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9)

게시글: 불구경이다(오예!!!!)

작성자: 마초

서버: 라히브라 / 신마제국

내용: 올~ 메인!!!! 전 사실 메인 될 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감격 따위 없다) 요새 저희섭이 참 핫하죠? ^^ 부러우신 분들, 넘어오십쇼! 제가 잘 놀아드리겠음ㅋㅋㅋㅋㅋ 캬, 일단 본편부터 가시죠. 수정 전 원본갑니다ㅋㅋ

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루스가 한 건 터트렸네요. 아, 요새 잠잠하다 심심했는지 슬슬 다시 드릉드릉 시작이네요. 아시다시피 저는 루스와 같은 길드입니다. 절.대. 저희 길마님을 욕.하.는.게. 아니라는거ㅋㅋㅋㅋㅋㅋ

루스가 신마족한테 선전포고 하신 거 들으신 분!!!! 뭐냐고요? 궁금하다고요? 그럼 알려드려야죠.

신마족 여러분~~~ 앞으로 신성제국 유저인 [[[[ 이현 ]]]] 님 건들지 마랍니다. 이분 인던에서 썰면 루스가 베히아, 학살의 대전장에서 같은 편이고 뭐고 싹 죽인답니다!! 성전 참여도 안 한답니다(이게 가장 중요!!!!!!!!)

‘이현’← 신마족님들 이 사람 건들지 맙시다요. 루스가 지가 죽인답니다ㅋㅋㅋ

광장에 있던 님들 다 포복절도하고 장난 아니었는데, 그 와중에 저희 길드만 ㅎㄷㄷ 떨고있었죠;;;; 미1친1놈이 왜 그러는지 1도 몰라서요.

그리고 또 하나!!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어, 대충 상황설명 들어갑니다! 아니 상황설명 필요 없습니다!!!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앞으로 신마족 유저인 [[ 구우몬 ]] 보면 신성제국 분들은 가차 없이 썰어주십시오. 썰어서 저희 길드 방명록(타협은 없다)에 인증샷 올리시면 ‘일주일’ 간은 루스가 올린 분 필드에서 봐도 안 썰고 모른 척 지나가 준답니다! 물론 먼저 공격하면 ㄴㄴ

무슨 일 있었는지는 저도 모름. 개모름. 진짜 모름. 아는 게 있다면 루스가 개빡쳤다는 것...

어쨌든, 님들아... 신성족 님들아. 꼭 부탁드릴게요. 인증샷 많이 올려주세요. 구우몬 이식키 님들 땅에서 살고 있대요. 많이 썰리신 분, 이참에 포스 결성해서 한 번 가시죠?ㅋㅋㅋ

그리고 신마족 님들아... 루스 알잖아요. 우리 이놈 없으면 성전에서 못이기는 거 알잖아요. 그냥 인던에서 ‘이현’ ←이님 보면 그냥 지나칩시다, 캬!

불구경 오예!! 만세!! 자, 그럼 미친놈 장단 맞춰주실 분 많은 참여 바랍니다!

이상, ‘타협은 없다’ 길드의 ‘마초’였습니다.

댓글수 [7257]

베스트 댓글

-몽쉐르르/신마제국: 성전은 중요하다.

-분노의요정/신마제국: 나만 구우몬이 아구몬으로 보이냐?

-용용이/신성제국: 형 구우몬 죽이고 올 테니 베플 만들어놔라

-요요왔엉/신성제국: 인증샷 올렸습니다. 확인부탁드려요^^

일반댓글

-건강물엿/신마제국: 이 미친 길드에 도전장을 내민 놈이 있구나...

└ 이 길드는 걍 피하는게 답

└ 도전장까지야;;; 뭐 그리 대단하다고

└ 님. 내일부터 루스가 쫓아다닌답니다.

-에네르기/신성제국: 요새 루스가 할 짓이 없나보다

└ 겜 접을 때 되지 않았나.

└ 너보다 없겠냐?ㅋㅋㅋ

└ 루스 추종자 납셨네

-헤미온느/신마제국: 니들이나 잘해라ㅡㅡ 어디서 성전가지고 협박이야.

└ 그럼 니가 대표로 이현 좀 죽이고 와라.

└ ㅋㅋㅋㅋㅋㅋ 이번 성전은 포기해야 하는가.

└ 성전 참여 안하는 새1끼들은 아닥하고 있어라ㅡㅡ

└ 니네는 왜 여기서 싸우고 ㅈ1랄들이냐

-인디안밥/신성제국: 내가 봤을 때, 이건 떼쟁을 위한 빅픽쳐다ㅋㅋㅋㅋ 루스 머리 개좋넼ㅋㅋ

└ 아주 코난 납셨네ㅋㅋㅋㅋ

-맛짱/신성제국: 이현은 뭥미? 애 뭐 있나?;;; 왜이리 언급이 많아.

-시루떡/신마제국: 성전 따위... (또르륵) ㅅㅂ, 이현아 내가 넌 꼭 살린다. 형만 믿어라

└ ㅋㅋㅋㅋㅋ 저랑 팟하죠 전 이현 친위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아주 성전에 영혼들 파셨네ㅋㅋㅋㅋㅋ

-악마의향기/신마제국: ㅋㅋㅋㅋㅋ 심심했는데, 간만에 재밌겄네ㅋㅋㅋ

└ 일단 이현이좀 살리고 보자

└ 네 걱정이나 해라ㅋㅋㅋ 형들 지금 어쌔신 모집중이다

└ 턱주가리 쳐 맞고 싶냐?ㅋㅋㅋㅋ

└ 우린 탱커 모집중이다, ㅅㅂ 다 덤벼라. 포획굴리다 골로 보내주마

└ 이현이좀 먼저 살리자고, 시1벌넘들아

-원쿨/신성제국: 그래서 이현이 뭔데 다들 이ㅈ1랄이냐?

