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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화 〉성유물 (155/274)



〈 155화 〉성유물

부러진 나무를 엄폐물로 삼아 머리만 슬쩍 빼내 살펴보니, 이들은 정확히  세력으로 나누어 싸우고 있었다.


날아드는 불덩이를 겨우 피해낸 삐까뻔쩍한 차림의 기사와 같은 놈이, 곧장 달려들어 마법사의 목구멍에 바람구멍을 만들어낸다.


목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진 마법사는 제 목덜미를 붙들고 겨우 제 혈액을 부여잡으려고 하지만, 기사가 그걸 내버려두지 않고 검을 내리찍으니 그제서야 잠잠해진다.


죽은 마법사의 차림은 꽤 괴상망측 했다.

기사 쪽의 마법사인 게 분명한 놈들은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이라고  수 있을 로브를 두르고 있어 눈에 띄지 않는데, 산왕국 측 마법사로 보이는 놈들은 괴물의 뼈나 동물의 뼈로 보이는 것들을 제 의복 위에 장식시키고 있었다.


딱 봐도 유목민족인 건 알겠는데, 그런 마법사 중에서는 직접 칼을 들고 덤비는 놈들도 있어 상당히 독특했다.

전열을 유지하는 기사들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자, 전형적인 마법사들이 화염을 쏘거나 전격을 쏘거나 얼음을 날리거나 하면서 산왕국의 전사들을 상대했다.


산왕국의 전사들 역시 독특했다.


도끼나 큼직한 칼은 물론이고, 뭔가 투창 같은 걸 빼내어던지거나 큼직한 다트 같은 걸 집어던지며 싸웠는데, 몸에 동물의 털가죽을 기반으로 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놈들이 많았다.


"어우, 치열하네."


그 전사들이 유적의 각지에서 맞서고 있는 동안, 마법사들이 서로 마법을 교환한다.


일견 화려한 외견이지만, 결과가 결코 화려하지만은 않으니 맞지 않으려 머리를 숙여 아예 시선에서 광경을 빼냈다.

지켜본 결과, 전황은 간단했다.

존나 개판.


마법사와 전사들도 어지럽게 섞여있고, 전투를 이어나간지  됐는지 부상을 입거나 다친 놈들이 지천에 깔려있다. 하지만 보살필 틈이 없는지 바닥에서 차갑게 식어 죽어가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어떤 반신이 자기들의 뒤를 따라오리라고 예상한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존나 좋은 징조였다.

이거, 잘만 한다면 양측한테 쌍으로 엿도 먹이고 유적에도 먼저 들어가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을 법한 미래가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내가 여기에 있다는  앵간하면 눈치채기 힘든 지금이라면 더더욱.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단 상황에 어울리는 요소를 짚어내 꾸려나갈 필요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니, 유적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글쎄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내가 말을 흐리니 겨울의 신부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연 풍화 때문인지 마법 때문인지, 풍경은 꽤나 삭막했다.


이런저런 구조물들이 부숴져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그런 흔적 위로는 마법이 빗겨 맞았는지 불이타오르고 있거나 시체가 놓여있거나 했다.

그런 삭막한 풍경 속에서 내 눈을 가장 잡아끄는 건 어떤 기둥이었다.

한때는 높이 솟아 지붕을 지지하고 있었을 기둥은, 부숴져 바닥에 누워져 있었다.


형상은 거의 온전해서, 다시 세우기만 한다면 다시 지붕을 지지할  있을 것 같았다.

다르게 사용하자면, 지붕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깔아뭉개는데 수도 있어보였다.


좋아, 범행 도구는 찾았고.


바로 기둥에서 눈을 떼어 다시 머리를 나무 너머로 내밀었다.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거나 엄페물 뒤에 숨어 마법 공격을 피하려고 애쓰고 있는놈들, 뭔가 딱 봐도 높으신 분처럼 생긴 새끼들이 눈에 띄었다.


세세한 건 직접 겪어봐야겠지만….


나는 겨울의 신부에게 손을 뻗어 뺨을 감싸쥐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오면 말을 할테니까, 그전까진 나오지 마시고요."


겨울의 신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제 뺨 위에 얹어진  손을 쓸었다. 건틀릿을 감싸는 부드러운 손길에 씩 웃고 나서야 나는 나무 밖으로 몸을 빼냈다.


그 이후에 한 행동은 간단했다. 마침 바로 인근, 벽에 몸을 붙이고 숨을 고르는 부상병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며 귀를 기울였다.


