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2화 (17/19)

외전2. 힐러의 돌봄기

살그머니 찾아왔던 가을이 가고 나무들이 벌거벗은 계절이 찾아왔다. 그 사이 날씨는 길이 꽁꽁 얼 만큼 추워져 있었다. 이현은 오랜만에 김성훈의 얼굴도 보고 같이 게임도 할 겸해서 그 추위를 뚫고 험난한 집 밖으로 기어 나왔다. 물론 시열에게 끈질긴 허락을 구하고 말이다.

“추워! 추워!”

“춥다는 놈이 이 날씨에 기어 나오고 지랄이야.”

“이렇게 추운 줄 몰랐거든!”

“핸드폰은 폼이냐? 날씨 안 보지?”

김성훈의 코트 안으로 몸을 비집어 넣은 이현이 그의 옆구리에 달라붙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현을 떼 놓는다고 티격태격하던 김성훈은 오들오들 떠는 이현을 보곤 한숨을 내쉬며 제 품을 내주었다.

“야, 똑바로 걸어. 넘어져.”

“아무 데나 빨리 들어가, 빨리.”

이현의 닦달하는 목소리에 김성훈은 일단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고 바로 피시방으로 향했다. 어지간히도 추웠는지, 평소 차가운 커피만 마시던 이현의 손에는 따뜻한 캔 커피가 두 개나 들려 있었다.

“시열 형은 뭐하냐?”

“시열씨 제작 돌리고 있어서 오늘 던전 못 돌아.”

“그럼 뭐 하려고.”

에르덴에 접속해 피시방 보상 목록을 훑어보고 있던 이현이 그 말에 씩 웃었다. 그리고 접속보상을 전부 수령하고 잡템을 정리해 인벤토리의 공간을 확보하며 야망을 가득 담고 말했다.

“채집.”

그 이후로 이현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삼인방을 물리치고 필드를 돌며 채집을 하고 다녔다. 제작을 돌린다고 공방에 갇혀 있는 시열과 같이 놀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언제 또 이런 날이 올까 싶어서 필드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니며 온갖 채집물을 캐고 다녔다.

얼마나 그렇게 맵과 맵을 옮겨 다니며 채집하고 다녔을까, 레비아탄의 서식지라 불리는 ‘레바니아 기지’를 돌아다니던 이현은 퀘스트 던전 앞에서 몹에게 맞아 죽어 있는 한 유저를 목격했다.

“뭐…야?”

잠수타다 죽었나? 그런 생각으로 이현은 죽어있는 유저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잠수는 아니었는지, 이현이 다가가자 얌전히 누워있던 유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현을 보고 살려달라는 애원의 말을 내뱉었다.

[맴맴돌: 저... 죄송한데]

[맴맴돌: 저 좀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ㅜㅜ]

이현의 눈이 깜빡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 채팅창을 채우고 있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지켜보던 이현은 얼마 안 가 그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현이 ‘스완나’였던 시절, ‘거신병의 신전’을 돌 때 아주 잠시 파티를 맺었던 유저였다. 정확히는 몇 번이나 죽어 파티를 쫑나게 했던 그 유저다. 일명 발컨유저.

“아니야, 이러지 말자….”

나도 발컨이었잖아…. 이현은 동지애를 발산하며 맴맴돌에게 다가가 부활을 넣어주었다. 부활을 받은 맴맴돌은 금세 살아나 고맙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맴맴돌: 감사합니다ㅠㅠ]

[이현: 아니에요. 혹시 퀘스트 중이셨어요?]

[맴맴돌: 네... 근데 자꾸 죽어요]

얘 어떡해. 이현은 동지애를 넘어 동정 어린 시선으로 맴맴돌을 바라보았다. 레벨에 비해 차고 있는 무기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슬쩍 맴맴돌 캐릭을 클릭해 장비 보기를 하자, 아니나 다를까 전부 한참이나 낮은 방어구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저를 보는 것 같았다.

[이현: 저 지금 할 거 없는데... 도와드릴까요?]

[맴맴돌: 근데 저 돈 없어요...]

[이현: 어... 네]

[맴맴돌: 나중에 돈 벌고 드리면 안 될까요? 지금은 진짜 없어서요...]

[이현: 돈요? 저한테요?]

[맴맴돌: ㅠㅠ]

비꼰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맴맴돌은 뒤로 슬쩍 물러나며 내내 ‘ㅠㅠ’만 쳐댔다. 여기저기서 어지간히도 벗겨 먹은 모양이었다. 측은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국 이현은 옆에서 베히아 일일퀘 중인 김성훈의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 쥐었다.

“왜.”

김성훈은 보지도 않고 물었다. 이현은 얌전히 있다가, 김성훈이 돌아봤을 때가 되어서야 간절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김성훈의 눈썹이 씰룩 올라갔다.

“그딴 눈으로 보고 지랄이야.”

“한 번만 도와주라. 너 할 거 없잖아.”

“뭔데.”

“누구 쩔.”

“…하아, 어딘데.”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김성훈이 위치를 묻자, 이현은 냉큼 위치를 찍어 김성훈에게 보내주었다.

[이현: 맴맴님 저 돈 필요 없어요]

[맴맴돌: 그러면요?]

