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귀향
해안 절벽에 여섯 척의 범선이 늘어서고, 그 위에서 난민들과 병사들이 우수수 내렸다. 그렇게 내리는 이들을, 발데가리아에서 온 병사들은 여러 감정이 혼재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제 상관인 대공 앞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고, 오히려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바쁘게 움직여 난민들이 숙영지를 펴는 것을 도왔다.
그들이 입을 연 것은 그렇게 숙영지가 차려지고, 어둑해지는 하늘 아래에서 모닥불들이 잔뜩 늘어서 밤을 밝히기 시작했을 쯤이었다.
나와 대공을 비롯한 측근들이 모여있고, 그 측근 자리에 성녀도 끼어 모닥불의 불빛에 제 몸을 녹이고 있으니, 슬쩍 찾아온 발데가리아 무관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발데가리아는 함락됐습니다."
"…어쩌다 그리 됐는가."
대공은 허탈하게 물었고, 나는 대뜸 나오는 충격적인 서두에 뜯어먹던 괴물 고기를 손에 쥔 상태로 그 무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제 손 안에서 칼자루를 굴리면서 대답했다.
"갑자기 땅이 치솟았습니다. 어째서, 왜 치솟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땅이 정신 없이 흔들리는가 하더니 갑자기 솟아올랐고, 솟아오르는 땅과 함께 발데가리아 해변으로 칼날 같은 산맥이 밀려들었습니다."
칼날 같은 산맥.
고개를 돌리니 마침 그 산맥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대륙 끝에서 끝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생겨난 산맥이었다.
"그 산맥이 밀려들고, 땅이 갈라지고, 갈라진 틈으로 땅이 치솟은 후에는 바다가 들이닥쳤습니다. 해일은 평생 겪어본 적 없는 도시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바다의 흉포함을 충분히 맛보았던 어부들까지 당황하고 놀라며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다들 그리 죽었죠. 하는 담담한 목소리에 대공이 고개를 떨궜다. 그 백골 머리 위로 잔잔한 긴장감마저도 흐르는 듯 했다.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공은 명백히 죄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숨 몇 번 쉴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도시가 부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정도 밖에 안됐습니다. 살아남은 이들과 죽은 이들 사이에 별 차이는 없었습니다. 그냥… 운이 없어서 죽고, 운이 좋아서 살았습니다. 죽은 이들과 함께 도시의 반절이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나는 그 광경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간 여기까지 오면서 봐왔던 것들이, 내게 그 광경이 어땠을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무너지고 쓰러진 건물들과 갈라진 대지, 그 위로 차오르는 바닷물. 인간이 살만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은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조용히 그 광경을 상상하면서, 내 눈 앞에서 잃어버린 이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책임감이라고 해야하나.
이걸 책임감이라고 해도 될런지, 답잖고 같잖은 속죄 심리는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어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무관을 바라보았다.
왠지 가슴께서 아릿한 것이 내가 잘못했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았다.
메이는 그런 나를 위로할 셈인지 내 등을 쓸었다. 조막만한 손이 가벼운 중세풍 셔츠 위로 느껴졌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산맥과 바다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죠. 그냥 나왔으면, 차라리 그리 강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간 대처해오던 괴물들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현격하게 강력하면서 기괴했습니다. 저는 인간을먹어 그 뼈를 쏘아내는 괴물 따위는 듣도 본 적도 없습니다."
대공이 그 말에 놀라운 듯 그 무관의 어깨를 두들겼다.
무관은 제 어깨를 두들기는 백골 손에 흠칫했다가 벌레 씹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궜다.
"웜홀이 있던 장소는 가장 먼저 휘말려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었습니다. 고대의 도시로 연락이 닿지도 않았죠. 거기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저희를 버린 건지…."
"버리진 않았을 걸세. 거기서도 무슨 일이 있어 바쁜 거겠지."
"그럼 좋겠습니다. 그럼 희망이라도 있으니까요."
허탈하게 웃는 얼굴에, 나는 뭐라 위로조차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변명이 나올 것 같았다. 그저 조용히 괴물 고기나 만지작거리면서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무관은 그런 우리의 기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음성은 조금 격양되어 있었다.
