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소에르 수도원
내 재촉에 의해 수도원장은 그 늙어 주름이 진 입가를 벙긋거리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나는 뜻 밖의 몇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수도원은 현재 장검 연맹의 포위망 하에 놓여져 있었고, 그 포위망의 주체는 장검 연맹의 배척파.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긴 했는데, 도움을 요청받은 수색파에서는 그다지 도움의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전을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렇게 교단의 상층부는 고립되었고, 수도원들은 본부가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보내주지 않자 배척파에게 사냥당하고 있었다.
본래라면 자신들의 영토 하에 있는 한 보호를 거들어야 할 제국은 악신에게 넘어가 그런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에 들려온 말을 보자면 훼방하지 않는 것으로도 다행일 수준이었다.
"제도가 어딥니까?"
"여기서 거리는 좀 있습니다만, 제국의 수도입니다. 본래라면 제국 내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많은 이들이 사는 도시일테지만, 악신의 손아귀에 넘어간 이후로는 모르겠군요. 생존자가 있어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사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하더니 말을 넘겨받았다.
"내가 본 바에 따르자면… 검은색 뿌리가 외벽을 뒤덮고 있더군. 처음엔 단순한 지형지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가려고 했으나 다가선 순간 공격해왔다. 지금껏 본 적도 없는 속도와 질량으로 공격해서 그런지, 정예인 성전사들도 반응하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끔찍했지."
그리고 내가 보기엔, 네가 찾는 악신이 그가 아닐까 하는군.
전사는 그렇게 말을 마쳤다.
만약 검은 뿌리 얘기가 안 나왔다면 확신할 수 없었겠지만, 다행히 그들이 제공한 정보는 충분했다.
자작의 말대로였다. 제국에게 붙어먹은 건 봄의 순례자였다. 그 씹새끼는 이제 도시를 집어삼키고 제도를 요새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얼마나 두려우면 그 지랄까지 하고 있는 건지.
어쨌든 꽤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잠자코 들으면서 머릿속에 다른 정보와 끼워맞춰봤다.
기이하게도 배척파는 성유물을 가진 호송대를 습격하고 있다. 그렇게 습격해서 성유물을 탈취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확률로 수뇌부 내지는 총책임자가 준신이거나 준신들과 계약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준신을 만들기 위해 성유물을 필요로 한다. 그건 죽어가던 자흐렌 자작이 내게 남긴 정보였다.
나는 알고 있지만, 이들은 알리가 없는 정보. 이 정보를 해금해서 좋을 게 있을지 가늠하다가 입을 열었다.
"장검 연맹 측이 성유물을 노리는 이유에는 악신, 제국과 연관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
"말은 안 했습니다만… 제국 측에서 악신은 성유물을 이용해 신성을 가진 인간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그런 존재를 죽여야만 했죠. 그들은 그것을 준신이라고 부릅니다. 그 정황과 장검 연맹 배척파가 성유물을 가진 호송대를 급습한다는 걸 같이 본다면, 꽤 유감스럽게 시기가 맞아떨어지지 않습니까?"
수도원장의 얼굴 표정이 희게 질렸다.
그 노인이 기운을 되찾기 전에 나는 덧붙였다.
"제가 볼 때는, 장검 연맹의 배척파는 악신의 부하이거나 악신과 계약 관계에 놓여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국이나 수색파도 연관이 있겠는가?"
내 말을 받은 건 전사였다.
"그건 저도 모르죠. 하지만 연관이 없다고 두고 움직이기 보다는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을 정하는 게 이로울 겁니다."
내 말에 동의하는지 좌중이 침묵으로 물들었다. 메이는 평소의 멍청한 표정이었고, 겨울의신부는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한창 적막이 회랑을 메우고 일렁이는 태양빛이 넘실거릴 무렵,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대로 닥치고 있는 건 시간 낭비 같았으니.
"도움 요청할 곳은 없습니까? 병력이라던가, 하다 못해 경고라도 해줄만한 곳은…. 예를 들자면 교단 상층부에 말이라도 해보는 게 어떻습니까?"
