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1화 〉성유물 (151/274)



〈 151화 〉성유물
"…애미 씨발."


덜컹거리는 짐칸에서 몸을 끌어내리니, 메이가 그런 내 뒤를 따라나오며 입을 틀어막았다.

"…으윽, 메슥거려… 싫어…."

동감이었다. 나는 내리자마자 그 큼직한 가오리를 노려보았다.


네 개의 날개는 더 큰 속도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은 되는가 싶었지만, 승객의 승차감에는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 싶었다. 마찬가지로 짐칸도 거기에 그다지 도움을 주진 못했다.


이 거대 가오리 드랍쉽의 승차감은, 내가 지금껏 타본  중 최악의 승차감으로는 단독으로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수준의 무언가였다.

덜컹거리는 내부와 축축하고 습기 찬 실내의 공기.  뿐만이 아니라 맥동에 따라 실내가 덜컹거리는데 그 덜컹거림에 어떤 대비조차 되어있지 않은 좌석까지.

그야말로 최악의 비행기를 가져다놓고 울렁거림과 어지러움을 10배 쯤으로 쭉 당겨놓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올라오는 신물을 겨우 억누르니, 겨울의 신부가 멀쩡한 낯으로 걸어내려와 내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많이 힘드신가요?"

"…겨울님은 저게 괜찮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앞머리를 쓸어주었다.  봐도 괜찮아보이긴 했지만.

메슥거리는 속을 부여잡으며 뒤를 흘긋 보니, 교단 쪽 새끼들은 멀쩡한지 별 탈 없이 거대 가오리의 짐칸에서 내리고 있었다.

탑승구이자 짐칸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그 거대 가오리의 아래에 매달려 있었는데, 약간 닳아있는 모양새에서  새끼들이 이걸 얼마나 자주 이용하는지 짐작할  있었다.


씨발, 심지어 착륙할 때 덜컹대기까지 하더만.

겨우 숨을 고르고 있자니 성녀를 비롯한 교단의 중책들로 보이는 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나머지 인물들이 대성당으로 향했다. 회수한 성유물도 함께였다.

그들이 오르는 거대한 순백의 계단을 따라 시야를 들어올리니 대성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외관, 전체적으로 순백교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백색의 구조물로 지어진 휘황찬란한 건축물.


언뜻 보기에도 한 두 푼 들어가고 하루 이틀 된 것 같지는 않은 웅장한 외관에 아가리를닥치고 있자, 태양을 빗겨맞은 높이 솟은 첨탑이 내게 빛을 뿌렸다.


"씨발."


눈뽕 개오지네.  앞을 손으로 가리니, 성녀가 웃는 낯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뭔데, 왜 꼬라보는데.

"현성아…  쉬고 싶어…."

성녀의 웃는 눈을 노려보고 있을 때, 메이가 칭얼대며  손을 쥐었다.


확실히, 메이의 안색은 안 좋아보였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한동안 여기서 지내실테니 충분히 쉬시고 나면 안내도 해드리지요."



그녀가 말하기 무섭게 몇명의 사제가 걸어와 메이를 부축해 안내하기 시작했다.


부축하는 여사제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속이 메슥거린다며 울먹거리는 메이를 이끌어 사라졌고, 겨울의 신부는 내게 고개를 푹 숙인 후에 메이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의인께서는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씨발  쉬나 했더니. 성녀에게 오만상을 찌푸리니 그녀는 웃는 얼굴에 곤란함을 담아 멋쩍게 웃었다.

*

흩날리는 선명한 적발을 따라 들어선 대성당은 확실히 겉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온갖 상징적인 구조 외에도 실용적인 목적 역시 겸하는지, 지나치는 길에  도서관은 높이만 하더라도 사다리가 필요할 정도로 거대했다.


 안이 서적으로 가득한 모습은 그다지 책과 친하지 않은 나라고 하더라도 놀랄만한 풍경이었다.


걷다보니 속도  괜찮아지는 것 같아 기분도 나아지던 차에, 성녀는 나를 어떤 구조물 앞으로 안내했다.

그건 기둥과 끌, 망치였다.


정확히는 기둥 앞에  화려한 끌과 망치가 놓여져 있었다.


이게 뭔데 씨발.


 수 없어 성녀를 돌아보니, 성녀는 웃는 낯으로, 동작을 곁들여 설명했다.

"그 끌과 망치로, 눈 앞의 기둥을 두들겨 조각을 떼어내시면 됩니다. 떼어내신 조각은 망치로 부수시고요."

뭔데 씨발.

