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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화 〉대륙 충돌 (204/274)



〈 204화 〉대륙 충돌

튕겨져 나간 거미 다리는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접혀졌다. 아니, 저걸 접혀졌다고 해도 되는 건가? 관절을 이리저리 비틀며 뒤로 물러나는 모습은 다리라기 보다는 촉수에 가까웠다.

거미 다리를 막아내고 튕겨낸 방패에 닿아있는 산성이 톡 쏘는 냄새를 내며 흘러내렸으나, 방패가 녹아내리진 않았다. 오히려, 방패는 그깟 산성이 우습다는 것처럼 번들거렸다.


그간 긴가민가 하긴 했었는데, 방패마저 파괴 불가일 줄이야. 뜻밖의 실험 결과에 방패를 고쳐쥐고, 거미를 바라보았다.

거미는 네  밖에 없는 다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더니 구덩이 몇 개에 다리를 꽂아넣고 나머지 다리 하나를 들어올렸다.

나머지 세 개의 다리로 지지한 채로 쏘아내는 공격. 분명히 무겁고 빠를 것이다. 마냥 받아내기엔 그랬다. 완전히 쳐내야 했다. 들어올린 도끼를 단단히 쥐고서, 숨을 들이키며 정신을 집중했다.

콰아아아아아앙!!!!

도끼를 휘둘러 마구잡이로 접혔다가 쏘아지는 다리를 튕겨내자, 산성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져 토사를 살라먹었다. 그냥 평범한 산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 저 다리에서는 산성이 흐르고 있었다.


"메이, 토니! 저 새끼 다리에는 산성이 있다! 난 괜찮지만, 너흰 맞으면 안돼!"


산성으로 인한 피해는 어지간하면 되돌리기 힘들다. 초재생물약도 그리 많이 남은 게 아니다.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고통 때문에 혼절해서 그대로 짐짝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


거기까지면 모르겠지만.


슬쩍 시야 끄트머리에 들어오는 토니의 몸은, 전체가 금속으로 이뤄져 있었다. 산성에 특히나 취약할 금속으로. 토니가 옆구리에 성유물을 끼운 채로 내게 고개를 향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평소대로 데려온 인선이었으나 이런 경우라면 말이 달랐다.

토니 스타크는 저 괴물을 상대로 한 번도 버텨낼  없다. 격투가라는 점에서 더더욱.


"토니! 저 새끼는 너랑 특히 상성이 안 좋아! 성유물 가지고 성녀한테 가!"

"괜찮겠는가? 괴물의 크기를 생각하면…."

다시 한 번 거미는 다리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뻗어내는가 하더니 다리를 꺾어 머리를 노리는 전법. 내 뒤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불굴의 정신 덕에 고개를 젖혀 피했다.


그렇게 내가 피하는 사이에, 메이는 화염구를 띄어내더니 곧장 거미를 향해 쏘았다.


날아드는 화염의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으나 거미는 그게 무척 느린 것처럼 기괴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피했다.


접혀진 다리를 따라 몸 전체가 크게 내려가니 화염은 애꿎은 토사벽만 무너뜨리고 말았다.

기이이이에에에에

거미가 흘리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정신을 깎아먹을 것 같다. 나는  거미가 도로 몸을 세우는 것을 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퍼져나가는 화염을 따라 비추어진 구멍들은 전부 깔끔하게 트여있었다. 그 끄트머리는 벽과 일체화 되는  번들거리고 매끈했다.


아마 저 길쭉한 다리를 흙속으로 비집어 넣어 꺾으며 구멍을 트여놓고, 산성으로 녹여서 반듯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일종의 사포질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멍들을 쓰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확신하기엔 좀 일렀으나,  구멍들이 이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할 것이다. 그게 아니면 저렇게 많은 구멍을 트여놓을 이유가 없었다.

화염이 둘러진 도끼를 방패에 대고 슥 밀어내면서, 방패를 타고 흐르던 산성을 털어내고는 화염 부여를 방패에 사용했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톱날을 회전시키는 방패. 생겨난 신성톱이 어지러운 광원으로 주변을 밝혔다.


나는 그 신성톱 방패를 팔에 제대로 동여메고, 도끼를 단단히 쥐었다.

"빨리 꺼져, 토니!"


메이는 방패나 적조로 버틸 수도 있다지만, 토니 스타크는 한 번이라도 방어해냈다간 그대로 녹은 고철이 되고  거다. 토니도 그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는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뛰쳐나갔다.


기이이에에에에!!!!

그리고 그렇게 토니가 튀어나가는 순간, 거미가 움직였다. 제 길쭉한 다리를 뻗어 나와 메이를 지나쳐, 토사의 위로 다리를 향했다.


"이런 씨발."


토니를, 정확히는 성유물을 잡으려는  분명했다. 아직 앞으로 향하지 않은 다리를 향해 달려들어 그 다리를 붙들었다.