"대공께서도 자리를 비우셨고, 제 위에 있던 기사나 무관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이끌 수 있는 이들 중 가장 멀쩡한 이는 저 밖에 없더군요. 그 외에는 대부분 죽거나 부상을 입어서 얼마 안 있어 죽었습니다. 저희는 살기 위해 도시를 떠나 유랑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숙영지를 훑어보았다. 그 대부분의 천막은 난민과 병사들의 것이었다. 발데가리아 시민들과 병사들의 것은 극히 적었다. 우리가 나눠주지 않은 게 아닌, 인원이 많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대부분이 싸우다 죽었고, 일부는 굶주려서 떠나거나 죽었습니다. 부상이 악화될 때까지 말하지 않아 제 명을 재촉한 병사들도 있었습니다. 그 의약품을 자기한테 쓰기보단 사람들한테 써달라고 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꾸역꾸역 살아남았습니다."
정말 그래보였다.무관만 하더라도 왼손의 손가락이 별로 없었다.
"얼마 전에 찾아낸 동굴이 그나마 가장 평화로운 때였습니다. 거기서 빌어먹을 놈의 괴물만… 안 나타났다면 더 오래 갔겠죠. 기괴한 괴물이 나타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 뒤에 도망치는 심장으로 밖으로 나와서 산이 부숴지는 걸 보았죠."
"산이?"
"예, 산이 빛나는 무언가에 부숴지고, 굉음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사태가 바다를 향해 흘러들어갔죠. 그래서 저희는 바다로 도망을 나왔습니다. 저런 일을 할 수 있는 괴물이라면 만나지 않는 게 좋을테지만, 반대로 괴물들에게서안전할 것 같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도망가야 할지, 아니면 머물러야 할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요."
저들이 말하는 빛나는 무언가는 나였다. 내가 바다를 건너기 위해, 산을 부숴서 산사태를 일으킬 때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과연 그런 걸 보고 바다로 가는 게 맞는 판단인진 모르겠으나, 우리와 마주쳤다는 점에서 그리 나쁜 판단은 아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좋은 것에 가깝겠지만.
내 영혼 발화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며 고기를 만지작대고 있으니, 그 덤덤한 얼굴의 무관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이면서도, 분노로 고함을 지를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 무관은 한동안 그렇게 슬픈 듯 화를 내는 듯 하면서 고개를 떨궜다.
"…왜 이리, 늦게 오신 겁니까…."
사내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지면으로 툭툭 떨어졌다. 그 사내의 손이 힘 없이 뻗어졌다. 대공은 그 손이 자신을 향하는 걸 알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사내의 손이 한참 허공을 그러쥐던 끝에 로브자락을 손에 넣었다.
"왜, 왜 이리…. 저 때문에, 다, 다 죽었, 습니다."
그건 하소연이면서, 화풀이기도 했다. 대공이 받아도 좋을 게 아니었다. 실상 대공이 저 손을 뿌리치더라도 매정하다고 욕할 순 있을 지언정 그래서는 안되었노라고 할 이는 없었다.
하지만 대공은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미안하네."
해골이 나보다 인간성이 좋아보였다. 그 사실이 잔잔하게 내게 와닿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모닥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대공은 그 죽음에 직접적이진 않으나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다고 여겼는지, 한참을 더 무관을 위로하면서 보냈다. 무관이 눈물이 천천히 잦아들고, 그의 격정된 감정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침내 내가 손에 든 괴물 고기를 입에 털어놓고, 씁쓸한 기분으로 씹어삼킬 쯤에야 그는 눈가를 문지르며 물었다.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괜찮소, 자네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정도야."
기사단장은 그리 말하며 나를 흘깃 보았으나, 나는 별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무관은 그 위로조차 도움이 되었는지 심호흡을 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처음 배 위에 있으실 때부터 생각했지만, 뭔가 수가 더 많아보입니다."
발데가리아에서 두 번 거쳐 왕복했던 병사들보다 수도 많았고, 민간인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으니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확실히 추레한 차림의 일가족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륙 너머에서 온 이들도 많지. 서대륙에서도 여기처럼 재난이 일어났으니, 그에 터전과 생활을 잃어버린 이들을 대전사님께서 손수 구하여 여기까지 데리고 오셨다네."