[이현: 그냥 도와드릴게요. 친구 한 명 더 올 거예요]

[맴맴돌: 고맙습니다ㅠㅠ]

감격에 겨워 우는 맴맴돌을 보니 어쩐지 민망해져, 이현은 볼을 슬쩍 긁적였다. 그리고 김성훈이 오기까지 거신전 때처럼 맴맴돌과 얌전히 앉아 기다렸다. 맴맴돌은 혼자 솔플을 하며 키웠는지, 그때에 비해 레벨 업을 많이 못 한 채였다. 만렙 LV.100 기준으로 겨우 LV.66이었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은 전부 LV.47제 갑옷이었다.

[이현: 맴맴님 솔플하시나요?]

[맴맴돌: 네. 파티는 다들 안 껴줘서요...]

[이현: 네...]

괜히 물어봤다. 이현은 입을 틀어막고 슬퍼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재빨리 인벤토리를 뒤져 넘쳐나는 주문서와 물약을 물색해 추리기 시작했다.

[이현: 맴맴님 거래 받아주세요]

이현의 말에 맴맴돌은 별말 없이 거래를 수락했다. 이현은 창이 뜨자마자 추려놓은 주문서와 물약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맴맴돌의 캐릭이 허둥지둥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 이거 받아요]

[맴맴돌: 저 돈 없어요ㅠㅠ]

[이현: 그냥 받아요. 나중에 돈 생기면 주세요]

이현의 말에 맴맴돌은 나중에 꼭 주겠다며 거래확인을 눌렀다. 생각 같아선 방어구도 주고 싶었지만, 이현이 가진 건 전부 힐러 전용템이라 마도사가 착용할 수 없는 방어구였다. 방어구를 사라고 돈을 줄까, 고심하던 이현은 때마침 등장한 김성훈을 보고 일단 쩔부터 해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현: 맴맴님 파티 줄게요]

[맴맴돌: 네]

—‘맴맴돌’님이 파티에 참가하였습니다.

—‘확실한놈’님이 파티에 참가하였습니다.

[파티/확실한놈: ㅎㅇ]

[파티/맴맴돌: 안녕하세요]

[파티/이현: 맴맴님 퀘스트 뭐 하는지 띄어보실래요?]

[파티/맴맴돌: 그게 뭔가요?ㅠㅠ]

[파티/확실한놈: Q 누르고 하고 있는 퀘스트 지문 컨트롤+마우스 오른쪽으로 클릭]

[파티/맴맴돌: 퀘스트—레비아탄 섬멸 작전]

[파티/맴맴돌: 이렇게요?]

[파티/확실한놈: ㅇㅇ]

“아는 얘야?”

“어. 예전에 한 번 같이 파티했었어.”

“언제?”

“거신전 돌 때…?”

맴맴돌의 퀘스트 지문을 살피던 이현은 옆에서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김성훈을 바라보았다. 김성훈이 턱을 괸 채 고개를 슬쩍 젓고 있었다.

“채이현 같은 놈이 또 있었네.”

“엿 먹고 싶냐?”

“도와주는 것도 감지덕지해라, 새끼야.”

발컨이라고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저건 게임 못한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시열이 아니었다면, 이현도 지금 맴맴돌과 같은 처지일지도 몰랐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요새 그 시절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현은 그때가 떠올라, 아직까지 길드 하나 없는 맴맴돌을 그냥 모른 척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현: 맴맴님 일단 여기 있으세요. 저희가 강습병 몰아와서 없애줄게요]

[맴맴돌: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는 맴맴돌을 본 이현은 김성훈의 등을 후려치며 근처에 숨어있는 강습병을 몰아오라고 지시했다. 김성훈은 별말 없이 필드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이현이 있는 곳으로 강습병을 몰아왔다.

―번뇌의 일격을 사용해 레비아탄 강습병에게 2980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뇌전을 사용해 레비아탄 강습병에게 4300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저렙 필드의 몹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몹들이 일격에 목숨을 달리했다. 수를 세며 강습병을 없애던 이현은 퀘스트 지문에 뜬 15마리를 다 없애자마자 맴맴돌에게 달려갔다. 맴맴돌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이현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이현: 맴맴님 다음 퀘스트 가요! 제가 이 맵에 있는 메인퀘는 전부 도와줄게요.]

[맴맴돌: 어... 그래도 돼요?]

[이현: 네ㅋ]

할 것도 없는데, 좋은 일 한 셈 치지. 이현은 채집도 잊은 채, 몹들을 피해 도도도 달려가는 맴맴돌을 뒤따랐다.

“아주 절친 납셨네.”

“왜, 뭐. 도와줄 수도 있지.”

“하… 기다려 봐. 나 창고에 부캐가 쓰던 마도 장비 있어. 쟤 저래서 마지막 메인퀘 깨겠냐?”

“진짜? 주게?”

“처치 곤란이라 가지고 있던 거긴 한데, 쟤가 착용하고 있는 것보단 좋을 거다.”

레비아탄 기지에 있는 메인 퀘스트를 끝내자, LV.66이었던 맴맴돌은 LV.68이 되었다. 렙업 소식에 좋다고 펄쩍 뛰는 맴맴돌의 모습을 동심 어린 시선으로 보던 이현은 김성훈의 말에 저 또한 뛸 듯이 기뻐했다.

“잠시 길드존 갔다 온다.”

“천천히 갔다 와.”

등 떠미는 이현을 한 번 흘겨본 김성훈이 잽싸게 레비아탄 기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보던 이현은 화면에서 김성훈의 캐릭이 사라지자마자 맴맴돌을 데리고 근처 필드 내 임시 거점지로 귀환했다.