콰아아앙! 퍼어억!

마법과 지형지물이, 마법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려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으나, 거의 다 다가서니 그제서야 뭐라고 말하는지 엿들을  있었다.

"빌어먹을 제국놈들. 빌어먹을 멍청이들. 재앙의 어머니께서 지켜보고 계시거늘, 이따위로 밖에 못 싸우나? 빌어먹을 놈들…."

그 남자는 머리에 큼직한 괴물의 두개골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독특한 괴물의 두개골이었는데, 사슴과 파충류를 적당히 섞은 괴물의 유골을 잘 발라낸 것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보통보다 체격이 컸으나, 몸에 두르고 있는 장비나 몸뚱이에서는 신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그냥 인간. 끽해봤자 인간 기준의 장사.

어려울 것도 없는 상대였다.

슬그머니 다가서며  남자의 주변을 살피자, 부상병들이 앓느라 제 앞도 구분 못하고 있음을 알  있었다.

개중에서는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고.

이렇다면 더더욱 쉬웠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그 괴물의 두개골을 뒤집어 쓴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어, 어억!"


최대한 힘조절해서 팔을 뻗고, 뻗은 팔을 그 남자의 목덜미에 둘러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팔근육 아래에 제 목이 비집어진 남자는 당황한 듯 버둥대면서 몸을빼내려고 하거나 팔꿈치로 내 몸을 치면서 내게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큭… 컥…."

거인의 힘이 켜져있는 내 근력을 이기진 못했는지 얼마 안 있어 팔을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졌다.

나는 늘어진 남자를 등에 짊어지고, 나를 흐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상병을 지나쳐 겨울의 신부가 숨어있는 나무 둥치로 돌아왔다.

겨울의 신부는 귀를 틀어막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내가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귀에서 손을 치우고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찰랑이는 베일 아래로 입가 정도만 눈에 들어왔다.

"저 왔어요."


"다치신 곳은 없나요?"

"에이, 이정도면 다치기도 힘들죠."

사실이 그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겨울의 신부가 없을 경우엔, 그리고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화신 강림을 떨궈버리고 유적으로 들어가도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유적에 뭔 개지랄이 날지 알  없고, 얘네가 정확히 누구 때문에 온 누구인지 파악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죽이는 건 실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어쨌든 내 대답에 안심했는지 그녀는 다소곳이 앉았다.

"데려오신 분은 누구이신가요?"

"저한테 정보를 알려줄 높으신 놈이요."

그녀는 내 대답에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숙이고 귀에 손을 가져갔다.

처음에는 귀를 막는 건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귀를 기울이는지 손에 가져다댄 손날을 기울여가며 주변의 소리를 수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간 주변의 소리를 식별해내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는 손을 귀에서 떼내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저기에… 당신께서 필요로 하실 것 같은 분이 계세요."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들어올려 어딘가를 가리켰다. 내 손날이 향하는 방향에는 어떤 남자가 있었는데, 딱 보기에도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 평범한 병사나 기사처럼 보이진 않았다.

고대의 도시에서 한창 내 병력을키우고 있을 기사단장 같은 완숙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적어도 장비의 수준에 있어서는 그에 준하는 것처럼 보이는 애송이 새끼였다.


"감사합니다. 잡아올테니 고개 숙이고 계세요."

겨울의 신부가 다시 다소곳이 앉아 귀를 막는 것을 본 후에야, 나는 몸을 일으켜 그 기사를 향해 다가섰다.

과정은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다.

저쪽도 부상자가 꽤 나왔는지 경황이 없었고, 누가 후방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제 지휘관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나는 내 단단한 팔 아래에서 목이 졸려 기절한 남자를 끌고서 나무 둥치 뒤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오늘 사냥감은 신선해요."

그녀는 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익살에 입가를 가리며 웃음을 흘리고는 옆으로 비켜서 포로를 손보기 시작했다.

손본다고 말하니까 내장을 발라내는 것처럼 들리긴 하는데, 실제로는 그정도는 아니고 간단한 작업 정도를 하는 게 전부였다.

짐에 섞여있는 로프로 손발을 묶고, 나이프 같은 걸 갖고 있는지 살펴서 빼앗은 다음에 무릎 꿇려 앉혀서 심문  준비를 마쳤다.

순식간에 무릎 꿇려진 인질 후보 A와 B가 된 산왕국 병사와 기사를 앞에 두고,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힘을 조절했다.

