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귀향
나는 자리를 박차 하늘을 날았다. 발 밑에서 떠도는 부유감이 내 몸을 띄워올렸고, 내 몸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가속했다. 순간이지만 나는 쏜살을 따위로 만들 정도로 빨랐다.
쩌어어어엉!
그렇게 날아올라 내뻗은 주먹에, 날아오던 괴물의 아가리가 가격당해 크게 밀려난다. 퍼지는 충격파에 돌로 된 성벽에서 돌이 튀어오르고, 바닥에서 흙이 치솟았다.
묘리랄 것도 없고 기술이랄 것도 없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펀치였다. 그 펀치에 날아오던 궤적 그대로 지면에 쳐박힌 괴물은, 바르작 거리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기에에에에에에!!!!!
그리고 턱을 크게 벌려 내게 내민다. 내민다기 보다는 씹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 좌우를 점하고 좁혀드는 이빨들을 보고서, 바닥에 내려앉기도 전에 다시 주먹을 쥐었다. 이번에는 왼주먹이었다.
그 왼주먹을, 크게 들어올렸다가 드러눕듯 뻗어지는 턱관절을 향해 내리찍었다.
쩌억!
콰아아앙!
주먹에 부딪힌 아가리가 크게 휘어 지면에 부딪혔다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치솟았다가 다시 내려앉는다. 그제야 괴물은 제 몸을 뒤로 물리며 비척거렸다. 네 개의 다리가 그 몸을 단단히 지지했다.
괴물의 형체는 새에 가까웠지만, 주둥이는 넓적하고 길었다. 마치 악어의 그것처럼. 실제로도 파충류 같은 비늘이 잔뜩 돋아난 것을 보자면, 사실상 드래곤과 악어의 잡종이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악어와 드래곤의 교집합이, 내게 곧장 몸을 돌려 꼬리를 휘둘러왔다.
그걸 보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딛고 있던 바닥이 크게 패이면서 돌조각이 마구잡이로 튀어올랐다. 순수히 각력 때문이었다.
괴물의 옆구리는 비어있었다. 꼬리를 휘두르기 위해 돌린 몸은 때리기 딱 좋은 샌드백처럼 보였다.
그래서 주먹을 올려꽂았다.
꽂으며 가속까지 사용했다.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그대로 내 주먹을 가속시켜 거한 충격파를 뿜어냈다.
그르에에에엑!
하지만 꼬리는 멈추지 않았다. 바디블로가 정확히꽂혔음에도 괴물은 꼬리를 휘둘러 내 몸을 두들겼다.
쩍, 하는 소리와함께 파워아머 위에 칼집 같은 것이 새겨졌다가 천천히 수그러들었다. 신성이 희미하게 내 몸을 타고 돌고, 파워아머의 시야 한 켠에 [자동 수복 발동]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 뒤에내가 할 동작은 정해져 있었다. 정직하게 몸을 돌려,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오른주먹을 단단히 쥐고 악어의 몸뚱이에 쳐박았다가, 그대로 닫히는 턱에 걸렸다. 칼날 같은 이빨이 즐비한 아가리가 내 몸을 씹어대는 것을 느끼며 왼주먹을 휘둘러 눈알을 가격했다.
촉촉한 감촉이 뭉게지는가 싶더니 피가 팍 튀어올랐다. 내 것은 아니었다. 괴물은 고통에 힘이 빠졌는지 물고 있던 것을 놓고서 앞발을 휘둘렀다. 그 앞발을 내 어깨로 받아내면서 어퍼컷을 내지른다. 역시 주먹은 입에 때려박혔다.
"혀, 현성아!"
메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나, 시야를 돌릴 틈이 없었다. 나와 악어는 노가드로 서로의 몸을 두들기고 씹어댔다.
꼬리, 발톱, 깨물기, 턱으로 후려치기 등 갖가지 동물적 공격이 내 육신을 두들겨댔다. 그에 파워아머가 기긱 하는 소리를 내며 뒤틀리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그에 응수하는 나의 공격은 마찬가지로 동물적이었다. 주먹을 휘두르고, 다시 휘두르고, 머리를 철퇴처럼 내리찍어 그 비늘을 두들기는가 하면 종종 앞차기를 내질러 밀어내고서 다시 주먹을 꽂았다.
쾅, 쾅, 쾅쾅쾅, 콰가가가가가!
나와 괴물이 서로를 해치는 소리만이 폭음처럼 울렸다. 내 몸을 두르고 있다시피 했던 혈흔은 옛적에 충격파 때문에 거두어졌고, 내 주먹은 성실하게 놈의 몸을 짓이겨 새로운 피를 그 위로 덮어씌웠다.
콰아아아앙!
기기기기기긱
그렇게 내지르던 주먹이 놈의 앞발과 뒤엉키고, 놈의 이빨이 내 머리를 깨문다. 깨물린 상태에서 나는 놈의 앞발과 앞다리를 단단히 붙들고 밀어냈다.
