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5화 〉가을의 마녀 (225/274)



〈 225화 〉가을의 마녀
가을의 마녀의 전신에서 전류가 흘러넘쳐, 주변을 찢어발긴다. 바닥을 기어오는 스파크에, 숨을 고르면서 화염 부여를 사용했다.

화염 부여를 두를 곳은 전신과 방패. 후광 위에 덧씌워진 화염이, 하얀색으로 빛나며 일렁였다.

돌아가기 시작한 방패의 톱날이 굉음을 자아내고, 파직거리는 소리와 톱의 굉음이 다 부숴져가고 허물어지는 숲에서 울려퍼졌다.

지금부터가 진짜다. 지금 승부가 난다. 그 일념으로 나 자신을 다잡고, 뛰쳐나갔다.

부우우웅!

도끼를 휘둘러 횡으로 넓게 포착하려고 하지만, 가을의 마녀는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사라졌다.

사라지더니, 그대로 내 옆에서 치닫는다. 3인칭 시점으로 보이는 창날이 너무도 빠르다. 막아내기엔 너무 빠르고, 피하기엔 가깝다. 머리를 조금 틀어 흘려낸다.

까아아앙!

"큭."

헬멧에 부딪힌 창날이 튕겨나고, 지직거리는 전류가 파워아머를 파고들려다 만다. 한순간에 전신까지 기어들어온 전류에 이가 악다물린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가을의 마녀가 창을 찔러온 곳으로 시점을 움직이나, 가을의 마녀는 더는 없었다. 전류만이 지면을 드글거리고 있었다.

일격일탈인가.

상식적인 전법이었다. 속력을 살린다면 문제될 것도 없었고, 낭비가 없는 공격 방식이다. 심지어 가을의 마녀의 속력은 상식을 넘으니, 제 특기를 살리기에도 좋으며 내 완력을 가볍게 대응할  있는 방식이다.


어떻게든 목표를 포착해서 한 방 먹여야 하는 나와는 달리, 주도권을 잡기 좋았다.

"젠장…."

주변에 파직대는 전류가 흘러넘치고, 시점을 옮길 때마다 섬전의 아릿한 흔적만 남을 뿐 가을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한 번만 맞춘다면 이쪽의 승리인데.


어쩔  없었다. 톱날이 돌아가고 있는 방패를 들어올려, 머리를 방어하면서 도끼를 든 팔을  가까이 붙였다. 오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공격이 올 곳을 좁혀야 했다.


파직


온다. 그 섬짓한 감각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틀고, 내 머리를 노리고 찔러오는 창을 피해냈다. 피하면서, 나는 도끼를 휘둘렀다. 짧게, 자루로 때리다시피 휘두른다.


부우우웅!

화염이 둘러진  몸뚱이를 스치지도 않고, 창을 찔러오며돌격한 가을의 마녀는 다시 뇌전을 동반하며 사라진다. 일격일탈이나 정확한 공격에,망설임 없는 빠른 회피였다. 내 도끼는 뜻 없이 허공을 갈랐다.


깡!

허공을 가른 도끼를 거두기 전, 다시 나타난 가을의 마녀가 자루를 휘두른다. 무심결에 돌린 머리가 가격당해 고개가 홱 돌아간다. 다행히 시점은 움직이지 않았다.

"큭…!"


빠르다. 공격이 닿지 않는다. 내 공격이 느린 건 아니다. 가을의 마녀가 너무 빠른 탓이다. 치미는 욕지기를 참으며, 도끼를 단단히 쥐고서 곧장 휘두른다.

다시  번 허공을 그어놓는 도끼, 일렁이는 불길이 휘두른 궤적에 남고, 아지랑이가 남아 허공이 난데 없이 흔들린다.


그리고 또 나에게 짓쳐드는 창격. 시점 한 켠을 메우며 날아드는 창격에, 휘두른 그대로 다리를 틀어 도끼를 크게 휘두른다.


가가가각

그렇게 휘둘러진 도끼를, 전신에 번개를 두른 가을의 마녀가 흘려낸다. 자루를 타고 올라간 도끼가 튕겨나고, 가을의 마녀가 창대를  가까이 붙이고서 휘돈다.


까각!

다시 한 번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창. 고개를 슬쩍 움직여 충격을 줄이지만, 부딪힌 충격에 밀려난다. 고개가 젖혀진다.

가을의 마녀는 그렇게  머리를 후려치더니, 히쭉 웃으며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사라지는 모습에는 벼락이 남았다. 난데없이 생겨난 스파크가 지면을 타고 흐르고, 나는  흔적으로 다음 출현 장소를 유추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그 스파크가 길게 이어지다, 어느 시점에서 멈춰선다.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날 곳을 예상하여 방패를 휘두른다.

