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군주들의 아버지
군주들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내려다보는 머리에는 이전 같은 악취미한 투구 따위는 없었다.
단지 머리에 드리운 후드와 서클렛 정도가 전부였다. 모두 마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물건인지 잔잔하게 마력 특유의 섬뜩한 감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 왕이 몸을 일으키니 보좌할 셈인지 쌍익을 지키고 있던 전사와 궁수가 앞으로 나서며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런 그들이 딛고 선 땅에는, 길게 마법진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다. 붉은 도료를 펴바른 듯한 그것은, 넓게 퍼져서 보는 내가 다 기분 나쁠 정도였다.
마법진과 그 둘을 눈으로 훑으며 시끄럽게 울리는 톱날을 들어올리고, 거검에 손을 가져갔다.
"…야만인인 건 잘 알고 있다. 이 대륙 그 어디를 살펴보더라도 너 같은 놈은 없었으니. 필시 동대륙에서 나고 자란 야만인일테지. 사회성이라고는 기대도 할 수 없으니. 허나 너와 나는 모두 신격을 등에 업은 몸. 서로 적절한 인사와 존중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대답할 가치도 없는 아가리 털기에, 내가 묵묵히 노려보니 군주들의 아버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생각했다.
마법진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게임에서도 마법진은 발동하면 지면에 새겨져 특정 조건 하에 효과를 발휘하는 종류인 게 대부분이었다.
마법 캐릭터를 깊게 파본 것은 아니라 정확한 문양으로 무엇인지 유추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뭔가를 벌이려고 한다는건 명확했다.
늘어지는 황제의 말에, 내가 거검을 움켜쥐었다.
"끝까지 무시할 셈인가,야만인? 너도 잘 알고 있겠지만, 네가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네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나를 쓰러트리던가, 아니면 나와 화평을 맺어 돌아가는 것 밖에 없지. 그럼에도 그런 태도를 고수할테냐? 정말이지…."
그 아가리 털기에 나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뭘 원하는지는 뻔했다.
숨 한 번 들이키기도 전에, 내 머리 위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불굴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3인칭으로 바뀌는 시야와 내 머리 위에서 갈라지는 공간. 그 갈라지는 공간 너머에서, 무언가 쏘아졌다. 그 형상은 익숙하며, 빨랐다.
그건 창이었다. 검고 길어, 누군가의 머리통에 집어던지면 쉽게 꿰뚫을 수 있을 법한 기괴한 형상의 창.
이미 누군가의 머리를 깨는데 사용했던 창.
카아아앙!
방패를 두른 왼팔을 휘둘러 창을 튕겨내니, 군주들의 아버지가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씨발놈이.
더 이상의 대화는 무용했다. 빠르게 몸을 앞으로 튕겨내듯이 나아가니, 군주들의 아버지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놈을 막아라!"
그렇게 내 앞을 가로막은 건 큼직한 양손망치를 쥔 전사였다.
그 전사가 망치를 내려찍고, 나는 내려찍어지는 망치를 향해 신성톱이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는 방패를 휘둘렀다.
가가가가가각!!!
크게 밀려나며 자세가 흔들리는 전사. 나는 그 광경을 보며 놀라워 했다.
신성톱에 쳐맞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망치는 갈려나가지 않았다.
손상은 경미했다. 쇳물 같은 것이 후두둑 떨어지기는 했으나 실상 손상이라고 할 수준도 아니었다.
나는 밀려나는 전사에게 달려들며 그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다부진 몸. 몸에 두른 모든 물건에서 느껴지는 짙은 신성. 아이템에 준하는 것으로 보이는 만듦새. 직접 다뤄본 것이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명확하게 아이템이었다.
그간 준신들이 사용하던 아이템들에게서 느껴지던 신성이 짙게 느껴졌다. 신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으나, 반신이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은 되었다.
"너구만…!"
메이를 다치게 했던 무기를 만든 새끼가.
나는 등에 짊어졌던 거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멈춰서는 다리로 지지하며 쏘아낸 참격은 묵직하게 허공을 찢었다.
내 근력과 전 체중이 실린 강격은 제 아무리 신이라도 할지라도 부상을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대장장이는 재빨리 자신의 망치를 그 궤적의 들이밀어 막으려고 했으나, 그리 쉬이 흘러가진 않았다.
쩌어어엉!
콰득!
