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단 (1) >
기사단 (1)
쉬익
알버트의 검이 내 손목을 노리고 매섭게 뻗어 들어왔다.
검이 들어오는 검로(劍路)에 살짝 내 검을 밀어 넣어 흘려보내기를 시도했다.
키기기긱
검을 에워싸고 있는 서로의 오러가 충돌하면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기괴한 음을 내뿜었다.
여기서 오러를 거둬들이면 그것은 패배다.
오히려 더 맹렬한 기세로 상대를 잡아 먹어야 한다.
한 층 더 오러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서로 다른 오러의 충돌여파를 염려한 것인지 알버트의 오러가 조금 줄어들었다.
기회다!
"하아앗!"
오러를 하반신에 집중했다.
알버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연무장의 풍경이 흐려졌다.
오로지 검이 향해야 할 곳만이 뚜렷이 의식에 새겨졌다.
검이 알버트의 왼쪽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호선을 그렸다.
검 끝에 감겨왔어야 할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시야와 의식에 강렬하게 존재하던 알버트가 사라져 있었다.
[들어온다. 왼쪽 상박]
머리 속에 투브의 말이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왼쪽에서 강대한 압박이 느껴졌다.
대응하기에는 늦었다.
그래도 최대한 검을 회수해 방어세를 취했다.
공격을 위해 뿜어내고 있던 오러를 한 순간에 방어를 위해 단단히 그러 모으려니 몸에 무리가 느껴졌다.
'조금 더 빠르게!'
이걸 맞았다가는 최소 2주는 왼쪽 팔을 못 움직일 것이 분명했다.
몸의 왼쪽에 오러를 집중함과 동시에 오러 아래에 얇은 마나쉴드를 펼쳤다.
쾅!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폭음이 연무장을 메웠다.
목에 검의 감촉이 느껴졌다.
오른쪽 목에서 느껴지는 감촉이었다.
나의 검과 접촉하는 짧은 순간에 오러를 운용해 몸을 회전 시켜 내 목에 검을 들이댄 것이다.
"졌습니다."
알버트가 검을 내렸다.
"아쉬웠습니다, 도련님."
아쉽기는 개뿔.
"다만 한 가지를 잊으셨더군요."
내가 알버트의 말에 대답을 했다.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때가 사실은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습니다. 허허허' 이럴려고?"
"잘 알고 계시는군요. 허나 알고...."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영역입니다. 행해야 합니다.'하겠지?"
오전에는 알버트에게 검술훈련, 오후에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귀족의 소양과 업무를 익히고 밤에는 혼자서 마나를 다룬지 3년.
비록 13살의 나이지만 웬만한 기사나 마법사보다는 오라와 마나를 능숙하게 다루지 않나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추진력과 전생의 지식 덕에 빠른 성장을 이루었지만 알버트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야?'
몇 번을 물어봐도 그저 허허 웃어 넘기고 아버지도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알버트와 비슷한 검술, 비슷한 오러운용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헌데, 분명 도련님의 팔을 치는 것으로 끝났어야 하는데 조금 이상하군요."
그 잠깐 사이 미량의 마나로 마나쉴드를 펼친 것까지 알아채려고 한다.
내가 마나를 다룰 줄 아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다.
"내,내가 조금 더 성장한 게 아닐까? 요새 들어 오러 운용이 조금 더 가뿐해졌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 걸까요? 그런 것이라면 축하 드립니다. 저도 이제 늙어 분별이 흐려지기 시작했나 봅니다. 허허허."
[이 늙은이는 볼수록 대단하네. 아주 오러가 솟는 샘이야. 물론 내가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가뿐하게 밟아주겠지만 인간치고는 굉장해.]
'너한테도 알버트가 뭐하던 사람인지는 안 보여?'
[내게 보이는 건 단편적인 정보 뿐이야. 사람들의 일기장이 보이는 게 아니라고.]
'나는 네가 쓸모 있는 건지 아닌지 참 헷갈려.'
[처음 마나를 심고 죽을 뻔한 네게 마나회로를 만들어준 게 누구지?]
'큼... 그 일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마법사에 대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른 법.
날뛰는 마나를 제어하지 못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들은 투브가 본인의 마력을 희생해 몸에 마나가 흐르는 길, 마나회로를 만들어준 덕분에 마나의 폭주를 가라앉히고 비로소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덜컥
연무장의 문이 열렸다.
"오빠, 아버지가 찾으셔.'
캐슬린이었다.
"너, 아카데미 안 갔어?"
"오늘 휴교야."
몸에 있던 필요 이상의 마나를 투브가 먹어 치운 후 캐슬린은 바로 마나를 다룰 줄 알게 되었고, 지금은 마나의 축복이 깃든 사람들을 교육하는 '제국 마법 아카데미' 속칭 아카데미에 다니는 중이었다.
"아가씨, 사람을 시키시지 어째서 직접 내려 오셨습니까?"
"저도 연습이나 할까 해서 왔죠."
캐슬린이 손을 흔들었다.
연무장 이곳저곳에 놓여있는 무기들이 둥둥 떠오르더니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내가 네 아버지와 동생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 줄 알아?]
'무슨 생각?'
[인간의 삶에 운명이란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생각.]
'답지 않게 무슨 개똥철학이야.'
[됐어. 동생 잘 가르치라는 소리야.]
'싱겁다, 싱거워.'
"오빠! 빨리 올라가 봐! 아버지가 찾으신다니까!"
##
"시안, 알버트에게 들으니 요새 수련에 한창이라고?"
"그렇습니다."
