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화 〉성유물
단 한 명이 여럿을 상대하는 건, 말로 설명하자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저 한 번에 한 명씩 상대하면 된다. 그리고 그걸, 적의 수만큼 계속해서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막상 그걸 실천하기 위해 실전에 나서게 된다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적이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거니와, 그걸 강제하면 어떻게든 돌파구를찾아낸다.
그러니 이제소수 측에 선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압박해야 한다.
적에게 그 일대일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압박해야 한다.
일대다를 위해 필요한 조건들은 기실 그것들을 위한 요소에 불과하다.
한 동작으로 하나를 죽일 수 있는 공격력과 효율성.
그것을 적이 모두 뒈질 때까지 반복할 수 있는 체력.
거기에 한 번에 한 놈 이상 상대하지 않도록 조정하는 능력이나 위치 선정.
이 판타지 세상 속에서 상기한 조건 중 첫번째와 두번째를 갖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당장에 나만 하더라도 거인의 힘으로 그 두 가지는 완비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있다면 세번째였다. 저 좀비들의 육탄 공격과 돌진 능력, 자신의 육신을 돌보지 않는 저돌성은 상당한 변수로 작용한다.
내가 높이 있다면 끌어내리기 위해 서로를 밟고 올라오고, 내가 거리를 벌린다 싶으면 몸을 내던져 물고 늘어진다.
통상적으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만약 평범한 인간들이라면 물리는 순간 좀비로 변해서 저 대열에 합류해버릴테고, 신성을 가진 존재라고 하더라도 마냥 버틸 수는 없었다.
몇 번이나 버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지만 만약에.
등뒤에서 보는 것처럼 내 주변 전체를 내려다보며 전황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고.
동작을 그 상태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으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체감 시간이 느려져 공격을 충분히 보고 움직일 수 있다면.
한 번에 여럿이 달려들더라도, 본질적으로는 한 번에 하나를 상대하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시점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4천 시간이나 눈에 익혀왔던 시점이니, 오히려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정확했다.
그 정확한 시야로, 달려드는 좀비의 아구창을 후려갈겼다.
쩌억!
목이 돌아간다. 부러진 목뼈가 달랑거리며 살아남은 머리가 덜컥이지만, 그것도 잠시다. 나는 곧장 다른 손을 뻗어 그 머리를 움켜쥐고 무릎을 올려쳤다.
쾅!
후두둑
부숴진 뇌수와 뇌골 따위가흩어져 바닥에 흩뿌려지고, 그 빈틈을 메우려 다른 좀비가 달려든다.
달려들어 몸을 내던진다. 단순무식한 돌격이지만 부딪힌다면 발이 묶인다.
잠시라도 발이 묶이면 그대로 몇십마리가 달려들어 깔아뭉갤테니 잡혀선 안된다.
그럼 선택지는 더욱 간단하다. 몸을 왼쪽으로 기울여 피하고, 그 피하는 사이에 좀비의 궤적에 내 주먹을 밀어넣었다.
짧은 어퍼컷이 턱을 뚫고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콰직!
내 뒤에서 좀비가 다가온다. 슬그머니 다가오진 않아 소리가 들릴 법도 하지만, 지금도 고함을 지르는 무수한 좀비떼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볼 수 있다. 나는 뒤에서부터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팔꿈치를 휘둘러 머리를 으깨고.
"크르악!"
내 앞에서 달려오는 좀비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쩌적!
부숴진 두개골의 촉감이 건틀릿을 타고 흐르고, 얼굴이 뭉개진 좀비가 쓰러지자마자 다리를 휘둘렀다.
돌려차기의 빈틈은, 바로 몸을 눕히면서 기어온 좀비의 머리를 팔꿈치로 내리찍는 것으로 해결한다.
극단적인 효율. 나는 최대한 한 동작, 아니 반 동작에 한놈씩 죽이기 위해 동선을 계산하고, 거리를 계산했다.
4천 시간을 플레이하며 익혀온 감각은 내 눈으로 보는 것보다 정확하게 간합을 도출해냈다.
박차듯 몸을 튕겨 일어나고, 거기에 치여 넘어진 놈을 무시하고 달려드는 놈의 뒷목을 잡고 머리를 휘둘렀다.
꽈아아앙!
시각은 도움이 안된다. 눈을 감아도 무방했다. 내 시각은 내 등 뒤에 매달려 있었으니까.
