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힐러의 광란기
게시글: 키야~ 우리섭 최고! 광란의 떼쟁!
작성자: 씻고살자
서버: 라히브라 / 신성제국
내용: 퇴근하고 오니 메인이군요!!!!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저희 길드와 저희섭 신성족, 그리고 떼쟁을 일으켜준 [[이현]]님께 돌립니다.
간단하게 인사 좀 하겠습니다~ 우선, 저희 ‘청천의 군주’의 길마 람섬님부터 부길마 모닝빵과 그 외 참붕어님, 팔자모드님 등등 이번 떼쟁 때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앞으로도 우리 승승장구하자고요! 신마족 님들, 저희 필드에서 보시면 살살 좀 부탁드립니다ㅎ
자, 그럼 이제 본문 가시죠! 밑에는 수정전 원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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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라히브라 섭 신성족 씻고살자입니다.
오늘 저희섭에서 벌어진 떼쟁(떼거지+쟁) 좀 잠시 감상하고 가시죠? ^^ 성전 제외 에르덴 창설이래 가장 큰 떼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전서버 최초! 엄청난 포스팟! 떼쟁 중의 떼쟁!
네. 바로 그 어마어마한 광란의 떼쟁이 저희 섭, 그것도 신성제국 필드에서 벌어졌습니다!!(짝짝짝) 이 떼쟁을 일으켜준 ‘이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ㅎㅎ
여기까지 오셨는데, 스크린샷 한 번 보셔야죠?
(스크린샷_신성족 떼거리.jpg)
보이십니까?ㅎㅎ 이 어마어마한 숫자가요? 앞에 이현님 보이시죠? 이 떼쟁을 일으킨 장본인 되십니다ㅋㅋㅋ 다들 죽자 살자 쫓아가는 걸 보고 저도 후다닥 쫓아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쭉 따라가보니 니르아의 숲에 신마족들이 숨어있더라고요. 이쯤 되니 떠오르는 이현님 스파이썰... 흠흠...
(스크린샷_신마족 포스.jpg)
캬~ 어마어마하죠? 저희쪽 포스 다 연계하진 못했지만, 저희 팟과 연계된 포스만 4포스 됩니다. 다른 쪽도 다 그 정도 되던데... 대략 400명은 넘을 듯. 근데 문제는... 신마족도 그 정도 됐다는 거 ㅎㄷㄷ;; 이때부터 컴터 뚝뚝 끊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놔.
(스크린샷_루스.jpg)
저 앞에 루스 보이시죠?ㅋㅋㅋㅋㅋ 아, 진짜 루스는 제가 죽기 전에 함 썰어보고 싶은 녀석입니다ㅎㅎ 절대 무리겠지만요... 또르륵. 루스가 착용한 공적템 다 갖고 싶다...
(스크린샷_구걸_1.jpg)
(스크린샷_구걸_이현.jpg)
이현님ㅋㅋㅋㅋㅋ 아, 저 이거 보고 터졌습니다. 구걸하는 거 보이십니까?ㅋㅋㅋㅋ 살려달라는 말이 무려 오타와 함께 트리플로 떠오르더군요. 그 와중에 풀 도핑중인 양쪽 진영...
(스크린샷_떼쟁 서막.jpg)
ㅠㅠ 그야말로 진풍경 ㅠㅠ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무슨 전쟁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이때 전율이 쫙 오르는데 소름이ㅋㅋㅋㅋㅋㅋ 이런 박진감을 느낄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이현님!ㅋㅋㅋㅋ 저는 아직도 님의 정체를 모르겠지만 이쯤 되니 인정해드리죠.
당신, 최고의 미끼입니다!!!!
(스크린샷_포스 떼쟁_1.jpg)
떼쟁이라 톡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미친듯이 발리고 발랐습니다. 무조건 덤벼듭니다 ㅋㅋㅋ 공적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ㅋㅋㅋㅋ 걍 써는 겁니다. 광란의 떼쟁!
(스크린샷_포스 떼쟁_2.jpg)
저희는 죽으면 족족 달려오고ㅋㅋㅋㅋ 신마족은 격전지 소환 스크롤 써서 동료 불러오고ㅋㅋㅋ 아주 대환장파티였습니다. 아, 다시 이때로 돌아가고 싶네요 ㅠㅠ 벌써 그립습니다.
(스크린샷_신마족 단합회.jpg)
와, 근데 신마족 우세섭이라는 게 괜한 말이 아닌가 봅니닼ㅋㅋㅋㅋ 신마족님들 단합력 진짜 쩝니다. 본받고 싶을 정도로ㅎㅎ 실력도 실력인데 진짜 [[이현]]이분 안 죽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안 죽입니까? ㅋㅋㅋㅋ 루스 후환이 두렵나 봅니닼ㅋㅋㅋㅋ
(스크린샷_무아지경 광란떼.jpg)
루스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니편내편 섞인 얼룩덜룩한 화면이 아주 그냥ㅋㅋㅋㅋ 이 떼쟁 끝난 게 언제인지 아십니까? 무려 3시간이나 이러고 있었어요ㅋㅋㅋㅋ 다들 미친 것 같았습니다ㅋㅋㅋ 정줄 놓으신 줄ㅋㅋㅋㅋ
(스크린샷_신마족 귀환.jpg)
더 하고 싶었지만 ㅠㅠ 신마족님들이 배부르셨는지 귀환회랑을 타고 가시더라고요 ㅠㅠ 붙잡고 싶었지만 전 이미 드러누워 있었기 때문에;;;
(스크린샷_떼쟁 기념 떼샷.jpg)
스크린샷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은 살아남은 저희 신성족분들이 떼거지로 모여 사진 한 방 박았습니다. 이것도 추억이라고ㅋㅋㅋㅋ 다들 아주 헤헤 거리면서 좋아 죽더랬죠ㅋㅋㅋ
아쉬운 게, 참여수가 워낙 많아 스크린에 다 담지 못했다는 사실 ㅠㅠ 아, 이건 화면을 돌려 실제로 봐야 실감이 나는데... 뭐, 별수 있겠습니까ㅋㅋㅋ
떼쟁이 일어난 정황이 궁금하신 분들은 [마초]의 ‘불구경’ 게시글을 보고 오시면 됩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은 경험과 좋은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현님ㅋㅋㅋㅋㅋ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또 부탁드립니다ㅎㅎ
이상, 광란의 떼쟁은 여기서 막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재밌었어요ㅋㅋ 신마족님들 날 잡아서 또 오십쇼ㅋㅋㅋ
댓글수[12099]
베스트 댓글
-막걸리야/신성제국: 그래서 어느섭이라고요?(장비를 주섬주섬 챙긴다)
-곰돌이형/신마제국: 나만 이현이 때문에 죽었냐? 대상만 전환하면 이현이가 걸려 ㅅㅂ...
-글라라/신성제국: 훗. 제가 베풀이 된다면 어쌔신분들을 모셔 8포스를 짜서 이번엔 저희가 넘어가겠습니다.
-나도딜러/신마제국: 탭, 이현/ 대상전환 탭, 탱커/ 대상전환 탭, 이현/ 대상전...서걱/ 니코틴 흡입...
-황비홍/신성제국: 우리 섭인데 왜 난 몰랐지... 또르륵... 다시하자... 다!시!하!자!
일반댓글
-무릎팍팍/신성제국: 떼쟁 실화냐...?
-레전드/신마제국: 캬, 역시 우리 신마족들 단합력이란!
└ ㅇㅈ
└ 베스트 댓글 안 쳐뵈냐? 그 단합력 때문에 죽었다잖아ㅡㅡ
└ 나만 대상전환 탭 누르면 이현이가 잡힌 게 아니었어 ㅎㄷㄷ
-만두초장/신성제국: 렉 개쩜. 스킬 누르기도 전에 누워있어;;;
-반지뜨자/신마제국: 니들은 왜 꼭 나 없을 때 그러냐... 서럽게시리...
-만세세창/신성제국: 간만에 겁나 놀았네ㅋㅋㅋㅋㅋ 죄다 정줄 놓고 좀비모드ㅋㅋㅋ
-면세점/신마제국: ㅋㅋㅋ 우리 다 같이 이현님께 감사드리죠ㅋㅋㅋㅋ 떼쟁 만세! 라히브라섭 만세!
-캬옹/신성제국: 루스 이 색히는 도중 사라졌더라? 한 대만 맞자 루스야... 나도 네 공적 좀 먹고 싶다.
└ 네가 포스 좀 새로 짜봐라. 나도 루스 좀 죽여보자.
-로즈멘탈/신마제국: 우리섭도 이런 것 좀 해봤으면 ㅠㅠ
└ 넘어오시죠ㅋㅋㅋ
-킹오브킹/신성제국: 좋아. 다음 서버이전 섭은 이곳이닷!
└ ㄲㅈ
└ 님이나 ㄲㅓ져여
└ 둘다 오지마라
-어쌔신이냥/신마제국: 형 이현이 살리느라 힘들었으니 베플 좀 돼보자
└ ㅅㅂ 너만 힘들었냐? 난 탭만 누르면 이현이었어 ㅅㅐㄲㅑ
└ ㅋㅋㅋㅋ 다들 이현이 살린다고 아주 피를 토한것처럼 얘기하네
└ 나같음 걍 죽였다ㅡㅡ
└ 성전 참여 안하는 새끼는 아닥하고 있으랬다ㅡㅡ
└ 형들이 못 죽여서 안죽였겠냐? 어디서 아가리를 털어, ㅅㅂ시키가
-콩콩이/신성제국: 그래서 이현이가 대체 누군데 다들 이ㅈ1랄이냐고
└ 있음. 탭만 누르면 대상에 잡히는 신성제국 힐러님.
└ 있어여. 루스 시키가 싸고도는 컨 개쩌는 힐러
└ 탭현(tab+이현)이라고... 있어요...
└ 광현(광란의 떼쟁+이현)이라고 있어여...
-수박바/신성제국: 아놔ㅡㅡ 타협새ㄲ1들은 아예 참여 안했더라? 공적 아깝디? 루스 이 새ㄲ1도 도중 사라지고 ㅅㅂ 어디서 바쁜척이야 개*밤바 자식아
└ 루스 요새 길드존 부지에 뭐하나 키운다고 개바쁜척 하던데
└ 뭐 키움?
└ 타협새1끼들 요새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데 왜 그러는지 아는 사람 공유 좀 해봐라
└ 형도 좀 알자.
└ 베리새1끼 앞으로 10억골드 걸려서 그 놈 잡는다고 ㅈㄹ하는 거
└ 베리 이 ㅅㄲ 좀 제발 잡아가라. 남의 닥사팟에 와서 왜 자꾸 숨겨달라고 ㅈ1랄이야... 나 너 못 봤어, 못 봤다고... 그러니까 이제 그만 오라고ㅡㅡ
└ ㅋㅋㅋㅋ ㅅㅂ 여기저기 다 쑤시고 다니네ㅋㅋㅋㅋㅋ
└ 본인도 즐기는듯
└ 제보ㄱㄱ 제보하면 루스가 천만 골드씩 쏴줌
└ 루스한테 탭현이 위치제보하면 억씩 줌
└ 제보 감사요~
└ ㄱㅅ
[댓글 더보기]
***
얘는 할 짓이 없나? 왜 매일 내 앞에 나타나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거야? 이현은 뭉게뭉게 피어나는 생각과 함께, 포획에 걸려 무릎 꿇고 있는 제 캐릭을 노려보았다. 정확히는 그 너머에 팔짱끼고 있는 루스를.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루스한테 잡힌 게 이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현의 캐릭 옆에는 똑같이 포획에 걸려든 어쌔신 유저 한 명이 있었다. 그는 이현의 캐릭과 달리 다리를 쫙 편 채 건방지게 앉아있었다. 김성훈의 캐릭인, 확실한놈이었다.