└ 루스 뒤통수 치고 달아난 힐러랍디다

└ ㅋㅋㅋㅋㅋㅋ이현 발컨인데?

└ 개유명하져. 나름 상위 1%임. 신발컨으로...

-아기천사/신성제국: 오골계들아ㅋㅋㅋ 이현 좀 꼭 죽여라ㅋㅋㅋ 이번 성전 우리가 좀 이겨보자ㅋㅋㅋㅋㅋㅋ

└ 님 때문에 생각이 바뀜. 이현 죽이는 신마족 새1끼들 있으면 내가 죽인다 ㅅㅂ

└ ㅡㅡ 성전때 개발리는 것들이 꼭 이럴 때 나대더라

└ 캬 이님, 우리 신마족이 단합 잘 되는 거 모르나보네. 이번 성전도 신마족이 쓸겠음.

└ 고로 제발 이현 죽이자 마라 신마족놈들아 ㅠㅠㅠㅠㅠㅠㅠ 성전 가즈아!!!!!!

└ 성전 가즈아~~~~~!!

└ 까즈아!!!!!!

[댓글 더 보기]

***

“뭐…?!”

침대 위에서 빌빌거리던 이현이 몸을 벌떡 일으킨 건, 김성훈의 전화를 받고 믿지 못할 말을 전해 들었을 때였다. 안 그래도 어제 점심을 먹고 체한 탓에 그대로 집으로 와 밤새 골골거리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말이 오갔는지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아, 새끼…. 역시 모르고 있었네.>

“…….”

<야, 정신 차려. 야, 채이현!>

“…내 이름이… 그러니까…. 다시 메인에 올랐다고?”

<올랐다 뿐이냐? 너 루스한테 완전 찍혔어. 뭔 수작을 부리고 다녔기에 그 새끼가 너 찾는다고 우리 땅을 다 헤집고 다니냐?>

“…나 접을까?”

<퍽이나.>

김성훈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마의 LV.49 시절, 그때에도 신마족한테 뒤치기를 당해 개고생을 했던 이현은 때려치운답시고 에르덴에 접속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딱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째에 미쳐버린 이현은 결국 에르덴에 접속했고, 김성훈은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찼다. 쳐다보는 시선에는 한심함이 가득했었다.

그 일을 다시 반복할 순 없었다.

“아, 왜! 루스 얘는 대체 뭐 때문에 자꾸 치근덕거리는데!”

<내가 알간?>

“야, 네가 그놈 좀 없애주면 안 돼? 너 그때 보니까 컨 엄청….”

<헛소리 그만하고 나와라. 우리 둘이 덤벼도 못 이긴다.>

결국 이현은 전화를 끊고 울상이 된 채 씻어야 했다. 씻고 나와 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대충 편한 추리닝을 입고 집을 나선 이현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성훈을 보고 후다닥 달려가 그의 넓은 등을 퍽 후려쳤다.

“스트라이크!”

“참나, 얼굴 봐라. 귀신이냐?”

“네가 4시까지 토하다가 자봐라. 넌 뭐 다를 줄 아냐?”

“그러게 작작 좀 처먹지, 이건 매일 말해도 들어 처먹질 않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김성훈은 이현에게 약봉지를 내밀었다. 이현이 고맙다며 다시 한번 등을 후려치자 김성훈은 밥 먹자며 고개를 까딱였다.

“죽이나 먹자.”

“죽… 죽 싫은데….”

“아픈 새끼가 말이 많아. 아니면 그냥 게임하러 가든가.”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던 이현은 결국 김성훈을 따라 죽 집으로 향했다. 속이 쓰려 먹기 싫었지만, 게임을 하려면 일단 든든히 먹어야 했다.

싫다고 거부했던 것과 달리 이현은 제 것도 모자라 김성훈의 것까지 빼앗아 먹고서야 만족한 듯 부른 배를 붙잡고 피시방으로 왔다. 그런 이현을 김성훈은 기막히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 저 돼지새끼는 저렇게 먹고도 왜 살이 안 찌나 모르겠네.”

“나 낳아준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라.”

씩 웃으며 대답한 이현은 지정석에 앉자마자 에르덴 홈페이지를 열고 메인에 뜬 게시글을 클릭해 들어갔다. 김성훈의 말대로 그 안에는 이현이 언급되어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말이다.

“나 대체 어느 쪽 편이냐….”

이현이 죽길 바라는 신성족과 이현이 살길 바라는 신마족이 댓글에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현은 캐삭을 하고 다른 서버로 가야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잠겨들었다.

“안 돼…. 내가 79까지 어떻게 키웠는데!”

그러나 곧 마음을 다스리고 심호흡을 하며 게임에 접속했다. 제발 오늘은 무사히, 그리고 평탄히 흘러가길.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이현의 모습이 무슨 결전을 앞둔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던 김성훈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쏟아지는 길드 인사말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예감했다.

[길드/펑펑이: 엇! 확실이 들어왔다! ㅎㅇㅎㅇ]

[길드/블랙마: 확실이 하이 ㅋㅋㅋ]

[길드/오늘의주인공: 하이! 빨리도 들어오네.]

[길드/네스카피: 확실아 ㅠㅠㅠㅠ 어서와]

[길드/확실한놈: 하이요]

평소보다 더 격한 반응에 김성훈의 미간이 설핏 찡그려졌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길드/확실한놈: 근데... 저 기다렸어요? 왜요?]

