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9화 〉대륙 충돌 (199/274)



〈 199화 〉대륙 충돌

지진이 나고, 무너지고, 지랄 같은 풍경 속에서 괴물들이 떠돈다.

차라리 그냥 괴물이면 모르겠는데, 큼직한 날개를 몸에 달고 있는 비행형 괴물이다.

고대의 도시에서도 쉬이 잡지 못해 전용 공성병기를 달리 설치하고 근무제를 바꿔야 했던 그 비행형 괴물.

그 괴물들의 모습에 세네카가 안색을 굳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향이자  동생이 머무르고 있을 도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한숨에 무게를 추가하고 있었다.

그건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집에  가는 것과 그녀가집에 못 가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기에 굳이 꼬집을 것도 없었다.

나는 여기 떨어진 이래로 단 한 번도 돌아갈 수 없었고, 그녀는 돌아갈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있다가 없는 것이 상실감으로는 더할 것이라, 나는 구태여 비교해볼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묵묵히 깃발을 들어올린 채, 저 비행형 괴물들에게 눈을 두고 앞으로 향했다.

7천명을  넘는 인원은 내가 짊어진 깃발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긴 행렬은 공격당할 때 그리 좋은 진형은 아니나,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런 걸 신경 쓰지않았다.

묵묵히 전진하던 나는 영지의 지척으로 접근했다.


내가 지금 지나는 힐소로우 영지는 처음 군주들의 아버지를 조지러 갈 때만 하더라도 지났었던 영지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언덕을 끼고 불어오는 바람이 인상적이고 평화로운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잔잔히 불어오는 살기와 살고자 하는 인간들의 애절함 따위가 어지러이 내  앞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불타버린 잔해 따위를 뒤적이는 추레한 행색의 농민이나, 제 집인 것으로 보이는 폐허 앞에서 무릎을 꿇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이까지.

곳곳에서 널려있는 시체만 하더라도 그 참상을 능히 짐작할  있을테지만, 이 폐허가 된 영지는 그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처럼 끊임 없이내게 참상을 보여주었다.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세네카나 주변을 슥슥 둘러보며 경계를 한껏 올리고 있는 기사단장을 보고 나서야 나는 행렬이 뒤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행렬의 중간, 정확히는 중간에서 살짝 뒤라고 할 수 있을오묘한 지점, 병사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누군가에게 윽박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돌려 행렬을 멈춘 채 그 광경을 바라보니 보이는 것은 난민으로 보이는 이들이었다.


"으, 음식. 음식을 내놔!"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지에서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을 이들이 행렬 중간에 끼어들어 협박하고.

"제발, 제발 조금만 나눠주십시오. 저희 애가 다쳤는데 통 먹지를 못해 숨이 넘어가려고 합니다…."


구걸하는가 하면.


"나, 나는 4일째 굶었어. 이, 이 상처 보여? 빌어먹을 놈의 괴물이 할퀴고 지, 지나간 건데. 마을놈들이 나를 들여보내지 않았어! 내, 내가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못 먹고 4일 내내 오줌이나 받아마, 마셨다고!"


애걸하는 이까지 있었다.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중간 행렬에 끼어들어 그렇게 윽박지르거나 오열하거나 하고 있으니, 중간 행렬에서 마차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들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난민들은 그 가로막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그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식량이 들어있을, 겉으로 살짝 튀어나온 멧돼지의 다리나 사슴의 뿔을 보고 있었다.

"씨, 씨발! 이렇게나 많으면, 조, 조금은 나눠줄 수도 있잖아! 우리가 불쌍하지도 않아!"

"물러서! 물러서, 이 씨발놈들아!"

물자가 실려있는 마차로 달려들려는 난민들이 몽둥이 따위를 허공에 붕붕 휘둘러대고, 그에 위협을 받은 병사들이 창이나 도끼, 칼 따위를 겨누며 윽박지른다.

그 광경에 보통은 물러설 법도 하건만, 난민들은 오히려 한술 더   위협적으로 게거품을 물면서 달려들었다.


"이 무슨…."


달려드는 이들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방패로 겨우 막아내거나 피하는 병사들. 내 옆에 있는 간부들은 그 광경을 보고서는 당황스러운지 탄식을흘리거나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제압하려거든 제압할 수도 있고, 죽이려거든 죽일 수도 있었지만. 자세히 주변을 살피니 그들 뿐만이 아니라 나무나 잔해에 숨은 난민들이 우리 마차나 행렬을 노려보고 있었다.


만약 과한 폭력이라도 쓴다면, 졸지에 굶주리고 광란하는 영지민들을 학살해야 하는 일이 올 수도 있었다.

별 피해도 생기지 않을테지만, 병사들의 사기에는 치명적이겠지.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처럼 보였다.

나는 깃발을 휘날리며 뒤로 향했다.


"꺼, 져! 씨발!"

병사가 휘두른 방패를 피하려 몸을 뒤로 날리려다 넘어진 난민. 죽이려거든 당장이라고 말하는 듯한 빈틈에 병사가 무기를 크게 들어올렸다가 휘날리는 깃발을 보고서 멈췄다.

