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봄의 순례자
웃어재끼는 두 신성자의 몸은 이미 너덜너덜했다.
주현성은 자신의 생명력이 아무리 강대하다고 한들 눈 앞의 봄의 순례자만큼은 아님을 잘 알았다.
주현성보다 재생력이 높은 봄의 순례자는 방어력을 희생한만큼 재생력이 좋았다.
한 편 봄의 순례자도 멀쩡하진 않았다.
멀쩡하다고 하기에는 주현성의 높은 공격력과 새로이 손에 넣은 권능이 너무도 강력했다.
신성이 듬뿍 담긴 공격은 열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광을 뿜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그 공격들은 일격일격이 넋 놓고 맞다가는 그대로 증발할 수도 있을 수준이었다.
봄의 순례자는 제 뿌리가 넓게 퍼진 웅덩이 위를 거닐면서 최대한 상처에 신성을 집중시켰다.
사락 거리는소리와 함께 나아가는 피부와 근육, 인간 그 이상의 효율적인 구조로 짜여진 근육과 뼈, 신경이 발빠르게 회복됐다.
주현성은 그걸 보며 제 배갑을 비롯한 갑주들을 내려다보았다.
봄의 순례자의 공격은 상상 이상의 매서움을 갖추고 있었다.
가드하더라도 들러붙는 듯이 접근해 데미지를 축적시켰고, 액체화된 신성이 이뤄낸 뿌리는 한 방울마다 그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독립 개체처럼 움직여댔다.
그동안 그를 잘 섬겨오며, 그 어떤 공격에도 일격에 파손되진 않았던 그의 갑주가, 지금은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새로운 갑주를 구해야겠지.'
주현성의 자가진찰은 당장은 아무래도 좋은 생각이었다.
갑주가 박살나더라도, 팔이 으깨져 끊어지더라도, 그는 맞서 싸워 봄의 순례자를 죽일 생각이었다.
더 이상 살려두기엔 너무도 난처한 적이었다.
아무리 음모에 능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내다니.
그는 잔잔한 경의마저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저 모습이 봄의 순례자의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끝에 도달한 모습임을 잘 알기에.
대군전과 음모, 공작에 특화된 그 보스는 이런 직접적인 전투에 어울리는 신격이 아니었다.
아무렴 신격이니 일반인은 가볍게 눌러버리고는 했지만, 신을 죽인반신을 상대하기엔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봄의 순례자는 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어쩌면 제 권역을 포기할 각오마저 갖춘 채, 봄의 순례자는 꿈틀거리는 뿌리를 응집시켰다. 그렇게 응집한 뿌리는 촉수를 닮아있었다.
주현성의 눈동자와 봄의 순례자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치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바닥을 박차 달려들었다.
선공은 주현성. 주현성은 제 거검을 크게 내리찍었다.
후우우우웅!
휘둘러지는 거검에 담긴 거력은 평범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신격이라고 하더라도 부상 없이는 받아낼 순 없는 강격.
하물며 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봄의 순례자는 한 가지 대응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파앗!
촉수를 구부려, 지면을 두들기는 것으로 횡으로 움직인다. 내리찍어진 거검이 굉음을 울리며 바닥에 프랙탈 같은 균열을 남긴다.
봄의 순례자는 그렇게 제 몸을 튕겨낸 촉수를 거두어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궤적은 횡으로 커 피하기 힘들다. 주현성은 피하지 않고, 거검의 검면을 내밀어 튕겨냈다.
카아아앙!
후두둑
부딪힌 부분의 촉수만이 남아 거검을 두들기고, 나머지 촉수는 그대로 통과한다. 액체로 이뤄진 촉수는 그렇게 거둬지더니 다시 위에서 내리찍어진다. 더 얇아졌으나 공격만큼은 매섭다.
그렇게 내리찍는 공격을 향해 그대로 거검을 올려친다.
까앙!
울리는 쇳소리는 거검의 지분이 컸다.
튕겨져 나는 촉수는 액체의 형태로 떠올랐다가, 그대로 내리꽂힌다.
내리꽂힐 때는 촉수가 아니었다. 창이며 비였다. 비처럼 내리는 창이었다.
주현성은 다시 검면을 위로 들어올리려다,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봄의 순례자를 보고서 생각을 바꾸었다.
콰아아앙!
내뻗는 주먹에 직격하는 검면. 주현성의 몸뚱이는 가볍게 튕겨난다.
주현성의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은 지면에 접하고 있을 때는 효과가 없었다.
주현성은 날아가면서가속을 발동해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쿠우우우웅!
