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나 소드 (2) >
마나 소드 (2)
"뭐야, 이거...."
나는 지금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현상에 놀라고 있다.
[어째 오러가 늘어나는 속도가 보통이 아니다 했더니....]
"아니, 설명을 좀 해줘.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연무장으로 내려온 뒤, 똥개는 내게 오러의 운용을 최대로 한 뒤, 마나를 빨아들이는 상상을 하라고 했다.
내가 아는 상식에서 마나를 몸 안으로 빨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상을 시작하기 무섭게 마나는 원래의 자리를 찾았다는 것처럼 몸 안을 돌고 있는 오러와 섞이기 시작했다.
[마나를 네 오른손으로 모아.]
몸 안을 돌고 있던 마나가 오른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눈 감고 네가 주로 쓰는 무기가 손에 쥐여져 있다고 생각해.]
"지금? 손에 아무 것도 없는데?"
[상상하라고! 멍청한 녀석아!]
아오, 똥개자식. 알버트는 친절하고 상세하기라도 하지.
눈을 감고 시키는대로 내가 연습 때 쓰는 검을 생각했다.
손에 익숙한 느낌이 느껴졌다.
[눈 떠.]
"!!"
오른손에 뭉쳐있던 마나가 그대로 뻗어 올라가서 반투명한 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검도 네 몸의 일부인 것처럼 오러를 밀어 넣어]
단숨에 오러가 손을 타고 마나로 만들어진 검을 향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함께한 병기라고 해도 본인의 몸이 아니기에 오러를 운용하는데 이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사들이 명장들이 만든 무기를 찾고, 병기 전체를 오러로 덮는 방식보다는 순간적으로 오러를 집중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아무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스륵
"왜 이래?"
검의 손잡이 부분을 간신히 통과한 오러가 힘을 잃고 사라졌다.
마나로 만든 검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머리가 핑 돌았다.
연무장의 바닥이 날 덮쳤다.
[1분... 기껏해야 2분이 한계인 것 같군]
눈이 감겼다.
##
"우으..."
눈을 뜨니 익숙한 내 방의 천장이었다.
어제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
연무장에 내려가서 똥개가 하라는대로 하고, 마나로 검을 만들고.... 그리고 뭐지?
몸을 일으켜 세우자 누군가 내 얼굴을 마구 만졌다.
어머니였다.
"시안! 괜찮은거니?"
"어떻게 된 거죠?"
"씻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네가 나오질 않아서 시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네가 없다고 하지 않니, 그것 때문에 온 집안이 뒤집혔단다."
저녁 먹고 방에 있다가 연무장으로 바로 갔으니....
"잠깐 산책 갔겠거니 했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너를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찾던 중에 지하 연무장에서 쓰러져 있던 너를 발견한 거 란다."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나를 폭 껴안았다.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너무 많은 부담을 줬구나. 미안하다. 미안해."
그런 거 아닌데요...
"엄마가 아버지한테 단단히 못 박아 뒀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앞으로 기사 되라는 소리는 하시지 않을 거야. 얼마나 부담이 되었으면 애가 그 늦은 시간에 혼자 수련을 하다가 쓰러지누..."
그건 더욱 더 아닌데요.....
"알버트에게 말해서 며칠 수련을 쉬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단다."
어머니의 뒤에 서 있던 알버트가 다가와서 허리를 직각으로 숙였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조금 더 세심히 살폈어야 했는데 도련님의 피로가 누적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 저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저기 구석에서 재밌다고 킬킬대는 똥개새끼 때문인데요.....
일단 어제의 일을 좀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저는 괜찮아요. 조금 더 자야 할 것 같은데 자리를 좀...."
"그래, 그래, 푹 쉬어라. 점심 때 사람을 보내 깨울게."
어머니가 집사들과 시녀들을 우르르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들이 멀어질 때까지 잠깐 기다렸다.
"그만 좋아 죽고 설명을 좀 하지?"
똥개가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올라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어떤 것부터 하면 편하려나?]
"어제 내 손에 있던 그 검은 뭐야."
[마나 웨폰. 너는 검을 만들었으니 마나 소드겠네.]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제국의 공작이자 장군 정도 되면 양지의 것은 물론이고 듣기 싫어도 음지의 온갖 소문과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이 녀석의 말은 그런 나도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몸 안에 들어온 마나를 오러처럼 이용해 병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 마나를 사용하니 마법이라고 해도 좋겠네.]
"잠깐만, 잠깐만."
내가 똥개를 제지시켰다.
"너는 마나만 다루지 오러는 못 다룬다며."
[그렇지. 오러는 인간의 신체에서 만들어지는 힘이니까.]
"그런데 이 마나 웨폰을 만드는데 오러를 이용하는 부분이 있었잖아, 너는 못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어릴 때 직접 보고 설명을 들었거든.]
"누구한테?"
[이타르 카누아.]
똥개의 눈이 빛났다.
[인간들이 이름을 잊어버린 대마법사이자 최초의 마검사에게]
##
그 후, 한참 동안을 똥개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빠져있었다.
"변환인자가 있으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마나가 내 몸을 들락거린다고?"
[그래. 마나들한테는 네가 뛰놀기 좋은 벌판이야. 그리고 네 몸을 떠나면서 몸 안에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같이 가져가.]
"그럼 내가 오러 운용이 빠르게 익숙해 진 게 그것 때문이야?"