굉음을 토해내며 아지랑이와 함께 허공을 그어놓는 신성톱. 찢어지는 허공에서는 탄내가 나고, 가을의 마녀는 없었다.

씨발, 또 어디에…!


뻐억!


다음 있을 곳을 추리하기 위해 시점을 움직이는데, 난데 없이 옆에서 나타난 가을의 마녀가 다리를 휘둘렀다. 가격당한 머리에 내 자세가 무너진다.

젖혀지는 머리, 아리는 턱, 잔잔하게 남아  움직임을 방해하는 섬전. 발차기에도 벼락이 깃들어 있었다. 이를 바득 물어 겨우 참아내고 박치기를 내지르지만, 가을의 마녀는 흔적도 없었다.


내 반격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기엔, 나는 한 호흡을 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였다.


벼락을 몸에 두른 건 그저 퍼포먼스가 아닌 모양이었다. 가을의 마녀는 반응속도와 움직이는 속도가 모두 향상되어 있었다.

씨발, 재앙의 마녀라며. 이건 그냥 번개의 마녀잖아.


입가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억지로 삼키니, 주변에서 스파크가 떠돌아다녔다.


뛰어오를까?

아니다, 뛰어올랐다가는 쉬운 타겟이  뿐이다.

주변을 때려부숴?

아니지, 속도는 저쪽이 위다. 그저 피하면 그만이다.


화신 강림을 쓴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못 피하게 만들어놓은  아니면 그냥 피할 것 같았다.


숨을 들이키는데, 갑자기 등에서 격통이 번진다.

"커흑!"


등에서부터 찔러오는 것은 창. 생각이 길었던 건 아니었다. 사고에는 1초도 소요되지 않았다.


즉시 들어오는 공격은 내 인지 바깥에서, 정숙하며 빠르게 들어왔다. 가을의 마녀의 몸에도 스파크가 튀어오르지 않았다.

답지 않게 기습을? 등쪽 파워아머가 깨지는  느껴지는 와중에, 나는 손을 뻗어 창자루를 쥐었다.

파지지지직!!!


허나 창은 내 접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솟아오르는 전류에 몸이 덜덜 떨려 무의식적으로 창을 놓자, 그대로 다시금 창대가 그녀의 몸에 딱붙어 휘돌더니 내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나는 바닥을 구르면서 크게 밀려났다. 나뒹구는 중에도 파워아머가 신성으로 수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쿨럭쿨럭

벅찬 숨을 뱉어내며 목을 가다듬는데, 바닥에 스파크가 기어갔다.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튕겨내니, 내가 있던 자리에 날벼락처럼 창과 가을의 마녀가 꽂혔다.

콰르르르릉!!!

벼락처럼 꽂히는 것은 진짜 번개를 동반하여 굉음을 울리면서 흙더미를 파올렸다. 튀어오르는 흙더미에 숨을 몰아쉬면서, 이를 바득 물었다.

싸우기 까다로웠다.

차라리 으레 스피드 타입이 그러하듯 공격력이라도 낮으면 모르겠는데, 창 때문에 공격력이 높으니 쉬이 대응할 수 없었다.


다른 계책을 세우더라도, 일단은 창을 뺏는  우선 같았다.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일어서니, 가을의 마녀가 창을 몸 가까이 붙여 짧게 잡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 존나 아프겠지만 해봐야지.


자세를 취하며, 나는 일부러 복부를 비워두었다. 머리를 맞기 싫은 것처럼, 방패를 높이 들어 머리에 가까이 붙이고 도끼는 어깨 높이 위로 들어올렸다.

공격적이면서도 방어 역시 챙기는 자세에, 가을의 마녀가 물끄러미 보더니 창을 겨누었다. 겨누어진 창 끝이 총구처럼 내 심장을 향했다.

그리고, 가을의 마녀가 나를 향해 돌격한다.

파직!


맥 없는 스파크와 함께, 그녀의 신형이 사라진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면 늦는다. 나는 반박자 빠르게 가을의 마녀보다 먼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내게는 불굴의 정신이 있으니까,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계획은 성공한다.

내가 가을의 마녀가 돌격해올 방향으로 달려들고, 보이진 않으나 분명 가을의 마녀가 나를 향해 달려든다. 내 심장을 노리고 창을 찌른다.

그리고 격돌하는 순간에.


콰직!


파워아머가 깨져나가는 감촉이 떠돌고, 느닷없는 고통의 첫 마디가 들어올 때, 뒤로 가속했다.