먼지와함께 피고름이 피어오른다. 지면에 잩게 깔린 피고름이.
그 중심지를 향해, 봄의 순례자가 제 앞에 내리꽂힌 창들을 쏘아냈다.
그걸 바라보는 신살자의 귓가에 음성이 떠오른다.
[불굴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느려진 세계 속에서 주현성의 주먹과 검이 움직인다.
거검을 한손으로 휘둘러, 균형을 잃어가면서 가장 멀리서 다가오던 창 세 자루를 지우고 철퍽이는 소리가 채 들리기도 전에 주먹을 휘둘렀다.
속도는 이미 감속된 세계라고 볼 수 없을만큼 빨랐다. 주현성이 주먹을 찌르고, 내리찍고, 그대로 휘두르는 궤적을 따라 창 세 자루가 마저 지워졌다.
하지만 주먹에 그 검은 액체가 묻었다. 주현성은 따끔하는 고통과 함께 제 손바닥을 관통한 촉수를 확인했다.
부숴진 완갑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금속 파편이 지면에 후두둑 떨어지는 가운데, 봄의 순례자가 달려들었다.
뻐어어억!
"큽…!"
속에서 신물과 함께 피가 차오른다. 주현성은 입에서 피를 뱉어내면서 몸이 구부러진다. 복부를 향해 뻗은 봄의 순례자의 주먹이 배갑을 뚫고 복부를 두들겼다.
그렇게 주현성의 몸뚱이가 쏘아지기 전, 주현성의 눈이 반짝인다.
투화아악!
가속. 사슬갑옷에 남은 가속이 그의 몸이 쏘아지기 전에 다시 앞으로 밀어냈다. 주현성은 밀어나면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쾅!
박치기라고는 볼 수 없을 금속성. 그의 머리에 자란 뿔이 정직하게 봄의 순례자가 자신만만하게 짓고 있는 표정을 으깬다.
으깨진 얼굴이 밀려나고, 몸이 비틀거릴 때, 주현성이 착지하며 몸을 숙였다.
"하, 크,후우."
거칠게 숨을 토해내는 반신은, 벅차오르는 가슴과 고동을 억지로 다스리면서 거검을 땅에 쳐박았다. 와중에 봄의 순례자가 바닥을 구른다.
콰르르르 터엉!
언제 거기까지 갔는지 떨어져있던 도끼에 부딪힌 봄의 순례자가 물수제비를 하듯 떠올랐다가 지면에 꽂혔다.
퍼억!
내리꽂히는소리는 처량했으나, 그 몰골만큼은 결코 처량하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그 중심지에서 비척대며 봄의 순례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일으키면서, 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웃어재꼈다. 웃는 소리는 광기나 분노가 아닌,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주현성이 눈썹을 들썩이니, 봄의 순례자가 웃던 그대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내가, 세상의 첫 날부터 세계에서 굴레를 벗겨내기 위해 투쟁하고, 학습하고, 계획하던 내가! 이토록 저열한 주먹질에 가담하고 있다니! 그리고 그러며 즐거워 하고있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나, 해방자!"
주현성이 거검을 땅에 꽂은 자세에서 몸을 세우자, 헐떡이던 숨은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고른 호흡을 뱉으며 주현성이 거검을 뽑아들어 어깨에 걸쳤다.
"그거 아느냐, 해방자야! 그래 너를 말하는 것이다, 해방자! 너는 해방자가 맞다. 이 세계를 부숴 굴레를 풀어내는 해방자! 나는 너를 해방자라고 인정하겠다! 내가 그토록 갈망하던 굴레를 최악의 형태로 풀어낼 해방자야!"
흐하하, 하고 광소를 흘리는 모습에 주현성이 손에 고여있는 피를 털어내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에 봄의 순례자는 마주 걸어가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거 알고 있느냐, 해방자. 내 삶에서 이렇게 저열한 싸움을 해본 것도 처음이고, 이토록 즐거운 것도 처음이라는 걸! 고양감이라는 것을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고 있음을! 이 싸움의 패배가 내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인가? 참으로 즐겁기 짝이 없구나! 즐거우며 또한 불안해! 이 감정적 만조가 마음에 들어!"
"그런데 뭐 어쩌라고."
주현성이 시니컬하게 툭 뱉어내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니, 그걸 눈치챈 것인지 봄의 순례자가 마주 웃으며 외쳤다.
"죽을 때까지, 끝까지 싸워보자꾸나!"
콰아아아앙!
