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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성유물 (162/274)



〈 162화 〉성유물

반신이  이후로, 꽤나 잘해보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봤다.


개짓거리 좀  하고, 뭔가 하려고 하면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저지르는 식으로.

사람들이 기대해주고,  밑에 사람들이 늘어나니 처음  세계에 떨어졌을 때처럼 덮어놓고 저지르기엔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래서 좀 더, 스마트하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러고 있진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행동하면서 깨달은 건, 나는 스마트하게 일을 해결하는 거랑은 아무래도 상성이 잘 안 맞는  같다는 거다.

겨울의 신부도 그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그런 말을 해왔던 거겠지. 일이 존나 꼬이면, 일단 화신 강림을 써서라도 일을해결하라고.


슬쩍 뒤를 돌아서 겨울의 신부를 보니, 그녀는 나와 맹주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뒤로 물러나 있으면서도 언제든 뛰쳐나와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지 내 방향에 몸을 두고있었다.

그 겨울의 신부의 측면, 제단에서 한창 콘솔을 조작하고 있는 토니 스타크를 보았다.

제단에서 뭐 얼마나 빠르게 작업하고 있는지는 내가 선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작업의 결과물은 빠르지 않았다. 결코.

이대로라면 좀비들이  넘어와서 개판이 나던가, 그 사이에 구멍이 난 천장으로 도망을 가 잠시 시간을 벌어가면서 다른 행동을 찾던가 중에서 밖에 고를 수 없어보였다.

좁고 짧막한 선택지 중에서 고르라고 강요받는 기분에, 나는 인공태양을 올려다봤다.

내 선택지는 결국 하나 뿐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방패를 찬 팔을 뻗어 조준대로 삼고, 도끼를  팔을 뒤로 뻗었다.

"좆까라지, 씨발."


내 혼잣말에 좀비들이 그르럭 대면서 나락에 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투신하는 이들과 열심히 일하는 로봇의 사이에서 태양을 향해 도끼를 겨누고 있는 내 꼴이 존나 우습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노라면, 이 도끼를 던지는  최선이 아닐 수도 있었다. 어쩌면 던지고 그대로 잃어버려서, 내가 쓸 수 있는 무기가 방패와 폭군의 검만 남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더 나은 투척물을 찾아낼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일일히 계산하며 찾아내기엔 시간이 없었고,  성질머리는 한계에 달해있었다. 다 뒈지는 것보단 한참 낫지.

으르렁거리는 근육을 단단히 붙들어, 도끼를  손에 악력을 전했다.

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를 두르고 있는 금속이 비명을 질렀다. 파손되지 않는 신의 아이템이 쏘아질 준비를 하며 화염으로 일렁였다.

끌어모은 힘이 팔을 버겁게 할 무렵, 나는 도끼를 던졌다.


콰아아아앙!

내가 디딘 바닥이 쪼개지며 타일을 위로 쏘아올리고, 그 갑자기 터진 파편의 폭풍 속에서 도끼는 쏘아졌다.


도끼가 날아가는 궤적은 화염과 열로 타오르며 내리쬐는 태양빛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유성우가 역주행하는 듯한 기묘한 심상을 선사했다.


어둑한 지하에서 갑자기 나타난 광선에, 태양이 숨을 죽였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


도끼가 때려박힌 인공태양은 요란한 소리를 자아내며 산산조각으로 부숴지고 있었다.


내부에 있는 필라멘트와 비슷한 구조의 무언가는 마지막 불빛을 깜빡깜빡 뿜어대면서 점멸하고, 그  가운데 꽂혔던 도끼는 튕겨져나가 도시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파티라도 벌어진 것처럼 깜빡이는 와중에, 나는 부숴지는 거대한 성유물을 보며 잔잔한 아쉬움을 느꼈다.


씨발, 저거 흡수하면 신성 개오졌을텐데.


어쩌면 거인의 힘을  강화한다던가, 다른 권능을 강화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숴버린 이상  이상 신경  건 아니었다. 후회를 털어버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  르 륵!

나락 너머에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는 좀비들의 끔찍한 광경. 그들은 벽을 마구잡이로 긁고 부딪혀댄 탓인지 전신에서 피를 줄줄이 흘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출혈임에도, 생명을 불태우는 듯 그들은 비어버린 눈구멍을 내게 향하며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거, 존나 많기도 하지. 씩 웃으며 도망칠 계획을 세우려는데, 내 눈 앞에 무언가 불쑥 나타났다.

[성유물을 파괴해 신성을 흡수합니다.]


