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성유물
"맛있구먼."
"그렇죠."
"진짜 며느리 삼고 싶을 정도여."
"일단 아들부터 있고 말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그렇지."
터오는 아침이 간질간질한 촉감과 함께 목덜미를 덥히는, 창가로 비춰오는 태양빛이 싱그러운 시골에서의 아침. 나와 겨울의 신부, 노인장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 앞에 놓여져 있는 큼직한 대접에는 스튜가 한 가득 담겨있었는데, 그 맛은 누가 조리했는지를 감안하면 맛없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드실만 하신가요?"
"또 듣고 싶어요? 네, 엄청 맛있어요."
"다행이예요. 처음 보는 재료가 많아서 잘 될지 알 수 없었는데, 당신의 입맛에 맞다니 한시름 놓았네요."
수줍게 웃으며, 고아하게 스튜를 떠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노인장이 스튜를 쩝쩝대고 들이키더니 짙은 숨을 뱉어냈다.
"이거 내가 돈 받아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고마우시면 다른 새끼들이 와서 물어볼 때… 아시죠? 산왕국이니 뭐니 하는 놈들에 대해서만 알려주시고 저희에 대해서는 비밀입니다?"
"아, 그래야지."
노인장은 내 제안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튜를 나무 수저로 휘저었다.
불그스름한 빛을 띄는 스튜 국물 위로 양파나 당근 따위가 떠돌고, 노인장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건더기를 떠먹더니 뒤늦게 내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뭐 물어볼 거 있는감?"
"예."
"…평소라면 돈 받았겠는데, 예쁜 색시도 있고밥도 맛있으니 이번만 안 받는 거야. 해봐."
"감사합니다. 그럼…."
물어볼 주제는 정해져 있었다. 솔직히 내가 노인장의 정보에서 못 알아듣거나궁금해할 요소는 단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스튜를 휘적이다, 겨울의 신부가 국자로 고기를 떠주는 것을 감사히 받으며 물었다.
"산왕국, 뭐하는 놈들입니까?"
"…으잉? 그걸 묻는 겨?"
기초 상식 문제인지 노인장은 당황한 빛을 띄었다가 대답했다.
"나도 들려본지 한참이라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축 치고 살아가는 놈들이여. 주로 산 위에서 살고, 땅덩어리도 대부분 산이지. 그렇게 척박하진 않지만… 알잖나. 산이 농사하기에 좋진 않은 거."
그런가? 농사에 대해서는 좆도 모르는 나라서 얼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가축을 치는 건 좋은데, 그짝 산에는 괴물들이 많지. 허구한 날 가축들이 잡혀가거나 사람들이 죽어나가거나 하는 험한 땅이라서, 거기 사는 놈들은 성격이 좀 거칠고 싸움 좀 한다 싶은 놈들만 남아. 유목 생활을 하는 편인데, 그러느라 괴물들 상대하는데 이골이 나서 문화도 거친 편이여."
흐음, 그렇군.
대충 듣자면 유목 민족인데, 전투 유목 민족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노인장은 더 할 말이 남았는지 스튜를 떠먹더니 나무 수저로 나를 가리켰다.
"근데 그놈들이 섬기는 신이 특이혀. 보통 교단을 따라서 주를 섬기기 마련인데, 놈들은 악신을 섬기거든. 생활이 각박해서 그런 건지, 괴물이 많아서 돌아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륙의 대부분이 창조신을 섬기는 걸 생각하면, 악신을 섬기는 국가는 존속 자체가 힘들텐데.
그에 대해 질문을 하니 노인장은 시골에 사는 노인답지 않게 정확히 답해주었다.
"산이라 그렇지. 습격하기는 힘들고, 방어하기는 쉽잖여. 그래서 교단은 물론이고 제국이랑도 사이가 안 좋은 편이고."
"그럼 어떤 악신을 섬기는지는 아십니까? 뭐, 다 섬기는 건 아닐 거 같은데요."
설명이 끝났는지 여유롭게 스튜를 떠먹던 노인은 내 질문에 희게 드리운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제 턱을 쓸었다.
"글쎄다. 내가 썩 종교에 밝은 편이 아니라서, 그게 무슨 악신인지는 모르겠네. 나중에 한 번 만나면 물어보던가 혀."
그다지 도움이 되는 대답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반응이 저렇게 돌아올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종교에 해박한 게 아니면 상징을 보더라도 모를 법하고, 글을 읽을 수만 있더라도 상당히 고학력이라는 증거일테니. 선선히 납득하며 고개를 돌리니, 노인장의 오두막 안, 한 켠에 놓여진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잘 관리된 듯한 길쭉한 도끼였다.