"이미 해봤습니다. 애석하게도 장검 연맹 측의 움직임 때문에 압박을 받는지 본부측에서는 지원을 보낼 의향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리에 맞는 판단이긴 합니다. 괜히 수도원 같은 곳을 돕겠다고 병력을 비웠다가 교단의 심층부가 당해버리면 저희 교단은 이 대륙에서 밀려나게 될 겁니다."
진짜 혼자네, 이 새끼들.
어쩔 수 없는 문제긴 했다. 실제로도 듣는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럼 만약에 내가 쳐들어오는 새끼들을 전부 해치워버린다면, 다시 교단 측에 연락해볼 수 있겠습니까?"
"예, 가능하겠지요. 위협이 사라진다면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럼 다행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었고. 능력상 문제도 없었으니.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여기 혹시 지하실이 있습니까?"
"…예, 어떻게 아셨습니까?"
교회 지하실이 있는 건 국룰 아닌가 싶었는데, 수도원장이나 전사단장, 사제 등은 굉장히 놀라워 하는눈치라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어보였다.
하긴, 어지간해서는 수도원의 심층부에 지하실이 있을 거라고 어지간한 인간들은 예상조차 못할테니.
얼추 변명을 떠올려 둘러댔다.
"산 위에 있으니 있을 법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반이 단단하고 자연 동굴 같은 것도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테니까요."
"예, 자연적으로 존재하던 동굴을 개축하여 만들어낸 성유물 보관소가 지하에 있습니다…. 헌데 그건 어째서…."
의아해하는 수도원장에게 손을 내밀어 더 말하는 걸 제지했다. 수도원장은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끼어들었음에도 별 말을 못하고 조용해졌다.
"딱 좋네요. 놈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성유물들 갖고 그 아래에서 숨으세요. 다른 사람들도 전부 데리고요."
내 제안에 수도원장은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그런 걸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닌지, 수도원장은 즉시 반박했다.
"어차피 그리 숨겨진 곳은 아니라 설령 막아두더라도 금세 돌파당할 겁니다. 수도원을 수색하면 당연히 들킬테고요. 차라리 방어선을 구축하는 게…."
군사 전문가도 아닌 수도원장의 말임에도 전사단장은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엔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투를 하는 게 이로운 듯 싶었다.
만약 내가 반신이 아니고, 동료가 마법사가 아니라면 충분히 그랬겠지.
"그냥 몸을 숨기기 위해 숨으라는 게 아닙니다. 제 싸움에 방해가 되니 숨으라는 거죠."
그래,분명히 믿기 힘든 말이긴 하다. 나 혼자서 군대를 쓸어버릴 수 있노라고 말하는 거니까. 확실히 전사단장은 그렇게 생각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반박했다.
"설령 경이 악신을 죽인데다 신성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군대일 세. 그것도 전투로 잘 벼려진 용병대! 상대는 다수고 자네는 소수일텐데 어떻게 대항하겠다는 말인가."
동대륙 때는 거친게 특징이더니, 서대륙에서는 과소평가가 국룰인 걸까. 유감스러운 평가에 턱을 쓸고 있고 있자니, 좌중이 만류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꺼내고 있었다.
그래, 자기들 일인데 외지인이 방해된다고 꺼지라고 하면 좀 그렇다 이거겠지. 한창 방어전 계획을 떠들고 있는 전사단장이 듣도록 큼큼, 하고 헛기침을 흘렸다.
그제서야 좌중이 조용해졌다.
"저는 반신입니다. 혼자서 군대를 쓸어버릴 수 있고, 드래곤을 일격에 죽일 수 있는 반신이죠. 설령 제가 실패하더라도, 입구가 좁은 보관소에서 농성한다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제 동료인 마법사가 그쪽을 지원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을요."
"설령 경이 강력하다고 하시더라도 그들은 대인전의 달인들입니다. 전쟁을 통해 자신의 땅을 확보해낸 진짜 달인들이죠."
이번에 반박한 건 수도원장이었다. 수도원장은 그 노인다운 현기가 넘치는 얼굴에 명확한 걱정의 빛을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박하려던 찰나, 그 바로 옆에 앉아있던 사제가 나를 거들었다.
"저는 괜찮으리라고 봅니다. 이분께서는 습격받았을 때에도 혼자서 싸웠습니다. 장검 연맹의 용병대가 상대도 되지 않았죠."
