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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화 〉대륙 충돌 (203/274)



〈 203화 〉대륙 충돌

어둑하다. 시선을 움직여 주변을 훑어보면, 보이는  아득한 어둠 뿐이다.


그림자조차 지지 않을 정도로 어둑한 사위에, 나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손에 들고 있는 건 분명하게 발광하고 있는데, 이토록 시야가 어둑하니 왠지 숨쉬기 답답한 듯이 느껴졌다.

차라리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보인다는 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낙인 위로 피어오르는 불꽃이 어지러이  주변만을 밝히고, 그렇게 밝혀진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에 쳐진 거미줄.한 때는 밝게 주변을 비췄음이 분명한 횃불들. 그 횃불들이 부러지거나 꺼져나간 모습. 그 거미줄의 그림자 아래에서 꿈틀대는 기척과 함께하는 구멍들.


내가 걷고 있는 토굴의 사방에는 구멍이 트여있었다.

아래, 위, 좌우는 물론 전후의 벽마다 구멍이 트여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보면 혐오감이 치솟는 걸 환공포증이라고 하던가.

나도 그 환공포증인지 뭔지에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수한 구멍들.


그리고 그 구멍마다 풍겨오는 역하고 습한 냄새가 내 감각을 자극했다.


차라리 나만 그러는 거면 내가 편집증이라도 걸렸겠거니 하면서 안심 아닌 안심을  수 있겠는데.


"누가… 누가 보는 거 같아."

메이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는지 몸을 떨면서 말했고, 토니 스타크는 그 옆에서 주변을 슥슥 훑어보더니 말했다.


"시선은 모르겠네만, 어디서든 습격하기 용이한 장소이긴 해. 자네가 개의치 않는다면 빠르게 벗어나는 게 좋을 거라고 보네."

NM-21의 의견은 타당했다. 나 역시, 어디서 기습이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으며 과하게 어두운 탓에 막상 기습이 벌어지기 전까진 눈치채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걸음의 속도를 올려, 토굴이 야트막한 언덕을 끼는 부분까지 향했다.

치이이이이익

정확히는 향하려고 하다가 멈춰섰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열과 타들어가는 냄새.  역한 냄새에 섞여있는 톡쏘는 향. 나는 발을 슬쩍 치우고서 아래를 향해 낙인을 들이밀었다.


그건 거미줄이었다.


허나 그냥 거미줄은 아니었다. 어떻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성을 품은 거미줄이었다.

이거 어떻게 산성을 머금고도 형상을 유지하고 있지? 내가 신기해 하는 것과는 달리, 메이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NM-21은 표정이랄 게 없었다.


발밑에 늘러붙은 거미줄을 불을 머금은 낙인으로 털어내고서, 갑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신성을 머금어 자동 수복한다고 했던가? 그 말대로, 갑주에 남은 산성의 그을음은 빠르게 메꿔졌다. 은은히 느껴지던 열마저도 사라졌다.

만약 이 거미줄이 여기 한 군데에만 있다면 경계할 필요도 없겠지만, 산성을 가진 거미줄이라는  이상하다.


심지어 메이는 산성에 대항할 수단이 없고, NM-21은 몸의 대부분이 금속이라 한 번 손상되면 치명적이다.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기습당하면 위험하겠다. 이것만 봐도…."


메이가 말하니, 토니 스타크가 그 말을 받아  마디 덧붙였다.

"이정도면 자네 혼자 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토니의 말은 마냥 틀린 건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괴멸이 목적이고, 성유물이고 자시고 좆까라는 주의였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목적은 성유물을 회수하는 거였다. 정 내 목숨이 위험하고 그렇다면 성유물을 부수고  흡수하겠지만,  괴물이 있든 간에 내 목숨은 위험하지 않을 터였다.


토니나 메이의 목숨이 걱정이나, 그걸 위해 성유물을 얘네한테 들려서 돌려보내면 충분해보였다.

