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8화 〉소에르 수도원 (148/274)



〈 148화 〉소에르 수도원

다가섬에 따라, 수도원의 풍경은 급격히 삭막해졌다. 내가 지른 불 때문인지, 아니면 이 용병이고 나발이고 하는 새끼들이 깝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내가 수도원의 입구에 섰을 때에는, 괴물들이나 용병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디 괴물이고 용병이고 안으로 들어가서 메이를 집단 린치하고 있는 것만 아니면 좋을텐데.

안 좋은 생각을 겨우 떨쳐내며 다가서자, 탄내가 물씬 풍겼다.

왜 냄새가 나지? 쌓여있는 시체 중 내가 죽인 것들, 특히나 전기톱 방패로 썰어낸 것들이 고온으로 썰리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탄 냄새였다. 마치 산 채로 불태운 듯한 냄새.


괜히 시체들을 판금 장화 코로 슬쩍 찔러보니, 내가 죽인 시체가 아니라는 걸  수 있었다. 어디가 박살난 것도 아니고, 강한 힘에 쪼개진 것도 아니고, 고온의 신성톱에 썰려나간 것도 아닌 시체들.

불덩이 같은 것에 두들겨 맞고 산 채로 태워진 듯한 시체들이었다. 그 시체들이 이루는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자 시체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수도원의 부숴진 대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서자 훅 끼쳐오는  산 채로 타들어간 냄새였고, 눈에 보이는 건 소사체들이었다.


그 시체들 대다수는 용병이나 괴물인 것처럼 보였다.

"메이가 다 죽였나?"


무심결에 나온 혼잣말이지만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그정도로, 수도원에는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걱정되어서 뛰어왔는데, 뭐 이렇다할 짐작할 거리도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수도원 내부로 발을 옮기는 것 정도가 전부일까. 소사체가 널려있는 정원을 지나, 아치형 입구를 지나니 양쪽으로 쭉 뻗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복도 역시 시체가 드문드문 누워있었는데, 그게 내가 죽인 것들임을 감안했을 때 이 복도까지는  문제가 없는 듯 싶었다.

"…현성아?"


그렇게 좌측 복도를 따라 메이가 있는 회랑으로  다 죽어가던 준신을 때려박았던  근처까지 다가가니, 그 복도 중앙에 메이가 서있었다.


바로  밑에 괴물의 시체를 두고, 오른손에 적조를 든 채로.

그 복도에는 괴물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 불타거나 베여지거나, 날아가 벽에 부딪힌  보였다.


"이거, 네가 다 잡은 거냐?"

무심결에 메이에게 다가가며 질문을 던지니, 메이가 흘긋 괴물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메이는 부모님의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하다가 들킨 어린아이 같은 반응으로 적조랑 방패를 등 뒤에 숨기고는 배시시 웃었다.

"응, 현성이가 뭐랑 싸우고 있는 것 같길래. 내가 했어."


"…잘, 잘했네. 안 힘들었고?"

"응? 전혀!"

그리고 해맑게 웃는데, 웃는 얼굴에는 피가 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튄 피가 메이의 것이 아님은   있었다.

뭐지, 얘 원래 이렇게 셌나? 살짝 의구심 섞인 눈으로 바라보니, 메이는 감추었던 손을 꺼내 병장기를 허리춤으로 되돌렸다.

"아,  준신 새끼는 어떻게 됐어?"

이름은  모르겠는데 팔이 날아가고 나한테 쳐맞아 날아간 그 새끼.


그 새끼는  보기에도 신성이 있던  떠올리면 준신인데다 전투 경험도 꽤 있어보였다.

상성과 환경상 메이가 패배할리는 없다고 생각해서 회랑으로 밀어넣은 거였는데, 예상대로 잘 풀린  같았다.

하지만 메이 성격상 아직 살려뒀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준신이 얼마나 빠르게 재생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재생 관련 권능이라고 갖고 있으면 지금 쯤 걸어다닐테니까.


하지만 되려 메이는 내 질문에 곤란하다는 낯으로 웃었다.

마치 잘못한 일을 숨기려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태도로 웃는데, 나는 그 미소에서 묘한 섬뜩함을 느낄  있었다.