투화아아악!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뒤로 쏘아지는 나와, 갑자기 내 앞에서 나타나는 가을의 마녀. 그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서, 내 배를 파고들고 있는 제 창을 붙들고 있었다.

복부에 창은 반마디 이상 파고들고 있었지만, 가속으로 뒤로 빠진 탓에 위력은 감퇴되어 있었다.

전류가 복막을 아릿하게 만드는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 전에 내 다리가 뻗어져나왔다.

무기를 머리까지 올린 자세는 페인트. 진짜는 앞차기.


겨우 때를 맞춰서  수 있었다.


쩌어어억!

가을의 마녀의 얼굴이 내 발바닥에 닿고, 파워아머의 각반 위로 잔잔한 타격감이 내달리더니 뒤로 쏘아진다. 내 근육에 붙들린 창을 남기고, 가을의 마녀가 뒤로 쏘아졌다.

쾅, 콰과가가가가가!!!

나무 몇그루가 부러지는 소리와,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시끄러운 와중에 나는 배에 박힌 창을 보았다.

 맞고 반격할 셈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되었다.


어쨌든 뺏을 수는 있었으니.


입에서 울컥 솟아나는 피를 파워아머 안으로 쏟아내면서, 창을 뽑아낸다.


"크으으윽…!"

뽑혀지는 창에 내장이라도 끌려나오는 기분이지만, 반마디 밖에 파고들지 않아 내장조각 따위는 걸려있지 않았다. 내장이 다친 건 맞는 것 같지만.


거인의 힘으로 인한 미약한 재생과 근육의 단단함이 내 목숨을 부지했다.

숨을 몰아쉬면서, 뽑아낸 창을 지면으로 내던져 꽂았다.

콰아아앙!


지면에 꽂힌 창이 자루를 잡을 것도 없이 파고들고, 내 배에서 피가 뿜어져 후두둑 바닥을 더럽혔다.


이걸로 창은 봉인.


창을 뺏긴 걸로 포기하진 않겠지만, 공격력이 줄어들었으니 해볼만 했다.


숨을 몰아쉬다 겨우 자세를 잡으니, 바닥을 타고 전율처럼 푸른 전류가 튀어올랐다.

콰르르르릉!!!

우레 소리를 울리며 쏘아지는 가을의 마녀.  한켠에서 날아온 그녀는 유황 같은 냄새를 풍기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호쾌하구나, 아가! 복근으로 창을 잡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늬라!"

쩌어어엉!


벼락을 타고 휘두르는 주먹을 방패로 막아내니, 아릿한 충격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나는 가을의 마녀가 칭찬하는 소리를 억지로 무시하며 도끼를 휘둘렀고, 휘둘러진 도끼는 다시금 허공을 갈랐다.

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나름의 배운 것, 봐온것을 담아 온갖 묘수를 부리고, 방패도 빈틈마다 휘두르지만, 내 근처를 스치는 가을의 마녀는 옷자락하나 잡히지 않았다.

쩌억, 쩌어억!

지나치며 휘두른 주먹에 얼굴을 가격당하고, 큽, 하는 소리를 삼키며 방패를 휘두르니 어느새 길게 쭉 뻗은 다리가 내 대퇴부를 걷어차 무릎 꿇려진다.


씨발, 생각보다 격투도 잘하네. 반칙 아닌가 하면서 굽혔던 무릎을 펴는데, 숲에서 목소리가 울리며 옅게 섬전이 튀었다.


파지직


"격투술에 조예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느냐, 아가."

당연하지.


"시련의 어미가 고작 무기가 없다는 시련조차 못 이겨내서야, 어찌 시련의 어미라고 칭할 수 있겠느냐."

그건 말되네.


시덥잖은 말에 대꾸하지 않고 도끼를 휘두르지만, 오히려 휘두른 사이에 옆구리에 주먹이 꽂힌다.

너무 빨랐다. 여전히 속도는 뒤지지 않았다. 공격력은 떨어졌으나 그를 상회하는 공격 속도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다.


나는 숨을 들이키고서, 크게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아아앙!


내가 밟은 지면이 박살나 튀어오르고,주변 지형에 균열이 어지러이 가해져 흔들린다. 갑작스러운 국소적 지진에, 전류를 뿜으며 내게 돌진하려던 가을의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가을의 마녀가 물러나기 전에 도끼를 집어던졌다.


"아하, 궁리를 좀 했구나!"


당연하다는 듯이 피한다. 몸을 기울여 도끼를 피하고, 도끼가 나무들을 쳐부수며  한켠으로 날아갈 때, 나는 가을의 마녀에게로 뛰고 있었다.