 병사를 시작으로 마차를지키던 병사들이 멈춰서고, 그 비정상적인 활동 정지에 달려들던 난민들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그들의 침묵과 정지를 신호 삼아 병사와 난민 사이를 가로막았다. 창을 내지르려던 병사가 창을 거두고, 내 바로 뒤에 있는 병사는 내 몸에 닿는 것이 큰 실례인 것처럼 무기를 떨어트렸다.


난민들은  그런 모습과 병사들의 반응에 겁에 질린 듯이 보였다. 움츠러든 어깨와 눈에 감도는 선명한 공포 너머로, 내 모습이 홍채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행렬은 8천명에 가깝다. 좀 소모되고 부상병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는 일개 난민 열댓명으로 어쩔 수 있는 수가 아니다.


심지어 병사들이 장비한 무구들은 대부분 훌륭한 품질이었다. 좋은 금속으로 뛰어난 장인이 만든 티가 나는 무구들이었다.

이들이 그걸  봤을리가 없었다. 당장에 떨어진 무기에 눈독 들이는 것만 보더라도 알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달려드는 이유는 단순한 광란이 아니었다.


이건 계책이었다. 죽을 각오로 달려들어, 몇명이 눈을 돌리면 몰래 마차에서 물건을 빼내어 도망치고자 하는, 그런 희생책이었다.


그렇게  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절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의 죽을 각오를 꺾기 위해 깃대를 바닥에 얹으며 말했다.

"음식이 필요합니까?"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곳이 필요합니까? 불 옆에서, 다른 이들이 지켜주는 안전한 곳에서 자다가 비명횡사할 걱정 없이 잠들고싶습니까?"


"그, 그렇수."


"맞아! 우, 우리도 그냥…."

내가 책망하는 것처럼 여겼는지 난민들이 나를 보며 묻지도 않은말들을 늘어놓았다. 자기 딸이 아프다. 자기 아들은 괴물의 발톱에 다쳐 죽어가고 있다. 자기는 갓난아이가 있다.


그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살고 싶습니까."


확신에 찬 물음에, 내게 정신 없이 제 사정을 늘어놓던 이들이 멈춰섰다. 덜컥, 하고 멈춰선 이들이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난민이 든 무기를 빼앗았다.

으지지지직!


타격부가 통통한 곤봉은, 내가 악력으로 쥐어짜내는 것에 버티지 못하고 산산히 부숴져 제 파편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 모습을  난민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고, 굳어가고있었다.

나는 그들이 도망가기 전에 외쳤다.

"살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 그래! 살, 살고 싶어!"

눈물을 흘리며 외치는 난민은, 내게 빼앗긴 곤봉은 신경도 쓰지 않는지 몸을 달달 떨며 이를 부딪혀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럼 여러분이 해야하는 건, 자기 목숨을 버림패로 써서 다른 이들이 물건을 훔쳐 달아낼 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내가 눈치챘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흠칫하더니 물러섰다. 그래봤자 겨우 2보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벌어진 거리에 겨우 숨을 내쉬었다.

거친 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손에서 쥐어짜진 곤봉을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음성 때문인지 그들은 제 손에 들려있던 무기를 우수수 떨어트렸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무기들은 하나 같이 조잡했다.


이들이 정말 누군가를 해칠 생각은 없음을 드러내는 것처럼.

나는 그들의 추레한 행색을 보며 깃발을 도로 어깨에 걸쳤다.  움직이는 팔을 따라 깃발의 긴 꼬리가 흩날렸다.

"이 깃발을 따라오십시오. 그리고 자기 옆에서 걷는 이를 돕고, 더 많이 걸을 수 있도록 복돋아 주십시오."


그들은  말에 당황한 듯 하다가, 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홀린 듯 내 모습을 눈으로 쫓았다. 나는 그들을 곁눈질로 확인하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 난민들은, 다시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황망한 눈으로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내 음성은 또렷하게 폐허에 울려퍼졌다.

난민들은 주린 배를 쥐고서 내 깃발을, 우리의 행렬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행렬이 폐허를 가로지르기 시작하니,  폐허 속에서 속속들이 난민들이 모습을 드러내 다가왔다.

마침내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인 건, 마차를 호위하는 병사들에게 사과하며 행렬에 합류하여 걷기 시작하는 난민들이었다.


"살로메."


"예, 대전사님."

"저 자들에게도 의약품을 사용해주세요.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요."


"하지만 저희가  건…."


"겨울님께서 근방의 약초를 조사하고 있으니, 금방 대체품을 구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저들 중에서  과정을 도울 수 있는 이가 있을지 모르죠."

내 대답에 살로메는 그 도마뱀 머리를 끄덕여 동의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난민들이 행렬을 뒤따르고, 그 행렬이 길게 이어져 폐허가  영지를 가로질렀다. 그 전진에는 막힘이 없었고,  행렬에 끼어든 난민들은 다른 난민들을 불러들였다.

폐허에 숨은 노인들, 나무에 올라탄 아이들, 다친 어미를 끌고 오는 백치까지. 많은이들이 행렬에 합류하여 걷기 시작했다. 내 깃발을 보고서.

