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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화 〉성유물 (161/274)



〈 161화 〉성유물

판타지 좀비의 숫자는 확실히 불어나 있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연, 일지에서 보았던대로 성유물에 집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내 신성이 탐나서 그러는 거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어쨌든 수가 상당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뛰어올라 허공을 건너니,  아래에서 좀비들이 시끄럽게 외치며 따라붙었다.

퍼억! 퍼어억!

그렇게 달려나간 좀비들이 벽에 몸을 부딪히고, 떠밀린 좀비들이 짓눌리면서도 억지로 기어오르려 애쓴다. 좀비들은 그렇게 뒤엉킨 채 건물에 몸을 비벼대고 있었다.

"크와악!"


"꺼져 이 새끼야!"

뻐억!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다리를 휘둘러, 높이서 뛰어내린 좀비를 떨궈냈다. 떨어진 좀비는 다리가 부러졌는지 엎드린 채 나를 노려보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점점 양상은 안 좋아지고 있었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건물들은 갈 수록 수가 적어지고 그 크기나 높이 역시 줄어들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심층부로 나아갈 수록 전체적으로 지면의 높이가 상승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좀비들과 데스런을 해야할  같은데, 슬슬 건물과 건물 사이로 뛰어서 넘어다니는 것도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뛰어내려 달리면, 진짜 데스런이었다. 마냥 도망칠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도망쳐서  새끼들을 따돌린 채로 성유물을 쟁취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저 앞은 그정도로 좋지 못한 코스였다.


"이제 어쩔 거냐."


"아마 달려야겠지."

"그건 아는데."

"저기 신전 보이시오?"

맹주는 내 질문에 손가락으로 신전을 가리켰다. 한 눈에 보기에도 넓찍한, 심층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신전이었다.

자연적인지 인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간에 절벽을 끼고 있고 구름다리 같은 것으로 이어져 있는 게 잘만 한다면 좀비들을 떨어트릴 수도 있어보였다.

게다가 입출구는 하나였다. 내가 충분히 빠르게 가서 뭔가로 틀어막으면, 시간을 벌기엔 충분해보였다.


"저기로 가자는 거지?"

"그렇소. 뜀박질은 자신 있으시오?"


나한테 그걸 묻나? 거인의 힘을 가진 나한테?


내가 피식 웃으니, 맹주는 일부러 웃는 소리를 내고는 자세를 숙였다.

"먼저 가시오."

"좋지."

나는 겨울의 신부를 품에 안고, 겨울의 신부는 망설임 없이 내 목에 팔을 두르고는 밀착했다.

풍만한 가슴이  갑주 위에서 어그러지는 것이 흘긋 보였으나,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망설임 없이 바닥을 박차 뛰어내리니, 지면이 빠르게 다가오며 좀비 몇 마리가 눈에 보였다.


그 좀비들이 손을 뻗으며 나를 붙잡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나는 다리를 휘둘러 내뻗어지는 팔을 걷어차고는 지면에 착지했다.

"그아아아!"

"잡아봐, 씨발놈들아!"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들.

나는 곧장 다리를 놀려 빠르게 뛰어나가 좀비들에게서 벗어났다.


내가 있던 자리를 손으로 훑으며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는 좀비들의 모습에, 예전에 보았던 좀비 영화가 떠올라 괜히 섬찟해졌다.


확실히,  물량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거부감이 상당했다.

억지로 고개를 돌리고서 앞만 보고 달리니, 내 옆으로 금방 맹주가 따라붙는다.

맹주는 달리며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는 폐허 도시 안에서 급작스러운 추격전을 벌였다. 나와 맹주가 내달리는 길을 따라, 좀비들이 골목과 길거리를 가득히 메우며 달려들었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따라잡히면 결과가 마냥 좋긴 힘들테고.


하지만 다행히 신전까지는 마냥 그렇게  것도 아니었다. 나는 가까워지는 신전의 구조를 눈에 담으며, 맹주에게 외쳤다.

"들어가서, 기둥 부숴!"

"알겠네."

당연히 내가 떄려부수는 게 더 빠르겠지만, 나는 부순 기둥으로 입구를 틀어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역할을 나누어 수행하는 게  나은 법이었다.

맹주 역시 그 사실을 잘 아는지, 곧장 온몸에서 거센 증기를 뿜어내더니 두 배는 되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전에 도달한 맹주가 안으로 모습을 감추자, 소음이 들렸다.

쿠우웅, 콰지직!


바위를 억지로 때려부수는 듯한 소리. 착실하게 기둥을 부수는 소리였다.

그 뒤를 따라 신전에 들어선 나는, 주변을 살필 것도 없이 겨울의 신부를 내려놓자마자 맹주가 부숴둔 기둥 조각을 집어들었다.


"좆까, 이 새끼들아!!!"

평소라면 이걸 집어던졌겠지만, 몰려오는 수가 너무 많았다.


양팔 가득 들어올린바위를, 던지듯 그대로 입구에 때려박았다.

