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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0화 (10/180)

< 마음 가짐 (1) >

"나도 가면 안 돼?"

"나 대신 갈래?"

"그래도 돼?"

"당연히 안 되지."

"뭐야! 왜 물어봤어!"

재미도 없는 귀족들의 모임, 마음 같아서는 캐슬린 너를 보내고 싶지만 이번에는 내가 가야한단다.

가서 내가 잘근잘근 밟아 줘야 할 놈들의 얼굴을 두 눈으로 봐야겠거든.

"공작 각하께서 내려 오시랍니다."

시녀가 와서 알렸다.

귀족들의 모임이라고 간단하게 일축하긴 했지만 사실 그것 보다는 중요한 모임이다.

일 년에 두 번, 일주일간 고위 귀족들의 친목과 정보 교환 및 굳건한 카르텔을 유지하기 위해서 귀족원에서 주최하는 모임이니까.

귀족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임이라 하겠다.

오늘은 일주일간의 모임 중 마지막 날 밤에 있는 연회가 있는 날이다.

7개의 공작가문을 비롯해 변경백 3가문을 포함한 18개의 후작가문, 그 외 유력 백작가문 30여 가문의 가주와 후계가 참석하게 된다.

공작가문과 후작가문, 변경백 가문에는 빠짐없이 초대장이 가지만 300여개 가까이 되는 백작가문들 중 귀족원의 초대장을 받는 가문은 매년 다르지만 20에서 30가문 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모임에 한 번 참석해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백작들도 꽤 많다나 뭐라나.

아버지께서 아프실 때는 나가보지 않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분리운동 때문에 이 모임 자체가 흐려졌었다.

분리운동을 진압한 후에 다시 활성화되어 그때부터는 꾸준히 참석했지만 이 나이의 나에게는 상당히 낯선 모임이다.

"가서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친교를 다져두는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게다."

귀족원으로 향하는 마차 안,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명심하겠습니다."

친교는 무슨... 그 새끼들 얼굴 볼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아버지.

"그런데 말이다 시안."

"예."

"그... 기사가 되는 것 말이다.. 큼... 커흠...."

옆에 어머니가 안 계신다고 또 기사얘기를 꺼내신다.

내가 쓰러진 후 어머니는 아버지가 기사의 기만 꺼내도 역정을 내셨지만 아버지는 포기하기가 쉽지 않으신가 보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내가 피하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아버지가 급해지셨는지 이런저런 말을 쏟아냈다.

전생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항상 방에서 누워 피곤에 가득한 얼굴을 한 과묵한 남자였는데 새롭다.

그 새로운 모습이 싫지가 않다.

"알버트가 훌륭한 선생이라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지만 또래의 아이들과 검을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 또 다른 법이란다."

"네."

"물론 일전의 대련으로 네가 견습 기사들보다 성취가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다만은...."

[푸하아암]

옆에 있던 똥개가 크게 하품을 했다.

내 몸 안에 마나결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모든 일에 관심이 없어보였다.

"하겠습니다."

"정말이냐?"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오러건 마나건 계속해서 훈련을 해 나가야 한다.

정식 기사들과 겨루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대신 한 가지만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말해보라고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성을 사달라고 해도 들어줄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할아버님도 뵐 겸, 제뉴인에 좀 다녀왔으면 합니다."

"제뉴인에? 별 일이구나. 일주일이면 되겠느냐?"

"그 정도면 충분 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얘기해 보자꾸나."

여전히 똥개는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야 임마, 약속 지키려고 내가 아버지랑 거래까지 해가면서 제뉴인 가는 거 안 보여?

나보고 멍청하다고 뭐라고 하더니만 더 멍청한 놈 같으니...

마차가 섰다.

문이 열리고 거대한 귀족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

"제국의 일곱 기둥! 개척왕의 후예! 제로 몬트라우, 제뉴인 공작각하와 그 후계, 시안 몬트라우 공자께서 입장하십니다!"

아버지와 내가 입장하자 근위병이 큰 소리로 안쪽을 향해 외쳤다.

홀 안에 모여 있던 시선들이 우리에게 집중했다.

풍채 좋은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제뉴인공! 아버님은 잘 계시는가?"

"안 그래도 아버지께서 꼭 안부를 전하라 하셨습니다."

"안부는 무슨, 프리드 그 놈 참 부러워. 낼름 자네에게 공작 자리를 승계해버리고 고향에서 쉬고 있으니."

전대 제뉴인 공작인 프리드리히 몬트라우의 이름을 그의 아들과 손자 앞에서 마구 부를 수 있는 것은 제국 전체를 통틀어서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이 노인은 눌하스 바크하임. 제국 제 1의 곡창지대인 산탄다르 지방의 공작, 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다.