[길드/블랙마: 확실아, 게시글 봤냐?]

[길드/오늘의주인공: 그 이현! 그 사람 니가 맨날 쩔해주는 사람이잖아! 친구랬나?]

[길드/확실한놈: 네, 봤어요. 근데요?]

[길드/블랙마: 이현 팟초4해라. 지금 포스결성하고 있다ㅋㅋㅋ]

[길드/확실한놈: 포스요? 왜요?]

[길드/펑펑이: 왜긴. 지금 오골계들 잡는다고 다들 눈이 뒤집혀 가지고ㅋㅋㅋ 아 겁나 재밌네ㅋ 일단 그 사람 팟초ㄱㄱ]

[길드/네스카피: 이현이랑 같이 다니면 루스 잡을 수 있다고 다들 난리라서;; 신마족 쪽에서도 이현 찾는다고 다들 여기 넘어와 있어. 네가 잘 말해서 우리팟으로 모셔와라.]

[길드/오늘의주인공: ㄱㄱ 딴 놈들이 채가기 전에 어서!]

[길드/확실한놈: 잠깐만요. 귓 해볼게요]

김성훈의 시선이 곧장 이현에게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온 파티초대와 귓속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야, 그거 다 거절하고 귓속말 전체 거부 돌려놔. 그리고 당분간은 같이 못 다니겠다. 지금 여기저기서 너 미끼로 쓰려고 환장했네.”

“뭐야, 뭐야. 다들 왜 이래.”

이현의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화면 위를 떠돌았다. 채팅창은 이미 수많은 귓속말과 대화로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아, 일단 나도 길드에 너랑 연락 안 된다고 할 거니까, 그냥 여기저기 도망 다니면서 사람들이나 따돌려.”

“루스 이 미친놈이!”

던전 간다고 하면 해주지도 않더니, 필요하니까 아주 벌떼처럼 달려든다. 들어오는 파티요청을 일일이 거부하던 이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모든 메신저를 전체차단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누가 잡을세라 그대로 냅다 사냥터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왜 다 따라오는데…! 저리가!”

평야를 내달리는 이현의 뒤로 대규모 포스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그리고 상상 불가한 상황이었다. 따라붙는 유저들은 같이 가자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유저들 사이에는 맥초딩도 끼어 있었다.

“아, 저 초딩새끼!”

이현의 꼬리를 붙잡고 따라오는 수는 얼핏 봐도 수백 명은 되어 보였다. 신성족 성전 참가 통계 인원이 1천 명인 걸 감안하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채이현 대단하네. 운영자가 상이라도 줘야겠는데?”

옆에서 시시덕거리는 김성훈을 한 번 노려본 이현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나무가 많아 숨기 좋은 ‘니르아의 숲’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현을 따르던 유저들도 이에 따라 전부 방향을 틀어 쫓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얼마나 달렸을까, 손끝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키보드를 꽉 누르고 있던 이현의 시야에 드디어 녹색의 푸른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꺼멓게 죽어가던 이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그 해사한 얼굴은 숲의 입구로 뛰어든 순간 다시 어두워졌다.

전투 활성화로 두 눈이 시뻘게진 오골계들이 이현의 등장에 맞춰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지도를 시뻘겋게 물들일 정도로 바글바글했다.

무장을 한 채 숨어 있던 신마족 포스였다. 포스끼리 연맹을 맺고 온 듯했다.

“역시 저쪽도 포스 결성했네.”

할 말을 잃은 이현과 다르게 김성훈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투였다. 쩍 굳은 이현의 캐릭 뒤로는 신성족 포스가 거리를 벌리고 멈춰서 있었다. 간을 잰다고 거리를 벌리고 있는 것이었다. 주춤주춤 움직이는 게 아주 좀이 쑤셔 죽겠다는 모습이었다.

“저기, 루스도 있네.”

김성훈의 말에 이현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곧장 김성훈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의 말대로 포스의 제일 앞에 루스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이현이 홀린 듯 캐릭을 슬쩍 움직이자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양 종족 포스가 이현을 사이에 두고 도핑과 스킬을 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한테 다들 왜 이러는데. 이현은 울상이 된 채 머리를 싸맸다. 무기를 꺼내들고 도핑을 하는 신마족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저를 밟아 죽일 것만 같았다. 도망갈까 하다가 그럼 더 죽일 것 같아 이현은 재빨리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루스에게 말이다.

[이현: 루스님 저 조 ㅁ 살려]

[이현: ㅅ ᅟᅡᆯ려줏.]

[이현: 살렺ㅜ세여]

[이현: ㅠㅠ]

다급함이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이현의 채팅을 본 김성훈은 이번엔 아예 배를 잡고 웃었다. 김성훈이 웃거나 말거나 이현은 오직 구조요청만 남발했다. 팔짱을 끼고 있던 루스가 허리춤에 있는 검을 슥 뽑아든 것도 그때였다. 붉고 푸른 불꽃이 교차해 일렁이는 검이었다.

[신마제국/루스: 살려달라는데 뭐...]

루스가 포스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왔다. 그 하나에 여기저기서 캐릭들이 움칫거렸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김성훈도 이현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도핑과 스킬명으로 도배되는 창에 루스의 말이 떠오른 건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신마제국/루스: 그래야죠.]