콰앙!

그 기둥은 상당한 크기였다. 나조차 던지고 나서야 크기를 깨달을 정도로, 입구에 곧이곧대로 때려박히기엔 상당한 크기였다.


그렇게 가로막힌 입구에, 우리가 숨을 돌릴 무렵.

쿠우웅!


덜컥덜컥!

 아 아 아!

입구에 맞물리게 때려박힌 돌조각이 덜컥거리면서 소음을 자아냈다.

아마 판타지 좀비들이 열이 올라서 두들겨대는 거겠지. 투구를 고쳐쓰며 숨을 뱉어내니, 맹주가 그 옆에서 이마를 쓸어대는 시늉을 했다.

 새끼 진짜 인간적인 행동 많이 하네.


"일단, 괜찮은  같소."

"그래, 그래보이네."


"반신공과 그 아내분께선 괜찮으시오? 다친 곳이나 불편한 곳은 없소?"

"나는 괜찮아."


"저도 괜찮아요. 걱정 감사해요."

맹주는 고를 숨도 없는 기계였으나, 아까 김을 뿜어낸 이후로는 뭔가 동작이 굼뜬 느낌이었다.


"그쪽은 좀 어떻고? 아까 뭐 뿜어내고  약해진 것 같은데."

맹주는 내 질문에 당황스러운지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그렇긴 하나, 신경 쓸 필요까진 없소. 애초에 잠시 과열해서 그런  뿐이니, 조금만 더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오."

그럼 다행인데. 아직도 덜컥거리면서 두들겨지고 있는 돌덩어리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성유물만 얻으면 되는 건가?"


"가는 길에 망자들이 반겨줄 가능성이 없지 않으나, 그렇소. 이제 그것만 하면 될테지."

그냥 몇마리 정도라면 문제랄 것도 없었다.


나는 별 걱정도 없이 신성 구획의 신전을 가로질렀다.


신전은 확실히 독특한 양식이었다.


언뜻 수도원을 떠올리게 하는 복도와 건축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양식 자체는 어쩐지 그리스식 사원을 떠올리게 했다.


석재를 특히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 그러했다. 어쩌면 신을 섬기는 것들은 다들 비슷하게끔 수렴 진화를 하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뻐억!


콰득!


과연 맹주가 했던 말대로, 좀비는 간헐적으로 나타나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았던 좀비들이랑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는, 천편일륜적인 비어버린 눈구멍과 창백한 피부의 대머리가 인상적인 괴물놈들이었다.


인간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신성의 산물.


나는  신성의 산물이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것에, 주먹을 휘둘러 턱을 부수고는 쓰러지는 놈의 허리를 짓밟았다.

"그아아아!"


확실히 머리를 쪼개지 않고 허리를 부수거나 턱을 으깨는  정도로는 죽지도 주춤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처 입어 움직이지 못하는 만큼 더 격정적으로 나머지 부위를 흔들어대고 소리를 질렀다.

"그아아!!!"


오히려 놈들은 한술 더 떠서, 다리를 못 쓰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꽤나 역겨운 꼴을 자랑하며 다가와  각반을 물어대면서 강한 치악력을 자랑했다.

아이템인데다 대전사가 입었었던 갑주에 흠집이 날 정도로, 놈들의 치악력은 상당한 편이었다.


어쩌면 나라고 할지라도 둘러싸이면 압사하거나 씹어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정도로, 이놈들의 끈기와 치악력은 상당한 흉기였다.

으직!


하지만 머리를 쪼개지는 것이나.


화르륵!

"기에에엑!"


화염에는 약했다. 어쩌면 봄의 순례자가 제작에 협조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내게 멱을 붙잡힌 채로 불타다가 스러지는 놈을 보다가, 손을 털어버리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겨울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당신께서 지켜주신 덕분에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답니다. 당신께서는 괜찮으신가요? 물리신 곳은 다치지 않으셨나요?"

호들갑은. 이 갑주 잘 안 뚫리는 거 알면서.


되려  완갑을 손으로 훑으며 걱정하는 겨울의 신부에게 웃어주자, 맹주는 그러는 우리 옆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신전의 구조는 독특했다. 중간에 위치한 구름다리는, 그 아래가 까마득해 보이는 벼랑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 너머에 성유물이 있다네. 그리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데, 꽤 거친 여정이었군."

맹주가 자평하는대로, 그리 멀리 온 것도 아니고 도시를 가로질러 신전에 온 것 뿐인데 꽤나 힘겨운 기분이었다.

나는 맹주의 뒤를 따라 계단에 올랐다. 구름다리 너머로 보이는 언뜻 보이는 인공태양은 무척이나 가까웠다.


 가까운인공태양의 햇볕을 직선으로 받는 신전의 최심부는, 천장이 없이 넓게 트여있는 상층부가 독특한 그리스식 사원 같은 느낌이 드는 신전이었다.