"통상적으로는 그렇겠는데, 이번에 한해서는 아냐."

 대답에, 토니는  말이 없었고 메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알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는 거야?"


"…기습에 특화되어 있고, 분명히 뭔가 있는 듯한 구조는으레 던전이 있는 게임에서도 그러는 편이니 이해할  있지만, 동대륙에서 본래 4신들이 괴물을 사냥하는 걸 업으로 해왔다는  생각해봐."

메이는  힌트에, 고민하는 것처럼 제 턱을 짚고는 갸우뚱했다.

기울이는 머리를 따라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늘어졌다가 되돌아가고,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던 메이는 스토리를 떠올렸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왜?"

"그냥 넘겨짚는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어쩔 수 없는 너무도 강력해 신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괴물들 또한 동대륙에 존재한 게 아닐까 생각해."


"…응, 그리고?"

"그리고 서대륙에서 괴물이 미친 듯이 솟아나는 건 봤을 거야. 동대륙에서 나타나던 놈들이랑 비슷했지."

"응, 맞아. 그랬어."


메이는 점차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을 물끄러미 보던 토니 스타크는 내게 기계적인 동작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카타콤에도 그런 괴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거군."


"맞아. 괴물이 딱히 나타나는 장소를 가려서 출몰하진 않았으니까."

물론 넘겨짚는 것이다. 없을 수도 있고, 없으면 더할 나위 없었다. 허나 모든 상황에 대비하려면이정도 가정은 해야했다.


신이 해결하지 않으면 어쩔  없는 수준의 괴물. 얼마나 강력할지 짐작은 가지 않지만, 준신 정도는 되리라고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다.


둘은  말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생각해보는 건지 조용해졌고, 나는  침묵을 발돋움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둘이일렁이는 낙인의 빛을 보고서 뒤따른다.


그렇게 나아가던 우리의 앞에 나타난 건 시체였다.


토굴 벽에 기대어 누워있는 시체는, 갑주를 입은 채였다. 몸에 둘러진 갑주가 낙인에 둘러진 화염 부여로 인해 번들거리면서 빛을 난반사했다.


"…마침 시체네."


혹여 괴물을 해치우고 완전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시체도 회수해서 나가자. 누군가의 가족일 수도 있으니까.

여의치 않으면 그냥 두고 가겠지만.

시체에 다가가, 그 시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시체를 들여다보았다.


그 시체는 성전사였다. 몸에 둘러진 갑주와 무기, 거기에 새겨진 문양과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그걸 짐작하게 했다.

 성전사 시체에는 한 가지 상흔과 끔찍하게 뒤틀린 표정, 제 몸을 포옹하며 뒤틀린 자세가 단서로 있었다.

시체의 가슴팍, 폐부를 꿰뚫은 공격은 꽤 굵직하나 날카로운 것으로 일격에 당한 것처럼 보였다.

마법인가? 마법을 쓰는 괴물인가?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냥 짚기엔 너무 단서가 많았다.


"흠, 꼭 그래야만 하는 건가?"


토니가 불편해하고, 메이는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시체의 상흔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치이이익

슬쩍 만지는 단면에서 산성이 느껴졌다. 산성이  건틀릿을 뚫기 위해 역한 냄새를 풍기며 표면을 녹이고 있었다. 시체의 갑주에 그 손가락을 문지르니, 갑주는 빠른 속도로 부식되었다.


"산성에 일격으로 갑주와 살점을 꿰뚫는 공격력… 거미줄까지. 어쩌면…."

기이이익

아, 씨발 좀.


추리를 마치기도 전에 들려온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니, 조금  거리, 불빛이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에 뭔가 있었다.

그 형상은 어른거리는 불빛으로 걸어나오며 제 얼굴을 가렸는데, 흉하게 부풀어오른 상체와 맨발에 맨다리가 인상적인 괴물이었다.


