얼굴에 도끼 머리 같은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주현성을 제 부족한 체중으로 찍어누르고, 일어나려고 힘을 줄 때마다 힘이 쏠리는 부위를 비틀어 흘려내었다. 그럼에도 암살자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그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황제는 그에게 기회를 보다가 죽이라고했고, 기회를 찾았으니 나선 것 뿐이었다.
그간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주현성을 관찰한 결과 도출된 대답은 간단했다. 최적의 기회는 자작과 힘을 합칠 수 있는 지금이며, 지금이 아니면 이 반신은 죽일 수 없다.
암살자의 공격력은 부족하지 않으나 단검으로는 저 단단한 갑주를 뚫어낼 수 없다. 만약 암살자가 주현성을 묶어낸다면, 자작의 공격으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주현성은 위기감을 느끼면서 팔과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으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암살자의 관절이 짓이겨지고 있었다.
고통 속에서도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암살자가 침음성을 삼켰다.
'나도 준신일텐데, 이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봄의 순례자가 두려워한 게 괜히는 아니군.'
이를 바득 갈면서 암살자는 외쳤다.
"근력이 보통이 아니군…! 트롤조차 유술로 묶어두고 죽일 수 있거늘…."
풀려나고 있긴 했지만 당장은 묶어둘 수 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자작이 망치를 내려쳐 죽이기만 한다면, 설령 암살자가 근력이 부족해 주현성의 일어나려고 하는 시도를 점점 방어하고 있지 못함에도 괜찮았다.
팔을 모아 힘을 주어, 등근육을 부풀리는 주현성 덕에 손가락이 뜯어지고 있던 암살자는 그제서야 이변을 깨달았다.
"…자작? 자작! 뭘 하고 있나! 어서 죽여라! 오래 못 버틴다!"
푸화아아악!
심지어 주현성의 전신에서화염이 치솟기 시작했다. 암살자의 괴물 가죽으로 만든 의복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평범하지 않은 화염이었다. 화염 부여의 신성한 불꽃은 제 몸에 닿은 괴물의 가죽을 지글대며 끓여버리고 있었다. 그 위에서 익어가는 개구리의 꼴로 암살자는 눈을 돌렸다.
자작은 가만히 있었다. 망치머리를 바닥에 놓아둔 채, 자루에 손만 걸치고 암살자가 용쓰는 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자작!!! 숨 돌릴 때가 아니란 말이다! 어서, 어서 이 놈을 죽여라! 함께 죽고 싶은 거냐!"
하지만 자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일이 아니라는 듯, 한 발 물러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구의 슬릿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는 삭막한 감정만이 남아있었다.
"너, 너 설마…."
암살자가 말을 이어가기 전에, 결국 암살자의 손가락이 찢어졌다. 크지 않은 피륙이 바닥을 나뒹구는 순간, 주현성의 손이 뻗어져 암살자의 목을 잡아챘다.
"큭, 크아아아아아악!!!"
주현성은 자연스럽게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손에서부터 치솟은 불길이 암살자의 전신을 휘감았다. 타오르는 두 남자가 목을 붙잡고 붙잡힌 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져 있었다.
병사들도, 자작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화형식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게 이상했다. 주현성이 눈을 돌려서 자작을 바라보니, 자작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말도, 행동도. 마치 장식용 갑주인 것처럼 지키고 서있기만 했다.
"크윽… 자작! 자자아악!!! 네 가족을, 네 가, 아악, 족을. 크윽, 더는 못 봐도 괜찮다는 거냐아아!!!"
암살자가 타들어가는 고통속에서 씹어뱉어낸 말은, 주현성으로서도 인과관계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견실하다더니 협박받아서 어쩔 수 없이 한 건가.'
주현성은 찌그러진 투구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암살자를 바라보았다. 암살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 광경들을 묵묵히 바라만 보던 자작이 뒤늦게 대답했다.
"죽은 이들을 한 번 더 죽일 수라도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생각해보겠네."
많은 걸 시사하는 대답. 그에 암살자의 반응이 옅어졌다. 옅어지다 못해 얼어붙는 듯 했다. 하지만 신체가 타오르고 있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암살자는 격한 반응을 토해냈다.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 했다.
"어, 언제, 언제부터… 크아악…!"