"알버트말고 다른 사람과 칼을 맞대본 적은 있느냐?"
"없습니다."
"따라 오거라."
아버지와 함께 향한 곳은 '송곳니 기사단'을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정예인 195명의 기사와 그들의 종자, 그리고 5명의 견습기사들이 머물며 각자의 기량을 갈고 닦는 곳이었다.
지금도 건물 앞에 세워진 거대한 연무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조금 더 매서운 검술과 효율적인 오러 운용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시안, 기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 열셋 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갑자기 왜 이런 것을 물으시지?
아!
"견습기사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열셋이라 들었습니다."
견습기사라고 해도 생초짜는 아니다.
다들 어렸을 때부터 검을 잡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나 송곳니 기사단의 견습기사가 되면 쟁쟁한 송곳니 기사단의 정식기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년에 단 한 명만 뽑는데도 경쟁률이 엄청나서 세간에는 '검을 잡을 줄 아는 제국의 열 세 살짜리들이 다 모인다'는 말도 돌았다.
"기사는 주인과 계약으로 묶인 관계다. 기사들은 자신을 알아주는 주인, 자신을 매료 시킬만한 강함이 있는 주인과 계약하기를 원하지."
구구 절절 옳은 말씀.
"알버트에게 3년을 배웠으니 견습기사 정도는 이기리라고 아비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도 옳은 말씀.
"5명의 견습기사들을 한 번에 상대하겠느냐? 아니면 차례로 상대하겠느냐?"
"예?"
"말하지 않았느냐, 기사들은 강한 주인을 좋아한다고. 몬트라우의 핏줄에 대를 이어 충성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려무나."
황당하지만 못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3년 간의 훈련이 얼마나 성과를 발휘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연무장의 입구로 들어서자 거대한 덩치를 가진 기사가 아버지와 나를 맞았다.
현재 송곳니 기사단의 기사단장 한스 베네딕트.
창을 옆에 낀 채 황소만한 애마를 타고 돌진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 훨씬 더 젊은 모습이었다.
전생에서 무너져가는 송곳니 기사단에 남아 부흥을 꿈꿨으나 분리운동 진압초기, 미숙했던 내 지휘 때문에 적습에 당해 죽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알버트라는 노인의 절반 좀 넘을 정도구만. 차라리 그 노인을 기사단장에 앉히지 그래?]
이 똥개, 감상에 젖을 틈을 안 준다.
"오셨습니까, 각하. 말씀하신 준비는 다 마쳤습니다."
한스는 내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주인의 아들이라고 해서 쉽게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의사표시.
좋다.
저 정도는 되어야 기사지.
한스가 오러를 끌어올려 연무장을 향해 외쳤다.
"기사단! 제자리로!"
척! 척! 척!
삽시간에 기사들이 송곳니 기사단의 상징인 검은 갑옷을 입고 연무장에 정렬했다.
대개 다른 기사단들은 무기를 대검이나 창으로 통일하지만 '웨폰 마스터'인 아버지의 영향인지 철퇴나 쌍검 같은, 생소한 무기들을 든 기사들도 보였다.
쿵! 쿵! 쿵!
한스를 시작으로 기사들이 오러를 실은 오른발로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구성원 전체가 하나가 되어 오러를 공명시켜 위압감을 주는 행위.
송곳니 기사단의 전매특허 '사신의 발걸음'.
자신들을 쉽게 보지 말라고 나를 향해 시위를 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바로 발걸음이 멈췄다.
"견습기사들 앞으로!"
한스의 외침에 기사단의 중앙이 갈라지며 5명의 소년이 걸어 나왔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이쪽은 내 아들 시안 몬트라우. 자네들과 대련을 하게 될 걸세."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막상 공작의 입에서 자기 아들과 대련을 하라는 소리가 나오니 견습기사들 눈에 망설임이 비쳤다.
"시안, 어떤 방식으로 하겠느냐?"
"한 명씩 상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내 아들을 이긴 견습기사에게는 포상을 내리겠네."
공작이 내리는 포상이 어떤 것일지 다들 숨을 죽여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견습기사가 18세 되는 해, 송곳니 기사단의 한 자리는 그의 자리로 남겨두겠네."
송곳니 기사단의 견습기사라고 해서 바로 송곳니 기사단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떠한 메리트도 없이, 모집공고에 응시한 다른 기사들과 똑같은 선에서 평가 받았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는 나를 이기는 것으로 그런 과정을 모두 없애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견습기사들의 눈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전대미문의 특혜에 견습기사들은 물론이고 정식기사들마저 술렁였다.
"아버지."
내가 한 마디를 더했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저를 이긴 견습기사에게 아버지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말에 연무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일반적으로 기사들은 평생 한 가지의 무기만 수련 한다.
심지어 같은 무기라도 자신의 애병이 아니면 오러의 운용 정도가 절반 이하로 급감하는 기사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제로 몬트라우, 제뉴인 공작은 검, 창, 도끼, 플레일, 메이스 등등 심지어 곤봉을 이용해도 오러의 운용 정도가 변함이 없었다.
괜히 웨폰 마스터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자신이 쓰는 무기의 장단점은 물론이고 다른 무기를 든 기사를 상대할 때의 대응법을 완벽에 가깝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흠...."
아버지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 제뉴인 공작이 과연 아들의 부탁에 응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에 기사들도 숨을 죽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허락에 견습기사들의 얼굴에는 꼭 이기겠다는 굳은 의지가 나타났고 정식 기사단들의 얼굴에는 자신들도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부러움이 나타났다.
자, 시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