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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화 〉귀향 (214/274)



〈 214화 〉귀향
큼직한 둥지, 산의 바로 위에 지어진 둥지는 거목들로 이루어져 있어 쓸데 없이 새의 둥지를 확대해놓은 듯한 느낌이 풍겼다.

 큼직한 둥지 위, 거대한 짐승이 몸을 휘둘러댄다.

콰아아아아아!!!!


상당한 양의 풍압과 깎여나가는 산어귀, 깎여져나간 토사가 어지럽게 튀어오르고, 내 파워아머를 두들긴다. 만약 맨살이라면 살에 파고들었을 정도로, 저 뿌려지는 토사에는 의도적인 살의가 섞여있었다.


허나 굴복하기엔내가 너무 강력했다. 거검을 들어올려 막아내니, 대부분의 토사는 무위로 돌아가 흩어진다. 내 검면을 두들겨대는 토사가 흩어진 후에야, 나는 앞으로 달려들었다.


"지금!"


내가 외치는 소리에 가을의 마녀가 날아올랐다.날아올라 화려하게 창과 제 몸을 회전시킨 그녀는, 창첨을 지면으로 겨누고 가속했다.


쿠와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지직!!!!

뿌려지는 뇌전과 충격파. 둥글게 퍼지는 충격은 인외에 가까운 가속 덕분. 그에 거대한 메기에다 새의 날개와 부리, 발톱을 달아놓은 듯한 기괴한 괴물이 몸을 뒤틀며 꿈틀거렸다.


문제는 나도 휘말린다는 거겠지. 내 파워아머를 타고 흐르는 전류를 겨우 견뎌내고 앞으로 쏘아지니, 괴물은 여전히 전류에 경련하면서도 나를 바라봤다. 큼직한 어류 특유의 툭 튀어나온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추와아아악!
그 눈을 찣고 튀어나오는 촉수 같은 벌레들. 징그럽기 짝이 없으나 구태여 열을 올릴 것도 없었다. 휘두르려던 거검을 자세를 뒤틀어 멈춰세우고, 왼팔을 크게 휘두른다.


애애애애애애앵!!!!!

불타오르며,   위로 신성을 잔뜩 머금은 톱을 출현시킨 방패.  방패가 내 왼팔에 부착된 채로 휘둘러져 거대 메기의 비늘을 찢어놓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비늘들과 튀어오르는 피. 이번 괴물의 혈액 역시 뭔가 이상했다. 딛고 있는 거목에 내려앉자마자 부식을 일으키는 혈액에, 내가 눈쌀을 찌푸리면서 전신에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치솟는 화염과 그 화염에 그슬리거나 타오르기 시작하는 거목.

그 위의 생선이 정신 없이 몸을 뒤틀면서 내게 아가리를 향해왔다.


"나의 아들아, 항상 간합을 주의해야지."

막아내도 문제 될 것은 없고, 맞아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사이에 공격을 때려박을  있다면 내 이득이었다. 내 파워아머는 단단하고,  몸은 재생력이 빠른데다, 저 놈의 공격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을의 마녀는 그리 둘 생각이 아니었는지, 창을 찔러 괴물의 아가리를 밀어냈다. 쩡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튕겨져나는 생선의 머리에, 나는 가을의 마녀를 흘긋 보고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해하지 마!"

밀려난 생선이 다시 내게 달려든다. 새의 그것을 닮은 다리를 놀려, 내게 뛰어든다. 뛰어드는 놈의 몸통은 크게 비어있고, 신성톱으로 갈라져 피를 잔뜩 흘리고 있었다.

공격을 때려박는다면 거기였다. 힘을 끌어모으며, 거검에 화염 부여를 사용하고 휘두른다.

그리하야 펼쳐진 공방의 결말은 카운터였다.

쩌억!


콰직!

 파워아머 위에 아로새겨지는 이빨 자국. 믹서기처럼 생긴 칼날 이빨이 내 파워아머에 파고들다 멎고,  거검은 생선의 그런 몸뚱이를 크게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아!!!


파공성을 내며 쏘아지는 거대한 몸뚱이. 독성을 띄는 체액을 마구잡이로 흩뿌리며 날아가는 괴물은, 제 둥지의 한 켠에 있던 거목을 들이받고는 몸을 크게 띄워올렸다가 내려앉았다.


쿠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먼지구름과 죽음. 나는 그렇게 뻗어버린 괴물을 보다가 거검을 등으로 되돌렸다.


제 독으로 된 체액을 줄줄이 흘리며 죽어버린 괴물은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 시체를 한참 바라본 후에야 빗겨찬 도구낭에서 지도를 꺼내들 수 있었다.


