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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7화 (17/180)

< 그대들은 쓰레기다 (2) >

내 말이 연무장에 퍼졌다.

기사들의 표정에 힘이 풀렸다.

하나 같이 '내가 뭘 잘못 들었나'하는 표정이었다.

나도 안다.

코 아래가 이제 조금 거뭇해져가는 소년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것은.

"그대들이 약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른 어중이 떠중이들 보다야 강하지."

한스가 나를 말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는 담담했다.

말을 이어나갔다.

"헌데 쓰레기 중에 강해져 봐야 쓰레기다. 보여주지."

단상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기사들의 매서운 눈이 내 걸음 걸음마다 따라왔다.

세간에서는 황실 소속 기사단인 붉은 방패 기사단보다 수는 적지만 기사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이 있을 만큼 입단도 힘들고 자부심도 강한 송곳니 기사단이다.

자부심을 짓뭉개 놨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로하나스, 나와서 방어세를 취하라."

내 말에 뒤에 있던 로하나스가 뛰어나와 한스를 쳐다봤다.

한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로하나스가 이전의 대련에서 보여준 것처럼 방패를 몸 앞으로 내밀고 검을 그 위에 얹었다.

단상에 올라가기 전 받아두었던 연습용 검을 뽑아 손에 단단히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로하나스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나와 대련해본 경험이 있는 로하나스의 얼굴에 긴장이 아로새겨졌다.

로하나스가 오러를 운용하자 웅웅거리면서 공기가 진동했다.

[저 놈도 놀고 있지는 않았나 봐. 반 년 치고는 많이 성장했네.]

'아버지가 착실하게 키우고 계셨나보지.'

"더 끌어올려라. 한 번은 버텨야지."

멸시 섞인 내 말에 로하나스가 이를 악물며 오러를 단단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느리구나."

검을 치켜들었다.

오러를 검으로 밀어넣었다.

그대로 로하나스의 방패를 찍어 내렸다.

오러와 오러의 충돌로 굉음과 돌풍이 연무장을 휩쓸었다.

로하나스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오러는 내 검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속도도 느려지게 하지 못했다.

검은 여유롭게 로하나스의 방패를 직격했다.

반 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같은 반 년이 아니었다.

결국 로하나스가 내 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나가 떨어졌다.

흉측하게 우그러진 방패가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기사들은 생각보다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식 기사와 견습 기사와의 차이는 크다.

저들도 견습 기사 상대로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생각하고 있겠지. '견습 기사 상대로 힘 좀 보였다고 세상이 다 제 것인 줄 아는 애송이.'라고."

비틀비틀 몸을 세우고 있는 로하나스에게로 몸을 날렸다.

몸을 띄워 로하나스의 어깨를 밟고 몸을 한 번 더 날려 도열해 있는 기사단원들에게 향했다.

"일단, 하나."

떨어지면서 투구를 쓰고 있던 기사 단원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때앵-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의의 일격을 맞은 기사가 휘청이며 넘어졌다.

앞의 기사가 넘어질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던 뒤 쪽의 기사에게로 돌아가 발을 걸었다.

"둘."

당황하며 내려놓았던 방패를 집으려는 다른 기사에게 검을 던졌다.

검이 기사와 방패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박혔다.

놀란 기사가 손을 움츠리며 내 쪽을 바라봤을 때, 나는 이미 그 기사의 등을 밟고 발에 오러를 집중하고 있었다.

내 아래 밟힌 기사가 연무장 바닥으로 엎어졌다.

"셋."

그제서야 기사들의 눈빛이 달라지며 각자의 조를 찾아 나를 포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다시 한 번 바람처럼 기사들 사이를 휘저으며 손목과 오금을 검으로 때려 무기를 잡지 못하게 하고 오러를 방출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병기들을 흘려보냈다.

그래도 꼴에들 기사라고 몇 분 후에는 완벽하게 나를 포위한 방진을 완성해냈다.

그 때는 이미 열이 넘는 기사가 나에게 당한 상태였다.

검을 검집에 꽂고 팔짱을 꼈다.

방진의 한 쪽에서 한스가 걸어나왔다.

"아무리 공자님이라고 하셔도 이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각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쉽게 용서 받으실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픽하고 콧방귀를 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 뿐만 아니라 한스마저 화가 잔뜩 나서 오러를 방출시켰다.