인간에 가까운 이족보행과 마르다 못해 회갈색을 띄는 피부는 이 괴물이 인간과 좆도 관련 없음을 드러내는  같았다. 의복은 커녕 생식기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 괴물은 기이익 하는 소리를 내면서 비척이다가.


퍼어어엉!

메이가 빠르게 쏘아낸 화염을 쳐맞고 뻗어버렸다. 삽시간에 타오른 화염이 그 전신을 먹어치우고 타올랐다.

역한 냄새가 훅 풍기자, 그 사이로 산성의 톡 쏘는 냄새가 역한 냄새에 섞여 비강으로 흘러들었다.


그 괴물은 일말의 저항도 없이 죽었다.

"…흠."


토니가 침음성을 흘리고, 메이가 의아한 눈으로  괴물을 바라보다 시체로 눈을 돌렸다.

상흔은  하나. 강하게 꿰뚫린 흔적. 산성이라는 점은 얼추 일치하나, 저 작은몸집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앞으로 가자."


"응, 뒤에서 따라갈게."

메이가 대답하고, 토니가 말 없이 뒤따른다. 나는  동료를 대동한 채로 앞으로 나아갔다. 불에 완전히 타버려  체액이 말라버린 거미인간의 시체를 지나가니 보이는 건, 더 많은 시체였다.

산성 체액을 가진, 유사 인간 괴물과 성전사들의 시체였다.


시체는  많았고, 괴물의 시체도  되었으나 성전사들의 시체에 새겨진 상흔은 하나 같이 비슷했다.


뒤나 위, 아래에서 꿰뚫린 상흔, 상흔에 흐르는 산성액, 시체들의 일관된 당황하는 표정이나 겁에 질린 표정,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

드물게 인간형 괴물에게 당한 상처도 보이긴 했지만, 치명상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상처는 없었다.


애초에 저런 보잘  없는 괴물에게 성전사들 전부가 당했으리라고 상상이 가지 않기도 했다.


도대체 뭐가 이런 상흔을 만들면서 일격에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


도대체 뭐가 이 토굴에 저런 구멍들을 잔뜩 만들어낸 걸까.

도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빛을 전부 꺼트린 걸까.

의문이 커져갔지만, 우리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뭣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없는 통로와  통로의 끄트머리. 어슴푸레한 빛이 어디선가 스며들고, 중심지에 놓여져 있는 성유물은 그 빛에 돋보여 은은하게 빛났다.

길게 이어지는 흙길은 좌우에 얕게 파여있어 괜히 외다리 같은 느낌을 풍겼다.


성유물이 얹어진 진열장은 거미줄로 감싸져 칙칙하고 산성 특유의 냄새를 풍겨댔다.


하지만 성유물 자체에는 해를 끼치지 못하는지 거미줄이 뒤집어 씌워져 있음에도 황금 잔에는 그 어떤 손상도 가해져 있지 않았다.


과연 성유물인가.


잔잔한 납득과 함께 메이와 토니를 한 번 돌아보고서 성유물에 다가갔다.

성유물은 마치 나를 유혹하는 것처럼 번들거렸다. 그 은은한 빛은 이전에 가을의 마녀가 내게 건넸던 성유물을 떠오르게 했다.

같은 신이 만든 성유물이라서 그런 걸까.  수 없는 가운데, 나는 성유물에 다가가면서 괜히 코를 시큰거리게 만드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왜지?

 함정에 걸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문득 떠오른 생각이  느낌을 뒷받침 했다.

만약 내가 지능이 높은 괴물이라면, 이렇게 강력한 존재는 무턱대고 습격하기 보단, 마지막의 마지막. 목표를 이루려는 가장 긴장이 풀린 순간에 습격하리라는 생각.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침과 동시에, 섬짓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불굴의 정신이 발동됩니다.]


권능을 발동한  내가 아니었다. 내 척수였다. 섬짓한 느낌과 발동조건이,  권능을 내 동의 없이 발동시켰다.