"아, 혹시 살려뒀어야 했어?"


뭐야 얘.

살짝 당황스러울 찰나, 메이가 걱정스러운지 나를 흘긋흘긋 살피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물론 죽여야 하는 거긴 한데… 너무 뜻밖이라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 죽이는  맞긴 한데. 괜찮아? 너 사람 죽여도… 괜찮은 거야?"

메이는  말에 한층 더 우물쭈물했다.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는 건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질문이 늦은  맞았다. 이 말을 꺼내려거든 수도원 방어전을 시작하기 전에 했어야 했다.

상황이 바쁘게 흘러가 물어볼 틈이 없었지만, 진즉 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며 다가섰다.


메이는 다가오는 나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게,  사람 되게 나쁜 사람이잖아? 우리가 없었으면 수도원  불태우고 죽였을테고. 괴물도 데리고 왔고. 우리도 죽이려고 했고… 너무 나쁜 사람이라,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죽이는 게 더 나을 거 같았어."

그래, 꼬와서 죽인 거보단 한참 낫네. 메이의 판단은 합리적이었다.


살려뒀을 때 후환이 있고, 죽이는 게 이득이라면 죽이는 게 맞았다.

게다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었고. 실제로도 죽일 예정이긴 했고. 내 손을 거치는 게 아니었을 뿐이지.

그런데 메이 순진한 성격으로도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해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꽤 적잖게 당황스러웠다.

화염을 던져서 용병들을 죽인 것도, 내가 지시한 게 아니라 본인이 선택했던 것임을 감안하면.

그 변화는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메이가 조금 멀게 느껴질 정도로. 칭찬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막상 칭찬할만한 말이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잘했어. 수고했고. 근데…."

괜찮은 건가? 나만 하더라도 인간을 죽이긴 했지만, 나는 기이하게도 그에 대한 저항감이나 수반되어야 할 감정적인 영향이 없다시피 했다.


그 까닭을   없으니 그냥 괜찮구나 하고 넘겼긴 했지만, 이게 평범하진 않을 것이었다.

메이도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이라면 그렇지 않을 터였고. 이게 플레이어의 특전이라면 모를까.

확인을 위해 손을 뻗어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메이가 내 손에  손을 겹쳐 잡고는 배시시 웃었다. 잡은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는데서 오는 잔잔한 감정이  떨리는 손으로 느껴졌다.

그럼 그렇지. 그나마 좀 안심이 됐다. 메이가 갑자기 확 변한  아니라서.


단지 나를 위해 무리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알아서.


체온이 미미하게 느껴지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을 붙였다.

"괜찮겠어?"

"응? 뭐가?"

애써 웃는 메이의 뺨으로 손을 끌어내려 주무르니, 메이는 실실 웃으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말랑말랑한 뺨에 손을 얹고 쓸어주니 메이는 두 눈을 가볍게 감고 내 손에 제 뺨을 기대왔다.

"나랑 지내면 앞으로도 사람 죽여야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괜찮아야지."

웃는 낯에서 섞인 근심이 보였다. 앞으로도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점에서 나오는 걱정 같진 않았다.


오히려 말하노라면 나한테 버려질까 걱정하는데서 나오는 걱정처럼 보였다.


 새끼, 정신 건강 안 좋네. 왠지 걱정되어 그 뺨을 주무르다 고개를 끌어내려 이마에 입맞췄다.


메이는 그 소소한 스킨쉽에도 뛸듯이 기뻐했다.


"힘들면 말해. 고대의 도시나 발데가리아에서 쉴 수 있게 해줄게."


"괜찮대두. 걱정해주는 건 기쁘지만!"


메이는 애써 웃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전부 자의적인 판단이었다면 메이의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플레이어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하지만 메이의 정신 건강이 마냥 건강해보이진 않았으니,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대인전은 내 선에서 끝내는 편으로 이어나가는 게 좋아보였다.

메이는 그런 내 속도 모르고 배시시 웃었다. 웃고 있는 메이의 뺨에 손을 걸친 채, 수도원의 풍경을 돌아보았다.

파괴된 기둥이나 타오른 시체들, 널려있는 박살난 가구들. 정리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한 풍경.