그럼 머리는 주먹이나 다리와 구분되지 않았다.
달려드는 좀비의 머리를, 투구의 뾰족한 부분으로 찔러죽인 후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좀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신전 한 가운데, 타오르는 내 몸뚱이를 향해 이 인간도 못되는 괴물새끼들은 성실하게 다리를 놀리며 내 전방위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화신 강림은 쓰지못한다.
범위가 상당히 넓은 걸 감안하면, 괜히 지금 썼다가 전부 휘말려서 날 제외하고 전부 죽어버린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싸움은 여유로웠다. 내 생각 그 이상으로.
좀비들이노리는 건 분명 육탄돌격. 그 대가리로 어떻게 생각해낸 건지, 팔을앞으로 내밀고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대로 몸을 띄우며 뛰어들 생각인 것처럼 보였다.
내 몸에 둘러진 화염 따위는 개의치도 않는 폭력적인 돌격.
지금 나를 압사시키겠다는 의지가 선명히 느껴지는그 자살특공에, 나는 짙은 숨을 내쉬며 방패에 신성을 불어넣었다.
사용하는 건 화염 부여.
결과는 그 이상으로 선명했다.
내 시야에 내 몸뚱이를 향해 까맣게 달려들어 뒤덮는 좀비가 보인다.
내가 내 몸을 3인칭으로 내려다본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기묘하면서도편리했다.
나는 좀비떼에 뒤덮여 보이지 않는 내팔을 움직였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끔찍한 소음과 함께 돌아가는 신성톱이, 닿는 좀비를 문자 그대로 갈아내며 틈바구니를 비집는다. 달려들던 좀비들이 산산히 뿌려져 흩어진다.
콰드드드드득!!!!
생살이 고열과 톱날에 갈려져 뿌려지는 소리, 지면을 달려들던 것 이상으로 새까맣게 물들이며 흩뿌려지는 좀비들의 내장.
나는 그 내장의 비를 맞으며 피를 흩뿌렸다.
후두둑
뿌려진 피는 달궈져 바닥에서 김을 피어올렸다.
보통의 다른 적들이라면 주춤하면서 물러서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위력.
하지만 좀비들에게는 이성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동족들이 죽어나간 게 분하기라도 한 것처럼, 내게 팔을 내뻗으며 달려왔다.
크아아아악!
그르르악!
징한 새끼들.
달려오는 놈들을 바라보다 주먹을 세워 부딪혔다. 그러자 어둑한 지하 속에서 천둥이 울려퍼졌다.
꽈릉!
그 뒤, 굉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나는 여지 없이 주먹과 방패를 휘둘렀다.
뻐억!
나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놈을 보다가, 살짝 물러나 피하고는 주먹을 올려친다.
회피와 거의 동시에 이뤄진 어퍼컷에 머리가 박살나 위로 튕겨져나가고, 그 뒤를 다른 좀비가 뒤따른다. 그 놈에게 로우킥을 때려박는다.
콰득!
무너진 다리로 인해 기우는 자세에, 방패를 꽂아넣었다.
으드드드득!!!
갈려나가 갈라지는 두개골에서 더운 김이 뿜어지고,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좀비에게 크게 신성톱을 휘둘렀다.
으지지지지지지직!!!!
겹치는 궤적을 향해 달려오던 좀비 다섯의 몸뚱이가 토막나고, 흩뿌려지는데도 좀비들은 그 틈바구니조차 빈틈으로 여기고 달려들었다.
수가 많다. 마치 지하철 출근길, 만원인 차량에 가득 들어찬 인간들이 전부 나를 노리고 달려드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죽이고 죽여도 줄어들지 않는 것만 같은 모습. 일견 기죽을 법한 모습이었지만, 내 정신은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
불굴의 정신 덕분인가? 아니면 거인의 힘?
어느 쪽이 먼저 오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금의 나라면, 정말 영원히 싸울 수도 있다고.
나는 달려드는 좀비를 향해 다리를 걷어차고, 가속을 이용해 몸을 앞으로 쏘아냈다.
콰지지지직!
다리에 걸린 좀비들이 핏물이 되어 흩어지고, 박살난 놈들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끊임 없이 증원된다.
나를 향해 밀려드는 군세는 내 무위에도 기죽지 않고 밀려들었다.