밀어내고, 뒤틀어낸다. 내 힘에 천천히 괴물의 몸이 띄워졌다. 아가리가 벌려졌다. 내 악력과 제 치악력으로 겨루던 괴물은 당황하면서도 턱관절에 힘을 주고 있었으나, 쉬이 당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냄새나는 주둥이에서 머리를 빼내고서, 그대로 들어올렸다가.
콰아아아아앙!
내리찍었다.
지면에 내리꽂힌 괴물은 잠시 멈춰있는가 싶더니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놈은 다시금 제 칼날 같은 주둥이를 들이대며 내게 쇄도했다.
그 궤적은 직선적이었다. 읽지 못할 것도 없었다. 나는 왼팔을 들어올리고, 몸을 틀며 그대로 왼팔을 내리찍었다.
기에에에에에엑!!!
왼팔에 매달린 방패와 놈의 주둥이가 충돌하고, 그 흉하게 생긴 이빨들이 뽑혀나오며 지면에 쳐박혔다가 반동으로 튕겨져 나왔다.
쩌어엉!
하지만 큰 동작 탓에 나는 미처 꼬리 공격을 대비하지 못했다. 빈틈에 꽂힌 꼬리 공격은 나를 밀어냈고, 내 두 다리는 도랑을 파내며 그 충격에 저항했다.
멈춰서고서, 나는 이를 부득 갈며 달려들었다.
"덤벼, 개새끼야."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이 괴물을 더 철저하게 부수기 위해서.
그렇게 다시 난타전이 시작되었으나, 아까와는 과정부터가 달랐다.
내가 양주먹을 휘둘러 놈의 몸을 두들겨 부수면, 놈이 겨우 반격을 해냈다. 하지만 그 반격에는 힘도 속도도 없었다.
놈은 겨우 나를 밀어내려고 애쓰다가 괜히 몇 대를 더 쳐맞았다. 튀어오르는 비늘 사이로 내 주먹이 정직하게 놈의 가죽을 두들겼다.
쩡, 쩌어어엉!
주먹이 꽂힐 때마다 놈의 가죽에서 피가, 살점이 튀어올랐다.
괴물은 그 고통에 저항하려고만 할 뿐, 이제 더 이상 반격하지 못했다.
내 타격횟수가 놈의 반격횟수를 찍어누른다. 압도하기 시작한다. 한 눈에 보더라도 명확한 결과를 눈에 새기며, 나는 정신 없이 괴물을 두들겨 팼다. 기세 좋게 나를 습격했던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견뎠다.
놈은 겁에 질리고 있었다.
그르륵, 기에에에에에!!!
놈의 커다란 피막이 펼쳐진다. 이제 막 정오가 되어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펼쳐진 두 피막은, 마치 일식처럼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괴물은 집채만큼 거대했다. 당연히 저 날개도 그만큼 거대했다. 새로 날아올 공격을 경계하는데, 놈은 그렇게 펼친 날개를 휘저어 제 몸을 띄우기 시작했다.
도망을?
기껏 씨발 습격까지 해놓고?
도망가려 몸을 돌려 거대한 날개로 활공을 준비하는 놈을 보고서,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투두두두두두두!
딛는 걸음마다 돌조각이 어지럽게 튀어오르고, 뒤집힌 가도가 먼지를 피어올렸다. 그 중심에서, 나는 도약했다.
그르르르르엑!
흉한 소리를 내며 겨우 공포를 표현한 괴물이 활공을 시작하고, 그렇게 멀어지기 시작하는 거체를 보고서 손을 휘둘렀다.
내 손에 붙들린 건 놈의 부숴진 주둥이였다.
부숴진 아가리의 뼈나 단단한 조직, 이빨이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가운데, 내 손가락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손가락을 그대로 비늘 사이에 찔러넣어 박았다.
으직, 하는 감촉이 손아귀에서 흐르고, 괴물이 당황하여 머리를 흔든다.
나는 그 손을 끌어당기며 읊조렸다.
"어딜 도망 가, 씹새끼야."
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괴물이 마구잡이로 몸을 뒤튼다. 뒤틀면서, 나를 떨어트리려고 노력한다.
내 몸은 그 시도에 따라 흔들리지만, 내 손은 쥐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쥐고 있는 것에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푸화아아아악!
치솟는 불꽃과 고통스러워 하는 괴물. 제 몸을 두른 화염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서 가속을 사용한다. 내 몸에 둘러진 사슬갑주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다.
그렇게 나와 괴물은 도시의 하늘을 가로지르며,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산까지 날았다.
날아가면서, 나는 내 손에 붙들린 괴물의 거체를 내지르다시피 했다.
콰아아아아앙!
내 손아귀에 붙들린 괴물의 머리가 그대로 산에 꽂힌다.바위로 된 산에 제 머리가 부딪히자, 괴물이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그렇게 쳐박힌 머리를 단단히 쥐고서, 횡으로 가속했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득!!!
