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19)

게시글: 라히섭 거신전 떼쟁사건 가즈아!!

작성자: 버들느

서버: 라히브라 / 신마제국

내용: 기대도 안 했던 메인이ㅋㅋㅋㅋㅋㅋ 아니, 우리섭 메인 지금 몇 개얔ㅋㅋㅋ 풍년이로구나!

난 그저 보고 들은 사실을 그대로 알렸을 뿐이고, 탭현이를 탭현이라 불렀을 뿐이고!! 그런고로 당장 원본 간다. 길드소개따위 개나 줘라.

오늘 거신전 뺑이 돈 사람들은 알 거다. 엑저 길드 새/끼들이 봘포트 박아놓고 거신전 앞에서 유저들 아주 개썰면서 꼬장부린 거. 나도 그냥 개발렸다... 아 생각하니 열받넼ㅋㅋㅋㅋ

됐고, 일단 스샷부터 투척한다.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나중에 니들 만렙되면 복수나 해라.

(스크린샷_엑저 꼬장질.jpg)

만렙되면 그냥 저1놈 먼저 찾아가라. 꼭 가라. 알겠냐? 쟤들처럼 던전 앞에 팔짱끼고 줄 서서 꼭 개썰어버려라. 형은... 발컨이라 못 간다... 아 갑자기 눈물이 나네. 휴지 필요 없다... 필요 없다고.

(스크린샷_신마족 전멸.jpg)

보이냐? 던전 앞에 유저들 다 썰린 거? 덫 깔라는 덫같은 소리 하지도 말고, 일단 만렙부터 찍어라. 내가 덫깔다 뒤졌다, ㅅㅂ

(스크린샷_천억은 개뿔.jpg)

근데 죽은 넘들이 왜 귀환을 안하냨ㅋㅋㅋ 다들 그냥 제보질이나 하고 자빠졌네. 여기가 명당이냐? 외창에 엑저 썰어주면 천억 준다는 새ㄲ1는 누구냐? 그 돈은 있냐? 천억은 루스도 없겠다, 이 샹썅바 자식아.

(스크린샷_순삭러.jpg)

그래... 나도 안 갔어. 천억 받는다는 댕댕이는 좀 봐야 않겠냐? 하... 근데 왜 다들 오자마자 엑저한테 녹고 그러냐, 눈물나게. 휴지 필요없다고 했다... 넣어라.

(스크린샷_순삭러들_2.jpg)

(스크린샷_순삭러들_3.jpg)

하... 우리 신마족이 단합력 좋은 건 알았는데 이정도로 좋은 줄은 미처 몰랐다. 짜슥들이 천억에 눈이 멀어가지고 아주 그냥 족족 공적 반납하러 오고 있어... 하도 불쌍해서 형도 벌떡 일어나고 싶더라. 아, ㅅㅂ 잠깐 눈물 좀 닦자.

(스크린샷_신마족 훈장집단_1.jpg)

자, 위에 사진 보이지? 니들은 저게 뭘로 보이냐? 뭐? 잘 안 뵌다고? 눈 좀 크게 뜨고들 봐라. 니들이 그러니까 오골계 소리 듣는 거다, 닭넘들아.

내 눈에만 타협으로 보이냐? 머리 위에 훈장 뜬 거 안 보여? 보이지?? 그럼 답 나왔잖아! 단체로 훈장 단 넘들 타협밖에 더 있냐?!

(스크린샷_타협출몰.jpg)

그래... 나도 첨엔 잘못봤나 했다. 근데 엑저 생키들이 그냥 녹네? 이거 빼박 아니냐? 아놔, 갑자기 배알이 뒤틀리네... 나도 마석 소켓 8개짜리 공적템 좀 함 차보고 싶다...

(스크린샷_거신전 덫_1.jpg)

(스크린샷_거신전 덫_2.jpg)

내가 이 짤을 보기 전까지는 타협이 돈이 궁한가 했다. 근데ㅋㅋㅋㅋㅋ 저거 뭐냐?ㅋㅋㅋㅋ 갑자기 베리랑 마초가 거신전 문앞까지 와서 주변 정리를 하네? 꼬마 자식은 덫까지 설치하고 가더라?

