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0화 〉겨울의 폭군 (230/274)



〈 230화 〉겨울의 폭군

가을의 마녀를 이끌어 내 방으로 향하니, 미리 알렸던대로 겨울의 신부와 메이는 이미 방 안에 있었다.  둘은 무료하게 서로 무언가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들어오는 걸 보고서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메이는 평소처럼 활기차고 명랑하게 나를 반겼고, 겨울의 신부는 고아한 태도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두 명의 인사를 받은 후에야 나는 방 안으로 들어섰고, 가을의 마녀는 그 방을 물끄러미 살폈다.


지난 번에 떡칠 때도 와놓고 새삼스럽긴.

문득 방을 살피던 가을의 마녀가 흘러가는 듯이말했다.


"헌데 나는 여기로 왜 데려온 것이냐?"

타당한 의문이었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메이와 겨울의 신부를 한번씩 바라봤다. 이미 1회차 사실을 밝히겠다고고지받았던  둘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내게 시선을 보내거나 표정을 보내왔다.


"…우선, 내가 한  4신을 전부 죽인 적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불렀다."

"…으응?"

가을의 마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래, 분명 겨울의 폭군은 아직 죽지 않았지. 2회차인 지금은.


"4신을 전부 죽이고, 나는 어떤 이유인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지만, 세계를 돌려달라고 했다.  결과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갔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이더냐? 아가, 심신에 문제라도 있는 게냐?"

나라도 누가 이 세상이  번 되돌아간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믿기 이전에 이 새끼 대가리에 문제가 아닌가 할테니, 뭐라 하진 않았다.


"문제는 없지. 명확한 사실이다. 내가 어찌 그리 4신에 대해서  알고, 나이도 이것 밖에 안됐는데  싸우는지 궁금하지 않아?"


"…."


"나는 세계를 한  구했어. 50여년 정도 들여서 4신을 전부 죽였지. 내게 기억은 없지만… 창조신이 주는 계시가 알리길 내가 이 일을 겪는 게 두번째라고 하더라고."

팔을 쭉 벌려 내 자신을 과시하듯 그런 말을 하니, 가을의 마녀의 금안이 흥미로 타올랐다.


"그래, 그리 강한데에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어찌하여 나이는 약관을  넘었을 아가가 수십년은 싸워온 듯한 베테랑 전사처럼 싸우는지 궁금했으나, 그게 아니었구나. 안은 정말 베테랑 전사였던 거였어."

정말로 흥미로운지, 그녀는 찢어지는 듯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지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었다.

"헌데 그걸  내게 알려주는 것이냐? 내게 알려 볼 득은 없어보이는데."


고개를 가로젓자, 가을의 마녀의 눈썹이 들어올려졌다.

"네게 들어야 할 정보가 있어. 겨울의 폭군에 대해서 말이야. 근데 그걸 듣기 전에 이전 세계에서 겨울의 폭군이 어땠는지부터 들으려고."

가을의 마녀는 유심히 듣는가 싶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귀를 쫑긋했다.

"그걸 듣는다하여도 겨울을 죽여야 함은 변치 않지 않느냐? 들어 무엇을 할려는지 모르겠구나."


"그건 잘 알고 있는데, 이전 세계와 지금 세계의 차이점을 통해서 녀석이 왜 변질했고, 어떻게 강한 건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거든. 전력 분석을 해보자 이거지."


"그럴 필요가 꼭 있는 거야?"

이번에 묻는 이는 메이였다. 메이는 침대에 앉은 채로 다리를 흔들더니,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이 세계가 어떤 형국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표기되는대로 2회차라고 퉁치기엔 너무 멀리 왔거든. 그럴 선을 넘었지. 게다가…."


하고 슬쩍 눈을 돌리니, 가을의 마녀는 따분한듯 꼬리를 멈추었다.

"기준점이 있다면  공략에 가을의마녀가 가진 정보를 대조해서 수정할  있을테니까."


메이는 그제야 납득하는 듯 보였고, 하품을 뱉어내며 입가를 가리던 가을의 마녀는 다시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전 세계에서도 해치웠겠구나.  괴물을."

신마저도 괴물이라고 하는 건가. 얼마나 센 거야. 헛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이전 세계에서 4신은, 너를 포함한 전원은 내 손에 죽었어.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 뒤로 나는 세상을 되돌려서 돌아온 거고. 근데… 그 기억이 흐리거든.  이전 세계를 기억하고 있는 건 여기에 있는 내 부인, 겨울의 신부 뿐이야."