거의 10m도 남겨놓지 않은 거리를 한 번에 좁히며, 두 신성이 평야에서 퍼져나갔다. 충돌 즉시 퍼지는 신성은 그 밀도와 크기에서 주변에 있는 그 무엇도 범접할 수 없는 크기였다.
둘은 말그대로 자신을 불태우며 맞섰다.
주현성은 거검을 휘두르고, 봄의 순례자는그걸 맞아주면서 촉수를 휘둘렀다.
이미 가드는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 그러했다.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서로의 명줄을 쥐고 비틀어 끊을 수 있었다. 그래서 둘은 가드조차 아까워서 공격일변도로 맞섰다.
퍼억!
뻑!
촉수가 배갑을 두드리고, 입에서 피를 한 웅큼 뱉어낸 주현성의 거검이 봄의 순례자의 동체를 둘로쪼갰다.
쪼개진 동체는 바로 붙었고, 주현성은 피를 입에서 뱉어내면서 발을 바꿨다. 바꾸며 검을 내던졌다.
쿠오오오오오!!!
콰직!
날아드는 검은 잡아채기엔 너무도 빠르다. 봄의 순례자가 촉수들로 벽을 세우자, 거검은 그것을 가르며 봄의 순례자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거검을, 봄의 순례자는 잘려나간 촉수들을 내리꽂는 것으로 밀어냈다.
쿠우우웅!
거검이 바닥에 꽂히고, 주현성이 그 빈틈에 달려든다. 치켜든 양 주먹과 방패에는 후광이 거세게 이글거렸다.
후우우웅!
첫 공격은 스트레이트. 봄의 순례자는 웃으며 맞았다. 공격이 꽂힌 머리가 기울었다가 되돌아가고,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돌려준다.
주현성은 그 공격을 보면서 기억들을 재생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주현성의 공격을 최대한 흘려내고, 피해를 최소화 하려고 했던 자흐렌 자작.
한참은 강력해 산마저 뽑아낼 수 있을 주현성의 근력을 일순, 제 유술로 묶어둘 수 있었던 암살자.
둘의 움직임을 떠올린 주현성은, 자신이 그 발치도 따라갈 수 없음에도 엇비슷한 걸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주현성의 근력은 봄의 순례자보다 한참 강력했으니.
주현성의 주먹이 펴지고, 사슬갑주를 두른 손과 판금이 둘러진 손이 내밀어졌다.
카아아앙!
주현성은 그대로 손을 휘둘러 봄의 주먹을 쳐냈다. 쳐내진 주먹은 밀려나며 으깨졌다.
으깨진 주먹에, 봄의 순례자는 웃으며 주먹을 더 빠르게 휘둘렀다. 휘두르며 뿌리 역시 내뻗었다.
캉! 카가가각!
후광과 근력. 그 두 가지가 주현성이 봄의 순례자의 공격을 쳐낼 수 있게 했다.
두들겨진 봄의 손과 뿌리가 부숴졌다가 재생하고, 봄의 순례자는 치밀어오르는 조바심으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일부 공격은 그 탄탄한 방어를 통과해 주현성을 두드렸으나, 주현성은 물러나지 않았다.
봄의 순례자가 조바심이 날 때까지. 조바심으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멍청한 행동을 할 때까지. 그렇게 강철보다 단단한 철장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으직!
주현성의 철장이 작렬하고, 손이 9번째 뭉개지자, 봄의 순례자는 웃는 얼굴에 분노를 담으며 촉수를 그 팔에 뭉쳤다. 쳐낼 수 없는 강력한 공격을. 느리지만 맞으면 뼈아플 일격을. 그렇게 뻗어냈다.
후우우우우웅!
휘둘러지는 횡 궤적은 읽기 쉬웠다. 주현성이 허리를 숙여 피해내자,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터져나온다.
충격파에 고막이 아리면서도, 주현성은 숙였던 그대로 다리를 앞으로 밀었다. 그렇게 밀어내면서 팔을 뻗어 가녀린 허리를 팔에 안았다.
"하하하! 뭘 하는 거냐, 해방자!"
봄의 순례자가 즐거이 웃는 동안, 태클을 건 주현성은 그대로 지면에 발을 굴렀다.
콰아아아앙!
지면이 와자작 부숴지고, 주현성의 몸뚱이가 떠오른다. 붙들린 봄의 순례자도. 후두둑 떨어지는 액체를 동봉하며.
그렇게 뛰어오른 주현성은 하늘을 향해, 두들겨 맞으며 쌓였던 가속을 사용했다.
투확!
투화아악!
투화아아아아악!