[신마제국/루스: 쥐새끼가 있네.]
말하는 투가 어쩐지 언짢아 보였다. 힐끗 옆을 보자 김성훈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 실실 웃고 있었다. 저런 것도 친구라고, 이현은 한숨을 내쉬며 느릿하게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이현: 제 친군데요...]
[신마제국/루스: 네.]
[이현: 살려주시면 안될까요...]
최대한 비굴한 모습으로 이현이 공손하게 부탁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성훈이 훅 치고 들어왔다.
[확실한놈: 안녕하세요, 루스님. 루스님 길드에 계신 마초님 팬인 확실한놈입니다]
[신마제국/루스: 내가 아니라 다행이네]
마초는 루스가 있는 ‘타협은 없다’의 길드원으로 라히브라섭 어쌔신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유저였다. 당연히 같은 어쌔신 계열인 김성훈이 유독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확실한놈: 그래서 말인데, 저도 그 길드존에 데려가 주시면 안될까요?^^]
“미쳤냐?! 나 안 가! 절대 안 가!”
이현의 살벌한 시선이 쏜살같이 김성훈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김성훈은 보지도 않고 평이하게 대꾸했다.
“여우새끼가 눈이 너무 크네. 좀 줄여라.”
“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보지도 않은 주제에 김성훈은 마치 다 안다는 듯 말했다. 그 모습에 이현이 육성으로 욕을 내뱉자 먹고 떨어지라는 듯 김성훈이 주머니에서 커피를 하나 꺼내 던져주었다. 이현이 제일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였다.
“…먹고 좀 생각해볼까.”
빨대를 꽂고 입에 문 이현은 커피를 마시며 얌전히 자신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 꽤 이야기가 진행된 건지, 글이 한참이나 위로 올라가 있었다. 이현을 잡고 있던 포획은 시간이 지나 풀려있었다.
현재 이현이 있는 곳은 닥사 전용 인던인 ‘서리계곡’이었다. 여기 나오는 몹들은 전부 정예였는데, 경험치를 쏠쏠하게 주기로 유명해 2인팟 유저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이현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루스가 나타나기 직전까지 이현은 김성훈과 열심히 정예를 잡으며 닥사를 하고 있었다. 깎이고 깎여 이제는 게이지에 표시도 되지 않는 경험치를 올리기 위해 말이다.
“왜 저 자식은 내가 렙업만 하려고 하면 나타나냐고….”
무슨 스토커냐? 이현은 입맛을 다시며 웃는 낯으로 얘기중인 루스와 김성훈을 언짢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확실한놈: 이현이요? 거의 한 달째 79인거 같은데]
[신마제국/루스: 한 달?]
[확실한놈: 저놈이 좀 돌아서 미션퀘를 안 해요. 베히아랑 학살 가야되는데, 버티고 있어서요]
어째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듯했다. 이러다 베히아까지 같이 가준다고 하는 거 아닌지, 이현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확실한놈: 대답도 했겠다, 저도 같이 길드존에 가면 안됩니까?ㅎ 구경 좀 하고 싶은데요]
[신마제국/루스: 흐음, 뭐 믿고 그럽니까?]
[확실한놈: 불교요]
어느 날엔가 TV에서 봤던 멘트를 내뱉으며 김성훈이 날쌔게 루스의 말을 받아쳤다. 루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반응에 김성훈이 나무 나댔나 싶어 입맛을 쩝 다셨을 때였다. 커피를 마시고 있던 이현이 저 혼자 빵 터졌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목소리가 에르덴의 배경음과 함께 떠돌았다.
“…어디서 터진 건데?”
책상과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현이 웃어재꼈다. 덕분에 이현의 캐릭은 혼자 눕고 뛰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가만히 보고 있던 루스가 뭐하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신마제국/루스: 이현씨 지금 뭐합니까]
[확실한놈: 책상 내려치며 웃고 있는데요.]
루스는 말이 없었다. 그 분위기에 김성훈은 괜스레 숙연해졌다.
[확실한놈: 하하... 곧 괜찮아질 거예요]
[신마제국/루스: 예, 뭐...]
이현이 정신을 차린 건,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신마제국/루스: 끝났습니까?]
“아, 눈물 나잖아….”
모니터를 바라보며 이현은 눈에 고인 눈물을 훑어 닦았다. 김성훈이 옆에서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 있었다.
“타협이나 가자.”
배어있던 웃음이 싹 가셨다. 이현은 금세 정색을 하며 꿈도 꾸지 말라고 못을 박았다. 김성훈이 루스에게 수작을 부린 건 그 직후였다.
[확실한놈: 아아, 이현이가 글쎄 스완다를 못 잊더니 거기 가기 싫다네요. 절대 안 간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마제국/루스: 스완다가 아직 있었던 것 같은데]
[이현: 포탈 어디 있나요? 그때 거기로 가면 되나요?]
언제 거부했냐는 양, 이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타자를 쳤다. 그리고는 맵을 켜 포탈이 뜬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와, 속물도 이런 속물이 없네.”
“엿 먹고 싶냐?”
“이건 뭐만 하면 엿이야.”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진 루스와 김성훈의 합작으로 이현은 그렇게 스완다를 떠올리며 ‘바람계곡’에 자리한 포탈로 자리를 옮겼다. 루스보다 앞장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도 스완다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현의 사심 가득한 기대감은 타협 길드의 부지에 도착한 순간 눈물과 함께 사라졌다. 스완다가 ‘있었던’ 곳에는 웬 이상한 식물이 나 있었다. 파리지옥처럼 생긴 사악한 식물이. 이를 본 이현은 끝내 좌절하고 말았다.
[신성제국/이현: ㅠㅠ]
옆에서는 김성훈이 꿈에 그리던 마초를 만나 실실거리며 타자를 치고 있었다. 누군 지금 억울하다 못해 서러워 죽겠는데, 누군 스타라도 만난 표정이었다.
[신성제국/확실한놈: 살아서 마초님을 만나다니ㅋㅋㅋ]
[마초: 어쌔씬이네ㅋㅋ 불멸의 장단검 끼고 있고! 오, 공속도 좋은 편이네. 그래봤자 내가 한 수 위지만. 케케케케케!]
[신성제국/확실한놈: 마초님 방송보고 어쌔신으로 갈아탔습니다ㅎㅎ 무빙 진짜 개쩔던데요 크으...]
[마초: 뭘 좀 아는 녀석이네, 크으...]
[신성제국/확실한놈: 그래서 말인데요, 마초님.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마초: 아는 선이라면 뭐... 흠흠!]
[신성제국/확실한놈: 어쌔신 무기 장장 꼈을 때, 공격력은 좋은데 공속이 한쪽만 15% 증가 옵션 붙잖아요? 단단으로 끼면 양쪽 다 10%씩 공속증가 붙는데 공격력이 낮고요. 근데 어쌔씬들이 공속, 공격력 둘 다 얻으려고 요즘은 장검, 단검 하나씩 껴서 다니는데 공속은 장검 따라가서 15% 증가 붙고, 기본 공속은 단검 따라가서 장단검 중간치잖아요? 그런 거라면 차라리 장장끼고 공속 트리 타면 둘 다 얻을 수 있는데, 굳이 장단검 한쪽씩 추천하신 이유가 뭔가요? 저번 방송 때 적용해주신 거 보니까...]
“물 만났네, 물 만났어….”
허망한 표정으로 이현이 영혼 없이 중얼거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파리지옥이요, 파리지옥이고 파리지옥이었다. 엎어져 땅을 후려치고 있는 제 캐릭이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이현은 그만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꼬마천재: 힐러님, 왜 이러심? 님, 힐러님. 루스가 또 괴롭혔어여?]
[신성제국/이현: ㅠㅠㅠㅠ]
[꼬마천재: 그런가보네. 워째 앞장서서 전투적으로 뛰어오나 했다]
“스완다가 있다잖아, 스완다가! 어디서 개뻥을 치고 있어!”
[루스: 울지말고 이리 와봐요.]
적당히 달래는 투로 루스가 말했다. 이현은 코를 훌쩍이며 느릿하게 타자를 쳤다.
[신성제국/이현: 싫어요. 그래놓고 또 거짓말 할 거잖아ㅠㅠ]
[루스: 안할게요.]
[신성제국/이현: 개뻥치지 마요. 이제 루스님말 안 믿어요 ㅠㅠ]
[루스: 흐음, 진짠데. 저 뒤편에 스완다 또 있습니다.]
[신성제국/이현: 진짜요?]
[루스: 네. 그러니까 울지 말고 이리와요]
주저앉아 좌절하고 있던 캐릭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이현은 곧장 루스에게 달려갔다. 다다다 달려가는 이현의 캐릭이 조금 더 큰 루스의 캐릭 앞에 딱 멈춰 섰을 때였다. 꼬마가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꼬마천재: 와, 이것들 봐라? 어디서 꽁냥질?]
네 눈엔 꽁냥거리는 걸로 보이냐? 내가 스완다만 채집해봐라, 아니. 만렙만 되면 너희 다 한 쿨이거든? 원대한 꿈을 속삭이며 이현은 금세 전투력을 회복하고 거머리처럼 루스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러나 루스가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저 멀리서 한 무더기의 신마족들이 나타났다. 지도를 물들이는 시뻘건 점의 향연에 이현은 본능적으로 루스의 뒤로 몸을 숨겼다.
[루스: 잡아왔나보네]
[꼬마천재: 내가 하나는 걸릴 줄 알았다ㅋㅋㅋ 그렇게 따라다니며 결투신청을 하는데 안 걸리고 배기겠냐곸ㅋㅋ]
띠링
[귓속말/루스님으로부터: 이현씨 스킬배치 폰으로 찍어서 방명록에 올려주세요]
스킬? 이현은 한참이나 뜻 모를 표정으로 루스가 보낸 귓속말을 바라보았다.
[귓속말/루스님께: 지금요?]
[귓속말/루스님으로부터: 네, 지금요.]
어째 불안한 예감이 드는데. 이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그러나 딱 잘라 거절할 구실도 없어서, 이현은 게임화면 아래 배치한 스킬칸을 찍어 자신의 캐릭터 방명록에 올려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투데이 지수를 보게 됐는데, 깜짝 놀랐다.
“뭐, 뭐야…!”
가만 보니 방명록 아래로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탭현이라는둥, 광현이라는둥, 저들끼리 아주 편을 갈라 이현을 부르고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알 수 없는 찬양글부터 악플을 빙자한 비꼼까지, 가지각색 댓글이 상당했다. 그 수많은 댓글 안에는 ‘맥초딩’도 껴 있었다. 루스와의 악연을 이어준 초딩놈 말이다.