감이 슬슬 오지 않냐? 아니라고? 그럼 지금부터 대화창 눈 크게 뜨고 잘 봐라. 이제부터가 진짜다.

(스크린샷_탭현이.jpg)

(스크린샷_탭현이 종족_1.jpg)

(스크린샷_탭현이 종족_2.jpg)

보이냐?ㅋㅋㅋㅋㅋㅋㅋ탭현이 종족 옮긴거?ㅋㅋㅋㅋㅋ 아 좀 웃고가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 타협놈들이 미쳤나 했다ㅋㅋㅋㅋ 뭐 얻는 게 있다고 여길 오나 했넼ㅋㅋㅋㅋ 아, 눈물 나네ㅋㅋㅋㅋㅋ

(스크린샷_스완나는 가명일 뿐이고.jpg)

이름은 또 왜 바꿨다냐ㅋㅋㅋㅋ바꾸면 뭐하냐ㅋㅋㅋ 루스 저 넘이 세상 다 떠들고 다니는데ㅋㅋㅋㅋㅋㅋㅋ 이현씨란닼ㅋㅋㅋㅋㅋ 어이쿠, 이현씨 포스팟 떼쟁 함 가야죠?ㅋㅋㅋㅋㅋ

(스크린샷_탭현이 도주.jpg)

이거 봐랔ㅋㅋ 들키니까 도망가다 썰린거ㅋㅋㅋㅋㅋㅋ 타협 놈들 눈 뒤집혀서 지금도 신성제국가서 엑저새1끼들 찾아 썰고 다니는 거 아냐?ㅋㅋㅋㅋㅋㅋ

그러게 왜 남의 집 뉴비를 건들고 ㅈㄹ이냨ㅋㅋㅋㅋ 신마족 탭현이=성전 사랑 모르냐?ㅋㅋㅋㅋ

아, 오늘 자게 볼 만 하겠네ㅋㅋㅋㅋ 다들 자게나 보고 있어라. 아주 볼만 할거다.

그리고 [스완나] 좀 보면 다들 인사 좀 해줘라ㅋㅋㅋㅋ 근데 탭현아 정말 궁금해서 그런 건데, 대체 이름은 왜 바꿨냐? 난 너보다 ‘이현’이 어울리는 사람을 아직 보질 못했다.

내가 꼭 좀 부탁하마. 이름 좀 바꿔라. [이현]이라는 훌륭한 이름 내비두고 [스완나]가 뭐냐... 다음에 볼 땐 이현이 돼 있길 바란다ㅋㅋㅋㅋ

다들 내 글 읽는다고 고생 많았다. 마지막은 훈훈하게... 라히섭 무한 떼쟁 가즈아!!!!!

댓글수[20964]

베스트 댓글

-영걸형/신마제국: 우리 섭 떼쟁 이제 누가 일으키냐, ㅅㅂ...

-행행복/신성제국: 덫 설치하다 죽었다는 건 무슨 덫같은 소리지?

-마도기전/신성제국: 탭현아... 왜 거기가서 그러고 있어...

-샤랄라힐/신마제국: 나도 좀 웃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반댓글

-신마쟁쟁/신성제국: ㅋㅋㅋㅋㅋㅋㅋㅋ탭현아 거기서 뭐하냐?

└ 내가 어제 신성제국에서 본 이현은 대체 누구냐;;

└ 이제 탭현이 사칭까지 나오냨ㅋㅋㅋㅋ

-넝마쿨/신마제국: 덫같은 소리래ㅋㅋㅋㅋ 덫은 나만 웃기냐?ㅋㅋㅋ

-비단이/신성제국: 타협이랑 탭현이랑 대체 뭔 사이냐?

└ 탭현이가 맥초딩 죽인 1인자라는 소리가 있음

└ 미쳤냐?

└ ㅋㅋㅋㅋㅋㅋ 아 개웃기네

└ 이현 발컨인거 모르는 새ㄲ1들이 아직도 있네

-밍키멍키/신성제국: 그지 새ㄲ1들아, 니넨 천억도 없냐?ㅋㅋㅋㅋ

└ 넌 진짜 왜 사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디서 ㅅㅂ, 덫같은 소릴 처하고 있어

└ 귓뱅멩이 후려 처1맞고 싶냐?