이정도 힘이면 되겠지?

거인의 힘이 켜있긴 하지만, 최대한 약한 힘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빠악!


후두둑

"억! 그, 그어. 커어…억…."


어, 씨발 실수.


최대한 약한 힘으로 휘둘렀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위력이 높았는지 쳐맞은 산왕국 놈의가면이 박살나고, 입에서 강냉이  개가 쏟아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렇게 드러난 얼굴은 그냥 전형적인 중년의 전사였다.

"…어, 으, 아윽… 너흔, 누구냐…."

산왕국 놈은 상황을 파악하진 못했는지 몸을 꿈틀대면서 주변을 살피다가  주먹에 묻은 피와 부숴진 가면, 바닥에 흩어진 강냉이로 비롯된 자신의 어눌한 발음으로 유추해냈는지 얌전해졌다.


나는 산왕국 놈을 통해 얻어낸 교훈을 반면교사 삼아 상대적으로 약한 힘과 느린 속도로 기사의 뺨을 갈겼다.

"그윽…!"


그렇게 깨어난 두 남자는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을 띄다가 서로를 보고는 으르렁 거렸다.

와중에 내가 강냉이를 날려버렸음을 아는지 한쪽은 억울해하고 한쪽은 존나 꼬셔하긴 했지만,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핑거스냅으로 둘의 시선을 끌고서 물었다.

"너흰 뭐고, 여기에 뭐하러 왔냐? 대답이 좆같거나 마음에 안 들 경우엔 너희 손가락을 하나 하나 뽑겠다."


처음엔 대답하려고 하진 않았던 둘이었으나, 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나이프나 무기를 동글게 휘게 만들어 원형으로 만드는  보고서는 아가리를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어낸 정보는 이러했다.


"그러니까, 너는 제국에서 왔다고?"


"그, 그렇다. 나는 제도에서 온 개벽 기사단의 차기 기사단장이 될 몸이다! 우리는 위대하신 분들을 떠받들고 있으며, 그런 분들처럼 시술을 받거나 그런 분들에게 은혜를 입어 기사단에서 복무하고 있다. 어, 어쩌면 너도 그 은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강력한 힘을 살리면 분명…."


세뇌된 건지, 아니면 신이 될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간 건지.

어쨌든 그렇게 주장하며 나를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던 기사단장은, 내가 손을 높이 든 후에야 아가리를 닥쳤다.


기사가 아가리를 닥치자, 나는 바로 강냉이가 날아간 놈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는 산왕국에서 왔다고?"


"그, 래. 나는, 재앙의 어머니를 섬기는, 신의 전사. 그분께서 내리신, 시련을 따라 여기에 왔다. 그분이 내리신 시련을 따르며 더욱 단단해지고, 최후엔 영원한 시련과 재앙의 탑에 몸을 던져 그분을 기쁘게 할 거다. 너도 지금부터 나를 따른다면 그분이 내리시는 영광을…."

"아가리 좀 해라, 패버리고 싶으니까."


내 실수로 인해 강냉이가 날아간 놈은 사이비였다.

그것도 악신이며 재앙의 어머니라는 주는  없고 재앙만 내리는 병신을 섬기는 진짜 상병신.


적어도  놈은 나름 신의 전사니 뭐니 하는 거이니 맹목적으로 따르는 거겠지만, 산왕국이 섬기는 악신이 가을의 마녀라는 사실을  것만으로도 꽤 수확이었다.


정리하자면, 예상대로였다.


한 새끼는 제국에서 봄의 순례자의 지령 하에, 한 새끼는 산왕국에서 가을의 마녀가 내린 계시 하에  유적으로 찾아왔다.


가을의 마녀가 이 일에 개입되어 있다는 게 좀 의외이긴 했으나, 어느 정도는 짐작할만 했다.

가을의 마녀는 레크노미어 왕가를 씹창내고 봄의 순례자와 협력한 정황이 있었으니.

내가 조용해지니, 그  지휘관은 서로의 얼굴을 불안하게 쳐다보더니 내게 시선을 보냈다.

"너, 너는 어디서 왔지?  유적은 정확한 출입법을 모르면 못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오, 이 새끼. 눈치 빠른  봐라.

확실히 깨어난지 좀 되니 머리가 돌기 시작하는지, 기사는 불안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을 마주보며 씩 웃었다.

