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진 이름 (1) >
강하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강자가 약자를 알지 못하듯 약자 역시 강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엔 배척하고 추후에는 경외한다.
그 과정에서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투브는 처음부터 강대했다.
'규격 외의 존재'.
다른 늑대들과 달리 자신은 마나를 느끼고 움직일 수 있었다.
자신이 숨 쉬듯 하는 행위를 다른 늑대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리의 우두머리는 그를 두려워했다.
저 어린 늑대가 언젠가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비 내리던 밤, 자다 깬 어린 투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 앞에 서 있는 우두머리 늑대였다.
-내가 널 죽이기 전에 떠나라.
우두머리 늑대가 돌아눕자 투브는 발소리도 내지 않고 무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누구와도 관계 맺지 않았다.
딱 한 번, 어느 인간에게 마음을 준 적 있었다.
이타르 카누아.
자신을 두고 떠나려는 그에게 함께 할 수 없겠냐고 물었다.
-미안해. 너의 길과 내가 가야할 길은 달라.
-그래. 그냥 꺼내본 말이야. 신경 쓰지 마.
어렵게 낸 용기가 거절 당할 때, 상처는 더 깊이 파고든다.
투브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자신이 고독하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게 될 만큼.
-네가 투브냐?
검을 두 개 든 남자가 감히 자신에게 덤벼들었다.
하찮은 인간이지만 합을 나누면서 몇천 년 만에 처음으로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목숨을 끝내기 위해 전력을 쏟아 부으면서 서로를 알아갔다.
-이 녀석을 좀 더 알고 싶다.
앞발로 메조 몬트라우라고 하는 그 남자를 찍어 누른 상태에서 든 생각이었다.
이대로 죽이기에는 아까웠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듣고 싶은 얘기도 많았다.
푸욱
메조는 그렇지 않았는지 검을 투브의 주둥이에 꽂았다.
서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둘은 합의에 이르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잊어 버렸다.
과거로 돌아온 메조의 후손에게 묶여 있는 몸이 되었다.
한 단어가 머리를 뒤흔들었다.
-키우는 거 아니야. 오빠 친구야.
친구.
아득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가 있었던가.
투브의 안쪽에서 무언가 흔들렸다.
고개를 저어 흔들림을 바로 잡으려했다.
이렇게 흔들린 적이 없었다.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우두머리 늑대도, 동행을 거부하던 이타르도, 빈틈을 노려 찌르고 들어온 메조도 자신을 이렇게 흔들어 놓지는 못했다.
그 감각이 너무 낯설어 투브는 조용히 한 번 되뇌어 보았다.
[친구.]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 입에서 까끌거렸다.
'뭐라고 했어?'
[아냐.]
'그럼 빨리 와. 똥개 녀석아.'
이 녀석이 친구라니,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투브는 피식하고 웃어 넘겨버렸다.
그러나 친구라는 단어가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차차 익숙해 질 것 같다는 것도 부정 할 수 없었다.
##
수도에 있는 도서관이란 도서관은 다 뒤지면서 이타르 카누아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누군가 일부러 정보를 차단하기라도 한 듯 그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름 모를 대마법사와 변환인자에 대한 동화만이 남겨져 있었다.
"이만 나가셔야 합니다. 허용된 열람 시간이 지났습니다."
중앙 도서관의 금서구역, 나를 따라다니던 사서가 말했다.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먼지가 풀썩 올라왔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서구역을 빠져나가기 직전, 사서가 자연스레 내 주머니에 쪽지를 밀어 넣었다.
"혼자 있을 때 펴 보시길 바랍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오늘도 허탕 친 건가?]
도서관 밖에 있던 투브가 나를 맞았다.
'허탕은 아닐 수도 있어.'
쪽지를 펼쳤다.
-대마법사에 대한 기록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쿠모 라네아.
라네아라면 대를 이어 뛰어난 마법사들을 배출해낸 백작가문이다.
어떻게 알고 접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들를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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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지저분한 어느 골목, 문을 두드리자 문에 달려 있는 조그만 창이 철컥하고 열리더니 안에 있는 사람이 눈만 빼꼼 내밀고 말했다.
"어떻게 오셨소?"
똑똑 똑
한 번 쉬고.
똑 똑똑 똑똑똑똑똑
"호기심이라는 바다에 잠겨 사실이라는 섬을 향해 나아가려 하네."
열려라... 열려라... 제발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면 안 된다....
문이 열렸다.
더럽기 짝이 없는 골목과는 다르게 정갈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나를 맞았다.
"모시겠습니다."
됐다.
내가 있는 이곳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운영되는 정보 거래소.
특별등급 회원을 구분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는 전생의 정보가 맞았다.
이들은 신분도 믿지 않는다.
자신들이 등급마다 부여한 독특한 방식의 통과의례가 없으면 황제 폐하도 통과시키지 않을 자들이다.
하지만 통과를 하고 원하는 정보에 대해 적당한 가격만 지불하면 의뢰자에 대해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온갖 정보를 척척 내놔서 전생에서도 종종 이용하고는 했었다.
적당한 가격이라는 것이 오로지 저들 기준이라 정보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돈 값은 한다고 볼 수 있었다.