"좋아, 누가 먼저 뒈지나 끝까지 해보자고."
내 전부를 활용할 시간이었다.
이 군세는그게 아니면 상처 하나 없이 쓰러트린다는 게 불가능했다. 숨을 들이키고, 달려드는 놈들을 향해 방패를, 주먹을, 다리를, 머리를 내질렀다.
밀려드는 군세에도 내 공격의 기세는 죽지 않았으며 내 등뒤에서 보이는 풍경 덕에 나는 기습받지 않았다.
기습하기 위해 그림자에 숨어 달려드는 놈들의 머리를 방패로 갈아내고, 걷어차 쓰러트린 후에 그 시체의 발목을 잡아 휘둘렀다.
화염 부여가 걸린 시체에 얻어맞은 좀비들이 쓰러지고 불이 번져 죽어간다.
착실한 살인. 목가적인 학살에 달려들던 좀비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한손으로 셀 수도 있을만큼 남은 좀비들은 제 수가 줄었음에도 그 어떤 사기의 하강도 없이 내게 선명한 살의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나를 향해 달려드는 좀비의 수는 다섯, 나는 망설임 없이 마주 달려가며 어깨로 들이받았다.
콰아앙!
으직!
부딪힌 좀비가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 으깨지는 골육의파괴음.
콰직!
뒤이어 가장 먼저 달려드는 놈의 머리를 앞차기로 분쇄하고.
애애애애애앵!
콰지지지직!
곧장 달려드는 두 놈을 방패로 쪼갠다.
쪼개져 바닥에 쓰러지는 좀비들이 내 발목을 붙들기도 전에, 마지막 한 놈이 나를 향해 달려와 뛰어들었다.
쩌억!
퍽!
뛰어드는 놈의 거리와 궤적을 읽어, 놈의 공격이 닿지 않을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다리를 올려찬다.
내 올려차기에 정확히 가격당한 턱이 으스러지고, 머리가 그대로 뽑혀 천장에 쳐박혔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는 비척대다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그렇게 쓰러지는 시체를 바라보다, 방패를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에서는 더운 김이 솟았다.
그제야 나는 주변을 살폈다.
족히 수백마리는 될 양의 좀비. 쪼개지고, 박살나고, 불타서 널부러진 그 수백의 시체가 작은 구릉을 이루고, 그 구릉 제일 위에는 내가 있었다.
그야말로 쌓여진 시체의 산 위, 나는 차오르지도 않는 숨을 뱉어내며 귀를 기울였다.
―그어어어
두두두두두
몰려드는 소리는 내 아군은 아닐 터였다. 나는 웃으며 등에 짊어진 거검을 꺼내들었다. 드디어 꺼내어진 폭군의 검이 화염 부여로 타올랐다.
*
유적 바깥의 싸움은 산왕국 측의 승리로 끝났다. 산왕국 측 파견 전사장이자 군주, 족장인 염소머리의 쿠넬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싸움 자체도 끔찍하게만치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가 꼴사납게 기절했다는 것과, 기사단을 섬멸하진 못했다는 것. 그들은 조만간 새로운 병력을 이끌어 이 도시에 당도할 게 분명했다.
지금 소모된 병력과 산왕국까지의 먼 거리, 부상자를 제외하느라 더욱이 줄어들고 사기가 떨어진 병력으로는, 새로이 밀려들 기사단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었다.
부상자를 포기하고 유적의 문을 돌파하여 안으로들어선 것은, 그로써는 도박에 가까웠다.
이대로 들어서서, 그 기사를 상대하고 성유물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도박은 성공이었다. 그 전에 그걸 가지고 안전하게 이탈하는 것도 전제로 둬야겠지만.
하지만 막상 들어오니, 그런 걱정은 미뤄둬도 된다는 게 명확히 보였다.
복도에서부터널려있는, 불에 타고 쪼개지고, 부숴진 시체들. 그 시체들은 그 몰골만 하더라도 끔찍할 수준이었다. 멀쩡한 시체도 가히 괴물에 가까웠다.
"이게 뭐야… 유적지가 아니었나?"
쿠넬이 그렇게 읊조리자, 창이나 도끼 검과 방패 등을 들고 뒤를 따르던 전사들의 얼굴이사색이 되었다.