치이이이익

붙잡은 부분에서부터 깊숙히 역한 냄새가 풍기고, 팔에서 홧홧한 느낌이 내달린다. 분명 산성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허나놓을 수 없었다. 내 거력에 이동이 가로막힌 거미는 섬뜩하게 울부짖었다.

"메이!"


"응!"


다리를 붙들고, 끌어당겨 움직임을 봉쇄한 사이에 메이는 뛰쳐나갔다. 토니가 지나간 토사의 완만한 구릉까지 달려나간 메이는 달리던 도중에 몸을 돌려 방패를 제 머리 위로, 방패날이 거미의 다리를 향하도록 들어올렸다.

챠캉!

날카로이 펼쳐지는 소음이 들리고 거미의 다리가 두들겨져 밀려난다. 사출되다시피 하는 모양새와 흔들리는 균형, 내가 끌어당기는 것에 간신히 저항하던 거미가 휘청이기에, 나는 그대로 몸을 휘돌렸다.

"꺼, 져, 씨발아!!!"


콰아아아앙!


그대로 크게 휘둘러 벽으로 내던지자, 지천이 울리는가 싶더니 거미가 풀썩 쓰러졌다.


그 거미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는 사이, 토니는 어느새 카타콤을 벗어난  싶었다. 도끼를 도로 꺼내어 단단히 쥐고, 이제  일어선 거미를 바라보았다.

흉측한 외관과 산성을 지닌 그 거미는, 어째서인지 몰라도 성유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내가 공격을피해내고 튕겨내는 모습을 보며 나를 위협적이라 판단했을 법도 하건만, 나를 무시하고 곧장 토니에게 향하려고  것만 보더라도  수 있었다.

이유가 뭐지? 성유물로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수상했으나 방심할 순 없었다. 성유물에 집착한다는 건, 그게 어떤 가치를 지닌 물건인지 어렴풋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일테니까.


그런 본능인지, 아니면 지성인지.


지성이라면 상대하기 곤란했다.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할테니.


거미가 비척비척 일어서 다리를 구부렸다 펴더니, 포효를 내질렀다.

기이이이이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그건 악에 받친, 분노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포효였다. 확신할 수 있었다. 본능도 존재하나, 지성 역시 존재한다고. 그리고 지금 나한테 존나 빡쳐있다고.

 거미가 몸을 크게 숙이더니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큭…!"

기괴하다. 용수철처럼 접힌 다리가 그 몸을 쏘아내니 속도는 맨눈으로 쫓기엔 힘들었다. 불굴의 정신의 감속을 동원하여 궤적을 쫓으니,  거미는  머리 위로 지나갔다.

조준에 실패했나?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자세만 바꾸니, 시점이 그대로  뒤를 향했다.


거미가 뛰어드는 곳은 구멍이었다.

구멍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들어간 거미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내가 그 모습을 보며 주변을 둘러보려는 순간 다른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쩌어어엉!

튀어나오며 휘두르는 다리. 자유자재로꺾인 다리가 내 방패를 두들기고서 거둬진다. 제 다리를 거둔 거미가 다시 다른 구멍으로 제 몸을 비집어 넣는다.

"빠, 빨라!"

메이가 외치고,  역시 그에 공감하면서 시점을 움직였다. 구멍은 무수히 많다.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그리고  구멍들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진 모르겠으나, 구멍끼리 이어져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시점 사이로, 거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구멍에서 나타난 거미가 다시 다리를 찔러온다.


그걸 아슬아슬하게 몸을 숙여 피하니, 그 다리가 공중에서 꺾였다.


카아앙!


"윽."

마치 커브볼처럼 꺾여진 궤적이 내 헬멧을 두들기고, 거둬지더니, 다시 구멍 속으로 쳐들어간다.

울리는 머리통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반드시 다시 나온다. 예상대로 거미는 즉시튀어나왔다. 이번엔 맞기 전에 볼 수 있었다. 내 정면의 구멍에서 튀어나왔다.

후우우웅!

뻗어지는 다리를 피하고, 꺾이는  예상해 앞으로 뛰어나간다.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지만, 내 속도만큼은 아니다. 나는 단단히 붙잡은 도끼를 휘둘렀다.


쐐애애액!

하지만 허공을 가르며 허탕을 치는 도끼. 날아가던거미가 그대로 바닥을 꺾어낸 다리로 두들겨 피했다.


체조 선수의 덤블링처럼 화려하게 공격을 피해낸 거미가 다시 구멍으로 파고들고, 그렇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거미 자체도 꽤 치는 몬스터라고 할  있었지만, 환경이 무엇보다 저 놈 손아귀에 있었다. 어떤 원리인지, 구멍이 너무 많아 유추하기도 힘들었다.


구멍과 구멍이 몇 안 이어져 있다면 다행일 터이지만, 중간에 모든 구멍으로 이어지는 큼직한 공동이라도 있다면 구멍의 수를 헤아리는 것도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구멍들을 바라보다, 구멍에서 튀어나오며 다리를 휘두르는 것을 가까스로 피했다. 산성이 뿌려진 지면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단순 무식하게 밀고 나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다 메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난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다소 도박수이긴 하나,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 뿐인 것처럼 보였다.