그렇게 나아가는 길의 앞에, 누군가 갑자기 나타났다.

잘 차려입었으나 굶주린 모습, 허리춤에 메어진 장검.

그 뒤에 포진한 병사들의, 훈련된 듯 하지만 어딘가 어리숙한 모습.

기운과 혈색이 없어 굶주려 보이는 갑옷 차림의 추레한 난민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한 때 영주였던 난민과 함께.


나는 그들을 보고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걸어나갔다. 그들은 내가 접근하는 모습에 당황하는 듯 하더니 외쳤다.

"멈춰라! 너희는 지금 힐소로우 영지를 지나고 있다! 나는 이 영지의 적법한 주인으로서 통행세를 걷을 자격이… 멈추라고!"


그들이 8천명을 못  것 같진 않았다. 우리가 싸움을 했다가는 휘말릴 민간인이나 부상자 때문에 귀찮아질 수 있음을 눈치챈 것처럼 보였다.

왠지 의기양양해 보이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절박함을 애써 숨기는 그 영주의 표정을 보고서 멈추니, 영주는 긴장한 표정으로 외쳤다.

"가진, 가, 가진 식량의 절반을 넘겨라. 그러면 길을 비켜주고 동행하며 길을 안내하겠다. 이, 이 앞은 위험하니."

정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름 리턴이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 영주의 모습은 굶은지 오래되어 처량해보이기만 했다. 차려입은 옷이 화려하다는 점이 그걸 강조했다.

만약 내가 1회차중이라면 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기억도  나는 1회차를 지난 2회차에다 신을 셋이나 죽인 이후였다.

한숨을 푹 내쉬며 나아가고, 다른 손을 뻗어 행렬을 멈춰세우니, 영주는 당황과 안도를 반반 섞은 표정으로  접근을 보고 있었다.

"좋아, 거기서 멈… 멈춰!"


다가와 거래에 응하려는 것인줄 알았던 영주가 당황하고, 영주 바로 뒤에서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병사가 창을 쑥 내질렀다. 패기랄 것 없는 단순한 직선적 공격에, 내가 손등을 가볍게 휘둘러 쳐냈다.


카아아앙!

"크악!"


창을 휘두른 병사가 되려 넘어지고, 영주가 당황하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스르릉 소리를 내며 뽑혀나온 장검은 꽤 상등품이었으나, 휘두를 힘이 없다면 예리함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나는 영주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영주에게 다가서 장검의 날을 쥐었다.


영주의 표정이 굳고, 검을 빼내려고 양손으로 쥐고 당기나 칼날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 손아귀는 단단히 칼날을 붙들고, 영주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보란 듯이 움직이지 않는 칼날. 그걸 붙잡은 나의 부동. 곧 손아귀를 움켜쥐어 칼날을 우그러뜨리기 시작하자 영주의 표정은 한껏 망가졌다.

"흐, 흐억…."

이상한 소리까지 내면서.

으직으직 소리를 내며 찌그러드는 검날에, 영주가 칼자루를 놓고는 비척비척 물러섰다. 병사들도 차마 내게 덤빌 생각을 못하고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당황하는 영주를 무시하고, 그 장검을 손아귀에 쥔 채로 크게 외쳤다.


"살고 싶은 자는! 깃발을 따라와라!"

내 고함이 쩌렁쩌렁하게 폐허에 울려퍼지고, 바로 앞에서 그 함성을 맞은 영주가 귀를 틀어막았다.


"어떤 해도! 끼치지 않으며! 그저, 살고자 하는 이라면! 해치지 않겠다! 환대하겠다!"

그 말을 이해하는 듯, 영주들의 병사가 웅성거리고, 그 웅성거림이 다시  목소리에 묻혔다.

"허나! 내 뒤에 있는 이들을 해하려고 한다면, 맹세하마!"

영주에게 빼앗은 장검, 그 칼날을 한손으로 구겨 둥글게, 강철공에 가깝게 우그러뜨린다.


으직으직 소리를 내며 칼날 파편을 마구잡이로 바닥에 떨어트리는 장검에 영주가 헉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외치게 해주겠다."

마지막 말은 크지 않았으나, 폐허에 그 어떤 말보다 분명하게 울려퍼졌다.

구겨버려 공처럼  장검을 툭 내던지고, 깃발을 집어들어 영주를 가로질러 나아가니, 병사들은 오히려 내게 닿고 싶지 않은 듯 크게 물러섰다.

그런  뒤로 행렬이 다시 전진했다. 나아가는 행렬은 다시 길게 이어지고, 고개를 돌려서 뒤를 보니, 영주의 사병들은 그 행렬을 멍하니 보더니 행렬에 합류했다.


나는 그렇게 행렬에 합류하는 이들을 데리고, 남하를계속했다. 정확히는 남서쪽으로, 산왕국이 있을 산맥을 향해서.

7천명이 넘어가던 피난 행렬은, 산왕국에 다다를 때까지 5개의 영지와 4개의 부족을 더 만나게 되었고.


마침내 산왕국에 도착했을 때에는 8천명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산왕국에 도착할 때 쯤, 메이가 깨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