한 때 피로 젖었던 것이 분명한 지도는, 주변 지역에 대한 간단한 지형 정보와 더불어 인근에 서식하는 괴물들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에 다발하는 강력한 괴물이나 군락지 등의 장소 대부분에 X가 쳐져있었다. 나는 그 X들을 살피다가 현재 위치일 산맥 부분에 X를 표시했다.


묵으로 표시하고 있자니, 가을의 마녀가 창을 거두며 내 앞에 섰다.지도로 가려져 보이는  그녀의 귀와 꼬리 뿐이었다.

"수고했단다."

"그래, 네가 자꾸 시험하려고만  했으면  수고해서 더 빨리 끝냈겠지."

내가 책망하는 소리에, 지도 너머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도를 꼼꼼히 살핀다. 지도의 대부분에는 X가 쳐져있고, 서식지나 군락지를 표시하는 기호 중 남은 것은 하나 뿐이었다.


한 군데인가. 빨리 끝내고 돌아가면  쉴 수 있겠네.

한숨을 내쉬며 지도를 접어 도구낭에 밀어넣으니, 가을의 마녀가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흘리며 지나가려는데, 가을의 마녀가  손목을 붙들었다.


"뭐냐?"

가을의 마녀는 내 질문에 손목을슬쩍 놓더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의 아들아, 네 정신이 마모되고 있음은 방금의 괴물도  수 있겠더구나. 조금 쉬엄쉬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개소리 하지마. 마모되긴 무슨. 괴물들 잡는다고 마모될 정신이면 진즉 뒈졌을 거란 건  알지 않냐?"


가을의 마녀는 내 대답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을 담당하는 그녀라면 내가 어떻게 해나왔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정신이 무너지려면 진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생각하지만은 않는지 갑자기 고개를 내저었다. 뾰족하고 털로 뒤덮인 귀가 잔잔히 흔들렸다.

"내가 말하고자 함은 그게 아님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나는  말에 의도적으로 아가리를 닥쳤다.  말하려는 건지 잘 알았고, 별로 가을의 마녀에게 털어놓거나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보란 듯이 입을 닫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가을의 마녀는 그런 내 반응에 무언가를 기다리는  고개를 기울이기만 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뭔데."

패배한 건 나였다. 이 씨발년은 생각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게 불쾌했으나, 본인은 유해하지 않다고주장할 생각인 것처럼 나른한 표정으로 제안했다.

"쉬고서, 천천히 걸어가는 건 어떻겠느냐?"

허나 그 제안은 기이한 것이었다. 갑자기 쉬자는 것의 저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지어 정말 쉬자는 것인지, 어떤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도 됐다.


그래서 고민하며 가을의 마녀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창을 잡은 채, 그 창날을 땅에 쳐박고  몸을 지지하고 있었다.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겨울과 같은 맥락으로, 가을의 마녀는 그런 수고스러운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하려거든 진즉 할 수 있었고, 오히려 지금의 내게 무척이나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괜찮겠지. 저깟 의견에 따른다고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테고.


"그래, 그러지. 이번만."


나는 대충대답하고서 그 대답만큼이나 성의 없이 적당히 솟아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은은한 열기가 느껴지는 것이 번개가 튀었던 것이거나 내 화염 부여의 여파에 닿았던  같았다.

내게 쉬자고 제안했던 가을의 마녀는 본인이 해롭지 않음을 주장할 셈인지 창을 내려놓고, 그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그러더니 능청을 부렸다.

"자, 보거라. 무기조차 내려놓지 않았느냐? 경계하는것은 좋으나 휴식 역시 중요한 전사의 덕목이라. 나의 아들아, 너는 쉴 때를 알아야 한다."


맥이 빠지는 멍청한 소리였다. 등에 짊어졌던 거검을 끌어내려 적당히 내려놓으니, 그녀는 방긋 웃었다.

"옳지, 착하구나. 이 어미가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됐어.그딴  나말고 네 열렬한 추종자들한테나 해."


날이 선 대답에 그녀는 웃었다. 여전히 내가 뭘 하던 좋아하는 이상한 년이었다.

마치 진심으로 아쉬운 것처럼, 귀를  내리더니 꼬리를 잘게 흔들었다. 노골적일 정도였다.

나는 그 동작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도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거냐?"


가을의 마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그러모았다. 모아서, 그 위에 언제 꺼냈는지 모를 나뭇잎 하나를 놓고 바스락거렸다.


"네가 시련을 통해 강해지면 좋겠구나."

으레 가을의 마녀라면 돌아올 법한 답이었다. 그리고 내가 들으나 마나한 이야기였다.


인상을 팍 찌푸리고, 나는 재차물었다.

"그러니까, 뭘 바라는 거냐고."

좀 더 원론적인 물음. 내가 시련을 통해 강해져서 뭘 얻길 바라는 건지 묻는, 좀 더 본격적인 질문.

나를 왜 돕고,  나를 따라다니는지 묻는 것.

