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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2화 (2/180)

< 오러와 마나 (1) >

오러와 마나(1)

"검을 배우고 싶다?"

아버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책을 뒤적거리며 내게 물었다.

책장 위에 새겨진 가문의 문장(紋章)이 아버지 대신 나를 잡아먹을 듯이 보고 있었다.

"전쟁사만 붙들고 있길래 학자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기사가 되고 싶었던 게냐?"

"학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사가 되고자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내 말에 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길게 늘어진 머리를 쓸어 올린 아버지가 내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는 장군이 되겠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가 내 눈을 바라봤다.

"장군이라.... 어떤 장군을 말하는 것이냐. 공작가의 후계이니만큼 수도 주변의 자리는 턱도 없을 것이고, 잘해야 남부 변경에 있는 7군단의 한 자리 정도 하겠구나. 이 아비가 보기에 몬트라우 가문의 후계로 태어난 이상 군인은 좋지 않은 선택인 것 같구나."

공작은 원래 황실의 핏줄에게 내려지거나, 혹은 타국의 왕실을 흡수할 때나 수여되는 대귀족.

그런 대 귀족 아래 잘 훈련된 군인이 있다면? 자연히 황실에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니 공작의 자제가 군인이 되면 변경으로 보내거나 출세가 아주 느린 것이 사실이었다.

사실 공작의 자제뿐 아니라 이름이 조금이라도 알려진 귀족의 자제가 군인이 된다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다.

어디 남작가의 열두번째 아들, 이런 정도로 미래가 답이 없지 않는 이상 귀족이 군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고 백작 정도만 되어도 자식이 군에 입대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미래를 몰랐을 때 이야기고, 나는 미래를 알고 있잖아?

10여년 쯤 후, 제국 각지에서 대규모 분리운동이 일어난다.

많은 영주들이 황제의 소집령에 응해 분리운동 제압에 나섰고 나는 그러던 중 아주 뜻밖의 재능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전장을 읽는 능력'이다.

그 동안 탐닉해 왔던 전쟁사와 전략 전술들이 내가 처해 있는 상황과 조화되며 전투, 나아가서 전장의 흐름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자 지고 싶어도 질 수 없게 되었다.

재능이 개화한 나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분리운동을 진압했고, 그 결과 많은 봉토와 함께 이례적으로 장군에 봉해졌다.

이후 몇 번의 전쟁을 통해 제국 내에서 내 위치는 확고해졌으며 대공으로 봉해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던 그 개선식 날 음모에 빠져 죽게 된 것이다.

".....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주가 검을 다룰 줄 안다면 휘하에 명망 있는 기사들이 모여드는 것은 아버지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가문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후에 전쟁이 나니까 어쩌고 저쩌고.' 이런 얘기를 해서 의사들에게 보내지기 보다는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또한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도 틀린 것이 없었다.

전시에 동원할 수 있는 영민 말고 상시 유지할 수 있는 기사단은 작위별로 수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고, 그에 따라 귀족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얼마나 경지가 높은 기사를 가문의 기사단으로 만드는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가문 기사단들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제뉴인 공작가의 '송곳니 기사단'이었다.

매년 은퇴하는 기사단원 한, 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공고를 내면 다른 가문의 기사는 물론이고 군인들도 구름처럼 몰려들기 일쑤였다.

이것이 어떤 무기로도 무형의 기운인 '오러'를 방출 해내는 '웨폰 마스터'인 제로 몬트라우, 아버지 덕분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흠...."

아버지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전생의 나는 오로지 머리로만 싸우는 장수였기 때문에 몸을 단련하는데 게을리했다.

실제로 오러를 다루는 훈련은 어릴 때부터 해야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미 재능을 발견했을 때는 늦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 몸은 내가 강해져야 지킬 수 있다.

연전연승을 하고 다른 왕국들을 박살내는 장군이면 무얼 하는가, 술에 녹아있는 약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내 몸을 헤집고 들어오는 칼을 막아내지도 못했다.

강해질 것이다. 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며 땅에 고개를 처박게 할 것이다.

"좋다. 군인이 되지 않더라도 배워두면 쓸모가 있을 것 같구나."

아버지의 목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손이 얼얼했다.

꽉 쥔 주먹이 피가 돌지 않아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과거 생각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내일 오전, 제 2 연무장으로 가거라."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왔다.

이미 전생의 지식은 다 머리에 있다.

뿐만 아니라 몸까지 강해진다면?

복수를 위한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의문이 피어올랐다.

'근데 선생은 누구지? 아버지께서 직접 알려 주시는 건가?'

##

기사단이 머무는 곳에 위치한 다른 연무장과는 달리 저택 지하에 지어진 2 연무장은 오로지 몬트라우 사람과 관계자만이 쓸 수 있는 곳이었다.

수련에 몰두한 아버지께 식사시간이 되었다고 알리러 가던 기억이 났다.

'가족들이 식사 시간에 늦는 걸 어머니께서 참 싫어하셨지.'

잠시 과거의 상념에 잠겨있던 사이 연무장의 입구에 도착했다.

누군가 먼저 와 있는 듯, 안 쪽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알버트?"

