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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화 〉이단심문관 (168/274)



〈 168화 〉이단심문관

"그런데 도대체 수가 얼마나 됐길래 메이가 당한 겁니까?"

메이는 마법사다. 그것도 꽤 전투에 능숙해진 마법사.


비록 마법적 수준 자체는 헤로디아 같은 괴물딱지들이랑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전투에 쓸만한 마법이나 마법에 대한 이해도 자체는 뛰어났다.


그런 메이가 부상을 당해가면서 싸웠다면,  두  정도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었다.

합당한 내 질문에, 앞장서서 복도를 걷고 있던 성녀가 대답했다.


"정확한 수를 헤아리진 못했지만, 족히 20명은 넘었어요."


20명을 넘는 놈들이 전부 봄의 순례자가 쓰는 권능으로 강화되어서, 신성이 깃든 아이템으로 공격해온다면.

근접전에 특화된 나와는 달리 메이라면 충분히 밀릴 수도 있어보였다.

심지어 성녀라는 짐짝까지 떠안고 있었다면야….


잔잔한 납득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칙칙한 로브를 두르고 있던 성녀가 먼저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섰다.


복도의  켠, 붉은 나무로 만들어진 문 너머에는 겉에서는 예상할 수도 없을만치 칙칙한 공간이 있었다.


일견 녹슬어 있는 것처럼 색을 띄고 있으나, 사실은 비추어지는 횃불에 일렁이는 빛을 튕겨내고 있을 뿐인 독특한 금속 창살.


 창살 너머로 먼지와 거미줄이 깔려있어, 아, 딱 봐도 감옥이네 하는 감각을 증폭시켰다.


그 중심지, 한 남자가 묶여있었다.


차라리 묶여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팔 한 켠이 새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메이의 작품인 모양이었다.

"이 사람이 이단 중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가장 먼저 화염을 맞고 기절했었죠. 그런만큼 체내에 깃든 권능 자체도 보잘  없는 수준이고, 그러니 상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 했지만… 의인께 맡기고자 살려뒀어요."


그건 고맙네요.


애초에 시작부터 안 잡히는 게 베스트로 보이긴 했지만, 구태여 그렇게 말할 이유는 없었다.

존나 빡치긴 하는데,  분노를 받아낼 주체가 눈 앞에 있으니 좀 가라앉는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그 묶여있는 이단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성녀에게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뭐, 마음대로 하면 됩니까? 심문 아예  했어요?"

"음, 기초적인 심문은 했죠. 이름과 나이, 전에 하던 일 정도를 알아내는  고작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 성녀.

확실히,  앞의 남자는 아직도 눈빛이 또렷한데다 쇠사슬로 팔다리가 묶여져 벽에 기대어 있음에도 흉흉한 기색을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준신 수준도 아니라서 경계할 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다음은 너냐? 내가 순순히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교단의 돼지새끼들 따위한테  정보 따윈 없으니까. 오히려,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수염이 잔뜩 있는 입가를 비틀어 웃었다.


"심문하다가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이라도 내 손에 잡힌다면. 그대로 죽여버릴테니까."


오, 그러시던가. 가오충 새끼.


나는 눈 앞의 남자에게서 눈을 떼어, 성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는 붉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채 내게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예, 부디 자유롭게."


"아니 내 말은… 정말 '뭐든지' 해버려도 되나고요."


"…뭘 하시려고요?"

내 목소리에 감도는 호언장담에 그녀는 낯빛을 굳히더니 곧 불쌍해질 남자를 눈여겨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묶여있는 이단새끼는 내 그런 말에 비웃음을 흘렸다.

"하,  주려는 거냐? 이거 유감인데, 다른 새끼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산왕국 출신이다. 오직 위대하신 초월자님만이 나를 무릎 꿇릴  있었지. 재앙의어머니도, 너희가 섬기는 비루한 주도, 전부 그분 앞에서는 한낱 광대에 불과해. 그분이야 말로…."

"손가락을 천천히 비틀어 뽑을까 생각하고 있었죠."


"…뭐?"

한창 자신이 섬기는 초월자님, 아마 봄의 순례자로 추정되는 존재를 추앙하던 그 남자는, 내가 한 말이 믿기 어려운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 남자에게 눈을 마주쳤다. 마주친 회색조의 눈동자는 당혹이 서려있었다.