실상 내가 언제 죽이려고 들어도 이상하지 않음을 감안하면, 도망가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일텐데 왜 그러지 않느냐는 질문.


그 복합적인 질문에, 가을의 마녀는 쉽게 대답했다.

"알고 싶느냐?"

그녀의 금색 눈동자가 나를 그 홍채에 담았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는 확고하게도 보이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가히 광기에 가까운 무언가가.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주변은 깨끗했고, 엿들을 이는 없었다. 그 어떤 마법적 신성적 감시수단도 없었다. 확신을 가지고 나서야 물을 수 있었다.


"어,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내 주의 깊은 모습이마음에 든 건지, 아니면 드디어 물어보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시련의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태초에 창조신이 있었고,  밑에 4신이 있었는데 창조신은 관리하지 않았단다. 인간들에게 관리가 필요하다고, 이 우주에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창조신을 갈기갈기 찢어죽여 나눠먹었지. 그리하야 우리는 4신이 되었단다."

"그건 아는 얘기야. 본론이나 꺼내."

"이게 본론이란다, 아이야. 조용히 들어주렴."


언뜻 어미가 타이르는 듯한 말투에 내가 눈쌀을 찌푸리니, 가을의 마녀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흩어져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고자 했지."


…그런데?

그 얘기가 전부인 양, 가을의 마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얘기는 왜 한 건데?"
재촉하니, 그제야 가을의 마녀는 싱그러운 미소를 곁들이며 말했다.


"봄은 초월을 통해, 여름은 투쟁으로, 겨울은그 누구도 모를비밀스러운 방법으로 해내고자 했단다."


여전히 그다지 설명은 되지 않았다. 짚이는 건 있었지만. 그리고 내 그런 침묵을 정확이 읽어냈는지, 가을의 마녀는  입가를 가리고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당연히 굴레를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겠느냐?  우주의 필연을 피하고자 운명을 개척하려고 하는 것이지."


짚이는 게 정확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몸을 기울였는데, 그녀는 웃는 낯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 중 내가 고른 방법은 시련. 시련을 통해 가장 훌륭한 씨앗을 선별하여 파종, 그리하야 굴레를 때려부수는 것이란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흘린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다리 위에 걸터앉았다. 풍만한 둔부의 감촉과 복실한 꼬리의 감촉이 파워아머 위에서 흩어지는지 잔잔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행동마저도 의구심이 들었다. 도대체  행동의 의미는 뭐란 말인가. 눈쌀을 좁혀 그녀를 노려보니, 그녀는 꼬리를 흔들면서 내  뺨에, 정확히는 헬멧에 손을 걸쳤다.

"떠넘긴다는 얘기냐?"

가장 훌륭한 씨앗은 분명 나라는 말일테고, 파종은 무엇을 의미하는진 모르겠지만 내게 떠넘기는 거라는 건 알  있었다.


가을의 마녀는 언뜻 무례할 그 말에도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애로운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시련에는 예외가 없으니, 나 역시 과업의 일부. 내 생과 업은 시련으로 쓰여도 좋음이라."


그 달큰한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진짜로 자기 목숨 따위는 내 육성을 위해서라면 바칠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게 무척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초에 이해를 바라는 신이 아니었으나 더욱이 그랬다.

"자살하겠다고?"


"그건 틀리구나. 나를 넘어서야만 진정으로 시련을 마쳤다고,  투사라고 칭할  있겠지. 나의 아들아. 너의 마지막 시련은 나이며, 너의  위업은 겨울의 폭군이니, 네가 얻어낼 단 과실을 위해서라면 이 어미는 너를 끊어내는 마음으로 공격할 요량이란다."

"미친년."

내 대답에,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내 무릎에서 폴짝 내려왔다. 키가 그리 작지도 않으니 그 움직임은 강한 반동을 동반했고,  큼직한 젖가슴이 흔들렸다. 그 궤적을 무심결에 눈으로 쫓으니, 그녀는 웃으며 창을 집어들었다.

여전히 미친년이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년이지만, 저게 거짓이라기엔 꾸미기가 불가능한 점이었다.


저건 진짜 광기였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용할 수 있는 곳까진 데리고갈 수 있었다.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

"그럼 적어도 그때까진 내게 협조해라. 네 마지막 시련은 착실하게 치뤄줄테니."


가을의 마녀는 집어든 창을 등에 짊어지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었다. 뾰족하게 선 귀처럼, 그녀의 눈이 날카로웠다.


"가자꾸나, 괴물이 제 발톱으로 명을 끊는 일은 없을테니."

그녀의 말대로, 괴물은 자살하는 법이 없으니 내가 잡아야 했다.

우리는 그 직후 괴물의 둥지로 향했고, 저녁이  쯤에야 괴물을 해치울  있었다.

지는 해는 망가져가는 세상에도 불구하고 굳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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