정말 순식간이었다. 루스의 말이 어떤 시발점이 된 건지, 약속이라도 한 듯 양 진영이 서로를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해일이 덮쳐오는 것 같은 모습에 이현은 저도 모르게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캐릭이 전쟁 한복판에 버려진 순간, 루스가 이현의 캐릭을 포획했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사용한 포획에 구속 상태가 되었습니다.

옆에서는 눈빛부터가 달라진 김성훈이 무서운 기세로 신마족들을 썰어버리고 있었다. 그게 말을 걸기 무서울 정도라 이현은 루스한테 질질 끌려가는 제 캐릭을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었다. 에효, 안 죽인다는데 그냥 얌전히 있자.

“컨 엄청 좋네….”

이현의 캐릭을 질질 끌고 움직이면서도 루스는 달려드는 신성족을 쓸어내고 있었다. 대상전환 Tab 키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가능한 컨이었다. 이현을 잡고 있다가도 그는 적이 달려들면 금세 Tab을 눌러 대상을 전환하고 스킬을 시전 했는데, 한 놈이 아니라 여러 명한테 돌아가면서 넉백딜을 넣어 상태 이상 디버프를 걸고 재빨리 빠져나갔다. 오래 상대하지 않는 걸 보아 이현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는 게 목적인 듯했다.

들려오는 건 쥐새끼 같은, 그리고 신들린 회피 실력이었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방패 방어술을 사용해 10초간 방어력이 기존 비율 대비 150% 향상되고, 넉백, 밀림, 스턴, 구속으로부터 저항강화상태가 되었습니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불멸의 주갑을 사용해 신성제국의 ‘자이언트’로부터 받은 데미지를 무력화 하였습니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신성제국의 ‘샤샤샤’가 휘두른 공격을 회피하였습니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주신의 갑주 효과로 마법 데미지를 저항하였습니다.

“루스, 저놈 다른 직업군 스킬 제한 거리도 전부 외웠나 본데. 거리 늘려서 스킬피하는 거 봐라, 장난 아니네.”

홀린 듯 루스를 바라보고 있던 이현의 옆으로 김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의 시선이 슬쩍 김성훈의 화면으로 옮겨졌다. 화면이 흑백으로 물들어 있었다.

“죽었냐?”

“새끼들이 떼로 덤벼들잖아.”

“내 처지에 비하면 뭐….”

“야, 그냥 포기해라. 너 내가 봤을 때, 렙 올리기 글렀어.”

이현은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제 불쌍한 캐릭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무슨 대역죄인 같았다.

“저런 무빙이 가능하다고? 저기서 평캔5을 해도 스턴기가 들어가네. 뭐야, 방금. 무기 스왑한거야? 미친, 직업별로 칠 때마다 스왑하고 있었잖아. 넉백확률 몇인데 죄다 상태 이상이야.”

“어….”

“하, 저 새끼 뭐야? 무슨 공식 만들었어? 저걸 어떻게 바로바로 적용하는데?”

“…그렇게 대단한 거야?”

시종일관 감탄을 터뜨리는 김성훈의 모습에 궁금해진 이현이 뒤늦게야 스리슬쩍 물었다. 잘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는 미처 몰랐다. 이현의 질문에 김성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내지었다.

“…채이현. 넌 그냥 저놈 옆에 있는 게 사는 거야.”

“저놈 저거 나 죽이려고 끌고 가는 거거든?!”

“아, 새끼. 의심만 많아가지고.”

씩씩거리는 이현의 이마를 툭 친 김성훈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힐러들이 넣어준 부활 제안을 수락하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 루스가 한 것처럼 이것저것 무빙을 시도하는데, 영 엉성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얼마 있지 않아 또다시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누구 걱정이냐, 에휴….”

왜 하필 죄인처럼 끌고 가는데. 나도 걸어서 갈 수 있다고. 소리 없는 한탄을 내뱉으며 이현은 루스가 숲을 벗어나 ‘꼬마천재’와 ‘베리베리’, 그리고 ‘마초’와 만날 때까지 턱을 괸 채 음료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신마제국/베리베리: 오, 힐러님이다. 루스 철컹철컹이라 끌려와요?!]

[신마제국/꼬마천재: 헐, 진짜 그 힐러님이네.]

[신마제국/마초: 캬! 납치봐라, 상남자네]

[신마제국/루스: 위치부터]

[신마제국/마초: 하힐산 폭포로 ㄱㄱ]

[신마제국/베리베리: ㄱㄱ 우리 길드 좋아요, 힐러님]

[신마제국/꼬마천재: ㅋㅋㅋㅋ좋지. 철컹철컹 하는 새끼만 없으면 ㅅㅂ]

들어갈 수도 없는 길드 드립을 왜 자꾸 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 사이 무언가가 패치 되어 가입이 가능하게 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현은 눈을 깜박이다 조심히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이현: 종족이 다른데 길드 가입이 돼요??]

채팅창 위로 떠오른 글을 읽은 것인지 이현을 질질 끌고 가던 루스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시끄럽던 이들도 입을 딱 다물고 이현의 캐릭을 바라보았다. 괜히 물어봤나, 하고 이현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루스가 이현 쪽으로 바짝 다가와 섰다.

[신마제국/루스: 가입하고 싶어요?]

[이현: 진짜 가입돼요? 언제부터 된 거지?;;]

[신마제국/루스: 가입하고 싶으면 해주고]

[이현: 아니요... 전 혼자 솔플하고 채집하는 게 더 좋아요.]

[신마제국/루스: 뒤치기나 당하면서?]

이현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지가 가장 많이 썰고 다니는 주제에 말은 잘한다.