[변환인자가 모든 것을 다한 건 아니지. 너희 가문 특유의 무골도 있고 괴물 같은 스승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 나이에 견습 기사 넷을 꺾는 건?"
[맞아, 아무리 외부 요인이 잘 어우러졌어도 네 성장은 너무 빨라. 변환인자가 네 몸을 깨끗이 한 게 큰 도움이 됐을 거야.]
잠시 생각한 뒤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지난번의 삶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똥개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진지해졌다.
[전생에도 네 몸에는 변환인자가 있었지만 마나를 느낄 수 없어 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억지로 네 몸에 심은 마나 때문에 깨어났다고 봐야겠지.]
"하늘이 돕는건가....."
[몇 번을 이야기하지만 지금은 네가 알던 과거의 삶과 달라질 거다.]
"작은 일의 결과가 크게 돌아올 수도 있고, 큰 일의 결과가 작아져서 올 수도 있으니까?"
[.... 잘 알고 있네.]
귀에 피딱지가 앉게 네가 떠들었으니까.
"내가 쓰러진 이유는 뭐야?"
[변환인자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까]
"제발, 알아듣게 좀 얘기합시다. 그쪽은 승려가 아니잖아?"
[후....]
똥개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떠드는 거 엄청 좋아하면서....
[이타르는 천재였어. 저번에 내가 마법에 재능이 있다고 했던 약초 만지는 꼬맹이? 그 꼬맹이로 이 집안을 가득 채워도 이타르의 재능에는 못 비빌 거다. 이타르는 마나를 변환하는 것 만으로 오러와 같은 힘.... 아니 오러 이상의 힘을 만들 수 있었어.]
"너무 먼 얘기라서 실감이 안 나는데...."
[조용하고 들어. 이타르는 마나만으로도 오러를 익힌 기사를 신체적으로 능가 할 수 있었다는 거야. 오로지 마나로 만들어진 이타르의 검.... 내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무기는 본 적이 없지.]
보기에만 조그마하지 속은 몇 천 년을 살아온 늙은이 아니랄까봐 이야기가 저 멀리 강을 건너려고 한다.
"본론! 본론!"
[큼... 너는 마나를 다룬지도 얼마 안됐고 평생을 해봐야 이타르의 머리카락만도 못해.]
"머리카락은 너무하네."
[네가 마검사 흉내라도 내고 싶거든 오러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는 거야.]
"아! 그런데 어제 그렇게 최대 한도로 오러를 운용하는데 마나를 끌어들여서?"
[그렇지. 버티질 못하고 쓰러진 거야.]
다시 똥개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서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나는 너를 보고 항상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뭔데."
[첫째는, 머리가 완전히 멍청한 놈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내가 이야기를 거의 마쳐갈쯤 되야 이해를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고.]
"음..."
[둘째는, 대체 이만한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놈이 과거의 삶에서는 뭘 하며 살았길래 그렇게 무력하게 당했나 하는 생각.]
똥개새끼.... 아픈 곳을 또 찌르네 그래서 이번 생은 그렇게 안 되려고 열심히 하고 있잖아!
[강해지고 싶냐?]
"당연하지. 그 생각만 하면서 산다."
검을 휘두르다가 더 휘두를 힘이 없으면 내 몸 안으로 칼이 비집고 들어오던 끔찍한 감촉을 되새기며 한 번을 더 휘둘렀다.
마법을 익히다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그만두고 싶을 때는 배에서 흘러나온 피로 온통 붉게 젖은 손을 기억하며 다시 한 번 마나를 모았다.
과거로 막 돌아왔을 때는 누군가 나를 찌를까 싶어 시녀들마저 피해 다녔다.
잠을 자다 식은 땀에 젖어 깬 적이 몇 번인지는 셀 수도 없었다.
지금은 숨을 죽이고 힘을 키우고 있을 뿐이다.
강해지고 강해져서 복수하겠다.
그것이 내가 돌아온 이유고 목표다.
[강해진다.... 강해진다..... 좋은 목표지...]
허공을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늘상 자리 잡고 있는 침대의 한쪽 밑으로 가서 엎어지는 똥개였다.
"근데.... 어제 나한테 약속을 어겼다면서 달려드는 건 왜 그랬던 건데?"
[아까 말했던 두 가지 생각 중에 첫 번째 생각은 취소야.]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머리가 완전히 멍청한 놈이 아니라는 건 취소라고. 너는 정말 멍청한 놈이야.]
[변환인자가 있으면 마나가 들락날락 거리면서 네 몸에 있는 불필요한 걸 가져 간다니까?]
"그게 어쨌다고!"
[네 몸에 마나결석이 생겨도 알아서 빠져나간다고! 멍청한 새끼야!]
이 녀석이 그렇게 화를 낼만 했다.
내가 봐도 이건 불공정 계약이다.
내게 마나를 심어주는 조건으로 똥개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 주는 것이 계약이고 내가 그것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저 녀석이 휘두를 수 있는 무기가 내 안에 생기는 마나결석이었는데 그 무기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라도 화나는 상황이었을 거다.
침대 아래로 내려가서 녀석의 앞다리 사이에 손을 끼워 넣고 들어올렸다,
[뭐야! 왜 이래!]
내 손에 얹혀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녀석은 강아지와 다를 게 없었다.
짜식 귀엽네.
[내려 놔! 왜 이러는 건데!]
내가 그래도 전생에서 인덕 높다고 소문 난 사람이었어.
너는 믿을만한 것 같으니까 아낌없이 베풀어 주마.
[놓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