"지금이라도 방만한 행동에 대해 사과를 하시지요. 차기 주인 될 자라도 이것을 그냥 넘길 수는 없습니다."

"일단 나는 차기 주인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한스. 무거운 짐을 지기에는 다른 일이 많아서요."

충격적인 발언에도 기사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방만.... 누가 방만한지 모른단 말인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송곳니 기사단! 정체 모를 적 1인의 습격에 의해! 견습 기사 하나, 정식 기사 열 넷 부상! 이렇게 보고할 셈인가! 한스 단장!"

이글거리는 눈으로 단단한 포위진을 둘러봤다,

"변명하고 싶겠지! 갑자기 공격했다! 주인의 아들이다!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시선이 한스에게 향했을 때, 그는 굳은 얼굴로 말이 없었다.

"죽음은 정중하지 않다! 특히 전장에서의 죽음은 언제! 어떠한 형태로 그대들을 덮칠지 모른다! 그 때도 하나 하나 손가락을 접으며 이유를 따지고 핑계를 댈 텐가!"

한스에게서 눈을 떼고 방진을 구성하고 있는 한 기사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첫 번째 기사가 넘어졌을 때, 왜 나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지?"

기사가 눈을 피했다.

옆의 다른 기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 역시 무기는 나를 향하고 있으나 눈은 나를 향하지 못했다.

"기사란 무엇인가! 무武를 갈고 닦아 자신과 동료, 주인을 지키는 존재 아닌가! 내가 로하나스를 밟고 그대들을 향했을 때, 그대들은 이미 나를 적으로 인식했어야 한다! 칼을 휘두르든, 철퇴로 머리를 부수든, 창을 어깨에 꽂든! 내가 날뛰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

연무장에 내 말만이 울려 퍼졌다.

"내 검이 날카롭게 벼려진 검이었다면...."

몇몇 기사들이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그대들은 하나의 후배와 열 넷의 동료를 잃었다. 단 한 사람에게. 이것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패배다."

굳어버린 한스를 향해 말했다.

"평화의 시대, 수련이라는 허울 좋은 놀음에 빠져 무武를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이래도 그대들이 쓰레기가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

크루슈 산맥에서의 경험은 전생의 나를 일깨웠다.

배회하는 괴물들과 마주치고 그것들을 죽이는 것은 전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사를 하지도 않고 안부를 묻지도 않고 전력으로 오직 살의만을 지닌 채 나를 향해온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장이 나은 편이었다.

전장에서 상대를 어느 정도 제압하면 대개 항복을 하지만 괴물들은 항복을 몰랐다.

심지어 머리와 몸을 분리 시켜도 공세를 멈추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나도 머리를 비운 채 오로지 살의에 몸을 맡긴 채로 괴물을 잘게 썰어 버려야 했다.

"왜 그랬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다른 생각에서 벗어났다.

"..."

"작위를 포기하겠다 했으니 가질 수도 없는 기사단이라 그렇게 난폭하게 군 게냐?"

"이제 열 넷을 바라보는 제가 총 합 열 다섯의 부상자를 만들었습니다. 더 난폭하게 굴었다면 부상자가 아니라 사상자였겠지요."

이런 형편없는 기사단 줘도 안 가진다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네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그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는 그들의 호의를 악의로 되갚은 것이니 날이 밝으면 가서 송곳니 기사단원 전체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거라."

"저는 사과 하지 않겠습니다.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성에 매몰되는 자들에게 본질을 일깨운 것입니다."

아버지가 날카롭게 나를 쳐다봤다.

"전장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제국에서 마지막으로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이 이 아비가 어릴 적인 30년 전이다. 너는 반역으로 비춰질 수 있는 말을 한 것이다. 알고 있느냐."

"그렇게 평화롭다면 기사단을 왜 유지하고 계십니까?"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예, 만약이 있습니다. 헌데 대비가 충분치 않다면 만약을 대비했다는 말이 우스워집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검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 기능을 해야 합니다. 다른 무기들과 스스로 비교하면서 조금 더 빛난다며 위안 삼는 것은 검의 용도가 아닙니다."

아버지도 우둔한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을 듣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책상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참작하겠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기사들에게는 찾아가서 사과하도록 해라. 한스에게 일러두겠다."