[신성제국/맥초딩: ㅉㅉ 이렇게 나대니 루스가 찾는다고 돈을 뿌리지. ㅈ이나 털리고 뒤2져버려라]
이 초딩새끼가!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복수심이 타오른 이현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맥초딩의 방명록을 찾아 들어가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던 도중 찾아온 이성이 이현을 붙들고 늘어졌다.
“참자, 참자…. 참자.”
이현은 머리를 싸맨 채 마음속에 참을 인을 새겨 넣었다. 초딩이 한 짓에 일일이 다 맞춰줄 필요는 없다. 얼마나 그렇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을까, 옆에서 김성훈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야, 너 뭐하… 야, 너 그거 쓰면 다음날 메인 각이다. 아냐?”
“…나도 알거든.”
“알면 빨리 지우고 게임이나 해라.”
그 말에 이현은 쓰고 있던 글을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지우고 홈페이지를 꺼버렸다. 그러나 서러운 마음은 오갈 곳이 없어서 분통이 날 지경이었다. 화면을 바라보던 이현은 결국 울분를 참지 못하고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다다다닥 두드렸다.
[신성제국/이현: ㄱㅇ;ᅟᅡᆭ;ㅣ2ㅅᅟᅥᆫ;ᅟᅵᆼ3ㅎㅈㅣ,]
[꼬마천재: ?]
[마초: ?]
[신성제국/확실한놈: ㅎ;; 죄송해요. 애가 지금 자기 방명록 보고 미쳐가지고 제정신이 아니에요.]
[꼬마천재: 아...]
[마초: 익...]
김성훈의 말에 꼬마와 마초는 어딘지 이해한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위로도 아닌 그 말이 왜 이렇게 와 닿는지, 이현은 일순 분노도 잊었다. 분노 대신 차오르는 건 억울함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곧 지척까지 다가온 신마족들로 인해 훠이훠이 날아갔다.
[기토피아: 잡아왔으니까 돈내놔라]
[코코볼: 베리 이 색ㄲ1 아주 작정하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더라?ㅋㅋㅋ]
[다이뜨자: 나 같으면 걍 무릎 꿇었다]
[불사조: 메인 못봤냐? 지도 즐긴다잖아ㅎㅎ]
[신이내린캐: 잉? 루스 뭐 키운다는 거 사실이었어? 힐러님이 계시네ㅋㅋㅋㅋ]
[코코볼: 헐? 진짜네;;]
[다이뜨자: 힐러님, 내가 놀아줘요?ㅋㅋㅋㅋ]
길드 부지로 들어온 이들은 이전에 본 적 있던 타협의 길드원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베리베리는 기토피아라는 탱커에게 포획되어 ‘ㅠㅠ’를 남발하며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결투신청에 걸려 잡힌 듯 했다.
[루스: 베리베리 꼴 나고 싶으면 건드려도 되고]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루스는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이현을 빙 두르고 있던 신마족들은 그 말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베리베리가 앞으로 던져진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김성훈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전투준비 하라는데?”
“뭐?”
“아니… 그냥 자기가 불러주는 대로 움직이란다.”
“뭔 소리야?”
“내가 알간?”
이현의 시선이 빠른 속도로 김성훈의 모니터로 향했다. 김성훈의 채팅창에는 루스의 귓속말이 들어와 있었다. 거두절미하게 베리베리하고 결투를 붙일 건데, 번호를 불러줄 테니 이현에게 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옆에서 도와주라는 말도 함께였다.
“싫어! 내가 왜 PVP를 해야 되는데…! 나 못 해! 안 해!”
“이기게 해준다잖아. 좀 해봐라.”
“싫다고! 또 죽이려고 하는 거잖아!”
“아, 새끼. 의심 한 번 많네. 죽으면 부활석으로 살려줄게.”
“장난하냐? 나 렙업해야 된다고, 렙업!”
“네가 그렇게 집착하니까 렙업이 널 싫어하는 거 아니야.”
정곡이었다. 그 말에 제법 타격을 받은 이현은 제 심장을 움켜쥐고 말았다. 타격의 아픔은 오랫동안 머물렀다. 나중에는 힘이 쭉 빠져 멍하니 앉아 있는데, 루스가 길드원들에게 현상금을 주는 건지 옹기종기 모인 길드원들 사이에서 흥정 모션을 취하고 있었다. 돈을 다 준 후에는 길드원들을 밀어내고 베리베리에게 PVP를 제안했다. 이현의 허락은 쏙 빼고 말이다.
그런가? 내가 진짜 너무 집착해서 렙업이 날 싫어하나? 김성훈의 말을 곱씹으며 이현은 힘없는 시선으로 베리베리와 루스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루스: 그래서 할건데, 말건데.]
[베리베리: 진짜 승패 상관없이? 진짜? 내가 이겨도 죽이기 없기다?]
[루스: 능력치 이현씨한테 다 맞춰]
[베리베리: 나 그럼 메인 방어구 3개나 빼야 되는데?;;]
[루스: 빼.]
[베리베리: 주륵]
울면서도 베리베리는 착실히 루스의 말대로 방어구를 3개나 빼고 길드 창고를 뒤져 이현의 무기공격력과 비슷한 등급의 저렙 무기로 교체해 꼈다. 방어구와 악세를 빼자 LV.79인 이현과 LV.100 만렙인 베리베리의 능력치가 얼추 맞춰졌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루스는 베리에게 핸디캡을 하나 더 요구했다.
[루스: 80이상 배운 스킬은 배제해]
[베리베리: 우와, 밀어주기 봐라.]
[루스: 싫으면 나가든가]
[베리베리: 넵, 안쓰겠습니다]
까라면 까야죠. 베리는 그렇게 말하며 여기저기 속살이 비치는 모습으로 이현 앞에 섰다. 정말 할 생각인가 보다.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한 번 바라본 이현은 옆에서 툭툭 치는 손길에 울먹거리며 마우스와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주, 죽어도 몰라….”
“5초부터 카운트다운 세고 0뜨는 순간 뭐 걸리면 상태 이상 치유 물약 먹고 3번 0번, 7번 순서로 누르고 백스텝 연달아 두 번 누르란다.”
“몰라….”
[루스: 시작하죠. 카운트다운 셉니다.]
[루스: 5]
[루스: 4]
[루스: 3]
베리와 벌어진 거리는 불과 10미터다. 헛웃음이 나오는 이 상황에 이현은 이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두 눈에 힘을 빡 주었다.
[루스: 1]
[루스: 0]
0이 떨어짐과 동시에 베리베리가 이현에게 즉시시전 침묵을 걸었다. 루스의 말대로 재빨리 상태 이상 치유 물약을 먹은 이현은 옆에서 3, 0, 7이라고 외치는 김성훈의 목소리에 따라 베리를 지목하고 재빨리 스킬 번호를 눌렀다.
3번은 베리가 건 것과 똑같은 침묵 스킬이었다. 베리가 신의 속도로 물약을 먹자 이현은 직후 0번에 놓인 연속 데미지가 들어가는 도트 스킬을 시전시켰다. 그리고 7번을 눌러 베리의 다리를 묶었다.
원래 다리묶기나 발등묶기 같은 경우는 데미지가 들어간 순간 해제되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루스가 지시한 0번에 있는 ‘주신의 응징’은 먼저 데미지를 가하고 다리 묶기를 하면 도트 데미지가 들어가도 디버프가 해제되지 않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도 물론 초당 데미지는 꾸준히 들어갔다. 침묵은 물약을 일부러 먼저 사용하게 하여 쿨타임을 갖게 하기 위한 훼이크라고 할 수 있었다.
“뒤로 두 번 빠지고 바로 1번, F5번.”
탁탁―
백스텝을 한 이현은 김성훈의 지시대로 재빨리 1번과 F5번을 눌렀다. 1번에 있는 스킬은 자신의 공격력을 몇 초 동안 대폭 증가시켜주는 버프 스킬이었다. 그걸 쓰고 F5번에 놓인 광역가시를 소환하자 땅에 박힌 광역가시가 베리에게 얼음공격을 퍼부었다. 공격력을 보니 증폭한 상태로 소환되어 평소보다 딜이 높아져 있었다.
“베리가 실드 쓰고 뒤로 빠지면서 사역수 소환하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도트딜 계속 넣으래. 거리 20미터 벌어지면 F1에 놓인 캐스팅 긴 극딜마법 쓰고 다시 백스텝 두 번. 그렇지, 그렇게.”
“자, 잠깐…! 너무 빨라! 악, 맞았잖아!”
“즉힐하고 도트힐 쓰고 반사보호막 두른 상태로 2, 4번 차례로.”
백스텝을 쓰면 베리의 사역수가 달려오고 가까이 가면 베리의 스킬 사정거리 안에 들어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루스의 지시와 김성훈의 깨알 같은 팁에 이현은 어찌어찌 잘 살아남아 베리의 피를 3분의 2가량을 깎는데 성공했다.
[베리베리: 이거 힐러님 아닌ㄱ 것 가 ㅌ은데]
“집중이랑 시전속도 스킬 쓰자마자 F4 누르고 베리한테 파고들어서 9번에 있는 근거리 기술 써.”
“안 돼! 맞잖아!”
“즉힐하고 도트힐 다시 넣어. 그리고 8번 계속 눌러. 다섯 번에 한 번 확률로 스턴 들어갈 거래. 그렇지! 들어갔네! 바로 2번, 9번 근접공격 넣어.”
스턴(기절)에 걸려 해롱거리는 베리에게 근접딜을 연달아 넣은 이현은 뒤로 빠지라는 말에 냉큼 뒤로 빠졌다. 이현이 뒤로 빠지자마자 스턴이 풀린 베리가 허공에 홱 마법구를 휘둘렀다.
“와, 루스 감 대박 좋네.”
“그 다음 뭐야!”
“베리가 사역수 피 흡수해서 채우면 다시 스턴공격 날리고 연속기 터질 때가지 2번 6번 번갈아서 써. 확률 연속기 터지는 순간 신속 주문서 먹고 시프트+1 알겠지? 이번 한 쿨에 죽일 각오로 해라.”
“몰라, 몰라!”
“그리고 연속기 터지기 전에 베리가 마법상쇄 써서 뒤로 빠지면 방패로 무기 스왑하래.”
울고 싶은 심정을 뒤로하고 이현은 베리의 동선을 예리하게 주시했다.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걸 즉힐과 도트힐, 물약으로 버텼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미 옛적에 죽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이만큼 버틴 것도 대단하다 칭찬해 줄만 했다.
“사역수 피 흡수한다! 빨리 가! 지그재그로 달려가. 사역수 온다, 피해!”
“어떻게 피해!”
“잘.”
“아오!”
“F8번 눌러.”
김성훈의 말대로 지그재로 좌표를 찍고 F8번을 누르자 두 번에 한해 마법공격을 상쇄해주는 버프가 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역수의 마법공격이 연달아 2번 날아들었다.
지그재그로 달려가던 이현은 베리와의 거리가 15미터 이내로 좁혀지자 김성훈이 지시한대로 원거리 스킬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연속기가 터질 때까지 자리를 옮기며 2번과 6번에 있는 캐스팅이 2초 이내인 마법공격을 퍼부었다.