 저의를 알 수 없는 행동을 강요하는 모습에 내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자 성녀는 곤란한 얼굴로 웃으면서도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내 행동을 기다렸다. 내가 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씨발, 여기까지 와서 안 한다고 하기도 뭐하니까.


도와준다는 새끼 세워두는 것도 좀 그렇고, 못할 것도 없어서 끌과 망치를 집어들었다.


깡!


끌을 기둥에 얹고, 거인의 힘을 끈 후에 망치로 두들기자 무슨 점토 잘라내는 것처럼 가볍게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떨어진 조각은 끌과 망치를 올려두었던 접시 위로 툭 떨어졌다.

"…이제 부수시고, 가루를 기둥에 도로 뿌리시면 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보였다.

가볍게 쥔 망치를 휘둘러 조각에 툭, 하고 부딪히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조각은 산산조각으로 변했다. 아니, 산산조각을 넘어 가루로 변했다.


…진짜 가루네?

거인의 힘을 킨 것도 아니고, 그냥 가볍게  두드린 것 뿐인데 가루로 변해버린 모습에  말을 잃어버렸다.


이거 뭔데?

망치와 끌을 들고 성녀를 돌아보니, 그녀는 길게 적발을 늘어뜨린채 손으로 가루를 가리켰다.

"이제 뿌리시면 됩니다."


거참 친절하네. 차마 싫다고 하기에도 뭣해서, 가루를 한 웅큼 손에 쥐어들고는 기둥을 향해 뿌렸다.

촤악!

으지직

"…뭔 씨발."


존나 기묘한 의식이라서 뭔가 종교적 의미가 있기만 한 무언가인  알았는데, 그런생각은 내가 뿌린 가루가 빠르게 원래 모습을 되찾아 가는 걸 보면서 깔끔하게 사라졌다.

마치 언제 떼어냈냐는  완벽하게 이뤄지는 수복은, 내게 무언가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창조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모조신들의 초재생력이라던가, 아니면 그 초재생력에서 따온 재생 물약이라던가.


놀라움을 읽었는지 성녀가 생긋 웃었다.


"이것 역시 성유물입니다. 저희에게는 아주 종교적 의미가 깊은 성유물이지요."


종교적 의미가 깊다. 실용성은 없다는 뜻.

확실히, 실용성은 존나 떨어져보였다.


내 생각은 어찌되든 상관 없는지, 성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성유물들 대부분은 이렇게 종교적 의미만을 갖고 있는 물건인 경우가 많죠. 신비하고 분명한 이적이긴 하나, 어떤 쓸모를 갖고 있진 않은 물건들입니다. 주의 신성인 창조와 수복에 특화된, 극단적으로 종교적 가치만을 갖는 물건들입니다."

그렇군. 내가 수긍하며 끌과 망치를 내려놓자, 성녀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기둥을 손으로 쓸었다.

"이건 상징적인 입교식입니다. 필요한 절차였죠. 이제부터는 저희는 거리낄 것 없이 해방자님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대답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이게 필요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그냥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실상 내가 주는 도움이 더 많을텐데.

그런  불만스러운 표정을  성녀가 곤란한 낯으로 덧붙였다.


"오는 길에 말씀드렸듯, 계시는 모든 사제들에게 공평하게 보여진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일부에게만 보여졌죠. 그런 상황에서, 의인께서 해방자이며 주의 선택을 받았노라고 말한들 곧이곧대로 믿는 이들이 아주 많진 않을 것입니다. 개중에서는 교리를 들먹이는 이들도 있겠죠. 이 의식은… 당위성을 위해서였습니다. 있으니만 못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죠."

오, 그렇게 들으니 뭔가 그럴 듯 했다. 그다지 고생이랄 것도 없고, 정치는 좆까는 편이었으니 거리낄 것도 없었고.

내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저희 순백교단이 섬기는 신인 주와 그 주의 성유물들은 창조와 수복엔 특화되어 있지만  이상의 목적을 갖진 않답니다. 그다지 파괴적인 목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편이지요. 그래서 상징적인 필요가 있는 저희 교단을 제외하면, 기피되는 성유물입니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는 악신의 성유물들이 선호되는 편이죠."


그녀의 말을 듣고 떠오른 물건들이 있었다. 명확히 악신의 성유물인 폭군의 검과 도살자의 도끼인 낙인.

 두 물건은 확실히 파괴적인 목적으로는 이깟 기둥보다는 한참 나았다.

확실히 그렇노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물건이 하나 더 있음을알아차렸다.


내가 몸에 두르고 있는 사슬갑주. 이건 헤로디아의 말이 옳다면 창조신의 물건이었다.


이것도 창조신의 물건이랬는데? 창조와 수복과는좆도 상관 없고.

