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대륙 충돌
안내조차 필요 없는지, 주현성은 가을의 마녀만을 동행시킨 채 바다로 향했다. 나아가는 걸음마다 달려드는 괴물들이 있었으나, 신격만 둘이니 어려울 건 없었다.
사실, 주현성이 나설 것도 없었다. 가을의 마녀는 제 아들이 하려는 행동이 궁금하여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다. 불타버린 괴물들이 널부러지고 두 신격이 망설임 없이 바다로 향했다.
정확히는 바다 중에서 최남단, 그리 멀지 않은 지평선에 동대륙의 끝자락이 보이는 한적한 해안 절벽이었다.
밤바다의 어둑한 배경을 뒤로 하고 해안 절벽 위로 포말이랄 것도 없는 것이 부딪혀 흩어진다. 주현성은 그 광경을 보면서 그다지 친하지 않은 바다임에도 한적한 그리움을 느꼈다.
동대륙을 떠나기 전, 바닷가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던 게 문득 떠올라 그의 심상을 어지럽혔다. 그는 무표정으로 바다를 내다보면서 괜히 코가 시큰거리는 듯이 느껴졌다.
향수병인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새벽감성인지도. 바다 아래에서 똬리를 튼 괴물의 그림자가 얼핏 보인 후에야 그는 움직였다.
"있네."
꽤 꺼림칙한 생김새의 괴물이었으며, 꽤 칙칙한 바다였다. 괴물이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거부감인지 아니면 괴물의 영향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대신이랄 것도 없으나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산맥의 끝자락, 바다를 접하고 있는 산을 보았다.
산은 더럽게 컸다. 그 더럽게 큰 산 아래로 층층이 진 계곡으로 바닷물이 스며들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할 것은 없었으나 산맥은 거의 대부분의 구성요소가 바위인 것처럼 보였다.
그 계곡의 영향인지 바닷물은 급했다. 급류가 해안절벽을, 산맥을, 지평선을 두들겨대는 걸 보자니 주현성은 어부들이 어째서 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괴물들은 기다렸을 것이다. 급류에 올라탄 배가 도망치지 못하는 때를. 거미 괴물만 하더라도 지능적으로 공격했으니 바다 괴물도 그 쯤 할 수 있어보였다.
그렇게 배가 급류에 걸려 도망칠 수 없게 된다면,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며 배를 공격한다. 공격당해 우왕좌왕 하는 어부들은 반격은 커녕 저항할 것도 없이 배를 붙들고 무용한 시도를 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당황한 선원들과 급류, 바닷 속에서 사는 괴물의 조화는 탈출을 불가능한 것으로 바꿨을 것이다. 바다에 잔뼈가 굵은 어부들이 도망칠 수 없었던 게 이해가 갔다.
그는 배를 갖고 오기 전에 미리 들릴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제 계획을 검토했다.
주현성은 산을 살폈다. 산은 크고 웅장했다.
그 다음에는 산과 바다의 거리를 재었다. 거의 딱 붙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뒤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바닷물은 밤이기 때문인지 짙었으나, 그 짙음 아래로 은은하게 색이 옅은 부분이 보였다.
그는 확실히 하기 위해 뒤따라온 가을의 마녀가 바닷물을 내려다보는 것을 힐끔 보았다.
"이 바다, 얼마나 깊을 거 같냐?"
그 질문에 가을의 마녀는 그 자애로운 눈으로 바다를 내려다봤다. 그 금색 눈동자에서는 희미하게 신성이 느껴졌다.
"그 마법이 대륙을 어디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옮겼는지는 나 또한 모르는 일이니, 쉬이 판단할 순 없으나 부딪히는 과정에서 산맥이 생겨났지 않느냐? 급격한 움직임이었을테지. 해안과 해안이 부딪혀 퇴적되었을 것은 자명하구나. 바다는 깊지 않으리라."
친절한 설명에도 주현성은 짜증을 덜컥 내려다 말았다. 그는 긴 설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임에서도 스토리는 마구잡이로 스킵을 누르는 쪽이었으니까.
하지만 친절하니 뭐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는 숙였던 자세를 펴며 갑작스럽지만 짙은 미소를 띄었다. 그건 만족감으로 빚어진 미소였다.
"그럼 계획대로 할 수 있겠네."
계획, 그 낱말이 궁금한지 가을의 마녀는 제 꼬리를 살랑이면서 주현성을 보았다. 주현성은 전신을 두른 독특한 갑주 덕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을의 마녀는 그 짙은 만족감을 목소리로 밖에는 누리지 못했고, 어떤 계획을 꾸미고 있기에 저리도 좋아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무얼 하려는 것이냐, 나의 아들아?"
주현성은 대답하지 않았으며, 대답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계획이다. 그가 가을의 마녀를 데리고 온 것은 순전히 가을의 마녀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행동에 불과했다.
제 사람들과 그녀를 같이 두고 싶지 않았다.