“거리는 15미터 유지해. 베리 가장 긴 원거리 딜이 18미터래. 마법구슬 떠오르면 뒤로 빠져서 캐스팅 취소시키고 다시 거리 안으로 들어와서 원거리 딜 넣어. 잘하네, 짜식.”
“사역수! 사역수가 공격하잖아!”
“별수 없어. 시전시간 되는대로 속박걸고 즉힐 쓰면서 버텨.”
“전부 쿨이라고!”
“물약 드세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난리를 부리던 이현은 사역수의 크리티컬 마법공격에 맞아, 스킬 캐스팅이 취소되었다. 힐이고 물약이고 전부 쿨 도는 중이라 쓸 게 없었다. 이대로 두 번만 맞으면 바로 사망이다. 매번 죽는데 어째서인지 이번만은 죽기가 죽어도 싫었다.
비장하게 입술을 깨문 이현은 무기를 방패로 바꾸고 방어모드로 전환했다. 침묵 스킬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피해 다니며 시간을 벌 요량이었다. 무섭게 달려드는 사역수를 뒤로 유인하며 이현은 베리를 피해 주변일대를 빙글빙글 돌았다. 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침묵 스킬 쿨타임이 돌아오자마자 방패를 무기로 교체하고 사역수한테 침묵을 걸었다.
“잘하네! 그대로 백스텝.”
김성훈의 말대로 재빨리 백스텝을 시전한 이현은 대각선 너머에서 똑같이 백스텝을 시전한 베리에게 장거리 스킬을 날렸다. 베리도 날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현의 거리를 그새 가늠한 건지 베리는 역으로 이현과 거리를 벌리고 시간을 끌며 사역수의 디버프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그냥 근접으로 가래. 8번 계속 누르고 스턴 걸리면 F9번.”
“아씨! 말이 쉽지!”
“사역수 침묵 풀렸다. 다리묶기 시전.”
달려드는 사역수에게 다리묶기를 시전한 이현은 베리에게 잽싸게 접근했다. 뒤로 빠지던 베리는 달려오는 이현을 보고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이현은 냅다 스턴기를 날리고 베리의 스킬이 취소되자마자 베리에게 근거리 스킬을 미친 듯이 날리기 시작했다.
“뒤로 사역수 온다!”
“연속기야… 제발, 터져라…. 터져라, 터져라!”
무한 기도를 남발하며 이현은 모든 운을 담아 베리에게 연속기 기술을 날렸다. 바람처럼 뻗어나간 칼날모양의 마법이 베리의 몸을 긋고 지나친 순간, 파방 하고 무언가가 터졌다. 크리티컬이었다.
“그대로 즉딜 하나 더 넣어!”
없는 정신머리로 뭘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본능인지, 우연인지 이현이 누른 건 0번에 자리한 도트 데미지였다.
“악! 눌러도 하필…!”
“아냐! 크리티컬 떴어…. 먹혀라, 먹혀라….”
크리티컬이 들어간 자리에 초당 데미지가 들어가는 도트 크리티컬까지 들어가자 베리베리의 피가 훅훅 깎이기 시작했다. 물약을 먹지 않고 뒤로 재빨리 빠진 걸로 봐선 물약 쿨타임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현과 김성훈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두 손을 맞잡고 화면을 응시했다.
그 기도가 워낙 간절했기 때문인지, 뒤로 빠지던 베리베리의 신형이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훅 무너져 내렸다. 마지막 2초를 남겨두고 들어간 도트 크리티컬 덕분이었다. 베리의 캐릭이 땅 위로 완전히 엎어진 순간, 화면에는 난생 처음 보는 문구가 희게 떠올랐다.
―신마제국의 ‘베리베리’가 사망하였습니다.
―신성제국의 ‘이현’이 신마제국의 ‘베리베리’를 쓰러뜨렸습니다.
―19,008의 공적을 획득했습니다.
―첫 번째 공적 타이틀을 획득하였습니다.
거의 동시였다. 승리의 문구가 떠오르자마자 이현과 김성훈은 누가 먼저랄 것 없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여기저기서 이상한 시선들이 날아들었지만, 그 무엇도 그들을 갈라놓지 못했다.
“성훈아…. 내가 이제까지 욕하고 못되게 군거 미안해.”
“나야말로 이제껏 구박해서 미안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3:1이나 다름없는 결투였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걸 모르는 베리 역시도 말이다.
[베리베리: ...레...알?]
[꼬마천재: 레알]
[베리베리: 이게... 발컨이라고?;;]
[꼬마천재: 나도 놀람;;]
[베리베리: 힐러님... 아니져? 응? 그쳐? 주륵주륵]
김성훈과 기쁨의 포옹을 만끽하고 자리에 앉은 이현은, 베리베리의 통곡에 씩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키보드를 통통 두드렸다. 일단 싸우고 피한 건 제가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신성제국/이현: 제가 한 거 맞아요]
[베리베리: 아니... 힐러님... 이게 말이.. 되는구나ㅠㅠ]
[루스: 이현씨 잘 싸우네요]
[신성제국/이현: 그쵸? 저 잟ㅐ죠?]
[신성제국/이현: 잘했죠?!]
[루스: 네ㅎ]
이현의 눈꼬리가 사르르 접혔다. 옆에서 김성훈이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는 게 진짜 잘했다고 말하는 듯 했다. 평소라면 금방 쳐냈겠지만, 오늘만큼은 그 손에 얌전히 머리를 맡겼다.
[꼬마천재: 꽁냥질 하지 말라고]
[베리베리: ...아냐... 패배한 난 뭐라 말할 자격도 없어... 아, 난 왜 살아있지...]
[마초: ㅋㅋㅋ 현타 쩌네]
주변에 캐릭을 앉히고 관전하던 타협의 길드원들도 박수모션을 취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이현은 그 안에서 어깨를 으쓱하며 스완다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승리의 성취감에 취해 있었다.
이현이 스완다를 캐러간 건 베리베리가 충격에서 벗어나 졸졸 따라다니며 다시 하자고 들러붙기 시작했을 때였다. 그를 매몰차게 밀어내며 이현은 달콤 살벌한 첫 PVP의 승리감 속에 스완다를 채집했다.
“아, 또 하고 싶다.”
실실 웃는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건 뜻밖의 말이었다. 김성훈의 놀랍다는 시선이 이현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현은 그 시선을 보지 못했다. 아까 했던 컨트롤을 더듬거리며 손을 까딱거릴 뿐이었다.
***
[도랑랑: 탭현아 뭐하냐?ㅋㅋㅋㅋ]
[국산콘: 이현아 포스나 짜게 앞장 좀 서봐라ㅋㅋㅋ]
장장 며칠 째였다. 이현은 길드 부지 밖에서 조잘대는 신마족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서인지 화도 안 났다. 처음엔 뭐냐고 노발대발하고 장난 아니었는데, 그래도 면역이 생겼는지 지금은 감흥도 없었다.
[도랑랑: 탭현아, 떼쟁 좀 다시 일으켜봐랔ㅋㅋㅋ 심심해서 좀이 쑤신닼ㅋㅋ]
[신성제국/이현: 닭ㅊㅕ요]
[드라군코: 와낰ㅋㅋㅋ 요새 닭둘기들이 말을 참 이쁘게 하네 ㅅㅂㅋㅋㅋㅋ]
저 얼어 죽을 ‘탭현’은 현재 자유 게시판에 떠돌고 있는 이현의 별칭이었다. 떼쟁 사건 이후, 유저들이 이현을 탭현(Tab+이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원인이 되었다. 저 탭현이란 어원의 출처를 알게 되었을 땐, 정말 캐삭을 결심했었다. 김성훈이 살살 달래며 말리지 않았다면 이현은 지금쯤 다른 서버에 가 있을지도 몰랐다.
“신마족놈들 단합력 진짜 쩌네.”
한명도 아니고 매일같이 돌아가며 찾아오는 신마족의 작태에 이현은 이것도 단합이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감시하듯 따라다니는 베리와 꼬마가 아니었다면 이현은 벌써 몇 백번은 썰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꼬마천재: 그냥 캐삭하고 우리종족 오라니까]
[베리베리: 오기 전에 나랑 한 판 뜹시다! 후하후하]
꼬마와 베리는 이현이 혹여나 길드 부지를 나갈까, 그도 아니면 길드 부지를 침범한 신마족에게 썰리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이현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루스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 같은데, 얼마나 좋은 걸 받은 건지, 글쎄 싫은 내색 한 번 않고 이현을 감시했다.
[신성제국/이현: 그냥 저 두고 가셔도 돼요. 저 혼자 놀게요]
[꼬마천재: 그래놓고 어제 부지 나가서 썰렸었지...]
[베리베리: 우리만 루스한테 겁나 털렸었지...]
[신성제국/이현: 진짜 안 나갈게요]
[베리베리: 힐러님, 지금 루스가 그놈들 잡겠다고 쏘다니는 건 알고 계시남? 공적 다 뺏을 때까지 결투신청하고 다닌다던데...]
[꼬마천재: 걍 사냥 ㄱㄱ]
부지만 나가면 여기저기 숨어있던 놈들이 나타나 검을 들고 달려드는데, 전부 극딜부터 시전하는지라 이현은 손도 못써보고 썰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루스는 홀연히 사라져 한나절이 지나야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게시판이 시끌시끌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도 루스는 어제 이현을 썰고 조롱했던 신마족 놈을 잡겠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신성제국/이현: 근데 대결신청은 거절하면 끝이잖아요. 어차피 같은 종족은 죽이지도 못하는데]
[꼬마천재: ㄴㄴ매크로 걸어놓고 초마다 결투신청 걸면 언젠가는 걸리게 돼있음. 베리도 거기에 걸린 거.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엄청 거슬리거든요? 스트레스 개쩜. 화면에 계속 뜨니까]
[베리베리: 그리고 같은 종족 결투라도 공적은 뺏기니까 다들 ㅎㄷㄷ 해요]
[신성제국/이현: 헐, 진짜요? 그냥 결투인데도요?]
[베리베리: ㅇㅇ 같은 종족도 결투신청으로 지면 공적 깎여요. 그 어쌔신 친구가 말 안해줘요? 그래서 다들 루스 후환이 두려워서 안 덤비는 거고요]
[신성제국/이현: 확실이는 제가 PVP 싫어해서 제 앞에서 잘 안해요.]
[꼬마천재: 진정한 친구일세...]
정말 몰랐다. 워낙 관심도 없고, 누구랑 해보지도 않았던 터라 결투신청 PVP로도 공적이 깎이는지 몰랐다. 게다가 이현은 대부분 솔플로 지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결투신청이랄 것도 받은 적이 없었다. 김성훈도 딱히 이현에게 결투신청을 했던 적이 없었고.
[신성제국/이현: 루스님 진짜 대단하네요...]
[꼬마천재: 무섭져 ㅎㄷㄷ]
[베리베리: 그놈 진짜 겁나 독해요... 그러니까 힐러님은 덤비지 마요. 알겠져?]
이현은 끄덕이기 모션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사냥에 집중했다. 2마리만 잡으면 레벨 업이었다. 며칠간 여기 죽치고 앉아 닥사를 하니 확실히 렙이 오르기는 했다. 마의 LV.79를 넘겼을 땐 루스의 캐릭을 부둥켜안고 눈물까지 훔쳤던 이현이었다.