금속과 신성으로 된 자루가 가볍게 잘려나간다. 뭉텅이로 썰려나간 자루가 끊어져 망치는 힘을 잃고, 대장장이는 혀를 차면서 뒤로 물러선다.
그 빈자리를 채우려 달려드는 화살과 공간을 가르는 참격.
화살을 몸을 틀어 피하고, 공간을 가르는 참격이 몸을 갈라놓기 전에 거검을 들어올렸다.
쩌어어어억!!!
검면을 타고 흐르는 압도적인 질량. 그야말로 산 자를 짓이겨 먼지로 만드는 수준의 공격에 이가 부득 갈린다. 허나 버텨낼 수 있었다. 폭군의 검은 파괴불가니까.
그렇게 가로막힌 공격이 흩어지자, 그 사이로 군주들의 아버지의 무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왜 저리 침착하지?
의문스러워 하면서도, 나는 거검을 들어올렸고, 놈은 외쳤다.
"놈을 공격해라, 침묵시켜!"
명령에 뒤따르는 공격들. 군주들의 아버지의 옆을 차지하고 있던 궁수가 빠르게 화살을 매겨 나한테 쏘아내고, 대장장이가 새로운 무기를 뽑아들고서 내게 달려든다.
첫 조우는 대장장이의 공격. 위에서부터 내리찍어진 망치를 몸을 옆으로 틀어 피하고, 다리를 내질렀다.
카앙!
큽, 하는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서는 대장장이의 옆으로 화살이 다가온다. 다가오는 숫자는 다섯. 한꺼번에 쏘아냈다고는 이해할 수 없을 수가 빠르게 내게 다가왔다.
그 화살들의 뒤에서 다가오는 것은 군주들의 아버지가 사용한 마법. 공간을 가르고 쪼개고 꿰뚫는 마법에서 강대한 신성이 물씬 풍겨왔다.
날아드는 화살을 방패의 겉면으로 두들겨 튕겨내고, 내게 쇄도하는 마법들을 거검의 검면으로 틀어막거나 튕겨낸다. 그렇게 검면을 두드리고 무위로 돌아가는 마법들 사이로, 대장장이가 달려들었다.
쐐애애액!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몸을 기울여 피하고, 후광을 두른 주먹을 휘둘러 대장장이의 왼팔을 그대로 짓이긴다.
주먹에 닿는 갑주와 살점이 산산히 부숴지고 쇳물로 변해 후두둑 떨어진다.
"크으윽…!"
침음성을 간신히 억누르며 뒤로 물러서는 대장장이. 나는 슬쩍 시야만을 움직여 황제의 팔을 보고는 몸을 날렸다.
"비켜라, 아르만!"
황제의 궤적과 대장장이가 물러선 궤적, 내가 위치한 궤적은 정확히 직선.
이대로 마법을 날리려거든 못할 건 없으나, 그럼 전위가 빈다. 황제도 그정도는 생각했는지 마법을 쓰지 않았다.
마법이 날아오지 않으니, 그 다음은 궁수였다.
투투투투투!!
나무를 파내는 듯한, 기관총을 쏘아붙이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일련의 화살들이 득달같이 내게 날아왔다. 날아오는 궤적은 자유자재로 바뀌어, 내 사각을 점하려고 했으나.
쐐애애애액!
콰드드드드드득!!!!
그보다는 내가 방패를 집어던지는 것이 훨씬 빨랐다. 화염 부여가 걸려 전기톱 소리를 내며 쏘아진 방패는, 반듯하게 날아가 궁수의 몸뚱이를 지나치며 갈라버렸다.
반으로 갈라지는 궁수의 몸뚱아리가 동체가 둘로 나뉘어 바닥에 쓰러지고, 더운 내장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리고 내 몸뚱이 위로 화살들이 날아와 갑주를 두들겼다. 하지만 신성을 잃은 화살들에는 위력이 충분치 않았다.
나는 땅에 쳐박힌 방패를 주워들 것도 없이거검을 집어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윽, 으아아아!!"
침음성을 내며 제 팔을 붙들고 있던 대장장이는, 다가오는 내 모습을 보고서 빠르게 새 무기를 뽑아내어 올려쳤다.
꽈아아앙!
나쁘지 않은 강격이었다. 내 전력을 담아 내려쳐지는 거검에는 맞설 수 없었을 뿐.