"그리하겠습니다."

서재를 빠져나왔다.

[너무 많이 알려주는 것 아니야?]

'네가 분리 운동을 안 겪어봐서 그런다.'

아버지가 계신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겠지만 송곳니 기사단은 더 강해져야 한다.

고고한 기사騎士가 아니라 냉혹한 전사戰士가 되어야 한다.

세율을 올린 어느 자작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농민 봉기는 날이 갈수록 세력을 불려나갔고, 암암리에 이루어진 다른 왕국들의 지원으로 결국 제국에서 독립해 신생 국가를 세우겠다는 지경까지 발전한다.

이것이 분리 운동의 내막이다.

광기에 휩싸인 민중의 제 1 목표는 귀족이었다.

친親영민적인 정책과 통치를 한 귀족들도 광기의 물결에 목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제뉴인 지방은 세율이 높지 않고 할아버지, 아버지, 나로 이어지는 3대가 나름대로 통치를 잘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분리 운동 당시에도 이렇다 할 소요 없이 잘 넘어갔다.

하지만 어디 칼과 활이 지위와 출신 지역을 보고 달리 날아오던가.

대비는 확실히 할 때 대비로써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몸도 지킬 수 없는 기사가 주인과 그 가족을 지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나는 가족들에게서 멀어지기로 했으니 송곳니 기사단이라도 가족들을 철저히 지킬 수 있어야 했다.

그 일환으로 작은 충격 요법을 행했을 뿐이다.

그 때가 되어 알게 되면 너무 늦는 것이다.

##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캐슬린이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다.

"들어 올 거면 들어오면 되지 왜 앞에서 그렇게 서 있어."

문을 더 열어주자 캐슬린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캐슬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방긋 웃었다.

병약한 캐슬린이 아니라 활기찬 캐슬린은 참 보기 좋았다.

"근데... 쟤는 오빠가 키우는 애야?"

1단계의 모습을 하고 침대 아래에 앉아있는 투브를 보고 캐슬린이 물었다.

녀석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이런 걸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참 좋았는데 보이게 된 이후부터는 이래저래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귀찮았다.

다만 누군가를 귀찮게 하지도 않고 먹지도 싸지도 않으니 내가 어디서 신기한 걸 주워왔나 보다 하고 다들 눈치껏 넘어가는 추세였다.

"키우는 거 아니야. 오빠 친구야."

"친구? 이름이 뭔데?"

"투.... "

아무 생각 없이 투브라고 하려다가 말을 삼겼다.

이름이 알려졌는데 괜히 누군가가 녀석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 곤란해 질 수 있었다.

특히 늑대의 모습인 3단계의 모습은 더더욱.

"없어. 네가 하나 붙여줘."

"그럼 털이 완전히 까만색이니까 까망이로 할래!"

그리고 쭈그려 앉아서 투브를 향해 손짓했다.

"까망이~ 이리 와~"

투브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캐슬린을 향해 쫄래쫄래 걸어왔다,

'쳐다도 안 볼 줄 알았더니 무슨 일이래? 까망이?'

[매일 너같이 틱틱대는 놈 보다가 네 동생 보니까 훨씬 낫다 야.]

틱틱은 무슨, 지가 더 틱틱 거렸지.

캐슬린이 쓰다듬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배를 까고 헥헥거렸다.

'못 볼 꼴이다. 못 볼 꼴이야.'

[이런 게 행복 아니겠냐.]

한참을 그렇게 투브와 놀던 캐슬린이 품에 투브를 안고 나를 바라봤다.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오빠, 정말로 공작 안 할 거야?"

"응. 정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먼저 엄마랑 아버지한테 말해서 허락을 받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렇게 갑자기 말하는 건 좀..."

"모아놓고 차분하게 말 했으면 아버지가 '그래 그러려무나.' 하고 허락 하셨을까?"

"그랬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이라도 해봤으면..."

알겠다.

"너, 엄마가 가 보래서 왔지?"

"아, 아냐. 내가 그냥 오고 싶어서 온 거야."

캐슬린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아무리 영특해도 10살 짜리다.

"내가 저엉말 중요한 격언 하나 얘기 해 줄까?"

"뭔데?"

전생에서 수도 없이 많은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것이다.

"대개의 경우에는 허락보다 용서가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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