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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7화 〉성유물 (157/274)



〈 157화 〉성유물

몰려드는 기계 군단의 공격은  강력했다.

쇠뇌의 위력은 상당했고, 그게 쏘아져 벽을 꿰뚫는   후에야 그게사실상 일종의 석궁임을 간파할 수도 있었다.


투사체는 원형의 베어링 같은 형상이었다.

뭘 추진력으로 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날아드는 궤적이나 위력은 어지간한 쇠뇌의 한참 우위에 서있었다.

카가가각!

하지만 다행히 내가 더 강했다.


쏘아지는 구체를 방패로 빗겨내고, 도끼를 휘둘러 쇠뇌를 끊는다.


끊어진 금속이 바닥을 구르자 곧장 나를 향해 검을 휘둘러오나, 그보다 내 방패가  빠른 편이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앵!!!!

전기톱 특유의 모터 소리 같은 것을 뿜어내며 닿는 것들을 종잇장처럼 갈아버리는 방패.


그 방패의 겉면에 부딪혀 동체가 둘로 쪼개진 기계가 쓰러지자, 다른 기계가 그 빈자리를 메우려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 기계가 쇠뇌와 검을 동시에 겨누는 모습을 보며, 이 기계들의 전투능력과는 별개로 전술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다는  깨달았다.

마치 학습하는 것처럼, 내게 갖가지 방법으로 공격을 해온다.


나는 그 기이함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성실하게 체중을 앞으로 실으며 다리를 내질렀다.


카아앙!


내 앞차기에 차인 기계가 움푹 패여 쓰러지고, 기동력을 잃어 허우적 거린다.


다른 기계들이 그 틈으로 밀려들기 전에, 나는 발을 내리찍었다.


콰직!

얼추 알겠다. 동력은 아무래도 기동력을 책임지는 하부에 가까이 배치되어 있는  같았다.

동체를 둘로 쪼갠 것들이나, 발로 기동부를 밟아버린 기계들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자면 그러했다.

붉은 빛 사이로 왕복하며 거리를 잡던 기계들이 달려든다. 더 이상의 심리전은 무용하다는 듯, 일제히 쇠뇌를 겨누고발사한다.


투투투투퉁!

쏘아지는 구체들이 희끗한 선으로 보이고, 앞으로 밀려들던 기계의 등짝을 꿰뚫어가면서 내게 쇄도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몸을 돌렸다.

카카카캉!

기세가 죽어 나가떨어진 구체를 제외한 나머지는, 내가등을 돌려 내놓은 폭군의 검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갔다. 나는  구체들의 위력을 받아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이 유적지에 살던 거주민들이 살해당한 거라면,  주역은 저 빌어먹을 놈의 기계들일 거라고.

기이익


기계들이 일제히 쏘아내 생긴 빈틈에, 다시금 바닥을 걷어차 달려들었다.

이후의 전개는 뻔했다. 나는 다리를 휘두르고, 도끼와 방패를 휘두르고 올려쳐 기계들의 구동부와 무기를 전부 끊어놓았다. 부숴진 기계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콰직!


부숴진 기계들이 꿈틀대며 존재하지 않는 생을 찾을 때, 내 발은 성실하게 그 저항을 끊어주었다.

발에 짓밟힌 금속이 우그러지고, 기계들의 움직임이 멈춰서고 나서야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씨발, 끝났나?"

기계가 쏘아낸 투포환 같은 것에 벌집이 된 벽이나, 내가 휘두른 공격의 여파로 부숴져 기울어 있는 기둥.


그야말로 개판이라고 할 수 있는 배경 아래로 붉은 조명만이 점멸하고 있었다.

그 점멸하는 붉은 경고등을 받으며 널부러져 있는 기계들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부터 입구까지 길게 뻗어있었다.

마치 기계로 만든 레드 카펫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붉게 점등하던 불빛이 꺼졌다.


퍼억!


그 소리는 오래된 전구가 터져나가는 소리를 닮아있었다.


어둑해지려는 시야를 낙인과 방패의 불꽃이 가까스로 붙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찾아왔다.

파아아앗!

"으, 씨발.  눈."

솔직히 존나 눈이 아팠다. 누가 밤에 자고 있는데 눈깔에 손전등을 비추는것처럼.

눈 앞을 손으로 가리며 투덜대자 천천히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기계를 해치우니 태양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바깥에는 아까 유적에 처음 들어왔을 때 들어왔던 불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동시에 바깥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기계음들도흩어지기 시작했다.