[꼬마천재: 신성제국 쪽은 마초가 확실님이랑 같이 그 맥초딩? 그 시끼 썰고 다닌다는데]
[베리베리: 확실님 조만간 신마족으로 갈아탄다는 소문 있어요]
[꼬마천재: 힐러님도 갈아타시죠. 우리가 일주일만에 쩔로 만렙을 찍어드리겠음]
“어디서 개뻥을 치고 있어….”
확실히 요즘 김성훈은 마초의 무빙에 빠져 함께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있었다. 말로는 좀 배워야 된다고 하는데, 베리 말대로 조만간 신마족 쪽으로 갈아탈 것 같았다.
[꼬마천재: 아, 그리고 우리 조만간 현모 하는데 확실님이랑 힐러님 같이 봅시다]
[신성제국/이현: 싫어요]
[베리베리: 냉정하시네... 주륵]
[꼬마천재: 차비 드림. 회비 없음. 우리 길마님이 다 내실 거임. 이래도?]
[베리베리: 겁나 좋은 곳에서 봅니다! 맛있는 거 엄청 많고, 술도 많아요!]
[신성제국/이현: 저 술 별로예요]
갑자기 잘 나가다 왜 현모로 얘기가 빠졌는지 모르겠다. 이현은 달려드는 베리와 꼬마를 단칼에 잘라내고 마지막 한 마리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꼬마와 베리는 이현의 뒤에서 아주 조잘조잘, 한 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베리베리: 그러지 말고 봐요. 주륵주륵... 미성년자 아니라면서요. 제가 음료수 사줄게요!]
[신성제국/이현: 저 음료수 잘 안마셔요]
[꼬마천재: 그럼 뭐 드심?]
[신성제국/이현: 커피?]
[꼬마천재: 내가 그까이거 사준다! 사줄 테니까 좀 봅세!]
[신성제국/이현: 싫어요! 저 비싼 것만 먹는단 말이에요!]
끼룩거리며 두더지가 죽자 화려한 날개 이팩트가 캐릭 위로 떠올랐다. 레벨 업 표시였다. 드디어 LV.82가 되었다. 그러나 자꾸 치근덕대는 놈들 때문에 이현은 렙업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었다. 그래서 되는대로 지껄인 건데 그때 루스가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루스: 제가 사줄 테니 한번 보죠]
[신성제국/이현: ...저 진짜 비싼 것만 먹는데요. 엄청 비싼거요. 진짜 비싼거요]
[루스: 뭐 먹고 싶은지 얘기해봐요. 장소 정하게]
소 한 마리 사달라고 해야 하나…. 이현은 제가 먹은 것 중 가장 비싼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성훈과 모임할 때 찾던 선술집이 비쌌던 걸 떠올리고 냉큼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신성제국/이현: 선술집에 파는 거요. 꼬치도 있고, 전복도 있고 조개도 있는 거요]
[루스: 사줄게요.]
[꼬마천재: 다음 현모장소 선술집이다!! 와씨, 제대로 땡겨보자!]
[베리베리: 오예!!! 비싼 거 먹는다!]
벼, 별로 안 비쌌나? 이현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김성훈이 결제할 때 엄청 비쌌던 것 같은데, 루스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서인지 그게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제국/이현: 생각해보니까 저는 길드원이 아니라 가면 눈치 보일 것 같은데... 그냥 다음에 보면 안돼요?]
그러니까 제발 그냥 니들끼리 놀아라. 그런 속뜻을 담아 말했건만, 점프를 하며 주변을 빙빙 돌던 꼬마와 베리가 딱 멈춰 서서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 덤벼들자 이현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꼬마천재: 그게 뭔 상관? 뭐라 하는 새ㄲ1들은 집에 가라고 차비 쥐어주면 됨요. 지들이 낼 것도 아닌데 어쩔]
[베리베리: 왜여. 누가 뭐라고 해요? 어떤 씨*밤바 새ㄲ1가 그러는데요]
[꼬마천재: 아니면 돈내라고 할까봐? 아니라니까. 내가 한달치 커피 기프트콘 쏴줄테니까 와요]
[베리베리: 그럼 난 원두를 수입해서...머신과 함께ㅋㅋㅋㅋㅋ]
[꼬마천재: 오, 좋다. 힐러님 주소 좀 불러봐요. 그냥 원두랑 머신 보내면 되겠네]
[베리베리: 바리스타 한 명 보내주면 되죠? 방긋방긋]
[꼬마천재: 우리 진지해요]
진지하단다. 이현은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할 말을 찾아 다녔다. 아니, 거절할 구실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생각 끝에 마지막으로 주소지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건 반대로 무덤이 되어 되돌아왔다.
[신성제국/이현: 저 길치라 서울에서 못 벗어나요]
[꼬마천재: ㅋㅋㅋㅋㅋㅋ 잘됐네]
[베리베리: 우리 다 서울 사는뎈ㅋㅋㅋㅋㅋ]
[꼬마천재: 뭘 그리 걱정하시나ㅋㅋ 픽업하면 그만인데]
[신성제국/이현: ...사실은 제가 좀 낯을...]
[베리베리: 확실님이랑 함께 오면 되겠네, 오예!]
“눈치가 없어!”
가기 싫어서 이러는 거잖아! 다시 발발거리며 뛰어다니는 걸 보니 꼬마와 베리는 이현이 참석한다고 이미 굳게 믿는 듯했다. 빠져나갈 궁리를 모색하던 이현은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올라온 루스의 채팅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루스: 설마 안 온다는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진 않을 테고]
[신성제국/이현: 갈게요, 걱정마세요. 꼭 갈게요.]
[루스: 그럼 다행이고요]
그래, 가서 아주 대식을 하고 오자. 사준다는데 내 먹성 한번 보여주고 오는 거야. 다신 안 부르게 만들어야지.
원대한 야망을 속삭이며 이현은 다시 한번 꼭 가겠다고 대답했다.
“그 전에 만렙은 좀 찍고 가자.”
만렙까지 남은 레벨은 18이었다. 지금이 LV.82니까 이렇게 일주일만 닥사하면 LV.100정도는 금방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기준은 아무런 방해 없이 무탈한 시간을 닥사에 전념했을 때의 얘기다. 그러니까, 현모를 약속한 그 다음날 바로 별일이 터진 이현에게는 해당사항조차 없는 얘기란 소리였다.
그 사건의 전말은 신성제국의 ‘악신’ 길드원들이 이현에게 시비를 걸면서 시작되었다.
***
‘악신’은 길드순위 2위를 달리고 있는 대규모 길드로, 현재 길드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타협은 없다’ 다음으로 라히브라 섭에서 두 번째로 공적도가 높은 신성제국쪽 길드였다. 개개인의 공적치가 높은 타협과 달리 인원수로 공적을 획득한 길드라는 점에서, 세간의 평이 그리 좋지 못한 길드이기도 했다. 실제로도 악신 길드원들 개개인의 공적치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악신은 유저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한 길드였다. 인성문제로 말이 많은 건 물론, 머릿수도 많아 분열이 상당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악신의 길마조차 이를 감당하지 못해 두 손 들고 방목하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덕분에 유저들 사이에서 악신은 ‘개개집단’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개같은 인성을 가진 개같은 집단이라는 뜻이었다.
그 악신 길드가 이현을 건드리기 시작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오랜만에 루스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땅을 찾은 이현이 마을에서 그 ‘악신’ 길드원과 마찰을 빚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현은 그 누가 물어도 결백을 주장할 수 있었다. 먼저 시비를 건건 악신 길드라고 말이다. 한데, 머릿수가 딸리고 길드가 없다는 이유로 아주 개무시를 당했다.
“아, 진짜 뭐하자는 거야!”
“기다려. 그쪽으로 바로 갈 테니까.”
옆에서 던전을 돌던 김성훈이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이현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악신 유저들을 노려보았다. 그냥 오랜만에 잡템 좀 정리하려고 온 것뿐인데 어느새 또 사건에 휘말렸다. 아니, 시비에 말려들었다.
[이현: 창고 보고 있었다고 몇 번 말해. 그리고 내가 욕했어? 욕했냐고. 왜 난데없이 욕을 하고 지5랄인데]
[달래: 와낰 인성봐라ㅋㅋㅋㅋ 혼자 열폭 쩌네ㅋㅋㅋ]
[이현: 지들도 없는 인성을 왜 나한테 찾는지 모르겠네. 귓말로 열폭하는 그쪽 길드원 꼬락서니나 보고 말하세요]
[달래: 탭현아ㅋㅋㅋ 요새 루스가 너 안 썰고 다니냐? 아직 겜 할만한가 보다? 우리가 좀 지랄맞게 굴어줘? 우리 길드랑 협정 맺은 신마족 길드 있는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개1같이 나가는 수가 있어ㅋㅋㅋ]
[개발괴발: 그러게 공손하게 말할 때 듣든가. 지가 쌩까 놓고 어디서 지1랄 염*병이야. 길드이벤트 한다고 몇 번을 말하냐고]
[달래: 길드 없는 색히가 이런걸 알리가 있나ㅅㅂ]
그놈의 이벤트가 뭔지, 아까부터 아주 죽일 듯이 달려든다. 참 기도 안 찼다. 겨우 루스한테 귀환허락을 받고 마을로 귀환했건만, 설마 이런 터무니없는 시비에 걸릴 줄이야. 제 겜생에 마가 꼈다며, 이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만해도 이현은 스완다를 처분할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상점에서 잠텝을 처리한 이현은 유난히 많은 유저들이 몰린 중앙 분수대로 향했다. 창고지기에게 맡긴 물건을 찾기 위함이었다.
창고에서 스완다와 함께 팔만한 값비싼 아이템을 찾고 사냥하다 얻은 귀속 아이템을 쟁여 넣을 때만 해도 즐거웠었다. 유독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간다고 느꼈지만, 근처에 유저가 많아 그런갑다,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 말이 저를 향한 욕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정리를 끝낸 이현이 창고의 인벤토리를 닫았을 때였다.
“…뭐야?”
처음엔 필드 한가운데 있는 줄만 알았다. 그도 그럴 게, 수십 명의 유저가 몹처럼 이현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릭 위로 떠오르는 글이 쉴 새 없이 화면을 장악했다. 채팅창을 가득 채운 말은 욕이었다.
그걸 본 순간 이현은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이현: 님들 뭐하는거? 얻다대고 욕질이에요]
[달래: 어이 **없넼ㅋㅋㅋ 있는대로 쌩1까놓고 한다는 소리 봐라]
[미란다: 이런 새ㄲ1한테 말한들 뭐함?ㅋㅋㅋ 아, 오랜만에 개열받네]
“뭐라는 거야.”
쌩깠네, 뭐네 하며 덤벼드는 말에 이현은 급히 채팅창을 올려 대화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처음을 찾아 읽었을 때, 이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쩐지 제가 죽을죄라도 진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달래: 님. 님아.]
[달래: 님아, 저희 길드이벤트로 스샷찍을 건데 잠시 옆으로 나와주심 안될까요?]
[악신자: ?]
[미란다: 저기여, 이현님. 대답좀요.]
[달래: 이현? 앜ㅋㅋㅋㅋ 탭현님이네.]