[강화할 권능을 선택해주세요.]

[거인의 힘]


[화염 부여]

[영원의정신]


[화신 강림]


그건 시스템 메세지였다. 창조신이 만들었다는, 어떤 계시의 일종이라는 그것.


오랜만에 나타난 그것은, 내게 선택지를 제시하고 내가 뭘 해낸 건지 설명하고 있었다.


성유물이라는 거, 부숴도 흡수할  있었던 건가?


괜히 이런 곳까지 기어올라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메세지가 재촉하는 듯 깜빡였다.


나는 그제야 띄워진 권능의 목록을 살펴보며 턱을 짚었다.

좋은  좋은 거다. 어쩌면  중에서 적절한 권능을 강화한다면 저 좀비들을 상대로 승산이 좀 생길런지도 모른다.


거기에 겨울의 신부나 맹주를 죽이지 않아도 될테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화신 강림이었다.

겨울의 신부와 맹주가 없었다면 그대로 사용해서 전부 불태울 수 있을, 지금 내가 가진 것  가장 강력한 권능.


이건 논외였다. 강화해봤자 위력이 늘어나는 정도로 족할텐데, 그것 정도로는 가장 큰 문제인 팀킬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럼 다음으로는 화염 부여. 정확히 권능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화염을 뿌릴 수 있거나 사용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치고 위력이 늘어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으나, 명확한 게임 체인저라고  수는 없었다. 화염을 두르는  정도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그럼 결국 거인의 힘 아니면 영원의 정신이었다. 내가 가진 것  최고의 효자 권능과 제일 계륵인 권능.


하지만 거인의 힘을 고르는 건 좋은 선택지 같지 않았다.


지금에서 힘이 강해진다고 해봤자, 아주 크게 전황을 바꿀 수 있을  같진 않았다.

이미 공격력은 충분했다.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좀비들의 대가리는 그냥 부숴버릴 수 있는데, 구태여 힘이 더 올라봤자 가시적인 차이로 다가오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선택지는 명확했다.

영원의 정신이 강화되면 어떤 방향이 될지 모르나, 체감 속도만 느려지고 속도는 빨라질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다면 일대다의 형국이  싸움에 도움이 될테고.


 손가락이 시스템 메세지로 향하자, 띄워진 메시지가 하이라이트 됐다.

[>영원의 정신<]

영원의 정신을 두르고 있는 테두리가 짙어지더니, 완전히 감싸는 형태로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확대되는 메세지가 일렁이더니, 글자가 무너져 내렸다.


내리는 비에 종이가 녹듯, 흘러내리며 깨져나간 활자가 다시 집결한다. 다시 모여든 글자는 그 수나 모양새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불굴의 정신]

[영원조차 뛰어넘을 수 있을 불굴의 정신을 손에 넣습니다.]


[발동 시 3인칭, 사고 가속, 위기 시 자동으로 사고 가속, 정신 공격 무효, 유지 시간 제한 없음.]

[모든 기능은 독자적으로 사용할  있음.]

나는 띄워지는 메세지를 이해하려 한참을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내용을 이해했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이겼다고.




*

NM-21, 장검 연맹의 맹주는 부숴져 흩어지는 인공태양의 파편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감정이 눈에띄지 않는 얼굴과 외피를 가지고 있으나,  광경은 그로하여금 상당한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냥 도끼를 던져 부술  있다니?


물론 저 인공태양을 파손하려고 하더라도 단단한 전면부가 아닌, 여기서만 보이는 후면부를 타격하는  맞긴 했겠지만,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부술 수 밖에 없다는  그에게 상당한 유감으로 다가왔다.


만약 저 파편들이 떨어져서 망자들이 깔려죽어 걱정거리가 덜었으면 그렇지도 않았겠지만, 한참 멀리서 부숴진 인공태양은  파편을 아무도 없는 인적 드문 곳에 떨어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어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을 구름다리를 바라보았다.

부숴둔 탓에 당장에는 걱정이 없었지만, 조만간 넘어올 것이다. 그들은 그런 존재이니.


그럼 기왕 성유물을 파괴한 김에 도망치는 게 나을 터이나, 마냥 그게  풀린다고 장담할수도 없었다.

영원히 저 망자들을 피해 이 도시에서 도망다닐 수는 없었다. 저들이 가져온 식량이 한계에 달하면, 보급이 필요 없는 NM-21을 제외한 모두는 죽게 될테지.


맹주는 안타깝다는 감정을 되살리며 그 구름다리 바로 앞에 서있는 남자를 보았다.

