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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화 〉군주들의 아버지 (192/274)



〈 192화 〉군주들의 아버지

투확!

쏘아진 화염이 머리를 두들기자, 준신은 제 몸을 비틀거리는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한 준신의 갑주나 몸뚱이는  기능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크으윽… 아직…!"


양손도끼를 크게 휘두른다. 휘둘러지는 도끼에 담긴 힘은 만만찮으나, 내게 비할  있는건 아니었다. 몸을 뒤로 조금 물려 피하고, 주먹을 올려친다. 파워아머로 둘러진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갔다.

쾅!


준신은 겨우 그 공격을 가로막지만 막는데 사용한 팔이 바깥으로 쭉 꺾여진다. 꺾이면 안되는 곳까지 꺾여진 팔이 덜렁이고, 준신은 비명을 삼키며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도끼. 날이 섬뜩하게 빛난다. 난 물러나지 않고 올려친 주먹으로 거검을 내리친다. 어차피 막을 필요도 없었다.


챠르르르르륵!!!


메이가사용한 화염 사슬이 녀석의 무기를 붙들어 벽에 쳐박는다. 벽에 쳐박힌 무기는 화염으로 타들어가면서 쇳소리를 흘리고, 그렇게 무기를 잃은 준신이당황한다.


당황하는 놈을 향해 거검을 내리찍는다.


쩌억!

"크으윽…!"

"오호."

준신 전사는 잘려나가기 직전인 팔을 들어올려 거검을 팔로 받아내, 팔을 완전히 잘라내버림으로써 버텨냈다. 내 공격의 위력 전부를 흡수한 팔이 고깃덩이가 되어 널부러진다.


"아직이다!"

준신은 그렇게 잃어버린 팔과 도끼를 포기했다. 몸을 구부려, 그대로 크라우칭 스타트 같은 자세로 달린다. 그렇게 달려나가는 궤적에 위치한 건 메이. 짜증나는 마법사라도 처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선명했다.


"어딜."


그렇게 나아가는 것보다 빠르게 내 손이 뻗어졌다. 뻗어진 손에 붙잡힌 얼굴이 당황감으로 젖어드는지, 내 파워아머 건틀릿 위로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앙!

붙잡은 얼굴을 뒤로 던진다. 그대로  밀려나거나 목이 뜯겨질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준신은 몸을 그 자리에서 굴려 충격을 최소화했다. 바닥을 나뒹굴며 튀어오르는 돌덩이에 녀석이 억누른 비명을 지른다.

"크헉… 크으윽…."


쿨럭거리며, 숨을 고르는 준신의 입가에는 피가 맺혀있었다. 투구는 방금 내가 던지며 벗겨진 탓인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 준신은 그런 걸레짝에 가까운 상태로 바닥을 기었다.

"괴물… 같은 놈들…."

준신이 할 말인가? 어이가 없어 픽 웃으니, 준신은 몸을 덜덜 떨다가 하나 밖에 남지 않은 팔을 바닥에 짚었다.

"아직… 아직이다… 폐하께서는 나를―"


덜덜 떨리는 팔과 다리로, 겨우 비척비척 일어난다. 그 눈동자에는 집념이라고 말하기에도 뭣한, 뜨뜻한 감정이 감돌고 있었다. 분명히 나와 메이의 전투력에 겁을 먹고는 있으나, 그럼에도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였다.


징하다. 그게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눈쌀을 찌푸리며 거검을 들어올리니, 녀석은 자세를 잡았다. 잘려나간 팔뚝 위로 주먹이 있는 양, 다른 주먹을 단단히 쥐고서.


콰직!

준신의 주먹이 뻗어져 나오고, 동시에거검이 내리쳐진다. 내 근력이 남김 없이 실린 거검은 가볍게 그 머리를 쪼개고 준신의 몸뚱이를 바닥에 쳐박았다.


바닥에 프랙탈문양을 남기며 균열을 만들어낸 거검은, 시체를 남김 없이 짓이겨 소생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쯧…."

거검을 들어올리자 보이는 건 피곤죽에 가까운 유해였다. 피를 털어내며 거검을 등에 짊어지니, 메이가 다가왔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군주들의 아버지가 그렇게 인망이 좋은 편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이유가 있는 건가?


나와 메이를 상대로 시간을 벌라는 건, 어떻게 보자면 죽으러 가라는 말과 같았다.

