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소에르 수도원 (144/274)



〈 144화 〉소에르 수도원

둘로 찢어지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말하자면 시기적절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뭉쳐 있다면 단순히 마법의 먹잇감이 될 뿐이고, 그렇다고 수색을 위해 넓게 퍼지면 각개격파 당한다.

상대가 반신과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각개격파는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었으나, 용병들은 그렇게 재미를 보고 있지는 못했다.

"사격, 사… 커억…!"


"씨발, 뭐 저렇게 빨라!"


쫓아가는 과정에서부터 이미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 기사의 도주 경로를 뒤따르거나, 소리를 듣고 마법사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그 시도는 무용하게 돌아갔다. 기동력에서부터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벽을 평지처럼 달려, 뛰어오르더니 2층 한 켠으로 날아드는 모습에 안뜰을 메우고 있던 병사들의 낯빛이 차게 식었다.

아까부터 그랬다. 주현성은 항상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사라지거나, 저런 이해할  없는 기동 방식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공격해왔다.


 공격의 결과를 바라보던 용병이 말했다.

"크제론 대장, 죽었어…!"

"나도 알아, 씨발!"


크제논이라고 불린 남자, 야만인 용병이자 준신인 사내는 떨리는 눈으로 시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목을 노려 내지른 발차기. 직격한 목뼈는 덜렁거리며 피해자의 사흔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정확히 끊어져 있었다. 심지어 목울대 일부는 패여있고 그 위를 두른 갑주는 찌그러져 거력이 담겨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전투의 양상은 한결 같았다. 주현성이 모습을 드러내면 한 명 내지는 두 명이 죽었고, 역공을 가하기도 전에 사라졌다.

수도원의 구조가 익숙한 건지 놓쳤다 싶었으면 다시 기습을 걸어왔다. 그렇다고 수색을 늦추고 재정비를 하려고 하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습을 당했다.


반면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용병들은 쫓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쫓는 자리에 마법으로 만들어놓은 함정이 없었더라도 힘들었을텐데 그 함정에 휘말려 죽는 이들까지 나오니 사기는 이미 밑바닥이었다.


크제론은 도끼를 든 손으로 제 이마를 짚고는 탄식했다.

'씨발,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해라, 생각해!'

주현성만 문제인 게 아니었다. 마법사도 문제였다. 안심한다 싶으면 바로 화염을 날려오거나 폭발하는 화염을 뿌려댔는데, 그걸 피하려고 경거망동 하면 즉시 불을 질러 퇴로를 차단하고 태워죽였다.


크제론이 할 수 있는 건 고통스러워 하는  부하의 미간에 칼을 쑤셔넣어 편하게 만드는 것 정도였다. 쫓을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빠져나갈까?'


바짝 경계하는 채로 주변을 둘러보는 제 부하들을 바라본 크제론의 안색이 굳었다.

아니, 지금 후퇴하는 건 안될 일이었다. 반신이 바라는 건 명확했으니, 후퇴하려고 한다면 더 매섭게 공격해올 것이었다.

너무 깊게 들어와 수도원 뒤편의 안뜰까지 도달한 그들이었다. 만약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무수한 함정과 매복을 이겨내야  것이었다.


무엇보다, 크제론의 자존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씨발."


결국 선택지는 나아가는 것 뿐이었다. 나아가고 나아가서, 저 반신과 마법사를 잡아죽이기 전까지는 무르지 못한다. 완전히 치킨 게임이었다.

크제론은 뒤늦게라도 남아있는 부하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들어올 때만 하더라도 20명을 넘겼던 분대가 지금은 10명이었다. 크제론 본인을 포함해서 10명.

처음 마법사를 쫓으라고 보냈던 분대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전멸했을 것이고, 전멸하지 않았더라도 이쪽과 사정은 비슷할 것이었다.


'차라리 합류를 해?'


그런 생각이 크제론의 뇌를 스쳐지나갔다. 확실히 피해는 극심하다. 구성을 억지로 쪼개놓은 것이라 마법과 강대한 물리력에 전부 대응하는 것도 무리이다시피 했다.


무엇보다 다른 분대 역시 피해는 심각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합류해서 방어를 굳혀가며 반신과 마법사를 몰아넣는  더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다.

'좋아, 그리 하자.'


크제론이 생각을 굳히고 명령을 하려는 순간, 안뜰의 모퉁이를 돌며 무언가 불쑥 튀어나왔다.


전신에 둘러진 갑주는 가지각색이고, 들고 있는 무기 역시 그러했지만 크제론은 그들이  동료들이자 찢어졌던 나머지 한 분대였음을 깨달았다.


그래, 이러면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가 반가움에 손을 들어올리려는 순간.

푸화아아악!

화염이 날아왔다. 그 화염은 위력 자체는 별 볼 일 없었다.


마치  분대를전멸시키는 게 목적이 아닌 것처럼.

크제론의 망막을 가득 메우며 허공을 수놓은 화염은, 이글거리는 표면을 지면에 격돌시키자마자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끄아아악!"


"마법사, 마법사가 있다! 공격해 씨발!"

