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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거짓(6)
댓글과 선작은 작가에게 많은 힘이됩니다.^^
"헤...헤...헤..."
늑대는 헐떡인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스케벤저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안심할 수 없다. 국도를 따라 민가로 내려온 늑대는 듬성듬성 있는 작은 민가를 바라본다.
'이 모습으로 다니는 건 눈에 너무 뛴다. 빨리 영적능력이 높은 인간을 찾아 빙의하는 편이 좋겠군.'
[빙의]
강령계 네크로맨서에게도 빙의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빙의라는 행위는 일종에 목숨을 걸고 하는 행위고 대부분의 강령계 녀석들은 평생에 한번 해볼까 말까한 행위다. 왜냐하면 일단 영체가 육체를 벋어나면 급속도로 생명력을 잃어간다. 그건 생명력 뿐만 아니라 영혼의 데미지, 영혼에 새겨진 마도서, 기억, 행운 등을 비롯한 다양한 것들이 손상된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소멸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 그리고 빙의에는 조건이 붙는다. 다른 육체에 빙의하기 위해선 상당한 영적능력을 보유한 특이체질이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본디 육체란 고유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고로 육체는 다른 영체에 대한 항마력 비슷한 방어기제가 내장되어 있어, 다른 영혼이 육체를 취하는 걸 차단한다. 일종에 필터 같은 기능이다. 하지만 특이체질의 영적능력이 높은 인간, 생명체는 이런 방어기제가 낮다. 그렇기 때문에 영체나 다른 이형의 세계를 더 잘 간섭할 수 있다. 그말은 즉 다른 영체의 의한 빙의도 취약하다.
'그런 특이체질의 인간 찾기 쉬울 것 같지 않는데...'
무당집이라도 찾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는 아벤트, 일단 생각을 접는다. 스케벤저에게 도망치는게 최우선이다. 그다음은 그때 생각하는게 좋을 것이다. 숨을 고른 아벤트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쉬다 뛰다 반복하길 2시간째 어느 덧 대형건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낡은 하천 다리를 건너, 철도를 건넜다. 이윽고 들어선 주택지. 하지만 인간이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벤트는 조급해졌다. 밤이라서 도심지의 인간에게 어느정도 눈에 띠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편이 었지만 낮은 다르다. 이 모습으로 이동하기엔 한계가 있다.
'근시일적인 목적은 어느정도 마법적 소질이 있는 인간에게 빙의 하는 것이자 최종 목적은 쓸만한 마법사의 육체를 얻는 것이지만 영적 능력이 있는 인간 찾기부터 쉽지 않군.'
늑대는 주택지를 벋어난다. 조금 더 사람이 많은 도심지를 향해 걸어간다.
시계탑은 어느덧 새벽4시를 가리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듬성듬성 돌아다니고 있다. 개중엔 교회 병력도 보인다.
'교회친구들이 이렇게 안심될 줄이야.'
어두운 골목길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아벤트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일단 스케벤저로부턴 안전하다. 교회병력이 순회하고 있는 도심지에 스케벤저가 나타난다면 그대로 소멸될 건 자명한 일.
툭 툭 툭
지면에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
비가 오기 시작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아벤트는 잽싸게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야옹..."
반짝이는 안광의 친구들. 상당히 경계하며 대형 늑대 한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 비만 피하고 갈테니까.'
아벤트는 고양이 무리에게서 고개를 돌린다.
'이제 어떡하지.'
일단 문제라고 한다면 빙의체를 찾는 일이다. 문제는 영적능력이 높은 인간을 어떻게 발견해 낼 것이냐는 건데... 무당집이라도 습격해서 빙의할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퇴치당할 위험이 있어 그만뒀다. 지금 마법도 사용 못하는 떠돌이 영혼이다. 괜히 그런 인간들을 건드렸다가 뼈도 못추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빗방울은 거세게 떨어지고 있다.
더 이상 도로에 사람들을 볼 수 없다. 처량하게 낡은 골목 구석에 앉은 늑대 한마리는 처마 끝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하... 이게 무슨 꼴이냐 아벤트...'