[악신자: 헐 진짜네ㅋㅋㅋ 진짜 탭현이네ㅋㅋ 아, 뭐지. 내가 왜 다 반갑지ㅋㅋㅋ]
[달래: 탭현님.]
[달래: 대답좀요.]
[미란다: ㅡㅡ]
[달래: 탭현님, 잠시 옆으로 비켜달라고요.]
[달래: 아놔]
[악신자: 탭현아, 좀 비켜달라고. 우리 스샷 좀 찍자고!]
[달래: 아, ㅅ1밬ㅋㅋㅋ]
[미란다: 이현님.]
[악신자: 아갈 털리고 싶나, 막 쌩1까고 있네]
[달래: 좀 비켜달라고.]
[미란다: ㅋㅋㅋㅋㅋ ㅅㅂ 줘패고 싶네]
창고를 보고 있던 사이 이런 말이 오갔을 줄은 몰랐다. 이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창고를 보느라 못 봤다고,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이현의 사과는 무참히 짓밟혔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악신 길드원들이 저자세로 나오는 이현을 보고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달래: 와나...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어처구니가 없네ㅋㅋㅋ 왜 이제와서 사과야ㅋㅋㅋ]
[악신자: 얼척없네 ㅅㅂ]
[악신자: 루스한테 겁나 썰린다더니, 너무 썰려서 대1가리가 나갔나]
[미란다: 아 새1끼 다이다이 드립 찰지게도 치네]
그때부터 악신길드의 조롱이 시작되었다. 일대 다수로 덤벼드는지라 이현도 전부는 받아치지 못했는데, 옆에서 노발대발하는 이현을 본 김성훈이 이를 보고 바로 달려온다고 한 것이었다.
길드가 이렇게 절실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받아주는 곳도 없을뿐더러 들어가기 싫고 귀찮아 그냥 두었는데, 이게 다 이런 상황에 힘을 얻기 위한 초석일 줄이야. 아, 그냥 캐삭하고 타협 길드나 들어갈까. 그래도 나 받아준다는 곳 거기가 처음이었는데.
[달래: 쫄았네ㅋㅋㅋ ㅈ도 없는 새ㄲ1가 덤비기는 왜 덤비냐]
[이현: 알겠으니까 좀 ㄲㅓ져요]
[악신자: 아 개빡ㅋㅋㅋㅋㅋ]
[달래: 돌았나ㅋㅋㅋㅋ]
무차별 대결신청이 걸려온 것도 그때였다. 저들끼리 짜기라도 한 듯 거절하면 다른 이가 다시 신청하고, 또 거절하면 다른 이름이 또 떠올랐다. 근데 그게 직접 당해보니 정말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달래: 대결은 왜 자꾸 거절하시나ㅋ 오지는 척 쩔더니 벌벌 떠시나봄ㅋㅋㅋ]
[악신자: 말과 행동이 같은 탭현이]
[달래: 애쓴닼ㅋㅋㅋㅋ 그러게 왜 나대고 그래ㅋㅋㅋ 지랄하느라 **힘들지?ㅋㅋㅋㅋ]
[이현: 어쩌라고ㅅㅂ]
[달래: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ㅋㅋㅋ 탭현아, 형이 아는 신마족한테 연락했는데 너 잡으러 온다네? ㅈ1랄한번 떨어야지? 우리 탭현이 좀 썰리고 다녀야겠다ㅋㅋㅋ]
“아 진짜!”
“야, 일단 무시하고 내 쪽으로와.”
“어딘데.”
“이스키나 마을.”
욕을 퍼붓는 이들을 뿌리치고 이현은 바로 귀환포탈을 타고 이스키나 마을로 이동했다. 이스키나 마을은 베히아와 학살의 대전장으로 갈 수 있는 포탈 마을이었다. 모든 마을의 경유지로 자리 잡힌 이곳은 신성제국의 메인 거점지로 규모도 어마어마했고, 다른 곳보다도 화려하고 유저들도 많았다. 고로, 몸을 숨기기에 이만한 곳도 없단 소리였다.
“빨리 오랬는데….”
금방 갔다 오겠다고 약속하고 받은 외출이라 안 가면 루스가 또 잡으러 올지도 몰랐다. 이현의 말에 김성훈은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금세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날리기 시작했다. 대상자는 ‘마초’였다.
“마초님한테 포탈 뜨는 시간 정해서 포탈 앞에서 보자고 해야겠다.”
김성훈이 마초와 귓속말을 할 동안 이현은 중개인을 찾아가 물약과 주문서를 사고 모든 도핑물품을 재정비했다. 돈이 아깝긴 했지만, 혹시 몰라 소생석도 샀다. 협정 맺은 신마족 어쩌고 한 말이 나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현이 막 상점을 나왔을 때였다. 루스에게 귓속말이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띠링―
[귓속말/루스님으로부터: 이현씨, 얘기 대충 들었으니까 위치 찍어 보내요]
[귓속말/루스님께: 루스님 저 그냥 내일가면 안돼요...?]
[귓속말/루스님으로부터: 위치요]
어딘지 살벌한 말투였다. 침을 꼴깍 삼킨 이현은 이스키나 마을 위치를 찍어 냉큼 보냈다. 별수 있나, 일단 저부터 살고 봐야지.
[귓속말/루스님으로부터: 포탈 열리면 바로 갈 테니까 얌전히 있어요]
이현이 급히 괜찮다고, 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 이후 귓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이랄까, 미친 삼총사 중 덤앤더머 놈들이 귓속말을 날리기 시작했다.
[귓속말/베리베리님으로부터: 힐러님 ㅠㅠ 어떤 새ㄲ1에여! 내가 ** 다 조1져줄게요]
[귓속말/꼬마천재님으로부터: 어떤 씨2밤바 새ㄲ1가 나대고 지2랄들?]
[귓속말/베리베리님으로부터: 나 칼 갈고 있으니까 금방 갈게요. 힐러님, 걱정 마요. 다 ** 줄게여]
[귓속말/꼬마천재님으로부터: 어떤 개*호러*자식인지 닉넴부터 대셈. 발라버려야지, 새ㄲ1들이 안되겠네]
[귓속말/베리베리님으로부터: 미2친 개8ㅆㅂ 노무들 거시기를 다 터쳐벌라! 내가 복수해 줄테니까 거기 딱 있어여!]
뭔 말을 못하겠다. 왜 지들이 더 난리지…. 여기서 괜찮다고 사양하면 저를 죽일 것 같아서 이현은 조용히, 아주 냉정히 그 말을 전부 쌩까버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났다.
[신성제국/달래님의 외침: 개 오지는 탭현이 위치제보하면 백만씩 드림~~~~~~~~~~]
[신성제국/악신자님의 외침: 지1랄맞은 이현아ㅋㅋ 다이다이좀 뜨게 이리 좀 와봐라]
[신성제국/미란다님의 외침: 개*지1랄 하는 인성천재 탭현이 찾습니다~!]
신성제국 내 서버 외침이었다. 보통 파티를 찾거나 거래를 할 때 대게 사용하지만, 이렇듯 시비를 걸 때나 어그로를 끌 때도 보란 듯이 사용하기도 했다.
작정이라도 한 듯 채팅창을 도배하는 악신 길드원의 외침에 이현은 금세 유명인이 되었다. 그 탓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유저들이 이현의 주변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개중엔 악신처럼 서버외침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성제국/나이든형님의 외침: 나도 좀 끼자ㅋㅋㅋ 우리 섭 떼쟁 다시 일어나냐?ㅋ]
[신성제국/루디아님의 외침: 포탈 열리기 전까지만 싸워라]
[신성제국/개이별님의 외침: 탭현아, 오골계 섬멸작전 좀 짜봐라]
[신성제국/나비비님의 외침: 이 **들이 어디서 서버외침으로 지라ㄹ들이야, ** 적당히 안 하냐?]
그 놈의 탭현은 왜 이렇게 거론되는지 모르겠다. 이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유저들이 쓴 글을 노려보았다. 무슨 떼쟁 못해 죽은 귀신들이 붙었나.
“야, 보지 마. 포탈 카운트다운 잡혔어.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릴 거니까 준비해.”
“렙업이 진짜 나 싫어하나 봐.”
우울한 표정으로 지도를 펼친 이현은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화면을 바라보았다. 포탈이 열리기 1분 전부터 서버에서는 카운트다운이라는 걸 해줬다. 유저들에게 포탈 위치와 시간을 제공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상대 종족이 타고 오는 포탈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 지도에 표시되는 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갈 수 있는’ 포탈뿐이었다.
“얌전히 기다리랬는데.”
“채팅창 안 보이냐? 뭘 하든 가서 해라, 제발.”
뭐, 내 이름 도배된 게 내 탓인가. 이현은 괜히 채팅창을 화면 끄트머리로 옮기며 투덜거렸다. 그래봤자 시야에서 사라지진 않았지만, 일단 한눈에 들어오진 않으니 적어도 양심은 덜 찔렸다.
“야, 근데 포탈 앞에서 신마족 마주치면 끝이잖아.”
“우리랑 신마족 포탈은 안 겹치거든? 우리쪽 지도에 표시되는 건 넘어갈 수 있는 포탈뿐이야. 신마족이 타고 오는 포탈은 우리 쪽에 표시되지도 않고 애초 우리 포탈이랑 위치도 달라.”
“뭔 소리야. 나 저번에 끌려갈 때 같은 포탈 탔거든?!”
“이걸 진짜…! 오고가는 포탈이 다르지 포탈은 다 탈 수 있거든? 일방통행이라고, 일.방.통.행.”
그러니까, 한 번 넘어오면 넘어온 포탈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들었던 것 같긴 하네.”
“퍽이나.”
코웃음을 치는 김성훈의 옆통수를 괜히 노려보던 이현은 ‘떴다!’하고 외치는 소리에 냉큼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지도에 표시된 포탈은 총 3개였다.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잡힌 포탈의 위치는 ‘이그디아 사막’이었다.
“가자.”
포탈 위치가 뜨자마자 마을에 대기하고 있던 유저들이 대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부 신마제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혹여 뒤처질까 이현도 김성훈의 뒤에 바짝 붙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초님 넘어왔다니까 합류하자.”
줄을 선 듯 쪼르르 이동하는 유저들 틈에서 이탈한 김성훈이 난데없이 길옆으로 솟아오른 산을 타기 시작했다. 어떻게 올라간 건지, 이현이 몇 번 시도해봤지만 미끄러지기만 할뿐 발 한쪽도 올리지 못했다.
“아오, 이 띨빡이 새끼!”
눈치 보는 이현의 이마에 필살 딱밤을 먹인 김성훈은 이마를 쥐며 고통스러워하는 이현을 옆으로 치우고 직접 이현의 캐릭을 움직여 벽을 비비고 올라가 산을 타주었다.
“아프잖아…!”
씩씩거리는 이현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산을 탄 캐릭 너머에는 비석 같은 것이 있었다. 산턱의 중간 부분, 움푹 팬 지형에 징그러울 만치 다닥다닥 박힌 수십 개의 비석이.
신마제국에서 넘어온 유저들이 몰래 설치해놓은 대량의 ‘부활포트’였다
“와, 새끼들. 여기 다 박아놨네.”