불덩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자리에 연막을 피워냈다. 피워진 연막은 시야를 가리고, 그들의 판단을 흐려놓았다. 언뜻 보였던 인영이 다수였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지만, 수도원에 들어선  이어진 공격들에 정신이 피폐해진지라 여유가 없었다.


즉각적으로 내전은 이뤄졌다. 크제론만이 상황을 파악한 후였지만, 그의 명령이 들리기엔 격철음이 너무도 시끄러웠다.

"죽여! 죽여어어어!"


"쓰레기 새끼들아!"

도끼를 든 전사의 무기가 내리찍어지고, 나무 방패가 쪼개져 팔이 떨어진다. 하지만 지지 않겠다는  용병이 든 칼날이 전사의 목덜미를 파고든다. 뽑아지자 피가 후두둑 튀어 수도원의 깨끗한 석벽에 흩뿌려진다.

날아드는 화살들에는 명확한 죽음이 맺혀 있었고, 방패를 잃어버린 용병은 그 무수한 죽음을 빗겨낼 자신이 없었다. 급소를 피하기 위해 검을 들어올리는 순간 그는 눈과 목, 심장과 다리에 화살이 꽂혀 쓰러졌다.

공포와 혼란이 평화로운 안뜰을 휘감고 있었다.

크제론은 제게 달려드는 용병의 무기를 쥔 손을 낚아채 넘어뜨리고는,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으아아! 죽이지 마, 죽이지 마아아!"


"진정해 씨발놈아! 나다, 나라고!"

"어, 아, 대, 대장."

"저 씨발놈들 진정시켜, 그 새끼들 계략이니까!"


 용병은  말에 어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부리나케 몸을 일으켜 소리쳤다.


그 용병의 분투와 크제론의 필사적인 제압 끝에, 결국 내전은 끝마쳐졌다. 죽어나간 다수의 용병과 소모된 병장기들, 전원 부상자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였다.

그렇게 남은 인원은 6명이었다. 크제론 본인을 포함한 6명.


합쳐서 20명이 넘었을 분대는 고작 6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전황에 크제론은 이를 바득 갈았다.

분명히 이걸 노리고 한 짓거리였다. 내부분열, 내지는 혼동해서 공격하는 걸 유도하여 수를 더욱이 줄이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몹시 잘 먹혀들었다. 크제론은  손만이 남았음에, 병력은 5명만 남았음에 절망하면서도 눈을 돌렸다.


"대장, 역시… 역시 그 수녀년을 데리고 오는 게…."


"…."


제안한 용병은 제 대장의 성격을  알았다. 그 대장이 최근 심상치 않은 힘을 손에 넣었다는 것도.

안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크제론이다. 이 제안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크제론이 손을 들어올리자 용병은 어깨를 움츠렸다.

나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좋은 생각이다. 씨발, 이대로는 개죽음이야."

그 미친 수녀는 비록 단단히 미친 년이긴 하지만, 실력은 인정할만 했다. 오는 길에 단신으로 마을 몇 개를 깔끔히 쓸어버리고, 강도 귀족을 그냥 죽여버린 것만 하더라도   있었다.


준신 하나로는 부족하지만, 둘이라면 어떻게든  것이다. 크제론은 결국 자존심을 내려놓고 제안에 승낙했다.

"그럼 빠르게 나간다! 인원이 적으니 빠릿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전부 당한다. 다들 장비 잘 확인하고, 뒤쳐지지 말고 빠르게 따라와라. 빠져나간다!"

"씨발, 드디어…."

몇 용병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까이 다가오고, 크제론이 몸을 돌려 안뜰의 경계를 밟는 순간이었다.

콰르릉!

갑작스럽게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리는 여태 들어본 기습의 전조와는 사뭇 달랐다. 오히려 말하자면, 너무 뜬금 없는 소리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크제론과  명의 부하들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와중에, 나머지 3명의 병사들이 얼어붙었다.


"오, 온다. 그 괴물이 와! 씨발, 씨발…!"

"우린 다 죽을 거야!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공황장애에 빠져 횡설수설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크제론은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캐묻든 무릎 꿇은 용병의 어깨를 쥐었다.


"뭔데,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길래 그래? 어?!"


안 그래도 제 동료를 쏘아죽였다는 사실에 심란하던 그 용병은 천둥소리로 인해 완전히 마음을 놓아버린 듯 싶었다.


고작 천둥소리인데. 크제론이눈 앞의 용병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단순히 큰 소음을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덜덜 떨고 있던 용병이 씹어뱉었다.


"그, 그 괴물이…."


그 설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설명이  나오기도 전에.

쩌어어어어엉!!!

죽음이 나타났으니까.


검은 연기를 전신에 두른 채로 가속하는  형체는 망토를 흩날리고 있었다. 다가서는 속도에 비례하는지 검은 연기는 일종의 검은 열선처럼 보일 정도였다.


막으라던가, 피하라던가. 그렇게 구강 조직을 움직여 지시를 뱉어내는 것조차 방해였다. 크제론은 자신이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방어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도끼를 뒤집어 날아드는 궤적에 겹치려고 하자, 주현성이 가속했다.