-드랑/신성제국: 탭현아 ㅠㅠ 다시 돌아와... 니가 있어야 루스가 오지ㅠㅠ 나도 루스 좀 함 썰어보자 ㅅㅂ

└ 이 새ㄲ1들은 있을 땐 거들떠도 안 보더니 가니까 개ㅈ1랄들이네;;

└ 왜 자꾸 탭현이한테 오라가라 ㅈㄹ이냐? 니들이 와라, 닭둘기들아

└ 신마족 탭현이 사랑 또 나왔네 ㅉㅉ

└ 앞으로 탭현이 건들면 죽인다ㅡㅡ

└ 루스가 또 성전가지고 협박하디? 니들은 그러고도 살고 싶냐? ㅉㅉ

└ 아갈 그만 털고 성전 때 보자

-레비압/신마제국: 탭현이한테 –스완나-라는 이름 지어준 놈 누구냐?

└ 탭현이 아니고 스완나라잖아

└ 하... 탭현아, 여기서 이러지 마라

└ 스완나라고

└ 그만 좀 삐약거려라, 이현아... 안쓰럽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탭현아, 왜 여기와서 그래

└ 엇! 탭현이 여기도 출몰하고 그래?ㅋㅋㅋㅋ

-스릉스릉/신성제국: 아니, 타협 놈들 왜 다 우리땅 와서 ㅈㄹ이냐고;;;

└ 님, 누가 님 길드 막둥이 뒤통수 후리고 튀면 님 가만 있을거임?

└ 우리 길드는 내가 발리든 말든 지들만 안 발리면 뭐ㅋㅋㅋㅋㅋㅋ

└ 우리도 그러는데ㅋㅋㅋㅋ 막둥이고 뭐고 지들이 발렸다 하면, 아주 미쳐가지고 연장들고 포탈행이지ㅋㅋㅋ

└ 아 왜이리 불쌍하냐ㅋㅋㅋㅋㅋ

└ 우리 막내는 뭔 발렸다는 말이 없냐... 나도 좀 연장 들고 멋진 복수좀 하고 싶닼ㅋㅋㅋ

-검신검왕/신성제국: ㅋㅋㅋㅋ 탭현아 만렙찍고 꼭 성전 좀 참여해라ㅋㅋㅋㅋ

└ 데려가라, 걍

└ 생각해보니 탭현이는 닭둘기때가 가장 예뻤던 것 같다. 그니까 모셔가라.

└ 예뻤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성전 망칠까봐 걱정되냐?ㅋㅋㅋㅋ

└ 템빨이 곧 컨이다. 루스가 다 해결해 줄 거다, 걱정마라

└ ㅋㅋㅋㅋㅋㅋ 이 님, 탭현이랑 팟 안 해봤고만?

└ 탭현아 어딨냐... 형이 지금 힐러템 구해다 입혀줄 테니까 성전 때 얌전히만 있자.

└ 난 타협과 루스를 믿는다... 믿는다... 믿고 싶다

-띵작띵작/신성제국: 루스랑 탭현이 분위기 나만 이상하냐?;;;

└ 이님 3자대면 4각관계 아직도 모르나 보네

└ 덫같은 소리 그만하고 탭현이 모시러 갈 어쌔신 8포스나 짜봐라

└ 이야, 아직도 루스한테 통수 안맞은 놈이 있었넼ㅋㅋㅋ

└ 오고나서 후회나 하지 마라ㅡㅡ 지금 타협넘들 죄다 미쳐서 제정신 아니다...

└ 엑저 새ㄲ1들 아주 땅을 치겠네ㅋㅋㅋㅋㅋㅋㅋ

[댓글 더보기]

***

내 이럴 줄 알았다. 나른한 정오의 햇볕이 드는 침대 안에서 이현은 핸드폰으로 에르덴의 앱 게시판을 보며 꿍얼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자유 게시판과 홈페이지 메인에 이현의 얘기가 대문짝만하게 떠 있었다.

“왜 죄다 탭현이래….”

