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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화 〉귀향 (216/274)



〈 216화 〉귀향

그 도시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거니는 이들조차 인간이 아닌 괴물이었고, 괴물들조차 인간을 찾아 떠돌기만 할  인간을 찾진 못했다. 어스름한 새벽녘 위로 떠도는 침울한 분위기가, 도시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널려진 인간의 시체는 괴물의 식사로 쓰여지고 있었고,인간의 잘 발라먹은 뼈 따위는 괴물의 입에 물려진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목숨조차 존귀하지 않은 땅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성 안에 몸을 숨긴 채 숨죽여 바깥을 내다보거나 제 상처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렇게 숨어든 이들 중 하나, 세레나는 제 옆구리에 둘러진 붕대 위로 손을 쓸었다.


"…윽."

피가 더 이상 흘러나오진 않았지만, 상처는 여전히 깊었다. 목숨에 지장이 가진 않으나, 전투를 한 번 제대로 해낼지도 확실치 않은 부상.

그녀는 그런 상처를 더듬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고대의 도시의 상황은 간단히 말하자면 절망적이었다.


첫 조우는 정체불명의 뿌리를 뻗어내는 괴물이었다. 그 나무에 가까운 괴물이 뿌리를 뻗어 성문을 열어젖혔다. 성문을 제어할 장치를 정확히도 조작했다.

 직후, 성벽은 정체불명의 지진과 함께 나타난 괴물들로 인해 함락되었다. 성문을 다시 걸어닫으려 했지만, 그러기도 전에 괴물들이 밀어닥쳐 그러지도 못했다.


성벽을 얌전히 포기하고 성벽 위와 아래에서 각각 흩어지는 병력들과 죽어나가는 시민들의 모습.

그녀의 한쪽 눈에는 그 광경들이 생생했다.


명령을 내렸으나 괴물들은 너무도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약진했다. 마치 지능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 준하는 지능이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결과 성벽은 빼앗겼다.

그 뒤에 몰려온 것은 비행형 괴물이었다. 집채만한 몸을 가진 기이한 괴물과 함께, 수십에 달하는 새를 닮은 괴물들이 인간을 낚아채 공중에서 떨어트렸다.

 그래도 성벽에서 물러나는 병력 탓에 공성병기는 이용할 수 없었다. 북적한 와중에 겨우  하나 움직일  있었을 뿐이었다. 세레나는 한 발조차 쏘지 못하고 공성병기가 자리한 성벽이 빼앗기는 것을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비행형 괴물들은 지능이 있는지 가장 먼저 망루를 빼앗았다. 빼앗아  둥지로 삼았다. 도시 각지에서 끌어모은 나무 파편 등으로 틀어막힌 망루는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살아남은 시민들과 많지 않은 병력들은 물러나야 했다. 대부분의 시민들과 사람들을 미끼로 삼아서.


물러나다가, 맞서 싸우고 더 잃은 후에야 겨우 퇴로를 확보했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쫓겨 더욱 큰 희생을 내서야 겨우 도망칠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중상자였다. 어제는 2명이 더 죽었다.


약은 많지 않았다. 내성에서 화살을 쏘아 떨어트린 괴물 새는 2마리였고, 잃은 궁수는 다섯이었다. 남은화살은  발이 전부였다.

그나마 영주성이 교단이 자리한 동굴과 이어져 있었다. 그 탓에 살아남았다.

교단의 대부분은 제 주인을 도우러 뛰쳐나갔으나 물자를 남기고 갔고, 그렇게 징발한 의약품과 식량 덕에 중상자 중 몇을 겨우 살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요새화된 영주성의 앞뜰과 바리케이트, 그리 높지 않은 내벽을 보며 세레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들의 이목을 끌었다가 죽은 이들이 꽤 많았다. 더 이상 이목을 끌어선 안됐다. 살아남으려거든, 겨우 버티려거든.

차라리 관리할 이들이 모두 멀쩡했다면 좋으련만, 관리를 맡은 이들 중 한 명은 부상이고,  명은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그럴몸상태가 아니었다.


세레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제 안대를 만지작거렸다.


"…괜찮아?"


그런 세레나에게 구릿빛 피부의 여성이 다가왔다. 그녀는 눈에 띄는 부상은 없었지만,  곳곳에 붕대를 감은 걸 보아하니 마냥 멀쩡하진 않아보였다.