[신마제국/베리베리: 허걱! 가입하고 싶다고?! 힐러님!!!! 당장 와요 내가 꼬마새1끼 죽이고 자리 하나 뽑아줄게여]

[신마제국/마초: ㅋㅋㅋㅋㅋ믿었네, 믿었어]

[신마제국/꼬마천재: 캐삭 후 종족이전 ㄱㄱ 제가 목숨 걸고 베리놈 죽이고 좋은 자리 마련해주겠음]

질질 끌려가는 이현의 캐릭 뒤로 세 명의 신마족이 다닥다닥 따라붙었다. 뭐가 그리 신나고 좋은지 그들은 하힐산 폭포에 다다르기까지 조잘조잘 아주 접시가 깨질 정도로 떠들어댔다. 그때까지 루스는 말 한마디 않았다.

그리고 거대한 폭포수 앞에 도착해서야 이제껏 이현을 구속하고 있던 포획이 탁 풀렸다. 눈을 깜빡이던 이현은 디버프가 해제되자마자 재빨리 키보드로 손을 뻗었다. 드디어 캐릭이 움직여졌다.

[신마제국/루스: 포탈 보이죠. 먼저 타요.]

[이현: 저요? 저 왜요?]

[신마제국/루스: 신마족 땅으로 데려가려고요.]

“뭔 소리야…! 거길 내가 왜 가는데!”

힐러를 야무지게 키운 LV.79 인생. 이제까지 이현이 신마족 땅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뿐 아니었다. 공적을 최대로 획득할 수 있는 쟁 활발지역인 베히아와 학살의 대전장 근처는 아예 얼씬도 않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폭풍 렙업의 지름길인 메인 공적퀘를 하지 않고 버틸 정도랄까. 덕분에 김성훈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사는 중이었다.

[이현: 저 거기가면 더 죽을 거 같은데... 물론 렙업 안 해도 되긴 하는데 그래도 죽으면 아깝고... 그러면 자꾸 현타오고... 현타오면 렙업하기 싫을 거고. 아, 물론 렙업 안 해도 돼요. 진짜요]

[신마제국/루스: 그냥 가는 게 좋을 텐데]

[이현: 저 그냥 안가면 안돼요? 네?]

[신마제국/루스: 포획 쿨타임이... 아직 남았네.]

[이현: 진짜요? 아직 남았어요?]

[신마제국/루스: 네, 뭐]

루스의 대답을 보자마자 이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숨도 안 쉬고 주문서에 물약에 스킬에, 쓸 수 있는 이동속도 증가 아이템은 죄다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러고도 채 5M를 가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쿨타임이라던 그 포획스킬에 말이다.

―신마제국의 ‘루스’가 사용한 포획에 구속 상태가 되었습니다.

“쿨타임이라며!”

사람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수작이야! 결국 이현은 다시 질질 끌려 루스의 앞에 앉혀졌고, 덕분에 캐릭도 울고 이현도 울었다.

[신마제국/꼬마천재: 딱 봐도 부추기려고 한 말이잖앜ㅋㅋㅋㅋ 그걸 그대로 알아듣고 튀고 있엌ㅋㅋㅋㅋ]

[신마제국/베리베리: ㅋㅋㅋㅋ 어디서 저런 순진한 걸 구했댘ㅋㅋㅋ]

[신마제국/마초: 탱커가 포획기술이 몇 갠뎈ㅋㅋㅋㅋ 이 와중에 뛰는 모습 개웃곀ㅋㅋㅋ 아, 간만에 제대로 웃었네ㅋㅋ]

미친놈 삼인방은 그 사이 땅을 치며 웃고 있었다. 쓸데없이 디테일한 모션에 이현의 눈썹이 연신 꿈틀거렸다. 생각 같아선 죄다 죽이고 싶은데, 만렙이 아니라 덤비질 못하겠다. 그래, 다른 게 아니라 만렙이 아니라서다.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라.

[신마제국/루스: 왜 이렇게 도망갈까. 응? 왜 도망갑니까?]

[이현: ...살고 싶어서요]

[신마제국/루스: 살려준다니까]

[이현: 아닌 것 같아서요... 저쪽 땅 가면 신마족들 엄청 많잖아요 ㅠㅠ 저 죽기 싫어요]

[신마제국/루스: 죽어도 괜찮다더니? 그새 바뀌었네]

[이현: ...죽어도 되긴 하는데요... 그렇긴 한데... 그러지말고 그냥 저 만렙되고 보시면 안돼요?]

[신마제국/꼬마천재: ㅋㅋㅋㅋㅋ 아 미치겠닼ㅋㅋㅋ 이님 진짜ㅋㅋㅋㅋ]

[신마제국/베리베리: 오구오구, 제가 쩔 해줄까요? 후딱해서 탁 하고 서걱 해서 짠 해줄게요!]

[신마제국/마초: 겁나 절박햌ㅋㅋㅋㅋ 왜 이렇게 안습이냐 ㅋㅋㅋ 아 눈물난다ㅋㅋㅋ]

“별 게 다 웃겨!”

누군 절박해 죽겠는데, 누구들은 배를 잡고 엎어져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저런 모션이 있는지도 몰랐던 이현은 치미는 울화에 씩씩거리다 생수병을 원샷 했다.

[신마제국/루스: 안 가면 죽이고요]

[이현: 포탈 타면 되죠? 저 먼저 갈까요?]

이건 단지, 벗어나기 위한 계략일 뿐이다. 틈을 봐 도망칠 다짐을 새긴 이현은 아주 조금만, 그리고 잠깐만 비굴해지기로 했다. 이현의 말에 루스는 즉각 포획을 풀고 포탈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맥에서 쏟아지는 폭포 안쪽에 희미하지만 포탈이 있는 게 보였다.

