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소에르 수도원 (138/274)



〈 138화 〉소에르 수도원

"말이 필요해서 오셨수?"


안뜰에서 조금 벗어나, 성문 바깥과 성벽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는 마굿간. 그  켠에서 한창 안장을 손보고 있던 중년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쌓여있는 짚단이나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공구 같은  눈에 들어왔지만, 별로 내가 알지 못하는 공구들이 대부분이라 금방 흥미가 가셨다.


중년은 손보고 있던 안장을 내려놓고는 내게 다가왔다.


키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전형적인 중년이었다. 영양을 어릴 때  섭취하지 못한 듯한 평균적인 판타지 농민 같은 느낌이었다.


마부긴 했지만.


"여기… 아, 글은 읽을 줄 아십니까?"

무심하게 남작이 줬었던 양피지를 건네려는 찰나 떠오른 게 있었다.

과연 여기 문맹률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과, 이 마부가 이 양피지를 읽을 수 있는가 하는 것.

물론 남작이  양피지를 주면서 마부에게 가보면 될 거라고 하긴 했지만. 남작이 병신새끼가 아닌 이상 나름의 해결책이 있으리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았는지,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건네는 양피지를 받아들어 펼쳤다.

"…흐음, 그렇구만. 나으리께서  멀리 가시나 보오?"

"예, 좀 그렇게 되었죠."

"그럼 말이 필요하겠구만. 어찌,  마리 받아가실 거요?"

말이란 거  비싼 편이 아니었던 건가.  그래도 경제적으로 후달리고 있는 남작령의 사정상 나한테 선뜻 말을 내어주는 꽤 손실일 것 같은데도, 마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중년 특유의 고집스러운 표정 위로 무표정이 맺혀 있었다.

"…필요 없을 겁니다. 그냥 물자들만 잘 챙겨주시면 됩니다."

"적혀있는 걸로 보자면 수도원에 가는 거 같은디, 수도원 꽤   알고 계쇼? 말이 없으면  힘들 건데."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 말을 듣는 게 내가 아니라면.

고개를 가로젓고는 당황한 얼굴의 마부에게 설명했다.

"제가 일단 말을 탈  모르는데다, 그… 좀 어이 없게 들릴 것 같지만 전투에서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오랫동안 잘 살려서 다시 데리고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들고… 관리도 할 줄 몰라서요."

역시나 마부는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양피지를 제 품에 넣었다.

"정 나으리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수다. 물자는 준비해올테니 잠시만 기다리쇼."


그렇게 마굿간을 나간 마부가 돌아온 건 그리  시간이 지난 후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부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는데, 갖고 있는 자루나 배낭 등에 물자가 꽉 차있는 걸 보았을  대충대충 일을 했다기 보다는  일을 잘하는 편이라서 그런 것처럼 보였다.


마부가 건네는 물자와 배낭을 짊어지고, 마굿간에서 나왔을 때에는 해가 높이 걸려 정오임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빛이은은한 한기를 머금고 있는 초겨울, 나는 남작령에서 벗어났다.

*

높이 걸린 태양 아래, 나는 배낭을 한 개 등에짊어지고길을 걷고 있었다.

그 옆에는 늘씬하게  빠진 백마가 내 걷는 속도에 보조를 맞추어 걷고 있었고, 그 위에는 메이와 겨울의 신부가 있었다.

각각 짐을 메고 있는데다 백마에게도 짐을 둘러놓았지만, 완벽한 전투마를 만들어낸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닌지 말은 지치는 기색도 없이 콧김을 뿜으며  골라진 돌길을 따라 제 발굽을 부딪혀 댔다.

동료의 능력과  능력을 잘 감안하고 결정한 인선이었다.

유사시에는 말을 따위로 만드는 기동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는 말에 타기 보다는 두 다리를 땅에 대고 있는  나았고, 메이는 나름 전투력이 높아지긴 했지만 체력은 다소 단련을 했을 뿐인 수준이라 말에 타고 있었다.

눈이 안 보여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면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겨울의신부는 그 말 위에 메이와 함께 탔다.

언뜻 본다면 겨울의 신부가 귀족 아가씨고, 나와 메이가 그 호위인 것처럼 보이기 좋은 조합이지만 일행 중에서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메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내딛고 있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진짜 괜찮겠어? 다리 안 아파?"


"어, 안 아파."

"피곤하진 않구?"


"뭐 그리 걱정이 많냐."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을 받으니, 메이는 잡고 있던 말고삐를 놓고는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보통의 승마 상황이라면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제 의지와 정신으로 움직이는 완벽한 전투마에 타고 있다면 해당하진 않았다.

"난 현성이 여자친구니까!"


귀여운 년. 끼부리기는. 나는 '그래서 피곤하지 않아?' 라는 눈빛을 보내오는 메이에게 손을 대충 흔들었다.