"늦으셨군요, 도련님. 오늘부터 예절교육과 더불어 검술교육까지 함께 맡게 된 알버트 하인리히. 인사드립니다."

"아버지가 알려주는 것 아니었어?"

"공작 각하께서요? 하하하하. 도련님도 농담이 심하십니다. 공작 각하께서는 바쁘신 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아는데.... 검술도 할 줄 알았어?"

그 말에 알버트가 얇은 세검(細劍)을 손에 들고 웃었다.

"예전에 잠깐 손을 댄 적이 있었는데 내려놓은 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허나 공작 각하께서 직접 부탁을 하시니 거절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에이, 아무리 내가 검에 문외한이어도 알버트가 선생인 것은 좀 못 미더운데?"

전생의 기억에 알버트가 검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나와 동생의 예절교육 선생으로 있다가 아버지가 떼어준 작은 영토에 집을 지어 은퇴했다는 기억 뿐.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전장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많은 강자들을 봤고 그들만큼 예민하지는 못하지만 직감에 가까운 감지를 할 수 있었다.

감지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는 것이 오러를 익힌 사람이나 마나의 축복이 깃든 사람은 갈무리하려고 해도 그 기운이 미약하게 새어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지금 알버트는 그냥 깐깐하게 생긴 노인, 이외에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허허허,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검을 잡아서 힘조절을 잘못할 수도 있으니, 교육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검을 몇 번 휘둘러 보겠습니다."

알버트가 검을 눈앞으로 올려 들었다.

콰아아아

알버트의 몸에서 엄청난 빛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연무장을 뒤덮을 듯 넘실대는 그 기운과 자신은 상관이 없다는 듯 알버트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했다.

이질적이었다.

고오오오

방출되는 오러가 차분해지더니 검 끝의 한 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점(一點)....."

일점, 경지에 오른 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오러의 파괴력을 극대화 시키는 기술.

전생에서 스쳐간 수많은 기사 중 저 경지에 이른 기사는 5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알버트가 연무장 가운데로 옮겨 놓았던 사람 크기의 나무 인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나무 인형까지의 거리가 상당했기에 헛칼질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검은 허공을 갈랐으나 검 끝에 마치 구슬처럼 모여 있던 오러가 나무 인형을 향해 날아갔다.

'오러를 던져?'

오러는 신체의 내부의 기운을 끌어내는 것, 조금이라도 몸에서 멀어지면 급격하게 힘을 잃기 시작한다.

활이나 투척무기에 오러를 실을 수 있는 기사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오러 구슬이 나무 인형에게 닿은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구슬이 폭발했다.

그리고 나무 인형은 톱밥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죽었군요."

오러를 사라지게 한 알버트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더듬더듬

나도 모르게 손으로 내 엉덩이를 훑고 있었다.

저런 인간에게 엉덩이를 수도 없이 맞았는데도 버텨 준 것이 너무나 기특했다.

"기본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쪽에 놓인 목검을 잡아보시죠, 도련님."

빠르게 달려가서 목검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가늠도 되지 않는 방금의 무위를 보고나니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앞으로 알버트 말은 무조건 따른다. 일말의 반항도 하면 안 된다.'

[암~ 그래야지. 꼬맹이는 어른의 말을 들어야지. 푸하하하하]

저 똥개새끼, 분명히 알고 있었으면서 조용히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

"괜찮던가?"

제뉴인 공작의 물음에 알버트 하인리히가 빙긋 웃고 답했다.

"역시나 몬트라우의 핏줄. 왜 더 일찍부터 손에 검을 잡게 하지 않으셨는지 아쉽습니다."

"과장은 하지 말게."

"제가 언제 과장하는 것 보셨습니까? 사실만을 말할 뿐입니다."

"녀석은 손에 검을 들리지 않고 제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것이 검이라니. 참, 세상 일은 알 수가 없군 그래."

"공작 각하? 제가 듣기로는 시안 도련님께서 검을 배우는 이유는 좋아하셔서가 아니라 전장에서 기사의 능력과 한계를 체험해보고 싶으셔서 배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검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각하의 바램이 아니신지요?"

그 소리에 제뉴인 공작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큼큼하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하인리히는 짐짓 모른 체하며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용린차군요."

"포츠라니 백작에게 부탁해 받은 것이라네. 근래 들어 보기 힘든 질 좋은 차지."

딸깍

하인리히가 접시에 찻잔을 내려놓고 제뉴인 공작을 바라봤다.

"괜찮으십니까?"

"....."

"용린차의 원료인 용린초는 소량 섭취시 정신을 맑게 해주고 진통 효과가 있지만 다량 섭취 시에는 높은 중독성으로 인해 전문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섭취해야한다고 들었습니다."

"알버트."

"포츠라니 백작이 방문하는 간격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알버트 하인리히!"

공작의 호통에 알버트가 입을 다물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네."

".... 죄송합니다. 주제 넘었습니다."

알버트가 일어서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공작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집무실의 문이 닫히자마자 제뉴인 공작이 몸을 수그리고 발작적으로 기침을 했다.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떼자 피와 함께 반짝거리는 광물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욕심을 부린 대가인가...."

공작의 독백이 방 안을 흐르다 흩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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