괴물도 깨나 죽여보고, 전쟁은 밥먹듯이 치뤘던 베테랑들의 눈으로도 널려있는 괴물들의 수와 모습은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은 꽤 긴 편에 속하는 복도를 지나면서 그 시체들을 꼼꼼히 살폈다. 공통적인 상흔이 너무도 많았다. 소수의 작업물이었다.
그들은 읽어낸 흔적에 끔찍해하면서도 꾸준히 나아갔다. 뒤로 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었다.
기다란 복도를 지나, 부숴져 바닥에 엎어져있는 대문을 지난 후에야 그들은 볼 수 있었다.
그 복도에 널려있는 시체는 극히 일부라는 것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였다. 도시는 한 때는 풍족하고 발전되어 있었을 법 했으나, 곳곳에서 불이 피어오르고 이리저리 부숴져있어 마냥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 묵시록적 풍경은 분명히 눈을 잡아끌었지만 결코 당황하여 무기를 떨어트릴 정도는 아니었다. 정작 가장 충격인 것은 달리 있었으니.
뒤에서 들리는 철그렁 소리에, 슬쩍 눈을 돌려 도피하니 전사 중 하나가 제 무기를 떨어트리고 당황하고 있었다.
쿠넬은 더 이상 회피할 수 없음을 알고는 다시 앞으로 눈길을 향했다.
도시로 내려가는 거대한 계단에 널려있는 시체와, 그 앞에 가득히 쌓여있는 시체의 산.
집채만하게 쌓여있는 시체 더미는, 어림짐작으로도 수백에 가까운 괴물이 죽어 널부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 시체들은 대부분 머리가 부숴지거나, 몸이 반으로 짓이겨져 내팽겨쳐져 있었다.
그 시체들의 산 제일 위, 꼭대기라고 할 수 있을 부분에는 누군가 앉아있었다.
"…어머니…."
누군가 읊조렸다. 어쩌면 쿠넬 본인일지도. 쿠넬은 당황과 공포로 인해 차마 말을 하지 못한 채 그 시체를 양산해낸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그건 기사였다. 유적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갔고, 자신에게 주먹을 휘둘러 기절시켰던 기사.
그 기사가, 인간이 쓰는 걸 용납치 않을 법한 거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분위기와 모습, 쿠넬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가, 그 기사가 일어나 다가오기 시작하자 졸도할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 약진을 바라만 봤다.
걸음마다 산산히 부숴진 시체가 잿물이 되어 흩어진다.
발걸음마다 화염이 깃들어 있는지, 그 걸음 아래에들어선 시체들은 전부 잿물로 변했다.
그 뒤에서 그 일행으로 보이는 요상한 갑주 차림의 인간과 여성이 따라오고 있었으나, 그는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들고 있는 무기를 덜덜 떨며 그 기사를 겨누었다.
그 기사는 그럼에도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의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전신에서 끼쳐오는 흉흉한 분위기와 피냄새, 화염의 냄새.
그는 그 광경에, 얼마 전에 산왕국의 수도에 모습을 드러냈던 가을의 마녀를 떠올리며 이를 딱딱 소리가 나게 부딪혀댔다.
침을 삼키자, 그 기사가 물었다.
"싸울 거냐?"
애매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었다.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알아듣기힘든 말.
하지만 그 목소리에 깃든 흉흉함만은 선명했다. 섬뜩할 정도로.
쿠넬은 전사장, 족장, 전사로서의 자존심을 내버리고 무심결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앞으로 몇십년간 후회하게 될 거부였다.
그 모습을 본 기사는 내려다보며 한 마디했다.
"좋네."
그게 전부였다. 기사는 그 말만 하고 거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 걸어나갔고, 그 뒤를 한 여성과 한 남자가 뒤따랐다. 뒤따르는 이들의 바로 앞에서, 선명한 붉은 망토가 흩날렸다.
계단에 선 그들은 그 광경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제지할 생각도, 공격할 생각도 못한 채.
그들은 걸어나가 걸어닫혀진 대문 앞에 섰다. 대문의 무기질적이고 거대한 질량은, 기사가 밀어젖히자 가볍게 열렸다.
그렇게 열리는 문 너머에서 들어오는 역광에, 복도가 밝아졌다. 눈을 뜨고 있기조차 힘든 역광으로 그들은 눈을 가리면서도 그 기사를 바라만 봤다.
그들은 그렇게 유적지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