[이현: 장비 바꿔 끼고 우리 다음 미션퀘 하러 가요]

[맴맴돌: 장비요? 장비 너무 비싼데;;]

[이현: 제 친구가 부캐가 쓰던 장비 준대요]

[맴맴돌: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이현: 별로 좋은 거 아니라니까 잠깐 쓰다가 바꾸세요]

몇 번이나 사양하던 맴맴돌은 이현이 나중에 갚으라는 말을 하고서야 알겠다며 얌전히 수긍했다.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니 이런 호의를 받은 게 처음인 듯했다.

“나도 뭐 좀 더 줄까….”

처음으로 삼인방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어딘지 뉴비같은 맴맴돌을 보니 돕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았다. 그러나 인벤토리를 켜자 딱히 줄 만한 게 없어 이현은 입맛만 쩝쩝 다셔야 했다. 삼인방이 준 돈은 창고에 고이 모셔놓고 있는지라, 수중에 가진 돈은 고작 백만 골드가 다였다.

[맴맴돌: 저... 이현님. 저 채집 좀 하고 있으면 안 될까요?]

[이현: 엇 맴맴님도 채집해요?]

[맴맴돌: 할 게 없어서요...]

[이현: ...그럼 같이해요]

[맴맴돌: 채집해서 좋은 거 나오면 드릴게요]

[이현: 네]

이현의 대답이 떠오르자마자 맴맴돌은 기다렸다는 듯 임시 거점지를 나가 수풀 사이에 있는 식물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짠한 시선으로 보던 이현은 근처 개울가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인벤토리에 물고기가 가득 찼을 때에야 이현은 채집을 중단하고 맴맴돌을 찾았다.

“아직도 채… 뭐야?”

화면에 들어온 건, 채집하는 모습 대신 두 명의 유저한테 둘러싸인 맴맴돌의 모습이었다. 모양새가 어째 불량배들한테 삥이라도 뜯기는 분위기였다. 이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맴맴돌이 있는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이에 따라 채팅창 위로 대화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배짱개: 아놬ㅋㅋㅋㅋ그니까 도와준다니까]

[도강날림: 아니ㅋㅋㅋ 우리가 언제 돈 달랬냐고]

[배짱개: 채집한 빛정수 주면 쩔 다 해주겠다니까?]

[도강날림: 얔ㅋㅋ 빛정수 하나에 쩔이면 ** 대박 아니냐?ㅋㅋㅋ]

“저 날강도 새끼들이!”

저 개새끼들이 벗겨 먹을 게 따로 있지, 어디 뉴비같은 애 삥을 뜯고 자빠졌어! 이현은 도끼눈을 뜨고 그대로 맴맴돌과 두 유저 사이로 난입하듯 끼어들었다. 그리고 뭐에 놀란 듯 뒤로 움찔 물러나는 유저들을 향해 분노의 타자치기를 시전했다.

[이현: 님들 지금 뭐 하는 거?]

[이현: 어디서 개돼지마냥 뉴비 등을 처먹을라 그래여. 미쳤?]

[배짱개: *소리하고 자빠졌네]

[도강날림: ** 뭐야]

[이현: 이거 완전 날강도 새1끼들이네]

[배짱개: 헐 뭐야]

[도강날림: 읭? 왘ㅅㅂㅋㅋㅋㅋㅋ이현이네]

내가 이현인 거에 니들이 뭐 보태준 거 있냐? 화면을 가득 채운 ‘ㅋㅋㅋㅋ’가 유난히 거슬렸다.

[이현: 맴맴님 그지들이 하는 말 들을 필요 없어요]

[맴맴돌: 네...]

[배짱개: 간덩이가 처부었나 어디서 막말을 씨1부렁거리고 ㅈㄹ이야]

[도강날림: 그지 새1끼는 ㅅㅂ 너잖앜ㅋㅋ 루스한테 구걸구걸해서 타협 가니까 좋냐?]

[이현: 그래 겁나 좋아 죽겠다!]

[도강날림: ㅅㅂ 템빨만 오지게 서서 뒷배 믿고 **까부네]

“뉴비 등 처먹는 니네보단 낫거든!”

이현은 키보드를 탁 치며 씩씩거렸다. 같은 종족이라 죽일 수 없는 게 이렇게 분통할 줄이야. 매크로 만들어서 대결 신청을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맴맴돌은 이현의 옆에서 안절부절못해서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현은 어미 새처럼 맴맴돌을 제 등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개처럼 이를 세우고 덤벼들었다. 아니, 덤비려고 했다. 배짱개와 도강날림의 등 뒤로 수많은 화살이 날아와 퍼버벅 박히지 않았다면 말이다.

—신성제국의 ‘비연’이 촉살화살을 사용해 신마제국의 ‘배짱개’에게 3298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신성제국의 ‘비연’이 촉살화살을 사용해 신마제국의 ‘도강날림’에게 3580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개념 없는 두 유저를 공격한 이는 다름 아닌 비연이었다. 귀를 강타하는 공격음이 강렬하게 주변을 긁어내렸다. 퍼벅! 퍽! 박히는 화살의 기세가 보기만 해도 살벌했다. 작정하고 덤비는 공격에 배장개와 도강날림은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온몸에 화살이 꽂힌 채 죽어버렸다.

