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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화 〉이단심문관 (170/274)



〈 170화 〉이단심문관

나는 팔을 넓게 뻗은 채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향한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일견 성스러울 거라고 추정하는 모습에 어울리게, 사제들은 나를 보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솔직히 가사가 없이, 목을 써서 음만 만들어내는 아카펠라에 가까운 느낌이었으나, 여전히 듣기 좋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었다.

아마 나를 찬송하는 거겠지. 겸사겸사 창조신도.

그 노랫소리를 들으며, 나는 짧게 읊조렸다.


"갈채하라."

기도를 올리는 사제들과 찬송가를 부르는 사제들. 죽어서 널부러진 이단의 시체들.

개중 4마리는 내 주먹과 다리에 대가리가 박살났으나, 그걸 신경 쓰는 이들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오히려, 그 시체 역시 찬미의 대상인 것처럼 그들은 소리 높여 찬송가를 불렀다.


아, 기분 최고다.


 사이비에 재능 있나봐.

존나 유감스러웠지만,  천성을 거부하지 않고 잠자코 찬미를 받았다.

그렇게 찬미하는 이들 사이로, 사제 한 명이다가왔다.


너무도 신성한 모습에 감동하여 다가오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뭐지.


"의인이시여. 송구하기 짝에 없으나, 그… 바깥에서 군세가 다가오고 있어 외부 경비를 서고 있는 성전사단 분들이 해방자님이 친히 나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군세요?"

"예, 군세입니다. 정규군으로 보입니다. 장비의 질이좋고, 병력 구성이 다양하다고도…."

흠, 빠른데.

누가 보냈을지는 뻔했다. 보나마나 봄의 순례자일 것이다.

아마 유적 도시에서 성유물도 빼앗긴데다 강탈하려고 수하를 남겨둔 것을 들켰으니 이대로 군세를 이끌어 내게서 성유물을 강탈하고 교단을 엎어버리려는 심산이겠지.


간파한 이상, 당할리는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봄의 순례자를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좋죠. 이번 기회에 이단을 더 쳐부숴 여러분들에게 이단이 얼마나 헛된 존재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를 한창 찬미하던 사제들은, 나의 모습이 열이 올라 몸을 일으키면서도 찬미를 계속했다.

울리는 찬송가와 아름다운 미성으로 이어지는 기도, 읊조리는 소리와 내 철컥거리는 갑주 소리가 어우러져, 대성당의 대문이 열렸다.

열어젖혀진 대문 너머에는, 넓게 둘러진 강철 울타리와 함께 쩔쩔메는 성전사들과 병사들이 눈에 보였다.


병사들의 복식은 그리 독특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갑주에 평범한 무구들. 이렇다할 특이성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조합.

봄의 순례자가 보냈다고 하기엔 기이하게도 평범했고, 신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예상이 틀렸나?


철제 게이트 너머에서 한창 실랑이를 벌이던 병사는, 결국 포기한 듯 게이트를 열어젖혔다.

기이이익

뻣뻣한 철제 문이 열리고,  너머에서 실루엣만 흐릿하게 보이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길어진 회색 단발에, 몸에  붙는 가죽 갑옷 위에 입혀진 판금 흉갑.


 간소하지만 충분한 전투 준비가 되어있는 복장에, 허리춤에 메어진 소검에다 등에 짊어진 활까지.

내가 아는,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언뜻 얼음처럼 냉막한 태도를 보일 것만 같았던 여성이, 나를 보더니 얼굴이 밝게 펴졌다.

"아, 주현성씨."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와 안기려고 하던 그녀는, 내 뒤를 따르는 사제의 수와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멈칫했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나를 찬미하는 이들과 내 모습 사이에서 시선을 갈팡질팡 하던 그녀는, 이내 픽 웃었다.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좀 지나치게 건강해서 되려 김이 새긴 합니다만… 현성씨에게 문제가 생길리가 없죠."

그간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던 성전사들은 그녀의 편한 말투와 내 모습을 보더니 안심했는지, 그녀의 진로를 가로막는데 쓰고 있던 창을 거두었다.


그녀가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남작령에 웜홀이 성공적으로 설치되었습니다. 저희가 거점으로 삼았던 요새로 고대의 도시와 발데가리아에서 차출한 병력을 두었고, 이따금씩 마리암씨나 기사단장께서 오셔서 경비를 돕고 계십니다. 저도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오, 그렇구만.