탭현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글을 남겨봤지만, 돌아오는 말이라곤 전부 ‘탭현아, 여기서 이러지 마라.’라는 말 뿐이었다. 일부러 다른 닉네임으로 입력했는데도 뭔 댓글만 달면 유저들은 전부 이현을 탭현이로 몰아갔다.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되자 이현도 결국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안 그래도 어제일 때문인지,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그대로 얹혀 밤새 고생까지 한 참이다. 여기서 더 신경 썼다간 탈모까지 생길지도 몰랐다.

“…그냥 확 도망가?”

극단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천장을 노려보며 얼마나 그렇게 제 살 길을 도모하고 있었을까, 때마침 이현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를 확인하자, 김성훈이었다.

그럼 그렇지. 연락 올 사람이 너밖에 더 있냐? 이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왜… 나 아프다고.”

<댓글 단 거 너냐?>

얘는 또 어떻게 알았지? 이현은 눈을 도륵 굴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폭풍 같은 잔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건 얌전히 있으라고 하면 꼭 지랄을 떨어요. 아프면 얌전히나 있을 것이지, 왜 하지 말란 짓을 하고 있냐고.>

“아니, 자꾸 탭현이라고 하니까….”

<너 삐약삐약 발광한다고 자게에 소문 쫙 퍼졌는데, 이젠 아예 뺙현이라고 불리고 싶냐?>

“…….”

아무리 그래도 뺙현은 좀 아니지 않나…. 이현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배도 고픈데, 잔소리까지 들으니 아주 서러워서 죽을 것 같았다.

<하아…. 밥은 먹었냐?>

“먹을 거거든!”

<먹으면 먹는 거지, 소리를 질러.>

“서러워서 그런다!”

<얼른 처먹기나 해라. 아, 그리고 나 오늘하고 내일 일 있어서 접속 못하니까 그렇게 알고.>

“…알겠어, 잘 갔다 와.”

넌 탭현이라는 별명 없어서 좋겠다. 이현은 무언가 억울한 표정으로 침대 위로 축 늘어졌다. 귓가에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는 김성훈의 말이 들려왔다. 대충 힘없이 대답한 이현은 김성훈이 전화를 끊자마자 핸드폰을 옆에 놓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흰색 민무늬 벽지였다.

밥 먹어야 하는데 자꾸 시야가 깜빡깜빡 잠겼다. 밤새 속앓이를 하느라 잠을 자지 못한 몸이 휴식을 요구하는 탓이었다. 억울하면 잠도 안 온다는데 저는 왜 이렇게 졸린 건지, 이마저도 억울했다. 그러나 억울함도 잠시 눈을 깜빡거리던 이현은 얼마 안 가 까무룩 잠들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고요한 방 안을 맴돌았다. 수마는 한참이나 이현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현이 그 안에서 빠져나온 건, 오후 5시가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우우웅―

몽롱한 정신 속에 들려오는 건, 핸드폰 진동소리였다. 움찔거리며 잠에서 깬 이현은 손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에 잡히자마자 멍멍한 정신으로 전화를 받았다.

“왜에… 나 아프다고….”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눈을 감은 채 이현은 김성훈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 너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이현씨.>

“!”

감고 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이현은 급히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번호가 화면에 딱 떠 있었다. 누구지? 이현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 사이 낮은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다정한, 혹은 염려스러운 목소리였다.

<…많이 아픕니까?>

이현의 몸이 흠칫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게, 상대방이 제법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싹하게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가 잘 어울렸던 사내. 그리고 차가워 보였던 남자.

그였다.

***

[이현이 오늘 아파서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하고 내일은 못 들어갈 것 같아요. 이틀 뒤에 뵙겠습니다.]

오후 1시경 타협전용 톡 메신저 채팅창에 올라온 김성훈의 말이었다. 길드 부지 안에서 이현을 기다리고 있던 시열은 핸드폰에 뜬 톡을 확인하고 가만히 턱을 괴었다.

“…….”

김성훈의 말에 톡은 난리가 났다. 베리와 마초, 꼬마부터 시작해 숨어 있던 모든 이들이 튀어나와 안부를 물어댄 까닭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제 있던 일이 화근이 된 게 아니냐며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걸 나른하게 내려다보던 시열은 그냥 체해서 그렇다는 김성훈의 말이 올라왔을 때에야 게임을 제작모드로 돌려놓고 방에서 나왔다.