"아뇨, 별로 괜찮지 않습니다. 사제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오늘 새벽에 한 명이 더 죽을지 모른다고,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말입니다."


마리암은 그 말에 대답할 것이 없었다. 그저 참담한 심정으로 제 허리춤의 장검을 만지작거렸을 뿐이었다.

사막에서 주로 쓰이는 크게 휜 곡검이, 그녀의 허리춤에서 은은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세레나는 주로 활을 쓰는 마리암이 근접전을 벌여야 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화살도 얼마 안 남았어. 궁병들이 그러더라, 남은 건 내가 쓰라고."


"…그렇겠죠. 팔이 남은 이들도 얼마 없으니까…."


마리암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말이 재밌어서 웃는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몰린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짓는 허탈한 미소였다.


"차라리 병력이라도 좀 남겨두었으면 이렇게까지 밀리진 않았을까 합니다. 도시의 대부분이 괴물의 식당이 된 걸 보자면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만 같아요. 처참한 기분입니다."


마리암은 세레나의 말에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가로젓고는 창문 너머로 바깥을 보았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괴물들은 이제 서로를 먹는지 괴이한 살점 따위를 입에 물고 있었다.


"그건 아닐 거라고 봐. 그 괴물들… 세레나 성주도 직접 봤으니 알테지만, 평범하지 않았어. 지능도 높았고, 우리를 학습해온 듯한 느낌이 풍겼잖아. 정찰대들이 했던  기억해? 올렸던 보고는?"


"…잘 기억하죠."

그게 세레나가 분통이 치미는 이유  하나였다. 예방하려거든 예방할 수 있었다. 한동안 이변이 없었다고 너무도 해이했던 탓에 그들은 당했다.

괴물이 미행하는 듯 하다는 말에는 착각일 거라는 대답을, 괴물이 공격해오지 않고 거리를유지하며 따라붙었다는 말에는 공격성이 옅어진 것일지 모른다는 대답을 했었던 세레나였다. 그녀는 억울한 심정으로 입을 꾹 닫았다.


갑자기 이리도 변하고이리도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무엇 때문에 변한 것인지 알았다면 대비라도 했을 것을.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변이한 괴물들 탓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냐. 조금만 더 버틴다면…."

마리암이 희망적으로 뇌까린 소리에, 2주 전만 하더라도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던 세레나도 조용히  밖을 응시했다. 터오는 동이 도시를 휘감고 있었다.

 희망적인 배경에, 그녀는 어떤 말을 떠올렸다.

'버티고 있어, 내가 갈테니까!'

웜홀이 닫히는 순간 들려왔던 목소리를,  그리운 음성을 잊을리 만무했으므로, 그녀는 버티고 있었다. 희망조차 없어보이는어두운 새벽임에도, 동이 터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과는 상충되는 괴물의 낯설고 낮은 신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세레나가 고개를 돌리니, 마리암의 뒤에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의 입가를 틀어막았다.

이제  3살이 넘었을 아이는, 눈물을 흘리다가도 제 어미가 입을 틀어막는 것에 서럽게도 울었다.


아이 뿐만이 아니라, 끔찍한 고통에 재갈을 물고서 신음을 삼키는 부상병들도 눈에 띄었다. 그는 제 고통보다도 제 고통에 찬 비명이 불러올 더 많은 죽음이 두려운지 입을 틀어막고 신음과 고통을 삼키다 혼절했다. 늘어진 팔다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 때는 연회를 열고는 했었던 넓은 회랑에, 한 무더기의 절망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주현성의 목소리가 사라져가던 웜홀에서 들려온지 일주일.

그녀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면서도, 주현성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기적을 몰고 나타나 구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것 외에, 그녀가  수 있는 없었으니까.

그녀는 끔찍한 무력감 속에서 주저앉았다.

"제발… 빨리 와주십시오. 더 이상은 힘들어요."

그녀의 희망을 놓게 만드는 허탈한 음성에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한 것에 가까웠다.

*


기다란 행렬이 나아간다. 제 긴 꼬리를 새벽녘 사이로 흐르게 하면서, 닿는 모든 것을 지워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최선두에는 깃발이 있었다. 피처럼 붉고, 불처럼 뜨거운 깃발이었다. 그 깃발을 들고 있는 존재는 가장 앞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뻐어어억!

콰지직!