기이익, 기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우는 기계들이 멀어지는 건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려지고 있었다.


이런 기믹인가 본데.


그리고 나는  모습에서 얼추 기믹을 짐작할  있었다.

태양이 켜지면 기계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니 안전하고, 태양이 꺼지면 기계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 위험해진다.

다소 직관적인 면이 없잖은 구조였다. 붉은 등은 아무리 보더라도 불안한 느낌 밖에 들지 않으니, 나름의 친절함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있었다.

그게 큰 엿을 존나게 에쁘게 포장한 거라는 게 문제였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뒤에 있을 겨울의 신부를 불러냈다.

"어디 다치신데 없으십니까?"


"…예, 전혀요. 당신꼐서는 어떠신가요? 어디 다치시진 않으셨나요?"

벽에서 불쑥 튀어나온 겨울의 신부는,  몸에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역시나였다.


물론 다행이긴 하다. 엄청 다행이지. 겨울의 신부가  석궁에 맞아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존나 상황은 좆같아지는 거니까.


하지만  편으로는, 뭔가 묘하긴 했다.  기계놈들이 겨울의 신부를 노리지 않는 느낌에 가깝다고나 할지.

새삼 생각해보자면 적들은 묘하게 겨울의 신부를 노리지 않았다. 마치 겨울의 신부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그나마 노렸던 놈도, 독의 하천에서 겨울의 신부를 먹으려고 들었던  이름 모를 수인 보스놈 하나 뿐이었다.

그 놈 외에는 그 누구도 겨울의 신부를 건드리려고 시도한 적조차 없었다.

그 이유가 뭔지, NPC 보정이라도 되는 건가 싶어서 의아했으나 지금 당장 심각하게 생각해볼문제는 아니었다.

짚이는  있다면 스스로 말해주겠지. 어물쩍 넘기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우리는 조사를 더 할 필요가 있었다.




*


그렇게 이어진 조사 결과, 이 도시는 생각 이상으로 인간의 흔적이 드물었다.


사실상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하더라도 이상할  없는 수준으로, 건물이나 주거지마다 있기는 하나 크기와 규모를 생각하면 사실상 없노라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마찬가지로 음식물이나 수원지 역시 없었다.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물 정도는 있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물이 있었던 흔적이나 물을 길어내기 위한 우물 따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떤 연유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음식물만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자생하는 식물은 물론이고 벌레 한 마리,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완전히 멸균을 이뤄낸 시설인 것처럼, 유적지 내부의 모든 물건들은 부식이나 부패가 이뤄지지 않은 듯 하면서도 그 어떤 생명의 기척도 느낄  없었다.

지하라면 벌레 정도는 있을 법 한데도, 아무 것도 없는 걸 보자면.


나는 몸에 두른 모포를 당겨서 몸에 가까이 붙이고는, 겨울의 신부의 정수리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는 이어지는 나의 정리 겸 설명을 듣고는 조용히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겨울의 신부의 길고 은백색을 띄는 머리칼이 붉은 조명 아래에서 번들거렸다.

"뭐  아시겠어요?"


나는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의 귓전에 속삭였다.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듣는다는 사실이 좋은지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긱 소리에도 낮게 웃기만 하고는 조용히 내 손목에 입술을 지분대기만 했다.


"유적이지만  때는 사람이 살았던 곳 같다고 하셨었죠?"

"예, 일단은요."

"도시에 준하는 크기에 사람이 살았다면… 저는 내부로 갈 수록 구획이 나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더 중요하겠지만, 제  볼  없는 사견으로는 그렇답니다."


흐음, 확실히 그럴 듯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그럴 듯 하네요. 맞을  같아요."


이 유적은 족히 천년은 넘었다고 했었다. 족히 수천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는 유적이다.

그런 걸 감안하면, 이 도시에서 작용하던 통치 방식은 무척이나 구세대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떠올린 말을 섞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볼 때,  도시에서 이뤄지던 통치의 방식은 무척이나 구세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예전부터 있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 구세대적 통치는 아마 통치와 신성이 구분되지 않는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겠죠."

 말에 겨울의 신부는 침묵을 지켰다.