[신성제국/비연: 개1새1끼들인가. 어디 이현이 앞에서 컹컹 짖고 ㅈㄹ이야]

[신성제국/비연: ㅈ도 안되는 새1끼들이 하여간 입만 살았지. 새대가리들도 니들보단 낫겠다 ㄷ신들아]

킬을 당해 드러누운 두 유저 위로 한 유저가 껑충 뛰어내려 착지했다. 그리고는 공중제비를 하며 화려한 승리의 모션을 취하는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비연이 그리 보이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주 반가울 지경이었다.

[신성제국/비연: 이현이 뉴비 돌봐주고 있었어? 나도 좀 돌봐주라]

물론 반가운 마음은 비연이 말을 걸어온 순간 씻은 듯이 사라졌다. 이현은 감격도 잠시, 질린다는 시선으로 비연을 노려보았다.

[이현: 꺼1져요]

[신성제국/비연: 에이. 내가 이현이 찾는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현: 잘만 찾아오는고만]

[신성제국/비연: 나? 제보받고 왔는데?]

그래, 그놈의 제보가 문제지. 그럴 줄 알았다며 이현이 이마를 슬쩍 짚었다. 이놈의 제보는 어째 사그라질 낌새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번엔 덕이라도 본 게 어디인가 싶어, 이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신성제국/비연: 이현이 어미 닭이야?ㅋㅋ 귀엽네]

비연의 말에 이현의 시선이 제 등에 딱 붙어있는 맴맴돌에게 향했다. 비연이 나타난 후부터 맴맴돌은 굳어 움직일 줄 몰랐다. 그게 마치 무서워 달달 떠는 것처럼 보여, 이현은 비연과 슬쩍슬쩍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무언가를 떠올리곤 비연 쪽으로 잽싸게 튀어 나갔다.

[이현: 비연님!]

[신성제국/비연: 응? 어... 왜?]

[이현: 지금 얼마 있어요?]

[신성제국/비연: 나? 지금 몇천 있지. 왜? 이현이 돈 필요해? 이현이가 필요하다면 줘야지]

[이현: 천만 빌려주면 안 돼요? 나중에 갚을게요]

[신성제국/비연: 루스 새1끼가 돈도 안 줘? 죽이든가 해야지 안 되겠네 ㅅㄲ가]

[이현: 아니거든요]

[신성제국/비연: 알겠어, 알겠어. 돈 줄게]

비연이 손사래를 치며 이현에게 거래를 걸었다. 하하, 웃는 모션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역시 저놈은 예뻐하려야 예뻐할 수가 없었다. 이현은 돈을 냉큼 받아들고 뒤에서 웅크려 떨고 있는 맴맴돌에게 다가가 거래를 걸었다.

[맴맴돌: ?]

[이현: 받아요. 나중에 벌어서 주세요!]

[맴맴돌: 저 어차피 못 벌어요ㅠㅠ]

[이현: 그냥 받으면 안 돼요?ㅠㅠ]

[신성제국/비연: 뻗대는 게 한 대 맞고 싶나 보네]

저놈 입은 어떻게 못 틀어막나. 이현은 한숨을 폭 내쉬며 겁박하듯 맴맴돌 주변을 기웃거리는 비연을 바라보았다. 비연의 협박이 먹혔는지, 맴맴돌은 그대로 거래확인을 누르고 돈을 받았다. 물론 받은 후에는 이현을 향해 연신 허리를 숙여댔다.

[맴맴돌: 진짜 꼭 갚을게요...]

[이현: 네!]

[신성제국/비연: 이현아 그러지 말고 종족 갈아타고 우리 길드 오자]

[이현: 싫거든요]

[신성제국/비연: 에이ㅋㅋ 싫은 척은]

손사래를 치다 배를 잡고 웃는 비연의 모습이 마치 웃기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쓸데없이 고퀄인 비연의 모션에 이현이 이를 갈았다. 저런 모션은 다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르겠다. 엿 날리는 모션은 어디 없나, 하는 생각이 바람처럼 스쳤을 때였다. 비연이 난데없이 뒤로 텀블링을 하며 쏜살같이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비연의 몸 위로 붉은 검기가 지나쳤다.

—신성제국의 ‘비연’이 신마제국의 ‘확실한놈’이 사용한 일격필살을 회피했습니다.

비연을 기습한 이는 길드존에 방어구를 가지러 갔던 김성훈이었다. 그는 뒤로 빠지는 비연을 쫓아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따라붙었다.

[신성제국/비연: 와, 타협 새1끼들 얍삽함이 세상 쩌네]

[확실한놈: 닭둘기 ㅅㄲ가 죽여달라고 발광질이네]

[신성제국/비연: 아 좀 비켜봐. 이현이가 안 보이잖아]

[확실한놈: 어쩔. 그럼 너도 덤비든가]

[신성제국/비연: 와나 두질라고 환장했나]

명대사 등판하셨네. 이현은 치고 빠지며 싸우는 비연과 김성훈을 보며 세상 얍삽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를 노려 비연을 한 대 칠 생각이었다. 이현은 슬그머니 무기를 꺼내 들며 치고 빠지는 둘 사이로 슬쩍슬쩍 접근했다.

“한 대만 때려보자, 새끼야.”

비연이 저래 보여도 회피의 신이라 불리는 놈이라, 때리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현도 성전 때나 한번 때려봤지, 그 이전이고 이후고 때려본 적이 없었다. 껄렁하게 다니는 게 지능적인 페이크인지, 자게에도 비연 한번 때려보자고 아우성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성제국의 ‘비연’이 상쇄의 각인을 사용해 신마제국의 ‘확실한놈’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비연은 김성훈의 공격을 피해 뒤로 다시 텀블링을 했다. 미리 회피기 스킬을 걸어놓은 건지 옆구리가 찔렸는데도 피가 닳지 않았다. 그 틈을 파고들어 이현도 냅다 비연을 향해 공격 스킬을 퍼붓기 시작했다.