메신저 알림음 대신 익숙한 벨소리가 들려온 건 그 직후였다. 거실로 향하던 시열은 상대방을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야, 톡 봤냐?>

“그래.”

<그래서 양심은 있냐?>

“뭐, 조금은.”

<와, 서시열 이거 아주 미치셨고만?>

시열과 통화하고 있는 이는 에르덴에서 꼬마천재로 활동하고 있는 강이한이었다. 흑백으로 활동 중인 이정훈과 더불어 시열의 죽마고우이기도 했다.

<애가 아프다는데 넌 뭐 드는 생각도 없냐? 어?!>

“애는 아니지.”

<…너 씨발, 지금 이상한 생각했지.>

“잘 아네.”

시열은 피식 웃으며 거실 소파에 앉아 등을 깊게 묻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약은 잘 챙겨 먹었는지, 챙겨줄 사람은 있는지, 걱정만 내도록 들었다.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심각성이 없어. 너 인마, 그러다 미움받으면 어쩌려고 그러냐?>

“그럴 일 없게 해야지.”

<내가 봤을 때 넌 이미 글러 먹었다. 사람들 앞에서 이름 까발려지고 애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체를 했겠냐. 퍽이나 네가 보고 싶겠다.>

강이한의 말에 시열은 관자놀이를 슬쩍 눌렀다. 이것조차 범주에 넣었다고 하면 욕을 얼마나 더 먹으려나.

“딴 데로 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말로 해라, 말로. 괜히 주변 건드려서 애한테 스트레스나 주지 말고. 어차피 이제 갈 곳도 없을 텐데, 그만 좀 괴롭혀라.>

“그래야지.”

<그래서, 보러 갈 거냐?>

시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 뜻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강이한이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생각하고 고민한 거냐?>

시열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애초 대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이 아닌 듯, 강이한은 대답을 독촉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고민했을 시열의 노고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때 되면 얘기해줘라. 술 한잔 정도는 사주마.>

강이한이 전하는 말의 의미는 좋은 결말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시열은 그 말에서 작은 배려를 보았다. 그래, 그 말은 강이한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다.

“…그래.”

<야, 이런 친구가 어디 있냐? 넌 진짜 나랑 이정훈한테 겁나 감사해야 된다. 알겠냐? 형님들 좀 잘 모셔라.>

“형님은 무슨.”

<야야. 됐다, 됐어.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한다. 아프다는 애한테나 가라, 새끼야.>

“오늘 못 들어가니까 그렇게 알아.”

<네, 네. 그러시겠죠. 어쨌든 갈 거면 애 좀 잘 살펴줘라.>

시열은 한 박자 늦게 대답하며, 이따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통화를 종료시켰다. 전화를 끊자 주변은 금세 적막해졌다. 시열의 시선이 천천히 벽걸이 시계로 향했다. 어느덧 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후부터 시열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그저 하염없이 기다렸다. 5시가 되기만을. 너무 늦지도, 그렇다고 딱히 이르지도 않은 그 시각을.

“흐음, 뭘 먹여야 하나….”

먹을 수는 있으려나. 턱을 슬쩍 괴며 시열은 이현이 먹을 만한 것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죽이 좋으려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을 마친 시열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먹어야 할 텐데.”

얼마나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을까, 시열이 깨닫고 시계를 봤을 땐 어느새 5시가 다 되어 있었다. 5시로 향해 있는 작은 시계바늘을 보며 시열은 곧장 핸드폰 홀딩을 풀고 익숙하게 이현의 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긴 통화음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이어지던 통화음은 얼마 가지 않아 뚝 끊겼다. 이현이 전화를 받은 것이다. 시열은 먼저 말하지 않고 이현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속삭이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에… 나 아프다고….>

늘어지는 목소리가 간지럽게 와 닿았다. 칭얼거리는 억양이 축 가라앉은 게 잠에서 막 깬 듯했다.

“이현씨.”

잔잔하게 달래듯이 불렀으나,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잔뜩 당황했을 모습이 보지 않아도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였다. 시열은 버릇처럼 소파 팔걸이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많이 아픕니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 침묵만이 가득했던 이현에게서 드디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였다.

