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마검사의 복수-19화 (19/180)

< 잊혀진 이름 (2) >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중앙 도서관에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사서가 나를 위층으로 안내했다.

<도서관장실>

문 앞에 걸린 명패가 반짝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나를 맞이하다가 옆의 투브를 보고 살짝 움츠러들었다.

"신경 쓰지 마."

"예. 이쪽으로 앉으시죠."

자연스럽게 나를 안내하는 그였지만 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금서 구역에 사서가 동행하는 것은 훼손이나 분실의 위험을 막기 위함이지, 이용자의 관심사를 도서관장에게 보고하기 위하는 것이 아닐 텐데?"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쿠모 라네아.

라네아 가문의 직계는 아니지만 중앙 도서관장을 맡을 만큼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는 입김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내 말에 쿠모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지식을 원하는 자에게 얼마간의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자리에 앉았다.

"말이 통할 것 같군."

##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으시군요, 공자님."

나는 지금 창문이 가려진 마차 안에서 어디론가 이동 중이었다.

[뭐지? 뭘 감추고 있는 거지? 계속 숨어드는데. 느낌이 익숙해.]

'읽은 거야? 이 사람?'

[하나가 아니야. 다른 게 있어. 조심해.]

"대마법사에 관한 것은 어찌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혹시라도 마나의 축복이 깃드신 겁니까?"

마나의 축복은 아무리 늦어도 10살 이전에는 표가 난다.

쿠모는 나를 떠보고 있었다.

"개인적인 흥미."

"개인적인 흥미로 금서구역 출입 허가를 요청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학자나 되어야지요."

"나를 만나고 싶어 한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마차에 태운 이유는 뭐지?"

쿠모가 내 쪽으로 잔뜩 숙였던 몸을 쭉 펴서 등받이에 기댔다.

"얘기가 헛도는군요. 다 온 것 같으니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마차가 멈췄다.

밖으로 나서자 주위는 온통 산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

보기에는 작은 집이었지만 내부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다.

쿠모를 따라 내려가니 넓은 공간이 나왔다.

사람들과 골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연구하는 시설 같았다.

쿠모는 거대한 연구공간이 한 눈에 다 보이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타르 카누아."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쿠모는 그 이름을 말했다.

내색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침착하시군요."

"그를 어떻게 알지?"

쿠모가 웃었다.

"하하하.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대마법사 이타르 카누아. 저만큼 그를 잘 아는 자도 없을 겁니다."

웃음을 뚝 그치고 정색한 쿠모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강력한 힘을 혼자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욕망이라는 겁니다. 공자님."

양 팔을 벌린 쿠모가 천천히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라네아 가문에서 마법사가 많이 탄생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이 연구시설 덕분입니다."

마나의 축복이 깃드는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다.

전생에서 제국은 인공적인 마법사를 만드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나는 대략적인 과정만 알고 있을 뿐, 가장 중요한 조건인 '마나의 축복이 깃들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것은 몰랐다.

그런데 라네아 가문은 대대로 한 명씩은 마법사가 탄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의 우연이었다.

"뭘 연구하고 있는 거지?"

"패는 천천히 공개하는 겁니다."

"원하는 게 뭐야?"

쿠모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 올랐다.

"소문대로 영특하시군요. 제뉴인 공작가의 전폭적인 후원과 보호를 원합니다. 아시다시피 민감한 부분이라서요."

"그런 것이라면 아버지께 접촉하는 것이 낫지 않았나?"

"공작각하께서는 마법사에 큰 흥미가 없지 않으십니까?"

"황실은?"

"조금, 아주 조금 비윤리적이라고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황실에서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가고 싶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래서, 가장 괜찮아 보이는 목표가 나다? 대마법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공작가의 후계이니만큼?"

비윤리적인 부분이 뭔지는 몰라도 아마 전쟁으로 마법사들이 죽어나가자 과거의 제국은 쿠모의 방법을 승인한 것 같았다.

"이 시설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또 누가 있지?"

"저 뿐입니다. 제 오랜 노력으로 가문에서 마법사가 탄생하는 것도 모르고 가문의 다른 이들은 그저 마나가 저희 가문을 사랑하는 줄로만 알지요."

내가 밖을 내려다 봤다.

사람들이 여럿 움직이고 있었다.

"저들은?"

"제 한 마디면 죽으라고 해도 죽을 자들입니다."

'어떻게 생각해?'

[연구하고 있는 게 뭔지 물어 봐. 느낌이 익숙해. 왜 익숙하지?]

"투자할 대상도 모르고 투자하는 바보는 아니야. 연구하고 있는 게 뭐지?"

쿠모가 눈을 빛냈다.

"이타르의 반지입니다."