[신마제국/루스: 먼저가요.]

옆에서 아직까지도 웃고 있는 삼인방을 뒤로하고 이현은 루스의 지시대로 냉큼 폭포 안으로 뛰어 들어 빛가루를 흩날리는 포탈을 클릭했다.

“주, 죽기야 하겠어….”

그때 이현은 알지 못했다. 그게 고난을 마주하긴 전 내뱉은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

이현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달달 떨고 있는 제 캐릭을 보며 음료수 빨대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옆에서 우와우와 거리고 있는 김성훈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이야, 이 새끼들 길드존도 가지고 있었어? 사람들이 타협타협 할 만하네.”

만약 사람들이 ‘타협은 없다’의 길드존을 본 소감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이현은 망설임도 없이 소리쳐 외칠 수 있었다. 염소풀이나 돋아난, 볼 것도 없는 코딱지만 곳이라고 말이다.

“면적 봐라. 길드쟁 할 만하겠네.”

…코딱지만 하지는 않고 그보단 조금 크다.

“채이현 횡재했네. 돈 주고도 못 볼 구경하고.”

“시끄러워, 이 새끼야!”

뿔이 난 이현이 버럭 소리치자, 김성훈은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손에 쥐고 있던 커피를 던져주었다. 이거 먹고 짜지라는 소리였다. 이현은 손안에 떨어진 커피를 보다 허망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불과 삼십 분 전, 이현은 포탈을 타고 신마제국의 영역에 첫발을 들였다. 띠링, 하고 떠오른 퀘스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지도가 전부 빨간 점으로 도배되었다. 벌벌 떨며 구석으로 숨어드는 이현을 제지한 건 뒤이어 포탈을 타고 넘어온 루스였다.

[신성제국/이현: 루스님, 저 살려주실거죠?]

[루스: 착하게 있으면요]

[신성제국/이현: 착하게 있을게요, 진짜요]

얼마나 울고 매달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주 낯이 다 뜨거웠다. 그러나 당시에는 새빨갛게 물든 지도에 심장이 쿵쿵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살길이 루스뿐이라는 것만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그 이후 이현은 루스와의 거리가 조금만 벌어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파닥거렸고, 아까운 줄 모르고 온갖 주문서를 씹어 먹으며 루스의 뒤를 따라붙었다.

[신성제국/이현: 저 어디 가요?]

말은 전혀 안 해주고 주구장창 달리기만 하는 루스의 캐릭을 찍고 따라가기를 누른 이현은 화면을 돌려 뒤를 따라오고 있는 베리베리와 꼬마천재, 마초를 바라보았다. 신마제국에 넘어온 이후, 그들은 신성제국에서 봤던 모습이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현의 화면에 알림말이 떠오른 순간, 와장창 깨져버렸다.

―‘페리온스’ 지역을 발견하였습니다.

―‘타협은 없다’ 길드의 부지로 들어왔습니다. 길드분쟁 지역이므로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길드분쟁이 뭔데?”

분쟁지역에 들어오자마자 긴박하게 달리던 루스가 우뚝 멈춰 섰다. 자연스레 이현도 따라 멈추었는데, 그때 채팅창 위로 글이 쏟아져 올라왔다.

[베리베리: 힐러님, 이제 괜찮아요. 여기 있으면 우리가 다른 녀석 서겅서겅 해줄게요!]

[마초: 다 덤벼라ㅋㅋㅋㅋ]

[꼬마천재: 오랜만에 각잡고 썰어야겠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눈을 깜빡이던 이현은 김성훈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잔소리가 날아들 것 같아, 게임화면을 아래로 내리고 급히 길드분쟁에 대해 찾아봤다. 그리고 정확히 십분 후, 게임화면을 다시 위로 올렸다. 설마 했는데, 그 사이 이현의 캐릭은 또다시 포획에 잡혀 끌려가고 있었다.

끌려가는 뒤쪽에선 개구리들이 연신 개굴개굴 짖어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현이 뒤늦게야 천천히 타자를 두드렸다.

[신성제국/이현: 저 미끼예요?]

[마초: 오, 돌아왔다]

[베리베리: ?]

[꼬마천재: ?]

이현이 십 분 동안 길드분쟁에 대해 찾은 결과로 얻은 정보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자료 중 이현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건, ‘미끼’라는 글을 읽었을 때였다.

길드분쟁. 그건 길드존이라는 걸 갖고 있는 길드에게서 땅을 뺏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었다. 에르덴에는 크고 작은 길드가 있었는데, 길드원의 공적치를 합산해 길드의 등급이 평가되었다. 현재 라히브라 섭 신마제국의 길드서열 1위는 루스가 길드 마스터로 있는 ‘타협은 없다’였다.

에르덴의 많은 유저들은 자신의 공적 뿐 아니라 길드 공적치에도 상당히 집착했는데, 이는 바로 서버 내 1위의 길드에게 주어지는 ‘길드존’ 때문이었다. 길드존은 일정 부지를 그 길드의 땅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로, 마을 같은 개념으로 운영되고 길드의 거점지로 활용되었다.

만약 거점 등록이 된 부지에 그 길드원이 아닌 유저가 침범할 경우, 분쟁지역 시스템이 부여되어 길드원은 그 유저를 죽일 수가 있었다. 한 마디로 같은 종족이라도 부지 안에서는 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쟁을 할 때 ‘미끼’로 많이 쓰이는 게 바로 상대 종족 유저였다. 루스로 치자면, 이현이랄까.

