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성유물
비쳐오는 모닥불에, 도끼날에 감도는 열기가 더욱 거칠게 일렁였다.
그 일렁이는 모양새가 마치, 왜 자신을 던졌냐며 책망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솔직히 되찾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던져버린 물건이었으니까.
나는 그 도끼가 꽂혀있었던 파편을 손아귀에서 굴려 바라보았다.
도끼자루에 빗겨서 내 손에 쥐어진 그것은, 도끼날의 열기와는 사뭇 다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좀 더… 천연광에 가까운, 화염 특유의 거세고 휘몰아치는 듯한 빛과는 많이 다른 종류의 빛.
솔직히 말하노라면, 이 돌만 놓고 봤을 때 인공 태양의 파편이 아닌 인공 달의 파편이라고 생각할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여전히 은은히 빛나고 있는 그것에는 더 이상 신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신성은 완전히 내 신체로 들어와, 영원의 정신을 불굴의 정신으로 바꾸는데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 신성은 온데간데 없어야 맞았고, 내가 감지하기에도 신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돌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신의 구성 요소가 원래 빛이었다는 것처럼 선명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원리는 뭘까? 만약 원리가 달리 없다면 그 동력은 뭘까? 마력?
알 수 없는 돌이었다. 괜히 고대의 도시에 있었던 그 유적지의 인공 태양 조형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그 단서조차 짚어낼수 없는 기묘함이었다.
나는 그신기한 돌을 쥔 채로 펼친지 얼마 되지 않은 야영지에 누워있었다.
내 머리 위로 즐비하게 박힌 보석같은 별들이, 은하수에 어우러져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한쪽 눈을 감고 눈 앞에 그 돌덩이를 가져다댔다.
확실히, 이 돌에서 나오는 빛은 달이나 별이 어울렸다. 태양이 아니라.
그렇게 궁상을 떠는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비가 왔었는지 장작이 흔하지 않더군. 숲 깊숙히까지 들어가야 했지 뭔가."
허허 웃는 소리는 인위적인 기계음이 섞여있었다. 저 아이언맨에게는 웃음이라는 기능이 달리 없음에도, 상대하는 이들이 듣기 좋으라는 것처럼 일부러 웃어대고 있었다.
나는 그 인위적인 익살에눈만 슬쩍 돌렸다.
"토니 스타크 어서오고."
"토니…? 내 식별명은 NM-21일세."
"아, 뭐 어때. 맹주라는 이름도 있잖아. 토니 스타크도 해."
"…으음."
토니 스타크는 내 말에 곤란한 듯 웃다가 품에 안고 온 장작을 겨울의 신부 옆에 내려놓았다.
겨울의 신부는 제 앞에 우수수 떨어지는 장작에 방긋 웃더니 그 나뭇조각들을 집어들었다.
손에 들린 나이프가 춤을 춘다. 그 고운 손으로 해낸다고 믿기 힘들 수려한 움직임으로, 나무의 젖은 부분이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어 다듬어 모닥불에 밀어넣었다.
밀어넣어지는 장작들에 모닥불이 불티를 튀기며 거세게 요동쳤다.
"인간들은 추위를 잘 탄다고 알고 있다네. 거기에 요즘 계절이 춥다고들 하더군. 그걸 감안해 많이 가지고 오려고 노력했다네. 그 탓에 아마 이번 새벽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더군."
과연.
한 때 한 연맹의 맹주를 맡았다는 놈답게, 꼼꼼한 일처리였다.
나는 불티가 튀어오르며 주변을 뜨겁게 덥혀대는 모닥불을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동대륙에 비하자면 그렇게 추운 편도 아니었으나, 여전히 좋은 호의였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맹주는 일부러 웃는 소리를 내며 모닥불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 등을 보이며 걸터앉았다.
철컥
금속음이 울리고, 한적한 숲속에서 모닥불의 은은한 온기와 빛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비춰지는 침엽수림은, 어쩐지 포근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분위기 오지네.
손아귀에서 굴리고 있던 도끼와 돌을 도로 품과 허리춤으로 되돌리자, 한창 장작을 다듬고 있던 겨울의 신부는 내 옆으로 꾸물꾸물 다가왔다.
팔을 뻗으니 그녀는 그 팔에 제 머리를 얹고는 밀착했다. 밀착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풍만한 유방이 내 가슴팍에 눌리게 만들었다.
한적한 분위기, 그 유적지 내에서는 꿈꿀 수도 없을 한적한 침묵에, 우리 모두 너나 할 거 없이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내 상념은 그 와중에 빠르게 거둬졌다.