부활포트는 상대 종족을 썰러 다닐 때 자기 땅으로 귀환하지 않기 위해 유저들이 설치하는 필드 내 부활 아이템이었다. 부활포트에 등록한 캐릭은 최대 10번까지 설치한 장소에서 되살아날 수 있었는데, 파괴되지 않는 이상은 하루 동안 효과가 유지되었다. 그걸, 심지어 수십 개나 되는 것을 이현과 김성훈이 발견한 것이다.
“다 뒤져버려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이현과 달리 김성훈은 쌍칼을 꺼내들고 즉시 부활포트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미친놈처럼 썰어내기 시작했다. 퍼석퍼석 부서지는 부활포트를 바라보던 이현도 뒤늦게야 합류해 공격을 퍼부었다.
김성훈과 이현이 부활포트를 없애는 이유는, 부활포트를 설치하는 신마족들 중에 좋은 의도로 활동하는 놈이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부활포트를 설치한 건, 어쨌든 여기 와서 상대 종족을 뒤치기 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했기에 일단 보면 다 없애야 했다.
지금쯤 아마 다들 ‘등록한 부활포트가 공격받고 있습니다.’라는 친절한 알림을 받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노발대발하며 자살을 하려는 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혹여 진짜 오기라도 할까 이현은 평소 쓰지도 않던 광역 기술까지 총 동원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신마제국 ‘팬텀’님의 부활포트를 파괴하였습니다.
마지막 남은 부활포트가 파괴되자마자, 김성훈과 이현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무서운 속도로 그곳을 벗어났다. 뒤도 안 돌아보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미친 듯이 날고 기며 산을 타고 도망쳤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은근 통쾌하네.”
숨 돌릴 쯤 됐을 때 이현이 내뱉은 말이었다. 이현은 좀 전에 미친 듯이 스킬을 퍼부었던 기억을 재생했다. 기분이 수직상승했다. 이게 바로 스릴인가. 어쩐지 제 캐릭도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이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김성훈의 뒤를 훨훨 날듯이 쫓아갔다. 그저 술래잡기를 하는 심정으로 김성훈의 뒤를 따라간 것뿐인데, 분명 그랬는데, 정신을 차렸을 땐 웬 시정잡배 놈들에게 포위당한 후였다. 정확히는 ‘악신’ 길드와 ‘언록’이라는 신마족 길드집단이었다.
“…그냥 나 좋다는 타협이나 가야겠다.”
협정 맺은 신마족이 있다더니, 거짓은 아니었는지 신마족 길드 하나가 이현을 노리고 하이에나처럼 다가왔다. 이를 보자마자 이현은 캐삭을 결심하며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가만히 사태를 관망했다. 옆을 힐끗 보니 웬일인지 김성훈도 모든 걸 포기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김성훈과 이현을 둘러싼 신마족만 해도 장장 몇십은 되었으니 말이다.
이현이 양 진영에 포위된 건 이그디아 사막을 코앞에 두었을 때였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모래가 뒤덮인 세상이 나오는데, 불과 몇 미터를 남겨두고 이현이 그만 발을 헛디뎌 산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허둥지둥 다시 산을 오르려는데, 그냥 밑에서 가자며 김성훈이 산에서 내려와 근처를 떠도는 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반대쪽 산에서 개미떼처럼 유저들이 우르르 내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냥 영문도 모른 채 포위당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현과 김성훈이 그랬듯 산을 타고 오다 이현을 보고 뛰어내린 듯했다.
[달래: 꽁무니 빼느라 아주 용을 쓰넼ㅋㅋㅋ]
[악신자: ㅋㅋㅋ그럼 되나. 우리가 얼마를 꼴아박고 찾았는데]
[미란다: 탭현아, 질질 짜는거 아니지?ㅋㅋㅋㅋ 우는줄ㅋㅋㅋ]
[괴발개발: ㅈㄹ같이 덤벼들더니 지금은 입구1녕이 처막혔네]
[달래: 쫀 거겠짘ㅋㅋㅋ 여기서 루스 나타나면 겁나 웃기겠다ㅋㅋㅋ]
[신마제국/궁궁이: 헐, 진짜 탭현이네?]
[신마제국/백끼형: 루스가 건들면 죽인다던데;; 이거 건드려도 되는 거?]
[신마제국/발닥개: 뭘 굳이 허락을ㅡㅡ 썰고 입닦으면 끝이지]
[미란다: 제보ㄱㄱ 루스랑 같이 썰자]
[악신자: 메인 함 가야제?ㅋㅋ 스샷 찍고 자게 출몰시켜야 않겠냐?ㅋㅋㅋ]
조롱 가득한 글을 보자 이현의 의지가 더 굳세졌다. 그래, 이렇게 된 거 망캐라고 생각하고 후련하게 털어내자. 나 좋다는 길드 찾기도 쉽지 않은데 오랄 때 가야지, 암.
“루스한테 쩔 해달라고 하면… 죽이려나?”
그래도 꼬마나 베리는 한 말이 있으니, 매달리면 해주긴 하겠지. 한번 마음먹으니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주를 이뤘다. 이현은 아이템을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며 점차 멘탈을 회복했다. 주변을 깔짝거리던 언록길드가 이현에게 딜을 넣기 시작한 건 그 직후였다.
“나만 보이냐?”
김성훈을 안 건드리는 게 조금 아니꼬웠지만, 그렇다고 같이 썰어달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현은 착잡한 표정으로 불쌍한 제 캐릭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김성훈은 혼자 누군가랑 열심히 귓속말 중이었다.
“깔짝대느라 아주 애를 쓰시네.”
죽이려면 극딜을 써서 죽이든가, 깔짝깔짝 감질나게 찔러대는 게 아주 밴댕이들이 따로 없었다. 그래놓고 이현이 아무런 반응도 없자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아주 난리를 쳤다.
[달래: 뭐지ㅋㅋㅋ 너무 무서워서 입이 붙었나?ㅋ]
[신마제국/도신: 나 같음 열받고 쪽팔려서 닉세탁이라도 하겠다ㅋㅋㅋ]
[신마제국/궁궁이: 탭현이 방명록 가봤냐? 욕이 아주ㅋㅋㅋㅋ 닉세탁해도 방명록 삭제 안돼서 누군지 다 알게 돼있음ㅋㅋ 캐삭밖에 없다]
[신마제국/광광이: 봘포트 박고 ** 썰어야겠넿ㅎㅎ]
[신마제국/백끼형: 겁나 좋겠넼ㅋㅋㅋ 따라다니며 썰어준다는 사람도 다 있고ㅋㅋㅋ]
“그냥 좀 죽여라! 더럽게 말 많네!”
“그냥 쌩까.”
아까까지만 해도 열심히 귓속말 중이던 김성훈이 지금은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여전히 김성훈의 캐릭은 한쪽에 팽개쳐져 있었다. 건들 생각도 않는 게, 무슨 소 닭 보는 듯 했다.
[달래: 좀 팔딱거려봐라ㅋㅋㅋ 이젠 대꾸도 안햌ㅋㅋㅋ ㅎㄷㄷ 떨고 계시나벼?ㅋㅋ]
[이현: 단체로 와서 ㅈㄹ들이야. 혼자 와서 좀 덤벼봐라, **들아]
[달래: ㅋㅋㅋㅋㅋㅋ아, 또 오지는 척인 이현이]
가만있으면 몇 시간 동안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말한 건데, 여지저기 올라오는 글이 전부 ‘ㅋㅋㅋㅋㅋ’로 시작되는걸 보니 어지간히도 빡친 모양이었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노발대발해서 떠들어대던 언록길드가 이현을 향해 떼로 달려든 것이다.
“이제야 좀…응?”
벗어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이현의 입꼬리가 실룩 올라갔다. 그러나 그건 잠시 후 도로 시무룩 내려갔다. 이현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껌뻑거렸다.
“…왜 안 죽지?”
분명 열심히 후려 맞고 스킬에 휩싸여 썰리고 있는데, 캐릭이 죽지 않고 있었다. 버그인가? 이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분명 피가 훅훅 깎이는 게 보이는데, 깎이다가도 금세 다시 풀로 차올랐다. 가만 보니 초 안에서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아주 파도를 타고 있었다.
“뭐, 뭐야….”
혼란에 접어든 건 이현 뿐만이 아니었다. 이현을 썰고 있는 언록 길드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신마제국/광광이: ?]
[신마제국/백끼형: ;;;;]
[신마제국/도신: 뭐야?]
[신마제국/궁궁이: ???????]
의문 가득한 채팅창을 보던 이현은 옆에서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김성훈을 바라보았다. 김성훈이 입을 틀어막고 책상을 내려치며 웃고 있었다. 다시 한번 이현이 눈이 껌뻑거렸다.
뭐지? 내가 아주 중요한 걸 놓친 것 같은데…. 이현의 시선이 다시 화면으로 향했다. 시선이 닿은 곳은 지도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채팅창이었다. 그제야 이현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신성제국의 ‘힐묘’가 사용한 광명의 기도로 1520의 생명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신성제국의 ‘나는힐도사’가 사용한 생명의 손길로 1200의 생명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신마제국의 ‘도신’이 사용한 암습결계로 1600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신성제국의 ‘낭랑낭랑’이 사용한 주신의 빛으로 1450의 생명력을 회복하였습니다.
화면을 돌려 악신 길드원 쪽을 바라보자 그 뒤로 수십이나 되는 힐러집단이 이현에게 힐을 넣어주고 있었다. 지도 반경 너머에 있던 터라 출현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니… 나 죽어야 되는데….”
“푸핫! 네가 언제부터 죽고 싶었냐? 살고 싶다고 혼자 난리란 난리는 다 떨던 새끼가.”
“…….”
이제까지 해왔던 전적이 있던 지라 이현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못 들은 척 힐러집단을 클릭해 살펴봤는데, 저도 모르게 ‘헉’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힐도성(힐러+마도사)으로 유명한 힐러집단인 ‘여명’ 길드였다.
아니, 근데 쟤들은 왜 날 살리는 거지? 놀란 것도 잠시 이현의 고개가 갸웃 틀어졌다.
“근데 왜 날 살리는데?”
여명 길드는 신성제국 내 악신 다음으로 공적이 높은 길드였다. 아니, 따지고 보면 악신보다 더 추앙받는 길드랄까. 그도 그럴 게, 머릿수로 공적을 올린 악신과 달리 여명은 고작 30명으로 악신에 버금가는 공적을 올린 힐도성들이기 때문이다. 힐도성이 무엇이냐, 하면 힐과 공격을 동시에 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짧게 말해, 컨들이 아주 비상하게 좋은 자들이란 뜻이었다.
“타협이랑 협정맺은 길드니까.”
김성훈은 실실 웃으며 이현을 열심히 썰고 있는 언록 길드원 하나를 잡아 족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기습에 걸린 신마족은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김성훈의 검에 속수무책으로 발려야 했다.
“너 절대 안 죽어.”
왜냐고 묻지도 못했다. 실제로 지금 죽지 않고 있었으니까. 김성훈은 다른 한 명을 또 잡아 족치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마치 이현의 생각을 정정이라도 해주듯 말이다.
“누가 너 살린다고 타협 죄다 소집했거든.”
“아니, 나 그런 거 필요 없는….”
“딱 맞춰 왔네.”