그마저도 이 노인이 식견이 넓어서 이렇게 대답해줄 수 있었던 거라는 걸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소싯적엔 용병이나 모험가, 그런 거였던 모양이지.
"그러죠 뭐. 마침 곧 만나게 될텐데요."
"뭐여, 그놈들 쫓는 겨?"
"그렇죠. 아, 이거 비밀입니다."
"그래야지. 밥도 얻어먹었는데."
노인이 순순히 납득하길래, 나는 정말 그럴까 싶어 바라보다 그냥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어버린 나무 그릇에 얕게 스튜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뭐여, 일어나게?"
"그래야죠. 그 새끼들 쫓아가려면."
"그럼 그릇은 나 줘. 내가 치워줄텡게. 요리도 해주고, 돈도 줬으니 그정도야 내가 해줘야지."
노인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나와 겨울의 신부가 먹은 그릇을 받아들고는 테이블 한 켠에 쌓아두었다.
"이만 가봐. 조심히 쫓고. 놈들 장비가 여간 좋은 게 아니었으니께."
"그러죠. 노인장도 건강 조심하시고."
"그려."
그렇게 노인장의 오두막을 나선 우리는, 곧장 우리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에 인상을 찌푸리거나 머리 위로 베일을 둘렀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네요."
"네에, 그래도 저는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그건 그렇죠."
땡볕에 말려지는 기분을 느끼며 투구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망토를 두르고 마을을 가로질렀다.
가로지르는 길목에 보이는 사람들은 한창 일하느라 바쁜지 이런저런 도구를 가지고 나와 나무를 깎거나 물통을 가지고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일하는 와중에도 이방인, 딱 보기에도 이 마을에 소속되지 않을 것처럼 생긴 이방인이 지나가니 마을사람들은 나를 경계와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보내오긴 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오진 않았다.
별 다른 습격의 징조는 없었으며, 마력이나 신성이 준동하는 기척 역시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마을이었다.
나와 겨울의 신부는 그런 눈초리를 받으며 마을을 벗어났는데, 벗어난 얕은 흙길을 따라 양옆으로 풀이 자라나 있었다.
아니면 풀들 사이로 길을 냈던가.
마을 안에서부터 흘러나와 앞서가다가 왼쪽으로 꺾여 숲 안으로 사라지는 개울을 눈에 새기며 나아가자, 길게 뻗어진 지평선이 눈에 들어왔다.
지평선까지 야트막한 언덕만이 존재하는 가도는, 그야말로 따분할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정말 산왕국 쪽의 누군가가 여길 지나간 게 맞을까 싶을 정도의 평화로움. 나는 그 길을 눈에 새기다 겨울의 신부의 손을 붙잡고는 먼저 길을 나섰다.
우리는 그렇게 따분한 가도를 걸으며 얘기를 나누고, 지도를 보거나, 물을 마시며 이따금씩 쉬는 등 여유롭고도 따분한 행군을 계속했다.
그 행군이 끊어진 건, 나와 겨울의 신부가 쓰잘데기 없는 풀의 사용법에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을 쯤이었다.
"아, 이게 그건가 본데요?"
"…어떻게 생겼나요?"
"으음… 뭐라고 해야하나. 기다란 기둥 같은데, 사각형 기둥이예요. 뭔가 이것저것 새겨져 있고 모양도 독특하고, 맨 위에는 뭔가 올려져 있네요. 아니면 조각된 건가? 근데…."
나는 눈 앞의 참상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가 겨울의 신부를 돌아봤다. 겨울의 신부는 고요히 내 손을 붙잡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좀 된 것 같아요. 냄새가 나기 시작하네요."
그녀의 말대로, 그 참상의중심에는 시체는 부패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 시체에는 칼집이나 피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전력을 다해서 벤 건지, 아니면 죽은 이후에 벤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은 그 칼집이 사인인 것 같진 않았다.
기둥에도 새겨진 몇 개의 칼집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부러진 화살로 유추할 수 있었고, 이어진 핏자국은 죽은 시체에 머리에 돋아난 화살로 짐작할 수 있었다.
"확인 사살이었군."
활을 일제히 쏘아 기습하고,쓰러진 놈을 칼로 확인 사살을 한 흔적인 듯 싶었다.