"…너, 왜 따라온 거냐? 나는 네가 장검 연맹 쪽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내 질문에 고요히 앉아있던 맹주가 움직였다. 덜컥거리는 관절음이 귓전에 들리고, 맹주가 느긋하게 대답했다.
"내가 장검 연맹을 떠난 건 꽤 긴 시간이 지난 후라네, 친구. 언젠가는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돌아가는 때는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닐 걸세. 그들이 살기 위해 고를 방법이 없을 때나, 그들이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때겠지."
"…그거 좀 무책임한 거 아니냐?"
내 질문에 맹주는 예상했다는 듯 설익은 웃음을 흘렸다.
웃음소리는 기계음이 섞여있음에도 감정이랄 게 풍부하게 느껴졌다.
로봇이 감정 가지면 좆되는 게 클리셰라는데, 얘는 좀 가지고 있는 걸로는 해도 안 끼칠 듯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니, 맹주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자네의 관점이라면 나는 무책임한 게 맞을 걸세. 하지만… 내가 돌아가면 그들은 나를 도구로 사용해 세력을 끌어모을 걸세. 세력을 끌어모은 것 자체는 나쁘지 않으나, 나는 장검 연맹 밖에서 장검 연맹을 들여다보아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확신할 수 있었다네. 그들은 그렇게 끌어모은 세력으로 전쟁을 벌일 걸세. 황제를 잃어 흔들리는 제국을 공격하고, 사방에서 칼을 겨누어 와서 쇠약해진 교단을 핍박하겠지."
뚜렷한 통찰이었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니, 맹주는 말을 끝맺었다.
"난 그렇게 둘 수가 없다네. 차라리 둘로 나뉘어 서로를 엿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이 가장 낫겠지."
"네가 맹주면 그런 거 막을 수 있지 않냐?"
회한에 찬 듯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언맨에게 말하니, 그 아이언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또 그리 쉬운 이야기가 아니라네. 공국의 수장은 분명 대공이기도 하고, 대공의 원탁에 앉아있는 이들은 나와 동포들이 공국을 공격해 해방시키기 전부터 제 자리를 지켜오던 진짜 세력가들이라네. 공국의 모든 물건과 군사력은 그들의 손을 거치지. 설령 맹주가 반대하더라도, 나머지 원탁의 의원들이 동의한다면… 전쟁은 일어날 걸세."
마찬가지로 내가 대답할 수는 없었다. 침묵을 지키니, 맹주는 말을 이어나갔다. 담담한 기계음은, 내게 기묘한 감상을 전해주었다.
"나도 처음에는 맹주가 되어바꿀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리 되진 않았다네."
"왜?"
"모두 지향하는 국가의 방향이 다르고, 그 국가의 방향이 같은 이들 사이에서도 방법으로 차이가 갈리기 마련이었으니 말이지.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네.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지. 짧지 않은 평생이지만, 평생을 싸움과 유적의 관리만 해왔던 내게 있어 그걸 바꿀 방법은 없었다네."
"그렇군…."
"무엇보다 내가 이끄는 방향과 방법이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네. 그러니… 타인을 이끌어 나아갈 수가 없더군. 공국의 전쟁조차도 시기적절한 제국의 지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마당에,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고작 기계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일세."
그런가.
그렇게 아예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 밑에서 도시를 갈고 닦으며, 나를 위해 봉사하는 이들은 그런 문제가 없어보였으니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토니 스타크의 경험을 부정할 순 없었다.
수염과 선글라스 없는 토니 스타크는 고개를 한 번 더 내저었다.
"리더는 어려운 일일세. 그게 옳든, 옳지않든 자신이 이끈 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조직의 업을 뒤집어 써야만 하지. 오래 하진 못할 짓이야. 영원을 사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하기 힘들더군."
하긴, 기계에게 수명이랄 건 그다지 없겠구나. 관리만 잘해주면 거의 평생 갈테니.
어쩌면 질려서 그런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겨울의 신부 쪽으로 돌아누우니, 겨울의 신부는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밀착해 내 턱에 이마를 문댔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네. 그래서 자네를 따라가고 싶더군. 내 평생, 자네처럼 그 어떤 대책도 없이 움직이면서 자신을 그리 확신하고 빛날 수 있는 존재는 처음이었다네. 무심결에 따라나서고 말 정도야."
어, 디스인가? 아니면 칭찬? 어쨌든.
나한테 그런 특수성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NM-21은 일부러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긴,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이 기계는 단순히 보노라면 다른 연맹의 맹주였던 기계지만, 동료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능을 갖고 있었다.