"난 교단에서 왔고, 너희들이 가져가려는 성유물을 뺏어가려고 왔다."

"뭐, 뭣?"


 대답을 예상하진 못했는지 당황한 빛을 띄는 기사와 전사.  둘이 나를 보며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나는 쥐고 있던 왼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뻐벅!


후두둑!


휘두른 건틀릿 주먹에 두들겨 맞은 기사와 전사가 동시에 나가떨어지고, 그들의 아가리에 물려있던 탐스러운 강냉이가 바닥에 흩어졌다.


이거, 깨어나도 명령은 제대로 못하겠구만.


씩 웃으며 손을 털어내니, 겨울의 신부가  옆에 바짝 붙었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속삭였다.

"이제 들어갑시다. 조금 서프라이즈를 남겨두고 나서요."

"서프라이즈…요?"


그녀가 의아한 빛을 띄는 것도 잠시, 그녀는 말 없이 나를 뒤따랐다.

전황은 확실히 개판이었다. 안 그래도 없으니만 못했던 지휘관이 없어지니, 그들은 고삐가 풀린 건지 더 개판으로 싸워대고 있었다.

마법을 날리고, 칼침을 날리고, 창을 던지고.


그 틈바구니에서 아직은 멀쩡하거나 숨어있는 병사들이 눈에 띄었지만, 내가 신경 쓸  그게 아니었다.

계단식으로 아래로 향해있는 형태로 되어있는 유적은, 끝에 이르러서는 큼직한 대문과 함께 계단이 끊겨 있는 이른바 우물식 구조를 하고 있었다.

산왕국의 전사나 기사들은 한창 계단 위에서 싸우느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지만, 이 구조는 무거운 무언가를 던지면 무척이나 재밌어질 구조였다.

 이렇게 설계했는지는 이해할  없었지만, 써먹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눈여겨 봤던 기둥을 집어들어 높이 들었다.

그 뒤에 내가  행동은 무척이나 직관적이었다.

원통형 기둥에다 아래로 쏠려있는 구조물들. 그 아래에 모여있는 적들.

이건 누가 오더라도   쯤 굴려보고 싶어할 구조였다.


나는 계단 위에 기둥을 내려놓고는  큼직한 석재를 걷어찼다.

콰아앙!

 뒤에 일어난 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직관적이었다.

기둥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콰르르르르르!!!

굉음과 먼지, 돌조각을 튀겨대며.


"어, 어어."

"피해, 피해!"

"으아악!"

그렇게 굴러내려가는 기둥의 모습은 압도적이고, 격노하며 싸우던 전사도 물러서게 만든다.

한창 무기를 휘두르던 전사의 몸뚱이가 그 기둥에 부딪혀 곤죽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고, 기둥은 가속력이 붙어 제동이 걸렸음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야말로 혼돈에 들이부어진 한 움큼의 기름. 타오르기 시작한 전화가 한층 더 혼란스러워 지는 그 순간, 나는 겨울의 신부를 안아들고 계단에서 뛰어올랐다.

콰아아아앙!


굴러내려간 기둥이 거대한 문짝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흩어지기 무섭게, 나는 날듯이 뛰어 유적지의 대문을 통과했다.


피어오른 먼지 사이로 쏘아진 내 신형이 어둑한 복도에 내려앉자, 그 광경을 멍청하게 바라만보던 전사들이나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막아! 막아아아!!!"

"저 새끼 뭐야!!"

그야말로 비명을 지르며 이 방향을 향해 뛰어오는  무리의 인간들. 나는 그 인간들을 보며 대문을 내 괴력으로 당겼다.


기이이이익

쿠우웅!


문이 닫힌다. 인간의 힘으로는 열기조차 힘든 문짝이, 내 팔힘에 끌려나와 축객령을 내렸다.

달려들던 놈들의 모습이 문의 그림자 너머로 사라지고, 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눈앞이 녹색이 감도는 철제 문으로 덮였다.


바깥에서 달려든 놈들이 문짝에다  짓을 하고 있을 건 분명한데도, 문이 닫히자 문 너머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저한 고요. 비정상적일 정도의 고요에, 나는 물러서며 손을 털어냈다.

"휴, 개꿀잼."


씩 웃으며 손을털어내자, 내가 내려놓은 자리에 그대로 서있던 겨울의 신부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별 다른 질문이나 의구심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손을 뻗었다.


"갑시다, 겨울님."

그 손을 그러쥐자, 그녀는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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