[신성제국/비연: 이현아... 왜 그래 귀엽게시리]

[이현: 됐으니까 한 대만 맞자]

[신성제국/비연: 에이 한 대만 때릴 것도 아니면서]

[이현: 알면 이리와!]

[신성제국/비연: 내가 이럴 줄 알고]

[신성제국/비연: 사전에 구걸 좀 했지]

어떻게 둘이 덤비는데 한 대를 안 맞는지 모르겠다. 스킬 트리를 회피 쪽으로 탄 건지, 비연이 쓰는 것이라곤 죄다 회피 스킬 뿐이었다. 이름도 다른 회피기가 당최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현: 구걸 같은 소리 하네]

[신성제국/비연: 진짠데?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그 말에 이현의 시선이 재빠르게 지도로 향했다. 어쩐지 저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돋는 게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닌 듯했다. 캐릭까지 멈춰 세우고 지도를 바라보고 있길 한참, 비연의 말대로 지도 한구석이 붉은 점으로 바글바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보자마자 이현이 김성훈의 팔을 탁탁 쳤다.

“야, 야! 얘, 길드 부른 거 같아!”

“일단 뒤로 튀어.”

이현은 즉시 맴맴돌에게 저를 따라오라고 소리쳤다. 덕분에 필드 내에는 때아닌 추격전이 펼쳐졌다. 붉은 점을 피해 달아나는 이현의 뒤로 비연은 연신 실실 웃으며 쫓아왔다.

[신성제국/비연: 이현아 고만 가ㅋㅋ]

[이현: 아 좀 저리**!]

[신성제국/비연: 알겠으니까 이리 오자]

“저 개 놈의 자식이!”

괜히 이 사건에 맴맴돌만 끼인 것 같아 미안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현은 측은한 시선으로 저를 열심히 따라오는 맴맴돌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주문서를 먹으며 달려오는 걸 보니 퍽 무섭긴 했나 보다.

[신성제국/레스크: 아놔 비연 이** 왜 불렀나 했더니 이넘이 죽고 싶나]

[신성제국/개나무: 저 집념 어쩔ㅋㅋㅋㅋㅋ]

[신성제국/잭콕: 우리 타협이랑 또 떼쟁하냐?ㅋㅋㅋㅋㅋㅋㅋ]

[신성제국/건드레: ㅋㅋ난 다 좋다ㅋㅋㅋㅋ 공적만 먹을 수 있음ㅋㅋㅋ]

여기저기 쏟아지는 새빨간 글씨의 향연에 이현은 날고뛰며 길도 분명치 않은 산맥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돌고 도는 건 예사요, 길이 있는 족족 오르고 넘으며 달렸더니, 어느새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던 이현은 길 끝에 놓인 절벽을 보고 머리를 쥐어 싸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맴맴돌이 이현을 부른 것도 그때였다.

[맴맴돌: 이현님 저기 오두막집이요!]

[이현: 네?]

[맴맴돌: 저기 집 있어요]

맴맴돌이 가리킨 곳에는 허름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그 앞에는 빨간 망토를 뒤집어쓴 소년이 한 명 있었는데, 퀘스트 NPC였다. 이현은 고민할 것 없이 바로 오두막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의문의 소년: 안녕하세요, 여행자님! 길을 잃으셨나 봐요? 날이 어두우니 밝을 동안만 머물렀다 가세요! 밤에는 산짐승이 있으니, 문단속은 꼭 해주시길 바랍니다.]

소년을 쌩 지나친 이현은 맴맴돌과 함께 오두막집 안으로 골인했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 NPC에게서 친근한 어조가 나오고 그대로 오두막집 문이 쾅 닫혀 버렸다.

“…뭐지?”

이현의 표정이 멍해졌다. 다가가 문을 클릭해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이현은 아직 오두막집에 들어오지 못한 김성훈을 깨닫고 시선을 돌려 김성훈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쾅 닫힌 오두막집 문이 게임 화면 내에 크게 자리해 있었다.

“이거 게임 시간으로 아침 6시에 열린다네.”

오두막집 문 앞에 있는 소년을 클릭해 살펴보던 김성훈이 상태 창에 뜬 시간을 보며 말했다. 밤 10시. 현재 에르덴에서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아침 6시가 되려면 적어도 15분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 어! 뒤에 비연 온다!”

“별수 없네. 그냥 죽어야지, 뭐.”

김성훈은 미련 없는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뒤이어 비연과 블랙블 길드원들이 오두막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현의 안부를 묻는 비연과 달리 오두막집을 둘러싼 블랙블은 능글능글 웃으며 김성훈을 살살 꾀기 시작했다.

[신성제국/블라라: 자 이제 타협 좀 불러 보실깤ㅋㅋㅋ]

[신성제국/개나무: 자자 부르자 불러]

[신성제국/레스크: 자고로 길드는 길드로 맞서야 제맛이짘ㅋㅋ]

[신성제국/건드레: 다굴하고 이러면 쓰나ㅋㅋㅋㅋ 서로 윈윈하게 길드쟁 어때?]

“아주 길드쟁을 하고 싶어 환장들 하셨고만.”