준신이다. 이래뵈도 신성을 가진 존재다. 일반인들과는 비교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그런 준신인 주제에, 황제가 명령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자살임무를 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른 목적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환각이나 최면 마법?

 수 없었다. 혀를 차며 나아가니, 메이가 옆에서 따라붙었다.

"이 위에 준신이 더 있을까?"

묻는 말은 메이의 목소리였다. 잠시 고민하며 나는 계단에 올랐다. 계단은 넓직하지 않고 좁지만, 위아래로 폭이 넓어서 그렇게 어려움 없이 오를  있었다. 내가 선두에 서고, 메이가 뒤따랐다.

"아마. 높은 확률로 있겠지.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거일텐데, 저거 하나로는 안 막힌다는 걸 그 전장에서 배웠을테니까.  배웠으면 우리만 좋은 거고."


메이는 조용히 있더니 으응, 하는 소리를 흘렸다.

"되게 사망유희 같다."

"사망유희?"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이소룡이 탑 오르는 영화였던가? 그다지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의아해하니, 메이가 웃었다.

"나중에, 우리 같이 나가면 꼭 만나서 같이 보자."

"…그래."


귀여운 년.

"근데 그거 이소룡 혼자서싸우는 거 아니었냐?"


말하며 고개를 돌리니, 메이는 눈을 크게 떴다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잡아왔다. 붙드는 손이 가벼웠다.

"우린 둘이서 하나잖아. 그치?"


"그래, 자주 그런 상태가 되고는 하지."

섹드립을 치니, 메이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투닥투닥 내 파워아머를 두들겼다.

메이의 투닥거림을 받아주며 오른 2층은, 기울어진 탑의 상태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잔해 등이 한쪽에 쏠려있는 구조였다.


길게 뻗어있는 복도는, 저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나 생각보다 기다란 구조를 갖고 있었다.

 넓게 트이고 엄폐물 하나 없는 복도의 한 가운데, 누군가 서있었다.


기다란 장궁을 손에 쥐고, 화살  발을 다른 손에 쥐고 있는 남자. 머리에 드리운 후드나 가벼운 가죽 갑옷으로 미루어 보건데, 궁수였다.


그것도 아주 전문적인 궁수에 정찰병. 아마 그간 날아오던 자동 추적 화살의 대부분도  새끼 솜씨일 가능성이 높았다.

왠지 차림이 눈에 익기도 했고.

등에 짊어진 거검을 끌어내리니,  궁수가 화살을 시위에 매기며 후, 하는 짙은 한숨을 흘렸다.

투우웅!

바람이 우짖고, 화살이 빠른 속도로 내게 접근한다. 날아드는 화살은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나를 지나쳐 메이를 향해 날아들려고 하고 있었다.

[불굴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하지만 감속하는 세계와 동시에 가속하는 내 신경으로는, 파악하지 못할 움직임도 아니었다.


물에 빠진  더디게 움직이는 팔을 흔들어,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팔을 휘둘러 화살을 튕겨냈다.


카앙!


파워아머의 완갑을 두드린 화살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메이는 그런 와중에도 침착하게 주문을 외워 화염을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메이가 일으킨 화염이 바닥을 긁어내며 나아가자, 궁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폐하."


묻는 이는 표정이 굳어있었다.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말하는 이는 폐하라는 칭호를 입에 담고 있는 것치고는 태도에서 충성심이나 기개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택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은 따르고 있다는 정도에 준하는 감각.


그 감각에 어깻죽지에 괴물의 팔을 매달아놓은 황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전부 계획대로…."


"그 계획에 기껏 만들어놓은 군단을 전부 잃고, 이대로 동료를 먹이처럼 내어주며 탑을 기어오르게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모독적인 말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말만으로도 처벌을 내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틈이 없었다. 옥좌에 앉은 채, 폐하라고 불리운 남자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흐리게 비춰지는 화상 너머로는 전장이 떠올라 있었다. 전장에서는, 쏟아지는 괴물들을 일일히 요격하며 버티고 있는 군대와 신이 있었다.

번개와재앙, 유황으로  비와 화염의 폭풍을 뿌려대는 신격. 그가 그간 접촉하고자 했으나 응답 한 번 없던 신, 가을의 마녀.


