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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화 〉성유물 (156/274)



〈 156화 〉성유물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구라나 농담도 아니고,진짜로 그랬다.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화롭고, 조용한데다 깨끗하기까지 했다.


다른 입구가 있어보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인기척이 느껴질 정도로 깔끔한 복도에는 먼지   내려앉아 있지 않았다.

어둑한데아예 안 보일 정도는 아니고, 흐리게 시야 바깥까지 트여있는 텅  복도.


애초에 광원이라면 넘칠 정도로 갖고 있으니, 광원으로 걱정하진 않았다.


"그런가요?"


"예,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요."

"수상하네요. 괜찮으시겠어요?"


뭐, 안 괜찮으면 어쩌겠어. 어차피 쫄릴 것도 없는데.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낙인을 뽑아들자, 강한 열이 도끼날을 타고 드글거렸다.


거기에 가해지는 화염 부여의 권능. 자루에서부터 타고 오른 화염이 강하게 뿜어져나와 내 앞을 넘실거렸다.

"일단 가봅시다. 그러면 알겠죠."


함정이 있다면그냥 때려부수면 되는 일이고, 적이 나오면 쳐부수면 된다.

반신이 된 내게는 두려울 게 없었다. 겨울의 신부가 내 등 뒤에서 따라오게 하고서, 나는 횃불처럼 밝게 빛나는 낙인을 치켜든 채로 앞을 향했다.


복도는 길게 뻗어진 형태였다. 그 어떤 장식이나 구조물의 추가가 없이, 그저 순수하게 복도만 존재했다.

그 복도를 걸으면서 나는 아포칼립스 게임 등지에서 보았던 감압실을 떠올렸는데, 복도 벽에 드문드문 존재하는 구멍들이 함정용 발사장치가 아니라면 얼추 비슷한목적이 아닐까 하고짐작할  있었다.

근데 무슨 질병이 있길래? 이건 나름 창조신의 권능을 빌려 지어진 거 아닌가? 그럼 해결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서? 언제 함정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구멍을 빤히 바라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서 복도를 거닐 수 밖에 없었다. 어둑한 복도를 가로지르며 나아가던 차에, 내 귀에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익


"…씨발?"


마치 기계 장치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 함정일까 싶어 경계하는 것도 잠시, 삽시간에 주변에 기계음이 가득 차더니.

파앗!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더니 밝아졌다.

빛이 흘러들어오는 곳은, 내가 함정구멍이 아닐까 의심했던  구멍이었다.

"오버 테크놀로지 개 지리네."


요란한 환영식이었지만, 어쨌든 공격만 아니라면 상관 없었다. 낙인을 허리춤에 밀어넣고서, 겨울의 신부의 손을 붙잡은 채 복도를 가로질렀다.


끄트머리로 갈 수록 조금씩 넓어지던 통로는 결국 복도 끄트머리의 통로에 이르러서는 거대한 대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까 들어왔을 때에도 보았던 거대한 철문. 같은 양식의 무언가가 음각되어 있는 다소 화려한 철문이었다.


높다란 철문은 인간의 힘으로 열기에는 어림도 없어보이는 묵직함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나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았다. 나는 가볍게 철문을 밀어젖혀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문 너머에서 펼쳐진 풍경은 상상 이상의 비경이었다.


"…오."

높이 솟은 시야를 아득히 메우는 어둠과, 그 어둠을 불사르며 광활하게 펼쳐지는 높다란 천장.


그 중심에는 꽤나 낯이 익은 거대한 구체가 있었다.

인공 태양인지, 태양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그것은 강렬한 빛을 뿌려 도시를 밝히고 있었다.

"고대의 도시의 그거랑 똑같잖아."


고대의 도시 뒤편의 산맥, 그 산맥 안에 존재하는 던전에 존재하는 인공 태양과 모양은 같았다. 형태나 양식 역시 똑같았다.

하지만 그 인공 태양과는 비교도  수 없는 크기와 빛이었다.

도시의 규모 자체도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존나 크네…."

며칠은 걸릴 거라고 짐작하길래 얼마나 큰가 했는데 상상 이상의 크기였다.


높이 솟은 빌딩 비슷한 건물들이 이따금씩 있고, 대부분은 낮은 건물이긴 하나 넓게 트인 시야로 보기에는 심부로 들어갈 수록 높이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점점 높아져, 인공태양과 비슷한 높이가 되어서야 지평선은 끝나 있었다.