기계이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 없이 싸울 수 있고, 전투력도 나와 몇 합을 주고 받을 수 있을정도로 뛰어났다.
물론 몇 합 더 주고받으면 결말이 났겠지만, 적어도 저정도 전투력이면 인간 기준으로는 탑티어였다.
메이처럼 전투에서 기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기용할 가치는 충분했다.
"좋아. 대신 명심해라, 나는 너 막 굴릴 거다."
"좋지. 오히려, 도구처럼 마구 써주길 바라네. 왠지 자네를 따라가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가꾸어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새끼 마조히스트인가? 흐린 눈으로 꼬라보니, 맹주는 허허 웃더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는 주변을 좀 돌아보고 순찰을 돌고 있을테니, 자네와 자네의 부인은 부디 편히 '휴식'이라도 취하고 있게."
맹주는 그렇게 말을 남기더니 모닥불의 불빛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둑한 곳으로 걸어갔다.
맹주의 강철발에 풀밭이 으깨지고, 으스러지는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결국 너무 멀어져 들리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뭔가 어감이… 묘한데?
어쨌든, 맹주를 동료로 넣은 시점에서 불침번을 세울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지간히 큰 숙영지가아닌 이런 소규모 숙영지라면 더더욱.
수면이 필요 없는 기계인간은 나 대신 다가오는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동료들을 깨워주고, 시간을 벌어줄테니.
나는 밀착한 겨울의 신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별의 바다, 그 위를 유랑하는 달이 조각배처럼 흐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노라면 흘러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을 속도로.
그 잔잔한 정취에 후, 하고 숨을 뱉어내니, 겨울의 신부가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리광 부리고 싶어서 그래요?"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고 쓸어주니 겨울의 신부는 행복한 얼굴로 웃으며 내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기대어진 머리는 무척이나 가벼워, 그녀의 체중이 그리 높지 않음을 실감하게 했다.
그녀는 그렇게 내게 껴안긴 채로 콧소리를 흘렸다. 달큰한, 어쩐지 달아올라 있는 숨소리를.
나는 그 숨소리를 돌리며 눈을 슬쩍 돌렸다. 겨울의 신부는 여전히 내 가슴팍에 뺨을 댄 채였다.
그녀의 조그마한 입이, 달싹였다.
"힘내신 당신을 위해서, 뭔가 해드리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시고 계시나요?"
어, 이거 언제 들었더라.
아마 유적지 초입에서 첫 야영을 할 때 그녀가 했던 말인 것 같았다.
"예, 기억하죠. 유적에서 했던 말이잖아요. 같이 담요도 두르고… 제가 겨울님 말을 잊을리가 있겠어요?"
내 대답에, 겨울의 신부는 왠지 조금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가 내 품에 안겨들었다.
밀착한 가슴이 눌려 기분 좋은 촉감을 남기고, 그녀는 그 상태로 속삭였다.
"불이 높아 산짐승들은 저희를 보지 못할테고, 맹주님은 저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거리를 벌리셨어요."
"…예?"
"그간 저희가 함께 몸을 섞은지도 오래 되었죠. 그렇지 않나요?"
그녀의 섬섬옥수가 내 손목을 쓸더니, 끌어당겼다. 끌어당겨진 내 손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파고들었다.
슬그머니 밀려올라가는 실크드레스는 금방 그녀의 비부를 내게 노출시켰다.
끈적한 애액이 손가락에 감겨들고, 그녀는 그 중독성 있는 감촉을 내 손가락에 전달하면서 제 입술을 물었다가 떼었다.
"당신께서 하루 만져주지 않으셨을 뿐인데도 제 몸은 이렇게… 달아오르고 만답니다. 당신의 체향, 당신의 상냥한 말, 당신의 애정만으로는 부족해서 더욱 갈구하게 돼요. 그러니 부디…."
질꺽
이미 끈적하게 젖어든 보지는 내 손가락을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다. 갈라진 질구 사이에서 애액이 흘러나와, 내 손마디까지 잠식했다.
나는 그 뜨뜻한 감촉을 느끼면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숲은 고요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내 손을 드레스 자락에서 도로 빼내어 입에 물었다. 쯉, 하고 빨아올리는 것에는 짙은 육욕이 묻어났다.
"오늘, 저를 당신의 욕망을 털어놓는데 사용해주세요."
그 언뜻 고아하지만 음란한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이 내 바지춤을 문질렀다.
내 자지는 이미 아플 정도로 발기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