그 가을의 마녀가 동대륙의 신살자와 손을 잡고 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신의 힘을 등에 업고 신살자의 군대는 별 문제 없이 괴물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공성병기가 불을 뿜고, 마법이 어둑해지는 전장을 뒤덮는다. 불어오는 눈보라를 눈속임으로 삼아 전장에서 괴물의 오금을 그어대는 전사들도 있었다.


그렇게 쓰러져가는 괴물들의 시체가 너무 많았다.

차라리  뿐이라면 안심할테지만, 그와 함께 이 부유하는 땅덩어리의 폐탑에 앉아있는 이들은 하나 같이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저 괴물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승산이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피폐해지고 모두 소모한 상태로도 폐하의 그 자랑스러운 팔을 날려버렸던 괴물이 올라오고 있단 말입니다."

 말을 듣는 준신들과 신격 하나는, 탑을 올라오고 있는 어떤 신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있는 마력 역시 눈에 띌만큼 큰 편이었으나, 가장 눈을 잡아끄는 건 그 신성이었다.

반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출력. 그 출력을 도움닫기로 쓰는지 가공할 속도로 탑을 오르는 모습.


그들은 그 신살자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두려워 하면서 제 수장인 군주들의 아버지에게 시선을 보냈다.

"대답하지 못하는군요."


그런 준신들 중, 애초에 황제의 부하로 시작하지 않았던, 각국의 유력자나 이름 높은 전사들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계의 판도를 바꿔주겠노라고, 가진 힘만 있더라면 그 어떤 인간도 넘보지 못할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들은  말을 듣고 그를 따라왔다.

하지만 지금 꼴은 무엇인가. 그들은 그 불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괜히 충절 있는 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


"저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당신 곁을 떠날 생각입니다. 적어도 그런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죠. 당신과는 달리."

 결별 선언에, 황제이자 군주들의 아버지인 신은 옥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누구 멋대로 벗어나려는 것이지? 한 번 충절을 맹세헀으면 끝까지 의무를 다하라!"

윽박지르는 소리에 그들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무기에 손을 가져가며 반발했다. 반발하며, 그간 지키던 말투도 포기하며 외쳤다.


"충절? 지킬 것이 있어야 충절이라도 지킬 수 있겠지. 그쪽이 우리에게 뭘 해줬다고?!"


일촉즉발로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황제가 손을 높게 들어올렸다.


그 단순한 동작에, 대부분의 준신이 낯빛을 굳혔다. 저들은 저걸 잘 알고 있다. 뭘 하는 건지, 어떤 기술인지도.

"이 개자식…!"

콰지지지지지지직!!!!!

그 손이 떨어져 내린다. 떨어지는 궤적을 따라, 거칠게 그어내는 것처럼 공간이 일그러진다.


금방이라도 무기를 뽑을  했던 준신들은,  기세를 읽어내고는 옆으로 몸을 던졌다.

몇명의 눈치도 없으며 신성도 익숙치 않은 준신들만이 그 궤적에 걸려 산산히 찢어졌다. 찢어지는 모습은 마치 산 채로 박피되는 것을, 빠르게 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박피된 사체가 지면에 늘러붙는다. 늘러붙다 못해 찌그러진다.

퍼어어억!

쩌적


지면이 푹 꺼지고, 잘려진 기둥이나 지붕 따위가 어지럽게 바닥으로 추락한다. 우수수 쏟아지는 잔해에 준신들은 투덜대면서도 방금 죽은 준신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전신이 완전히 으깨진 모습. 그야말로 아주 거대한 무언가한테 짓밟힌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에 도발의 대부분을 맡았던 준신이 이를 부득 갈면서 다른 준신들에게 손짓했다.

"넌 일선을 넘었다, 군주들의 아버지. 우린 가겠다."

군주들의 아버지는  말에 두 이상 화내지 않았다. 단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가 푸는 것으로 분노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계획대로 된다면, 아무래도 좋을테니까.

그의 승패조차도.


이탈하는 준신들과 달리, 친황제파인 준신들은 그 공간에 남아 낯빛을 굳히고 있었다. 충절로 무장한 그들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전력이 줄어들었음을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의 눈에, 이 높이 솟은 땅덩어리를 향해있는 탑이 무너지는  보였다.


황제가 휘두른 신성의 탓으로 보였다.

'차라리 저기에 휘말려서 죽었다면 좋으련만.'

그들은 신살자가 죽었기를간절히 바랐다.


부디 신살자가 올라오길 바라는 황제와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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