그러니 맡겨보는 게 어떻습니까, 하고 맺는 말에 수도원장은 침음성을 흘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맡겨보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후퇴를 염두에 두고 움직여주시길. 저희 때문에 누군가 죽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닙니다."
수도원장은 여전히 내게 방어를 일임한다는 사실이 썩 불안한 듯 했지만, 불편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바로 방 밖에서 대기하던 사제들을 불러 대피를 명령했다.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
대피한 사제들은 다분히 긴장되는 상황에 주현성의 말을 빌리자면 바짝 쫄아있었다.
수도원 전역의, 대부분의 가구를 보관소 앞까지 끌어와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징벌사제들은 어설픈 만듦새의 메이스를, 다른 사제들도 의자 다리 같은 무기라도 하기에도 애매한 물건을 들고 있는 성유물 보관소.
그 전체를 감도는 막막한 분위기에 혹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실상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
지평선을 뒤덮는 기병과 군세를 보았을 때 대피하여 이 보관소에 도착해있을 뿐이었다.
몇 사제들은 기도를 올리며 주에게 자신을 보호해주기를 청했고, 전사단장을 비롯한 전사들은 간단히 둔기 쓰는 법을 일부 징벌사제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교육이 끝난 징벌사제들은, 자신의 본업인 사제들의 방종을 꾸짖는 게 아닌 애꿎은 가구를 내리찍는연습을 해야만 했다. 그로써 가구의 방종이 고쳐질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혼란 속에서, 단 두 명만이 조용했다.
한 명은 수도원장이었다. 게올 수도원장은 노인 특유의 태연작약함을 몸에 두른 듯 조용히 기도를 올리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에르 수도원에 여자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드물게 보는 여자에게 신기함을 담아 시선을 보내는 것도, 추파를 던지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신비로운 외모와 아름다운 외견이 잘 조화되어 언뜻 인간스럽지 않은 매력을 풍기고 있었지만, 다 늙은 몸뚱이에 성욕이 발할리는 없었다.
단지 저 침착함이 놀라웠을 뿐이었다.
게올 수도원장은 겨울의 신부에게 말을 건넸다. 그의 늙은 등 뒤로, 젊은 사제 몇명이 여자를 흘긋 거렸다.
"두렵지 않으십니까?"
고아하게 앉아 기도를 올리던 여자는 그제서야 제 말을 들은 듯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두 눈을 감은 걸 보아하니 시력은 없었으나 위치를 틀리진 않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지 가는속눈썹을 드리운 채 침묵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은백색 머리칼이 흩날렸다.
"어째서입니까?"
수도원장은 재차 물었다. 솔직히 말하노라면 그는 아주 두려웠다. 저 군세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이었다. 심지어는 괴물 부대 역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괴물을 인간 혼자서 어쩔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신이 아닌 다른데서 구원을 찾고자 했다. 신을 섬겨서 구원을 바라는 건 신을 섬기는 자의 태도가 아니니까.
겨울의 신부는 그 부름에 대답했다.
"제 부군께서는 패배하지 않으십니다. 신들도 제 부군을 무릎 꿇리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자연도, 고고한 마법사들도, 흉포한 용들도 그분께 대항하진 못했습니다. 제 사랑하는 부군께는 패배가 존재하지 않으시니까요. 그분은 길을 막은 이들에게는 죽음을, 길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승리를 가져다주셨어요. 이번에도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고아한 태도에 어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듯한 상냥하고 부드러운 음색. 어떤 찬미를 내지르더라도 이 목소리로 뱉어내는 찬송가 한 줄에 비견할 수는 없어보였다.
그래서 수도원장은 넋을 놓았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여전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불안한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기도를?
"그럼 어떤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까?"
묻는 이는 수도원장이 아닌 사제였다. 사제는 의구심 담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 기도를 들켰다는 사실이 즐거운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떨궜다. 드리운 은백색 머리칼이 횃불 아래서 빛났다.
"제 부군께 죽음을 맞이할 이들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평안히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그 대답에 수도원장도 사제도 아연실색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기 보단,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다시 물으려는 수도원장의 벗겨진 머리 위로,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쿠 우 우 웅
먼지가 내리는 순간 폭음이 들려왔다. 사제들이 얼어붙거나 소리를 지르며 몸을 숙이는 와중에, 겨울의 신부는 고아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