"이타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불분명한데, 그가 가지고 있던 반지를 연구하는 것을 믿으라고?"

"이미 준비 해 놓았습니다. 이타르의 반지라는 것이 믿기 힘드시면 먼 고대의 유물 정도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쿠모가 신호하자 밖에서 한 사람이 상자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상자를 열자 안에서 낡은 반지가 나왔다.

마나가 반지 주위에 잔뜩 몰려 있었다.

"마법사가 아니시라 마나의 흐름을 보실 수 없으신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이 멋진 광경을 보실 수 없다니."

과언이 아니었다.

반지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나가 반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방금 쿠모의 말이 이상했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쿠모는 마법사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마나가 보인다는 말을 하네?"

쿠모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쳐갔다.

그가 얼른 상자를 닫고 반지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다 놓았다.

"연구자들의 말이지요. 허허. 저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야. 저건 내가 알고 있던 이타르의 반지가 맞아.]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기까지 오신 이상,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공자님."

쿠모가 내 쪽으로 빠르게 손을 뻗었다.

손의 색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너를 내 수족으로 만들 셈이었으니까."

[정신 잃지마!]

순식간에 투브가 3단계 모습으로 변하면서 발로 쿠모의 팔을 찍어눌렀다.

"끄아악!"

[기억났다. 거미새끼. 못 본 사이에 이런 짓이나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쿠모는 투브에게 눌린 팔을 스스로 잘라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갈라지고 안에서 뭔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벌레가 탈피를 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안에서 솟아오르던 것의 상체는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이 되고, 하체는 탄탄한 배와 8개의 다리가 달린 거미의 모습이 되었다.

듣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목소리로 여인이 말했다.

"꺼림칙하다 싶더니. 너였군. 투브. 크루슈 산맥의 내 아이들을 몰살 시킨 이후 소식이 없더니. 인간 꼬맹이의 애완동물이 되어 있었군."

갑자기 커져버린 투브 탓에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투브의 모습이 2단계로 변했다.

비로소 마나 이동이 멈추면서 호흡이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골치 아픈 녀석이 숨어있었어. 아라크네야.]

'뭔데, 그건.'

[영수靈獸는 나만 있는 게 아니야. 저 녀석도 영수야. 다른 생물의 몸을 파먹고 안에 들어가서 이간질 하는 걸 좋아하는, 질 나쁜 놈이야. 아주 오래전에 내 영역으로 일족을 끌고 들어오려고 해서 밟아준 이후로 보는 건 처음인데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었군.]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털이 숭숭 달린 하반신을 천천히 움직여서 아라크네는 이타르의 반지가 담겨있는 상자로 향했다.

"멍청한 꼬맹이. 얌전히 내게 몸을 맡겼으면 편해졌을 걸. 저 녀석의 껍질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어서 답답했단 말이야."

아라크네가 껍질만 남은 쿠모를 보고 말했다.

그리고 투브를 보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저딴 녀석보다는 내 품이 더 편안할 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선택지를 줄게. 하나, 내 아이가 된다. 둘, 내가 머물 껍질이 된다."

"둘 다 지랄 같긴 매한가지네."

"어쩔 수 없네. 제압해서 내가 들어가야겠어.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타르의 반지를 가져가게 두지 마! 저걸로 마법사를 만드는 녀석이야. 우리 정체도 알았으니 위험해.]

아라크네가 반지가 담긴 상자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손이 상자에 닿는 순간, 내가 만들어낸 불길이 아라크네의 손을 타고 올랐다.

몸을 뺀 아라크네가 손을 입가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에 붙은 불을 핥아 먹었다.

아라크네가 웃었다.

"귀여운 공자님. 마법을 쓸 줄 알았어? 그럼 반지의 가치도 봤겠는걸?"

웃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굳었다.

"헌데 상대를 봐가면서 마법을 써야지! 감히! 이 아라크네 앞에서 마법을!"

반격할 새도 없이 아라크네가 만들어낸 거대한 불덩이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오러를 끌어 모을 새도 없었다.

"윽!....?"

직격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불이 뜨겁지 않았다.

불덩이는 내 주위에서 위력이 급격히 약해졌다.

변환인자 덕인 것 같았다.

게다가 장로도깨비가 만들어준 가슴의 그림이 뜨거운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뭐야!"

아라크네가 놀란 틈을 타서 상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내 손에 상자가 닿는 느낌이 났다.

'3단계로! 어서!'

투브가 거대한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 아라크네에게 달려들어 밀쳐내고 나를 입에 물었다.

아라크네도 덩치가 작지 않았기에 둘의 충돌로 벽의 한쪽이 부서지면서 우리는 연구공간으로 떨어져 내렸다.

투브는 몸을 돌려 잘 착지 했지만 아라크네는 거대한 몸을 바로잡지 못한 채 그대로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죽었나?"