인공태양의 신성이 거둬져 깜빡이고 있는 탓에, 그의 형체는 흐렸다.


"…이보게?"

그 남자는 뭔가, 이상했다.


아까와는 달리, 조금 기계적으로 보일 정도로 동작이 절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조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반신은 제 주먹을 내려다보고, 손을 쥐었다가 펴며 확인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엔 너무도 두서 없는 상황이었다.

NM-21은 당황감에 낯을 굳히고 싶어하며 그에게 다가섰다.

다가서는 걸음에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그 반신은 불현 듯 말했다.


"야."

"어, 그래. 왜 그러나? 거기서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네. 어서 도망을…."

"됐고."


그 반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NM-21의 위치를 추측해내는 것처럼 정확히 등을 보인 채로 말했다.


그 남자가 주먹을 쥐었다가 펼 때마다, 거슬리는 쇳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혹시?'


자기희생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모습은 그럴 듯해 보였다.

그 남자는, 반신은 기지개를 켜는 듯 하더니 양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내 아내를 부탁한다."

"뭐? 아, 아니 된다! 반신, 자네도 살아가야 하지 않은가! 부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차라리 나에게…!"


그 반신은 듣지도 않았다. 이미 굳게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신성이 있어 다소 버티기는 할테지만, 저 망자들에게 긁히고 물릴 때마다 그 신성마저 소모되어 결국엔 신성을 가진 망자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었다.

맹주는 그래서 빠르게 몸을 날려 그를 붙잡으려고 했다.

주현성은 그런 그의 접근을 보고서는 피식 웃었다.

비웃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그가 붙잡기 위해 손을 뻗는 순간, 주현성은 나락으로 몸을 내던졌다.

다이빙을 하는 것처럼 다소 후련하게.


그 갑주를 두른 몸이 나락 아래로, 그를 향해 뻗어진 망자들의 손아귀로 사라지자.


파아아앗!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인공태양의 불빛이 꺼졌다.

어둠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주변을 빼곡히 뒤덮었다.


순식간에 어두워져 시각 유닛이 제대로 시각을 구현해내지 못했다.

맹주는 그 갑작스러운 암전에 시각 유닛의 감마를 높이려 애쓰면서 바닥을 두드렸다.


"연인을 두고 어찌 이리 쉽게 떠난단 말인가…! 희생을 하려거든 외인인 자네가 아닌 내가 했어야 하거늘…!"

그는 후회하면서도 냉정하게 계산했다. 한 편으로는 감정적으로.

희생해버린 것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이제 그의 연인이라도 안전하게 밖으로 꺼내어주어야 한다.


어쩌면  사후세계조차 존재하지 않는 목숨을 태워서라도.


NM-21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감마가 높아진 시각 유닛 너머로 무엇을 보고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빛?"

그건 빛이었다.

어둠 속, 좀비들이 끊임 없이 몸을 던져넣는 구덩이에 가까운 나락, 도시의 가장 낮은 층으로 이어지는 그 통로 속에서 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일견 서정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터오는 동처럼, 이 지하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 아득한 수직적 지평 너머로 태양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맹주는 무심결에 그 모습을 눈에 담으려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눈의 조리개를 움직여 확대했다.


번져나가는, 마치 어둠을 가로지르는 선의 개전처럼 보이는 그 빛은, 화염이었다.


그 아득한 나락 아래에서, 누군가 전신에 화염을 두른 채로 망자들에게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휘두른 주먹은 과격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폭력적이다.

그 폭군에 가까울, 패도적인 움직임에 망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거친 동작임에도, 망자들은 그에게 손끝 하나 닿지 않았다.

마치 사는 세계가 유리된 듯, 망자들은 손을 휘두르고 달려들고 있음에도 전혀 닿지 못했다.


항상 그에게 닿을라 치면 망자들의 머리가 부숴졌다. 부수는 주체는 주먹, 다리, 발끝과 방패였다.


부숴져 흩어지는 잿더미가 튀어오르고, 그 잿더미가 제 얼굴에 묻으면서도 NM-21은 그 광경을 내려다볼 수 밖에 없었다.

지하에서부터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빠르게 벽을 내달리고 있었다.


내달리는 궤적을 따라 빛이 달린다. 퍼져나간다. 그의 육신에 닿은 망자들이 주먹질에 박살나 널부러진다.


폭력으로 빚어낸 여명이 지척에 달하고, NM-21이 몸을 뒤로 물리는 순간.

투화아아아악!!!!

지저에서부터 솟아오른 반신은 죽음을 흩뿌리며 좀비떼를 향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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