과거의 삶에서, 제국군이 분리운동을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산탄다르를 사수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탄다르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귀족들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황실에서는 산탄다르의 일부를 제국령으로 매입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했다.

하지만 그런 황실의 압박을 전혀 굴하지 않고 버텨낸 배짱 있는 사람이 산탄다르 공작이다.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이쪽은 제 아들 시안 몬트라우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안 몬트라우라고 합니다."

"반갑구나. 네 아버지를 닮아 깊은 눈을 가졌구나. 잠깐 있어봐라. 그레이스! 이리 좀 와보거라."

산탄다르 공작의 부름에 한쪽에 모여 있던 젊은이들 중 한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원래 첫째 손녀가 와야 했는데 오늘 몸이 안 좋아 둘째를 데리고 왔다네. 인사하거라, 그레이스. 이 쪽은 제뉴인 공작과 아들인 시안 몬트라우."

품위 있게 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그레이스가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몇 살이야? 귀엽네?"

"열 셋이요."

"누나는 스물 한 살이야. 어른들 이야기 하시게 누나랑 같이 놀래?"

전생에서 내가 죽게 만든 상대에게 귀엽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같이 놀자는 말은?

참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다.

그레이스 바크하임.

철혈의 여인.

과거에서 그녀는 몸 약한 언니가 죽은 뒤 산탄다르 공작에 올랐다.

그리고 제국을 10년 간 휩쓴 분리운동이 슬슬 진압되어가기 시작할 무렵인 7,8년 차부터 군량 공급을 중단했다.

몇 년 뒤, 분리운동을 간신히 막아내어 제국이 약해져 있는 틈을 타 자신을 황제라 칭하며 독립 선언을 했다.

제국의 공작이자 장군이었던 내가 파견되었고 여섯 달 간의 치열한 공방 끝에 나는 산탄다르의 중심지이자 바크하임가의 성이 있는 도시, 위그헨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결국 그레이스 바크하임은 위그헨에 있는 사람들은 손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스로의 두 손을 포박한 채, 맨발로 성을 나와 포로가 되었다.

반역자의 말로는 죽음이다.

그녀는 황제폐하께서 직접 참관하는 가운데 참수되었다.

그리고

황제폐하의 명으로 위그헨에 있는 사람들은 갓난아이까지 참살 당했고 바크하임가는 제국에서 영원히 지워졌다.

7개의 공작가문이 6개의 공작가문이 된 순간이었다.

"이쪽으로 와. 처음이라 잘 모르지? 다른 애들도 소개 시켜 줄게."

제국에 반기를 들어 목이 잘려나간 40대의 여인이 20대가 되어 내 앞에서 사근사근 웃고 있다.

"엇."

그레이스가 나를 잡고 끄는 통에 테이블에 부딪혀 잔이 넘어졌다.

잔에 들어있던 물이 쏟아지려던 찰나, 시간을 돌린 것처럼 떨어지던 잔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고 물들이 잔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건 부분 역행 마법!

있다. 칼에 찔린 상처에 부분 역행을 걸어 몇 번이고 다시 찔러댔던 녀석이 여기 있다!

"조심하셔야죠, 시안 공자님"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아직 앳된 얼굴과 변성기가 지나지 않아 얇은 목소리지만 확실하다.

카몰 후작가의 후계, 스테판 유제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카몰 후작가의 장자, 스테판 유제프라 합니다."

각오는 단단히 하고 왔지만 분노가 거침없이 끓는다.

힘이 가득 들어간 주먹은 뼈마디가 허옇게 변하고 있다.

"시안, 시안 몬트라우."

짧게 답했다.

내가 죽게 만든 자와 나를 죽이는데 기여한 자 사이에 끼어 있으니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다.

침착해라.. 침착해라 시안.

앞으로 몇 명을 더 봐야 한다.

이 정도에 흔들리면 안 된다.

스테판이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왔다.

"시안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당장이라도 역겨운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은 마음을 밀어 넣고 잠시 발코니로 나왔다.

[참느라 힘든가봐?]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힘들어.'

[가서 그렇게 해.]

'미친놈. 연회에서 갑자기 내가 마나 소드를 만들어서 몇 놈을 죽였다고 하자. 명분이 뭔데? 미래에 얘네들이 절 죽일 거라서요. 이러면 무죄가 돼? 명분이 필요해. 명분이.'

[힘들게도 산다.]

'얼마 안 걸려. 나는 일어날 일들을 알아. 그걸 이용해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을 쳐서 명분을 얻을 거야. 그리고 하나 하나 나락으로 떨어트린 뒤, 목에 칼을 꽂아야지.'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저... 이쪽으로 뛰어가시던데... 괜찮으신가요..?"

다시 한 번 손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너도 여기 있었구나.

똥개에게 방금 한 말은 취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 녀석은 당장 여기서 죽일지도 모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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