넓은 공간은 들어오는 인공태양의 불빛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사물이 없었다.

끽해야 중심에 위치해있는 아즈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단이 전부였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저기서 인신공양을 할 것만 같은 음침한 제단을 지나쳐, 맹주가 그 제단의 뒤에서 제단의 석판 위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성유물은 어디에 있지? 내가 의문 섞인 눈동자로 주변을 훑자, 뒤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가들려왔다.

"이런, 뚫렸군."


맹주의 말대로, 우르르 하는 소리에 뒤이어 무언가, 아주 거대한 인파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발소리의 총집합이 들려오고 있었다.


씨발, 그게 벌써 뚫린다고? 좀 아닌데?


유감스럽게도 다가오는 발소리는 진짜였다.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라리 빠르게 성유물을 챙긴 뒤에 도망가는 게 나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유물은 보이지 않았다. 이 공간에는 물건도, 더 이상의 길도,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내리쬐는 인공햇볕과 아즈텍식 제단이 전부였다.

뭐야, 씨발. 성유물 어디갔어.

설마하니 속였나 싶어 맹주를 바라보니, 맹주가 내게 머리를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 향했다.

비스듬히 들어올려진손가락은 하늘에 떠있는 어떤 물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 도시에 들어올 때부터 빛을 뿌리고 있었던 인공태양을.


그 인공태양까지 들어올려진 고개를 내리니, 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게 성유물일세."


아, 씨발.

좆같은 기믹, 미리 설명 좀 해주지 씨발.

일단 알게  건 좋은데, 가져가기엔 너무 높이 있고 너무 컸다.


그렇다고 부수기엔, 너무 멀리에 있어보였다. 여기가 가장 가깝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여전히 꽤 먼 편이었다.

"이 제단을사용하면  태양을 끌어내릴 수 있다네.그때 부수거나, 회수하면 되겠지만."


말을 멈춘 맹주의 머리가 스륵 움직여  후방을 향했다. 내 뒤에서는 성난 좀비떼가 내 신성과 살점을 삼키러 몰려들고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상대하기엔 너무 많은 좀비가.


회수까진 그러려니 한다. 잘만 보호한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좀비떼를 뚫고  큼직한  들고 내려간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리니, 맹주가 굳건한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부수는 방향이 될테지만, 끌어내릴 때까진 시간이 걸리네. 망자들을 막아주게. 최선을  해볼테니."


제단처럼 보였던 그것은, 맹주가 손을 대자마자 열려 일련의 콘솔처럼 변했다.


맹주는 그 콘솔에 드러난 자판을 두들기며 뭔가 입력하거나, 제 손을 꽂아넣어 무언가 조정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무르자고 하는  무리였다. 나는 들려오는 발소리가 너무 가까워 이제는 울리기 시작했음을 눈치채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씨발."

돌아갈  좀 좆같겠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등에 짊어진 폭군의 검을 끌어내리니, 그 묵직한 검신을 타고 빛이 산산히 흩어졌다.

내가 한 일은 간단했다. 내 앞에 다가오는 위험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것.


검극이 높이 솟았다가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울리는 폭음, 반  부숴져 너덜거리는 구름다리. 나는 다시 한 번 검을 들어올렸다가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웅!

쿠르르르르


부숴져 나락으로 사라지는 구름다리의 파편과 동시에, 좀비떼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침과 피를 질질 흘리는 유사인류 새끼들은 구름다리 너머에 있는 나를 보고는 몸을 내던졌다.


"그아아악!"

"그르아아아!"

몇 마리의 좀비가 멍청하게 몸을 내던지고, 그 몸을 내던지는 행렬에 좀비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투신자의 행렬에 내가 물러서니, 그들은 그렇게 떨어지는 그대로 벽에 몸을 내던지거나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씨발."

그렇게 자연스럽게 떨어진시선에서 벌어진 광경은상당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좀비들이 기적적인 교환비로 서로의 몸을 짓밟으며 벼랑 밑에서부터 육탑을 쌓아올리고 있었다.


아주 수가 많아지면 분명히 여기에 도달할  있음을 아는 것처럼, 나락으로 몸을 내던지는 좀비가 늘어나고 있었다. 구름다리를 때려부수는 것도 임시방편 정도에 그쳤다.

실제로도 아주 많은 새끼들이 몸을 내던져 다리를 만들어내면 건너와 나를 물어뜯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마냥 시간이 남아도는 게 아니었다. 나는 물러났다.


제단을 보았다. 제단에  붙다시피 한 맹주는 현란하게 제단을 조작하고 있었다.

태양을 보았다. 태양은 맹주의 현란한 손길에도 불구하고 절반도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선택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거검을 등에 짊어지고,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도끼를 꺼내들었다.

고열로 달아오른 도끼날과 화려한 몸체. 거검 다음으로 나를 오랫동안 섬겨온 효자 무기.


"에라이 씨발."


나는 그 효자를 든 손을 크게 당기고, 태양을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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