하긴, 언제 완성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긴 했다. 고개를 끄덕이니, 그녀는 잠시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내 투구 슬릿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연락도 없으시고, 돌아오지도 않으시니 다들 걱정했습니다. 저도 그랬죠. 그래서 수도원까지 갔는데…."

없었겠지. 유적지나 대성당에 있었을테니까. 검연쩍게 볼을 긁적이니, 그녀는 생긋 웃었다. 그 미소에는 잔잔한 용서가 깃들어 있었다.

"거기서는 대성당에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위치도 제공받았고 하니 찾아왔죠. 혹시나 잘못되셨을까 걱정도 됐으니까요. 근데…."


그녀는 굳이 말을 잇지 않았다. 이정도로 멀쩡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내가 멀쩡해서 기쁘지 않다는  아니겠지만, 내가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편지 하나 보내는 것 정도는 해도 됐을텐데.

"미안합니다. 제가 소홀했네요."

내 솔직한 사과에, 금방이라도 화를 낼듯 했던 세네카의 표정은 푸근하게 풀렸다. 냉막한 평소와는 달리, 은은하게 애정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표정 그대로, 나를 껴안아왔다. 강하게 끌어안고, 내 몸에 제 몸을 밀착시켰다.

갑주 위로 은은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솔직히 여정을 떠난 와중에는 고대의 도시에 있을 모두들과 발데가리아가 그리웠다. 씨발, 그게 뭐라고 그리웠는지는 모르겠는데.

세네카의 등을 쓸어주니, 그녀는 한창 나를 껴안고 있다가 놓더니 후, 하는 긴 숨을 뱉어냈다.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럼 돌아갈 준비는 되셨습니까?"

아, 그래. 돌아가야지.

메이만 멀쩡했다면.


나는 고개를 내젓고, 대성당을 엄지로 가리켰다.


"그게… 당장 출발은 못합니다. 메이가 다쳤거든요. 지금 치료 중입니다. 안정을 취해야하니, 적어도 메이가 깨어나면갑시다."


세네카는 내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찡그린 표정으로 바꾸었다.

"메이씨가 다쳤습니까? …어떻게요?"

그녀 역시 메이가 다친 사실이 꽤 의외인  했다.

하긴, 나도 그렇기는 했다. 아무리 내가 강력하다고는 한들, 메이가 약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 준신조차 안되는 봄의 수족들이, 메이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은상당히 놀라웠다.

그렇다고 진위를 조사하기엔 그 상황을 직접 겪은 생존자는 단 둘인데, 전투에는 문외한인 성녀가 알고 있는 건 없었고, 메이 본인에게 묻기엔 메이가 뻗어있었으니.

나는 그녀의 놀라움에 공감하며 대성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창 나를 찬미하고 있던 사제들이 갈라서고, 그 틈으로 나와 그녀의 병사들이 지나가는 와중에, 이단의 시체를 바쁘게 치우고 있는 사제들이 문득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세네카를 대동한 채 메이의 병실로 향했다.



*

"흐음."

언뜻 만족감이 감도는 침음성이, 황궁 지하의 연구소에서 울려퍼졌다.

 침음성을 낸 당사자는, 꿈틀거리는 긴 촉수와도 같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전신에는 그런 촉수 같은 질감을 가진 로브가 둘러져 있었으나, 움직이는 자태는 나신과 다를  없었다.


그런 여성이, 나직하지만 어쩐지 남성을 떠올리게 하는 말투로 읊조렸다.

"전부 죽었군."


"…당신의 하수인이 말입니까."


 연구실, 어둑한 한 켠에 다른 남성이 서있었다.

그는 등 뒤에는 활을, 몸에는 가죽 갑옷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는데, 얼굴에 감도는 무기질적인 기색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으로 타오르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여성의 말에 대답하고서, 불편한 기색을 띄었다.

기실, 이 연구실에 있는 이들  불편해하지 않는 이는 저 여성 뿐이었다.

누군가는 한 때 그녀를 레일라 수녀라고 불렀으나, 지금 대부분의 인간들과 준신들은 그녀를 봄의 순례자라고 불렀다.

