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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8화 (8/180)

< 마나 소드 (1) >

마나 소드 (1)

"내 아들은 본인이 생각한 길에 도움이 될까 하여 오러와 검을 익히고 있는 것이지, 기사가 되려는 것이 아니네."

"하지만 각하! 각하께서도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따로 교습을 받았다고는 하나 견습 기사 넷을 내리 꺾었습니다. 공자님은 타고난 무인입니다."

제뉴인 공작은 무척 난감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처음 데려갔을 때는 아들을 본 척도 안하던 기사단장 한스가 이제 자신에게 아들을 기사로 키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는 제국 기사들 중 첫 손가락에 꼽힐 한스가 이렇게 열을 내며 자신에게 의견을 말한 적이 있던가.

공작의 손이 턱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흠...."

"무엇을 고민하십니까. 공자님이 다른 기사들과 함께 10년만 정진한다면 제국에 검으로 공자님보다 이름을 떨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과장이 아니란 것, 각하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랬다.

알버트에게 종종 전해 듣고는 했지만 시안이 직접 검을 휘두르는 것은 처음 본 제뉴인 공작이었다.

시안의 검은 거칠고 매서웠다.

시안의 검에 원숙함과 세련됨은 없었다.

허나 원숙한 기사와 세련된 귀족이 무기를 쥐고 대련을 할 때 흔히 보이는 감정이 시안에게 보이지 않았다.

망설임.

마치 오랜 시간을 전장에서 보낸 노련한 전사처럼 시안에게는 망설임이 없었다.

피가 솟고 살점이 튀는 실전을 거듭하여야 지워지기 시작하는 감정이 망설임이다.

시안이 내딛는 발걸음에는 확신만이 담겨있었다.

제뉴인 공작은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제국에 반기를 든 반역자를 토벌하러 나선 기억.

남들보다 강인한 근육을 가지고 비범한 오러를 뿜어내던 기사들이 한순간의 망설임 때문에 목이 떨어졌다.

망설이지 않는 자는 망설이는 자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어린 날의 치기와 맹신 아닌가.'

공작은 머리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치기와 맹신은 자신의 아들에게 패배한 견습 기사들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은 그들 위에 서는 것으로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이 치기와 맹신 따위가 아님을 훌륭히 증명해냈다.

"시안에게 한 번 말해 보겠네. 이만 돌아가게."

##

"안 합니다."

"한스가 저렇게까지 누군가를 기사로 키워야 한다고 말 한 적은 처음이다, 시안. 너는 잘 모르겠지만...."

저녁 식사 시간, 아버지는 계속 내게 기사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떻냐고 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알았으면 힘 조절을 해서 비등비등한 모습을 보여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비슷한 또래들과 처음 검을 섞는 흥분에 제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몸이 어려지면 정신도 어려지는 것일까.

크나큰 실수다.

"오늘따라 이이가 왜 이러지? 아이들이 원하는 길로 최대한 밀어주자고 말씀하신 분이 누구셨죠, 제뉴인 공작 각하?"

음식은 들 생각도 않고 계속 내게 권유를 하는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가 따끔하게 한 마디를 했다.

"그건 그렇지만... 당신도 시안의 활약을 봤으면 그런 말을 하지는 못 했을 거요."

"우리 아들, 잘 했나 보네?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해? 됐죠? 그럼 식사 하시죠, 제로 몬트라우, 제뉴인 공.작.각.하?"

상황 종료다.

어머니의 분노를 사기 싫다면 아무리 웨폰 마스터라도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한다.

자신의 권유를 들어주지 않는 아들과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부인이 야속했는지 아버지가 스푼을 쥐고 작게 부르르 떨었다.

과연 '웨폰 마스터'. 숟가락에도 작게 오러가 일렁였다.

"엄마! 아버지 봐!"

캐슬린의 외침에 가족 모두의 시선이 아버지께 집중 되었다.

아버지는 다들 왜 그렇게 쳐다보나 하다가 손에 쥐여져있는 스푼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오러를 발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이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오!"

아버지가 놀라 떨어트린 숟가락을 캐슬린이 마나로 당겨와 잡았다.

그리고 그걸 다시 허공에 띄워 아버지 앞에 밀어 놓았다.

약간의 마나도 허비하지 않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후...."

어머니가 눈을 감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몬트라우 성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긴장했다.

"저녁 시간은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이니 소중히 하자고 했죠?"

어머니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시안, 아버지께서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싶구나."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

"한동안은 별 일 없을 것 같네."

눈 앞에 떠 있는 노트의 페이지가 휘리릭 넘어갔다.

아버지께서 쓰러지는 일이 있던 후,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전생에 있던 일을 적어 놓은 노트였다.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렇게 근엄하게 말하면서 눈은 왜 내 양 손에 있는 불덩어리와 얼음덩어리를 쫒는 건데.

개과는 개과인가.

[그리고 그렇게 빠르게 마나와 가까워지면.]

"곧 결석이 생긴다"

이 녀석도 했던 말을 또 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버트도 그렇고 오래 살아온 자들의 공통점인가.

"그럼 네가 먹어주면 되고."

[나는 돌 치우는 광부가 아니야.]

섬뜩해졌다.

정말로 저 녀석이 결석을 먹어 치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야, 근데 왜 약속 지키라고 안 해?"

[우리가 거래 한 지가 얼마나 됐지?]

"3년 지났지."

[얼마 안 지났네. 넌 그때도 꼬맹이였고 지금도 꼬맹이인데 뭘 기대하겠냐.]