아벤트는 몸을 움크리며 앉았다.
처량한 자신의 모습과 우울하기 짝이 없는 빗줄기. 멍하게 빗소리를 들으며 도로를 바라본다.
샤아아아아아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소리. 마치 힘든 하루를 위로 하듯 속삭인다.
'아... 자면 안되는데...'
아벤트의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 흐릿한 시선의 끝.
누군가가 보인다.
우산을 쓰지도, 않은 한 여성.
흔들흔들
비 속에 몸을 맡긴 듯, 반대편 보도에서 걸어오고 있다.
'이번엔 미친년이냐...'
툭 툭
선명한 피의 냄새. 비에 섞여 쓸려 내려갔지만 민감한 늑대의 후각은 감지할 수 있었다.
'뭐야...'
어디선가 익숙한 여성의 모습이다. 늑대는 굵은 빗줄기 속에 가려진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집중한다. 그때
"이이이이이이이"
'끈질긴 녀석!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거야?'
검은 어둠에 녹아든 거대한 악령. 검은 안광이 늑대를 노려보고 있다.
"미치겠군!"
당장 뛰쳐나가듯 일어선 늑대. 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주위엔 폭우의 탓인지 교회인간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벤트는 폭우를 뚫고 반대편 보도를 향해 전력질주한다.
그 순간. 환한 빛줄기가 아벤트를 비춘다.
'어?'
퍽!
비를 뚫고 승용차 한대가 둔탁한 물체와 충돌해 빗길에 미끄러진다.
쾅!
가로수 나무에 부딪친 승용차. 그리고 튕겨져 지면에 구르고 있는 늑대의 모습이 보인다.
붉은 핏물이 하수구를 통해 흘러들어간다.
'운...도... 지지...리 없어....'
아벤트의 영혼이 늑대와 분리된다. 상당한 충격에 의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벤트는 단지 앞을 향해 기어간다.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등 뒤에 스케벤저는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려 놔야 한다.
"이이이이이이"
악령의 속삭임은 선명하게 아벤트에게 울린다. 아벤트는 건물 벽에 몸을 기대었다. 도망치는 건 의미 없다는 걸, 아벤트는 알고 있었다. 녀석의 추격속도를 벋어 날 수 없다. 기어봤자, 지렁이와 새의 차이다.
"정말 집요하군 두손 두발 다들었다고... 자 맘대로 해! 만찬회라도 열 생각 아니야?"
아벤트는 실실 웃으며 스케벤저를 향해 말했다.
검은 안광은 아벤트를 보고 있다. 이미 입을 벌리고 있다. 아벤트는 눈을 감았다.
너무 허무한 최후였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후회라면 자신의 정체를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포기하는 겁니까?"
"포기라니... 착각하지마. 각오라고 하는 거야. 생명은 언젠가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에 대해 각오가 필요하거든."
"각오..."
"그래 아무리 피해도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거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진리이자 시작과 끝. 나라는 거짓된 존재도 그 고리를 피할 수는 없어."
아벤트는 태연히 옆에 서 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긴 생머리가 비에 젖어 내려온다.
흩어진 복장, 찢겨진 원피스 치마자락은 무슨 전투라도 했는 듯 난잡했다.
"다시는 못볼 줄 알았는데. 비기너. 추한 최후를 내게 보여주게 될 줄이야."
"...."
서예린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얼굴로 아벤트를 내려다본다.
"그 강렬한 피 냄새. 무슨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그보다 살고 싶으면 도망치는 게 좋아. 스케벤저에게 눈도장 찍히기 전에 말이야."
스케벤저는 움직임을 멈추고 소녀를 바라본다.
검은 안광은 새로운 생명체에 반응한다.
"아벤트라고 했나요? 당신은 진실을 믿나요?"
"흐흐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너 상당히 위기감을 못느끼는 모양인데, 그딴 질문하지말고 살고 싶으면 도망쳐라.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교회로 달리는 거야."
"당신은 진실을 믿나요?"