그것만 있었다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시체는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속옷 한 겹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벗겨진 시체는,옷을 칼로 억지로 벗겼는지 피부에 약간의 칼집을 갖고 있었다.
완전히 악의적인 능욕의 흔적.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는 게 명확히 드러나는 참상.
나는 꺼내진 창자를 밟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그 시체의 주변을 돌아봤다.
기습은 성공이었다. 핏자국은 시체에서 나온 것 외에도 꽤 있었다.
만약 성공적으로 기습에 성공했다면, 성공한 쪽이나 당한 쪽이나 경계도는 최대로 올라있을 게 뻔했다.
어쩌면 가는 길이나 유적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겠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네요. 저한테서 떨어지지 마세요."
겨울의 신부는 내 당부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까이 붙었다.
나는 그렇게 딱 붙은 겨울의 신부를 대동하고 순례길에서 짚어준 수수께끼를 따라 전진했다.
계절에서 나온 비유를 통해 광활히 펼쳐진 들판에서 나아가다 왼쪽으로 꺾었고, 그대로 나아가다 어떤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 숫자만큼 걸은 후에 오른쪽으로 꺾고.
교단에서 일러듣지 못했다면 내가 절대 풀 수 없었을 수수께끼의 궤적을 따라 걸음을 옮기니, 점점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다소 황량한 들판에 점점 돌조각이나 바위가 늘고, 정글처럼 거목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연스럽지 않은 경관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이미 성녀에게서 전해들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거목의 사이로 걸음을 옮기고, 마찬가지로 또 수수께끼에서 기인하는 방식대로 걷기를 몇 번. 절벽처럼 내 양측을 메우며 솟아오른 석벽들을 보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다.
원형으로 트여있는 중심과 네 방향으로 뻗어있는 석길.
자연적이진 않았지만, 여전히 당황할 정도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이정도 놀라움이라면 이미 다른 게임에서도 충분히 접했으니까.
실제로 보니 좀 놀랍긴 하지만.
나는 겨울의 신부의 손을 잡고서 중심부로 향했다.
"…여기가 거기인가요?"
도착한 중심부는 네 갈래 길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구조물이 없는 평범한 장소였다.
언뜻 보노라면 굳이 이렇게 만들 필요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구조.
하지만 여기서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를 감안하자면, 합리적인 구조였다.
그 어떤 힌트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나는 지도를 품에 밀어넣으며 그 수수께끼에 대해서 생각했다.
세상이 도는 방향으로 가라는 것.
일반적인 판타지 주민이라면 세상이 돈다는 사실조차도 모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이 도는 방향. 이 판타지가 특출나게 법칙이 꼬여있는 게아니라면, 이 행성은 태양의 앞에서 제 몸을 회전시키며 하루를 보낸다.
지구의 자전 방향과 같은 맥락이었다. 해가 뜨는 방향. 나는 흘긋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야 확보 효과가 걸려진 투구는 선글라스처럼 태양빛을 걸러내어 그 형상을 내 눈에 전해주었다.
노인장의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머리를 떠돌고 있던 태양은, 지금은 내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택해야하는방향은 반대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겨울의 신부의 손을 붙잡고는 동쪽으로 나아갔다. 동쪽의, 다른 세 방향과 완전히 똑같은 모양새의 길로.
길을 나아가자,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이 길이 여전했다.
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 모르게 하려는 건지, 길은 한참간이나 변화도 없이 길게 뻗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존나 자신이 있었다. 세상이 도는 방향이라면 고등 교육을 이수한 지구인이 틀릴리가 없으니까. 나는 당당히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과연, 내가 맞았는지 길의 모양새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스르륵 흩어져, 점점 다른 형상을 띄기 시작했다.
흩어진 형상은 단단한 형상으로 재조립 되었다.
높이 뻗은 아치형 통로에,길게 뻗어진 낡았지만 순백색을 뽐내는 외벽들.
외적의 침입은 커녕 그 어떤 접근도 허락하지 않을 법한 유적의 모습 한 켠으로, 일렁이는 형체들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지켜보신다!"
"우와아아아!!"
"죽여, 죽여! 마법사!"
그 형체들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명확히 말할 수 있는 건, 그 형체들은 서로 싸우며 거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겨울의 신부를 이끌어부숴져 쓰러져있는 나무를 엄폐물 삼아 그 뒤에 숨었다. 내가 숨은 나무 너머로, 몇명의 전사들이 마법사가 던진 화염구에불타죽는 소리가 들렸다.
"오, 씨발."
타는 냄새는 생각보다 훨씬 더 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