이현은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블랙블 길드원들을 노려보았다. 아니, 그렇게 개 발리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무슨 생각인지 김성훈은 턱을 괸 채 채팅창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김성훈이 별안간 씩 웃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하게 해줘야지.”

벼,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이현은 불안한 시선으로 조용한 길드 창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제 할 일만 하던 길드원들은 김성훈이 한 마디 올리자 환호성을 터뜨리며 나타났다.

[길드/확실한놈: 심심한데 저희 길드쟁 좀 하죠?]

[길드/기토피아: 어디냐?ㅋㅋㅋㅋㅋㅋㅋ]

[길드/다이뜨자: 하... 그놈의 길드쟁... 개 발라버려야지!!!!]

[길드/신이내린캐: 간만에 손가락 운동 좀 해 줘야겠네ㅋㅋㅋㅋㅋ]

[길드/코코볼: 길쟁하면 또 타협 아니겠냨ㅋㅋㅋㅋㅋ 언넘들이냨ㅋㅋㅋ]

[길드/베리베리: 와씨!! 길쟁이닷!!!! 오예!]

[길드/잘살아보세: 당장 달려간다]

[길드/꼬마천재: 길챗 온도 차 봐라. 아주 그냥 다들 길쟁에 미쳐가지고]

[길드/백전승: 어떤 메기 새1끼들이냐?ㅋㅋㅋ]

[길드/묘냥이: 안 되겠넼ㅋㅋㅋㅋ 타협 무서운 줄 모르고 하룻개객기들이 막 덤비넼ㅋㅋㅋ]

[길드/마초: 길마 어디 갔냨ㅋㅋㅋ 루스 어여 와라]

[길드/확실한놈: 블랙블인데 이현이 인질로 잡혀 있어요]

[길드/루스: 어딥니까]

모두가 발광을 하며 떠들 때도 단 한마디 않던 루스는 김성훈이 이현이 얘기를 꺼내자마자 1초 만에 대답했다. 다들 블랙블 소리에 미쳐 날뛰는 와중에도 김성훈은 간략하게 현재 위치만 지도에 찍어 알려주고는 길드 창을 숨겨 버렸다.

[확실한놈: 발릴 준비 ㄱ?]

그리고는 도발을 하듯 블랙블 길드원들한테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데, 진정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아니면, 개 빡쳤거나. 아니, 어디서 개 빡친건데. 이현은 김성훈 몰래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김성훈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신성제국/비연: 나만 살면 그만]

이 와중에 비연은 혼자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이런 팀킬 멤버가 다 있나 했다. 이현의 생각이 일치라도 했는지, 블랙블 길드원은 그 말에 죄다 무기를 꺼내 들고 비연에게 달려들었다. 떠오르는 말들로 보아 비연에게 무차별 대결 신청을 거는 듯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팀킬이었다.

[신성제국/비연: 다 두지고 싶나. 대결 신청을 걸고 자빠졌어]

[신성제국/잭콕: ㅅㅂ 너부터 주겨주랴?]

[신성제국/레스크: 이걸 시팍 같은 식구라고 데리고 살고 있었네]

[신성제국/블라라: 와낰ㅋㅋㅋ 이 새1끼 멘탈은 안드로메다에 있나]

[신성제국/개나무: 지만 살면 된단닼ㅋㅋㅋㅋ 개어잌ㅋㅋㅋ 길마 복귀 언제 하냐?ㅋㅋㅋ 이새1끼 좀 갖다 버려야지 안 되겠넼ㅋㅋㅋ]

길마? 글을 보던 이현의 고개가 갸웃 틀어졌다. 길마라는 말에 이현은 비연을 슬쩍 클릭해 길드 마크를 살펴보았다. 이제껏 비연이 길드 마스터인 줄 알고 있었는데, 길드 회원 등급을 보니 ‘부길마’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얘네 길마 누군데?”

“랙블이라고 어쌔신 키우는 놈이야. 그러고 보니 성전 때도 그렇고, 요새 안 보이긴 했네.”

“왜?”

“뭐 소문으로는 중요한 일 맡고 있을 땐 접속 안 한다던데. 말하는 거 보니 조만간 복귀하겠네.”

복귀하면 지금보다 더 철천지원수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어쩐지 식은땀이 나는 듯해, 이현은 괜히 손등으로 제 이마를 훑었다.

“이제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포탈을 타는 것도 아니니, 슬슬 도착할 때가 되긴 했다. 곧 있을 전투에 이현은 제 모니터와 김성훈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맴맴돌은 송아지처럼 얌전히 앉아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도 그냥 맴맴돌과 짝짜꿍이나 치면서 상황이 정리되길 기다릴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을 때였다. 이현과 김성훈의 지도 한쪽이 흰색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블랙블도 이를 깨달은 건지, 재빨리 전투태세를 갖추고 타협을 향해 돌아섰다.

“시열씨다!”

눈을 시뻘겋게 물들인 타협의 무리 앞에는 사나운 모습으로 검을 뽑아든 루스가 있었다. 이현은 김성훈의 옆에 바짝 붙어 관람자 모드로 화면을 응시했다. 사나운 기세로 달려오던 루스는 제일 먼저 비연을 향해 장거리 공격 스킬을 날렸다. 검붉은 검에서 뻗어나간 칼날 마법이 비연의 몸을 난도질하며 지나쳤다. 그러나 미리 회피 스킬을 걸어놓은 건지, 비연에게 쏟아지는 타격은 없었다.

—신성제국의 ‘비연’이 상쇄의 각인을 사용해 신마제국의 ‘루스’가 사용한 절혼베기를 회피하였습니다.