"나였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약속 지키라고 화냈을 것 같은데."

[살아 있던 세월이 천 년이 넘었고 그 이상한 공간에는 얼마나 있었는지 감도 안 잡힌다.]

지금부터 개척왕 때까지의 세월을 역산하면 그것도 얼추 천 년은 될 거다.

[오래 살게 되면 3년 정도는 잠깐 눈 붙이는 정도의 시간이야. 그 정도도 못 기다릴까.]

나는 새로운 삶의 1분 1초가 아까워 죽겠는데 똥개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저,저... 늘어져라 하품하는 꼬라지 봐 저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손에서 주물럭거리던 불과 얼음을 없앴다.

눈 앞에 떠 있던 노트도 힘을 잃고 털썩 떨어졌다.

"들어와."

발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문을 두드렸으니 캐슬린이다.

요새 한창 떠다니는데 재미를 붙여서 어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붕붕 떠다니곤 했다.

문이 열리고 캐슬린이 천천히 날아왔다.

"오빠, 나 실험 하나 도와 줄 수 있어?"

"숙제야?"

"숙제는 아니고... 도와 줄 거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쪽으로 와서 서, 응, 거기. 가만히 있어 봐."

캐슬린은 방 한 쪽에 나를 세워 놓더니 다시 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몸을 붕 띄워 진지한 얼굴로 나를 향해 천천히 날아왔다.

"무슨 실험 하는지 말은 해줘."

"조용히 해 봐, 오빠. 집중하고 있어."

캐슬린이 진지한 얼굴을 하고 내 주위를 한 바퀴 돌고는 처음에 있던 문 앞으로 돌아갔다.

[다시!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해!]

'너는 또 왜 이래? 뭔데?'

[어서!]

도대체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일단 똥개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다시 한 번만 해볼래?

"오빠 알고 있었어?"

캐슬린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빨리 하라고 해!]

"일단 한 번 다시 날아와 봐."

[마나가 어떻게 흐르는지 느껴 봐.]

다시 한 번 캐슬린이 내 주위를 빙 돌았다.

어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오빠 주위에서 마나가 잘 안 모여들어."

적당한 표현을 찾는지 캐슬린이 한참을 고민했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옆에서 마법을 쓰려고 하면 마나들이 오빠한테 달라붙는 느낌? 그런 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오빠 알고 있었어?"

"내가? 나는 모르지, 마나를 못 느끼는데."

시치미를 뗐다.

"그럼 왜 다시 해보라고 했어?"

대답할 말이 생각이 안나 뭐라도 말을 해 보라고 똥개를 쳐다봤다.

똥개는 이를 드러내고 나를 향해 낮게 그르렁거리고 있었다.

쟤는 왜 저래. 환장하겠네.

"그,그냥 옆으로 지나가니까 바람이 시,시원해서..."

##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며 캐슬린을 방에서 밀어내고 몸을 돌리자마자 똥개가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넌 나를 속였어!]

"미치겠네. 야! 설명을 해줘야 알지! 그렇게 화만 내면 뭐가 돼?"

[내가 너를 읽을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해서 속인 거라고!]

가슴 위에 올라 앉은 똥개를 들어다가 옆으로 치웠다.

"나는 속인 게 없어! 네가 알고 있는 걸 얘기를 해!"

['변환인자' 가지고 있다고 왜 말 안 했어!]

내가?

변환인자를?

그건 옛날 이야기 책에나 나오는 단어 아니야?

옛날 옛적, 아직 엘프와 도깨비가 존재하던 시절, 마나 가득한 숲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답니다.

그 아이는 마나의 축복이 깃들지 않았어요, 마나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받았죠.

마법은 대기 중에 있는 마나를 끌어다가 형태와 성질을 변형하는 것이라는 사실, 잘 알고 있죠?

맞아요, 마나는 몸 안에 들어올 수 없어요. 잘 기억하고 있군요!

그런데 마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 아이는 주위의 마나를 빨아들여 마치 오러처럼 몸 안을 순환하게 할 수 있었답니다. 대단하죠?

몸 안과 밖, 어디든 마나를 제 것처럼 쓸 수 있었던 그 아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마법을 빠르게 익히고 나아가 세상에 없던 마법을 만들어 냈어요.

청년이 된 아이는 마나를 오러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을 '변환인자'라고 이름 붙였답니다.

그 청년이 노인이 되었을 때, 세상사람들은 노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위대한 대마법사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어요.

대마법사의 평생의 염원은 자신과 같은 변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 이름 모를 대마법사 이후에 변환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답니다.

하는 유모가 잠자리에서나 읽어줄 법한 동화에 나오는 단어?

"야! 내가 그런 게 있으면 술에 약 탄 걸 못 알아채서 칼을 맞았겠냐?"

내 분노에 찬 외침에 똥개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르렁거리던 것을 멈췄다.

[야! 오러 최대한으로 돌려봐!]

"여기서?"

[그럼 지하 연무장으로 가! 빨리, 임마!]

똥개가 앞서서 문을 열고 뛰어나가다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발을 허우적 댔다.

내게서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면 저런 현상을 보인다.

고개를 돌려 아직 내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보더니 당장 이빨을 드러내고 살벌하게 외쳤다.

[뒈지고 싶어! 빨리 안 와!]

무슨 일이 벌어지든 태평하던 똥개가 저렇게 흥분한 건 처음 본다.

난다. 범상치 않은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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