피하느라 기울어진 자세로는 내 주먹은 피할 수 없다. 나는 그대로 주먹을 길게 뻗어 가을의 마녀의 배를 후려쳤다.

쩌어엉!

타격에 충격파가 뒤따르고, 가을의 마녀가 언제 들어올렸는지 팔로 주먹을 받아낸다. 너덜거리는 팔을 늘어뜨리고, 가을의 마녀가 홍소를 띄었다.

물러서는 그녀를 보며, 내가 다가서서 자세를 잡았다.

아무리 술수를 쓰고 무기를 휘둘러봤자, 속도가 압도적이니 그 틈마다 몇대는 맞게 된다.

즉, 무기는 무용했다. 허나  공격력이면 주먹이어도 충분한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그러니 이게 최적의 수였다. 나는 승리를 굳히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화신 강림이발동됩니다.]

그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오!!!


 멀리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산양의 울음소리, 그 섬뜩하고도 숙연한 소리에, 가을의 마녀가 환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으며, 번개를 끌어모았다. 체내의 번개가 전신에 퍼져나가고, 아까 치고 빠질 때처럼 눈에서 번갯불을 튀어올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재빠르게 결론지었다.


저 번개를 통한 신체 가속은 분명히 강력하긴 하나, 한 번에 여러번 가속할 수는 없는 게 분명했다.

그로 인한 쿨타임이 있거나, 저장량에 한계가 있는 분명했다.


지금을 페이즈화 한다면 분명 3페이즈, 1페이즈 때는 항상 가속을 하거나 번개를 쓸 때마다 성실하게 재앙을 일으켜 번개를 끌어모았다.


나를 처음부터 속이려는 긴 노림수가 아니었다면 그건 분명 의미가 있는 행동일 것이었다.

만약 잔량도 없이 전력이 고갈된다면, 분명  이상 가속하지 못하는  분명했다. 충격을 응축하여 가속하는 내 사슬갑옷처럼.


그래서 사용한 화신 강림이었고, 가을의 마녀도 그것을 눈치챈  보였다. 전기를 전신에 두른 것은 그것을 위해서였다.

화신 강림의 범위는 넓다. 이걸 피하기 위해선 분명 번개를 전부 사용해 멀리 피하거나, 잔량이 거의 남지 않을만큼 가속해야 한다.


그리 된다면 내가 가만 놔두지 않는다. 번개를 다시 끌어모으기 전에 추격하여 끝을 낸다.

그렇다고 화신 강림을 피하지 않으면 치명상이다. 화염 면역이 없는 그녀는 버틸 수 없다.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주먹을 움켜쥐고 뛰어드니, 가을의 마녀는 갑작스럽게 웃었다.

웃으며, 나를 향해 뛰어들었다.

명확한 이지선다에, 그녀는 둘  선택하지 않았다.


그녀가 택한 건.

꽈르르르릉!

퍼억!

난타전이었다.

내 주먹이뻗어져 가을의 마녀의 어깨를두들기는 순간, 가을의 마녀가 번개를 두르며 쏘아져  파워아머를 두들긴다.


벼락을 두른 주먹은 아주 빠르게 내 턱을, 명치를, 옆구리를 두들긴 후에 내 가슴팍에 두 발을  꽂았다.


"크흡…!"


씨발, 존나 빠르네.

두번째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자세를 취하여휘두르는 순간, 가을의 마녀는 횡으로 짧게 가속하더니 주먹을 뻗었다. 옆구리에 연달아 박히는 다섯 발의 주먹. 절로 숨이 차오른다.


그제야 가을의 마녀가 노리는 게 눈에 보였다. 가을의 마녀는 화신이 떨어지기 전에 나를 해치울 심산이었다.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호쾌하다. 이런 싸움은 싫어하지 않는다.

그간 쌓이던 피로도, 도시의 명운도, 세계의 행방도 잊은 채 나는 웃었다.

끝까지 가보자고.

나는 난타전에 응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부우우욱!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쏘아진 내 주먹이 그녀의 귓가를 스치고, 귀가 찢어져 흩날린다. 가을의 마녀는 그에 굴하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 비어버린  상체에 주먹을 때려박는다.


쩌 저저적, 쩌적!

파워아머에 균열이 가해지고, 충격을 무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주먹을 내리찍는다.


쩌어엉!

그에 가을의 마녀의 어깨가 무너진다. 뼈가 부숴졌는지 피가 솟는다. 공격이 세 발로 줄어든다.