전쟁은 치룰 때보단 끝난 후가 더 문제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도 그 얘기에 공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진짜 업무의 시작이었다.


"이제 어쩐다?"

메이는  물음에 대답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눈을 접어 웃었다.




*

"…정말, 전부 해치우신 겁니까?"


수도원을 두 번 정도 돌아 안전을 확보하고, 수도원의 지하실을 열어젖혀 안에 들어있던 사제들을 밖으로 꺼냈을  가장 먼저 들은 말은 그거였다.

내게 그렇게 물은 수도원장은 미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이어나갔다.


"소리를, 들었습니다. 굉음도 울리고, 뭔가 울부짖는 소리도 들리더군요. 그리고…."

울부짖는 소리는 얼추 화신 강림을 말하는  같았다.


 산양이 워낙 시끄러워야지.


그것만으로 내가 전부 해치운 걸 짐작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솔직히  놀라서 수도원장을 빤히 바라봤다.


계속하라며 손을 내저었음에도, 수도원장은 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말은 아직 밖에 적이 남아있느냐, 부터 시작해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는 거였다.

"전부 해치운 겁니까?"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많이 침착하시군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수도원장의 표정은 묘했다. 마치 나라는 인물에 대한 확신을 가진  같은 단단한 표정이었다.

한술 더 떠 그런 표정을 지은 채 내게 다가와 내 양손을 단단히 쥐고 흔들었다.


흔들리는 손에는 단단한 악력이 있었다. 단련된 이의 그것이 아닌, 은인을 반기는 이의 단단한 신뢰가.

뭐지 씨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희의 구세주입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진…."

아닌가? 맞나? 새삼 내가 없었으면 얘네는 전부 뒈졌을 거라는 걸 떠올리니 납득이 가기도 했다. 그래도 좀 과한 것 같긴 한데.


"왜 갑자기 이러는지,납득이 안된다는 표정이시군요."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솔직히… 좀 갑작스럽습니다."


차라리 이게 호감도가 허벌인 게임이라면 수도원장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있을테지만, 이 세상은 이미 게임이라기엔 과하게 현실성이 섞여 있었다.


 편 게임의 요소가 일부 섞여있다는 점이  판단을 방해했다.

이것도  중 하나였다. 내가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해낸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고민하는 표정을 바라보고 있던 수도원장이 손을 놓고서 인자한 표정으로 지하실에서 걸어나왔다.  옆으로 사제들이 우루루 나와 흩어졌다.


"자세한  조만간 아시게 되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뭐라는 거야 씨발. 여전히 그다지 답은 되진 않았지만, 수도원장은 이  말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뭐지?"

저정도로 태도가 변할 무언가를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말하자면  경계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인간이 제 몸뚱이와 병장기만 가지고 군대를 토벌한다는 건 일반적이진 않았다.

내가 해낸 일은 힘의 균형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완전히분쇄해버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경계를 받으며 '히익 이 괴물! 우리 수도원에서 나가!' 하고 내쫓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힘이 무슨 신성한 뭐시기인 것처럼 대하고 있었다. 신성 맞긴 하지만.

그렇게 어이가 없어하고 있는 내게 겨울의 신부가 다가왔다. 그녀는 베일을 얼굴에 드리운 채로 속삭이듯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당신. 피곤하진 않으신가요?"

"아뇨, 그, 별로 피곤하진 않은데…."

"다행이네요."


내 말에 겨울의 신부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노래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잔잔한 웃음이었다.


그래, 겨울의 신부라면 뭔가 알지 않을까?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저 사람들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아세요? 갑자기 저한테 심하게 싹싹한데."

"당신의 위업과 명성을 제대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당신께서는 칭송받아 마땅한 분이시니까요."


"아뇨, 그런  말고… 그, 뭔가, 뭔가 태도가 다른데…."

내 말에 겨울의 신부는 고요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기울어진 머리는 한동안 기울어진 채였다.


결국 그녀는 한참간 고개를 기울인 채 있다가 조곤조곤 내뱉었다.


"저분들께서 계시가 내려왔다며 교단에 연락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것 외에는 잘 모르겠네요. 뭔가 더 생각해볼까요?"


겨울의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쥐었는데,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도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계시는 또 뭐야, 씨발.

당연하게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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