"손가락을 붙잡고, 천천히 비틀어 뽑으면서 고통을 주려고 했지. 네가 울고, 불고, 뭘 하더라도 다시는   수 없도록 달궈진 도끼로 지혈해서 아예 메꿔버리고. 그 다음에는 발가락을 뽑을 생각이었다. 하나씩 뽑아서, 마찬가지로 지지려고 했지. 그거 아냐? 사람은 발가락 하나만 잘려도 걷기 힘들어진다는 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고작 내 몸뚱이 좀 잃는다고 두려워할 성 싶으냐?"

"당연하지.  신도 아니고, 하물며 신이 그렇게 총애하는 놈도 아냐. 넌 한낱 인간이다. 좆도 가진 게 없는, 내가 손가락을 잡아틀어 뽑는 동안에 뭣도   없는 나약한 인간."

"…하, 너는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군. 내가 묶여있으니 그리도 우스워 보이나? 이미 사제 하나는 나를 심문하려다가 그대로 뒈졌다. 손가락으로 멱을 잡아따버렸지."

오, 놀랍네.


나름 힘이 없진 않은지, 그 이단은 그렇게 말하더니  웃었다.

물론 내 앞에서는 별로 의미없는 짓이었다.

나는 성녀에게 눈짓 한 번을 보내고, 창살로 다가가 그 창살을 잡아당겼다.


기기기긱

꽈작!

"…어?"

얼빠진 소리를 내며 제 눈 앞에서 부숴져버린 창살을 바라보는 이단. 그 눈에는 선명한 의문이 깃들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창살들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다가서자  이단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뭐냐. 뭘  거지? 어떻게…."


"글쎄."

성녀가 고개를 슬쩍 돌려 시선을 피하고 나서, 나는 이단에게 다가서서 그 손가락을 쥐었다.

*


"이 새끼 징하네."

뽑혀진 손가락이 8개, 발가락이 전부 뽑히고 나서야, 이단은 울면서 정보를 토해놓았다.


정보랄 것도 없는, 간단한 확인. 기실 확인할 필요도 없는 정보들이었지만, 나름대로 확신을 내릴 수 있으니 상관 없었다.

얻어낸 정보를 정리하며 이단의 옆에주저앉자,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벽  켠 구석으로 몸을 말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뽑혀진 손을 품에 넣고 오줌을 지려댔다.


"존나 더럽네… 수고해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서고, 아까 부러트렸던 창살을 대충 바닥에 꽂으니 그 이단은 게거품이 맺힌 입가를 부들부들떨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바닥에는 뽑혀진 손가락이 뼈와 살로 나뉘어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그걸 보는 성녀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으나, 뭐 어때. 얻어냈으면 그만 아닌가?

방 밖으로 나서고, 얻어낸 정보를 찬찬히 머릿 속에서정리했다.


우선, 이 일은 봄의 순례자가 꾸민 게 맞다. 정확히 어째서 그랬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목적은 뻔했다.

준신을 양성하려고 하는 거거나, 아니면 자신이 흡수해서 본인의 신성을 높이려는 목적이었겠지.


중요한 건, 이 일을 벌인 규모와 전황이었다.


그 신성이 깃든 아이템은 누가 만들었으며, 이들이 얼마나 있고, 이들이 가진 게 무엇인가.


다행히 내가 존나 괴롭히니, 그 이교도는 정보를 술술 불었다.

그렇게 알아낸 정보는 명확했다.


침입한 이교도는 무려 30명. 이번에 참가한  20명이며, 남은 건 10명.


무기는 어떻게 공급받는지 모르나 이번 작전에 참여한 전원에게 나눠줬다.


그 뿐만이 아니라, 봄의 순례자는 이번 작전에 참여한 이들에게 손수 권능을 부려 제 수족으로 삼았다.

물론 그 새끼는 선택받았노라고, 용사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씨발 그게 어딜 봐서?


그 꿈틀거리는 검은 혈관이 떠도는 팔을 보고 떠오른 것은, 내게 곤죽이 되도록 쳐맞아 죽었던 도마뱀과 그간 내가 죽여왔던 봄의 순례자의 수족들이었다.

단지 이성이 유지 중인 봄의 순례자의 따까리가 아닌가.


그 10명은 아직 정체를 숨기고 있으나,어떤 권능을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찾아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뭔가, 단서가 있으신가요?"