탐사가 존나 막막해질 정도로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고있자니, 겨울의 신부가 내 손을 잡아왔다. 그래, 해보면 알겠지.

정신을 차리자마자 내가  행동은 간단했다. 배낭에서 지도를 꺼내서 펼치는 것.

펼쳐진 지도에 그려진 도시는, 이런 풍경일 거라는 것과 크기를 드러내지 않고 소박하기만 했다.

"…이 새끼들, 지도 존나 대충 만들었네요."


"그런가요?"


내 말에 겨울의 신부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드러냈다.

아, 안 보이니  수가 없겠구나. 심심한 감상으로 지도를 도로 배낭에 밀어넣으니, 내 앞에 펼쳐진 도시로 이어지는 기다란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뭐, 더 살펴보면 알겠지. 어쨌든 탐사를 거를 이유는 없었다. 나는 겨울의 신부를 대동하고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

 깊어보이는 계단이라, 내려감에 따라 점차 어두워지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태양에는 어떤마법이나 권능이 걸려있는지 지면까지 빛을 풍부하게 뿌려대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온 풍경은 도시 어귀 같았다. 전형적이라,  어떤 도시를 연상하든 한 번 쯤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법한 도시 어귀.


들어서있는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낮았고, 높은 건물들도 그렇게 구조가 독특하진 않았다.

되려 삭막할 정도로 실용적이라 위에서 볼 때와는 다른 단단함을 느끼게 했다.


유령 도시라기에도 뭣할 정도로 삭막한 도시에는, 무언가 지나간 흔적이 살짝 남아있는  빼면 고요했다.


"지나치게 깨끗하네요."

"그런가요?"

"예, 먼지는 전혀 없어요. 마치 누가 성실하게 청소해둔 것처럼요."


지하라면 먼지가 없기 힘들다. 먼지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다.

철저히 멸균하고 밀폐해놓더라도 거짓말처럼 먼지는 쌓이기 마련이니, 이 삭막한 풍경에서 은은히 감도는 인위적인 정취는 내게 불안감을 선사했다.

어쩌면 지금도 활발하게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거나, 아니면 성실하게 관리를 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안감을 억누르려 손을 끌어내려 도끼 머리를 쥐니,  은은한 온기가 내게 안도감을 선사했다.

씨발,  폐소공포증 같은 건 없는데. 기이할 정도의 풍경이 내게 클리셰적 조바심을 선사했던 모양이었다.

후, 하는 한숨을 내뱉으며나아갔다. 어느 쪽이든 여기에 뭔가 있다는 건 확실했으니, 꼼꼼하게 살피는 게 좋을 듯 싶었다.

손 안에서 떠돌던 도끼를 꺼내들며 주변을 둘러보다 적당한 건물로 향했다.


겨울의 신부는 질문조차 없이 나를 얌전히 뒤따르기만 했다.


들어선 건물은 누군가의 거주지였는지 미약한 삶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먼지는 여전히 한 톨도 없었지만, 용도가 뚜렷한 도구 따위가 어지럽게 테이블 위에 쌓여있었다.

그 배치를 통해 짐작하자면 무슨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멀쩡하게 삶을 영위하던 것처럼 보였다.

한 때는 사람이 살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옅은 흔적들은, 내 불안감을 잔잔하게 고조시켰다.


파손된 것도 없으며, 급하게 무언가를 챙기려는 움직임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명탐정은 아니지만, 그다지 급해보이지 않았다는 건 사실이었다.


수천년 전에 여기서 살다 쇠약사했거나, 아사했다는 느낌이 아닌 그야말로 갑자기 사라졌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거주지였다.


그게 가장 불안했다.

갑자기 사라졌다면, 뭔가 특별한 수단을 사용한 게 아닌 이상에야 흔적이, 저항 흔적 같은  남아있어야 할텐데 그런 건 없었다.


그렇다고 아사를 면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 서로 잡아먹는 생존경쟁을 벌였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근친교배와 오랜 퇴화로 인해 완전히 변해버린 새끼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야 할테고, 덤으로 이 거리는 존나게 더러워야 할테니까.


즉, 뭔가 이상했다. 뭔가가 이 주거지를 깔끔하게 유지하는 한 편,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끌려나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 기묘함에 투구를 고쳐쓰면서 의아해 하는 찰나였다.

"…주현성님?"


"예? 뭐 찾으셨습니까?"