내  앞에서 멀어져 바뀌는 시야. 내 등뒤를 보여주는 카메라라고도 할 수 있을 움직임이 내 시각을 대신하고, 나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 내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뭔지  수 없을 길쭉한 형상.

그걸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린  봄의 순례자의 막타를 빼앗아갔던 군주들의 아버지의 창이었다.

그 형상을 인지하는 순간 동작이 두 가지가 떠올랐다. 피하거나 막는다.


피하면 내 뒤에 있을 메이가 맞는다. 피할 수는 없었다. 성유물을 향해 뻗은 손을, 성유물을 낚아챔과 동시에 거두며 들어올린다.

흘려낸다. 타격이 얼마나 강하더라도, 파워아머와 내 근력, 사슬갑주로 무마한다.


그렇게 나는 팔목으로  정체불명의 길쭉한 형체를 튕겨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치이이이익


"…윽."


가격당한 부위가 산성으로 타오른다. 홧홧한 느낌이 옅게 전해지고, 그 느낌 위로 역한 냄새가 훅 풍겼다. 금속 따위가 억지로 녹아내릴 때 나는 냄새였다.


산성액을 품은 길쭉하고 강력한 무기. 기습에 특화된, 내 머리 위에서 내리찍는 형태의 공격 방식.

성전사를 죽인 존재였다.


"전투 준비!"

내가 외치는 소리에 메이가 검과 방패를 꺼내들고, NM-21이 내가 던지는 성유물을 받아들고서 주먹을 들어올린다. 두 명의 동료가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허리춤에 메어진 도끼, 낙인을 뽑아들었다.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러서니, 그제야 나를 공격했던 것을 볼  있었다.


그건 창이 아니었다.


토굴의 사방팔방에 난 구멍중 하나에서 튀어나온 그것은, 길쭉하고 이리저리 꺾여있으며 끄트머리가 날카로웠다.

도저히 무엇이라고 쉬이 판단할 수 없을만큼 기괴한 형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을 기괴한 기관이었다.

애초에 생물이 맞나?


내가 그 형체를 눈으로 쫓는 동안, 그 형체는 구멍에서 아예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창인가 했던 그것이 이리저리 꺾인다. 꺾이며, 촉수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 없이 요동친다. 이 세계의 촉수 사랑을 떠올리자면 촉수일 수도 있을 법 하나, 왠지 그 모양새가 달랐다.

꺾이는 모습, 단단함, 기이하게 꾸불대는 것과는 다른, 각진 움직임.

 형상을 인지하자, 보였다.

이건 촉수가 아니라, 다리였다.

구멍에서 엄청난 속도로 쏟아져내리는 듯 하는 기괴하게 긴 다리가, 바닥을 딛더니  제 몸뚱이를 구멍에서 뽑아냈다. 고름이 흘러나오는 듯한 모양새로 쏟아져 내리는 그것은 기괴했다.

그 기괴한 형상이 지면에 닿고,삐에로가 튀어나오는 깜짝 상자 장난감처럼 펼쳐진다. 그 펼쳐지는 모습조차 빠르고 기괴해 메이가 절로 힉, 소리를 흘렸다.

그 괴물은 지금껏  것 중, 가장 기괴하며 몽환적이었다.


거미인 것처럼 보이나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우선 다리가 네  뿐이었다.


관절이 몇십개는 되는 것처럼 휘고 꺾여진 다리는 족히 20m는  길이로 뻗어지고, 그 중심지에는 몸통이 있다.

나는 정신 없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미의 다리를 보며, 그것이 여러 관절의 협응적인 움직임을 눈치챔과 동시에 그것이 어떤 전조 동작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건 공격이었다.


스프링처럼 구부렸다가 쏘아내는, 빠른 공격.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려 휘두른다.


카아아아아아앙!!!

기괴하게 쏘아진 다리가, 방패에 부딪혀 튕겨나고, 그 거미가 우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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