내 옆에서 침묵을 지키며 따라걷던 성녀가 물었다.


그녀의 표정은 미미한 신뢰를 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노라면, 마냥 이 방법이 먹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잘 먹힌다고 하더라도, 설득하고 입증하는데 문제가 생길테고.

하지만  편으로는 존나 내가 그딴  신경 써야 하는 건가싶기도 했다.

방법은 좀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지만,  성격상 그렇게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나는 성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이거 하나 뿐이고, 기회를 놓치면 말짱도루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


말짱도루묵까지 번역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뭐든지."

"가서, 대성당 전체에 퍼져있는 사제들을 끌어모아 대회랑에 모아주세요. 들여오기 전에 무장도 해제시키고, 얌전히 모여있게끔."

내 말에 성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옷만 갈아입고 바로…."


어, 이 새끼 봐라. 옷이 중요해? 이단이 있다는데?


나는 거인의 힘이 켜있는 채로 핑거스냅을 했다.

따악!!!

"꺅!"

거력으로 만들어진 소리는 어지간한 굉음에 필적했다.


성녀는 제 귀를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들어올리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이 중요합니까? 지금 주의 전당에! 이교도가 버젓이 살아숨쉬며 성유물을 강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상황에! 고작예쁘지 않은 로브 입었다고!"

내가 언성을 높이자, 성녀는 당황했는지 눈을 굴리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후, 두 번 말  하겠습니다. 당장 모든 사제와 성전사, 성기사들에게 대회랑으로 모이라고 하십시오.  명령에 거부하는 이는 이단으로 간주, 그 자리에서 '처형' 하겠습니다."


"…예, 예에. 알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노여워 마시고…."

성녀는 내가 빡쳤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당황하더니, 주변을 살피다가 굉음에 상황을 살피러 온 사제를 불러세웠다.


사제에게 내려진 명령은 내가 내린 것에서 큰 차이가 없었고, 사제는 교단의 최상위 권력층인 성녀와 해방자가 나란히 있는 모습에 황송해하다가도 빠르게 뛰어 사라졌다.


그렇게 멀어지는 사제의 뒷모습을 보며 허리춤에 손을 얹으니, 성녀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정말 방법이 있으신 건가요? 저로서는 도저히…."

"쉿."


거 믿음이 부족하네 이 새끼.

나는 성녀의 입술 위에 검지를 얹어 말을 가로막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께서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일하시죠. 부디 믿어주시고, 대회랑으로 갑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우리는 대회랑으로 지체 없이 향했다.

*


대회랑에 가득 메워진 사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전사들은 물론이고, 성기사들, 징벌사제라는 독특한 직위의 사제들 역시 무기를 빼앗겨 그들은 완전히 비무장 상태로 내 앞에 가득히 모여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대회랑의 넓직한 원형 테이블에 앉아서 다리를 까딱였다.


"…의인께서는 어떤 연유로 저희를 끌어모으신 겁니까? 저희는 도저히 의중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제는 언뜻 당황스러운 기운을 숨기려고 애쓰면서 웃고 있었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제를 무시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사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먹힌다고 장담할 수도 없었다. 워낙 그게 오래 전이어야지.


하지만 모아놓고 확인해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10개의, 이질적이고 묘한 연결점이 느껴지는 신성이.


나는 그 10명의 이교도의 얼굴을 투구의 슬릿 속에서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히 살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인이시여, 이제 설명을…."


"조용. 지금부터 제 말을 방해하려는 이들은 이단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내게 설명을 구하려던 사제가 입을 닫고,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사제들이 일제히 굳었다.


성전사들이나 성기사단처럼 무력에 자신 있다 싶은 이들은 내 태도에 불만스러운지 그 언짢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을 들어올려 주의를 끌어모았다.

"이 중에 10명. 이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단을 찾아낼 방법을 주로부터 인계받았습니다."


물론 개소리다.그런 방법 같은 건 없다. 그냥 야매로 봄의 순례자의 신성을 찾아내기만 했지.


하지만 저들이 그렇게 받아들일까? 의인이자, 주께서 임명하신 해방자를 상대로?


그렇지 않았다. 저들은 내 말에 무척이나 설득력이 있다고 여기는지 조용해진 채로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경건한 샌님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방법을 사용해 이단을 색출하겠습니다."


좌중이 완연한 침묵으로 물들고, 나는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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