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성유물
우리가 깨어났을 쯤에는, 바깥에서 들리던 돌을 긁는 소리나 시끄러운 기계음 같은 건 들려오지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했다.
갑주를 차려입고, 혹시 건너편에서 매복하고 있을 때를 대비하며 바위를 들어올려도 기계들은 몰려오지 않았다.
천장에 뚫린 구멍 사이로 인공태양의 쨍한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역시."
확실했다. 그 살육기계들은 붉은등이 들어왔을 때에만 활동할 수 있거나, 활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 그렇게 속여오다 지금 같은 때에 기습을 노리는 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와 겨울의 신부는 틀어막았던 돌들을 치워내고 밖으로 나섰다.
길게 드리워진 건물 그림자 정도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기다란 도로에는, 인기척은커녕 그 어떤 흠집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갑시다."
"네."
나와 그녀는 간단한 의견만을 주고 받고 곧장 길을 나섰다.
막상 탐사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꽤 애로사항이 있겠지 않겠냐며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탐사는 무난하게 진행 되었다.
리턴이 그다지 없다는 건 여전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지만, 그렇게 신경 쓸 정도도 아니었다.
이 유적에는 나 혼자이며, 누가 이 유적에 들어와 성유물을 찾고 있다고 한들 빼앗을 자신이 있었으니. 리턴이 다소 늦는다고 해서 조급해지진 않았다.
그나마 탐사를 방해하는 게 있다면 단 두 가지.
길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과 이따금씩 붉은등이 들어오고 기계들이 몰려올 때 개활지가 아니어야 하니 그런 점을 신경 써가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정도.
그 두 가지만을 신경 쓴다면 탐사에 있어서는 그 어떤 문제도 없을 것처럼 보였다. 설령 개활지에서 기계들을 맞닥드리더라도, 조금 무리를 한다면 도망칠 수는 있었고.
그런 만큼 붉은등이 언제 들어오더라도 바로 옆 주거지나 골목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거리를 잡고 걷다보니 탐사에 걸리는 시간은 확실히 더딘 편이었다.
하지만 도시에 어디에 성유물이 있을지 얼추 때려맞추고 진행하기 시작하니 생각보다는 빨랐다.
애시당초 족히 며칠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던 걸 떠올리자면.
슬쩍 고개를 돌려 걸어온 길을 보니, 얕게 솟아있는 지평 너머로 내리막길이 눈에 들어왔다.
내리막에 걸쳐진 계단의 모습에 내가 탐사를 시작하고 얼마나 깊숙히 들어왔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아마 최심부까지 발을 들인다면 저 인공태양에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가 아닐까 싶은 정도의, 극적인 높이 상승이었다.
그 치솟는 고도에, 목적지에 가까워진다는 실감이 들어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덜컥
툭
"…음?"
걸어오는 내내 단 한 번도 들려온 적 없는 소음. 단단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나는 그 소리에 의아해하면서도 성실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건 돌맹이였다. 어딘가 벽이나 바닥에서 뜯어낸 듯, 작지만 분명히 파손 흔적이 남아있는 돌맹이.
갑자기 돌맹이가?
이 도시가 기계들에 의해 유지 보수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저런 파손 흔적은 과히 부자연스러웠다. 마치 이 곳이 관리되지 않고 있거나, 누군가 일부러 뜯어낸 것처럼….
그 돌맹이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는 그때였다.
"주현성님!"
겨울의 신부가 소리를 지르고, 나 역시 그 순간 눈치챘다. 무언가 내게 고속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다가온 형체는 인간의 형태를 닮아있었으나, 속도나 그 질감은 인간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 형체가 내 앞에 도달하자마자, 몸을 틀어 발차기를 쏘아냈다.
철컹
카아아앙!
득달 같이 내 머리를 향해 쏘아지는 무언가. 아래에서부터 올려치는 형태는 하이킥을 닮아있었다.
자연스럽게 팔을 들어올려 막으니, 내 완갑을 두드린 금속이 흐리게 울었다.
단단하다. 무슨 금속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위력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두들겨진 팔이 아리기도 전에,나는 막았던 팔을 끌어내려 휘둘렀다.
카가가각!
그러자 그 정체불명의 습격자는 팔을 뻗고, 내 주먹의 궤적을 제 오른팔로 밀어냈다.
유려한 궤적에 스치는 부분에서 금속이 깎여나가는 소리가 나고, 불똥이 마구잡이로 튀어올랐다.
내 주먹이 휘둘러진 궤적에서 벗어나 힘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습격자의 몸도 흔들리고 있었다.
씨발, 무슨?
괴물들조차 받아내지 못하는 근력을 단지 두 주먹과 손으로 밀어낸 그 형체는, 반격을 하려다 말고 자세가 흔들리자 발을 뒤로 물렸다.
"허어…!"
물러나며 습격자가 당황한 듯한 소리를 흘렸다. 꺾여진 공격의 궤적에서 몸을 아예 빼내더니,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가 싶더니 몸을 띄워, 회전하면서 발차기. 휘둘러지는 다리는 그냥 피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방패를 비스듬하게 들어올려 막아냈다.