"그래, 그래. 안 피곤해. 오히려 거인의 힘이 켜져있어서 피로라는 걸 느껴본 것도 좀 된 거 같다야."

메이는 내 확신에 찬 말에도 걱정스러운지 잠시 바라보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이라는 걸 아는 건지 다시 눈을 돌렸다.

진짜 그랬다. 거인의 힘에 달린 재생 강화에는 내 피로도나 지구력도 해당하는지,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이미 지칠 것만 같은 강행군이나 뜀박질 후에도  몇 번 고르면 원래 몸 상태로 돌아가고는 했다.


그야말로 싸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몸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딴 걸 갖고 있는 겨울의 폭군이 얼마나 강할지걱정은 된다만, 아직은 그놈과 싸울 때가 아니니까.

돌로 이뤄진 가도를 따라 걷는 우리의 머리 위로 태양이 넘실거렸다.


"…풍경 죽이네."


"그치. 되게 좋다."


"바람이 기분 좋네요."

메이가 내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겨울의 신부 역시 바람을 즐기는지 제 옆머리를 쓸어넘기며 작게 웃었다.

탁 트인 들판 위로 풀들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고,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에내 망토나 메이의 옷자락, 겨울의 베일이 흔들린다. 그렇게 흔들리는 광경 속에서 숨을 들이키면 바다의 짭짤한 냄새가 비강을 찌른다.

솔직히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비 내리는 것과 비슷한, 풀들이 나부끼는 소리와 말발굽 소리, 발소리를 들으며 나아가고 있으니 어느새 지평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커튼이 올라가는 것처럼 걷히기 시작한 지평에는 무언가 있었다.

가도의 우측에, 얕게 패여진 개울에 한쪽 면이 기울어져 빠져있는 마차가.


"어, 현성아."

말에 타고 있어 시선이 높은 메이는 그 마차를 보자마자 나를 돌아보며 눈빛을 보냈다.

얼추 보자면 저걸 도와주자고 하는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얜 뭐 이렇게 착하게 사냐.

물론 저걸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도 좀 그랬다. 좀, 모양이 빠지니까.

도와줄 생각으로 다가서니 마차가 제대로 보였다.


"거기 좀 밀어보고, 이제 당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 수수한 마차를 둘러싼 채 개울에서 마차를 빼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가도가 살짝 높고 돌로 이뤄진 탓에 끌어올리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다지 진척이 없는지 그들은 마차를 빼내는데 바빠 우리의 지척까지 다가올 때까지는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차 코 앞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눈치 챈 이들이 화들짝놀라 마차에서 손을 떼내고 우리를 노려보았다.

마차를 둘러싼 이들은 겉보기엔 비루한 차림을 두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갖고 있는 장비는 꽤 고급품으로 보였다. 화려한 양손검이나 큼직한 전투망치에 방패까지 갖고 있는 용병은 흔치 않을테니.

 무기가 나를 향하려는 것만 아니면 더 좋았을텐데 그건 어쩔  없었다. 나라도 이런 놈이 다가오면 경계부터 할테니.

코웃음을 치며 다가가 경계받지 않도록 마차 한 켠을 붙잡았다.


그제서야 도와줄려고 한다는 걸 깨달은 이들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만류하려고 했지만.

"어, 그거 그렇게 당긴다고 되는 게…."

우르르


쪼르르륵


"뭐라고요?"

어림도 없지. '거인의 힘'으로 바로 들어버리고.

나는 마차의 한 켠을 붙잡아 통째로 들어올려 가도에 올려놓았다. 진창에 빠졌었던 바퀴가 얼룩덜룩한 걸 보자니 꽤 오래 빠져있었던  같았다. 마차 바퀴살 사이에 낀 물이 떨어져 바닥을 더럽히는 동안, 무장한 이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나와 마차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걸 그냥 들다니… 이게 무슨…."

그들은 그렇게 당황의 말을 나기며 혼란스러워 했는데, 곧 그들의 혼란을 가르고 누군가 불쑥 튀어나왔다.

키가크고 마른 체구를  남자였다. 그는 빠르게 다가와  손을 덥썩 붙잡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저 진창에 빠진지 반나절이라 슬슬 짐만 건지고 마차를 버려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다니… 주께서 아직 저희를 버리진 않으신모양입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편해보이는 로브에 호신용 무기 같은 건지 무기를 차고 있긴 했지만, 악력에서 느껴지는 걸로는 전사라기 보다는 상인이나 장인, 사제 쯤이 어울릴 것 같은 남자였다.

 남자는 한참이나  손을 붙들고 감사를 표하더니 불쑥 고개를 들어올렸다.

"보아하니 여행객이신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든 보답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가시는 길이 어디신지 물어도 될런지요? 만약 길이 겹치신다면   푼 안 받고 가시는 길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오, 개꿀.