서예린은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질문할 뿐이다. 마치 무기질적인 기계처럼
"흐흐흐 뭐 좋아. 길동무라도 해준다면 말리지 않겠어. 진실? 그딴거 개나 줘버려. 세상에 존재하는 건 자신이 믿고 싶은 진실 뿐. 그건 진실이라 할 수 없지 전부 거짓이다! 허영만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진실을 찾는 건. 자기만족으로 찾은 답이다. 여기 존재하는 건 전부 위선자들 뿐이야. 진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걸. 나를 보라고 내가 찾은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나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해왔어. 그리고 결국 나의 믿음을 배반한 결과 이런 최후를 맡는 거다. 남의 진실에 휘둘리지마라. 자신의 진실인 양 착각하지 마라. 언젠간 후회하게 될테니까."
아벤트는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아벤트에게 서예린은 재차 질문한다.
"그럼...만약 당신이 가짜라면 진짜의 대용품이라면 당신이라면 그 진실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흐흐흐 대용품? 그래. 부정해주지. 그건 나의 진실이 아니다. 남이 생각하는 진실이겠지. 난 여기 존재하고 있고 난 진짜다. 누구의 대용품도 아닌 나 자신이란 말이다."
"당신 뭔가 이상합니다. 그건 당신만의 궤변 아닙니까."
서예린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흥... 궤변이 어때서? 세상이란 혼자 살아가는 것. 누구가 지꺼리든 결국 자기가 사는 세상이라는 거다. 고로 난 누구의 대용품으로 살고 싶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손해라는 거다."
"후훗 당신 재밌는 사람이군요."
기계처럼 멍하게 서 있던 서예린이 웃는다. 빗줄기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적어도 재밌는 마법사라고 해둬. 아니 지적인 마법사로 말이야."
스케벤저는 두마리가 상공을 배회한다.
이미 아침은 오고 있다.
"자. 질문 타임 끝났는가? 이제 녀석들도 인내심의 한계가 오기 시작한 모양이고. 나도 더이상 버티긴 힘들단 말이야. 잡담은 끝이다. 길동무로 삼으려 했지만 역시 혼자 죽는 편이 편하겠어. 꺼져라."
검게 변하고 있는 아벤트는 담담히 서예린에게 말한다.
"저와 계약 할래요?"
"계약?"
아벤트는 뜬금 없는 단어에 목소리를 조금 오렸다.
"좀 더 당신을 알고 싶어요. 그러면 나에 대한 답을 찾을 것 같아요."
"흥... 멍청한 소리 작작해라. 사자(死者) 한테 붙어 있지말고 너 갈 길가라 비기너."
"당신이 창피해서 폼 잡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죽는다는 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죠. 당신은 해야 될 일이 있는게 아닙니까?"
서예린 담담히 그렇게 말했다.
"흐흐흐 꼬맹이가... 상당히 마법사 다워졌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벤트는 다시 한번 소녀를 바라본다.
온실 안의 화초는 그곳에 더 이상 없었다.
"그래 좋아. 여기서 날 구할 수 있다면 한번 생각해보지. 비기너."
"그럼 계약 성립이라는 걸로."
서예린은 배회하고 있는 스케벤저를 바라본다.
"이이이이이이이"
그들은 낮게 울며 입맛을 다신다.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서예린의 영혼의 맛을 보고 싶은 거다. 스케벤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예린에게 달려든다.
서예린은 그 순간 그녀를 불러냈다.
[미지의 마법사 하프켄토르빈(hacantorybin)]
순간 공간의 장막을 일그러뜨리며 나온 존재. 마치 기계화 된 여성의 신체, 날카로운 두형의 헬멧과 같이 생긴 머리, 그 여인 반쯤 공중에 떠있다. 매혹적인 지팡이를 겨누며 적을 바라본다.
"저건..."
아벤트는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지금까지 스케벤저가 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서예린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형의 소환체. 스케벤저도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이이이이"
빠르게 서예린의 주위를 배회하던 스케벤저가 낮게 운다. 그 전투신호와 동시에 그들은 습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