쿠오오오오!


휘말려 찢어지는 바람 소리와 함께 휘둘러지는 거검에는, 거인의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가속과 거력, 전신의 체중을 이용한 상당히 정교한 공격이었다.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크제론은 겨우 도끼를 끌어내려 가드해냈다.


콰직

쩌어어어어억!!!!


살아있던 용병 5명의 몸뚱이가 일격에 토막나 위아래로 나누어진 쏘아진다.


거력을 이겨내지 못한 시체들이 벽에 부딪혀 철퍽하는 소리를 자아내는 동안, 신성을 담은 도끼가 부러진 탓에 크제론은 제 몸뚱이가 날아가는 것을 제어할 수도 없었다.

투우우웅!

콰르르


"크윽…!"

그렇게 흉하게 굴러다니던 크제론이 멈춰섰을 때, 그는 주변의 모습이 달라졌음을 알아차렸다.


한참을 쿨럭거리며 겨우 숨을 골라낸  준신은 고개를 들어올리며 읊조렸다.

"…여긴, 뭐야."


얼핏 보기에는 회랑 같았다. 기둥이 몇 개 서있으나 결코 화려하지 않고, 테피스트리로 들어오는 빛은 하나도 없이 횃불들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언뜻 삭막해보이는 광경에 당황스러울 법도 하지만, 크제론은 그렇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며  입가를 남은 팔로 쓸고,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주현성은 없었다. 그 반신이 없다는 건 그에게 여러가지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장소에 밀어넣은 게 다분히 의도적일지 모른다는 그런 종류의 사실.


'하지만 어째서?'

그 큼직한 무기를 휘두르려면 분명 큰 공간이 필요하긴 할테지만, 구태여 그 장소가 아닌 여기까지 밀어넣을 이유는 없었다.


승산으로만 본다면 주현성이 가진 승산이 크제론의 것보다 더 거대했으니.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얼굴을 찡그리기도 잠시, 무언가 피어올랐다.


푸화아아악!


"…이런."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키가 그리 크지 않은 소녀와 그 소녀의 머리 근처에서 떠다니는 불꽃이었다.

소녀의 얼굴은 예쁜 편이었으나, 냉막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그런지 그다지 표가 나지 않았다.


전신에 둘러진 갑주와 독특한 천옷, 머리에 쓴 서클렛. 확실히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팔에 메어진 방패와 허리춤을 장식하고 있는 펄션. 크제론은 검을 뽑아들었다.


"나 상대하겠다고 남은 거냐? 아니면 시간이라도 벌어서 날 기습할 생각인가?"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대화는 맞물리지 않았다. 소녀의 질문에, 그는 다시금 물었다. 여전히 대화는 맞물리지 않았다.

"그 새끼는 어디갔지? 순순히 말한다면 편히 죽여주겠다. 믿어도 좋아."

"…나쁜 사람이구나."


메이는 눈을 낮게 내리깐 채로, 불쾌하다는 듯 장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뽑아드는 손길에는 굳건한 살의가 깃들어 있었다. 뽑아진 장검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 요사스러운 빛 위로 화염이 떠돌았다.


"허, 어이없군."

 화염이 형상을 이룬다. 몇 개의 구체가 되어 제 몸을 허공으로 띄운다. 띄워지는 화염의 갯수는 평범하지 않았으나, 그가 경계할 정도의 양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팔을 잃어버렸기로서니, 고작 마법사가?

"탁 트인 곳이다. 네가 피하거나 숨으려고 해봤자 그럴 공간은 없단 거지. 그런데 준신을 상대로 수작이나 부릴 셈이냐? 포기해라. 그럼 편하게 죽여준다니까."


"나쁜 사람이라 다행이야."


여전히 대화는 맞물리지 않았으나, 그는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경계가 부쩍 오른다. 경계하며 검을 들어올리자, 소녀가 눈을 들어올렸다. 갈색 눈동자에 맺힌 살의가 섬뜩했다.


소녀의 냉막한 시선과 함께 화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5개이던 화염이 10개로, 10개이던 것이 20개로.

크제론의 병력이 줄어들 때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화염이 화염을 낳으며 그 몸집을, 숫자를 불렸다.


대책 없이늘어나는 화염의 갯수에 자신만만히 검을 겨누고 있던 크제론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마치 공작이 뻗친 꼬리깃처럼, 무수한 화염이 회랑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일렁이는 화염으로 인해 소녀의 모습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


이걸 위해서 넓은 공간으로 유도한 건가? 크제론은 이를 바득 갈며 장검을 고쳐쥐었다.


이미 평범한 수준의 마법 행사는 아니었지만, 그걸 신경 쓰기엔 오늘 본 것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화염들이 스멀대는 풍경 속에서 크제론은 숨을 들이켰다.

"죽여도 괜찮을  같아."

메이의 선언이 지나고, 화염들이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허공을 점하며 날아오는 화염의 갯수는, 눈을 아무리 돌리더라도 그의 지평을 아득히 메우고 있었다.


크제론은 마지막 승산을 붙들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으아아아아아!!!"

그의 위로 화염이 공간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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