"그렇군요… 이리 많은데도 사기가 잘 유지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다 대전사님께서 고군분투하신 덕이지. 우리는 이대로 고대의 도시까지 이 난민들과 병사들을 이끌어 갈 생각이라네."
대공의 설명에, 대공의 부하이자 무관인 남자는 잠시 방황하는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주로 시선이 머무는 곳은 내가 앉은 자리였다. 과연 따라가도 괜찮을지 판가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찌하면 받아줄지 고민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저와 제 부하들, 시민들도 데려가주실 수 있으십니까?"
무관의 부탁에, 가장 먼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은 대공이었다. 그는 텅 비어버린 백골의 눈구멍을 내게 향하며 망설이는 듯 해골 손가락을 그러모아 쥐었다. 불안하게 매듭지어진 백골에,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즉답했다.
"물론이죠. 따라오셔도 됩니다. 부상을 입은 이가 있다면 치료도 해드릴테고, 식량도 드리겠습니다. 조금… 적응은 필요하겠지만, 먹을 수 있으면 문제는 없죠. 오는 건 막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는데… 대전사님 같은 분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도 나는 썩 기쁘지 못했다. 결국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을 내가 치우는 것이니, 어떤 감정적인 반향이 일어나기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다.
적어도 고대의 도시에 도착하여, 모두 안전해지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기분을 누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잠시 쓴웃음을 지으니, 무관은 그것을 승낙으로 받았는지 안도하며 미소지었다.
"헌데 고대의 도시 소식은 없었습니까?"
무관은 안도하다가,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웜홀이 휩쓸리기 전까지는 마지막 교신을 나누었습니다. 별 일은없었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괴물들이 이상해지고 강력해진 걸 보면 거기도 마냥 멀쩡하진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낯으로 말하는 것은 나도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당장에 카타콤에서 만났던 기괴한 거미가 떠올랐다. 그건, 여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괴물이었으니까.
그런 괴물이 도시 인근에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괜시리 불안해 이를 까득 물고서, 생각했다.
역시 대륙이 붙여진 것은 촉진에 불과했다. 가장 큰 원인은 신이 셋이나 죽은 탓인 것으로 보였다. 굴레에문제가 생겨서든, 아니면 세상이 멸망에 접어드는 것이든.
어쨌든 신이 죽어나가는 수에 영향을 받는 건 분명했다. 여름의 도살자를 죽이는 것까지만 하더라도 그리 영향을 받지 않았던 놈들이, 봄이 죽고 나서는 조금 더 촉진되고 군주들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진화했다.
헌데 이런 상황에서 가을의 마녀를 죽이면 한도 끝도 없이 심해지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담아 가을의 마녀를 응시했으나, 그녀는 제 꼬리를 무릎 위까지 끌어당긴 채로 그 꼬리를 빗질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쳐서도 별 말을 하거나 표정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잔잔하게 웃는 낯이었다.
하기야, 저 년이라면 괴물이 늘어나고 강력해지면 시련이 늘어나니 좋은 것이라고 대답할 게 뻔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도로 돌리니 무관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 대답 안 했었지.
"흠흠, 그럼 가는 길에 조심해야 할 것은 있습니까? 괴물이라던가, 지형 같은 거."
"아, 예. 여기에 기록해뒀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무관이 꺼내드는 것은 피로 젖은 지도였다. 누군가 품고 있다가 죽었는지 피로 얼룩져 있었으나 잘 말렸는지 색이나 지도에 영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다. 커피를 흘린 정도에 불과해보였다.
그는 그 지도를 펼치고서, 이런저런 기호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게 괴물의 둥지를 나타내는 표식, 이게 강력한 괴물이 배회하는 지역을 표시한 겁니다. 솔직히 꽤 많습니다. 원래도 이리 많진 않았지만…."
지도의 곳곳에서는 괴물의 둥지와 강력한 괴물 표식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 지도를 빤히 바라보다가 받아들었다. 무관은 지도가 제 손을 떠난 것에 불안해보였다.
"뭘 할 생각이십니까?"
지도를 가지고 뭘 할 거냐고 묻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일부러 신뢰가 가도록 웃어보였다.
"괴물 사냥이죠."
그는 내 대답에 의아한 기색이었으나, 차마 뭐라 대꾸할 말은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