[신성제국/이현: 살려준다더니ㅠㅠ]

[꼬마천재: 읭? 의잉? 뭔 말도 안되는 소릴;;]

[베리베리: 주륵... 이리와요, 우리 같이 울어요...]

[마초: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미끼 자처인가ㅋㅋㅋㅋㅋ]

이 와중에도 루스는 이현을 끌고 가는데 정신이 없었다. 몸부림 좀 쳐볼까, 하다가 어차피 또 잡힐 텐데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이현은 부락으로 형성된 거점지에 도착할 때까지 엎어져 눈물만 짜냈다.

역시나 거점지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마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떠들어대고 있었다. 머리에 뜬 길드명을 보니, 전부 타협 길드의 길드원이었다. 전부 길드 채팅을 쓰는지 말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간혹 드러나는 모션을 보면 서로 떠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스: 죽이지 말라고 말해놨어요]

거점지 중앙에 도착하고서야 루스는 포획을 풀어주었다. 길드 채팅창에 무슨 말을 올린 건지, 앉아 떠들던 길드원들이 하나 둘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불길함을 감지한 이현은 재빨리 캐릭을 움직여 근처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현이 구석으로 숨자마자 타협 길드원들은 먹잇감을 찾는 하이에나처럼 이현에게 슬금슬금 다가왔다.

[코코볼: 헐... 진짜 데려왔엌ㅋ]

[신마전설: 취미 한번 고상하네]

[기토피아: 아닠ㅋㅋ 이걸 어케 데려왔대?ㅋㅋ]

[다이뜨자: 이거 납치 아니냐?ㅋㅋㅋ]

[신이내린캐: 한 번 치면 죽을 것 같은디ㅋㅋ 장비봐라ㅋㅋ]

장비? 이현은 재빨리 시스템 창으로 들어가 장비열람 칸을 확인했다. 예전에 닫아놓은 것 같은데 그새 훑어보기가 풀려 있었다. 창피함에 몰려드는 열을 식히며 이현은 장비보기 기능을 닫고 완료 버튼을 눌렀다.

[붹붹붹: 그새 닫았어ㅋㅋㅋㅋ]

[바람의나라: 뭐에 꽂혔나 했더니.... 하, 나도 하나 키울까...]

[불사조: 애완동물이냐ㅋㅋㅋ]

길드의 깃발이 걸린 석상 구석에 무릎 꿇고 앉은 제 불쌍한 캐릭을 보며 이현은 그냥 죽고 마을로 귀환할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그런 이현의 마음을 꿰뚫은 것인지 옆에서 김성훈도 슬슬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냥 뒤지고 귀환해라. 아주 벗겨먹을 기세들이다.”

“…그치?”

그래, 죽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렙업이야 뭐 꾸준히 하다 보면 오르겠지. 혹한 마음이 사라질까 이현은 냉큼 캐릭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힐러의 전용 무기인 법봉을 꺼내들고 전투모션을 취했다. 대상자는 ‘루스’였다.

“내가 가더라도 넌 꼭 치고 만다.”

음산하게 중얼거리는 이현의 모습을 보니 그간 쌓인 게 한 둘이 아닌 듯 했다. 그러나 그런 이현의 음험한 복수심은 루스의 말이 채팅창에 떠오른 순간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루스: 여기 신성제국보다 경험치 1.5배 더 주니까 여기서 놀아요]

[신성제국/이현: ...진짜요?]

[루스: 렙은 조금 높겠지만]

[신성제국/이현: 그럼 저 여기서 사냥해도 돼요?]

[루스: 길드 부지 밖으로만 안 나가면요]

[이현: 채집은요?]

이현이 루스의 캐릭 앞으로 바짝 다가가 섰다. 두 손을 꼭 모아 부탁하는 모션을 취한 캐릭이 반짝반짝한 시선으로 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스: 채집 좋아하나 보네]

[신성제국/이현: 네! 해도 돼요?]

[루스: 해도 됩니다]

[신성제국/이현: 감사합니다!]

펄쩍펄쩍 뛰며 얼마나 그렇게 좋아하고 있었을까. 시간이 아까워진 이현은 재빨리 루스를 등지고 거점지 밖에 있는 몬스터를 향해 달려갔다. 지도에 새빨간 점으로 표시되는 몹은 이현의 레벨보다 높은 LV.85였다. 선공몹이라고 표시된 ‘웨어울프’ 늑대를 클릭한 이현은 누가 말릴 세라 전투스킬을 누르며 잽싸게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베힐라오!]

―번뇌의 일격으로 ‘웨어울프’에게 891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번뇌의 일격 연속기로 번뇌의 낙인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웨어울프’의 방어력이 하락하였습니다.

꼬물거리며 싸우는 이현을 루스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감시라도 하는 것 같았다.

[베리베리: 힐러님, 대단한 사람이었네. 와... 스킬을 저렇게 쓰는 사람이 있었구나... 와, 때리고 싶네.]

[꼬마천재: 잘가라. 멀리는 못나간다]

[베리베리: 뭐, 왜 또 ㅈㄹ?]

[꼬마천재: 컨도 ㅈ도 없는 놈이 그러니까 코가 막혀서]

[베리베리: 어디서 파리 한 마리가 나대네ㅋㅋ 내 컨으로 콧구멍을 쑤셔주면 아닥하고 조용해지려나]

열심히 사냥 중인 이현의 뒤로 난데없이 싸움판이 벌어졌다.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으르렁 컹컹, 아주 물어뜯을 기세로 덤비는 걸 보니 원래도 앙숙관계인 모양이었다. 이현은 채팅창과 필드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꼬마천재: 아 ㅅㅂ 덤벼. 진정한 신컨이 뭔지 보여주마]

[베리베리: 개발리고 쳐 울지나 마라 호러자식아]

[꼬마천재: 매일 발리는 ㅅㄲ가 말은 겁나 잘하지. 결투나 신청해라, 등1신아]

뭔가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이현은 마주보고 서 있는 베리와 꼬마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은 늘 적중하기 나름이다. 고로, 지금은 눈치껏 피하는 게 답이었다.