단지 조용히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로 이따금씩 볼을  어깨에 부벼 애정을 드러내는데 그쳤지만, 나는 그 침묵이 마치 이유를 묻는 것처럼 느껴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그 뭐냐, 원래 처음 통치의 형태는 신성과 통치의 결합인 경우가 많거든요.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데… 창조신이 네 명을 의인으로 선택해서 블라블라 했다는 그 시즌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명의 의인들이 인간을 다스렸다고 하잖아요? 거기서 짐작한 건데, 그때에도 신성과 통치가 일치했을 것 같다고 짐작했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감은 눈꺼풀로 나를 응시했다.

내게 향해지는 기다란 속눈썹이 이번엔 결론을 묻는 것 같았다.

진짜 질문을 던지진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야기를 정리했다.


"…아무튼, 신성과 통치가 분리되지 않는다면 종교적인 상징성을 띄는 물건은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장소에 두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 외에도 신성이 곧 통치라면 가장 중요한 장소에 놓여져 있겠거니, 하고요. 중앙이나, 최심부요."


나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 굳이 협탁에 놓아두었던 지도를 꺼내들었다.

펼쳐진 지도에는 도시의 약도라고  수 있을 간단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간단하게 트여있는 길들과 건물의 모습은, 심부로 들어갈 수록 좁아졌다.


"마침 이 도시에 들어설 때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높아지더라고요. 인공 태양의 빛을 적나라하게 받도록, 높이요."


그녀는 그제서야 내 어깨에 대고 있던 뺨을 떼내며 속삭였다.

"네, 듣고 있어요."


진짜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스스로에게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말해야 했다.

"아마  도시에서 가장 신성과 연관이 깊은 장소는, 가장 높고 가장 깊은 곳일 겁니다. 그리고 아마 저희가 찾는 성유물도거기에 있겠죠. 아주 강력한 성유물이니 거주구에 그냥 떡하니 놓여있진 않을테고요."


그러면 의외성이 상당하겠지만, 갑자기 사라진 놈들이 그런 걸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겨울의 신부는  말에 고요하게 내 손을 집적대면서 장난을 치다가 문득 웃었다.

"그럼 내일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예,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그녀는 내 말에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내젓는 고개를 따라 긴 은백색 머리칼이 흩날렸으나, 그 흩날림에서는 좋은 향 밖에 나지 않았다.


"당신께서 너무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하지만… 사람들을 돕고자 하시는데 제가 어찌 말릴 수 있겠나요. 그저 당신께서 다치지 않으셨으면 하고 바랄 뿐이랍니다."


그녀는 어느새 내 손을 제 손 사이에 끼워 깍지를 끼고는 손가락 틈을훑고 있었다. 훑어지는 손가락이 간질간질하니, 기분이 묘했다.

겨울의 신부는 제 섬섬옥수로 내 손가락을 훑으며 한동안 그렇게 애정을 과시하더니, 손을 들어올려 짧게 입맞췄다.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릿가죽이 쭈뼛하는 미미한 쾌감이 몸을 훑었다.


"힘내실 당신을 위해 소소하게 뭔가 해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슬프네요."


그녀의 상냥한 말 위로, 기계음이 끼어들었다.


기이익




기계음과 돌조각에 부딪히는 고철의 소리.


나는 그 소리에 눈을 돌려 나와 그녀가 앉아있는 침실의 입구를 틀어막은 돌덩이를 바라보았다.


내가 뜯어내 막아낸 입구였다.


"뭐, 그렇죠. 하시고 싶으시다면 저야 좋겠지만."

혹시나 하는 상황이 터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유적은 원래 이랬는지는   없지만, 아주 악랄한 구조로 되어있었다.

장기 원정에서 휴식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상당한데,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기계의 습격은 그런 휴식조차 고통과 죽음의 위기로 탈바꿈 시켰다.


통상적으로라면 아주 많은 인원이, 철저하게  스케줄대로 교대로 쉬어가며 망을 봐야했다.

하지만 나와 겨울의 신부는 단 둘.

 다 각자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동시에 활동하니 교대로 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솔루션은 간단했다.

벽이나 기둥을 뜯어다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도록 틀어막는다.

 결과는 이러했다.


우리는 찾아낸 잠자리에 붙어앉아, 서로의 체온을 즐기면서 꽁냥댈 수 있었다.

나는 벽 바깥에서 돌이나 벽을 긁어대는 기계의 소음을 들으며 슬쩍 웃었다.

기계들이 긁어대는 소리에도, 우리는 한동안 여유롭게 애정을 주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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