비연은 회피한 이후 잽싸게 뒤로 점프해 기세 좋게 활시위를 당겼다. 탕하고 뻗어나간 활이 루스의 방패를 긁고 지나쳤다. 루스도 회피기로 공격을 회피한 것이다. 둘의 싸움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터뜨리며 양 진영을 향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살벌함이 전혀 없는, 좋아죽겠다는 모습들이었다.

[신성제국/개나무: 이열!! 개돼지들 떴고만! 어디 한판 떠볼까ㅋㅋㅋ]

[기토피아: 발릴 각오는 하고 온거냐?ㅋㅋㅋㅋㅋ]

[신성제국/블라라: 대갈통이나 디밀어라ㅋㅋㅋ]

[잘살아보세: 왘ㅋㅋㅋ 개넘들이 개 발리고도 정신을 못 차렸넼ㅋㅋ]

[신성제국/레스크: 왜들 이러실깤ㅋㅋㅋ 그때의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일세]

[신이내린캐: 오산은 개뿔ㅋㅋㅋ 질질 짜지나 마랔ㅋㅋㅋ 아주 개 발라주마!!]

[마초: 어휴 공적 봐라. 이건 뭐 간에 기별도 안 되겠네]

[신성제국/건드레: 타협 넘들이 눈들이 삐셨고만ㅋㅋㅋ 훈장 단 거 안 보이냐?ㅋㅋㅋㅋ]

[베리베리: 오예! 간만에 닭털 좀 뽑으까?!ㅋㅋㅋ꼬꼬댁 꼬꼬꼬!]

실실 쪼개며 덤벼드는 모습들이 그냥 데칼코마니였다. 이현의 눈에 말하는 놈이나 그걸 고대로 받아치는 놈이나 도긴개긴처럼 보였다. 그냥 하는 짓들이 똑같았다.

“하는 짓들이 어째 저렇게 똑같을까….”

그래도 두 길드가 서로를 아예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그랬다. 다른 때와 달리 욕도 안 하고, 대하는 게 무슨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듯 친근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신성제국/비연: 이게 디질라고 환장했나]

[신성제국/비연: 타협 새1끼들 안 되겠네. 머리털을 다 뽑아놔야 정신을 차리지]

너만 하겠냐. 이현은 한심한 시선으로 비연을 보며 혀를 찼다. 저 혼자 살겠다고 말한 게 빈말은 아닌 듯 루스의 공격을 신들린 듯이 회피하고 있었다. 본받고 싶은 게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다더니, 비연이 딱 그 짝이었다.

“야, 곧 문 열리겠다.”

“문? 아, 맞다!”

제 상황도 잊고 관람하던 이현은 김성훈이 턱짓을 하자 재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얌전히 앉아 기다리던 맴맴돌은 이현이 캐릭을 움직이자 반가운 듯 벌떡 일어났다.

[이현: 맴맴님 지금 밖에 길드쟁 일어났어요]

[맴맴돌: 그게 뭐예요?]

[이현: 어... 길드끼리 싸우는 거요]

[맴맴돌: ㅠㅠ]

[이현: 오늘 미션 다 도와주려고 했는데... 죄송해요 ㅠㅠ]

[맴맴돌: 아니에요! 이제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이현: 오늘 말고 내일이나 다음에 도와주면 안 돼요?]

이현은 맴맴돌이 혹시 거부할까 잽싸게 친구추가 요청을 건넸다. 잠시 고민하는 듯 머뭇거리던 맴맴돌은 한참이 지나서야 친구추가를 수락했다.

[맴맴돌: 저 안 도와주셔도 돼요... 진짜요]

[이현: 그럼요... 하다가 어려운 거 있음 말해요. 바로 달려가서 해결해 줄게요]

[맴맴돌: 네! 그땐 꼭 말할게요!]

[이현: 일단 문 곧 열리니까 열리면 겁나 빨리 달려요! 혹시 귀환돼요?]

[맴맴돌: 눌러 봤는데 퀘스트 지역이라 안 된대요...]

[이현: 그럼 걍 달려요]

[맴맴돌: 이현님]

[이현: ?]

이현에게 난데없이 거래가 걸려온 것도 그때였다. 혹시 잘못 눌렀는가 싶어, 이현은 맴맴돌의 거래 제안을 취소했다. 그러나 취소하자마자 다시 거래가 걸려왔다. 보아하니 안 받으면 계속 걸 태세였다. 이현은 별수 없는 심정으로 거래 수락을 누르고 거래를 받아들였다. 맨 처음 거래 창에 올라온 건, 아까 이현과 채집할 때 캤던 채집물들이었다.

“어… 좋은 거네.”

채집물에는 등급이라는 게 있었다. 일반—고급—희귀—레어 등급인데, 같은 채집물을 캐도 여러 등급이 나왔다. 물론 평균적으로 일반등급이 채칩할 때 가장 많이 나왔고, 그다음으로 고급등급이 10번 중에 한 번꼴로 나왔다. 지금 맴맴돌이 거래 창에 올린 게 바로 그 고급등급 아이템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맴맴돌은 다른 고급 채집물을 또 올렸다. 목록 닫기를 하지 않은 걸 보아 주려는 게 더 있는 듯했다. 이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레 타자를 쳤다.

[이현: 저... 맴맴님. 그만 줘도 돼요...]