이현이 거리를 벌리자마자 결투는 시작되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꼬마와 베리를 보는 길드원들의 모습은 태연 그 자체였다.

“…이틈에 도망갈까.”

잘 안 보이는 곳에 서서 사냥하는 척 귀환스킬을 쓰면 루스가 달려오기 전에 귀환할 수 있지 않을까. 거리계산이며 시간계산을 하던 이현은 근처를 빙빙 돌다 땅에 숨어있던 두더지에게 걸려 선공을 맞고 말았다. 되는대로 공격 스킬을 퍼붓고 마지막으로 스태프로 후려치자 두더지는 끼룩! 소리를 내며 배를 까고 죽었다.

그리고 그때 이현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바위틈에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는 고급 채집물인 ‘스완다의 꽃’이었다.

“헐, 스완다다!”

필드 내 정해진 구역 없이 랜덤으로 나타나는 스완다의 꽃은 소생석의 재료로 쓰이는 희귀등급 채집물이었다. 상대방만 살릴 수 있는 일반 부활석과 달리, 자기 자신도 살 수 있는 소생석은 시가가 몇백을 넘나드는 고급 아이템이었다. 가공하면 여러 주문서로 제작도 가능했기에 채집꾼들 사이에서는 아주 귀한 아이템으로 분류되었다.

한 마디로 채집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자라면, 꼭 캐야 하는 채집물이란 소리였다.

“캐도… 되겠지?”

되겠지. 이현은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 금세 매의 눈을 하고 스완다의 꽃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현이 하나 간과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베리베리와 꼬마천재의 결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베리베리: 피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하라고 ㅅㅂ]

[꼬마천재: ㅉㅉ 피하는 것도 실력이다, 빙1신아]

[베리베리: ㅈㄹ]

앞만 보고 달려가던 이현이 막 스완다를 품에 안으려던 참이었다. 손을 뻗어 채집을 시도하는 이현의 캐릭에게 거대한 화마가 덮쳤다. 타오르는 불길에 삼켜진 이현의 캐릭이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몹을 사냥하느라 반밖에 없었던 피가 훅훅 깎였다.

―신마제국의 ‘베리베리’가 사용한 광역기 불꽃의 광염으로 132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화상을 입어 초당 400만큼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현이 재빨리 힐스킬을 눌렀지만, 그보다 빨리 화면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찾아온 익숙한 알림말.

―사망하였습니다.

“…….”

스킬을 누르던 그대로 이현이 쩍 굳어졌다. 심지어는 시선조차 멈췄다. 주위는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그렇게 짖고 싸우던 베리베리와 꼬마천재도 입을 딱 다물고 굳은 듯 움직일 줄 몰랐다. 회색으로 물든 채팅창 위로 루스의 말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루스: ㅎ]

루스가 웃었다. 아니, 처음으로 단어가 아닌 자음을 썼다. 한데, 그게 낯설고 몹시 무섭게 느껴졌다. 그게 신기해 이현이 눈을 깜빡이며 화면을 돌렸을 때였다.

베리베리가 난데없이 미친 듯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온갖 버프와 도핑을 두르고 달려가는 뒷모습이 그렇게 절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달려가는 앞모습이 어쩐지 상상이 되어서 이현은 자신의 처지도 잊고 육성으로 웃고 말았다. 본인이 그렇게 달아났던 건 생각도 못 하고 말이다.

[루스: 사냥 좀 해야겠네]

[꼬마천재: ...동감]

[루스: 10억 골드 주겠습니다.]

루스의 말에 거점지 안에 있던 유저들이 하나 둘 밖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족히 몇십은 되어 보이는 이들은 도핑과 스킬을 두르며 드릉드릉 시동을 걸었다.

[루스: 베리새ㄲ 좀 잡아오세요]

살벌했다. 꼬박 존대를 사용하는데도, 뭔가 그 분위기랄까. 쉬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루스의 말에 시동을 걸고 있던 유저들은 순식간에 베리베리가 도망간 곳으로 튀어나갔다. 치타처럼 빠른 속도였다.

“…내 스완다….”

썰렁해진 부지 위에 남겨진 건 루스와 이현뿐이었다. 이현은 눈앞에 있는 스완다의 꽃을 보며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다음에 오면 분명 누가 캤겠지.

[루스: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늦었고... 내일 보죠]

“절대 안 와! 너랑 있으면 맨날 죽잖아!”

씩씩거리던 이현은 엿을 날려줄까 하다가 후환이 두려워, 그대로 대꾸도 없이 귀환 버튼을 눌러 마을로 이동했다. 청량감이 넘치는 마을에 도착하니 스완다의 꽃이 더 아른거렸다. 베리베리 새끼… 그냥 잡혀서 뒤져버려라.

사악한 마음을 담아 속삭이는 이현의 눈가가 어쩐지 촉촉이 젖어든 것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김성훈의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내새끼가 쳐 울지.”

이현은 말없이 그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죽은 것보다 채집을 못해 더 서러웠다. 아 자기부활 스킬이라도 걸어 놓을걸. 막연한 후회가 하염없이 밀려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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