로브를 두른 채, 실험체에게 고문 겸 실험을 가하며 제 힘을 파악하고 있던 봄의 순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직하게 끄덕이는 고개를 따라 촉수나 뿌리를 떠올리게 하는 검고 굵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그렇다. 대성당에 그 신살자가 자리를 비운 틈에 스파이를 심어뒀었는데… 얼마 전의 실패에 이어서 한 번 더 실패한 모양이다."


두 번의 실패. 역정을 낼만도 하건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고, 즐겁다는 기색이었다. 처음부터 그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에 남자가 눈쌀을 좁혔다.


"신살자가 돌아온 모양이더군."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 거죠?"


남자의 말에, 여성이 의자에 얹혀있던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제대로 정련되지 않은 신성이 그 몸에서 꿈틀대다, 완전히 불타버린 팔을 중심으로 요동쳤다. 그녀는 빠져나가려는 촉수를 다른 손으로 눌러 잠재웠다.


"남은 10 개체  6 개체가 순차적으로 해치워진 후에, 나머지 개체가 전부 빠른 속도로 파괴되었다. 전부 머리를 가격당해 일격에 파괴됐지. 연달아서, 일격에 내 하수인을 파괴할 수 있는 건 30 개체 중 20 개체를 해치운 그 신살자의 동료나 그 신살자 뿐이다."


그 말에 남자가 조용히 응시했다.

황제의 충실한 기사이자 상당한 솜씨의 궁수인 그는, 그녀의 수하라던 이들이 준신의 수준은 아니나 꽤 강력하던 것을떠올리며 그녀를 응시했다. 눈빛에는 의구심 뿐이었다.


봄의 순례자는  모습을 보며 몇 마디를 덧댔다.

"마침  유적에 보낸 기사단은 전멸했는지 도망친 건지 돌아오지 않았고, 중간에 충돌한 듯 보이던 산왕국 측은 돌아갔으나 가을의 신성이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 겨울의 폭군이 나섰거나, 그 신살자가 나선 것이겠지."


하지만. 하고 여자가 말하더니 손을 들어올렸다. 가볍게  손에서 신성이 일렁이자, 실험대에 묶여있던 괴물의머리가 으깨졌다.

"겨울의 폭군과 나는  유적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화신도 달리 두지 않는 그놈이라면 나오지 않았을 터, 그럼 자연히 그 유적에  것은 신살자 그놈일테지."


그녀는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는 다시 제 의자로 다가갔다. 크게 기울어진 의자를 타고 그녀의 머리칼이 휘감겼다. 휘감긴 머리칼은, 해양 생물의 촉수처럼 그 의자를 단단히 붙들었다.


풀썩, 하고 의자에 주저앉는 소리가 들리고 여성의 눈이 더욱 차게 가라앉았다.

'그래, 그래줘야 재밌지. 나는 네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 다음에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해주지 않을 것이다. 주현성.'


어쩐지 기시감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이름을 머릿 속에 담던 여성은, 뒤에서 훅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흐음."

가죽 갑옷을 두른 준신이 여전히 그 자리에 지키고 서있었다. 마치 물어볼 게 있다는 것처럼. 봄의 순례자는 그 모습을 흘겨보고는 물었다.


"뭔가 더 물어볼 거라도 있는가."


"꼭 이런 방식으로 해야하는 겁니까."

지당한 물음이었다. 그녀도 평소라면 이런, 도박에 가까운 수를 짜진 않을테니.


만약 주현성이 덤벼오지 않거나, 덤벼오더라도 그녀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그러니  수는 철저히 도박이면서, 그녀가 주현성을 충분히 파악했다고 여겨 나오는 승부수였다.


기실, 그 반신 주현성은 자신을 그렇게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 그를 묶어두려면  외의 것들을 묶어두고 위험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 그 신살자는 그녀의 계획대로 이도저도 못한  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승산은 없었다. 아주 실낱 같은 승산이라도 남겨준다면,그 신살자는 언제나 그러했듯 악착 같이 싸워 이기고 말테니.


"그렇다, 황제의 사냥꾼아. 너희는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그 외의 너희가 살아남을 길은 없을지니."

궁사는 그 말에 불쾌해 하면서도, 차마 그러지 않겠노라고 하지 않았다. 결정은 그의 몫이 아닌, 황제의 몫이었으므로.


그는 연민을 담아 봄의 순례자를 바라보더니, 등을 돌려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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