거검에 부딪힌 무기가 갈라지고 깨지고, 내가 검을 휘두른 각도에 잔류하던 대장장이 남은 한 팔이 동시에 으깨진다.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거검은 팔을 부숴버렸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졌다.
"크헉… 폐하… 옥체를…."
대각선으로 갈라지는 대장장이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쓰러지고, 그 너머에 있던 황제가 인상을 확 찌푸리며 손을 뻗었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참격. 이미 몇 번 보았던 공격. 나는 눈 앞의 대장장이의 몸뚱이가 으스러지는 것을 보며 검면을 위로 쳐들었다.
검을 두들기는 충격파와 아리는 팔, 그 감각에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전위도 후위도 잃었다. 지금 저 빌어먹을 새끼한테남은 동료는 없었다. 막아서 흐트러진 자세 그대로, 몸을 돌려 거검을 집어던졌다.
쿠오오오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쏘아진 거검이, 그대로 날아가 황제에게 닿았다.
부숴져 흩어지는 살점, 멀쩡하던 왼손이 으스러지면서, 군주들의 아버지가 얼굴을 엉망으로 찌그러트렸다. 핏물이 되어 흩어지는 왼손과 함께 군주들의 아버지의 몸뚱이가 뒤로 쏘아진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구름과 핏물. 그 잔해 사이에서, 군주들의 아버지는 무릎을 꿇은 채 헐떡이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며 허리춤에 메어진 낙인을 쥐어 뽑았다.
군주들의 아버지는 헐떡이면서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담긴 짙은 살의와 자신감에, 나는 의아해지면서도 달려들었다. 발밑에서 마력이 흐르기도 전에, 내가 밟고 있던 마법진에 크게 진각을 밟아 부수면서 쏘아졌다.
"큭…!"
튀어오르는 돌조각과 당황감으로 일그러지는 황제의 표정. 그가 물러서며 손에서 마력을 끌어모으는 순간, 내 다리가 휘둘러졌다.
쩌억!
"커헉!"
정확히 옆구리에 꽂힌 발차기에 군주들의 아버지가 밀려나 바닥을 나뒹군다. 뒹굴면서 마법진은 더 크게 지워져 흔적이 옅어졌고, 그렇게 옅어진 흔적에 놈은 마법을 쓰지 못했다.
놈은 전에도 불리해지는 순간 바로 공간을 갈라 도망갔다.
그렇게 무리하게 해낸 마법 같지도 않았고, 숨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다.
내가 마법을 비틀어내거나 취소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 건 메이나 가능했다. 본래라면 메이가 그 역할을 해내야 할테지만, 메이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였다.
녀석에게 마법을 쓸 틈도 주지 않고 두들겨 패 죽이는 것.
후, 하고 길게 숨을 뱉어내고, 바로 바닥을 걷어찼다.
콰아앙!
내 다리에 걸려 날아가는 돌조각, 그 큼직한 돌조각에 황제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괴물의 팔을 이어놓은 듯 기괴한 형상을 한 팔이 뻗어져 돌조각을 막아냈다. 마법을 쓸 틈 같은 건 없이, 황제는 팔에 쳐박힌 돌조각에 인상을 찡그렸다.
부우우우웅!
박힌 돌조각에 멈춰선 순간, 내가 다가가 다리를 휘두른다. 위로 올려치는 발차기에 미쳐 피하지 못한 황제의 팔이 으스러졌다.
황제는 인상을 찡그리면서 물러나고자 했으나, 그보다는 내 다리가 재차 휘둘러지는 것이 더욱 빨랐다. 후광을 두른 다리가 황제의 다리를 후려치자, 그 다리가 크게 휘며 공간이 휘엉청 떨렸다.
후광에 일그러진 공간이 바스라져 유리조각처럼 흩어지고, 황제가 다른 손을 들어올려 수인을 맺으려고 했다.
으직!
하지만 그보다 내 주먹이 더 빨랐다. 주먹에 으깨진 손가락이 피륙을 떨구고, 황제는 물러서면서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끌어올려지는 감각, 그 감각이 발밑에 아릿하게 돌아다니기도 전에 내 주먹이 다시 뻗어져 나온다. 파워아머 위로 잔잔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황제가 두르고 있던 보호막이 산산히 부숴져 흩어진다.