겨울의 신부가 갑자기 나를 불러세웠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여유롭고 나긋함은 온데간데 없이, 어딘가 불안감에 젖어있었다.


그 불안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입을 열려는데, 그보다 먼저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소리가 울렸다.

"뭔가 다가오고 있어요…!"

그녀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조차 없이, 내 귓전에도 그 소리가 선명하게 닿았다.


기이이잉

그건 기계음이었다. 기계가 관절을 움직이는, 언뜻 듣기 불쾌한 소음. 그 소음 사이로, 기계음 몇 개가울리며 따라붙고 있었다.


위치는 밖이었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인간의 흔적이 드물게 남아있는 거주지의 바깥.


내가 고개를 들어올리자, 삽시간에 사위가 어두워졌다.

바깥에서 빛을 내리던 인공태양이 제 발광을 멈추고 빛을 거두고 있었다.

"…이런 씨발?"

갑자기 찾아온 어둠에 눈이 적응하지 못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어둑한 눈 앞에서 기계음만이 울리고 있었다.


좋지 못하다. 만약 함정이 가동하는 거라던가, 뭔 개지랄로 집채로 침입자를 깔아뭉개는 공압 프레스 같은 게 작동하는 거라면 지금 당장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 앞에서 뭔 개지랄이 나는지부터 파악을 해야했다.

겨울의 신부는 시야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으니 무관할테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재빠르게 낙인을 뽑아들어 화염 부여를 쓰는 순간, 다시 사위가 밝아졌다.

투우웅!

밝아지는 눈 앞에서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오는 무언가였다.

 희끗한 무언가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그게 나를 꿰뚫을 기세로 쏘아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방패를 들어올려 막기엔 늦는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낙인을 뽑아들어 애매한 위치에서 멈춰있는 주먹을 휘둘러, 날아오는 것을 튕겨냈다.


카아아아아앙!!!!


"크윽…!"

내 손등에 부딪힌 그것은 거센 쇳소리를 울리며 튕겨났다.

소리 뿐만이 아닌지 부딪힌 갑주가 쇳소리를 냈다. 단순히 보더라도 위력이 보통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튕겨져 나간 무언가가 어둠 속으로 빨려들고, 어둠 속에서 기계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들을 수록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기계음이었다.

마치 모터가 울리는 듯, 톱니바퀴가 거칠게 굴러가는 듯한 소음.

인상을 찌푸리며 방패와 도끼를 앞으로 내밀어 견제 자세를 취하자, 기계음이 멎었다.

기계음이 멎고 찾아온 것은 빛이었다.

다소 불길한 색상의 빛.


꺼졌던 불들이 되돌아오는  형상은, 어쩐지 해가 질 때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으나 분위기부터가 사뭇 달랐다.


마치 노을처럼 붉지만 선혈처럼 불길한 느낌을 내포한 경고등 같은 것이, 길거리와 내 사방을 가득히 메우며 점멸했다.

깜빡일 때마다 어둠 속에 제 몸을 감추고 있었을 흉수들이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노리며, 기이한 쇠뇌가 달린 왼팔을 내게 겨누고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겨울의 신부가 들어왔었던 집의 입구에서부터 한 무더기의 기계들이 쇠뇌를 겨누며 다가서고 있었다.


하반신에는 거대한 바퀴 같은 것이 달려 나를 향해 소음을 덜 울리며 다가오도록 했고, 오른손에 달린 날붙이는 가까이 붙는다고 능사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 기계들의 머리는 없었다. 머리는 없이, 뒤집어놓은 새의 발처럼 뻗어져 구형의 보행 장치와 무기를 이어놓고 있었다.

 눈에 보기에도 어떤 불길한 기계 호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살인 기계의 외관이었다.


그 기계들이, 기릭기릭 하는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님,  뒤에 숨어 계세요. 수가 너무 많아서 완벽히 보호해드릴 수 있다고 보장은 못하겠습니다."

"…네, 부디, 몸 조심하세요."

겨울의 신부는 내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익숙해졌는지, 단지나의 무사를 바라고서 내 뒤에 있을 통로 너머의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기리릭 기릭 철컥


그에 기계들이 망설임 없이, 일제히 내게 쇠뇌를 겨눴다.


겨눠진 쇠뇌의 끄트머리가 붉은 빛 아래에서 번뜩이는 순간, 나는 방패를 들어올리며 덤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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