이래서 사람은 착하고 봐야한다니까. 사람 좋게 웃는 상인에게 마찬가지로 웃어주며 대답했다.

"소에르 수도원까지 갑니다. 아십니까?"

"아아, 뭔가 공양할 게 있으신 모양이군요. 성직에 종사하시는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진창에서 동포를 만나니 얼마나 기쁜지…."


상인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는데, 뭔가 표정에서 미묘한 기류 같은 게 느껴져 의아해졌다.


정확히 뭔 감정인지는  수 없었지만.  팔아먹을 수 없어서 그러는 건가?


"마침 저희도 그 인근의 마을에 들리려는 참입니다. 참으로 잘됐습니다. 저희가 편안하게 마차로 모실테니, 부담 없이 올라주세요."

상인은 그렇게 제안하면서 실실 웃었는데,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지만 뭔가 인자한 웃음이라 퍽 신뢰가 갔다.


그렇게 피곤한  아니지만, 내가 전속력으로 마을까지 뛰어가는 거나 걷다가 도중에 야영하는 것보단  마차에 올라 마을까지 빠르게향해서 방을 빌리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였다.

내가 거절할 것도 없는 제안이라고개를 돌리니, 메이는 어느새 백마를 되돌리고는 마차에 오르고 있었다.

이 자식, 상의 좀 하고 오르지. 애초에 수락할 거긴 했지만. 어떤 부담도 없이 상인에게 말했다.

"그럼 좀 부탁하겠습니다."


메이가 백마를 없애는 모습을  상인이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예에, 물론이지요. 편하게 있어주시길. 전속력으로 모시겠습니다!"


이거, 오늘은 마을에 묵을 수 있겠다.


나는 미미한 기대를 품고 마차에 올랐다.



*


그리고  기대는 산산히 부숴졌다.


도착 자체는 성실하게 했다. 마을의 입구, 높이 세워진 목책이 언뜻 보이고 해자를 모방한 듯한 구조가 마을의 어귀에 퍼져있는 과하게 보안이 좋은 마을. 우리는 그 입구에 멈춰서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안되오. 못 들어오니 그만 나가보쇼."

"아니, 안된다는  무슨 말입니까? 전에도 잘만 묵었는데, 갑자기 안되는 이유는 뭡니까?"

실랑이의 당사자들은 상인과 마을 장로인지 촌장인지 하는 늙은이.

언뜻 보기에도 평생 땅이나 갈았을  같은 늙은이가 무기를 든 민병대와 함께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동자에 감도는 미미한 적의에 의아할 찰나, 상인이 어이 없다는 듯이 외쳤다.


"하다 못해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여기를 돌아서 가려면 마차는 며칠은 가야한다는 거 잘 알잖습니까."


"그건 우리 사정이 아니고, 이만 가보쇼. 밤이 늦으면 야영지  시간도 없을테니."

와, 존나 매몰차네. 시골 민심 다 뒈졌나.


마음 같아서는 저걸 다 까뒤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위험 부담이 생각보다 컸다.

그렇게 까뒤집고 들어간다면  농민들이 우릴 결코 가만히 두진 않을 거다. 사람을 싹 다 내보내고 우리가 자는 곳에 불을 지르거나, 자는 중에 목을 그으려고 찾아올 수도 있었다.


그럼 또 그거 경계한다고 뜬 눈으로 지새야 할텐데, 그러느니 차라리 야영을 하는 게 나았다.


별 수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상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만 갑시다. 차라리 지금 물러나서 야영지를 세우는 게 나을 겁니다."

상인은 내 제안에 입술을 깨물었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귀족분들처럼 보이는데… 야영은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귀족으로 보이나?

하긴, 내 갑주부터가 보통 물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한다. 간단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만 갑시다."

상인은 결국엔 마차를 돌렸다.

마을에서 그리 멀진 않지만 숲을 등에 대고 있어 모닥불 위치만 잘 잡는다면 야습당할 걱정은 전혀 없는 언덕 위, 우리는 거기에 마차를 세우고 야영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한참은 걸렸어야 할 야영지 설치는, 겨울의 신부가 가진 초인적인 시다바리 능력에의해 빠르게 해결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상인의 짐에서 꾸려낸 식량을 가지고 먹을만한 요리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용병들과 상인들이 놀라워 하며 겨울의 신부를 칭송하고, 겨울의 신부는 부끄러워 내 옷자락을 잡으면서도 기뻐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불침번을 정할 시간이 되어서야 상인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은인분들에게 불침번을 맡길 순 없으니, 편히 쉬십시오. 불침번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 그럼 감사히."

상인이 다시 제 무리로 돌아가고, 우리는 잠자리를 펼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7명을 조금 넘는 용병단원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불침번을 정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순번을 정했는지 흩어지는 용병들을 보며 우리는 펼친 간단한 모포 위에서 몸을 말고 누웠다.