[맴맴돌: ㅠㅠ]

저 이모티콘만 보면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는지 모르겠다. 이현은 결국 손가락만 꼼질 거리며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목록 닫기도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거래가 취소되었다. 놀라 커진 이현의 눈에 들어온 건, 포획되어 문밖으로 끌려나가는 맴맴돌의 모습이었다.

“악!”

언제 시간이 그렇게 지난 건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태양 빛이 오두막집 안을 찬란하게 비췄다. 그 사이로 비연의 말이 쏟아져 들어왔다.

[신성제국/비연: 그지 새1끼들이 이현이 믿고 개 까부는 모양인데]

[신성제국/칼트럼: 포획 완료]

[신성제국/비연: 내가 피눈물 좀 뽑아줘야겠네]

[신성제국/칼트럼: ㄱㄱ]

이현이 오두막집을 뛰쳐나갔을 땐, 이미 비연은 맴맴돌을 포획한 탱커와 함께 전력 질주로 협곡을 벗어나고 있었다. 포획한 게 누군지 확인도 않고 전쟁터를 가로지르는 비연의 뒷모습이 그렇게 진지하고 급박해 보일 수가 없었다. 치고받고 싸우던 블랙블과 타협은 그 모습에 싸움을 멈추고 벙찐 모습으로 멀어지는 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칼트럼과 비연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지자, 양 진영은 각기 다른 형태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잘살아보세: 들었냐?ㅋㅋㅋㅋㅋ 피눈물이란닼ㅋㅋㅋㅋ ㅅㅂ 개 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다이뜨자: 대체 누굴 잡아간 거냐?ㅋㅋㅋㅋㅋㅋ]

[신이내린캐: 와낰ㅋㅋㅋㅋㅋ 명대사 하나 더 생성하셨고만ㅋㅋㅋㅋㅋㅋ]

[기토피아: 아옼ㅋㅋㅋㅋㅋ 단어력 무엇ㅋㅋㅋㅋㅋㅋ]

[코코볼: 댕청하다ㅋㅋㅋㅋㅋㅋ 겁나 댕청해 아핰핰핰핰]

[백전승: 아놬ㅋㅋㅋㅋ 숨넘어가겠넼ㅋㅋㅋ]

[신성제국/블라라: 하... ㅅㅂ 내가 진짜 쪽팔려서]

[신성제국/개나무: 비연 저 새1끼 좀 누가 조1져봐라. 길마까지 갈 필요도 없다]

[신성제국/레스크: 내가 진짜 저걸 같은 길원이라고 델꼬 있었다니... 하...]

[신성제국/건드레: 저 새1끼는 왜 철이 안드냐ㅡㅡ]

[신성제국/잭콕: 칼트럼은 언제 또 포섭한 거야ㅅㅂ]

[확실한놈: 우리 쪽도 누가 따라붙은 거 같은데요]

김성훈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있던 이현이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평소 그렇게 발광을 떨던 삼인방이 없었다. 심지어는 루스도 없었다. 이현이 잡혀간 줄 알고 삼인방과 함께 뒤쫓는 듯했다. 없던 다한증이 다 생기는 느낌이었다.

[백전승: 삼인방 새1끼들 출동 하셨구먼ㅋㅋㅋㅋㅋㅋ]

[신이내린캐: 루스는 어딨냐? 루스도 쫓아갔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살아보세: 븅1신들ㅋㅋㅋㅋㅋㅋ]

타협도 팀킬이 만만치 않구나…. 이현은 입을 틀어막으며 루스와 삼인방을 애도했다. 옆에서는 김성훈이 책상을 내리치며 웃고 있었다. 김성훈과 배를 잡고 뒹구는 길드원들은 보며 이현은 저라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루스에게 슬그머니 귓속말을 보냈다. 얼마나 열을 올리며 쫓고 있는지, 루스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돌아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이현은 이번엔 맴맴돌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저가 필요하거든 꼭 불러 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역시나 맴맴돌한테서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금쯤 당황해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포획해 끌려가던 맴맴돌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던 이현은 걱정도 잠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저가 그랬듯, 어쩌면 지극한 보살핌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이왕 데려간 거 잘 좀 키워주라…. 이현은 제 바람을 속삭이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길드원들의 팀킬은 여전히 멎을 줄 몰랐고, 옆에서 엎드려 웃고 있는 김성훈의 웃음도 그칠 줄 몰랐다.

오랜만에 찾아온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웃지 못할 사건이 있던 다음날, 이현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맴맴돌’이었다. 그리고 편지 안에는 선물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이를 보자마자 이현은 깜짝 놀라 펄쩍 뛰고 말았다.

맴맴돌이 첨부한 물품은 어제 주지 못했던 온갖 채집물과 ‘빛의 정수’였다. 유저들은 줄여서 빛정수라고 부르는데, 채집할 때 간혹 나오는 스완다 보다 더 값진 레어 아이템이었다.

편지에는 짧은 말이 쓰여 있었다. 편지의 내용을 읽은 이현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묘한 뿌듯함과 함께 표현 못 할 감정이 가슴을 간질간질 뒤덮었다. 괜히 뺨을 긁적이며 이현은 모든 물품을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다음에 보면 또 놀아줘야겠다….”

그리고 빛의 정수는 돌려줘야지. 큰 다짐을 새기며 이현은 편지의 내용을 몇 번이나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간질간질한 게,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시열에게 느끼던 것과는 또 다른 설렘이었다.

[저... 필요하시다면 써주시겠어요? 나중에 돈은 꼭 갚을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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