가을의 마녀는 그런 소개에 멍하니 눈을 돌리더니, 잠시간 멈춰섰다.


한참동안 노려보고 나서야 가을의 마녀가 읊조렸다.


"존재감이 흐리구나."

그런가? 이렇게 화사한 머리칼인데. 눈을 슬쩍 돌리니, 겨울의 신부는 평소에도 볼 수 없는 기묘하리만치 차가운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어떤 표정도 없는 듯 감정이 비어버린 얼굴에서는 미미한 기척만이 떠돌고 있었다.

"정말 생명체는 맞느냐?"


겨울의 신부는 대답하지 않고 생긋 웃었다. 그러자 표정이 다시 차올랐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호한 대답에가을의 마녀가 눈을 가늘게 떴고, 나는 그런 가을의 마녀를 보며 눈만 슬쩍 돌렸다.

확실히, 겨울의 신부는 신격을 비롯한 모든 신성을 가진 존재에서부터 인간, 괴물에 이르기까지 필요 이상으로 존재감이 옅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의 신부를 노리던 적들이 적은 것만 보더라도 그럴만 했지.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아냐."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내가 가을의 마녀에게 손짓하니, 그녀는 잘게 흔들던 꼬리를 멈추고서 침대에 걸어가 앉았다. 메이 옆에 앉자 앉은 키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여자의 큼직한 빨통만이 눈에 들어왔다.

와, 존나 커.

가을의마녀는 그런 내 시선을 느끼고서 제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아가, 이리와 앉거라."

"말이나 해."

"야박하구나."

툴툴대던 가을의 마녀는 머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다물고서,  턱을 검지로 문지르며 고민했다.

"겨울의 폭군은 아가가 쓰는 것처럼 거대한 검을 한 자루 갖고 있었지. 주된 공격은 그것을 통해 이루는 것으로 기억한단다. 허나 검에 국한되지 않고, 겨울의 폭군은 주먹, 다리, 발은 물론이고 박치기나  몸마저 무기로 쓰는데 능숙했단다."

흐음?


의구심이 들었으나 멈추진 않았고, 그녀는 방해를 받지 않아 곧장 말했다.

"그 외에도 얼음을 다루는 능력을 쓰는데, 칼날이 없는 칼자루를 여럿 갖고 있었단다. 즉석에서 만드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집어들면 거기서 얼음으로 된 칼날이 나오는데, 길이나 무게가 자유자재인 것 같았지. 그걸로 수십미터는 될 칼날을 뽑아내어 베는 걸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


수십미터라. 역시나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권능이었다.

"그리고… 육탄전이 발군이었으나 기술적인 면모는 보이지 않았지. 그저 막싸움이라고 칭할만 했거니 싶구나. 기술을 배우거나 무를 터득한 티는 나질 않았어. 그럼에도 꽤 능숙하고 썩 강력한 것이 마치 죽이고 부수는 것에 특화된 듯이…."

한참 말을 흘리던 가을의 마녀는 멈추더니, 귀를 한쪽 귀를 팔락거렸다. 그녀의 나른한 금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이해에 닿아있어서 보이는 눈빛이었다.


"마치 아가와도 같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주었다. 가을의 마녀는 생긋 웃었다. 설명할 것은 그게 전부라는 듯이.


그녀의 말을 토대로, 나는 기억을 쌓아올렸다.


그렇게 문제랄 건 없었다.

겨울의 폭군은 이름답게 싸우는 편으로 보였다. 폭군답게, 기술이나 익힌 무술은 없이 주먹구구처럼 대충 본 것, 당해본 방식, 가장효율적인 투로로 싸우는 것일테지.


보통은 먹히지 않을  방식은 산을 뽑을 정도의 괴력과 그 괴력에서 나오는 속도, 타고난 감각으로 인해 흉기가 되었을 것이었다.

상대하기 까다롭다 못해 강력한 것은 그런 이유처럼 보였다.


이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게임 속 겨울의 폭군은 그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1회차에서 어떨지가 관건이었다. 눈을 돌려서 겨울의 신부를 보고,  옆에 서있는 겨울의 신부에게 말을 건넸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다른  같네요. 당신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와는 많이 달라요."


역시나.


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더니 세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풀려지는. 내게는 없는 1회차의 기억은, 내가 그녀에게 들려주었을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다시 흘러나오는 것으로 이뤄져 있었다.


그녀가 묘사하는 겨울의 폭군의 싸움 방식은 전형적이었다. 전형적으로, 정석적이었다.