카아아앙!
씨발, 인간의 각력이 아닌데.
각력만 그런 게 아니고, 공격에서 금속성을 자아내는 걸 보자면 인간의 피부도 아닌 것 같았다.
이제와서 이 유적지의 주민이 나타난 건 아닐테고, 아무래도 내가 해치워대던 그 살육기계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듯 했다.
부우웅!
그 강화 살육기계가 휘두른 주먹을 피하려 허리를 틀자, 스쳐지나간 주먹을 거두며 내 머리를 옆을 지나갔다.
무슨 씨발, 주먹 쓰는 게 무기 쓰는 거 같냐.
하기야 상대가 기계 새끼인 걸 감안하자면 가장 정확한 전투 방식이었다. 이를 바득 갈면서 내려간 자세에서 그대로 주먹을 올려쳤다.
파아앙!
어퍼컷. 주먹에 닿는 감촉은 없었다. 단지 공기를 찢어내며 스쳤을 뿐. 달궈진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에 습격자는 주춤하더니 다리를 내뻗었다.
캉!
뻗어지는 다리는 재빠르고 정확했다. 정확히 발끝이 내 배갑을 두드리고 돌아갔다.
정확한 힘의 배분과 타격. 욕심 내지 않고 철저히, 프로답게 응수하는 방식의 근접 전투.
나는 눈 앞의 기계가생각보다 기교가 높음을 깨닫고는 물러섰다.
내 눈동자와 습격자의 기척이 맞닿는다. 자세를 취하는 기계를 보며 나는 왼손의 방패에 권능을 사용했다.
화르륵
차칵!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화염이 치솟고, 치솟은 화염이 칼날로 변하여 회전한다. 듣는 이의 오금이 저리게 하는 끔찍한 소음과 함께 내 방패가 끔찍한 열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딱 대, 씨발놈아."
그 구조를 모르는 이들도 알 수 있을 법한, 강렬한 고열과 섬뜩한 고음. 그에 자세를 취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습격자가 자세를 풀었다.
싸움을 그만두기 위해 푸는 것이 아닌, 뜻밖의 무언가를 봐서 오는 충격으로 인한 멈칫거림.
나는 그 모습에 의아해졌다.
대충 침입자를 척결하기 위해 오던 기계들은, 의사소통이 통용되지 않았다. 소리를 자아내긴 했지만 그건 음성 신호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소음에 가까웠다.
모터와 비슷한 구동음, 장전음, 사격음, 기릭대는 관절의 소리 등등.
아무튼 인간적인 행적이 보일만한 소리는 아니었다는 거다.
전투에서 나름의 발전 같은 것이 보이긴 했지만, 그건 결코 인간성으로 직결되지않았다.
즉, 기계가 어떤 모습을 보고 충격을 느껴 멈춰서는 일은 보통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제야 기계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기계는 전신에 헝겊과 옷가지를 두르고 있었다.
기동적 쓸모나 전투적 쓸모가 아닌, 그야말로 사막 같은 험지를 횡단하기 위해 만들어낸 듯한 답답한 의복.
그 의복 아래로 언뜻 보이는 금속부가, 눈 앞의 무언가가 강철로 이뤄져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묻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질문이 목을 비집고 입으로 튀어나왔다.
"넌 도대체 뭐―"
하지만 유적은 내가 질문을 하게 둘 생각이 아닌 모양이었다. 말하기 무섭게 인공태양이 빛을 감추었다.
퍼억!
전구의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두어진 빛은 한 가지 상황만을 시사하고 있었다.
"…애미 씨발."
몰려들어오는 기계가 눈 앞의 존재가 아군일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으나, 명확하게 나와 겨울의 신부를 노려올 것은 확실했다. 갈등할 것도 없이 도끼를 꺼내들어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푸화아악!
비춰지는 불빛 앞에서, 그 의문의 습격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전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팔을 고스란히 내린 편안한 자세.
뭐지, 씨발 안 덤비나?
의아해 할 찰나, 다시 빛이 돌아왔다.
조금 많이 다른 색으로.
"…뭐야,뭐지 씨발?"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선명한 불길함을 드러내던 붉은등과는 달리, 어쩐지 희미한 위험함을 풍기는 빛깔로 주변을 물들였다.
차오르는 주황색의 불빛은 어쩐지 한밤 중의 길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도망쳐야 하오."
달라진 불빛에 당황한 내게 넌저시 말을 건네는 건, 방금 전까지 나와 공격을 주고 받고 있던 습격자였다.
습격자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인, 청년의 목소리 같았다. 금속으로 된 팔과 다리가 이해가지 않을 정도의 들어줄만한 목소리였다.
아니, 로봇 아니었나?
"이것저것 재볼 시간이 없소. 도망쳐야 하오. 들리지 않소?"
도대체 뭐가….
하며 들고 있었던 도끼를 집어넣는데, 겨울의 신부가 속삭이듯 말을 토해냈다.