주먹의 모양으로 움푹 패여진 거대한 괴물의 두개골이, 진물이나 피, 뇌수 따위를 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지는 것에 천지가 울리고, 끔찍한 비명이 들렸으나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정확히는 멈출 수 없었다. 주현성이 높이 뛰어올라 위치를 확인하고 쾌속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감히 멈추자고 제안할  있는 이는 없었다.

난민들은 필요 없는 짐을 내버리고서 마차나 수레에 올랐고, 아직 뛸 수 있는 병사들은 내뱉어야 할 날숨조차 뱉지 못하고 다리를 놀렸다. 피로했으나 그 피로를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비켜, 이 씨발새끼야!"

으직!


거목처럼 굵은 허리를 가진 거인이 행렬을 가로막자, 주현성은 뛰쳐나가 다리를 앞으로 내질렀다. 거목처럼 굵었던 허리가 뚝 꺾여, 내장과 척추뼈의 신경 따위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주현성은 더 이상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아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제 모든 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행렬의 조금 멀리, 떨어지는 산양이 비명을 질렀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그에 휘말린 괴물의 둥지가 산산조각이 나고, 주현성은 그 광경을   뒤로 내다보이는 시야로 확인했다. 괴물들이 둥지 방향에서부터 달려오고 있었다.


콰르르르릉!!!!


그 뒤에 밀려오는 괴물의 무리를 보고서, 주현성이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 벼락을 떨어트렸다.


빗줄기처럼 길게 늘어지는 벼락들은, 다가오는 괴물과 나무를 한데 뭉치는  으깨버렸다.

불타고 쓰러지는 나무 사이로 불티가 튀어올랐으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못했다.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군마만이 불만스레 콧김을 뱉었을 뿐이었다.

"메이!"


"이, 이제 근처엔 없어!"


"좋아, 계속 둘러봐!"

메이는 주현성의 음성에 정찰에 쓰이는 감지 마법을 넓게 퍼뜨렸다. 마력의 낯설고 섬뜩한 감촉이 지천을 뒤덮었다.


메이의 자그만한 머리는, 몇 번이고 사용한 마법 탓에 어지러웠다. 계산을 하려고 하더라도 머리가 묵직하게 당겨와 마법을 쓰기가 힘들었고, 지진한 구토감이 그녀의 목청을 떠돌고 있었다.


명백한 무리에도 메이는 차마 마법 사용을 거부하지 못했다.


일주일 간의 이어지고 있는 강행군 속에서, 가장 무리한 존재가 자신이 아닌 주현성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쩔  없이 행렬이 쉬어야 하면, 그는 제 몸을 날려 어둑한  속에서 괴물을 죽였다. 나아갈 경로에 있는  뿐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둥지와 거체를 쓰러트렸다.

행렬이 움직일 때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싸우고 길을 뚫었다.  이상 막는 동작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먹과 다리를 휘두르고, 휘두르고, 또 휘두를 뿐이었다.

한 순간도 쉬지 않아 실상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한 것이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서 광기가 떠돌고, 불안감이 어지럽게 행렬을 감돌았다.


허나 측근들은 차마 쉬라거나 멈추라고 할 수 없었다. 목적지에 닥쳐온 위기를 감안하면 당연했다.

제 머리를 부여잡고 마력을 넓게 떨쳐낸 메이가 인상을 찡그리고, 달려드는 괴물들을 향해  개의 화염으로 이뤄진 창을 쏘아낼 적에, 주현성은 또 하나의 괴물을 죽였다.

휘두른 주먹에 터져나간 괴물의 머리가 내팽겨쳐지고, 메이가 토해내듯 외쳤다.


"거의,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음성에 주현성이  빠르게 튀어나가고, 난민들은 힘을 얻었다. 조금만 더 가면  뛰지 않아도 된다. 단락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그들은 정신 없이 뛰었다.


우거진 숲이 점차 작고 얇은 나무로 바뀔 쯤, 수목선이 넓게 트였다.


트이자마자 보인 것은 도시였다.

한 때 보았노라고 말할  없을, 명백히 달라진 모습.


높게 솟은 망루 위에 자리를 튼 괴물들과 어슬렁거리는 개를 닮은 괴물들.

이미 먹혔는지 잔해만이 조금 남아있는 시신들 사이로, 웅장하게 솟았으나 금방이라도 무너질  침침한 기색의 고대의 도시가 그들을 반겼다.

주현성은 그제야 멈추고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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