끔찍한 피륙이 갈리는 소리와 돌이 마찰하여 으깨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지고, 괴물이 제 몸을 움찔움찔 떨면서 갈려나가는 것을받아들인다. 그렇게 제 위치에서 벗아난 살점이나 피, 뇌수가 내 몸을 적셨다.
그 가속은 괴물의 머리가 반절 이상 갈려나가고 나서야 끝났다. 산어귀에 쳐박히다시피 한 머리에서는 끈적하게 뇌수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머리를 보고서, 다른 주먹을 들어올렸다가, 내리찍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대가리에 정확히 꽂힌 주먹에 괴물의 남은 머리 절반이 산산히 부숴지며 산에 꽂히고, 그 몸이 크게 경련하더니 잠잠해진다. 피륙은 이미 코가 아릿할 정도로 뿌려졌다.
움푹 패인 산에 꽂힌 괴물의 시체가 처량하게 늘어지고, 그 거체에 깔린 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시끄럽게 고막을 두들겨 댔다.
나는 늘어진 괴물의 몸을 딛고 서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주먹에는 괴물의 회백질이 붙어있고, 내 몸은 괴물의 피로 범벅이나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도시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이 바위산에서는, 도시 안의 수많은 괴물들이 꿈틀거리는 흔적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직 안심할 때도 아니며, 아직 적은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시 도시로 뛰어들었다.
*
괴물들의 비명은 저녁까지 내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절망적인 생각과 포기를 뇌리에 담고 있던 세레나와 마리암이었으나, 괴물들의 비명이 2시간째 이어질 무렵부터는 괴물에게 측은지심과 함께 잔잔한 통쾌함마저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이어지던 괴물의 비명이 멎고, 폭음마저 그쳤을무렵, 세레나와 마리암은 바깥으로 나왔다.
내성 바깥, 괴물들을 틀어막을 장애물이 가득한안뜰을 가로질러 바깥으로 나서는데, 도시는 아까 전의 폭음과 괴물들의 비명이 거짓말인 것처럼, 한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통받았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고요했다.
괴물들의 생활 소음이 사라진 고대의 도시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적막했다.
세레나는 그렇게 바깥으로 나오면서 방금 전 전사가 누구일지 추론하고 있었고, 마리암은 그 전사가 두른 망토가 자신이 주현성에게 주었던 것이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둘 다 동시에 혹시 하는 생각을 품을 무렵, 갑자기 바깥 한 켠, 부숴지고 피륙이 흩뿌려진 가도 너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건 행군 소리 같았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일제히 울려퍼지고, 그걸 뒤따르는 병장기와 갑주의 소음이 있었다.
그들은 그 소리에 아예 내성을 벗어나 바깥으로 나섰고, 내성 안에서 경계를 올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던 보초들도 망루에 올라 너머를 보았다.
어둑해져 도시 외벽의 거대한 그림자가 깔린 가도, 그 어스름한 한 구석에서부터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다가오는 이는 피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마침내 그 전사가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흐릿한 빛 속에서 제 몸을 드러냈을 때는, 그 피냄새의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전사는 전신에 피를 두르고 있었다.
주먹에서부터 다리, 머리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그 어디도 피에 젖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것이 마치 전신에 빨간 도료를 칠한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역한 괴물의 체향과 피냄새가 산재했다. 참기 힘들 정도로 역하고 기분 나쁜 냄새였으나, 그보다 인상적인 것은 달리 있었다.
그 전사의 그런 흉흉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뒤따르는 이들이었다. 그 전사의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은 일당백의 전사도 아니거니와 전사조차 아닌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난민들이었다.
난민들은 공포도 동요도 없는 평온한 얼굴로, 깃발을 어깨에 빗겨들고 있는 전사를 뒤따라왔다.
그렇게 난민들마저도 빛 속으로 들어서고, 점차 가까워지자 세레나는 익숙한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중 제 쌍둥이 언니를 보고서 눈을 크게 떴다.
그 극적 상봉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묵묵히 걸었고, 걸으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이들에게 천천히 성벽 너머의 노을이 드리워졌다.
차양처럼 덧씌워지는 붉은 노을이 그들이 지나온 길을 비추었다. 그 길에는 괴물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널려있는 괴물들은 하나 같이 산산히 부숴져 있었다.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그들은 괴물의 시체를 가로지르며 내성을 향해 다가왔다.
세레나는, 그것을 보며 가히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을 모습이라고 언뜻 생각했다.
그리고 어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하여,입을 떡 벌린 채로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다가오던 전사가 제 머리깨를 두들겼다.
그러자 그 투구 같은 것이 내려갔다. 내려가며, 피에 젖은 투구가 갑주의 목 안으로 사라졌다. 투구가 사라진 그 너머에는 그녀가 익히 알고 그리워 했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은 왠지 피곤해보이고, 지친 표정으로 웃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그 사과에, 세레나는 차마 반응할 수가 없었다. 다만 무너질 것만 같은 기분으로 입술을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