보호막을 쪼개며 공간을 일그러뜨린 내 주먹은, 그대로 황제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목이 뒤로 쑥 패이더니 입에서 피가 한웅큼 쏟아졌다. 황제는 그 부상에도 눈빛을 형형하게 하며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영창,수인,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겠다.
그 일념으로 나는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몸 안쪽에서부터 주먹을 쳐올려, 허리를 틀어 옆구리에 꽂는다. 후광이 둘러진 주먹에 군주들의 아버지가 몸을 휘게 하며 입에서 토혈을 후두둑 떨어트렸다.
쩌어어어어엉!!!
바디블로에 담긴 힘에 의해 황제가 쓰레기처럼 쏘아져 바닥을 나뒹군다. 여유는 커녕 숨쉴 시간조차 주지 않으려, 나는 그렇게 날아가는 몸뚱이를 쫓아 바닥을 걷어찼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황제를 향해 앞차기를 내질렀다.
퍼억!
다시 한 번 황제가 마법을 쓰기도 전에 걷어차서 팔을 뜯어버리니, 괴물의 팔이 뜯겨져나간 황제가 비척이면서 겨우 멈춰섰다.
황제의 꼴은 처참했다. 수인을 맺을 팔은 뜯겨나가거나 부숴졌고, 목은 으깨져 영창은 커녕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조금만 더 치면 죽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주먹을 들어올려 자세를 취했다가 달려들자, 군주들의 아버지가 그런 내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고 일어섰다.
뭐지?
이기고 있는데?
마법진은 부쉈고, 마법을 쓸 수단은 모조리 파괴했는데?
아이템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 게 있었다면 진즉 내가 부숴버렸을 거다. 나는 그 불안감 속에서도, 그 불안감을 억누를 수단이 군주들의 아버지를 죽이는 것 뿐임을 알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을 내지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가속한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쏘아진 내 신형이, 음속을 돌파하여 주변에 충격파를 터트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
어지럽게 찢어지는 허공, 쏘아지며 군주들의 아버지의 머리를 쪼개버리려 하는 내 주먹.
불안할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승기는 내게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 불편한 감각에 쐐기를 꽂듯, 군주들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입이 찢어져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다가섰다. 그 주먹에 한시라도 빨리 맞기 위해서인 것처럼, 다가서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는 눈동자에서 감도는 건 적의 따위가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저 새끼가 쪼개고 있는 것도 그러했지만, 군주들의 아버지와의 싸움 자체도 그러했다. 비록 새로이 신격이 되었고, 마법사라 근접전이 익숙하지 않을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죽어주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권능은 쓰질 않았고, 저 강대한 마법을 사용할 거면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어보였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당장에 내가 탑을 오를 때 작정하고 방해할 수도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치 내가 올라오는 게 목적이었다는 것처럼.
스멀대면서 밀려오는 불안감이, 물 속에 몸을 밀어넣은 것처럼 내 목을 쥐고 있는 듯 했다. 그 직감이 내게 예리하게 속삭였다.
만약 정말 죽어주려는 게 맞다면?
죽는 것이 전제가 되는 계책을 짰다면?
그 직감은 설마가 되지 못했다. 그러기도 전에 내 주먹이 군주들의 아버지가 짓고 있는 미소에 닿았다.
내 주먹은 직감과 동시에 거둘 수 있을만큼 느리지 않았다.
주먹 위에서 산산히 부숴지는 골육, 쪼개지는 두개골 사이로 회백질이 튀어오르고, 약소하게나마 피가 흘러나온다. 거력을 이겨내지 못해 쏘아진다. 산탄총처럼, 군주들의 아버지의 뼛조각과 뇟조각이 한데 섞여 뒤로 날아간다.
퍼석,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함께, 코가 시큰거렸다.
[신을 죽이고 게임을 클리어 하십시오. 3/5]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예감을 무시하며 떠오른 메세지를 치워내기도 전에, 희끗하게 비쳐보이는 반투명한 창 너머로 피와 뇌수, 회백질이 뿌려진 지면이 눈에 들어왔다.
반투명한 창 너머이기 때문인지, 그 이질적인 색은 눈에 잘 들어왔다.
지면에는 뭔가 그려져 있었다.
내가 즈려밟아 부쉈던 마법진의 사이로 교묘하게 가려지게끔, 단순히 밟거나 때리는 것으로는 부수지 못하도록 구불구불하게.
그건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그 마법진은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