허나 가을의 마녀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주현성은 잠시 몸을 풀던 끝에 짙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일단 보고 있어. 그럼 알게 될테니까."
대답이 되는 건 아니었으나, 가을의 마녀는 시련을 헤쳐나가는 이를 묵묵히 볼 생각인지 그러마, 하는 짧은 대답과함께 해안가에 앉았다. 그 풍만한 몸이 넉넉한 품의 드레스 안에서 사락대고, 꼬리가 순풍을 탄 듯 가벼이 흔들렸다.
귀가 몇 번 쫑긋거리고, 주현성은 그 꼴을 곁눈질로 보다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주현성의 몸에서 화염이, 신성이 자라났다.
제 신성을살라먹을 듯 타오르는 불꽃은 그의 단단한 영혼 위에서 자라났고, 그 자라나는 형태는 화염에 가까웠다. 꺼지지 않을 불꽃을 전소하지 않을 영혼 위에서 피워내는 권능에, 주현성의 전신에 후광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어둠을 태우며 자라난 빛에 괴물들이 소란스러워 했으나, 해안 절벽에 선 둘은 긴장조차 하지 않았다.
주현성은 제 몸 전체에 넉넉하게 신성이 자리한 후에 잡았던 자세 그대로 달려나갔다.
쾅, 쾅 쾅, 쾅 콰가강!
그 뜀박질은 한 인간의 달음박질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을 정도로 시끄러우며, 빨랐다. 한 새벽을 갑자기 불태우며 나타난 빛나는 반신은 산맥을 향해 달려나갔다.
가을의 마녀가 그 모습을 눈으로 쫓으니, 몹시 보고 있기 좋았다.
그렇게 달려나가던 이가 산과 평지의 접경지에 도달하자 뛰어올랐다. 도약은 족히 수십미터에 달할 높이로 그 발광체를 띄워올렸다.
후광과 어마어마한 근력으로 인해 주현성은 순식간에 산맥의 중간까지 도달했다. 감속할 필요도 없이, 주현성은 떨어져 산기슭에 다리를 쳐박았다.
한 번의 도약이었지만, 주현성은 이미 바다가 반절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얻어낸지 한참이 되어 익숙해질 법한 근력이었지만, 그는 인간이 이런 힘을 얻어냈다는 사실이 생경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렇게 도달한 산기슭에서, 잠시 방향을 헤아리던 주현성은 고개를 돌려 동쪽 서쪽으로 트여있는 산맥의 둥근 면을 보았다.
산맥은 큼직하고 평평하지만,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지나치게 넓었다. 이정도 크기라면 도중에 찌그러지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들어올렸다.
더 올라가서 하는 게 나아보였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가 앞으로 쏘아지듯 달렸다.
앞으로 달려가던 그대로 수직으로 꺾이는 절벽에 다리를 쳐박았다. 벽이라고도 할수있을 급격한 절벽임에도, 그의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절벽을 달려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절벽을 내달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슬쩍슬쩍 서쪽으로 꺾이는 완만한 면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점차 시계가 높아지고, 사위가 어둑한 가운데 척박한 공기로 뒤덮인다. 완만하게 상승하는 압력에도 그는 침을 삼키기만 할 뿐, 이렇다할 장해를 느끼지 못했다.
치솟는 절벽이 꺾이고, 봉우리에서 몇미터는 아래인 지점에 도달해서야 주현성이 멈춰섰다.
바다는 이미 산에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주현성은 제 시야를 완전히 가려먹는 이 봉우리 너머에 바다가 있음을 알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올렸다.
한 편, 아래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가을의 마녀는 설마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현성의 위치는 바다에서 일직선으로 북쪽.
바다 너머의 산맥, 산맥 중심의 주현성.
가을의 마녀는 그 적나라한 단서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아차렸는지, 몸을 일으킨 그대로 해안가에서 비켜섰다. 비켜서, 해안가에서 멀찍이 떨어지며 저 높은 산 위에서 빛나는 주현성을 바라보았다.
애초부터 가을의 마녀가 계획에 말려든다고 죽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던 주현성은, 그러거나 말거나 양 주먹을 세우고서 작업에 착수했다.
주현성의 주먹이 파공성을 울리며 쏘아지고, 산맥에 틀어박혔다.
쩌어어어어엉!
거인의 힘과 영혼 발화로 강화된 근력, 그리고 그 근력을 단단히 감싸는 파워아머로 인해 주현성의 주먹질에서는 굉음이 울렸다. 울려퍼지는 천둥에 저만치의 숲에서 새떼가 날아올라 다른 방향을 향했다.
뻗어졌던 주먹을 거두고, 왼주먹을 내지른다.
그 주먹이 암석을 쪼개며 크게 바위를 깎아내고, 깎아내진 바위조각이 채 나오기도 전에 오른 주먹을 내지르며 왼주먹을 빼낸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난타로, 주현성은 갑작스레 산봉우리를 때려부수기 시작했다.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면 어차피 몸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일단 때려부숴야 해.'