성녀는 그런  표정을 어떻게  건지, 눈을 감으며 말했다.


"…라고, 세간에는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 권능을 머금은 성유물 중에서도 일부, 아주 특출난 것들이 있지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서 기둥을 쓸어내리던 손을 내렸다.

"그 중 대부분은 세계로 흩어져 찾을 수 없었으나, 저희는 그런 성유물 중 단 두 개의 행방을 찾아낼 있었습니다. 그  성유물 모두, 아주 강대한 주의 신성을 담고 있는 성유물이지요.  목적 자체로는 평범할지 모르나, 아주 강력한 성유물들입니다."


그렇게 말한 성녀가 기둥에서 멀어지더니, 손가락을 위로 가리켰다.


"하나는 천년도 전에 소실된 어느 유적에 있습니다. 그 유적으로 가는 길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실상 소실되었습니다. 소재는 알고, 단서도 있지만 찾아올수는 없죠."


뭐야 씨발.


김이 새서 삐딱하게 서니, 그녀는 웃으며 손가락을 끌어내려 아래를 가리켰다.


"나머지 하나는 대성당의 지하 석실에 봉인되어 있습니다. 굳건히 보호되어 성녀인 제가 아니면 접근조차 할 수 없죠."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걍 신변잡기 하자는 건 아닐테고. 내가 삐딱한 자세로 툭 내뱉으니 성녀는 끌어내렸던 손을 도로 다소곳이 모았다.


"얼마 전부터, 누군가 석실에 접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흔적을 지우고 완벽히 녹아든  했지만, 성녀인 제 허가가 없는 탓에 실패하고 있죠. 저희도 그게 누군지는 알지 못합니다. 저희 중 최고의 수색단원조차 흔적을 놓쳤으니 얼마나 용의주도한 인물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죠."

그렇게 말한 그녀가 내게 다가오자, 뭔자 알 수 없는 향유 같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매복을 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경비로그치는 날이면 항상 틈을 파고들어 시도합니다. 참으로 곤혹이죠. 그래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녀의 손가락이 뻗어져 내 흉갑에 얹어졌다. 내가 고개를 기울이자, 그녀는 생긋 웃고서 말을 이어갔다.

"저희 중에 스파이가 있다고 말이죠. 수도원장의 보고에 따르자면 악신들은 저희의 성유물로 준신을 만들고 있다던데, 맞나요?"

아, 내가 수도원장한테 했던 말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해주었다.


성녀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제 붉은 눈동자에 담고서야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정황상 저희가 가진 것  가장 강력한 성유물로 준신 그 이상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생각하는데, 의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리가 있네요. 저라도 그러겠는데요. 근데…."

"예."

"왜 하필 저한테 그걸, 지금 얘기해주는 겁니까?"

분명 동료가 되었으니 나한테 말해주지 않을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한테 구태여 말할 이유도 없었다.


내 특기나 장기는 전투지, 누구 꽁무니를 미행해서 범인을 찾아내는 명탐정 짓거리가 아니었으니.


그래서 이 대화가 유의미한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내저을 수 밖에 없었다.


그정도로, 성녀가 지금 내게 이걸 말해주는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성녀는  뜻을 읽었는지 흉갑에서 손을 떼내고는 거리를 벌렸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성유물을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만요."

어쩐지 석연찮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어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니, 성녀는 한층  물러나  대답을 기다렸다.


확실히, 만약 저게 빼앗긴다면 존나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준신들이 둘이 동시에덤비는 것만 하더라도  애를 먹었는데 나와 가진 능력의 수준이 똑같은 반신이 나온다면 존나 곤란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심지어 그게 양산까지 된다면야.

저지하는 편이 나한테도 좋은 이야기인 것처럼 들렸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고개 끄덕이고, 성유물에 손을 대려는 새끼가 있으면 골통 부숴주기.


성녀는 내 주억거림을 보고서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행입니다. 오늘의 용건은 입교식과 이… 부탁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긴 비행으로 피곤하실텐데 오래 잡아두진 않았나 걱정이 드는군요. 방을 안내해드릴테니, 오늘은 이만 쉬시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예, 문제 없습니다."


빨리 침대에 눕고 싶기도 하고, 그다지 대성당에 궁금한 것도 없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제를 시켜 방으로 안내해드릴테니, 부디 편히 쉬시길. 그리고…."


그녀가 보낸 신호를 받고 다가오는 사제에게 눈을 돌리려던 나는, 성녀가 땋아내린 적발을 등뒤로 넘기는 것을 보고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성녀는 그런  표정을 보고서 눈웃음을 지었다.


"내일 봅시다. 해방자님."


그녀는푸근한 표정으로, 내가 멀어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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