"…저 분 말씀이 맞아요. 뭔가 오고 있어요."
그 소리가 뭔지 물어보기도 전에, 나 역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그 소리는 붉은등이 켜져있을 때면 어김 없이 들려왔던 기계음과는 달랐다. 기계음이 소음에 가깝지만 규칙성과 박자감은 있었던 반면, 지금 들려오는 소리는 내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혼잡했다.
마치 이성이 없는 짐승을 떼거지로 풀어놓은 것만 같은 소리.
얼핏 듣기에도 그 형상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던 정면으로 맞서서 좋을 게 없다는 건 명확히 알려주는 듯한 소리.
고민할 것도 없었다. 재빠르게 겨울의 신부에게 다가가 안아들고, 그 습격자를 돌아보았다.
"다행이군. 설명은 도망친 후에 해줄테니…."
그렇게 말을 마친 남자는 주변을 훑어보다 어딘가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 방향은 나와 겨울의 신부가 깨어나자마자 걸어왔던 방향이었다.
얕게 트여있는 내리막길, 멀찍이에 있는 계단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그 길에 들어서있는 건물보다 한참 크게 자리하고 있는 뒤편에서 무언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 방향에 드문드문 서있는 기계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처럼 멈춰서서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기계들이, 밀려들어오는 육신의 폭거에 떠밀려 비틀거렸다.
"이런 씨발…?"
그건 인간이었다.
정확히는 인간을 닮은 무언가였다. 전신에 털은 한 올도 없었고, 마찬가지로 의복도 없었다.
단지 새하얀 피부에 새겨진 붉은 흠집과 텅 비어버린 눈구멍 정도만이 인간과 한 때는 똑같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표정 없고 이성 없는 괴물들이 마치 밀물처럼 길을 가득 메우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빨리 가자, 씨발!"
내가 고개를 돌리며 외치자,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먼저 앞장서서 달려나갔다.
걷어차는 지면마다 움푹 패이고, 파편이 흩날린다. 남자의 체중이 가볍지는 않은지 땅이 쿵쿵 울렸으나, 나는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도 없었다.
뒤에서 몰려오는 육체의 쓰나미가 마치 굶주린 것처럼 지면을 집어삼키며 다가오고 있었으니.
속도에서 그렇게 가시적인 뛰어남이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일 기세라, 나는 남자를 뒤따라 달리면서도 이따금씩 뒤를 돌아서 볼 수 있었다.
"크아아악!"
끔찍한 몰골의 대가리를 마구잡이로 흔들며 손을 휘둘러대는 눈이 없는 인간형 괴물.
나는 달려나가던 그대로 뛰어올랐다.
내 앞에서 앞장서던 남자가 건물의 벽을 박차고 반대편을 기어올라 지붕을 넘어가는 모습에 나는 똑같이 건물의 벽을 박찼다.
콰아앙!
투확!
울리는 폭음과 함께 떠오르는 육신. 아까 전에 싸우면서 만들어진 가속을 사용해 지붕에 착지했다.
차자자작, 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는 다리를 멈춰세우니, 뒤따라오던 괴물들은 내가 서있는 건물 벽을 두드리며 괴성을 질러댔다.
다행히 벽을 기어오르는 능력은 없는 모양이었다.한숨을 내쉬며 겨울의 신부를 내려놓으니, 그 옆에서 서있던 괴한이 내게 말했다.
"기동력이 좋으니 다행이군. 다친덴 없는가?"
걷어차고 지랄났던 새끼가 하는 말이라 반감이 치솟았으나, 괜히 여기서 2차전을 했다가 떨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대충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게 무슨 욕인지는 모르는지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욕이라고 받아들이겠네. 저들 중 일부나 나와 동포는 아닌 것 같은데, 이름을 들을 수 있겠나?"
동포라면, 기계인가?
이렇게 잘생긴 기계가 어딨다고, 씨발. 시덥잖은 욕지기를 겨우 억누르며 툭 내뱉었다.
"네 이름부터 밝히면 알려준다."
"흐음,그것도 그렇군. 경계를 사도 이상하지 않긴 해. 그럼 먼저 소개하겠네. 앙심을 덜어주길 바라면서 말이지."
그 남자는 그렇게 말하더니 머리에 두르고 있던 터번 같은 것을 끌러 제 얼굴을 드러냈다.
드러난 얼굴은 명확히 기계인간이었다. 이족보행에 팔이 두 개 달려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간과 그 어떤 유사점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 그 남자의… 아니, 로봇의 얼굴은 완전히 강철로 된 남성의 얼굴이었다.
표정의 변화는 커녕 시선의 변화조차 없이, 남자는 다소 과장된 동작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식별명 NM-21,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나를 21이라고 부르나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은…."
말을 흐린 남자가 허리를 들어올리더니 끌러낸 천을 도로 얼굴에 두르며 덧붙였다.
"장검 연맹의 맹주라고 부르지."
뭐요 씨발?
내 숨 삼키는 소리를 들은 맹주가 흡족한 웃음소리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