[그 정도로 죽으면 영수가 아니지. 그리고 그 말은 네가 직접 죽는 걸 확인한 후에 하는 게 좋을 거야.]

작아진 투브가 핀잔을 줬다.

상자를 열었다.

[반지 끼지 마. 이타르의 몸에 오랜 세월 직접 닿았던 물건이야. 어떤 영향력이 있을지 몰라.]

그 말에 냉큼 상자를 닫았다.

"아이들아. 오늘 저녁은 저 둘이란다."

저 편에서 아라크네의 말이 들렸다, 동시에 사람들과 골렘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역시 등이 갈라지며 껍질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거미들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미의 군대 뒤에서 아라크네가 말했다.

"꼬맹이, 그 반지를 내놔. 그러면 눈을 멀게 하는 것 정도에서 멈추고 살려 보내주겠어."

"너무 질 낮은 거짓말이네."

나를 향해 독니를 내미는 거미 하나를 얼려버리면서 내가 답했다.

[오러는 최대한 쓰지 않도록 해. 네가 두 힘을 다 다루는 걸 저 녀석이 알게 해서는 안 돼.]

'여길 마법만 쓰고 어떻게 빠져나가!'

[그 생각 할 시간에 하나 더 부수고 죽일 생각을 해!]

투브의 이빨이 골렘의 목과 머리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둘을 분리해버렸다.

2단계의 모습이었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마법을 뿌리고 있지만 수의 열세는 어쩔 수 없어서 계속 밀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한 쪽 벽에 꼼짝 없이 포위되어버렸다.

아라크네가 무리의 앞으로 슬금슬금 나왔다.

"멈춰."

내가 상자를 열고 말했다.

아라크네의 얼굴이 굳었다.

"네 아이들인지 애새끼인지 다 뒤로 물려,"

아라크네가 손짓하자 거미와 골렘들이 뒤로 물러났다.

"내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답해. 그렇지 않으면 이 반지는 부서진다,"

"마음대로...이런 미친!"

여유를 보이는 아라크네에게 본보기를 보이려고 마나를 날카로운 바람으로 바꿔 반지의 보석 주위를 살짝 깎아냈다.

"믿기 싫음 말아."

"젠장..."

아라크네가 이를 갈았다.

"라네아 가문에 침입한 지는 얼마나 됐지?"

"2백년. 쿠모인지 하는 놈처럼 적당히 능력 있는 방계 혈족의 몸을 옮겨 타며 머물렀지."

"목적은?"

"....."

한 번 더 반지를 깎아내려고 마나를 모으자 아라크네가 소리쳤다.

"하지 마! 크윽... 마법사로만 이뤄진 왕국을 만드는 것."

"왜지?"

"마법사는 선택 받은 존재야. 수가 적다는 이유로 착취 당하듯 살 이유가 없어! 너도 마법사니 내 대의를 알겠지?"

아라크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나를 유혹했다.

굴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왜 라네아였지?"

"반지가 이 가문에 있었으니까. 이 멍청한 놈들은 그게 뭔지도 모르는 눈치던데."

내가 만든 바람 칼날이 반지 주위에서 팽팽 돌아가자 아라크네의 입이 술술 열렸다.

"사람들이 이타르 카누아에 대한 것을 잊게 한 건 네가 아니지?"

고작 2백년 동안 백작 가문이 시행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정보를 통제하는 녀석이 아니다.

"맞아. 나도 처음 내려왔을 때 깜짝 놀랐어. 아무도 이타르를 모르더군. 심지어 나도 들어본 이름인데."

"들어봐? 너는 이타르를 본 적이 없나보군."

아라크네의 표정이 분노로 가득 찼다.

"그래! 난 이타르를 본 적이 없어! 그게 더 비참했지! 마법에 관한 것은 내가 최고라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본 적도 없는 한낱 인간이 대마법사, 마법의 신이라고 불리다니!"

마법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긴 아까 내게 쏘아낸 불덩이도 그 위력과 빠르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태양달을 알고 있나?"

"몰라. 처음 들어봐."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녀석은 정보 거래소도 모른다.

아라크네는 이타르에 대한 정보를 요구한 두 명이 아니다.

탁.

상자를 닫아서 아라크네에게 던졌다.

[야! 저걸 볼모로 여길 빠져나가야지!]

'아까 들어오면서 못 봤어? 복잡한 구조야. 한쪽으로 몰이 당할 거야. 설령 벗어나도 이 주위에 건물은 이것 하나 밖에 없었어. 들고 도망칠 수는 없어.'

상자를 받아서 열어본 아라크네의 얼굴이 굳었다.

제발 도움이 되길.

손가락에 이타르의 반지를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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