연기가 세 번연속으로 뿜어지자, 주현성의 몸은 더욱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날았다. 봄의 순례자는 제 몸을 두들겨대는 바람에 팔꿈치를 세워 주현성의 몸뚱이를 두들겼다.
뻐억! 뻐억! 뻐억!
연달아 두들기는 팔꿈치에도 주현성은 놓거나 반격하지 않았다. 묵묵히 봄의 순례자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하늘을 향해 방향을 유지했다.
투우우우웅!
그렇게 날아간 둘의 몸뚱이가 구름을 뚫었을 때, 주현성의 무표정 위로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간 화신 강림을 쓰지 못한 이유는, 섣불리 사용했다가는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기 때문이며, 지금 봄의 순례자의 신체능력이라면 피해낼 가능성도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현성은 붙들고, 피할 틈조차 없게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 다른 이들이 말려들지 않을 장소를 찾아야 했다.
정답은 간단했다. 주현성은 모르지만, 봄의 순례자가 화신으로 삼은 몸뚱이는 두번째 맞는 화신 강림에 부르르 떨었다.
봄의 순례자가 그 잠재의식에 의아해하기도 전에, 하늘이 갈라졌다. 뻗은 손을 향해 신성이 떨어졌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하늘에 가까워서, 화신의 울음소리는 그 어떤때보다 강맹했다. 주현성이 웃고, 봄의 순례자가 웃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름의 안배군! 하하하! 여기까지 와서 나를 방해하는 거냐, 여름의 도살자!"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쿠오오오오
여름이 대답하며, 제 발굽을 지면으로 떨궜다. 떨어지는 발굽의 위치는 감속하기 시작한 주현성과 봄의 순례자 위였다.
떨어지는 발굽에서 자아내지는 소음은 귀청을 멀게 할 듯 쇄도하다가, 그대로 내리꽂혔다.
지면에 있는 이들은 천공에 있는 구름이 삽시간에 걷히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그 틈으로 새로운 태양이 모습들 드러내는 것 또한 보았다.
―!
형연할 수 없는 굉음이 울려퍼지며 그 태양이 화염을 휘몰아치고, 그 중심에 있는 봄의 순례자와 주현성은 지면으로 떨어졌다.
쿠우우우우우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지면에 격돌하는 순간 터져나오는 화염은 폭발을 동반했다.
그 폭발은 두 명의 인영을 제 몸에서 튕겨냈고, 주현성은 바닥을 구르면서도 다소 멀쩡하게, 봄의 순례자는 그야말로 반의 반토막만 남아 나뒹굴었다.
쿠르르르르
투두두둑
봄의순례자가 겨우 재생을 시작하고, 주현성도 일순 숨이 멎을 듯한 고통에 쿨럭대는 동안, 찰박이는 촉수들이 오그라들어 바닥에 까맣게 죽어갔다.
주현성이 몸을 일으키자, 봄의 순례자 역시 갓 재생한 멀쩡하지 않은 팔다리를 꿈틀댔다.
주현성이 다가섰다. 다가서는 걸음 안에서, 주현성은 떨어트렸던 도끼와 거검을 집어들어 등에 짊어지고, 손에 들었다. 손에 든 도끼를 반바퀴 돌리며 주현성이 다가섰다.
일어서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괴력이 담긴 바디슬램과 화신 강림, 천공에서부터 내리꽂히는 위치 에너지.
그 세 가지가 조화된 공격은 봄의 순례자의 신성을 거의 다 눌러놓으며 재생력을 떨어트렸다.
봄의 순례자는 제 몸에서 유동할수 있는 신성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눈치채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비척대고, 쿨럭대면서, 어떻게든 제 몸을 일으켰다. 갓 만들어낸 팔다리가 덜덜 떨리며 그 몸뚱이를 겨우 지탱했다.
"후우… 후우…."
봄의 순례자는 숨을 고르면서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각각 들어올려 방어적이면서도 타격에 좋은 자세를 취했다.
주현성이 취하던 자세였다. 주현성은 그 자세를 보고 멈칫했다가, 다시 걸어갔다.
싸울 의지가 있는 한, 그 전의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
추락의 데미지로 완전히 파손된 판금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고, 사슬갑주가 전신을 뒤덮는 가운데 주현성이 도끼를 들어올렸다.
10m도 남지 않은 거리, 봄의 순례자는 완전히 드러난 얼굴로 짙은 호승심을 띄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수천년을 학자이자 간자로 살아온 자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한 명의 전사만이 있었다.
주현성이 그 얼굴을 보며 달려들려는 순간.
퍼억!
봄의 순례자의 머리가 꿰뚫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