이현의 시선이 재빨리 지도로 향했다. 벌레가 몰려들 듯 지도 위로 붉은색 점이 바글바글 차올랐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지 이현을 덮치던 공격들이 소강상태로 돌입했다. 그리고 소강상태로 접어들던 공격이 딱 멈췄을 때였다. 이현에게 힐을 넣어주던 힐러들이 갑자기 법봉을 꺼내들고 언록길드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타협은 루스를 선두로 놀라 버벅거리고 있는 악신길드를 향해 벌떼처럼 덤벼들었다.
[신마제국/광광이: ****들이! ** 죽ㅇ ㅕ버ㄹ]
[신마제국/도신: ** **고 싶냐 개**샊 ㅣ]
[달래: **]
[악신자: 뭐 이**노무 **ᅟᅵᆮ갸]
[신마제국/백끼형: **이 **개]
[미란다: 타협 이**들이 뒤지ㅣㄹ라고]
무자비한 학살 속에 여기저기서 욕설이 쏟아졌다. 뒤로 훌쩍 물러나 그 광경을 보던 이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찌르고 베고 하는 타협 길드의 모습이 어쩐지 물 만난 물고기들 같았다. 화면을 돌려 힐러집단을 보자 타협보다 더 날아다니고 있었다. 힐도성이라는 말이 유저들 사이에서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나는 덤비지 말아야지….”
앞으로 여명을 보면 허리를 굽히고 다니리라 다짐하며 이현은 혹여 피해라도 입을까 구석에 파고들어 캐릭을 쪼그려 앉히고 숨어 있었다. 무참한 학살이 끝난 건, 한참 뒤였다. 쉴 새 없이 올라가던 채팅창이 멈췄을 때가 되어서야 이현은 캐릭을 벌떡 일으켰다.
루스가 이현을 부른 것도 그때였다.
[신마제국/루스: 이현씨 이리와요]
혹여 저도 죽일까 싶어 이현은 냉큼 루스한테 달려갔다. 루스의 앞에는 여명과 타협의 포획에 묶인 유저들이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동질감이라도 느꼈는지, 이현의 표정이 짠해졌다.
[신마제국/루스: 이현씨한테 사과하고 싶다네요]
이현의 시선이 그제야 무릎 꿇고 앉은 유저들에게 향했다. 죽 훑어보니 이현을 조롱했던 악신길드의 달래부터 그와 협정 맺은 언록길드 놈들까지 골고루 앉아 있었다. 그러나 루스의 말과 달리 그들에게서 나온 말은 험악 그 자체였다.
[달래: ** 누가 사과를 한다고 **이야 ****들이]
[신마제국/광광이: 아, 개빡치네]
[신마제국/도신: 아 ㅅㅂ 웃음밖에 안나온다ㅋㅋㅋㅋㅋ]
[악신자: ㅅㅂ 니들 협정 맺었었냐?ㅋㅋㅋ 아,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양쪽에 서 있던 여명과 타협이 악신과 언록을 무참히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죽으려고 하면 양쪽 진영 힐러들이 피를 채우고, 만피가 되면 다시 서걱서걱 썰고 포획해 앉혔다.
“잔인한 새끼들….”
그걸 딱 다섯 번 반복하자, 욕을 내뱉던 악신과 언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딱 다물고 얌전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복수를 가장한 미친놈 삼인방의 조롱이 시작되었다.
[신마제국/베리베리: 아이고, 개개신이라고 아는가 모르겠네!]
[신마제국/꼬마천재: 겁나 돌빡들이라 알 턱이 있나. ㅉㅉ 문명에 뒤쳐진 새ㄲ1들 같으니라고]
[신마제국/마초: ㅋㅋㅋㅋㅋ 그걸 몰라?]
[신마제국/베리베리: 아니, 개개신을 몰라? 우와, 보는 내가 다 쪽팔리네. ㅅ1발, 너무 쪽팔려서 나라면 부1랄을 떼고 닉세탁이라도 하겠다]
[신마제국/꼬마천재: ㄴㄴ저것들 내가 방명록에 욕 겁나 써놔서 세탁해도 털릴 각. 걍 캐삭이 답]
[신마제국/마초: 어이쿠! 입꾸녕이 붙었나. 왜 말을 안 함? 내가 악신이다, 내가 바로 개개길드다 왜 말을 못하냔 말이야!]
[신마제국/꼬마천재: ...1절만 해라. 어디 쌍팔년도 패러디를 하고 ㅈㄹ]
[신마제국/베리베리: ㅎㄷㄷ 개소름...]
[신마제국/마초: 데헷. 나도 오글거림]
[신마제국/꼬마천재: 개개신도 모르는 새ㄲ1들은 눈이나 깔고 다녀라, ㅅㅂ]
[신마제국/마초: 앞으로 눈에 띄면 뒤1지는 수가 있음]
[신마제국/베리베리: ㅅㅂ, 개좋겠네. 따라다니며 썰어준다는 사람도 있고ㅋㅋㅋ]
이현이 받았던 욕은 그대로 다시 악신과 언록길드에게 돌아갔다. 출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동안 누군가와 귓속말을 주고받았던 김성훈.
[신마제국/꼬마천재: 그리고 백만이 뭐냐ㅉㅉ 우린 억씩 걸고 제보 받는다, 새ㄲ1들아. 그 돈도 없으면 ㅅㅂ 제보도 하지 마. 없어 보여 그지새ㄲ1들아]
“억…?”
“모르냐? 루스 너 제보 받을 때 매일 억씩 주는데.”
“아오, 저 새끼가!”
그래서 그렇게 쉽게 날 찾는 거였어! 감동도 잊고 이현은 곧 미쳐 날뛰었다. 어쩐지 숨어도 잘만 찾아온다 했다. 설마 억씩 걸었을 줄이야.
이현이 씩씩거릴 동안 미친놈 삼인방은 끝도 없이 악신을 폄하했다. 그 신랄한 조롱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작스레 악신과 언록길드의 캐릭이 하얀 빛이 되어 사라졌다. 게임을 강제종료 한 것이었다. 잡힌 상태에서는 귀환이나 캐릭터 선택으로 나갈 수 없으니, 아예 게임 자체를 강제 종료시킨 것이다.
[신마제국/꼬마천재: ㅋㅋㅋㅋㅋ 강종이 뭐냐ㅋㅋㅋㅋ 아, 겁나 찌질하다]
[신마제국/베리베리: 허걱! 강종하면... 하루동안은 접속 못하는데! 병1신1들ㅋㅋㅋㅋ]
[신마제국/마초: 캬캬캬캬캬캬! 이겼다, 캬캬!]
좋아 방방 뛰는 삼인방을 뒤로하고 이현은 주변을 죽 훑어보았다. 협정을 맺었다고는 하나 섞이지 않은 여명과 타협이 서로를 바라본 채 서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서 있는 여명의 길마 ‘흑백’이 이현쪽으로 걸어 나왔다.
[흑백: 이현님, 안녕하세요.]
[이현: 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흑백: 한번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보네요ㅎ]
[이현: 저요? 왜요?]
[흑백: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음, 루스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기에 궁금해서요ㅎ]
[이현: 아예...]
[흑백: 그래서 말인데요]
[이현: 네]
[흑백: 저희 길드 안 들어오실래요? 힐러님은 항상 환영입니다ㅎ]
[리디아: 이현님, 한번 보고 싶었어요ㅋㅋㅋ]
[나는힐도사: 우와! 진짜 이현님이다ㅋㅋㅋ 이현님. 저희 길드 들어올래요? 제가 힐도성을 만들어드릴게요ㅋㅋ]
흑백이 길드제안을 하자마자 뒤에 서있는 힐러들이 무작정 달려와 이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주변은 금세 아비규환이 되어 이현은 이도저도 못한 채 그 안에 파묻혔다. 그때, 이현을 향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마제국/루스: 이현씨, 이리와요]
그 글을 보자마자 이현은 고민도 않고 냅다 루스한테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뒤로 캐릭을 쏙 숨겼다.
[강바라기: 헐, 이현님. 지금 뭔가 정체성을 잃으신 것 같은데... 님 신성족이에요;;]
[흑백: 귀엽네여ㅎ]
“넌 무서워!”
귀엽긴 개뿔! 이현은 흑백을 노려보며 짐승처럼 경계했다.
[흑백: 야, 너네 현모한다며. 나도 같이 보자.]
[신마제국/루스: 봐서]
[흑백: 저번에도 그 소리하고 나 안 불러잖아, 새ㄲ1야]
[신마제국/루스: 오고 싶으면 직접 알아내서 오든가]
[흑백: 와, 이 새ㄲ1봐라ㅋ 어떻게든 알아낸다, 내가. 기대해라.]
[신마제국/루스: 여기저기 쑤셔대지 말고 조용히나 알아내. 한 번 더 그랬다간 **다]
[흑백: 알았다, 알았어. 새ㄲ1, 살벌하기는]
“뭐야, 둘이 친구잖아.”
루스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간 하는 걸 보면 저렇게 친근하게 대화한 사람은 없었다. 베리나 천재, 마초도 분명 친했지만, 뭐랄까. 흑백하고는 뭔가 더 스스럼이 없달까. 협정도 그렇고 현모에 참석한다는 걸 보아하니 여간 친한 게 아닌 듯 했다.
[흑백: 이현씨도 그때 봐요]
[이현: 아네... 수고요]
[흑백: 네ㅎ 아, 그리고 갈 거면 빨리 가는 게 좋을 걸. 지금 악신놈들이 외창으로 여기 위치 찍었던데. 유저들 포스 결성하고 올 거 같다]
악신을 썰어버린 것으로 모자랐는지, 타협 길드원들 사이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흑백도 ‘ㅎㅎㅎ’만 연발할 뿐, 딱히 다시 피하라고 등 떠밀진 않았다.
[신마제국/루스: 남을 사람은 알아서 놀다 가고, 갈 사람은 포탈 위치 아니까 따라오세요]
[신마제국/기토피아: 잘가라ㅋㅋㅋ 난 놀다가마ㅋ]
[신마제국/코코볼: 나도 놀다감ㅋㅋㅋ 힐러님 잘가요]
[신마제국/불사조: 헐ㅋ 가려고 했는데, 이러심 나도... 남아야 하잖아!]
[신마제국/신이내린캐: 캬! 오늘 길마님 덕분에 오랜만에 다 모이고ㅋㅋ 나도 남아서 더 놀다 가야지]
[신마제국/다이뜨자: 수고~ 난 던전 돌 거 있어서 간다]
[신마제국/스타스타: 저도 가요ㅋ ㅅㄱㅇ]
대부분 남겠다고 나섰기에 루스는 베리와 꼬마, 마초 외 몇 안 되는 타협 길드원을 데리고 이그디아 사막에 있는 포탈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따라오는 인원 속에는 김성훈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최 김성훈이 왜 이렇게 타협의 부지에 목을 매는지 이현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허허벌판이 뭐 그리 좋다고 싱글벙글인지 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현은 그냥 신성족보다 신마족 땅이 더 좋은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종족을 옮기기 위한 큰 그림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어쩐지 벌써부터 노곤해진 느낌이라, 이현은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힘없는 표정으로 루스의 뒤를 쫓아갔다. 돌이켜보니 오늘은 오랜만에 찾아온 파란만장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