정석적이나 기교가 넘치고, 검을 다루는 기예는 몹시 뛰어나다. 나는 그 기술들이 기억에 있었다. 게임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었으며, 내가 폭군의 검을 쓰게 된 까닭이 그 모습이었으니.

게임에서 보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내가 눈을 깜빡였다.

그 절제된 모습과 화려하게 보이는 이펙트 사이로도 명확하게 보이는 기본기에 충실한 동작들.

겨울의 폭군은 멋있었다. 화려하고, 기사라고 할 수 있을만큼 화려했다.

결코 주먹구구에 야만적으로 싸우는 이가 아니었다. 인기도 상당하고 간지도 나서, 수 많은 사람들이 코스프레를 도전했을 정도로 멋지게 싸우는 보스였다.


하지만 2회차 겨울의 폭군은 내 기억은 물론이고 1회차와도 달랐다. 검술이 뛰어난 이의 싸움이 아닌, 그야말로 야만인에 가까운 싸움 방식이었다.

나는 한창 고민하다가 가을의 마녀에게 눈을 돌렸다. 그녀는 메이의 배에 제 꼬리를 둘러 담요처럼 하고는 메이에게 무릎베개를 내어주고 있었다.


"그 정보들… 직접 싸워보고 알아낸 거냐? 아니면 그렇게 들은 거냐?"


"직접 싸워봤었지. 정확히는 옆에서 함께 싸웠단다. 그때부터 속이기 위해 애쓰던 것이 아니라면, 아마 내가 증언한 그대로이지 않을까 한단다."

그럼 아마 사실이겠지. 족히 저 정보는 몇백 몇천년은 됐을텐데, 나타날지도 모르는 나라는 존재가 4신을 죽이러 올 거라고 예상하고 그때부터 속였다는 것은 이상하니.


해답은 보이지 않으나, 결론은  수 있었다.


"아마 네가 말했던 갑자기 변했다는 것은  전투법과 연관이 있으리라고 본다."

"…흐음, 맞겠지. 아가의 통찰이 맞을 것이니라."


가을의 마녀를 동의를 받고서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한창 가을의 마녀에게 쓰다듬을 받으며 표정이 녹아내리고 있던 메이가 문득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얘기하면서 생각하고  확신한 거지만, 겨울의 폭군은 나처럼 싸움 그 자체에 능통한 놈일 가능성이 높아. 거인의 힘을 갖고 있으니까 3인칭으로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군대를 혼자서 갈아엎을 수 있겠지. 군대를 갖고 들이받는 건 안 좋아."

준신들도 준신들의 군대로 나를 막는데 실패했으니, 겨울의 폭군에게도 똑같겠지.

"게다가 거인들도 대동하고 있으니까, 그 거인들이 도시를 박살내는  막으려면 군대는 도시에 머물러야겠지."


"그럼?"


"거인의 힘을 가진 신은 같은 힘을 가진 반신이 묶어둬야 한다는 거야. 도시 바깥, 멀리에 말이지."

메이의 표정이 걱정으로 젖어드는 게 보였다.


 메이가 더 걱정하기 전에 말했다.


"괜찮아, 생각해둔 것도 있고, 지지 않을 자신도 있으니까. 그리고… 놈이 왜 강한지 짐작이 가는  있어.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확신은 못하겠지만."

"으응…."

메이는 흐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금 울적해졌는지 무릎베개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을의 마녀가 유감을 담아서 보는 가운데 메이는 제 조막만한 몸을 일으켰다.

일으킨 몸으로 내게  걸음씩 거리를 좁히던 메이는  허리에 팔을 두르며 나를 껴안았다. 복부 조금 위에서 느껴지는 풍만한 감촉과 높은 체온이 기분 좋았다.


"나는 뭘 하면 돼?"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줘. 거인들은 겨울의 폭군이 만든 창조물이니 아마 불에 약할테고… 그러면 도시는 지키는데 가장  전력은 너야. 도시는 너한테 맡길게."


메이는 내 몸을 껴안은 채로 한창 볼을 부비더니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물기에 젖어 번들거리는  보이는 갈색 눈동자에는 걱정과 함께 잔잔한 경각심 따위가 깃들어 있었다.

"나 열심히 할게. 이번엔 현성이가 믿을 수 있도록."


언젠  믿었다는 것처럼 말하네.  번도 그런 적 없는데. 피식 웃으니 메이는 헤헤 웃더니 나를 껴안았다. 다시 풍만하고 따스한 가슴이  몸에 꾹 눌러지는 감촉이 들었다.


나는 그 등을 쓸면서 슬쩍 읊조렸다.

"믿을게."

메이는  말에, 연신 볼을 부비면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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