하늘에 뜬 별들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

그렇게 잠에 든 내가 깨어난 건 새벽이었다.

자연적으로 잠에서 깨어났으면 모르겠는데, 무언가  손을 쥐어짜듯 강하게 압박해서 잠이  달아나고야 말았다.


씨발, 잘 자고 있었는데.


비몽사몽한 와중에 고개를 돌리려는데, 내 손을 쥐어짜듯 했던 손가락이  손목을 타고 올랐다.

뭐지, 누구지? 라고하기엔 너무도 익숙한 체온이었다.

겨울의신부가 내 손목을 단단히 쥔 채로 주물렀다.

근데 갑자기 왜 깨운 거지?내가 의구심을 품는 순간, 적막 사이로 무언가 들려왔다.


사삭, 사사삭

절그럭 절그럭


철컥

다가오는 듯한 소리와 갑주가 울리는 소리, 무기를 뽑아드는 소리.


명확한 야습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다가오는  듣고는 눈을 꾹 감고서 소리를 들었다.

이런 씨발.

스륵

발소리가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다가오더니, 내 머리 맡에서 멈춰섰다.

멈춰선 이의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감고 있는 눈이 아릴 정도로 그 너머에서 인기척이 짙었다.

스르릉


무기를 뽑아드는 소리에 등골을 타고 소름이 오르는 순간, 나는 몸에 반동을 주어 튕겨내듯 기립했다.

"어억…!"

콰아앙!

그리고 즉시 어퍼컷.

거인의 힘으로 강화된 근력이 금속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내 머리맡까지 다가왔던 용병이 튕겨져 날아갔다.


방패로 막은 건지 날아가는 진로에 떨어진 방패가 찌그러져 내팽겨쳐졌다. 튕겨져 나가는 모습에 용병  하나가 헛숨을 들이켰다.

"뭐, 뭣."

우리를 야습하려고 한 이들은 그 상인과 용병들이었다. 그들은 무기를 뽑아든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씨발, 은인이니 뭐니 하더니 통수를 쳐?"

정확히는 치려다가 실패한 거지만, 존나 빡치는 건 사실이었다. 믿었는데 개새끼들이.

꾸드드득


근육에 추가적인 분노가 들이부어져 근력으로 활활 타오르자, 상인이 잠시 얼어있다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말했다.


"그건 우리가  말 아닌가? 장검 연맹의 용병. 우리가 선의로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를 끌어모은 주제에, 우리에게 잘못했다 꾸짖는 건가? 어이가 없군."


뭔 소리야 씨발.

뭔 동료를 끌어모아.

나도 어이가 없어 눈쌀을 찌푸리며 노려보니, 상인은 내 눈빛에 흠칫했다.

"뭔 개소리야 씨발. 뭘 근거로 그딴 개소리를 뱉냐? 됐다.  지랄 해명 못한다면, 장담 컨데 너희 대가리 전부 다 산 채로 뽑아버릴 거다."


 섬뜩한 협박에 상인이나 용병이 당황했는지 멈칫했다가 되려 소리쳤다.

"그럼 이 다가오는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농락도 정도껏하고, 슬슬 본모습을 드러내라!"


뭐요 씨발?

다가오는 새끼들?


고개를 슬쩍 돌려서 뒤를 바라보는 순간, 확실히 무언가가 모닥불의 빛이 드는 장소의 끄트머리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둑한 숲 안에서 빛나는 병장기들. 단단한 갑주에 칠한 검은 숯이 달빛 아래에서 칙칙하게 빛을 뿌렸다.

"뭐야 씨발, 너흰 또 뭐야."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뱉어내자,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그건 전형적인 용병처럼 생긴 남자였다. 허리춤에 메이스를 차고, 손에 장검을 꺼내든 남자.


그가 나를 가늘게 뜬 눈으로 꼬라보고 있었다.

"장검 연맹에서 나왔다. 여기에 교단의 성유물이 있다고 하던데…."


하고 고개를 돌려가며 좌중을 살피던 남자는, 내게 다시 시선을 두고는 눈썹을 들썩였다.

"너는 그냥 휘말린  같군, 그냥 가면 보내주도록 하지. 한 10초 정도 줄테니 빨리 꺼지고."


나는 자기 전에 갑주를 벗어서,  대부분의 장비나 물건들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저 말은, 다르게 말하자면 그것들도 두고 꺼지라는 이야기였다.

차마 들어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두고 꺼지라고? 이 씨발 강도새끼들이?


끓어오르는 분노로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전신에 검은 사슬을 둘렀다.


"해봐, 씹새끼들아."

 몸을 빼곡히 덮은 사슬갑주의 촉감을 느끼며, 나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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