또 다시 튀어나와 두  휘둘러지는 다리. 꺾여지는 것까지 포함해 네 번의 공격을 크게 뛰는 것으로 피하고, 거미가 다른 구멍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본 후에 메이를 돌아보았다.

"메이."


"응."


"가장 강력한 화염 마법, 방사형으로. 가능해?"

"응? 아, 응. 가능해. 근데…."


맞출 자신이 없다는 얘기를 할 셈인지 메이가 우물쭈물하고, 나는 그런 메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괜찮아. 맞출 필요는 없으니까."


메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게 별로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맡겨만 달라는 것처럼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화염 마법을 준비하는 메이에게서 시선을 떼고, 구멍들을 바라보다 한 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구멍에, 내가 공격받은 직후에 거미가 구멍으로 쳐들어가면 사용해."

"알겠어!"


메이가 내리막길처럼 경사가 진 토사를 내려가고,흙이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런 가운데 도끼를 집어넣고 방패를 살폈다.


역시 파괴불가인지 손상은 없었다. 흠집조차 없는 방패를 팔에 제대로 동여메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이번에 공격을 확실히 피해야 한다. 그 거미 새끼가 문제 없이 구멍에 들어가도록. 메이를 노리지 않도록.

숨을 들이키고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내 대각 방향의 구멍에서부터 거미가 튀어나왔다.


기이이에에엑!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휘두르는 기괴한 거미. 나는  다리를 피해내며, 일부러 보라는 듯이 방패를 크게 휘둘러 헛방을 질렀다.

거미는  반격에 다리를 꺾거나 더 이상 휘두르지 않고 얌전히 그 반대편 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나오는데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으나, 상관 없었다.

"지금!"


내가 외치는 소리에 메이가 붙잡고 있던 마력을 놓아주었다. 그 펼쳐진 양손에서부터 푸른색에 가까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투화아아아아악!


뿜어지는 기세는 강렬하고, 그 열은 멀찍이 떨어진 내게 느껴질 정도로 상당하다.  화염이 홍수처럼 구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메이의 최대 화력 마법은,  구멍을 시작으로 사방을 까맣게 메운 구멍에서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쾅, 콰아아아아!

 화염들이 튀어나오는 소리는 마치 폭발음처럼 들렸다.


그 폭발음의 사이로, 무언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기이이이이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울부짖는, 고통스러워 하는 괴물의 소리.

그 소리를 동반하며 어떤 검게 타버린 형상이 구멍에서 툭 튀어나왔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최대한 속도를 냈으나, 제어 방법만큼은 떠올리지 못한 것처럼 지면을 향해 직선으로.

그렇게 튀어나오는 거미를 향해달려나가며 등에 짊어진 거검을 단단히 쥐었다.

내 근력은 폭군의 검을 한손으로 휘둘러도 문제 없을 만큼 강력했다.


"죽어, 이 씹새끼야!"

쩌어어어어억!

크게 내리치는 거검의 궤적에는 바람 한 점 걸리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는 거검의 질량은 쓰러진 거미의 등껍질을 간단히 쳐부쉈다. 산성액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고, 거검이 쳐박힌 거미가 발버둥쳤다.

기이이에에에에에!!!!


나는  거미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왼손을 크게 뒤로 당겼다. 내 왼팔에 매달린 것은 방패. 화염 부여만 사용하면 거의 뭐든지 갈라내는 톱이 달린 방패였다. 그렇게 크게 뻗은 왼팔을, 거미가 괴로워 하는 사이에 뻗었다.


콰직!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콰드드드드드득!!!

신성톱이 거미의 껍질을 쉽게 갈라낸다. 갈라지는 거미의 피륙에서는 산성액이 쉴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산성액이 파워아머를 두들기고 녹이려 휘감는다. 그렇게 몸에 휘감기는 산성액에, 나는 왼팔을 오히려 그 상처에 쳐박았다.

기에에에에에에에엑!!!!

발버둥치는 거미가 내 몸을  다리로 두들기고, 비명을 지른다. 고막이 쩌렁쩌렁한 울음소리에 울리면서도 나는  왼팔을 어깨까지 쳐박고서 주먹을 쥐었다.

"잔뜩 쳐먹어라."

주먹을 단단히 쥐자 잡히는 것은 거미의 피륙. 내장일 것이 분명한 살점들. 나는 그 살점을 단단히 쥔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화염이 거미의 속에서 터져나왔다.

투화아아아악!


갈라진 상처에서 넘실대는 산성액과 비명, 화염. 그것들이 내 몸과 거미를 구타한다. 그 무차별적인 구타에 시달리면서 나는 견뎠다. 거미가 죽을 때까지.

기이이에에에에….


징그럽게 다리를 꿈틀대던 거미는, 한참이나 몸부림  끝에 죽었다. 나는 축 늘어진 괴물의 몸뚱이에서 산성액에 흠뻑 젖은 팔을 빼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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