자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현성이 도끼를 쥔 주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목을 움켜쥔 암살자의 몸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동시에 주먹을 내리찍는다. 압착기처럼 내리찍어진 주먹이 타들어가 탄화된 암살자의 두개골, 눈, 피륙, 터져나가는 뇌수 따위를 간단하게 짓이기며 불태웠다.
콰아아앙!
주현성의 팔을 붙들고 있던 암살자의 팔이 축 늘어진 후에야 주현성은 그 쥐고 있던 목을 놓았다.
희미한 신성이 주현성의 체내로 흡수되면서, 암살자의 시체는 흩어지는 신성과 함께 잿더미가 되어갔다.
"…흠."
자작의 침음성이 들리고, 주현성은 달려든 암살자 때문에 놓쳤던 방패를 집어들며 자작에게 다가섰다.
일렁이던 화염이 걷히고, 흠집이 남아있긴 하나 깨끗한 갑주와 찌그러진 투구, 망토를 두른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손에는 도끼, 왼손에는 신성톱 방패를 쥐고.
자작은 그제서야 망치를 집어들었다. 집어든 망치를, 언제 그랬냐는 듯 방어적인 자세로 내밀었다.
"…뭐하는 거지? 그렇게 자신이 있었나?"
주현성의 목소리에 미묘한 분노가 서렸다. 완전히 분노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더 말을 잘못한다면 주현성에게 끔찍할 정도의 괴력을 선사할 수 있을 분노를.
자작은 그 사실을 몰랐으나,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대로라면 난 필시 그대에게 패배하겠지."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말하는 태도는 주현성이 이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럼 왜 아까 기회가 있을 때 공격하지 않은 거지?'
주현성은 방금 전 유술에 속이 꽤나 타들어갔었다. 만약 그때 자신의 머리를 내리친다면 아무 저항 없이 죽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그정도로 암살자의 유술은 상당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기회가 있는데 놓아주다니?
얕보인 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주현성이 도끼를 어깨에 대며 말했다.
"그럼 왜 공격하지 않았지? 아까 그 암살자놈 말대로 그때 내 머리를 쳤다면 승리는 네 것이었을 거다. 왜 그러지 않았지?''
"난 전사로서 임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자작이 대답하더니 바로 말을 이었다.
"비겁한 암살자가 아니라. 상대와 정직하게 싸워 이기는 전사로서."
"…뭐?"
"내 생애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는 건 단 한 번으로족하다."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명백한 진심. 짙게 느껴지는 감정에 주현성이 어깨에 걸쳤던 도끼를 늘어뜨렸다.
'비슷해.'
누군가 떠오른다 했는데 무척이나 닮은 존재가 있었다.
여름의 도살자, 전사신. 주현성이 처음으로 죽인 신이자 비겁한 수를 쓰지 않고 전사로서 싸우다 죽은 신.
당시에는 능멸하긴 했지만, 그 강함은 진짜였다. 누가 이기고 질지 알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해할 순 없었지만, 싫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나는 널 죽일 수 밖에 없다. 너도 그건 알고 있을테고."
그래서 주현성은 충동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근데 나는 네가 지금 한 행동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 순간까지 명예를 고집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까. 네가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가 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 나와 함께 간다면 네 가족의 복수도 할 수 있을테고, 이 꼬라지를 만들어낸 신인 봄의 순례자도 죽일 수 있다."
주현성의 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상당한 진심이었다. 이런 전사라면 절대 자신을 배신할리도 없고, 당위성 자체도 충분했다.
"함께해라. 너는 죽기엔 아까워."
그 설득에, 자작은 투구 속에서 눈을 불태웠다. 욕보였다는 감정이나 질시가 아닌, 명백한 투지.
자작은 투지를 불태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했잖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가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고. 지금부터는…."
철컥
겨눠진 망치가 움직이더니, 격철음을 내며 주현성에게 겨눠졌다.
"내 의지대로 선택하겠다."
겨눠진 망치는 떨리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노병의 짙은 투지만이 담겨 부동했다.
그 부동하는 망치 끝을 본 주현성은, 애석한 마음으로 도끼를 단단히 쥐었다.
"고집스러운 새끼."
자흐렌 자작이 드물게 달려들고, 주현성 역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두 신성자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