술수는 쓰지 않는다. 주먹으로 패죽인다.

자세가  공격은 그녀에게 빈틈을 줄 뿐이니, 발차기는 봉인이다.

하지만 가을의 마녀에겐 아닌지, 가을의 마녀가 곧장 다리를 휘둘러 내 다리를 후려친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 돌아가는 발목. 흔들리는 자세.


숨을 억누르며 주먹을 올려치자, 그녀의 턱에 닿는다.


쩍 소리가 나지만 타격감은 덜하다. 맞는 순간 고개를 젖힌 게 분명하다.


동시에 그녀의 다리가 높이 올려쳐진다. 내 턱 역시 가격당해 올라간다.


고개가 돌아가지만 내 시점은 멀쩡했다. 불굴의 정신 덕이었다. 그대로 올라간 대가리를 내리찍자, 가을의 마녀가 부딪히고서 이마에서 피를 흘린다.


가을의 마녀가 웃음을 터트리고, 나도 짙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그 오 오  오 오 오 오!


화신이 떨어졌다.

 어 엉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신이 떨어져 주변을 화염으로 휘감는다.  이상 시각은 물론이고 3인칭 시점도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제대로 기능하는 건 촉각 뿐이다. 나는 왼손을 뻗어 가을의 마녀를 쥐고, 주먹을 휘두른다.

뻑, 뻐어억, 뻑!


쩍 쩌저적, 쩌적!

내가 오른주먹으로 그녀를 두들기고, 가을의 마녀가 나를 하나 남은 팔로 두들긴다. 전격을 두른 주먹 탓에 몸이 흠칫 떨린다.

하지만 화염 속에서 멀쩡할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그녀는 영혼 발화가 없다.


그녀는 내 거력이 담긴주먹과 화염에, 움직임이 굼떠졌다. 그리하야 멈춘다. 가을의 마녀가 잠깐 멈춘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었다.

화염이걷히고,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가을의 마녀가 보였다. 팔 한짝은 찢어지고, 전신은 타들어가 유황이 아닌 탄 쓰레기 냄새만 나는 와중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내게 시선을 향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머리 위에서부터 주먹을 내리찍었다.

쩌어어어어엉!


거력이 담긴 주먹이 그녀의 얼굴에 꽂히고, 가을의 마녀의 몸이 그대로 밀려난다.

느리게 감속된 세상에서도 인지할  없는 속도로 움직이던 그녀답지 않게, 느긋하게 뒤로 유영한다.


쩌억!


그녀의 몸뚱이가 지면에 부딪혔다가 튕겨난다. 튕겨나는 그녀의 몸뚱이가 허공에서 체류한다.

떠오른 몸뚱이가 내 바로 앞에 위치한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발짝, 위력을 싣기엔 충분하다. 그대로 뛰어오른다. 뛰어오르며, 두다리를 앞으로 내지른다.

 거력을 담기엔 충분한 공격, 드롭킥.


그 드롭킥이 가을의 마녀의 복부에 꽂히고, 그 몸뚱이가 크게 휘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발밑에서 느껴지는 명확한 타격감, 밀려나는 충격, 부러지는 촉감.


그와 함께 가을의 마녀의 몸이 뒤로 쏘아진다.


뒤에 서있는 나무들이 거인이 잡아뽑는 듯 일제히 쓰러지면서, 몇십그루가 부러지는 소리가 어지럽게 울린다. 투두두, 하는 소리가 멀어지고, 나는 드롭킥을 날린 그대로 지면에 뻗었다.


헉헉대며 차오르는 숨을 고르면서 정면을 바라보니, 메시지가 큼직해졌다.

[신을 죽이고 게임을 클리어 하십시오. 4/5]

가을의 마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메세지는 내가 해냈음을 알리고 있었다.

후련하면서도, 어딘가 아쉬웠다.


온몸은 아리고, 아직도 벼락에 맞은 충격인지 손목이나 발목 등에서 전류가 저릿대는 느낌이 남아있지만.

나를 돕겠노라고 알랑대던 년을 쳐죽였다는 생각을 하니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해냈다는 달성감, 살아남았다는 성취감, 미묘한 죄책감에 덧대어 앞으로싸울 겨울의 폭군에 대한 잔잔한 불안감까지.


여러 감정이 가슴 한 켠을 억누르는 기분에, 괜히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토해냈다.

 있어라, 씨발년아.

그렇게 하, 하는 숨을 뱉어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메세지는 두 개였고, 하나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눈을 도로 감았다가 다시 떠도,  메세지는 떠올라 있었다.


 메세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권능 - 가을의 마녀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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