내 앞에서 한참을 걸어가던 여인이 화려하게 치장된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를 안쪽으로 안내한 뒤 여인이 빠져나갔다.
방 안의 모습은 전생의 기억과 다르지 않았다.
조그만 책상과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내가 들어왔던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와 앞에 앉았다.
그는 얼굴에 눈과 코를 가리는 가면을 쓴 채였다.
나도 마법으로 내 얼굴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게 막을 치고 있으니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이용하시는 것 같은데, 맞으십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분의 소개였는지 묻고 싶지만, 큰 결례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남자가 내 앞으로 종이와 깃펜, 잉크를 밀어 놓았다.
"새로운 특별등급 고객에게는 1회에 한해서 정보료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원하시는 정보의 정도나 질에 따라 정보료가 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말씀하시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다면 종이 위에 써 주시면 됩니다. 저는 그 동안 나가 있겠습니다."
"이타르 카누아라는 사람에 관한 모든 것."
"그것이면 되겠습니까?"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정보 제공에 필요한 기간과 추가로 저희에게 주셔야 할 정보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남자가 나를 지나쳐 문 밖으로 나가기 전에 불러 세웠다.
"잠깐, 하나만 더."
"말씀하시지요."
"나와 똑같은 것을 찾는 자가 있었는지."
"알겠습니다."
남자가 재빠르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법이 걸려있는지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바깥은 어때?'
투브에게 말을 걸었다.
투브가 활동 할 수 있는 거리는 늘어났지만 여전히 생각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몇 명 들어갔어. 너처럼 이것저것 안하고 바로 들어가던데?]
'등급이 낮은 의뢰자들일거야.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다고 들었어.'
[너는 어떤데?]
'나는 특별이니까 여기서 제공할 수 있는 정보라면 제한이 없지.'
[기대해 볼만 한 건가?]
'그럴지도?'
전생에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직접 나를 불러 이곳에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아버지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야 들었다고 했으니 아직 아버지는 이곳에 와보시지 못하셨을 가능성이 높았다.
새삼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났다.
뒤에서 문이 열렸다.
아까 전의 남자가 다시 내 앞에 앉았다.
남자의 입에서 당황이 느껴졌다.
"이타르 카누아에 대한 정보를 원하시는 것이 맞으십니까?"
"그렇소."
"정보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 권한은 모든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거금을 내놓으라는 경우는 있었어도 정보가 없다고 이렇게 얘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다른 건?"
"두 분이 계셨습니다."
"추가금을 내면 그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나?"
"죄송합니다. 회원보호는 그 어떤 사항보다 우선합니다."
"그렇다면 그 두 명이 언제 이타르 카누아에 대한 정보를 여기에 의뢰했는지는?"
"그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했다.
남자가 재빠르게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이쪽으로 나를 안내해온 여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다시 그녀를 따라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오러를 최대한도로 끌어올렸다.
몸 안을 맹렬히 휘젓던 오러가 어느 순간 고요해졌다.
그 순간을 노려 마나를 빨아들였다.
바로 마나를 손으로 밀어 보냈다.
반투명한 검이 솟아올랐다.
우웅- 우웅-
마나 소드 주위의 공기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정도는 쉽게 할 수 있었다.
얇게 오러로 마나 소드를 둘러쌌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직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오러를 두른 마나 소드를 허공에 휘두르자 섬칫한 파공음이 연속해서 따라왔다.
이정도까지만 해도 쓰러져 버린 지난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핫!"
왼손에 마나 소드를 쥐고 오른손으로 검에 마법을 부여하려고 시도했다.
[잘 하고 있어. 좀 더 집중해.]
투브의 말에 따르면 이타르는 마나 웨폰 위에 다양한 마법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제는 천재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마법의 신이 있다면 이타르가 아니었을까.
파짓-
잠시 다른 생각을 한 사이 마나 소드에 흐르던 오러와 화염 마법을 부여 하려던 오른손의 마나가 충돌하면서 스파크가 튀었다.
동시에 마나 소드도 사라져 버렸다.
"하아.... 쉽지가 않네."
[마나 소드는 네 몸에 있는 마나를 형상화 시킨 것이기 때문에 오러가 거부감 없이 타고 오르지만 그 위에 마법을 부여하는 건 이질적인 두 힘에 강제로 균형을 부여하는 거니까.]
"이타르는 오러 없이 마나 소드 위에 마법을 부여했다며."
[해 봤잖아?]
시도는 해봤다.
마법이 바로 마나소드로 빨려 들어가서 그렇지.
[이타르는 여러 마법을 마나 소드 위에 안 섞이게 미세하게 얹어서 활용했어. 그건 그 놈 밖에 못 할 거야.]
"와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연무장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눈앞에 투브가 다가왔다.
[아까 다녀온 건 왜 말이 없어?]
나를 향해 투브가 물었다.
정보 거래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말 한 마디 없이 지하연무장으로 내려와 마나소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해서였다.
다 잊고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네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무슨 생각?]
"사람들은 이타르 카누아를 잊은 게 아니야. 누군가 잊게 만든 거지. 정보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어."
거래소의 남자 목소리가 계속 생각났다.
-두 분이 계셨습니다.
정보는 없다고 하는데 정보를 찾으러 온 두 명이 있다고 한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가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라네아 가문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될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