“이현씨.”

<…아, 안 아파요. 체 안 했어요.>

“그랬어요?”

<네….>

“밥은 먹었습니까.”

<…아니요.>

“뭐 먹고 싶어요?”

이현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시열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왜요…?>

제법 경계를 하네. 시열의 눈매가 휘어졌다. 경계하는 게 꽤 마음에 든 탓이었다.

“이현씨 몸이 안 좋다고 들어서 사주고 싶은데… 싫습니까?”

<…싫은 건 아닌데….>

“맛있는 거 사줄게요.”

<진짜요? 뭐요? 고기?>

“먹을 수 있겠어요?”

<네!>

경계가 너무 옅은데…. 시열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를 짚었다. 있으나마나한 경계심에 걱정부터 앞섰다.

“데리러 가겠습니다. 주소 찍어서 이 번호로 전송해 주세요.”

<어… 네.>

시열은 속삭이는 어조로 끊으라고 말했다. 이현은 한참이 흘러서야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종료되고 5분 정도 흘렀을 때, 이현으로부터 주소가 적힌 문자가 도착했다. 그걸 하염없이 보던 시열은 ‘소는 안 되겠죠…?’라는 문자가 하나 더 왔을 때에야 소리 내어 웃으며 나갈 채비를 서둘렀다.

봄 같은 향기를 풍기는 이현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향기는 운전하는 내내 시열을 괴롭혔다. 처음 만난 건 몹시도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때 이현은 술기운에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흰 피부를 가졌으면서.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 대교를 타고 차로 20분 정도 달리자, 시열은 이현이 찍어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룸이 많은 조용한 동네였다. 지나치게 조용한 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시열은 1층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문자를 보낼까 고심하다가 혹여 보지 못할까 싶어서, 잠시 여유를 두고 전화를 걸었다. 이현은 단 두 번의 신호음 만에 전화를 받았다. 어딘지 서두르는 듯한 목소리가 가득 울렸다.

<벌써 도착했어요?>

차 핸들을 톡톡 두드리며 시열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그때 내려오세요, 이현씨.”

<네!>

씩씩하네. 다급하게 전화를 끊는 게 어지간히도 바쁜 모양이었다. 시열은 차 시동을 끄고 느긋이 기다렸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시간은 몹시도 더디게 흘렀다. 이십 분이 이렇게나 길었던가, 하는 생각이 스쳤을 때 즈음이었다.

누군가가 입구에서 홱 달려 나왔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주변을 홱홱 돌아보는데, 안쓰러워 절로 혀가 차일 정도였다. 시열은 곧장 안전벨트를 풀고 차 밖으로 나왔다.

“이현씨.”

부르기 무섭게 이현이 시열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창백한 얼굴이 시열을 발견하자 생긋 피어났다. 말간 얼굴로 웃고 있는 이현의 모습이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시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피식 떠오른 미소였다.

‘왜 이렇게 예쁩니까.’

가까이 다가온 이현의 머리카락 끝에는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시간을 조금 더 넉넉히 부를 걸, 후회하며 시열이 조심히 손을 뻗었다. 다가오는 손길을 보고 이현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마저도 예뻐 보였다.

“머리 말리고 나오지 그랬어요.”

‘이러니까 제가 양보를 못하는 겁니다.’

눈치 보듯 어물거리는 이현에게 시열은 다시금 손을 뻗었다. 흠칫하기는 했지만, 이현은 처음처럼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차 안에 수건 있습니다.”

“그냥 둬도 마르는데….”

“감기 걸려요.”

이현의 젖은 머리카락을 슬쩍 매만지며 시열이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동그랗게 뜨인 이현의 눈동자가 시열을 쫓아 올라갔다. 시열은 그 시선에 눈을 맞추고 이현의 머리칼을 조심히 쓸었다.

“갈까요?”

“…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시열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현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시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현씨.’

술에 취한 모습이 아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관계가 아닌,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안에서.

많이 돌아왔네요. 손끝을 타고 내려오는 간지러운 물방울을 툭 털어낸 시열이 이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따스한 체온이 시열의 손끝을 휘감았다.

어딘지 그리움이 느껴지는 체온이었다.

2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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