주현성은 제 계획에 오점이 있을 가능성을 아주 높이 잡고서, 연거푸 주먹을 바위를 향해 때려박았다.
돌이 흩뿌려지고, 먼지가 치솟고, 굉음과 충격파로 주변이 흔들거린다.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가을의 마녀는 그 지진 중심에 선 채로 창을 땅에 쳐박았다.
올려다보는 시선에는, 빛나는 형체가 산을 때려부수는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다.
주먹질마다 산맥이 우짖고, 그 우짖는 옆으로 돌무더기 따위가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가을의 마녀는 그 풍경을 보며 마치 활화산 같다고 생각했다.
그 광경을 한참 바라보던 가을의 마녀는 설마했던 것이 사실로 일어나고 있음에 놀라워 했다.
뭘하려는 것인지 알게 되니, 그녀는 자신이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여기까지 불려나왔음을 알게 되었지만, 구태여 불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가장 총애하는 자식이 어떻게 시련을 이겨내는지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잔잔한 행복감으로 바라보던 가을의 마녀가 바다를 흘긋 바라보자, 바다에서 괴물들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괴물들은 쏟아지는 토사와 굉음에, 제 모습을 드러내거나 제 불만을 담아 수면을 두들겨댔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는 듯 황량한 바다 위로 파문이 어지러이 일어나는 모습이 있었다.
괴물의 수는 꽤 되었으나, 그녀는 제 자식의 계획이 그대로 이뤄진다면 그 괴물을 일일히 잡을 필요가 없음을 알고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산맥으로 눈을 돌렸다.
쳐부숴지던 산봉우리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허나 주현성이 예상하던 방향으로 기우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 산맥을 정신 없이 때려부수던 주현성이 벅차오는 숨을 고르면서 부숴지는 산맥의 단면으로 달려들었다.
"…으으으윽!"
부숴지는 산봉우리의 틈, 그 틈바구니에 몸을 쑤셔넣은 주현성이 제 몸의 수천배에 가까울 질량을 두 팔 위로 짊어진 채로 신음했다.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분노에 따른 근력 차이가 있다지만, 영혼 발화까지 썼음에도 무겁다고 느끼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 오랜만에 느껴지는 중압감에 주현성이 이를 바득 갈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다리를 앞으로떠밀었다.
드드드드득!
근육이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내 수축하고, 관절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린다. 얼굴이 시뻘겋게 될 정도로 애를 쓰던 주현성은, 그대로 제 몸에 둘러진 사슬갑주로 가속했다.
가속 방향은 위였다.
투화아아아아아악!!!!
가속으로 인해 튕겨져나간 산맥의 윗부분이 그대로 날아올랐다.
추락하는 광경은 마치 토사와 돌로 이뤄진 파도가 바다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도 보였다.
갑작스레 일어난 산사태에, 괴물들이 시끄럽게 짖는 소리가 울리고, 주현성은 산맥의 단면 위에 선 채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쓸러내려가는 토사와 암석이, 바다에 부딪힌다.
쿠와아아아아아아!!!!!
핵이라도 맞은 것처럼 바다가 치솟는다. 내려앉는 수백톤의 암석에, 느닷없이 두들겨 맞은 바다가 제 수면을 허공까지 끌어올렸다.
바다와 괴물, 암석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고, 죽어나가거나 그 질량에 날아간 괴물들이 철퍽철퍽 산이나 지면에 떨어져 죽어가는 와중에, 주현성은 어깨를 한참 움직이다가 뛰어들었다.
쐐애애액!!!
주현성은 괴물들이 한참은 도사리고 있는 바다를 향해 제 몸을 집어던졌다. 총탄처럼 쏘아진 그 몸뚱이가 해수면에 닿고, 산사태와는 비교도 안되는 작은 물보라가 치솟은 후에야 그 중심지에서 죽음이 피어났다.
가을의 마녀는 바닷 속에서 괴물을 쳐죽이고 있는 주현성을 보았다.
"참으로 단순무식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이구나."
신의 격에 걸맞는어마어마함이지만, 계획의 단순함과 방식은 정말 무식했다. 허나 그녀는 그 지적이지 않은 해결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런 방법을 실천 가능한 이가 얼마나 되며, 또 이런 방법을 정말로 치룰 정신 나간 이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예상대로야."
그녀의 미소와 함께, 그녀의 뇌리에 누군가의 모습이 지나갔다.
거인의 힘을 지닌, 신들 중 가장 강하다고 일컬어지는 존재.
겨울의 폭군.
그녀가 그 얼굴을 떠올리며, 만족스럽게 제 입가를 쓸었다.
"왜 네가 저 아이를 주시했는지 잘 알겠구나."
그녀의 속삭임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으나, 괴물들은 한결 같이 울부짖으며 죽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